
민족사랑
[취임사] 존경하는 회원 여러분, 그리고 민족문제연구소의 모든 구성원 여러분
[취임사] 존경하는 회원 여러분, 그리고 민족문제연구소의 모든 구성원 여러분 김민철 신임 소장 오늘 저는 민족문제연구소 제4대 소장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연구소와 첫 인연을 맺은 것이 1990년 겨울이니 벌써 35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책임연구원, 연구실장, 연구위원으로서 미력이나마 보탤 수 있었던 저로서는 이 자리가 영광이자 무거운 짐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동료 후배들이 저를 놀리는 말로 ‘무책임연구원’이라 부르곤 합니다. 주로 일은 벌여놓고 뒤처리는 떠맡기는 때문인지 일종의 경고성 놀림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가끔 쓸모가 있을 때면 ‘무책임’의 ‘무’에 ‘한’을 붙여 ‘무한책임’으로 슬쩍 바꿔 놓기도 합니다. 이제 그게 현실이 된 것 같아 몸과 마음이 더더욱 무거워집니다.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권력도, 자본도 아닌 시민의 자발적 결의와 연대가 모여 연구와 실천을 해 온 민족문제연구소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독특한 단체입니다. 시민이 스스로 기억의 주권자가 되어 만든 독특한 지성과 실천의 공간이자 의지의 집합체입니다. 35년 동안 연구소를 지탱해 온 회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35년 전 연구소가 출범했을 때 한국 사회는 군사독재의 해체 이후 새로운 민주 질서를 모색하던 전환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과거를 바로 세우는 일은 곧 민주주의의 토대를 다지는 일이었으며, 친일 문제 제기와 사전 편찬은 보수적인 지배 엘리트에게 지난날의 정치적 과오를 세상에 드러내는 기소장이자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어떤 가치를 가져야 하는가를 묻는 선언이었습니다. 친일파에게 법적·정치적·역사적 책임을 묻는 일은 특정 인물을 비판하는
민족사랑 2026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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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자가 국가유공자 둔갑 웬말?” 분노의 ‘4·3버스’
[후원회원마당] “학살자가 국가유공자 둔갑 웬말?” 분노의 ‘4·3버스’ 한요나 후원회원, 시민기자 2026년 1월 14일, 제주에서 육지로 향하는 ‘육지로 가는 4·3 버스’가 운행을 시작했다. 참가한 100여 명의 시민은 왕복 1000km에 달하는 경로를 따라 역사정의를 위한 대장정에 나섰다. 이번 답사는 제주 4·3 당시 진압작전을 주도했던 박진경 대령이 지난해 11월, 국가보훈부에 의해 ‘국가유공자’로 지정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추진되었다. 소리소문 없이 진행된 이번 지정은 제주 4·3의 역사적 성격과 제주도민들이 겪은 상처를 다시금 공론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실장의 주도로 결성된 답사단에는 제주 4·3 유관 단체를 비롯해 역사학자, 4·3 유족회,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참여했다. 여기에 국가보안법 피해자와 세월호 활동가 등 다양한 시민단체와 문화예술인 100여 명이 가세하며, 여정은 왜곡된 성역으로 둔갑한 국가폭력 가해자들의 흔적을 추적하는 역사연대의 장으로 전개되었다. 뒤틀린 과거사 청산: 학살 주범이 유공자로 부활한 모순 이번 답사의 출발점은 ‘역사정의’의 회복에 있다. 박진경 대령은 1948년 제주 4·3 당시 미군정에 의해 발탁되어 진압작전을 총지휘한 인물이다. 그는 부임 직후 “우리나라 독립을 방해하는 제주도 폭동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30만을 희생시켜도 무방하다”는 발언을 남겼다. 이는 단순한 수사적 위협에 그치지 않고 이후 전개된 혹독한 양민 학살 작전의 지침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박진경의 부임은 4·3의 전개 양상을 ‘치안 유지’에서 ‘양민 학살 작전’으로 전환시킨 결정적 지점이었다. 그는 부임 한 달 열흘 만에 약 6천여 명의 도민을 무차별
진도 의신공립보통학교 국기게양탑 건립기
[식민지 자료관 6] 진도 의신공립보통학교 국기게양탑 건립기 이순우 특임연구원 축제일을 당하여 축의를 표하기 위하여 국기를 게양함은 신민 된 자의 본분이라. 그러하지마는 올봄에 소요가 있은 이후로부터 우리 조선사람 중 회사 혹은 은행을 제하고는 도무지 국기를 게양하지 아니하였도다. 그 원인이야 여러 가지이겠지마는 생각건대 이는 외부의 협박으로 말미암음이 가장 많도다. 이제는 소요도 진정되고 불령한 자들의 자취도 점점 없어져 가며 또는 저자들의 빙자하는 강화회의도 끝났도다. 그러하지마는 상금껏 축제일에 국기를 달지 아니하는 것은 신민 된 본분에 위배되었으며 동시에 국가의 큰 불상사일지라. 천장의 가절이 박두하였는 바 식자의 의견을 들을지어다. (이하 개별 의견 있음). 이것은 거족적인 삼일만세시위가 있던 바로 그해 가을, 『매일신보』 1919년 10월 30일자에 수록된 「국기게양문제(國旗揭揚問題), 천장가절이 목전에 박두해, 식자의 의견을 들을지어다」 제하의 기사 첫머리에 나오는 내용이다. 여기에서 보듯이 이 당시에는 일장기에 대한 거부감이 확연히 강했던 탓인지 ─ 식민통치자들로서야 답답하기 이를 데가 없는 노릇이었을 테지만 ─ “조선사람들이 도무지 국기(일장기)를 게양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만주사변(滿洲事變, 1931년 9월 18일)의 국면이 되자 중대한 시국변화(時局變化)의 전개를 빌미 삼아 즉각적으로 국기 관념의 중요성을 고취하는 동시에 이를 의무 게양하고 대대적으로 보급하는 정책이 전면에 등장하기에 이른다. 이 점에서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1932년 1월 22일자로 이뤄진 정무총감의 통첩(通牒) 「국기게양방 여행에 관한 건(國旗揭揚方勵行ニ關スル件)」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조선에 있어서는 종래
경성고학당 출신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의 활동
[연구소 글방 24] 경성고학당 출신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의 활동 박광종 특임연구원 1. 경성고학당의 8년간 고투(苦鬪) 고학당의 설립은 이준열의 자발적인 교육운동에서 비롯되었다. 공업전문학교의 조선인 자치조직인 공우회(工友會) 회장이었던 이준열은 3·1만세운동에 주도적으로 참가했고, 그해 공업전문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공전(工專) 동창생 최의창을 만나 대중적 교육사업에 의기투합했고 지방 출장 중에 우연히 대한광복회 박상진 열사의 아들 박응수한테서 당시 3만원 가치의 산야를 기증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학비를 전액 면제하는 고학당(苦學堂) 설립안을 구체화했다. 최근 신문을 의거하건대 고학생 구제방법에 대하여 박응수, 이준열, 최의창 등 제씨의 고심한 결과로 고학생을 수용하기 위하여 고학당을 설립하려고 획책중인 바 그 학당에 입학하는 학생은 중등 정도의 교육을 5년간에 완전히 졸업하도록 교수할 터이라 한다(『조선일보』 1923.2.23). 고학당은 무산자을 위한 중등교육기관을 표방했고 이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자 하는 헌신적인 교육자들의 자발적 지원이 있었기에 각 교과별로 적정한 교사진를 확보할 수 있었다. 교사들은 과거 경력에 따라 ① 경성공업전문학교 동창 ② 현직 교사들 및 교육사업가 ③ 해외 유학생 출신으로 분류된다. 설립 초기에는 공업전문학교 동창인 최의창, 김용현, 이대우, 최성옥이 교사진에 참여했고(『매일신보』 1923.4.6), 이후 다른 학교에 재직하고 있던 중견 교사와 교육사업가들이 결합하였다. 1923년 5월 개교 당시 교사진은 다음과 같다. 배재고보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권진규가 고학당에 출강하였으며, 박형남이 한문 역사 과목을 담당하고, 타학교 교원이었던 조종환이 수학을, 남상목이 영어, 최성옥이 체조, 그리고 설립자 이준열은 교장을 역임하면서 수신 과목을
2025 민족문제연구소 10대 뉴스
2025 민족문제연구소 10대 뉴스 • 내란 저지 ‘빛의 혁명’ 참여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의 불법적 비상계엄 선포 이후, 2025년 4월 4일 탄핵 심판에서 파면될 때까지 123일 동안 윤석열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 각지에서 진행되었다. 우리 연구소 회원들과 상근자들도 내란 저지에 적극 동참했다. 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은 5월 16일부터 긴급전시행동 〈민주주의와 깃발〉전을 진행하였는데, 518명의 시민들이 기증한 시위용품 2,700여 점으로 전시를 구성했다. 이 기획전은 큰 호응을 받았으며, 부산 민주공원과 서울 민주화운동기념관의 요청으로 관련 전시를 지원하는 성과도 거두었다. • 2025년 2월 『재일조선인단체사전 1895~1945』 일본어판 발간 2007년부터 시작한 재일조선인단체사전 편찬사업은 2021년에 한국어판(대한민국 학술원 우수도서로 선정)을 낸 데 이어 2025년 2월 일본어판 출간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도쿄의 유마니쇼보 출판사에서 E-book으로 나온 일본어판은 대형 서점 배급망을 통해 일본 내 주요 대학과 도서관에 보급되어 재일조선인 사회를 탐구하는 기초 학술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한일 공동작업으로 진행된 사전 발간 사업을 통해 시민사회의 긴밀한 교류협력과 연대가 과거사 문제를 풀 열쇠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 부민관 폭파의거 80주년 특별전 〈조문기의 시한 폭탄은 아직 터지지 않았다〉 개막 부민관 폭파의거 80주년을 맞이해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에서 4월 15일 〈조문기의 시한폭탄은 아직 터지지 않았다〉 특별전을 개막했다. 이 특별전은 우리 연구소 제2대 이사장이자 부민관 폭파의거의 주역인 조문기 지사의 삶과 활동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1부 화성에서 태어난 조문기의
식민지역사박물관, 교원연수 〈“작은박물관”에서 배우는 민주주의 역사〉
[초점] 식민지역사박물관, 교원연수 〈“작은박물관”에서 배우는 민주주의 역사〉 식민지역사박물관은 1월 7일부터 9일까지 3일에 걸쳐 전국 초중고 교사를 대상으로 교원연수를 진행했다. 이번 교원연수 〈“작은박물관”에서 배우는 민주주의 역사〉는 현재 박물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작은박물관 스탬프투어’와 연계하여 민주주의와 민주 열사에 대해 알아보고, 실제 수업에서 민주주의 아카이브 및 전시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총 8강에 걸쳐 다루었다. 첫 강의는 ‘청년 노동자 전태일이 꿈꾼 삶과 민주주의’를 주제로 전태일기념관 장소영 선생에게 전태일의 삶과, 전태일 이후의 노동운동의 역사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2강은 이현주 박종철센터장이 6·10민주항쟁과 박종철, 민주주의에 대한 본인의 경험, 박종철 열사와의 개인적 일화를 사진과 함께 들려주었다. 더불어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것이 기억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현대 민주주의가 나아갈 방법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3강은 문익환 통일의 집 박선정 아키비스트와 함께 「월간 문익환」 제작을 중심으로 시민들이 직접 아카이빙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았다. 관련 활동과 시민 아카이브 사례를 통해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과 직접 아카이빙할 수 있는 방법도 배워볼 수 있었다. 4강은 식민지역사박물관 김승은 학예실장이 시민 참여형 전시 만들기와 공공역사를 주제로 강의했다. 긴급전시행동 ‘민주주의와 깃발’ 전시 기획과 전시 방법, 공공역사로서 전시를 평가해보는 시간이었다. 5강은 이한열기념사업회 이은영 사무국장이 ‘보고싶은 얼굴, 청년 이한열을 마주하다’를 주제로 1980년대 민주화운동과 인간 이한열에 대해 강의를 진행 했다. 민주주의를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민주주의를 기리는 기념관은 어떤
‘야스쿠니 한국인 합사 철폐 소송’을 시작하며
[초점]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는 내 아버지를 해방시켜라!” - ‘야스쿠니 한국인 합사 철폐 소송’을 시작하며 2025년 12월 23일, 일본의 침략전쟁에 군인과 군속으로 강제로 동원되어 죽음에 이른 한국인 희생자 10명의 유족이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신사의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야스쿠니 한국인 합사 철폐 소송’(사무국 민족문제연구소,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이 시작되었다. 이 소송은 2001년부터 일본 법정에서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신사의 책임을 묻기 위해 싸워 온 희생자 유족들이 일본 법원이 외면한 인권과 존엄의 회복, 정의의 실현을 위해 한국 법정에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신사를 상대로 처음 제기하는 소송이다. 그동안 이 소송을 한국에서 제소할 수 없었던 것은 한 국가를 다른 국가의 법정에 세울 수 없다는 국가면제(주권면제)라는 국제법의 장벽에 가로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1년과 2023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생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한국 법원은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한국 법원은 일본군 성노예제와 같은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를 인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불법행위가 법정지국인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 발생한 경우, 국가면제를 배제하여야 한다는 법리를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이번 소송의 원고들은 이 판결을 바탕으로 한국 법정에서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의 책임을 묻는 새로운 싸움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2025년 9월 19일 희생자의 손주 세대가 부모 세대의 투쟁을 이어받아 ‘야스쿠니 무단 합사 철폐 3차 소송’을 제소했다. 소송 원고인 희생자 박헌태의 손주 박선엽 씨는 기자회견에서 “할아버지는 원치 않는 전쟁에 끌려가서
경기도 독립운동 사료수집사업 성료
[초점] 경기도 독립운동 사료수집사업 성료 연구소와 민연은 2025년 광복80주년을 맞아, 경기도가 독립운동사의 기억과 계승을 위해 추진한 <경기도 독립운동 사료 수집 사업>을 맡아 진행했다. 6월부터 12월까지 6개월간 진행한 이 사업의 주요 내용은 독립운동가 후손 구술(40시간 이상)과 소장 자료 수집이며, 이를 바탕으로 한 전시회와 후손 초청행사 개최, 구술집 발간과 배포, 3편의 영상 제작이었다. 전체 사업의 기본 바탕은 경기도 출신 독립운동가 후손을 대상으로 한 구술 자료 수집에 있었다. 구술자로 참여하신 분들은 경기도 출신 독립운동가 이석영·이규준 지사의 후손 김창희, 임면수 지사의 후손 임병무, 김연방 지사의 후손 김주용, 신숙 지사의 후손 신현길, 엄항섭 지사의 후손 엄기남·박은혜, 홍가륵 지사의 후손 홍우영, 오희옥 지사의 후손 김흥태, 조문기 지사의 후손 김석화였다. 사업은 먼저 후손과 직접 만나 소통하면서 체계적인 구술 채록과 영상 기록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이 걸어온 삶의 여정을 조명하고 이를 생생한 목소리로 기록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그 결과 독립운동가 자녀 세대의 직접 기억(1∼2대)부터 손자녀 및 증손자녀 세대의 간접 기억(2∼4대)까지 폭넓은 세대의 이야기를 수집할 수 있었다. 특히 대를 이어 전해진 집안의 이야기는 우리 독립운동사의 흐름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었다. 그리고 해방 이후 분단과 전쟁, 친일파 청산 좌절 등의 굴절된 현대사 속에서 후손들이 겪어야 했던, 이념적 대립과 연좌제로 인한 고통과 아픔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러한 가족사의 이면까지 기록하면서 독립운동가의 생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