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305

[후원회원마당]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연구소에서의 4개월을 마무리하며

김윤아 제천간디학교 고등 3학년

안녕하세요! 올해 2월부터 5월까지 약 4개월 동안 민족문제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인턴으로 활동한 제천간디학교 고등학교 3학년 김윤아입니다. 활동기간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지금, 연구소에서 보낸 넉 달을 돌아보니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흘렀나 싶어 시원섭섭합니다.

저는 충북 제천시 덕산면 산골에 있는 중고등 통합 대안학교인 제천간디학교에 재학 중입니다. ‘간디학교’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듯, 일반학교와는 다소 다른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입시를 위한 교육보다는 인문학과 사회체험, 공동체 교육을 중요히 여기며, 중·고등을 모두 합쳐도 100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규모의 학교입니다. ‘더불어 행복한 사람’을 교육목표로 삼아 선후배와 동기, 교사와 수평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졸업을 앞둔 고등 3학년이 되면 약 3개월 동안 학교의 울타리를 넘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을 내딛습니다. 이 교육과정을 ‘사회체험학습’이라 하는데요, 쉽게 말씀드리자면 무급 인턴십입니다. 학생들은 자신이 꿈꾸는 삶과 유사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어른들을 만나고,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실천하는 단체에서 일하며 ‘나’의 세계를 넓힙니다.

저는 ‘왜 아직도 해결되지 못했을까?’라는 단순한 물음에서 출발해 국가폭력과 과거사 청산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걸 계기로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역사를 공부할 필요성을 느꼈고, 동아리와 소모임을 만들어 친구들과 함께 공부해왔습니다. 활동을 계속하다 보니 자연스레 진로도 비슷한 쪽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사회체험학습을 통해 이 문제를 연구하고 해결하기 위해 활동하시는 분들을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민족문제연구소에 연락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9월, 운 좋게도 연구소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방학진 실장님의 제안으로 11월에 열렸던 ‘약산 김원봉과 함께’ 학술회의에 참석해서 연구소 선생님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고 인턴 근무를 확정 지었습니다. 첫 출근을 앞두고는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환경에서 지낸다는 것에 한껏 들떠 연구소에서 발간한 책을 읽거나 팟캐스트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찾아온 첫 출근날, 출근길부터 연구소까지 모든 게 낯설었던 저를 따뜻하게 반겨주신 인턴분들과 연구소 선생님들 덕분에 긴장이 한결 풀렸습니다. 멘토이신 국세현 선생님께 업무 전반에 대한 안내를 받으며,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첫달인 2월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점차 스며들던 시기였습니다. 주로 국세현 선생님을 도와서 회원관리 업무를 맡았고, ‘긴급특강: 계엄과 폭력의 역사’를 진행 보조하며 강의를 듣기도 했습니다. 윤석열 탄핵 집회에 참여한 경험은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본가인 대구에서 열리는 탄핵 집회와는 주변의 반응과 집회 분위기가 사뭇 달랐고, 평소에 접점이 없던 연구소 선생님들과 이야기 나누었던 것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3월과 4월엔 본격적으로 긴급전시행동 <민주주의와 깃발>을 준비했습니다. 저는 인터뷰 녹취록 정리와 기증품을 기록·분류하는 일을 맡았는데, 특히 녹취록 작업을 정말 열심히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시위용품 기증자를 비롯한 현장에 나온 시민들과 광장에서 자신들의 의제를 외친 활동가들을 비롯해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다시 들으며, 시야가 한층 넓어졌습니다. 또한 김승은 실장님의 제안으로 청소년단체 활동가 두 명을 직접 인터뷰하기도 했는데요, 같은 청소년으로서 광장의 경험을 나누고, 앞으로의 세상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기증품 정리 작업은 그 양이 워낙 많아 바삐 작업했지만, 기증품 하나하나에 담긴 사연을 알게 되니 마냥 가벼이 넘길 수는 없기도 했습니다. 기증품이 어떻게 보관되고 기록되는지를 배우며, 전시 준비의 섬세함과 중요성을 몸소 느꼈습니다.

3월과 4월에도 주말이면 탄핵집회에 참여했습니다. 현장에서의 경험은 전시에 대한 이해를 깊이 있게 해주는 밑바탕이 됐습니다. 한국현대사의 큰 굴곡을 연구소에서 지켜볼 수 있다니, 감회가 남다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5월은 긴급전시행동 <민주주의와 깃발> 전시 개막을 앞두고 하루하루가 분주했습니다.

전시를 준비하시는 모든 선생님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셨던 시기인데요, 하나의 전시가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의 정성과 품이 들어가는지 새삼 실감하기도 했습니다. 전시를 위한 선생님들의 수고와 열정을 알기에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어 최선을 다했던 것 같습니다. 힘들지 않냐는 물음에도 ‘힘든 것보단 재밌어요’라고 답했을 만큼 힘듦보다는 재미를 많이 느낀 일이었습니다.

개막식은 5·16 군사쿠테타와 같은 날인 5월 16일에 개최되었습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비가 쏟아졌지만, 박물관 안은 관람객들로 북적였습니다. 돌모루홀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니 그간의 과정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며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이토록 빠르게 흐른 이유는 인턴 생활이 너무 재밌었기 때문이겠지요. ‘넉 달밖에 안 되니까 열심히 해야지!’ 하고 생각했던 것이 석 달이 되고, 두 달이 되고, 어느새 일주일이 되는 것을 보며 시간이 조금이라도 느리게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굵직한 행사나 활동만큼이나 오며 가며 선생님들과 나눈 인사와 짧은 대화, 함께 먹은 점심, 추웠지만 즐겁게 참여했던 집회 같은 소소한 순간들 역시 기억에 남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인턴 기간을 연장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아쉽습니다. 선생님들께서 학교 가지 말고 여기서 일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냉큼 그러겠다고 대답했어야 했나 싶습니다.

인턴을 시작하기 전에는 경험도 배움도 부족한 제가 한 사람 몫은 할 수 있을지, 오히려 누가 되는 건 아닐지 걱정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면서 그런 불안은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비록 실수하거나 헤맸던 날들도 있었지만, 너그럽게 도와주시는 선생님들 덕분에 ‘내일은 더 잘해야지’ 하고 다짐하며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인턴 활동기간 동안 저는 과거사 청산과 국가폭력에 관한 문제가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이며, 그 해결이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지를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을 계기로 저도 연구소 선생님들처럼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역사가 시민의 손에서 쓰이는 세상을 만드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품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선 매주 금요일마다 한 주를 돌아보는 ‘가족회의’를 합니다. 회의를 열며 함께 꽃다지의 ‘바위처럼’을 부르는데요, 가사 중에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바위처럼 살아가 보자 /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 / 어떤 유혹에 손길에도 흔들림 없는 / 바위처럼 살자구나” 이번 인턴 활동으로 연구소와 박물관에서 느끼고 배운 것을 밑거름 삼아 노랫말처럼 더 단단하고, 올곧은 사람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턴 활동을 뜻깊고 값진 경험으로 만들어주신 연구소와 박물관 선생님들께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부서를 막론하고 마주칠 때마다 따뜻한 인사로 반겨주셔서 더욱 힘차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주로 5층에서 근무하다 보니 다른 층 선생님들과는 자주 뵙지 못했지만, 나름 열심히 성함도 외우고 마주칠 때마다 열심히 인사했다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출근을 일주일 남짓 남기고, 멘토 국세현 선생님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끝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왈칵 나더군요! 생각보다 제가 인턴 활동에 마음을 많이 썼나 봅니다. 그래도 크게 아쉽거나 슬프진 않습니다. 연구소와의 인연은 이제부터 시작일 테니까요. 최근엔 회원가입도 하였는데, 작지만 연구소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젠 회원으로 함께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