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huge collection of 3400+ free website templates, WP themes and more http://jartheme.com/ at the biggest community-driven free web design site.

민족사랑

조선식산은행의 방계로 창설된 성업사(成業社)라는 회사의 정체

2026년 1월 7일 360

[이 땅에 남아있는 저들의 기념물 20] 대천 간척지 소작인의 명의로 세워진 ‘보령 성업사 시덕기념비(1938년)’ – 조선식산은행의 방계로 창설된 성업사(成業社)라는 회사의 정체 이순우 특임연구원 우리나라 서해와 남해 바다를 끼고 있는 해안가 마을 어느 곳을 가나 그 주변에 ‘간사지(干瀉地)’라는 지명으로 통용되는 지역들이 제법 존재한다. 대개는 이 ‘간사지’라는 표현이 ‘간척지(干拓地, 갯벌매립지)’의 의미를 품고 있는 말로 사용되는 모양인데, 실상 ‘간사지’는 ‘간척지’도 아닐 뿐더러 — 정확하게는 — ‘간석지(干潟地, 갯벌)’를 잘못 적은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간석지’라고 할 때 석(潟)이 ‘펄’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 앞에 붙은 ‘방패 간(干)’이라는 글자는 과연 어떤 뜻으로 새겨야 하는 것일까? 우리의 고문헌 자료에는 갯벌을 나타내는 단어로 해택(海澤, 갯벌), 석로(潟鹵, 소금펄), 노지(鹵地, 짠땅) 등의 용례가 두루 확인되지만, 유독 ‘간석지’라는 표현 그 자체는 좀체 그 흔적이 눈에 띄질 않는다. 그렇다면 이건 아무래도 일본 쪽에서 넘어온 근대식 용어가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고 찾아봤더니, 1867년에 발행된 『일영사전(Japanese and English Dictionary)』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수록된 것이 퍼뜩 눈에 띈다. – Hikata, ヒカタ, 干瀉, A dry sandy beach – Hiki-shiwo, ヒキシホ, 引汐, Ebb-tide 여길 보면 우선 ‘간사(干瀉, 히카타)’라는 표기가 나오는데, 어찌 된 것인지 그 뜻이 ‘갯벌’이 아닌 ‘모래해안’이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사(瀉; 샤)’라는 한자는 일본어에서 음독(音讀)이건 훈독(訓讀)이건 간에 ‘카타’라는 발음과 무관하고, 정작 이 음가를 갖는

항일혁명가 이관술, 정판사위폐사건 재심 무죄 확정까지 걸어온 험난한 여정

2026년 1월 2일 277

[기고] 항일혁명가 이관술, 정판사위폐사건 재심 무죄 확정까지 걸어온 험난한 여정 배문석 울산노동역사관 사무국장 12월 22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정판사위폐사건 재심 선고공판. 그렇게 원했던 이관술에 대한 무죄가 선고됐다. 일제강점기가 끝날 때까지 일제에 맞서 항일혁명운동을 펼쳤던 이관술. 해방 후에는 첫 정치여론조사에서 여운형, 이승만, 김구, 박헌영을 이어 5위. 민중의 지지를 받던 지도자 이관술을 위조지폐범으로 증거를 조작하고 사법 살인한 미군정기 재12월 22일, 서울중앙지법 서문 앞. 정판사위폐사건 재심 무죄선고 환영 기자회견판을 뒤엎은 것이다. 서울중앙지법에 재심을 신청했을 때는 2023년 7월. 그때 재심 결과를 낙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먼저 장경욱 변호사가 신청인 손옥희(이관술의 외손녀)를 만나 재심을 논의했고 이후 신윤경 변호사(법무법인 동화)가 함께했다. 하지만 재심 결과에 상관없이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가 더 컸다는 게 사실이다. 2023년 재심 신청, 낙관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이관술 유족뿐 아니라 학암이관술기념사업회는 재심 이전까지 독립운동가 서훈이 더 빠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후 사회주의계열뿐 아니라 독립운동가 서훈을 늘려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2019년, 공적서를 작성해 보훈처(현 국가보훈부) 서훈신청을 했지만 결과는 허탈했다. 공적심사위는 이관술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펼친 것은 명백하지만 ‘광복 이후 행적 때문에 심사를 보류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해방 후 행적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빠졌지만, 누구나 이관술이 위폐범이란 누명을 쓴 ‘정판사조작사건’ 때문이라고 여겼다. 실망한 유족들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2020년에 발족한 제2기 진실과 화해를

12‧3 내란 재판의 역사성과 문제점

2026년 1월 2일 469

[기고] 12‧3 내란 재판의 역사성과 문제점 손익찬 민족문제연구소 고문 변호사 1. 12‧3 내란 재판의 역사성 주요 내란 사건은 헌법 개정과 맞물려 있는바,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제1차 개헌(부산정치파동) : 제헌 헌법상 대통령은 4년 중임제의 국회 간선제였다. 1950년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직선제 개헌을 시도하였으나 1951년 1월에 국회에서 부결되었다. 이에 이승만은 군인을 동원하여 야당의원 47명을 연행(10명 구속)하는 등의 방식으로 국회의원을 협박하였다. 다시 발의된 직선제 개헌안은 군인과 경찰이 국회의사당을 포위한 가운데 통과되었다. ② 제5차 개헌(5‧16 군사반란) : 1960년 4‧19 혁명의 결과 민주정부가 수립되며 의원내각제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육군 소장 박정희 등은 1961년 5‧16 군사 반란을 일으키고 국정을 장악했다. 그리고 군사반란 세력의 주도 하에 1963년 제5차 개헌안이 통과되었다(4년 중임제의 대통령 직선제). ③ 제7차 개헌(10월 유신) : 박정희는 1963년 및 1967년 대통령 선거에서 연이어 당선되고 1969년에는 3선 개헌안을 통과시키고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다(3선). 박정희는 영구집권을 목표로 1972년 10월에 군대를 동원해서 국회를 해산하고, 야당 의원과 시민들을 납치, 고문하며 정치활동을 금지시켰다. 결국 1972년 말에 대통령의 임기 제한을 없애고 직선제를 폐지하는 개헌안이 통과되었다. ④ 제8차 개헌(12‧12, 5‧18) : 박정희가 김재규에 의해 살해당한 이후에, 육군 소장 전두환 등이 1979년 12‧12 군사 반란을 일으키고 1980년 5월에는 광주 민중을 학살하였다. 이 군사반란 세력의 주도하에 1980년 10월 제8차 개헌이 이뤄졌다.

〈긴급전시행동 민주주의와 깃발〉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26년 1월 2일 241

[초점] 〈긴급전시행동 민주주의와 깃발〉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12·3 불법 비상계엄 1년을 맞아 식민지역사박물관은 〈긴급전시행동 민주주의와 깃발〉 전시에서 울려 퍼진 시민들의 목소리가 이어지도록 여러 활동을 펼치고 있다. 식민지역사박물관뿐만 아니라 부산 민주공원, 서울 민주화운동기념관까지 이어진 관련 활동을 소개해 본다.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는 12월 5일 금요일부터 20일 토요일까지 완전한 내란 청산을 위한 숙명 민주주의 프로젝트 〈12·3비상계엄저지 숙명인 행동 기억 전시회〉가 진행되었다. 당시 학생들이 작성한 대자보와 시국선언 현장의 다양한 사진, 영상을 소개한 이번 전시는, ‘세상을 바꾸는 숙명인들의 모임 설화’가 기획하고 주최하였으며, 식민지역사박물관이 전시 장소를 제공하였다. ‘세상을 바꾸는 숙명인들의 모임 설화’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일으킨 불법 계엄 시도를 저지한 지 1주년을 맞아 이를 기억하고자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고 한다. 당시 대자보에는 불법계엄에 대한 숙명여대 학생들의 비판적인 목소리가 담겼으며, 사진을 통해서는 당시의 시위 분위기와 다양한 깃발 등을 엿볼 수 있었다. 짧지만 의미있는 전시가 끝난 후 주최 측은 전시한 깃발과 시위용품을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기증했다. 12월 29일부터는 같은 장소에서 시사IN이 주최하고 식민지역사박물관이 후원하는 ‘시사IN 독자, 시민과 함께하는 〈2025 올해의 사진〉’ 전시가 시작된다. 시사IN은 2016년부터 한 해의 마지막 발간 호에 ‘올해의 인물’을 선정하고 ‘올해의 사진’을 담은 송년호를 제작해왔다. 시사IN 기자들의 사진뿐만 아니라 외부 사진가들의 다양한 사진도 포함되어 있으며, 시인, 소설가 등 문인들의 짧은 에세이를 더해 독자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올해는 10주년을 맞아

「12·3 내란외환청산과 종식 사회대개혁 시민대행진」 핫팩 나눔 후기

2026년 1월 2일 149

[초점] 시민과 함께 따뜻함을 나누었습니다 「12·3 내란외환청산과 종식 사회대개혁 시민대행진」 핫팩 나눔 후기 지난 12월 3일, 민족문제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은 「12·3 내란외환청산과 종식 사회대개혁 시민대행진」에 참여하여 12·3 불법 계엄 1년을 기억하고, 한파 속에서 다시 거리로 나서는 시민들과 연대하기 위해 회원들과 함께 핫팩 1,000개를 나누었다. 핫팩 나눔을 시작하자 매서운 바람 속에서 몸을 움츠렸던 시민들이 하나둘 다가왔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왔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네자, 모든 분들이 따뜻하게 반겨 주었다. 그리고 박물관 리플렛을 받은 시민들은 현재 진행 중인 기획전시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준비해 간 핫팩은 갑작스러운 한파 속에서 30여 분 만에 모두 소진될 정도로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연구소와 박물관 회원들은 물론,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과 직접 만나 핫팩을 나누며 서로의 온기를 확인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추운 날씨 속에서 시민들과 마주하며, 불법 계엄으로부터 1년이 지난 오늘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내란은 아직 완전히 청산되지 않았고, 내란 세력에 대한 진상 규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난겨울, 계엄을 저지하기 위해 국회 앞에 모였던 시민의 모습이 다시 떠오르며, 광장에서 외쳤던 사회대개혁의 과제들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만들었던 연대의 힘은 지금도 유효하다. 아직도 거리에서 싸움을 이어가는 동지들이 있고, 진실과 정의를 향한 목소리도 멈추지 않고 있다. 그 연대의 힘을 믿기에, 우리가 바라는 사회대개혁과 역사 정의의 실현이 반드시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경기 독립운동 재조명 학술대회 성료

2026년 1월 2일 162

[초점]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경기 독립운동 재조명 학술대회 성료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이하 기념사업회)는 지난 12월 1일 오후 수원특례시 광교푸른숲도서관 강당에서 경기도청이 주최하고 본 회가 주관한 <경기도 독립운동 참여자 발굴과 향후 과제> 학술대회를 성황리에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번 학술대회는 경기도 내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그들의 숭고한 희생에 걸맞은 예우와 선양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행사에는 기념사업회 조세열 홍보위원장과 방학진 사무국장, 이용창 학술위원장을 비롯해 김해련 경기도 복지정책과장, 김호동 광복회 경기도지부장 등 40여 명의 관계자와 시민이 참석해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방학진 사무국장의 사회로 시작된 이날 행사는 조세열 기념사업회 홍보위원장의 개회사와 김훈 경기도 복지국장(김해련 과장 대독)의 축사로 문을 열었다. 조세열 위원장은 “경기도는 항일 의병 전쟁부터 3·1운동에 이르기까지 치열한 투쟁의 현장이었음에도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영웅들이 많다”며 이번 대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주제 발표에서는 역사적 현장 분석부터 구체적인 정책 제언까지 폭넓은 논의가 이어졌다. 첫 번째 발표를 맡은 김명섭 단국대 연구교수는 ‘항일의 현장에서 만나는 경기독립운동’을 주제로, 경기 동·남부와 서·북부의 지역적 항일 투쟁 특성을 분석했다. 김 교수는 “남한산성 연합의병과 서울진공작전 등 무장 투쟁의 요충지였던 경기 지역의 특성을 살려, 안양 원태우 의거지나 이천 이수흥 의거지 등을 ‘살아있는 항일 독립정신 교육장’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해 주목을 받았다. 이어 두 번째 발표자로 나선 김대용 여주시사편찬위원회 상임위원은 ‘경기도 출신 독립운동가 포상 현황과 과제’를 통해 정부와 지자체의

군국가요의 원류인 일본 군가 음반 「이것이 바로 일본 군가」

2026년 1월 2일 460

[소장자료 톺아보기 76] 군국가요의 원류인 일본 군가 음반 「이것이 바로 일본 군가」 이번 달에 소개하는 자료는 류영철 회원(대구지역위원회)이 일본 육군 수뇌부의 봉천회동 사진과 함께 기증한 일본 군가 음반 「이것이 바로 일본 군가(이」이다. 이 음반은 종이 케이스에 들어있는데 그 구성은 30cm 크기의 레코드 2장, 수록곡 목록과 가사, 여러 전쟁터 사진으로 구성된 내지와 구 일본 제국 시기의 임시소집영장, 군인칙유(軍人勅諭), 제국해군의 견장(肩章)으로 이루어진 광고물이다. 제작사는 현재도 음반 제작을 비롯한 각종 사업을 운용하고 있는 ‘일본 크라운 주식회사’(日本クラウン株式会社, Nippon Crown Co., Ltd.)로 1963년 도쿄에서 창립되어 1973년부터 1990년까지는 ‘크라운 레코드 주식회사’로 회사명을 변경했다. 2장 음반의 정식 레코드 번호는 GW10013과 GW-10014이다. 레코드와 내지, 광고물 어디에도 제작일자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앞의 일본 크라운 주식회사가 1963년부터 1972년까지 동일한 사명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이것이 바로 일본 군가」 음반도 이 시기에 발매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군가(軍歌)는 막부 말기 서양식 군대 훈련을 위해 도입된 후, 1882년 <발도대(抜刀隊)>1의 등장을 계기로 전 국민이 부르는 하나의 장르로 확립되었다. 청일전쟁 시기에는 전황을 전하는 뉴스이자 오락으로서 폭발적으로 유행했으나, 러일전쟁 때에 과도한 생산으로 인한 매너리즘에 빠져 전황 묘사보다는 특정 영웅을 찬양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평화기였던 다이쇼 시대에는 신작 대신 기존 멜로디에 가사만 바꾼 개사곡이 성행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군가 멜로디가 노동가나 반전가, 심지어 조선과 중국의 혁명가로 변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1930년대 중일전쟁 이후 당국의

민족사랑 2025년 12월호

2025년 12월 30일 499

[바로보기] * 왼쪽 바로보기로 들어가셔서 표지의 각 목차를 클릭하시면 해당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조병옥 생가에 제주4·3학살 책임 묻는 안내판 설치

2025년 12월 1일 264

[후원회원마당] 조병옥 생가에 제주4·3학살 책임 묻는 안내판 설치 박진우 후원회원, 시민기자 민족문제연구소 충남지역위원회(위원장 최기섭)와 천안지회, 그리고 (사)제주4·3범국민위원회(이사장 백경진)는 11월 9일(일) 천안시 동남구 병천읍에 조성된 조병옥 생가 앞에 해방과 정부수립과정에서 경무부장 조병옥이 행한 학살의 진실을 밝히는 안내판을 설치했다. 시민단체들은 ‘조병옥의 역사적 과오를 기록하다’라는 제목으로 천안시(1995년 천안군수)가 세운 조병옥을 찬양하는 안내판 옆에 학살의 진실을 설명하는 안내판을 설치하여 방문자들이 조병옥의 ‘공’과 ‘과’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지난 4월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 제221차 집행이사회가 제주4·3의 학살과 진실을 밝히는 기록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한 바 있다. 국가유산청 누리집 <한국의 세계기록유산> 내 ‘제주4·3기록물’에는 제주4·3기록물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세계적 냉전이 전 지구적으로 확산, 지역적으로 압축되는 양상을 하나의 사건을 통해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냉전시대의 희귀한 기록물이며, 대한민국 행정·입법·사법부, 미군정 및 미군, 봉기세력 등 제주 4·3 당시 이해 당사자들이 각자 생산한 기록물, 사건의 서사적 진실을 담고 있는 희생자와 유족의 피해신고서와 구술증언, 그리고 민간과 정부기관의 진상규명과정 기록 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어, 제주 4·3의 완전한 기록물로 볼 수 있다. 제주 4·3의 해결 과정은 국가폭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라는 폭력성을 넘어 화해와 상생이라는 인간성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점에서 제주4·3기록물은 전 세계 과거사 해결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인권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의미 있는 기록으로 볼 수 있다. 제주4·3 세계기록유산은 ‘진실을 밝히다: 제주 4·3기록’이라는 명칭으로 등록되었으며, 1948년 군법회의 수형인 명부와 옥중 엽서 등

하얼빈 역사 기행 답사기

2025년 12월 1일 235

[후원회원마당] 하얼빈 역사 기행 답사기 김윤슬 윤슬국어학원장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민족문제연구소의 문을 두드린 지 15년이 훨씬 넘었다. 서울에서 지낼 땐 그래도 민족문제연구소 활동에 관심을 두기도 했는데 제주라는 작은 섬에 온 뒤로는 연구소 활동은 보내주시는 소식지로 접하는 것이 전부였다. 대학 입시를 위해 한국사는 30점 이상만, 4등급 이내에 만들면 된다고 말하는 학생들을 보며, 이 아이들에게 교과서에서 알려주지 않는 역사도 알려주고 싶었다. 선조들이 피와 눈물로 지켜주신 이 나라의 이야기를 단순히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님을 알려주고 싶었다. 이런 내 생각을 지지해주시고 응원해 주신 제주지부의 많은 분과 방학진 실장님을 비롯하여 연구소 식구들 덕분에 올해 초에는 제주의 강태선 지사님도 뵙고, 역사 교과서에 기록조차 없는 법정사 항일 무장 운동을 공부하고 60명이 넘는 학생들과 2회에 걸쳐 답사도 다녀올 수 있었다. 또 『끝나지 않는 석정의 노래』의 저자이자 밀양 독립운동사연구소 최필숙 선생님을 모셔 의열단의 삶과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강연을 들은 아이들 또한 직접 밀양과 난징에 가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뜻깊은 시간이었다. 제주에서 난징은 서울 가는 거리와도 비슷하므로 꼭 한번 추진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중 민족문제연구소와 HURA에서 주관하는 신흥무관학교 옛터 답사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안중근 의거 116주년과 이석영 선생 탄생 17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라고 했다. 116년이 흐른 2025년 10월 26일에 내가 하얼빈역에 설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