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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경기도 후원, 지역사연구소·식민지역사박물관 발행 교사용 학습 부교재 『우리 지역 친일잔재를 찾아라』

2021년 3월 2일 168

[후원회원 마당] 경기도 후원, 지역사연구소·식민지역사박물관 발행 교사용 학습 부교재 『우리 지역 친일잔재를 찾아라』 김찬수 수원동원고 교사 “선생님, 친일파가 뭐예요?” “경기도에는 친일인물이 누가 있어요?” “우리 지역의 일제잔재는 무엇인가요?” “우리 학교 교목(校木)과 교가(校歌)는 왜 일제잔재인가요?”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의 당연한 이 질문에 쉽게 답하기에는 범위가 넓고 다양하여 학생들의 궁금증을 다 풀어주기에는 어려움이 컸다. 사실은 교육을 맡은 선생님들이 더 답답하다. 2009년 11월 8일 <친일인명사전> 발간이라는 벅찬 감격에 이어 2012년에는 모바일 친일인명사전까지 출시되었지만, 일반인들이나 성장하는 학생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교육자들을 위한 ‘친일교육자료’는 많이 부족하였다. 인물별, 기관별로 여러 가지 노력이 있기도 했지만, 비교적 넓은 지역을 아우르는 지역의 친일파 관련 자료집은 많지 않았다. 그동안 선생님 개인의 역량과 노력에 기댈 뿐이었다. 그런데 올해 초에 선생님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아주 적절한 친일 관련 역사교육 자료집이 나왔다. 이 자료집은 역사교육을 맡고 있는 선생님들이 사용하기에 아주 유용하도록 편집되어 1권의 첫 장을 펼치면서부터 답답했던 가슴이 시원해진다. 사료편(PDF로 제공)을 포함하여 총 5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경기도를 4개 권역 즉 1편 경기도, 2편 경기동부지역, 3편 경기남부지역, 4편 경기서부·북부지역으로 나누어 집필되어 있다. 선생님 책상 위의 책꽂이에 꽂혀져 언제든지 찾아서 활용하기에 최적이다. 이제 경기도교육청의 선생님들은 근무지가 바뀌어 어디에서 근무하든 근무지역의 식민지 시대 친일인물과 그 흔적을 쉬게 찾아서 가르칠수 있게 되었다. 1권에서는 일제잔재의 개념과 유형별로 분류하고, 친일인물 중에 경기도 내 지역을

중국에서 온 편지

2021년 3월 2일 103

[후원회원 마당] 중국에서 온 편지 김춘련 중국 거주, 후원회원, 양세봉 장군 동생 양시봉의 외손녀   지난 1월 9일 방학진 기획실장이 “효창독립커피에 양세봉 장군 커피를 만들고 싶다”는 문자와 함께 사이트를 보내왔다. 사이트를 열어보니 아이디가 참신하여 좋다고 답장을 보냈다. 며칠 후 “양세봉 장군의 직계 후손은 없지요?” 또 문자가 와서 양세봉 친손주 양철수가 이북에서 살고, 2014년 8월, 2018년 겨울 두 번 중국에 왔을 때 내가 만났던 적이 있다고 답장을 보냈다. 열흘이 지나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구술 허은, 기록 변창애, 민족문제연구소) 표지와 “시집살이” 내용 넉 장을 위쳇으로 보내왔다. 방실장은 아무 말을 안 했지만 보내준 문장이 뜻이 있을 거 같아 꼼꼼히 봤다. 순간 열흘 전에 물어봤던 문자가 뇌리에 떠올랐다. 허은 여사님 글에 “왕청문에서 일본놈들이 끌어다 때려서 죽였단다. 죽이고 나서도 ‘저놈은 죽여도 그래도 죄가 남는다’면서 죽은 사람의 목을 또 잘랐단다. 그리고 그(양세봉)의 세살 된 어린애까지 데려다 죽이고…후손이 없어서 아직 유해는 못 찾은 거 같았다.” 양세봉은 1934년 8월 19일에 변절한 아동양의 총에 맞아 이튿날 새벽에 눈을 감았다. 당시일주일간 장례식을 지니고 25일 흑구산 기슭에 시신을 안장했다. 이튿날 일본 통화영사관분관에서 양세봉이 피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군용차에 일본군경을 가득 싣고 향수하자촌에 들이닥쳐 양세봉의 시신을 파내라고 위협했다. 흑구산 기슭에서 양세봉 시체를 파온 일경은 또 김도선에게 양세봉 목을 작두로 자르라고 호령했다. 그러나

<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 감상문

2021년 3월 2일 73

[후원회원 마당] <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 감상문 김유 광동지부장   이 책은 그야말로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는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새삼 지나간 시절의 열정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지식인의 책무에 대해 다시 한 번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일깨워 준다. 독서의 목적이 그 책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시대 상황을 바르게 인식하게 하고, 그 시대에 맞추어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르고 옳은 일인지 생각하게 한다는 것은 글 쓰는 작자의 목적이라면 이 책은 대단히 성공한 책이다.“ 에라, 늘그막에 객기 한번쯤 부려 보고자 추려 본 것들이 이 평론집이 되었다”고 하지만 이것은 “객기”가 아니다, “정론집”이다. 책은 정치를 질타하는 장용학의 소설들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 문학에 커다란 획을 그은 대가들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그러나 잊지 않고 손석춘 씨 등 새로운 작가의 소개도 빠지지 않는다. 최인훈의 <광장>과 <회색인>, <총독의 소리>, <주석의 소리>를 이야기하는가 하면 그와의 개인적 친분도 에세이처럼 잔잔하게 풀어놓는다. 그가 좀 더 살아서 6·25 때 납북되었 던 이광수와 반민특위의 김상덕 위원장과 아마도(?) 같은 차 안에서 만나 이야기를 했었다면 어떤 얘기가 오갔을까? 남정현 작가를 언급할 때는 식민지의 정의와 함께 그의 대표작 <분지>와 <허허 선생> 연작을 빼놓지 않는다. 남정현의 반외세 의식과 민족의식의 각성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한 존재로 우리 자신의 운명까지도 한 손에 잡고 흔들어 왔던 미국, 그리고 그 우산 밑에서 기생하여 맘껏 달리는

개혁은 파고(波高)가 높다

2021년 3월 2일 113

[후원회원 마당] 개혁은 파고(波高)가 높다 김해규 평택인문연구소장 아버지는 어부였다. 소년시절부터 중선中船을 타고 먼 바다를 항해했다. 과거 어업은 생명을 건 모험이었다. 일기예보가 정확하지 않고 통신시설이 미비했던 시절 자칫 폭풍우라도 만나면 난파당하기 일쑤였다. 아버지가 소형어선을 구입해 선주가 된 뒤로는 나도 가끔 어선을 타고 고기잡이를 나갔다. 1톤 미만의 소형어선은 3~4m의 파고 앞에선 강물 위에 뜬 가랑잎과 같았다. 그럴 때마다 내 가슴은 천당과 지 옥을 오갔지만, 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게 배를 운전했다. 큰 파고를 넘는 것은 정면승부로는 안 된다. 옆으로 항해하면 뒤집힌다. 정면과 옆면 사이의 빈틈을 정교하게 가로지를 줄 알아야 무사히 항구에 당도할 수 있다. ‘역사는 피를 먹고 진보한다’고 말한다. 개혁의 피, 혁명의 피가 역사를 진보시킨다는 말이다. 혁명은 한 번 성공했다 할지라도 곧 반혁명의 파고가 덮치며 위기를 맞곤 한다. 1789년 프랑스혁명은 앙시앵레짐 다시 말해서 구체제의 모순에서 비롯됐다. 자본주의 발달로 상공시민계급인 ‘부르주아지’가 성장해서 나라의 중추를 이뤘지만, 권력과 특권은 여전히 구체제의 특권층인 귀족과 성직자가 갖고 있었다. 부의 편중도 극심했으며 민중들은 개돼지만도 못한 생활을 했다. 민중들은 불만이 컸지만, 혁명의 주체가 될 만한 힘이 없었다. 그래서 프랑스혁명은 지식과 경제력을 갖춘 부르주아지가 시 작했다. 하지만 부르주아지들은 자신들의 불만해소, 다시 말해서 귀족과 성직자가 독점한 권력과 특권을 나눠 갖고 신분제 타파와 입헌군주정을 수립하는 수준에서 혁명을 마무리 짓고 싶어 했다. 하지만 혁명을 전개하면서

빛나는 삶

2021년 3월 2일 75

[후원회원 마당] 빛나는 삶 김원근 전 교사   숨죽여 그늘을 걸을지라도 누군가에게 흙탕물 튕기지 않았다면 그 또한 빛나는 삶 아니겠는가 쓰린 이별 뒤 어딘가 둥지 틀고 살지라도 어쩌지 못하는 그리움으로 긴긴 겨울밤 뒤척이고 있다면 그 또한 빛나는 삶 아니겠는가 울고 싶어 어딘가를 홀로 떠돌지라도 부모님의 소소한 안부를 잊지 않고 이따금씩 떠올린다면 그 또한 빛나는 삶 아니겠는가 보잘 것 없고 든든한 배경이 없을지라도 누군가의 작은 햇살 한 줌으로 미소에 젖어 있다면 그 또한 빛나는 삶 아니겠는가 무엇보다도 우리는 그 누군가에 비스듬히 기대어 또는 이따금 비스듬히 떠받치기도 하며 저마다의 초저녁 어스름 길을 가고 있는 거 아닌가

대전지부, 독립운동가 조문기 선생 추모식과 백선엽 안내문 철거

2021년 2월 26일 202

[초점] 대전지부, 독립운동가 조문기 선생 추모식과 백선엽 안내문 철거   대전지부(지부장 박해룡)는 2월 5일 독립운동가 조문기(연구소 2대 이사장) 선생의 13주기 추모식을 대전현충원 애국지사 3묘역에서 진행했다. 이날 추모식에는 대전지부 후원회원을 비롯해 광복회 대전지부(지부장 윤석경) 회원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 추모식은 헌화, 묵념, 약력보고, 추모사 순으로 진행됐다. 조문기 선생은 유만수, 강윤국과 더불어 1945년 7월 24일 ‘부민관 폭파의거’의 주역이다. 이 의거는 경성부 부민관에서 대표적인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춘금이 주최한 아세아민족분격대회장에 사제 시한폭탄 두 개를 설치해 폭발시켜 대회를 무산시킨 사건이다. 조문기 선생은 2001년 이돈명 변호사에 이어 연구소 2대 이사장에 취임한 이후 <친일인명사전>을 발간에 확고한 토대를 마련했으나 사전 발간 1년 전인 2008년 별세하였다. 정부는 2008년 고인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했으며, 2014년에는 모교인 화성매송초등학교 교정에 회원과 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동상(제작 : 김서경 김운성)을 세 우기도 했다. 동상과 묘비에는 평소 선생의 어록이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 “이 땅의 독립운동가에게는 세 가지 죄가 있다. 통일을 위해 목숨을 걸지 못한 것이 첫 번째요,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것이 두 번째요, 그런데도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 세 번째다.” 이날 추모식을 마친 참가자들은 당초 작년 7월 장군2묘역에 안장된 친일반민족행위자 백선엽 묘와 바로 맞은편 독립유공자 4묘역에 안장된 광복군 출신 김준엽 선생(전 고려대 총장) 묘를 둘러보며 국립묘지법 개정의 필요성을 다시금 인식하고자 했다. 그러나 참가자들은 백선엽 묘를 찾기

『우리 지역의 일제잔재를 찾아라』 역사부교재 발간

2021년 1월 25일 646

<우리 지역의 일제잔재를 찾아라> 역사부교재 발간 지난 12월 경기도, 지역사연구소, 식민지역사박물관이 함께 친일청산 교육부교재 개발을 위해 공동 작업을 진행하여 <우리 지역의 일제잔재를 찾아라>(전5권)를 발간하였다. 2019년 경기도가 추진하고 우리 연구소가 조사연구를 맡아 진행한 <경기도 친일문화잔재 조사・연구> 사업의 성과를 토대로 학교현장에서 교사들에게 필요한 부교재를 만들어 보급하고자 하는 취지에서였다. 경기도의 일제잔재는 크게 인적 잔재라고 할 수 있는 ‘친일인물’과 물적 잔재인 ‘친일 관련기념물’을 대상으로 하였다. 경기도 출신 ‘친일인물’ 선정은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를 근거로 하였다.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4,389명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선정한 1,006명의 반민족행위자 가운데 경기도 출생・출신자는 모두 267명이다. 이들의 주요 경력에 따라 매국・귀족, 일제 통치기구 협력자인 관료・중추원・법조인, 경찰・군인, 문화계, 예술계 친일인물 등 6개 영역으로 분류하였다. ‘친일 관련 기념물’은 일제강점기 건축물, 친일 인물의 기념비·송덕비, 그 외 기념조형물 등 71개를 조사하였다. 역사부교재는 경기도를 4개 권역으로 나누어 일제잔재를 소개하고, 일제잔재 청산의 방법과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도움 자료를 함께 실었다. 전체 구성을 살펴보면 먼저 1권은 일재잔재의 개념과 유형별 분류를 제시했고, 친일인물 가운데 경기도 내 지역을 특정할 수 없는 인물들과 친일 관련 기념물 중 경기도의 신사(神社) 해설, 학교생활 속 일제잔재와 그 청산 사례를 소개했다. 그리고 2권~4권은 동부, 남부, 서부・북부 4개 권역별로 친일인물, 친일 관련 기념물, 교수-학습과정안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5권 사료편에는 친일인물 근거 사료, 친일파 관련규정・법령과 분야별 사료 해제, 친일 문제

군대해산식이 거행된 옛 훈련원(訓鍊院) 일대의 공간해체과정

2021년 1월 25일 426

지금은 사용빈도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지만 일제강점기까지만 하더라도 옛 서울의 특정지역을 일컫는 독특하고 고유한 표현들이 그런대로 잘 남아 있었던 흔적이 곧잘 확인된다. 북촌(北村, 백악 밑)이니 남촌(南村, 남산 밑)이니 동촌(東村, 낙산 근처)이니 서촌(西村, 서소문 안팎)이니 하는 것은 그마나 제법 알려진 사례에 속하고, ‘동구내(洞口內, 동구안)’라든가 ‘통내(通內, 통안)’처럼 지금은 완전히 잊힌 용어도 없지 않다. 이 가운데 ‘동구내’는 창덕궁 돈화문 앞길을 가리키는 속칭(俗稱)으로 널리 사용되었으며, 예를 들어 단성사(團成社, 수은동 56번지)와 같은 곳은 이곳의 위치를 알리는 문구에 ‘동구내 단성사’ 또는 ‘동구안 단성사’라는 식으로 짝을 이뤄 등장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리고 ‘통내’는 배오개 쪽에서 함춘원(含春苑)에 이르는 지역의 통칭(通稱)인데, 이로 인해 지금의 종로 4가 사거리를 일컬어 ‘통안네거리’라고 불렀던 흔적이 완연하다. 이것 말고도 상촌(上村, 웃대)과 하촌(下村, 아랫대)이라는 것도 그 시절 서울사람들의 일상대화 속에 자주 오르내린 말이었는데, 박태원(朴泰遠, 1909~1986)의 소설 <천변풍경(川邊風景)>(1938)에도 ‘웃대’와 ‘아랫대’의 표기가 등장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소춘(小春)이라는 필명을 사용한 김기전(金起田, 1894~?)이 <개벽> 제48호(1924년 6월)에 수록한 글을 보면, “광통교 이상(廣通橋 以上)을 우대, 효교이하(孝橋 以下)를 아래대”라고 부른다고 하여 이들 지역의 개략적인 위치를 일러주는 내용도 남아 있다. 그리고 경성부에서 편찬한 <경성부사(京城府史)> 제2권(1936), 556쪽에는 일본인 거주지와 그 주변의 옛 모습을 그려내는 항목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정리되어 있다. 고래(古來)로 상대(上臺, 웃대), 하대(下臺, 아래대)라는 말이 있는데, 전자(前者)는 서리(胥吏)의 마을이라는 뜻으로 ‘야마노테(山の手)’에 비견되며, 주로 현

훈민정음 해례본 발견과 실천적 지식인 김태준

2021년 1월 25일 577

반갑도다! 훈민정음 원본의 나타남이여 1940년 여름, 명륜학원(성균관대학교의 전신) 강사인 김태준은 경북 안동 출신의 제자 이용준에게서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고향집에 조상 대대로 가보로 전해져 내려오는 훈민정음 원본(훈민정음 해례본)이 있다는 것이다. 김태준은 훈민정음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이용준과 함께 안동군 와룡면 주촌에 세거(世居)하던 후촌 이한걸 댁을 방문했다. 훈민정음 원본을 자세히 살펴보니, 세종대왕이 집필한 예의편(例義篇)과 왕명에 의해 정인지·신숙주 등 집현전 8학사가 쓴 해례편(解例篇), 정인지 서문 등 세 부분 31장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예의편의 첫째와 둘째 장이 없었다. 이한걸 선생이 훈민정음 소장 내력과 두 장의 결락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신은 본관이 진성 이씨로 퇴계 이황의 종파이며, 일찍이 선조 이정(李禎)께서 여진 정벌의 공이 있어 세종대왕으로부터 훈민정음을 상으로 받아 늘 궤짝에 감추어 세전가보로 간직해 오다가, 연산군 때 언문책 소지자를 엄벌할 때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부득이 첫 머리 두 장을 뜯어 버리고 돌돌 말아서 비장(秘藏)해왔다는 것이다.¹ 김태준은 <조선왕조실록> 세종 28년(1446) 9월 29일 기사에 훈민정음 예의편이 있음을 알고 이용준과 함께 결락된 두 장을 보수하기로 했다. 이용준은 이한걸 선생의 셋째아들로 12세때부터 서예에 뜻을 두고 안진경체를 익혀 16세 되던 1931년에는 동아일보에 ‘서예계의 신동’으로 대서특필되었다.  이용준은 <조선왕조실록>의 훈민정음 예의편 앞부분을 안평대군 필체로 모사하여 결락된 두 장을 복원하였다. 복원과정에서 세종대왕 서문 말미에 “편어일용이”(便於日用耳)를 “편어일용의”(便於日用矣)로 잘못 필사하였다. 김태준은 이한걸 선생에게 훈민정음이 국어학 연구자료로 매우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 『한 시대 다른 삶』 만화와 웹툰으로 제작

2021년 1월 25일 1382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 <한 시대 다른 삶> 만화와 웹툰으로 제작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지부장 박종선)는 2020년 경기도 문화예술 일제잔재 청산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친일파와 독립운동가의 엇갈린 삶-웹툰 ‘한 시대, 다른 삶’>을 웹툰과 만화로 제작하여 보급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친일과 항일의 각각 다른 길을 걸었던 역사 인물들을 비교하여 독립운동가의 애국정신을 우리 공동체의 가치로 재인식함과 동시에 사회 일각에 여전히 존재하는 식민지배 미화 등 반역사적 행태에 대한 경각심을 높인다는 취지이다. 이 사업에는 전국시사만화협회(회장 최민) 소속 작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만화에 등장하는 역사 인물과 작가는 다음과 같다. 신석구・정춘수(최승춘), 한용운・강대련(하재욱), 차미리사・김활란(성덕환), 신채호・최남선(정태권), 여운형・김성수(국태이), 지청천・이응준(최인수), 안재홍・방응모(최승춘), 조명희・김동인(전진이), 이육사・서정주(오금택), 한형석・현제명(서상균). 각 작품마다 전문가의 감수를 받아 작품의 수준을 높였는데 강태구(한국음악연구소 연구원) 김승태(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장) 박광종(연구소 선임연구원) 이순우(연구소 책임연구원) 이준식(독립기념관장) 장신(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장원석(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 학예실장) 한상권(덕성여대 명예교수) 등이 참여했다. 470쪽 분량의 2권으로 제작된 이 만화는 경기지역 모든 초·중·고등학교 2,400곳에 무상으로 보급되었으며 조만간 부천지부사이트(minjok21.kr)를 통해서도 웹툰 형식으로 공개된다. • 방학진 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