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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임청각에서 소중한 의미를 깨닫다

2022년 5월 9일 197

[후원회원 마당] 임청각에서 소중한 의미를 깨닫다 신윤정 구미지회 후원회원 지난해 10월 ‘왕산 허위 선생 추모식’에 석주 이상룡 선생 후손인 이혜정 여사님을 모시기 위해서 댁이 있는 경주를 찾은 적이 있습니다. 석주 선생의 증손부가 왕산 가문의 허은 여사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는데, 허은 여사의 따님인 이혜정 여사님을 뵙게 되다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석주 이상룡 선생은 1910년 나라를 빼앗기자 가족과 함께 만주로 망명을 떠나 독립운동기지인 경학사,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내신 분입니다.  경주에서 구미로 가는 동안 이혜정 여사님은 석주 할아버지, 어머니 이야기, 고되고 어려웠던 형편을 말씀해 주시면서 어머니가 만주에서 손님들을 대접하기 위해 만드신 국수도 알려주셨습니다. 생생한 이야기를 듣는 동안 마음 한편에 석주 선생의 생가인 안동 임청각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이번에 ‘고택‧종갓집 활용 사업 – 임청각에서 나라사랑 정신을 배우다’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단번에 신청을 하게 되었고 아이들과 함께 참가했습니다. 5백 년 전통 고택에서의 하룻밤이라는 기대와 석주 가문의 정신이 깃든 곳이라니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특히 일제가 집의 일부를 허물고 기찻길을 만들었다는 가슴 아픈 역사에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다행히 현재는 선로가 해체되고 복원사업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안동문화지킴이 해설사 님과 후손과의 토크 콘서트를 통해 석주 선생의 업적을 잘 알 수 있었고, 특히 방 안에 비치된 책을 읽은 후 더욱 감명 깊게 다가왔습니다. 이 책은 바로 허은

망명지사들 가족 방문기

2022년 5월 9일 125

[자료소개] 망명지사들 가족 방문기   <자유신문>은 1945년 10월 5~10일자에 ‘망명지사들 가족 방문기’라는 제목으로 임시정부 요인 엄항섭, 이시영, 조완구, 조소앙 네 분 가족의 인터뷰를 실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의 환국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8월 10일 일본 항복 소식을 중국에 진주한 미군으로부터전달받은 9월 5일 임시정부 요인들은 중경에서 비행기로 상해에 도착했다. 하지만 ‘임시정부’ 자격 입국이냐 ‘개인’ 자격 입국이냐라는 문제로 미군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개인 자격 입국이란 미군의 요구를 받아들여 11월 23일과 12월 1일 2진으로 나뉘어 고국의 땅을 밟게 되었다.-편집자 주   1945년 12월 3일 임시정부 요인 귀국기념 사진. 첫줄 왼쪽부터 장건상. 조완구. 이시영. 김구. 김규식. 조소앙. 신익희. 조성환   하늘은 언제나 푸른 것이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인간의 심회는 천변만화다. 어제까지 돌아올 기약이 없던 그리운 그이를 기억하는 눈에 비치는 그것이 비 머금은 잿빛 구름이었다면 희망과 기대에 소스라쳐 발자국 소리를 조심하는 오늘의 가슴에는 오직 붉게 하는 아침노을만이 빛날 것이다. 사십년 전 조국의 주초(柱礎)가 무너지자 조국 광복을 결심한 그들이 늙은 부모와 약한 처자를 버리고 만주로 시베리아로 해삼위(海蔘威. 블라디보스토크)로 상해로 피나는 걸음을 달릴 때에 한때는 모든 개인적 미련을 이를 깨닫고 끊었으리라. 그러나 십년 이십년 지지한 혁명의 험로를 걸어가는 그들의 마음이 갈수록 구국의 정열로 불탔으면서도 풍찬노숙의 견디기 어려운 생활이 남보다 먼저 머리 위에 백발을 더하였으리라.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괴롭지 않다. 고국산하에 던지고 온 친족의

우리 연구소, 2022년도 민간통일운동 유공 대통령 표창 수상

2022년 5월 9일 162

[초점] 우리 연구소, 2022년도 민간통일운동 유공 대통령 표창 수상 우리 연구소가 민간차원에서 통일운동 활성화와 통일교육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이 포상제도는 2020년도부터 시행되었으며 평화통일 기반 구축과 통일역량 확충을 위해 제정되었다. 올해 ‘민간통일운동 유공 정부포상 전수식은 4월 25일 오후 3시 정부서울청사 통일부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시상은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주관하였으며 방학진 기획실장이 연구소를 대표해 수상했다. 통일관련 시민강좌 개최와 <일맥상통 백두대간> 사진전의 전국 순회전시 등을 통해 통일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고양시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는 점이 이번 심사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충청남도 친일잔재 기초조사 연구용역’ 보고서 완성

2022년 5월 9일 100

[초점] ‘충청남도 친일잔재 기초조사 연구용역’ 보고서 완성 • 임무성 상임교육위원 연구소는 2021년 10월 20일부터 2022년 3월 31일까지 충청남도의 의뢰를 받아 진행한 ‘충청남도 친일잔재 기초조사 연구용역’(이하 연구용역)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이번 연구용역은 조재곤 서강대교수가 책임연구자를 맡고 조세열, 이순우, 박광종, 방학진, 임무성, 김혜영 연구원이 참여하였으며박수현, 유은호, 이용창, 임선화 연구원은 자료의 조사·발굴과 보고서 작성 등에 힘을 보탰다. 특히 충남지역에서 활동하는 김학로, 양동진, 박종봉, 홍남화 후원회원이 현지네트워크위원으로 참여하여 현지 자료 발굴 및 확인, 사진 촬영 등에 큰 도움을 주었다. 연구용역은 짧은 기간임을 감안하여 친일과 관련된 인물, 기념물, 재산(토지) 세 분야에서 진행되었다. 같은 시기 충남에서 진행된 친일잔재 청산 사업(교육, 지명·도로명)까지 마무리된다면 충남친일잔재의 전모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연구용역은 7차에 걸친 연구원 전원회의, 세 차례의 현지보고회(충남도청) 및 협지답사, 현지네트위원과의 온라인 회의를 통해 450여 쪽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아울러 연구용역의 진행과 함께 ‘친일잔재연구위원회’가 결성, 시민들과 긴밀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졌으며 관련 성과가 아카이브(충남도 홈페이지)로 구성되는 등 사업의 성과가 시민들에게 적극 홍보되었다.

국세조사, 효율적인 식민통치와 전쟁수행을 위한 기초설계

2022년 5월 9일 322

[소장자료 톺아보기 36] 국세조사, 효율적인 식민통치와 전쟁수행을 위한 기초설계 전시체제기에는 병역법 실시와 배급통제를 위한 인구조사도 빈발 이순우 책임연구원   일본제국은 때때로 일반 관공리(官公吏)들의 충군애국(忠君愛國)을 이끌어내는 수단의 하나로 국가적인 축전이나 큰 행정사업을 치른 다음에는 이와 관련된 기념장(記念章)을 제정하여 이를 수행했거나 관여했던 모든 이들에게 수여하곤 했다. 이러한 종류의 기념장 발행 연혁표를 살피다 보면, 이른바 ‘국세조사(國勢調査; 인구총조사, 詮察斯, census)’라는 것이 눈에 띈다. 여기에 포함된 것으로 1921년 6월 16일에 제정된 ‘제1회 국세조사기념장(대정 9년 10월 1일)’과 1932년 7월 16일에 제정된 ‘조선 소화 5년 국세조사기념장(소화 5년 10월 1일)’, 이렇게 두 가지가 있다. 거의 10년의 격차를 두고 두 가지 다른 종류의 기념장이 존재하는 것은 무슨 까닭이었을까? 그것도 식민지 조선(朝鮮)만을 대상으로 한 별도의 기념장은 왜 만들어졌던 것일까? 1885년에 설립된 국제통계협회(國際統計協會, ISI)는 일찍이 구미 각국에서 근대적인 인구총조사가 확산되고 있는 추세를 반영하여 이에 대한 국제표준화가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1900년의 같은 날을 정하여 일제히 총조사를 실시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를 계기로 대부분의 ‘문명국(文明國)’에서는 끝자리가 ‘0’인 해에 10년 주기로 국세조사를 벌이는 방식이 서서히 정착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일본제국에서도 1902년 12월 1일에 법률 제49호 「국세조사(國勢調査)에 관(關)한 법률(法律)」을 제정하였는데, 여기에는 “10개년에 매1회 국세조사를 시행하며, 제1회 국세조사는 1905년에 실시하고, 다만 제2회에 한하여 만 5개년에 해당하는 때에, 다시 그 이후에는 10년마다 시행”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최초 국세조사

소개공지(疎開空地), 미군 공습에 기겁한 일제의 방어수단 결국 패망 직전 서울의 도시공간을 할퀴어 놓다

2022년 4월 28일 287

[식민지 비망록] 소개공지(疎開空地), 미군 공습에 기겁한 일제의 방어수단 결국 패망 직전 서울의 도시공간을 할퀴어 놓다 이순우 책임연구원   벌써 40년도 더 넘은 시절의 얘기지만 시골촌놈이 어찌어찌 대학에 붙어 난생 처음 상경하면서 서울 큰고모댁에 신세를 지게 되었는데, 그때 어리숙한 친정조카의 도회지 생활이 많이 걱정되셨는지 신학기 초에 큰고모께서 이런 말씀을 귀띔해주신 기억이 또렷하다. “야야, 서울에서 길을 익힐라카믄 일단 종로가 한가운데 있고, 그 아래로 청계천로―을지로―충무로―퇴계로의 순서대로 있으니까 그것만 잘 기억해도 길찾기에 많이 도움이 될끼다. 그라고 서쪽부터 1가, 2가, 3가, 이렇게 나간데이 ―.” 아니나 다를까 큰고모님의 ‘꿀팁’은 그 이후 서울살이의 실전에 많은 보탬이 되었다. 더구나 세월이 흐르고 흘러 본디 서울내기 근처도 못가는 그 시골촌놈이 되려 서울의 옛길이나 역사공간에 대해 이런저런 글도 곧잘 쓰고 더러 현지답사의 길잡이노릇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모든 것이 기초 오리엔테이션을 잘 받은 덕분이 아닌가도 싶다. 그런데 여기에 등장하는 서울도심의 ‘씨줄’을 이루는 동서방향의 대로에 대해서는 일제 때 ‘소화통(昭和通)’으로 뚫린 ‘퇴계로’ 정도를 제외하면 대개 조선시대부터 존재했던 옛길이 확장 개편된 것이므로 그 유래를 확인하는 일이 어렵지는 않는 편이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날줄’을 이루며 남북방향으로 놓인 간선도로의 경우에는 언제 그 길이 생겨났는지를 확인하는 일조차 그리 간단치가 않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의 고지도를 살펴보면 서울 도성 안쪽으로 광통교를 넘나드는 남대문로의 경우라든가 육조앞길이나 동구내(洞口內, 동구안)처럼 각 궁궐 대문

“진짜 독립운동은 반제민족해방투쟁” (2) –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 펴낸 임헌영 소장

2022년 4월 28일 223

[인터뷰] “진짜 독립운동은 반제민족해방투쟁” (2) –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 펴낸 임헌영 소장   지난 1월 17일 연구소 회의실에서 임헌영 소장의 신년 인터뷰가 진행됐다. 이 자리에 <통일 뉴스> 이계환 기자와 이승현 기자가 배석하였다. 1월 25일 <통일뉴스>에 게재된 임헌영 소장 인터뷰를 두 차례에 걸쳐 전재한다. 이 자리를 빌려 전재를 허락해준 <통일뉴스>에 감사드린 다. – 편집자주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 공동대표들은 2020년 9월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반도 종전 평화 집중행동 계획을 발표하면서 한반도 평화선언 서명운동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 공동대표인 임헌영 소장. [자료사진-통일뉴스] ● 아쉽긴 하지만 선생님의 문학평론가로서의 부분은 일단 이걸 마무리하고 이제 사회활동가로서의 부분으로 넘어가고자 합니다. 이 책을 보니까 선생님께서 혁명가들을 얼마나 존경했는지 작가들 사이에서 그런 별명이 나오는데. 구중서는 구중서와 레닌의 합성어인 ‘구닌’, 백승철은 ‘백게바라’, 그리고 선생님은 ‘임스트로’. 아마 카스트로를 연상시키는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 카스트로라고 불릴 만한 이유 같은 게 있었나요. ◦ 뭐 그렇지는 않은데, 좋아했죠. 왜냐하면 바로 미국의 턱 밑에서 혁명을 일으킨다는 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걸 성공했잖아요. 그건 놀라운 세계사적인 사건입니다. 그 혁명이 일어난 게 1959년 아닙니까. 우리는 1960년대 4.19 뒤에 대학을 다니면서 제3세계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낫세르 같은 혁명도 있고 여러 가지 유형이 있는데 카스트로의 경우에는 그중 호지명과 쌍벽을 이루는, 우리

역사에서 무엇을 발견할 것인가?

2022년 4월 28일 103

[기획] 역사에서 무엇을 발견할 것인가? 팟캐스트 <역사를 발견하고 상상하라 미래를> 리뷰 최우현 대외협력실 주임연구원 보통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나 현상을 찾아내는 것에 ‘발견’이라는 단어를 붙인다. 그렇다면 역사를 발견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약간 생경한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역사라는 거대한 개념을 ‘발견의 대상’으로 두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아 보이기도 한다. 차라리 “역사 속에서 ‘○○’을 발견하라”고 썼다면 이견이 없었을 텐데 말이다. 지난 3월 15일 새로운 닻을 띄운 팟캐스트, <역사를 발견하고 상상하라 미래를>(이하 역발상)은 바로 이런 물음들에 착안했다. 역사는 하나로 규정될 수 없는 총체(總體) ‘역발상’은 첫 에피소드로 식민지 조선의 대중예술인 남인수(南仁樹, 1918〜1962)의 생애를 다룬다. 남인수는 1936년 19세의 나이로 데뷔, 타고난 미성(美聲)과 물 흐르는 듯한 창법, 뛰어난 외모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어 모은 식민지 조선 최고의 슈퍼스타였다. 그가 남긴 히트곡은 <애수의 소야곡>, <울며 헤어진 부산항>, <낙화유수> 등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로 많으며 1962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발표한 곡들은 250여곡(확인된 작품 기준)에 이른다. 가왕(歌王)을 넘어 ‘가황(歌皇)’이라는 칭호가 따라붙는 인물인 것이다. ‘역발상’ 또한 이 지점에 먼저 주목하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식민지 조선에서도 “길거리를 걸어 다니기 힘들만큼”의 인기를 구가하는 스타, 남인수라는 인물이 존재했었다는 것. ‘역발상’은 남인수에 대한 민중들의 사랑, 뛰어난 실력, 문화예술인으로서의 존재사적 의의 등에 대한 설명들을 충실하게 이어간다.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전시총동원체제의 억압 속에서도 민중의 문화적 욕구와 감성이 생동하고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삼일절 행사 <103년 전 그해 우리는> 개최

2022년 4월 28일 196

[초점]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삼일절 행사 <103년 전 그해 우리는> 개최 • 김슬기 학예실 연구원 3·1운동 103년을 맞은 올해 3월 1일,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개최되었다. 메타버스 플랫폼 ‘게더타운’을 이용한 메타버스 식민지역사박물관 <103년 전 그해 우리는>이다. 이 행사는 코로나로 외부활동이 부담스러운 가운데서도, 3·1절의 역사적 의의를 되새기고 3·1운동의 현장과 열기를 간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목적에서 마련되었다. 메타버스 식민지역사박물관은 7개의 공간으로 구성하였는데 「강의실」 “103년 전 그해 우리는”에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한적십자회에서 발행한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화보집에 게재된 3·1운동 당시 사진들을 해설과 함께 소개하였다. 참여자와의 소통을 위해 녹화가 아닌 실시간으로 4회 진행하였으며, 참여자들과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영상실」 “우리가 몰랐던 3·1운동의 진실” 에서는 민족문제연구소와 뉴스타파가 공동 제작한 ‘잊혀진 이름, 여성독립운동가’ 영상을 시청하였다. 가상공간 속 책상에 삼삼오오 모여 권기옥, 박차정, 김마리아 등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또한 지난 2019년 식민지역사박물관이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개최한 특별전 <1919, 가만히 있으라? 3·1혁명의 주역과 탄압자들> 일부가 재공개되어 참여자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박물관과 주변 시설의 실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콘텐츠도 마련되었다. 식민지역사박물관 전시실을 가상현실로 돌아볼 수 있는 “VR전시관”, 독립운동가 묘역을 도상으로 구현한 “효창공원” 공간이 그러했다. 아울러 3·1운동에 관한 10가지 퀴즈를 모두 맞혀야 방을 탈출할 수 있는 체험형 콘텐츠 “3·1운동 퀴즈방”도 마련되었다. 이날 전체 신청자는 293명, 동시

사진엽서에 새겨진 친일파와 대한제국의 몰락

2022년 4월 28일 191

[소장자료 톺아보기] 사진엽서에 새겨진 친일파와 대한제국의 몰락 • 강동민 자료팀장 일본 황태자 한국방문기념엽서 東宮殿下御渡韓紀念 1907년 10월 16일부터 10월 20일까지 일본 황태자(후일다이쇼)가 한국 ‘시찰’을 목적으로 대한제국을 방문하자이를 기념해 발행한 엽서. 이 ‘시찰’은 통감 이토가 한국내의 반일 정서를 완화시키고 황태자 이은李垠의 일본유학을 성사시켜 볼모로 데려가기 위해 기획되었다. 일장기와 태극기를 배경으로 한국통감 이토히로부미와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의 사진이 대각으로 배치되어 있다. ‘을사늑약’, ‘정미조약’ 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의 위세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일한합방기념’엽서, 이완용과 역대 통감 ‘한국병합’을 기념하기 위해 일제가 발행한 사진엽서. ‘욱일旭日’을 상징하는 배경 그림에 역대 한국통감과 ‘병합’의 일등 공신인 이완용의 사진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이완용은 ‘을사늑약’부터 ‘병합조약’ 체결까지 적극 가담하여 대한제국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특히 ‘병합조약’은 총리대신 이완용이 조약안을 순종에게 보이고 각 조항을 설명한 후 이의를 제기하는 자가 없이 가결되는 형식이었는데, 이 조약안은 3대 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이미 7월 말부터 이완용을 앞세워 내각 전원의 동의를 얻도록 공작을 벌인 결과물이었다. ‘일한합방기념’엽서, 송병준과 데라우치 마사타케 통감 송병준은 친일단체 일진회가 조직될 때 핵심 인물로 총재를 지냈다. 일진회는 대한제국기 대표적인 친일단체로 일본의 조선통치를 적극 지지하고 친일 여론을 환기시키며 나아가 친일정부를 구성하여 일제의 조선지배 정책 수행에 협조할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송병준은 이완용 내각에서 농상공부대신을 지내면서 헤이그특사 사건과 관련하여 고종에게 일본에 사죄하도록 강요하는 한편 고종의 강제 퇴위에 앞장섰다. 또한 1907년 정미조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