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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근현대사기념관, <무너미에 잠든 독립운동가> 강좌 및 답사

2025년 5월 27일 214

[초점] 근현대사기념관, <무너미에 잠든 독립운동가> 강좌 및 답사 강북구와 민족문제연구소가 주최하고 근현대사기념관이 주관하는 ‘2025년 독립민주시민학교’가 4월 19일부터 11월 29일까지 시민과 학생을 대상으로 운영된다. 독립민주시민학교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무너미에 잠든 독립운동가’를 주제로 강좌 6회와 답사 2회로 구성된다. ‘무너미’는 수유동의 옛 지명으로 북한산 골짜기의 물이 흘러넘치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강북구 수유동에 안장된 독립운동가 6인의 생애와 활동을 조명한다. 지난 4월 19일과 5월 17일에는 ▲1강 삼한갑족의 독립운동, 이시영(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 ▲2강 손병희의 생애와 민족운동(정용서 연세대 사학과 강사)이 진행되었다. 이어지는 강좌는 ▲3강 앉은뱅이 선비, 심산 김창숙(홍윤정 심산김창숙기념관 학예실장) ▲4강 고종 황제의 마지막 특사 이준(이계형 국민대 교수) ▲5강 신익희의 생애와 민족운동(이강수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6강 독립과 통일에 일생을 바친 여운형(변은진 전주대 HK교수)이 예정되어 있다. 3강부터 6강은 6월부터 11월까지(단 8, 9월 제외) 매월 셋째 주 토요일 오후 2시에 근현대사기념관 강의실에서 진행된다. 답사는 총 2회로 운영된다. 1차 답사는 9월 20일에 진행되며, 강북구 독립운동가 6인의 묘소를 탐방하고, 2차 답사는 11월 29일에 신익희 생가 및 몽양여운형기념관을 탐방할 예정이다. 모든 강좌는 근현대사기념관 유튜브를 통해 누구나 수강할 수 있으며 1부터 4강은 8월 중에, 5과 6강은 11월 중에 업로드된다. 자세한 사항은 근현대사기념관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많은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 • 근현대사기념관 학예연구사 이현아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영전에

2025년 5월 26일 309

[추도사]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영전에 권오헌 선생님. 선생께서 일생 동안 쟁취하고자 투쟁했던 민족 주체적인 한반도 평화 정착과 민주화가 엎치락뒤치락하는 이 봄날에 기어이 훌쩍 떠나시는 겁니까. 언제라도 찾아가면 부둥켜안고 손을 맞잡는 것만으로도 형제애와 동지애를 흠씬 교감할 기회조차 이제는 영영 사라져 버린 겁니까. 형은 서른 살이고 제가 26살 때 처음 만났으니 옹근 58년간 쌓아온 실타래처럼 감긴 인생행로가 아아, 이렇게 무상하게 끝나는 겁니까. 그 무렵 우리가 가장 자주 만났던 분은 박현채, 박중기 선생과 빌리 브란트주의자라 불렀던 사회민주주의자인 통일사회당 김철 대표 등으로 당대의 진보적이고 양심적인 지식인, 문인, 민주화와 통일운동가들을 찾아 지성의 철새처럼 쏘다니던 호시절이었지요. 선생은 통일사회당에 입당해 몇몇 부서를 돌아가며 책임 감투를 쓰고 당세 확장에 진력했습니다. 선생은 농민운동으로 유명한 홍성에서 태어나 궁핍으로부터의 탈출을 위하여 불도저 운전 면허증을 획득해 너무나 열심히 노력한 결과, 자신이 불도저 한 대를 샀지요. 전국을 쏘다니며 성실하게 노동을 한 덕분에 지금은 금싸라기 땅인 서울 강남 신사동 네거리(지하철 신사역) 바로 가까이에 독신용으로 걸맞은 맞춤한 아파트까지 사서 우리들의 아지트가 되어 주었습니다. 무교동의 한 술집이 떠오릅니다. 넉넉한 안주와 술로 뜻 맞는 인사들과 회합할 수 있었던 곳으로 일부 진보적인 인사들의 단골집이었지요. 가끔은 외설담이 나오기도 했는데 형은 그 분야에는 전혀 관심을 안 보여 의아하게 여겼지요. 왜 선생이 일생을 독신으로 지냈고, ‘권오헌 결혼추진위원회’까지 결성하여 온갖 뜸을 다

백강 조경한 선생의 대한민국임시정부 관련 자료와 사진, 유묵

2025년 5월 26일 514

[소장자료 톺아보기 70] 백강 조경한 선생의 대한민국임시정부 관련 자료와 사진, 유묵 민족문제연구소 지도위원이자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인 심정섭 선생이 2012년 5월 제1차 기증을 필두로 하여 14년간 82차에 걸쳐 7천여 점의 자료를 기증했다. 이러한 심위원의 기증자료 중 중요한 것을 간추려 두 차례에 나누어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 호에 소개하는 것은 심위원의 외조부인 백강 조경한 선생의 대한민국임시정부 관련 자료와 사진, 유묵이다. 심정섭 위원은 초등학교 시절 “내가 잃어버린 자료를 모아 독립운동 연구를 해보라”는 외조부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겼다. 1956년 중학교 1학년 때 우연히 광주리 속에서 대동신문사에서 발간한 잡지 『대동평론(大東評論)』 창간호(1946.3)를 발견하고서 집어들었다. 책장을 넘기다보니 김구 선생과 외조부 등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 18명의 사진이 실려있었다. 이때부터 심위원의 역사 사료 수집 여정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최근까지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1만여 점의 자료를 수집했는데 본인이 가장 아끼는 자료로 역시 백강 선생의 임정 시절 자료와 유묵을 꼽고 있다. 지난해 12월 심위원이 우리 연구소에 연락해서 백강 선생의 임정 시절 자료와 사진, 유목 등을 포함한 111점을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서 조세열 상임이사와 강동민 자료실장 등이 심위원 댁을 방문해 위 자료들을 수령했다. 다음에서 백강 조경한 선생의 독립운동 이력을 소개하고자 한다. 조경한(趙擎韓, 1900~1993) 선생의 호는 백강(白岡), 본명은 종현(鍾鉉)이고 이명으로 안훈(安勳)·안일청(安一靑)·조경한을 썼다. 전라남도 승주군(현 순천시)에서 출생하였다. 1918년 만주로 건너가 독립단에 가입하고 국내 연락원으로 활동하였다. 1927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북경계명학원(北京啓明學園)에서

민족사랑 2025년 5월호

2025년 5월 23일 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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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 사건 관련 자료

2025년 4월 29일 2472

[자료소개] 인혁당 사건 관련 자료 한승헌 변호사 1975년 4월 9일 새벽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 8명이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 판결을 받은 지 20시간 만에 전격적으로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국제법학자협회는 4월 9일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했다. 이번 호에는 사법 살인 당한 피고인 중 한 분인 여정남의 항소심 변호를 맡았고 3월 21일 반공법 필화사건으로 구속되어 인혁당 피고인들과 같은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으며 4월 9일 구치소 호송차에서 관련자 가족과 지인들이 오열하는 광경을 직접 목도했던 한승헌 변호사가 인혁당 1차, 2차 사건을 정리한 칼럼 「한승헌의 재판으로 본 현대사 : 인혁당 사건(상, 중)」(『경향신문』 2015.4.19·4.26)을 전재한다. ―편집자주 인혁당 사건(상) 학생운동에 붉은 색칠, 1차 인혁당 사건 이른바 ‘인혁당 사건’은 박정희 정권 하에서 두 번 있었다. 1964년에 ‘1차 인혁당 사건’이 있었고, 그로부터 10년 후인 1974년에 ‘2차 인혁당 사건’이 터졌다. 1974년 사건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라고도 부르며, 통상 ‘인혁당 사건’이라고 하면, 여덟 분의 억울한 형사(刑死)를 빚어낸 후자를 가리킨다. 먼저 1차 인혁당 사건부터 살펴본다. 당년 44세의 박정희 소장은 5·16 쿠데타로 민주정부를 쓰러뜨린 뒤, 민정 복귀의 공약을 어기고 군복만 벗은 채 대통령이 된다. 그리고 무단통치와 대일 굴욕 외교에 반대하는 국민 각계의 저항에 부딪힌다. 그중에서도 대학생들의 움직임이 격렬했다. 1964년 5월 20일, 서울대 문리대 학생들은 집단시위와 아울러 당시 박정희가 내세운 ‘민족적 민주주의’의 장례식을 치르기도 하였다.

미나미 총독의 글씨로 새긴 목포근대역사관(2관)의 ‘팔굉일우비(1940년)’

2025년 4월 29일 565

[이 땅에 남아있는 저들의 기념물 16] 미나미 총독의 글씨로 새긴 목포근대역사관(2관)의 ‘팔굉일우비(1940년)’ ‘팔굉일우’라는 용어의 본격 등장은 중일전쟁 직후의 시점 이순우 특임연구원 불은 하나나/ 밝음은 가득하외다./ 한 낱의 생각이/ 억만의 마음을 감기고/ 구원할 것입니다.// 종은 집속에 우나/ 온 땅에 퍼집니다./ 한 낱의 곡조가/ 만 나라의 걸음을/ 어우를 것입니다.// 한 낱의 생각이/ 예부터 있고/ 한 낱의 이상이/ 기어코 올 것입니다./ 그 깊이를 모릅니다./ 그 넓이를 모릅니다,/ 그 높이를 모릅니다,/ 그 멀기를 모릅니다./ 모르도록 그 나타남이 어수선하외다.// 시방 우리는 총을 들고/ 시방 우리는 칼을 잡고/ 시방 우리는 싸우고/ 시방 우리는 문흡니다./ 그러나 나중은 총을 거두리라./ 칼을 꽂으리라./ 사랑이 다스리리라.// 혹은 웃을 것이고/ 혹은 뮐 것이고/ 혹은 막을 것입니다./ 마는 웃는 이는 놀랄 날이,/ 뮈는 이는 반 길 날이,/ 막는 이는 업델 날이/ 머지 안하외다.// 불은 하나나/ 억만 등을 켭니다./ 생각은 하나나/ 억만 구원을 이룹니다.// 한 낱의 생각이/ 예부터 있고/ 기어코 올 것이외다./ 음을 새기지 못합니다./ 뜻을 풀지 못합니다./ 아직 우리는 알기보다도/ 바랄 뿐이외다./ 우리의 아들들은 알 것이외다./ 우리의 손자들은 누릴 것이 외다.// 아직 우리는 바랄 뿐이외다./ 한 낱의 생각을./ 한 낱의 광명을.// 이것은 『삼천리』 1941년 1월호에 게재된 「팔굉일우(八紘一宇)」라는 제목의 친일시이다. 여기에 나오는 ‘한 낱의 생각’이나 ‘한 낱의 이상’, 그리고 ‘한 낱의 곡조’와 ‘한

정상을 향하는 유럽 극우 vs 불나방 한국 극우

2025년 4월 28일 1671

[돌려보기] 정상을 향하는 유럽 극우 vs 불나방 한국 극우 목수정 작가 한국 사회는 초유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12·3 계엄이 속전속결로 저지되고, 내란범 대통령을 국회가 탄핵했을 때, 우린 시민들의 용기와 성숙한 의식이 나라를 위기에서 구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사태는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체포영장을 거부하던 윤석열 수호 세력이 등장하더니, 눈덩이처럼 불어난 일군의 무리가 온라인과 거리에서 공포를 자아내며 헌정질서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구부정한 몸으로, 태극기를 흔들며, 어설픈 구호를 외치던 소위 어버이연합류의 보수단체에, 온라인 게임이 더 익숙해 보이는 근육질의 청년세대가 더해진 낯선 집합이 광장 전면에 등장했다. 점점 더 자극적 현실왜곡을 경쟁적으로 유포하는 우파 유튜버들과 전광훈을 대표로 하는 우파 기독교 집단을 두 기둥으로 삼은 공간 속에 그들은 서 있다. 윤석열을 지키고 빨갱이들로부터 나라를 구한다는 자신들의 숭고한(!) 명분 아래 그들은 각자 내면에 응축된 분노를 폭력으로 드러낸다. 그들 안엔 얼마든지 몸을 던져 표출할 수 있는, 뜨겁게 달궈진 증오와 울분이 있다. 탄탄한 자본과 신도 그룹을 가진 기독교 단체, 내란으로 블루오션을 만난 극우 유튜버들이 그들이 일찍이 갖지 못하던 그럴싸한 명분을 차곡차곡 제공해 주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 사실이건 아니건, 분노를 부추겨줄 연료만 된다면 무비판적으로 수용, 더 대범한 폭력의 양분으로 삼는다. 처음엔 어정쩡한 입장을 취하던 국민의힘도 이제 그들의 무리에 온전히 가세,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넜다. 한국 사회가 숱한 피의 대가를

광장의 뜨거움 이어갈 ‘시민사회처’ 설립을 제안한다

2025년 4월 28일 612

[돌려보기] 광장의 뜨거움 이어갈 ‘시민사회처’ 설립을 제안한다 방학진 기획실장 “마을은 민주주의 학습장”이라고 말한 토크빌이 지금의 한국을 보았다면 “광장은 민주주의 학습장”이라고 수정했을 것이다. 윤석열 파면 이후 한국 민주공화정을 지켜낸 광장의 에너지를 어떻게 하면 지속,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를 놓고 논의가 한창이다. 이미 지난 3월 10일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현재는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과 야 6당은 연석회의를 통해 공동 입장문을 발표했다. 첫째, 내란수괴 윤석열을 즉각 파면하고 처벌하기 위해 시민들과 함께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둘째, 내란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처벌, 내란의 완전한 종식을 위해 흔들림없이 연대하겠습니다. 셋째, 내란의 재발방지를 위해 시급하고 필수적인 법제도 개선을 위해 협력하겠습니다. 넷째, 내란 세력의 심판과 재집권 저지를 위해 힘을 모으겠습니다. 다섯째, 차별과 혐오 정치를 배격하고, 다양성을 존중하고 민의를 반영하는 정치를 함께 구현하겠습니다. 여섯째, 윤석열의 파면 이후에도 시민 참여가 보장된 가운데 민주주의 회복과 평화 실현, 사회대개혁을 이루기 위해 협력하겠습니다. 일곱째, 이상의 공동의 결의를 이행할 방안에 대해 후속 협의를 진행하겠습니다. 국민의힘을 제외한 원내 정당들이 참여한 원탁회의도 4월 15일 “사회대개혁, 기본권 강화, 지방분권 등 국가 미래 과제를 대선 공약으로 추진하고, 차기 정부 국정과제로 실천”할 것을 선언했다. 이 두 개의 약속만 보면 대선 후 광장의 에너지, 즉 시민사회의 목소리와 요구가 국정에 반영될 가능성을 의심할 여지는 없다. 이러한 전망은 2017년 촛불시민들의 힘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문재인

이선홍의 친일 인생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2025년 4월 28일 544

[연구소 글방 21] 이선홍의 친일 인생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권시용 선임연구원 도쿄에 박춘금이 있다면 오사카에는 이선홍이 있다. 식민지 시기를 살았던 조선 사람들 가운데 친일파가 있었다. 일본의 식민통치를 긍정하고 거기에 협력하는 데서 삶의 방향을 찾았던 사람들이다. 개중에는 이른바 ‘식민 본국’ 일본에서 이름을 드높인 친일파도 있었으니, 박춘금과 이선홍이 첫손에 꼽힌다. 제주 출신 고권삼은 ????오사카와 조선인????(1938)이란 책에서 “박춘금 씨는 도쿄에서 상애회를 조직하고 이선홍 씨는 오사카에서 조선인협회를 조직했다. 동과 서에서 각각 내선융화(內鮮融和) 운동을 시작했다”고 서술했다. 박춘금과 이선홍 두 사람을 도쿄와 오사카 내선융화 운동의 선구자로 평가한 것이다. 이렇게 도쿄를 무대로 상애회라는 친일단체를 지휘해 일본제국주의자들의 눈에 들려고 애썼던 박춘금이 있다면, 오사카에는 조선인협회를 이끌었던 이선홍이 있었다. 이제 오사카 내선융화 운동의 핵심 인물, 친일파 이선홍의 친일 인생을 따라가 본다. 우선 이선홍의 친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몇 장면을 살펴보자.   <장면1> 1931년 6월 일본 오사카에 있는 조선인단체인 ‘조선인협회’는 매우 이색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바로 ‘결혼매개소(結婚媒介所)’라는 것이다. “내선융화의 열매는 제2세로부터”라는 구호 아래 조선인과 일본인을 결혼시키자, 진정한 내선융화는 민족 간 결혼에서 비로소 이루어진다는 운동이었다. <장면2> 1932년 1월 8일 도쿄에서 이봉창 의거가 일어났다. 신년을 맞아 군대를 사열하고 돌아가던 일왕을 향해 청년 이봉창은 폭탄을 던졌다. 조선인이 살아 있다, 부당한 식민통치에 맞서 독립을 위해 뛰고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린 사건이었다. 당시 일본에 살던 친일 인사들은 깜짝

12월 3일 내란의 밤에 국회로 한달음에 달려간 최화식 장군

2025년 4월 25일 3432

[인터뷰] 12월 3일 내란의 밤에 국회로 한달음에 달려간 최화식 장군 방학진 기획실장 홍범도 흉상 철거 시도와 급기야 12·3 내란을 계기로 우리나라 사관학교 교육 내용이 궁금했다. 육사·해사·공사·간호사관학교의 『교육과정집』을 통해 우리 헌법 전문에서 명시하고 있는 독립과 민주주의 교육이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는지 검토했다. 그 결과 네 곳의 사관학교 모두 『한국사』 교과목이 1학년 교양필수로 지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를 한 학기 동안 교육하는 까닭에 독립운동사 이수 시간은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또한 민주주의 관련 과목은 해군사관학교와 간호사관학교에만 각각 전공필수, 교양선택으로 개설되어 있어 민주주의 관련 과목을 이수하지 않은 채 졸업하는 사관학교 생도가 태반임을 알 수 있었다. 앞으로 사관생도들에게 수준 높은 민주시민 교육 이수가 필수불가결하다. 더불어 고위급 예비역 장군들도 같은 고민을 해야 한다. 때마침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 예비역 장성들의 시국성명이 뉴스에 보도되었다. 1월 7일 ‘내란수괴 윤석열의 체포 구속 및 파면을 요구하는 대한민국 예비역 장군 시국성명’이 나왔다. 12·3 내란 이후 예비역 장군들의 첫 시국선언이었다. 성명에는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지낸 김병주 국회의원과 황인권 전 제2작전사령관, 김도균 전 수방사령관을 비롯해 황기철, 부석종, 김도호, 김태성, 진호영, 이재각, 최화식, 김사진, 하영재, 김기노, 이진용, 김용식, 문원식 등 육군·해군·공군 예비역 장성들이 동참했다. 이중에서 12월 3일 비상계엄 발표 직후 용인 자택에서 여의도 국회로 달려간 최화식 장군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비상계엄을 TV에서 보면서 ‘이거 미친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