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huge collection of 3400+ free website templates, WP themes and more http://jartheme.com/ at the biggest community-driven free web design site.

민족사랑

거물면장(巨物面長), 말단행정을 옥죄는 전시체제의 비상수단

2022년 2월 23일 382

다들 비슷한 시절을 겪었으리라 생각되지만, 소싯적에 “면장질도 알아야 하지”라는 표현을 무시로 내뱉는 동네어른들의 대화를 참으로 많이 귀동냥했던 경험이 있다. 이런 말이 언제부터 통용 되었는지가 궁금하여 옛 자료를 확인해보았더니, 1960년대의 신문지상에 “알아야 면장(面長)”이라는 구절을 아예 속담(俗談)의 하나로 치부해놓은 기사들이 심심찮게 등장했던 것이 눈에 띈다. 한참 세월이 지나고 “알아야 면장”의 어원이 바로 그 시골 면장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순간 적잖이 당혹감과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던 기억도 새삼스럽다. 이는 <논어(論語)> 양화편(陽貨篇)에 “공자께서 아들 백어에게 이르기를 ‘너는 「시경(詩經)」의 주남과 소남을 배웠느냐? 사람으로서 주남과 소남을 배우지 않으면 담장을 바로 마주보고 선 것과 마찬가지니라’(子謂 伯魚曰 女爲周南召南矣乎 人而不爲周南召南 其猶正牆面而立也與)”고 한데서 나온 표현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고문헌 자료에 불학면장(不學面墻)이라거나 불면면장(不免面墻)이라거나 하는 구절도 곧잘 사용된 흔적이 발견되며, 특히 <중종실록(中宗實錄)> 중종 13년(1518년) 7월 2일 기사에는 평안도절도사 이장생(平安道節度使 李長生)의 서장(書狀)에 ‘면면장(免面墻)’이라는 용어가 직접 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나오는 ‘면면장’은 문맥에 따라 면장면(免墻面)이나 면장벽(免墻壁)이라는 표현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면장(面長)이라는 존재 자체가 이 땅에 등장한 것이 대략 120년 남짓한 세월이 흐르기 전의 일이었으므로, 근대시기 이후에나 생성된 신식용어(新式用語)가 금세 속담처럼 녹아들기도 쉽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면(面) 제도와 관련한 자료들을 찾아보니, ‘면장’이라는 표현이 공식적으로 드러난 것은 갑오개혁(甲午改革) 직후의 시점인 것으로 드러난다. 갑오개혁 전후 시기의 면(面)

“진짜 독립운동은 반제민족해방투쟁” (1)

2022년 2월 23일 303

지난 1월 17일 연구소 회의실에서 임헌영 소장의 신년 인터뷰가 진행됐다. 이 자리에 <통일뉴스> 이계환 기자와 이승현 기자가 배석하였다. 1월 25일 <통일뉴스>에 게재된 임헌영 소장 인터뷰를 두 차례에 걸쳐 전재한다. 이 자리를 빌려 전재를 허락해준 <통일뉴스>에 감사드린다.-편집자주 이계환 : 오늘 <통일뉴스> 신년 인터뷰에 문학평론가이자 사회활동가이신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임헌영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반갑습니다. ◦ 임헌영 : 안녕하십니까. 임헌영입니다.  지난해 말에 선생님께서 자전적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대화록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을 발간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책에 대해 ‘나는 문학으로 역사를 성찰하고 또 역사를 문학으로 조명한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이 책을 봤는데 제소감은 문자 그대로 ‘문학의 길을 통해 갔더니 역사의 광경이 나섰다’고 쉽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 예. 멋집니다. 저자의 문학적 삶을 제가 쫓아갔더니 갑자기 정치, 사회, 국제, 정세 등이 어우러진 역사의 광장, 역사의 현실과 마주친 기분이었습니다. 전자가 문학평론가로서의 삶이라면 후자는 사회활동가로서의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인터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서, 하나는 선생님의 문학평론가로서의 부분, 그리고 다른 하나는 표현이 어떨지 모르지만 사회활동가로서의 부분 이렇게 나눠볼까 합니다. ◦ 예 좋습니다. 신간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 먼저 문학평론가로서의 부분을 여쭤보겠습니다. 선생님 연세가 여든이 넘은 걸로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아직도 정정하십니다. ◦ 비교적 내 연배에서는 건강에 아무 이상이 없고 운전도 하고 그래요.   그렇습니까. 『문학의 길 역사의

『재일조선인단체사전 1895~1945』 출간

2022년 2월 22일 511

[초점] 『재일조선인단체사전 1895~1945』 출간 연구소가 10년여의 작업 끝에 <재일조선인단체사전 1895~1945>를 펴냈다. 연구소가 중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일제시기 사전 편찬사업’의 일환으로, 2004년의 <일제협력단체사전국내중앙편->, 2009년 <친일인명사전>, 2017년 <일제식민통치기구사전-통감부·조선총독부편->에 이어 네 번째로 내놓은 일제시기 전문분야 사전으로 재일조선인단체를 집대성한 최초의 사전이다. <사전>은 일제시기 일본에서 발족한 재일조선인단체 551개의 연혁과 활동을 수록하고 있다. 존립 기간이 불분명하거나 짧아도 1차 사료에서 관련 인물과 활동 내용이 확인되면 수록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사전>에는 실로 다양한 성격을 가진 단체가 망라되어 있다. 일제의 통치에 저항했던 독립운동 계열의 단체가 있는가 하면 일제의 통치에 적극 협력한 친일 성향의 단체도 수록되어 있다. 설립 목적에 따라 구분하면 정치·사회·경제·문화·종교·사상·교육·노동·친목·상조단체로 구분되는 단체들이 들어가 있고, 실행주체에 따라 구분하면 청년·학생, 노동자, 실업자, 임차인 단체 등으로 구분되는 단체들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사전>에는 일본의 관제조직 또는 어용단체였던 각종 융화·친일 단체, 협화회·교풍회 등과 전쟁협력 단체들도 수록되어 있다. 일본인들이 주도해서 조직한 일본의 관제조직이 포함된 이유는 무엇일까. 관제단체를 통해 당시 일본의 재일조선인정책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며, 앞으로 본격적인 연구를 통해 이들 조직 안팎에서 전개된 조선인의 대응을 밝힐필요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관제단체도 수록대상에 포함해 주요 인물과 활동, 연혁 등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하고자 했던 것이다. <사전>에 나오는 인물 중에는 조선과 일본은 오가며 활동한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잘 알려진 인물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일본에서만 활동한 경우가 많아 생소한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이렇듯 <사전>은

청년훈련소가 된 학교

2022년 2월 22일 423

[소장자료 톺아보기 34] 청년훈련소가 된 학교 • 강동민 자료팀장   1. 교육강령 3대 목표 앞에서 졸업기념 사진 촬영, <전주공립농업학교 졸업앨범>, 1941년 ‘내선일체를 통한 황국신민의 육성’을 교육의 최우선 과제로 삼은 일제는 교육강령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국체명징國體明徵(‘천황’ 중심의 국가체제를 명확히 하는 것) 내선일체內鮮一體(조선은 일본 사상을 바탕으로 하나가 되는 것) 인고단련忍苦鍛鍊(어려움을 참고 이겨내도록 수양하는 것) 2. 나무로 만든 총을 들고 군사교육훈련을 하는 국민학생들, <싸우는 조선戰ふ朝鮮>, 1945 유사시 조선 학생들을 최후 3. <월간 소국민>, 1945년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경성일보>가 발행한 국민학생용 잡지. 1943년 12월에 창간되었으며 일본어로 제작하였다. 전시국가총동원체제에 따라 전시상황에 관련된 글, 사진, 삽화가 수록되어 있다. 4. 군복 차림인 교련 교사의 모습, <예산공립농업학교 졸업앨범>, 1938년 현역 장교가 학생들의 교련 수업을 담당하여 군대식 실전 훈련을 진행하였다. 5. <학교교련교과서>, 육군성 병무과, 1943년 각종 제식 훈련의 모습을 그림과 함께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중일전쟁 이후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천황’을 위한 삶을 강요시켰던 일제는 학생들에게 이른바 ‘결전교육 실시’라는 명목으로 군사훈련을 강제하는데 이르렀다. 지금의 초등학교 4학년 이상이면 무조건 학교에서 군사교육을 받게 한 것이었다.   울려 퍼지는 발소리는                          轟く轟く足音は       나라를 위해 상처 입은                         お国の為に傷ついた 용사를 지키고

소설 「자유부인」에도 등장하는 중화요리점 ‘아서원’의 내력 역관 홍순언의 일화가 얽힌 ‘곤당골’ 지역의 공간변천사

2022년 2월 3일 564

[식민지비망록 78] 소설 「자유부인」에도 등장하는 중화요리점 ‘아서원’의 내력 역관 홍순언의 일화가 얽힌 ‘곤당골’ 지역의 공간변천사 이순우 책임연구원   평안북도 용천 출신으로 본명이 정서죽(鄭瑞竹)인 소설가 정비석(鄭飛石, 1911~1991)은 일찍이 신의주중학교 재학 시절인 1929년 6월에 ‘신의주고등보통학교 학생결사사건’으로 검거되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0월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전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러한 그가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와 문단에 본격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것은 1935년 정초의 일이다. 이때 그는 <매일신보> 1935년 신년현상독물(新年懸賞讀物) 장편소설(掌篇小說, 콩트) 부문에 「여자(女子)」로 입선하면서 등단하였고, 잇따라 <동아일보> 1936년 신춘문예에서 단편소설 「졸곡제(卒哭祭)」가 선외(選外)로 뽑혔다. 그리고 다시 <조선일보> 1937년 신춘문예에서도 단편소설 「성황당(城隍堂)」이 1등에 당선되는 것으로 서서히 문단에서의 입지를 넓혀갔다. 그러나 1938년 7월 24일 경성부민관에서 열린 ‘전향자단체’인 시국대응전조선사상보국연맹(時局對應全朝鮮思想報國聯盟)의 결성식에 신의주보호관찰소 소관의 전향자 대표로서 출석하였고, 특히 1941년 10월에 <매신사진순보(每新寫眞旬報)>의 편집기자로 들어간 이후에는 일제패망의 순간까지 노골적으로 친일 성향의 글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 기간에 그가 남긴 친일작품과 기고문이라는 무수한 흔적들로 인해 자기의 이름이 <친일인명사전>(2009)에 수록되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아무튼 그는 해방 이후 본격적으로 대중소설가의 면모를 과시하였는데, 아무래도 이 시기의 대표작이라고 하면 <자유부인(自由夫人)>이 아닌가 싶다. <서울신문> 1954년 1월 1일부터 8월 9일에 걸쳐 총 215회로 연재된 이 소설은 한국전쟁의 여파로 어지러워진 시대상황과 허물어져가는 가정윤리, 그리고 향락적인 사회풍조를 파격적으로 묘사하여 큰 논쟁을 야기하면서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고, 그 이후 「자유부인」(1956)과 「속편 자유부인」(1957)이라는 영화도 잇따라

올리브 햇순 – 희망의 새해를 꿈꾸며

2022년 2월 3일 162

[신년사] 올리브 햇순 – 희망의 새해를 꿈꾸며 함세웅 이사장   임인(壬寅)년 새해를 맞아 우리 연구소 회원들과 임직원들과 우리 사회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새로움과 은총이 충만하기 바라며 기도드립니다. 호랑이는 우리 민족에게는 특별한 관계가 있는 동물입니다. 우리 민족 신화에 최초로 등장하는 동물이 곰과 호랑이입니다. 호랑이는 귀신을 몰아내기도 하고 사랑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신화(神話)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꿈이 담긴 염원과 기도입니다. 단군신화를 통해 우리 민족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가치관을 만들었습니다. 사람과 제도가 공동체 구성원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세상살이를 소망한 것입니다. 새해를 맞는 우리 사회공동체 구성원들이 새로워지는 삶과 사회공동체가 변화하기를 바라는 꿈은 바로 남북평화와 공존, 국내정치의 안정 무엇보다도 부동산 안정과 청년들을 위한 희망 제시입니다. 무엇보다 올해 우리는 대통령선거와 지방자치장과 의회 의원 선거가 있습니다. 책임 있는 정치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꿈과희망을 알고 성취를 위해 노력하는 일입니다. 그 장치를 우리는 정당이라고 합니다. 정당은 정치인들이 모여 활동하는 공간입니다. 공동체의 조정과 통합을 고민하는 중요한 집단입니다. 그 집단 안에 갈등을 조장하고 분열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 정화하여 그런 사람의 정치활동을 통제하고 제어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대 간 갈등을 조장하고, 남녀 분열을 조장하고, 남북을 갈라 민족 간 대립을 격화하여 이를 이용하려는 행태와 정치인을 꾸짖고 거부해야 합니다. 이런 행태를 선거전략이라 부추기는 언론도 거부해야 합니다. 이러한 선거를 끝내고 나면 우리 사회공동체는 지금보다 더 심한 갈등과 분열 그리고 대립을 각오해야

영화 ‘미싱 타는 여자들’을 보고

2022년 2월 3일 359

[후원회원 마당] 영화 ‘미싱 타는 여자들’을 보고 백승문 양정고등학교 교사 2022년 1월 20일 개봉과 동시에 이 영화를 관람하였다, 영화 제작 소식을 계속 듣고 있었던지라 극장에서 개봉하기를 손꼽아 기다리던 참이었다. 1970년대 평화시장은 내게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으로 환기되는 공간이다. 문자 너머에 살아 움직이던 사람들의 모습을 당사자들의 육성으로 듣고 보는 마음은 그래서 더욱 각별하다. 어떤 때에는 문자언어가 힘이 세고 또 어떤 경우에는 음성언어의 힘이 세다. 이 영화에는 두 경우가 모두 들어 있다. 파주 통일동산. 높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자리잡은 미싱 세 대. 그곳을 향해 두런두런 걸어가는 세 사람. 하늘 높이 올라가는 웃음소리. 웃음으로 둘러친 사진틀에 눈물과 이야기가 시냇물처럼 흐르고 있는 그런 사진 한 장 같은 영화. 초등학교 졸업사진에나 있어야 할 소녀들이 노동교실 소풍 사진 속에 들어가 있는 걸 본 순간부터 이제 초로에 접어든 그 시절 소녀들이 한 자리에 서서 ‘흔들리지 않게’를 함께 부르는 순간까지 내내 눈물을 훔쳤던 것 같다.  노동교실: “너 밥 먹을래, 노동교실 갈래?” 할 때 기꺼이 노동교실로 달려가는 사람들. ‘우리의 소원은 배움 / 꿈에도 소원은 배움’이라고 바꾸어 부른 가사. 밥보다 배움이 절실한 사람이 내 주위에도 있었다. 1977년 9.9사건이 벌어질 당시 나는 중1이었는데, 등장인물 중 한 분은 나보다 두살밖에 많지가 않다. 학교가, 그리고 교실이 무엇이기에?  어떤 숙제: 1부터 10까지 한자로 쓰고, 은행에

‘한국현대사를 꿰뚫고 있는 MC’ 노기환 후원회원을 만나다

2022년 2월 3일 441

[인터뷰] ‘한국현대사를 꿰뚫고 있는 MC’ 노기환 후원회원을 만나다 인터뷰 : 김영환 대외협력실장   “인권, 평화, 미래를 생각하는 역사행동 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드는 역사전문 팟캐스트 채널” 2017년 5월 15일, 촛불정권의 출발과 함께 역사적폐 청산을 주제로 한 민족문제연구소 팟캐스트가 역사적인 첫 전파를 내보냈다. 그로부터 5년 6개월, 연구소의 팟캐스트는 2021년 12월까지 6차례의 시즌을 거치며 여전히 우리 시대의 중요한 시대정신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역사적폐 청산의 목소리를 발신해 왔다. 그동안 팟캐스트를 통해 방송된 에피소드만 무려 210개. 지난 5년 반의 시간 동안 팟캐스트 진행을 위해 강릉에서 서울까지 먼 걸음을 마다 않는 수고를 기꺼이 자청해 온 고마운 이가 있다. 전문 MC로 활약하고 있는 ‘MC노(노기환)’ 후원회원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팟캐스트뿐만 아니라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기금 마련을 위한 전국 순회 항일음악 토크콘서트,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식, 5분 친일인명사전, 항일음악회 등 굵직굵직한 연구소 행사의 사회를 도맡아 왔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연구소 창립 30주년 특별기획으로 제작, 방영되고 있는 “과거청산의 빌런들”의 진행을 맡아 명실공히 민족문제연구소의 ‘전속 MC’로 연구소 활동에 큰 힘을 보태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연구소의 목소리를 대변해 온 그의 진솔한 목소리를 들었다. 대학에서 연극을 했고 연극 연출가의 꿈을 꾸었던 노기환은 스물아홉의 늦깎이로 대학을 졸업하고 어쩔 수 없이 일반 회사에 취직하여 평범한 회사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에서 ‘아 내 인생이 여기서 끝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회사원 생활

안녕하세요 김철기 선생님

2022년 2월 3일 165

[후원회원 마당] 안녕하세요 김철기 선생님 정인혜 저는 새날 팟캐스트에서 선생님의 녹화에 참여했던 민족문제연구소의 인턴 정인혜라고 합니다. 전 세계가 종전임에도 여전히 전쟁을 이어가는 한국이기에 이런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각국에서도 심각성을 가지고 논의하는 지뢰문제인 만큼 세계에서 안전지역으로 인정받고 있는 한국 안에서 환경문제를 위해 힘쓰시던 도중 피폭을 겪게 되셔서 참담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가장 마음이 안 좋았던 이유는 국가의 처우입니다. 물론 국방부나 국가에서 전부 찾아낼 수없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계속 생기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이를 계속 숨기고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오래 전 선조들이 꿈꿔 오던 모두가 평등한 대우를 받는 국가와는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피폭 이후 다리를 잃어 절망 속에 빠졌음에도 다시 일어서서 차라리 내가 당해서 다행이라고 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물론 그 누구에도 그런 일을 당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당연한 것이고 사과 또한 당연한 것입니다. 잘못한 일이 있다면 사과를 해야 한다는 것은 바로 어른들이 저희에게 가르친 내용이자 모두가 노력해 실천하려는 사항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직접 말해주시고 나서기까지 많은 고민을 하셨을 테지만 선생님의 선택은 절대 틀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당사자들이 나서서 사과를 해달라는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나라에서 해결해 주는 시스템을 만드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올바른 정의를 지닌 나라가 되길 바라며 정인혜(민족문제연구소 인턴) 올림

민족문제연구소 창립 30주년 기념 다큐영상 <과거청산의 빌런들> 제작

2022년 2월 3일 151

[초점] 민족문제연구소 창립 30주년 기념 다큐영상 <과거청산의 빌런들> 제작   • 김세호 PD     민족문제연구소는 창립 30주년을 맞아 30년 활동의 의미를 기록하는 다큐 시리즈 <과거청산의 빌런들>을 제작했다. 연구소의 지난 30년간의 활동은 해방 이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과거청산을 시민들이 직접 나서 실천해온 역사를 의미한다. <과거청산의 빌런들>은 해방직후 좌절된 친일청산부터 과거청산을 막아온 세력들을 빌런(악당)으로 설정하고 그에 대항한 시민들의 싸움을 민족문제연구소의 활동과 연결 지어 스토리로 구성하였다. 무겁고 딱딱 할 수 있는 주제를 재미난 이야기 형식으로 구성하고 스토리텔러가 직접 전달하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과거청산의 빌런들>은 총 6개 에피소드로 구성되어있다. 먼저 제1화(12월 9일 업로드)에서는 백범암살의 진실을 찾아내려 했던 시민들의 추적기를 다룬다. 좌절된 과거청산의 시작은 어디이며 백범 암살의 추적자를 통해 시민들의 실천운동으로 연구소 활동의 의미를 조명한다. 제2화(12월 24일)에서는 한일협정과 관련한 미국 CIA의 ‘비밀문건’을 중심으로 박정희와 일본 정부 사이에 오갔던 부당 거래가 무엇인지, 그 결과 한일협정은 식민청산을 완전히 봉인해 버린 사실을 추적한다. 제3화(1월 20일)와 제4화(2월중)에서는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집중적으로 제기된 과거청산의 과제들을 평가해본다. 제3화에서는 이완용, 송병준을 비롯한 친일파 후손들의 ‘조상 땅 찾기’가 불러일으킨 국민적 공분과 친일재산 환수운동을, 제4화에서는 악질적 친일행위를 하고도 독립유공자가 된 인물들의 민낯을 추적하는 민족문제연구소의 활동을 각각 조명한다. 제5화(3월중)와 제6화(4월중)는 현재 진행중인 과거청산의 과제들에 집중한다. 제5화에서는 군함도(하시마) 등 일제강제동원시설을 유네스코 산업유산으로 등재하며 역사를 부정하려는 일본 정부의 태도를 비판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