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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독도와 관련한 단상들

2025년 7월 31일 406

[후원회원마당] 독도와 관련한 단상들 한상권 덕성여대 사학과 명예교수 <은평역사답사> ‘2025, 독도 영유권 칙령 반포 125주년 기념 울릉도·독도 답사’를 6월 26일(목)부터 28일(토)까지 기획·진행해주신 은평구청과 민족문제연구소에 감사드리며, 독도 수호에 선구자적인 노력을 하신 최종덕·이종학 두 분의 공적을 이번 답사 참가하신 분들과 함께 되새겨보고자 간단히 정리해보았습니다. – 2025년 7월 1일 울릉도 독도 답사 참가자 한상권 아룀 1. 독도는 대한민국 영토이고, 우리가 실효 지배하고 있다(고유 영토설). 교육부가 마련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기준」에는 “독도가 우리의 영토임을 역사적 연원과 내력을 통해 증명하고, 일제에 의해 이루어진 독도 불법 편입 과정의 문제점”을 한국사 교과서에 서술하도록 되어 있다. ‘고유 영토설’에 입각해, “독도가 역사적으로 우리 영토이며,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부당한 것임을 자료를 통해 설명하고, 러·일 전쟁 때 일본이 독도를 불법적으로 자국 영토에 편입시켰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교과서에 서술하라는 게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인 것이다. 2. 반면 일본은 독도, 센카쿠열도 등이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며, 독도 영유권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독도를 분쟁지역화하겠다는 입장 을 날로 강화하고 있다(분쟁 지역설). 일본 교과서에 독도 영유권 주장 내용이 실리기 시작한 시기가 2005년부터이다. 일본 고등학교 지리교과서를 보면, 독도를 시마네현 소속으로 하고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에 포함시켜 일본의 고유영토로 나타내고 있다. 또한 독도 관련 내용 기술도,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이다’(5종), ‘독도가 한국에 점거되어 있다’(3종) ‘한일 간에 독도영유권을 둘러싸고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3종)

견피(犬皮) 공출과 임실 견혼비의 건립과정

2025년 7월 31일 379

[식민지 자료관 3] 견피(犬皮) 공출과 임실 견혼비의 건립과정 이순우 특임연구원 “왕년에 내가 만주서 개장사할 때는 말이야, 어쩌고저쩌고~.” 어느 정도 연배가 있는 사람이라면 필시 살면서 이런 식의 농담을 몇 번쯤은 입에 담아봤을 것이다. 왜 하필 만주에서 개장사를 했다는 표현이 생겨났을까도 싶지만, ‘개털모자’라든가 ‘개가죽외투’의 존재에서 떠올려지듯이 만주지역의 지독한 추위와 어우러진 그 시절의 고생담(苦生談)이 그러한 표현으로 함축되어 전해져 내려온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고 보면 일제강점기에 이 땅에서 벌어진 무수한 식민지 수탈사를 통틀어 우리 개들이 겪어야 했던 어마어마한 희생(犧牲)의 장면들도 결코 빼놓기가 어렵다. 일찍이 『동아일보』 1934년 4월 24일자에 수록된 「조선견피(朝鮮犬皮), 연(年) 8만 5천 매(枚), 군수용품(軍需用品) 및 방한(防寒) 등에 애용(愛用)되고, 외국수출(外國輸出)도 다수(多數)」 제하의 기사를 보면, “군수용품은 적피(赤皮)로써 가격은 중품(中品)이 많이 수요되며, 용도는 방한용(防寒用)의 동의(胴衣)에 사용된다”고 소개한 구절의 눈에 띈다. 그리고 이러한 군용피복을 생산하기 위한 견피공출(犬皮供出)이 본격화한 것은 — 다음의 신문기사에서 보듯이 — 이른바 ‘지나사변(支那事變, 중일전쟁)’이 발발한 직후의 시점이었다. (1) 『매일신보』 1938년 1월 16일자, 「방한피복(防寒被服)의 재료(材料)로 조선견모피(朝鮮犬毛皮) 헌납(獻納), 조선개의 모피는 퍽 따뜻하다, 군당국(軍當局)은 크게 감사(感謝)」 제하의 기사: 방한피복의 재료로서 모피가 부족되어 그 보급(補給)에 대하여는 비상시인 만큼 여러 가지로 문제가 되어 있었는데 아직도 이것이 충분치 못하여 군당국에서는 각 방면과 협력해서 모피자원의 공급방법을 여러 가지로 연구해 왔었다. 그런데 이번 경기도 농무과의 스기모토 기사(杉本技師)는 경기도 내의 축견가(畜犬家)와 연락하여 방한피복재료로서

지금도 조문기는 독립전쟁 중이다

2025년 7월 30일 505

[특집] 지금도 조문기는 독립전쟁 중이다 방학진 기획실장 일제는 1907년 7월 31일 밤 대한제국 군대해산에 이어 9월 3일에는 「총포 및 화약류 단속법」을 만들었다. 이 법은 총포 및 화약의 제조·판매·운반·교환·소유를 금지하면서 시행령을 통해 그 단속 방법까지 치밀하게 규정하였다. 화약은 모두 불태우고(燒棄) 만약 불태울 수 없으면 물속에 버려서 나중에 건져서 말려도 사용할 수 없게 할 것. 탄환도 화약과 같이 처리할 것. 총포류는 병기로 사용하지 못하게 처치하기 위하여 변형·절단 등 적당한 방법을 집행할 것. 활(弓)·화 살(矢)·칼(刀)·창류는 불태울 것(燒棄). 고대 갑옷과 투구(甲冑)는 군부에 송부할 것. 변형 또는 소기한 금속 본질은 신분이 확실한 자에게 매각할 것. 군아(郡衙)에서 이전에 모아둔(募置) 것으로서 포군이 사용한 병기도 앞과 같이 정리할 것. 한마디로 한반도 전역을 무장 해제시키려 했다. 산포수 대장이었던 홍범도가 본격적으로 의병 투쟁에 나선 계기도 바로 「총포 및 화약류 단속법」 제정이었다. “단군 이래로 포수의 총을 빼앗은 일은 단 한 번도 없었소. 총을 포기하는 포수는 포수가 아니오.”(소설 <범도>에서) 따라서 일제강점기에 국내에서 총과 폭탄을 사용한 독립투쟁 즉 의열투쟁은 진공 상태에서 소리를 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현재 국가보훈부 공훈록에 등재된 독립운동가 18,258명을 운동 계열별로 보면 3·1운동(34.86%)–국내항일(17.22%)–의병(15.00%)–만주방면(13.81%) 순이다. 의열투쟁 계열은 133명으로 1%도 되지 않는다. 의열투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선 우리에게 익숙한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의사의 경우는 모두 국외에서 전개한 의거이다. 국내에서 진행된 의열투쟁은 1905년 8월 서울에서

긴급전시행동 〈민주주의와 깃발〉 연계프로그램 〈어제와 다른 날들, 어제와 다른 나를〉

2025년 7월 30일 315

[초점] 긴급전시행동 〈민주주의와 깃발〉 연계프로그램 〈어제와 다른 날들, 어제와 다른 나를〉 식민지역사박물관 7월 12일 긴급전시행동 〈민주주의와 깃발〉과 연계하여 〈어제와 다른 날들, 어제와 다른 나를〉이라는 주제로 특별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차명숙 5·18민주화운동 거리 방송 참여자와 이현주 박종철센터 센터장을 초청하여 김승은 식민지역사박물관 학예실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행사는 사진으로 보는 그날의 이야기, 참가자들의 질의응답과 소감을 듣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차명숙 선생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확성기를 들고 시위에 참여했던 당시의 상황과, 계엄령 포고령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출소한 이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그 현장에 있었던 여성이고, 형을 살다 나온 여성이며, 고문도 많이 받고 내 인생이 너무나도 비참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이 제대로 기록되지 않은 것을 보고 바로잡기 시작했습니다”라는 차 선생의 각오와 다짐을 청중들이 공감을 갖고 경청해주었다. 이현주 박종철센터장은 박종철 열사의 1년 후배로 학생운동을 함께 했던 추억과 박종철 열사가 대공분실에 끌려가기 전 마지막으로 만났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또한 “기억을 전달하는 내가 대학생 ‘박종철’과 6‧10민주항쟁을 복원하고 지켜나가야겠다”라며 자신의 사명을 밝혔다. 6‧10 민주항쟁 당시 거리로 나왔던 시민들의 용기가 역사로 기록되었고, 민주주의의 위기마다 다시 되살아나는 것 같다며 기록하는 일을 부탁했다. 두 번째 연계프로그램 〈우리의 연대는 넓고 진하다〉는 7월 26일 진행되며, 식민지역사박물관 유튜브에서도 중계될 예정이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 • 김혜영 학예부팀장

김창숙, 오세창의 휘호와 김구 사진, 그리고 신익희의 서신

2025년 7월 30일 469

[소장자료 톺아보기 72] 김창숙, 오세창의 휘호와 김구 사진, 그리고 신익희의 서신 이번 호에 소개하는 자료는 모두 심정섭 지도위원이 기증해준 소장품이다. 위 자료와 관련된 네 분의 독립운동가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김창숙(金昌淑, 1879~1962)은 혁신유림으로 일제와 이승만 독재정권에 강력히 항거한 학자이자 정치인이다. 경상북도 성주 출신으로 호는 심산(心山), 벽옹(躄翁)이며 자는 문좌(文佐)이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이승희와 함께 상경해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오적을 성토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3·1운동이 일어나자 전국 유림 130여 명을 규합해 이들의 연명으로 한국독립을 호소하는 유림단의 진정서를 작성하여 상해로 망명한 뒤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만국평화회의에 우편으로 제출하였다.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한중호조회 결성에 힘썼고 신채호, 박은식 등과 함께 『천고(天鼓)』, 『사민일보(四民日報)』를 발간했다. 1927년 상해 조계에서 일본 영사관원에 체포되어 압송된 후 14년 형을 선고받아 대전형무소에서 복역했다. 고문 후유증으로 두 다리가 마비 되어 출옥했다. 광복 후 일제강점기 일제에 협력한 유림계를 개혁하는데 진력하여 1946년 봄 유도회총본부 위원장에 선출되고 성균관장을 겸임했다. 1946년 9월 성균관대학을 설립해 초대학장에 취임했다. 김구와 함께 이승만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했고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부패에 저항한 투쟁을 한평생 지속했다. 1952년 부산 정치파동 때 이시영 등과 함께 반독재호헌구국선언문을 발표했고, 1956년 이승만 정권이 효창공원의 삼의사묘역 이전을 추진하자 이를 적극 막았으며 1959년 보안법 반대운동을 펼치며 이승만 하야 촉구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오세창(吳世昌, 1864~1953)은 1919년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사랑 2025년 7월호

2025년 7월 29일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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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전쟁 기념 축구대회’… 운동장에 깃든 독립정신

2025년 7월 11일 450

[후원회원마당] ‘독립전쟁 기념 축구대회’… 운동장에 깃든 독립정신 이정윤 백기환 선생 증손녀 독립전쟁 영웅 흉상을 지켜낸 시민들의 자축의 시간 2025년 6월 22일, 운동장 한복판에 사람들이 모였다. 이날은 단순한 경기의 날이 아니었다. 114년 전의 바로 이날 신흥무관학교가 설립되었고, 105년 전 봉오동 전투에서 첫 승전고가 울렸다. 그리고 오늘, 후손들은 그 기억을 이어가기 위해 축구공을 들었다. 기념식도, 학술 세미나도 아닌 ‘독립전쟁 기념 축구대회’가 열린 것이다. 축구와 독립운동이 무슨 상관이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에도 ‘메르데카(Merdeka) 컵’이라는 유서 깊은 축구대회가 있다. ‘메르데카’는 말레이어로 ‘독립’을 뜻한다. 독립은 군복 입은 사람만 지키는 것이 아니다. 오늘 이 경기장에서처럼 독립정신을 기억하려는 시민의 몸짓 또한 독립운동이다. 한동건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윤석열 정권은 육사 내 독립전쟁 영웅 다섯 분의 흉상을 철거하려 했지만, 시민들이 지켜냈습니다. 이번 대회는 그 승리의 축제입니다.” 홍범도, 지청천, 김좌진, 이범석, 이회영. 그분들은 총을 들었고, 우리는 오늘 공을 들었다. 2020년대를 살아가는 시민은 다른 방식으로 독립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신흥무관학교가 세워졌던 6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독립전쟁 원년을 선포하며 봉오동 전투에서 첫 승리를 거둔 6월, 바로 그 상징성을 담아 6월을 ‘경기의 달’로 택했다. 독립정신의 상징적 장소들, 그러나 연이어 거절되다 처음 독립전쟁 기념 축구 경기를 열고자 했던 곳은 국회 운동장이었다. 2024년 12월, 계엄군 헬기가 착륙했던 바로 그 자리, 그 공간에서 “독립정신으로 내란세력과 역사부정세력을 이겨내자”고

김원봉과 함께 대구 의열투쟁답사를 다녀와서

2025년 7월 7일 321

[후원회원마당] 김원봉과 함께 대구 의열투쟁답사를 다녀와서 박영희 마을산책 2025년 6월 6일~7일 김원봉과 함께가 주최하고 민족문제연구소와 조선의열단기념사업회가 후원한 답사단은 전통적인 보수의 심장인 대구로 향했다. 12·3 계엄령과 내란죄로 탄핵당한 윤석열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보수의 원조인 대구로… 처음 대구에 내려갈 때는 대구에 어떤 독립운동가와 의열활동을 하신 분들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고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답사를 통해 대구가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사랑하는 아주 특별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새삼 매우 놀라웠다. 1907년 2월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은 일본에 진 빚을 국민들이 대신 갚기 위해 벌인 범국민적인 모금운동이다. 이 운동은 각계각층의 참여를 이끌어 내어 큰 성황을 이루었지만, 일제의 집요한 방해로 인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끝났다. 국채보상운동의 궁극적 목적은 한국의 국권회복에 있었다. 2·28 민주운동은 1960년 2월 28일, 이승만 정권이 야당 부통령 후보의 대구 선거 유세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대구 시내 고등학생들에게 일요일 등교 지시를 내리자, 이에 반발한 학생들이 전개한 시위 사건입니다. 4월혁명 기간에 발생한 최초의 민주화운동을 소개한 2·28 민주운동기념관에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휴무여서 보지 못했으나 민주운동의 시작인 곳에서 김영범 교수님의 설명을 통해 그 당시 대구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대구의 자랑 이육사 시인의 집터와 기념관을 돌아보고 그가 근무했다고 하는 중외일보 지국을 찾아갔다. 아직도 여전히 건물이 남아있어 얼마나 다행이던지 ….. 사라져 버려 흔적도 없는 독립운동 역사의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2025년 7월 7일 305

[후원회원마당]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연구소에서의 4개월을 마무리하며 김윤아 제천간디학교 고등 3학년 안녕하세요! 올해 2월부터 5월까지 약 4개월 동안 민족문제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인턴으로 활동한 제천간디학교 고등학교 3학년 김윤아입니다. 활동기간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지금, 연구소에서 보낸 넉 달을 돌아보니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흘렀나 싶어 시원섭섭합니다. 저는 충북 제천시 덕산면 산골에 있는 중고등 통합 대안학교인 제천간디학교에 재학 중입니다. ‘간디학교’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듯, 일반학교와는 다소 다른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입시를 위한 교육보다는 인문학과 사회체험, 공동체 교육을 중요히 여기며, 중·고등을 모두 합쳐도 100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규모의 학교입니다. ‘더불어 행복한 사람’을 교육목표로 삼아 선후배와 동기, 교사와 수평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졸업을 앞둔 고등 3학년이 되면 약 3개월 동안 학교의 울타리를 넘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을 내딛습니다. 이 교육과정을 ‘사회체험학습’이라 하는데요, 쉽게 말씀드리자면 무급 인턴십입니다. 학생들은 자신이 꿈꾸는 삶과 유사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어른들을 만나고,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실천하는 단체에서 일하며 ‘나’의 세계를 넓힙니다. 저는 ‘왜 아직도 해결되지 못했을까?’라는 단순한 물음에서 출발해 국가폭력과 과거사 청산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걸 계기로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역사를 공부할 필요성을 느꼈고, 동아리와 소모임을 만들어 친구들과 함께 공부해왔습니다. 활동을 계속하다 보니 자연스레 진로도 비슷한 쪽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사회체험학습을 통해 이 문제를 연구하고 해결하기 위해 활동하시는 분들을 만나보고

전북대 후면으로 쫓겨난 ‘덕진공원지비(덕진운동장건설비)’의 건립 내력

2025년 7월 2일 421

[이 땅에 남아있는 저들의 기념물 17] 전북대 후면으로 쫓겨난 ‘덕진공원지비(덕진운동장건설비)’의 건립 내력 전주 덕진공원의 최초 구상은 이른바 ‘일본황태자 결혼기념사업’이 발단 이순우 특임연구원 『자유신문』 1951년 12월 25일자에는 「3도(道)에 종합대학(綜合大學), 기존 대학을 개편설치, 실업교육(實業敎育)에 치중」이라는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은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문교부에서는 대학 설치에 지역적 균형을 얻기 위하여 명년 4월 새학기부터 경북(慶北), 전남(全南), 전북(全北)의 3도에 국립종합대학을 설치하기로 하였다 한다. 그래서 이번 국회에 제출된 신년도 예산안에 3대학교의 운영경상비로 경북 9억 원, 전남 8억 8천만 원, 전북 2억 4천만 원의 신규예산을 요구하였다. 이 세 국립종합대학은 대구와 광주 또는 전주에 기설된 각 도립 단과대학, 예를 들면 각 의과대학, 사범대학, 농과대학 등을 토대로 하여 사립대학 등을 종합하여 종합대학교로 개편 설치하려는 것으로 경북의 과수(果樹), 전남의 방적(紡績), 전북의 제지공예(製紙工藝) 등 지방특색을 살려 실업교육에 치중케 할 계획이라 한다. 각 종합대학은 다음과 같다. ▲ 경북종합대학교 = 문리과대학, 사범대학, 법정대학, 의과대학, 농과대학 ▲ 전남종합대학교 = 문리과대학, 상과대학, 의과대학, 공과대학, 농과대학 ▲ 전북종합대학교 = 문리과대학, 법과대학, 상과대학, 공과대학, 농과대학 이 가운데 전북대학교는 이리농과대학(공립), 전주명륜대학(사립), 군산대학관(사립)을 통합하는 방식으로 국립종합대학교(1951년 10월 6일 설립인가)가 만들어졌으며, 초기에는 대학본부와 소속대학 등이 각 지역에 흩어져 있었으나 1953년 10월에 처음으로 전주 덕진못에 인접한 국유지 21,185평을 학교 땅으로 편입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그 이후 1962년 9월에 건설부 소관 잡종지 7,733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