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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2025 민족문제연구소 10대 뉴스

2026년 1월 29일 555

2025 민족문제연구소 10대 뉴스 • 내란 저지 ‘빛의 혁명’ 참여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의 불법적 비상계엄 선포 이후, 2025년 4월 4일 탄핵 심판에서 파면될 때까지 123일 동안 윤석열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 각지에서 진행되었다. 우리 연구소 회원들과 상근자들도 내란 저지에 적극 동참했다. 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은 5월 16일부터 긴급전시행동 〈민주주의와 깃발〉전을 진행하였는데, 518명의 시민들이 기증한 시위용품 2,700여 점으로 전시를 구성했다. 이 기획전은 큰 호응을 받았으며, 부산 민주공원과 서울 민주화운동기념관의 요청으로 관련 전시를 지원하는 성과도 거두었다. • 2025년 2월 『재일조선인단체사전 1895~1945』 일본어판 발간 2007년부터 시작한 재일조선인단체사전 편찬사업은 2021년에 한국어판(대한민국 학술원 우수도서로 선정)을 낸 데 이어 2025년 2월 일본어판 출간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도쿄의 유마니쇼보 출판사에서 E-book으로 나온 일본어판은 대형 서점 배급망을 통해 일본 내 주요 대학과 도서관에 보급되어 재일조선인 사회를 탐구하는 기초 학술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한일 공동작업으로 진행된 사전 발간 사업을 통해 시민사회의 긴밀한 교류협력과 연대가 과거사 문제를 풀 열쇠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 부민관 폭파의거 80주년 특별전 〈조문기의 시한 폭탄은 아직 터지지 않았다〉 개막 부민관 폭파의거 80주년을 맞이해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에서 4월 15일 〈조문기의 시한폭탄은 아직 터지지 않았다〉 특별전을 개막했다. 이 특별전은 우리 연구소 제2대 이사장이자 부민관 폭파의거의 주역인 조문기 지사의 삶과 활동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1부 화성에서 태어난 조문기의

식민지역사박물관, 교원연수 〈“작은박물관”에서 배우는 민주주의 역사〉

2026년 1월 29일 322

[초점] 식민지역사박물관, 교원연수 〈“작은박물관”에서 배우는 민주주의 역사〉 식민지역사박물관은 1월 7일부터 9일까지 3일에 걸쳐 전국 초중고 교사를 대상으로 교원연수를 진행했다. 이번 교원연수 〈“작은박물관”에서 배우는 민주주의 역사〉는 현재 박물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작은박물관 스탬프투어’와 연계하여 민주주의와 민주 열사에 대해 알아보고, 실제 수업에서 민주주의 아카이브 및 전시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총 8강에 걸쳐 다루었다. 첫 강의는 ‘청년 노동자 전태일이 꿈꾼 삶과 민주주의’를 주제로 전태일기념관 장소영 선생에게 전태일의 삶과, 전태일 이후의 노동운동의 역사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2강은 이현주 박종철센터장이 6·10민주항쟁과 박종철, 민주주의에 대한 본인의 경험, 박종철 열사와의 개인적 일화를 사진과 함께 들려주었다. 더불어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것이 기억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현대 민주주의가 나아갈 방법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3강은 문익환 통일의 집 박선정 아키비스트와 함께 「월간 문익환」 제작을 중심으로 시민들이 직접 아카이빙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았다. 관련 활동과 시민 아카이브 사례를 통해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과 직접 아카이빙할 수 있는 방법도 배워볼 수 있었다. 4강은 식민지역사박물관 김승은 학예실장이 시민 참여형 전시 만들기와 공공역사를 주제로 강의했다. 긴급전시행동 ‘민주주의와 깃발’ 전시 기획과 전시 방법, 공공역사로서 전시를 평가해보는 시간이었다. 5강은 이한열기념사업회 이은영 사무국장이 ‘보고싶은 얼굴, 청년 이한열을 마주하다’를 주제로 1980년대 민주화운동과 인간 이한열에 대해 강의를 진행 했다. 민주주의를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민주주의를 기리는 기념관은 어떤

‘야스쿠니 한국인 합사 철폐 소송’을 시작하며

2026년 1월 28일 454

[초점]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는 내 아버지를 해방시켜라!” - ‘야스쿠니 한국인 합사 철폐 소송’을 시작하며 2025년 12월 23일, 일본의 침략전쟁에 군인과 군속으로 강제로 동원되어 죽음에 이른 한국인 희생자 10명의 유족이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신사의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야스쿠니 한국인 합사 철폐 소송’(사무국 민족문제연구소,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이 시작되었다. 이 소송은 2001년부터 일본 법정에서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신사의 책임을 묻기 위해 싸워 온 희생자 유족들이 일본 법원이 외면한 인권과 존엄의 회복, 정의의 실현을 위해 한국 법정에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신사를 상대로 처음 제기하는 소송이다. 그동안 이 소송을 한국에서 제소할 수 없었던 것은 한 국가를 다른 국가의 법정에 세울 수 없다는 국가면제(주권면제)라는 국제법의 장벽에 가로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1년과 2023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생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한국 법원은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한국 법원은 일본군 성노예제와 같은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를 인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불법행위가 법정지국인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 발생한 경우, 국가면제를 배제하여야 한다는 법리를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이번 소송의 원고들은 이 판결을 바탕으로 한국 법정에서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의 책임을 묻는 새로운 싸움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2025년 9월 19일 희생자의 손주 세대가 부모 세대의 투쟁을 이어받아 ‘야스쿠니 무단 합사 철폐 3차 소송’을 제소했다. 소송 원고인 희생자 박헌태의 손주 박선엽 씨는 기자회견에서 “할아버지는 원치 않는 전쟁에 끌려가서

경기도 독립운동 사료수집사업 성료

2026년 1월 28일 381

[초점] 경기도 독립운동 사료수집사업 성료 연구소와 민연은 2025년 광복80주년을 맞아, 경기도가 독립운동사의 기억과 계승을 위해 추진한 <경기도 독립운동 사료 수집 사업>을 맡아 진행했다. 6월부터 12월까지 6개월간 진행한 이 사업의 주요 내용은 독립운동가 후손 구술(40시간 이상)과 소장 자료 수집이며, 이를 바탕으로 한 전시회와 후손 초청행사 개최, 구술집 발간과 배포, 3편의 영상 제작이었다. 전체 사업의 기본 바탕은 경기도 출신 독립운동가 후손을 대상으로 한 구술 자료 수집에 있었다. 구술자로 참여하신 분들은 경기도 출신 독립운동가 이석영·이규준 지사의 후손 김창희, 임면수 지사의 후손 임병무, 김연방 지사의 후손 김주용, 신숙 지사의 후손 신현길, 엄항섭 지사의 후손 엄기남·박은혜, 홍가륵 지사의 후손 홍우영, 오희옥 지사의 후손 김흥태, 조문기 지사의 후손 김석화였다. 사업은 먼저 후손과 직접 만나 소통하면서 체계적인 구술 채록과 영상 기록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이 걸어온 삶의 여정을 조명하고 이를 생생한 목소리로 기록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그 결과 독립운동가 자녀 세대의 직접 기억(1∼2대)부터 손자녀 및 증손자녀 세대의 간접 기억(2∼4대)까지 폭넓은 세대의 이야기를 수집할 수 있었다. 특히 대를 이어 전해진 집안의 이야기는 우리 독립운동사의 흐름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었다. 그리고 해방 이후 분단과 전쟁, 친일파 청산 좌절 등의 굴절된 현대사 속에서 후손들이 겪어야 했던, 이념적 대립과 연좌제로 인한 고통과 아픔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러한 가족사의 이면까지 기록하면서 독립운동가의 생애

임헌영 3대 소장 사임, 국립한국문학관 관장으로 취임

2026년 1월 28일 517

[초점] 임헌영 3대 소장 사임, 국립한국문학관 관장으로 취임 2003년 제3대 소장으로 취임하여 20년이 넘게 민족문제연구소를 이끌어온 임헌영 소장이 1월 8일 국립한국문학관 관장에 임명되어 연구소를 떠나게 됐다. 기관장의 겸직 금지라는 정부 방침에 따라 임헌영 소장은 1월 7일자로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직과 재단법인 ‘역사와 책임’ 이사직을 사임했다. 임헌영 소장은 취임 이래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하고 식민지역사박물관을 개관하는 등 민족문제연구소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신임 국립한국문학관 관장 취임식은 15일 은평구 소재 사무국에서 내부 행사로 열렸으며,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이취임식은 2월 28일 오후 3시 용산구 청파동 연구소 인근 순교복자수녀회 대강당에서 열리는 창립 35주년 기념식에서 진행된다. 임헌영 소장은 반독재 투쟁으로 여러 차례 옥고를 치른 민주화운동가이자, 한국문학평론가협회장과 세계한민족작가연합 공동대표 등을 역임하고 15편이 넘는 평론집을 펴낸 문학평론가로 이번 관장 취임은 고향인 문학으로 돌아가는 셈이기도 하다. 국립한국문학관은 전근대와 현대를 아우르는 한국문학의 본산으로 구상되었으며, 현재 건축 중인 상태로 연말 완공될 예정이다. 문학계에서는 임헌영 관장의 역량으로 국립한국문학관이 하루빨리 자리 잡아 큰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신년사] 병오(丙午)년 새해, 순국과 순교의 교훈을 되새깁니다

2026년 1월 28일 315

[신년사] 병오(丙午)년 새해, 순국과 순교의 교훈을 되새깁니다   함세웅 이사장 우리 연구소를 지지하고 후원해 주시는 회원과 가족 여러분 그리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묵묵히 또 기꺼이 헌신하시는 임직원 모든 분들께 복(福)이 가득한 한 해가 되기를 바라며 기도합니다. 또한 마음을 모아, 연구소 초석을 깔아주신 임종국 선생님, 오래도록 우리 사회공동체의 바른 역사를 만들도록 연구소를 지켜주셨던 역대 이사장 이돈명 변호사님, 조문기 애국지사님, 김병상 신부님 등 앞서가신 선배들과 동지들을 마음에 모시고 추모하며, 모든 회원들께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드립니다. 복(福)은 제물을 가득 담아 하늘에 기도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 합니다. 복은 그저 내게 오는 것이 아니라 애써 노력하고 정성을 다할 때 하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병오년 새해는 윤석열과 그 일당이 저지른 내란을 “빛의 혁명”으로 물리치고 한층 더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룩해 우리 사회공동체가 확보해야 할 “복”을 확인하는 해임을 확신합니다. 2024년 12월 3일 밤은 어둠과 빛이 공존한 우리 사회 역사 현실의 자화상입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총칼로 위협하며 조선을 침탈하고 대한제국을 무력으로 점령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점령 침략군을 몰아내기 위해 길게는 51년, 짧게는 36년 동안 국내외에서 항거했습니다. 독립항쟁입니다. 일제와 싸운 선열 모두는 조선의 백성, 대한국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민의의 전당 국회에서, 언론에서 스스로 일본 제국의 신민이었다고 궤변을 늘어놓는 정신 나간 사람들도 우리 안에 있습니다. 부끄럽고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런데 “윤석열”은 그런 자들을 고르고 골라 고위

민족사랑 2026년 1월호

2026년 1월 28일 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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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군총사령부성립전례배관기 (光復軍總司令部成立典禮拜觀記) 1~5

2026년 1월 16일 545

이 글은 한국독립당 기관지 『한민』 주필 엄항섭 선생이 한국 광복 성립 전례를 뵈옵고 그 진상을 가져 임시정부 봉대에 성충이 가작한 미국, 멕시코, 쿠바 재류 동포에게 뵈어주기 위하여 왜적 비행기의 작격을 피하는 방공호에서 전례 성황을 기록하여 비행 우편으로 본보에 투고하였으므로 본보는 기쁜 마음으로 이를 받아 게재하여 일반동포의 일람을 공급한다. — 신한민보 편집자 쌩— 쌩— 시계 소리에 나는 놀라 깨었다가 한숨에 방문을 열고 보니 컴컴한 하늘에는 별만 반짝거리고 고요한 세상에는 숨소리조차 잠잠해졌다. 이것이 내일의 공작을 위하여 오늘의 피곤한 몸을 쉬는 우주만물의 일상 행사인가 한다. 다시 방안으로 들어와 전등 아래 몸시계를 비춰보니 바로 3시였다. 오늘 7시에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를 거행하게 되는 것이다. 나도 다른 동지들과 마찬가지로 이 영광의 전례를 준비하기 위하여 연일 바빴다. 그런 까닭에 몸도 상당히 곤하였지만 워낙 잠을 설치고 겸하여 신경이 흥분되었던 관계로 밖에서 울리는 자명종 소리에도 놀라 깬 것이다. 10리 밖에 있는 식장에 가서 외빈을 초대할 책임을 맡은 나는 남보다 먼저 대령할 의무가 있는 관계로 비록 시간이 좀 이르기는 하지만 마음놓고 다시 더 잘 수는 없었다. 나는 소제를 마친 후 옷을 단정히 입고서 깊이 잠든 중경의 밤거리를 밟고 식장을 향하여 나갔다. 이 밤에 이 거리로 걸어 나가는 것은 나 하나뿐이려니 하였더니 수십 리 밖 향촌의 농부들은 벌써 채소를 메고

1907년, 대한제국 위기 극복에 동참한 민초들

2026년 1월 7일 570

[후원회원마당] 1907년, 대한제국 위기 극복에 동참한 민초들 – 부천지역의 국채보상운동 박종선 부천지역위원장, 시민기자 1997년 11월 우리 정부는 IMF(국제통화기금)에 긴급구제금융을 신청하였다. 김영삼 정부의 무능한 금융정책으로 많은 기업들은 무분별하게 외국 자본을 차입하여 과잉투자를 하였으며,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경제에 불안을 느낀 외국자본들은 급격히 빠져나갔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는 바닥을 드러냈으며 국가부도사태를 맞이하게 되었다. 많은 기업들은 파산하였으며 노동자들은 대량실직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위기를 겪게 된 것이다. 이러한 위기 상황을 국민들은 보고만 있지 않았다. 우리 선조들은 예부터 나라에 위기가 찾아오면 자발적으로 나서서 위기를 극복하였다. 대표적인 예가 임진왜란 당시 전국적으로 창의했던 의병과 조선후기에 창의했던 의병이 바로 그것이다. IMF를 극복하기 위해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금모으기운동’을 전개하였다. 부족한 외화를 보충하기 위해 금모으기운동을 한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4년 만에 IMF를 졸업할 수 있었다. 이러한 금모으기운동이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에도 있었다. 대한제국시기 1907년 국채보상운동을 전국적으로 진행한 것이다. 일제는 1894년 청일전쟁과 1904년 러일전쟁을 승리하여 한반도로부터 강대국들을 몰아냈으며 동시에 대한제국에 대한 침략을 가속화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을 맺어 외교권을 박탈하였으며, 1907년에는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시키고 고종황제를 강제퇴위시켰다. 또한 대한제국에 과도한 차관을 도입하게 되었다. 총 1300만원에 이르는 거대한 돈으로 이 액수는 대한제국의 1년치 예산과 맞먹는 것이었다. 국력이 많이 약해진 대한제국으로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금액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우리 선조들은 보고만 있지 않았다. 1907년 대구에서 김광제·서상돈 등이

시대의 마지막 불꽃, 강태선 애국지사를 만나다

2026년 1월 7일 596

[후원회원마당] 시대의 마지막 불꽃, 강태선 애국지사를 만나다 한요나 후원회원, 시민기자 미완의 독립, 완수는 후대의 몫, 세대를 잇는 연대 계승의 과제 비가 유달리 많이 내린 지난가을, 제주시 자택에서 강태선 지사를 만났다. 그는 제주도에 한 명 남은 생존 독립운동가다. 대한민국 전체에서 살아계신 독립운동가는 다섯 분뿐이다. 101세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시대의 마지막 불꽃’이라 불리는 그의 눈빛은 궂은 비가 내리던 그날의 날씨처럼 서늘하면서도 형형했다. 강 지사를 찾은 이유는 최근 내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친일 청산’ 문제가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16세에 독립운동에 투신해 일제의 고문과 옥고를 치르며 광복을 맞이한 산증인에게, 우리는 무엇을 계승해야 하는지 물었다. 그의 증언은 단순히 과거 회상을 넘어, 오늘 우리가 짊어져야 할 정신적 유산과 미래의 과제를 엄중히 확인시킨다. 16살의 결단, “투쟁은 그저 일상이었다” 그는 일제 강점기인 1924년 태어났다. 우리 역사 대신 일본 역사를 배우며 식민지의 청소년으로 성장한 그가 모든 것을 걸고 독립운동에 투신했을 때 나이는 고작 16세였다. 당시의 긴박했던 활동에 대한 물음에 그는 “다 비슷비슷했다”며 덤덤하게 답했다. 그 한마디에는, 생사를 넘나드는 긴장이 특정인의 영웅담이 아닌, 그 시대를 살아낸 모든 동지들의 ‘일상’이었다는 무게감이 실려 있다. 자신만 힘든 것이 아니었다는, 시대를 함께 견뎌낸 이들과의 묵묵한 연대가 느껴졌다. 모든 활동은 지하 점조직으로 이루어졌다. 낮에는 공장 노동자로 위장하고, 밤에는 야학에서 동지들을 규합하며 비밀리에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