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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선농단(先農壇) 자리의 ‘청량대’ 비석은 경성여자사범학교 시절의 유산

2026년 3월 6일 1011

[이 땅에 남아있는 저들의 기념물 21] 선농단(先農壇) 자리의 ‘청량대’ 비석은 경성여자사범학교 시절의 유산 ‘청량대(淸凉臺)’라는 명칭은 『채근담(菜根譚)』에서 따온 표현 이순우 특임연구원 서울 지하철 1호선 ‘제기역(祭基驛)’에서 내려 1번 출구 쪽으로 나오면 곧장 선농단역사공원(선농단역사문화관)과 서울종암초등학교 방향으로 올라가는 골목길(왕산로19길)이 길게 이어진다. 이곳으로 접어드는 초입에는 ‘느티나무어린이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작은 숲을 이룬 공간이 나타나는데, 그곳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새겨진 표지석 하나를 만날 수 있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터(1954년 12월~1975년 2월) 여기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이 6천여 명이 넘는 교육계의 동량을 길러내던 곳이다. 이제 지난날의 웅지를 기리고 겨레와 함께 교육의 미래를 열고자 하는 뜻을 담아 기념표석을 세운다. 2006년 10월 25일.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서울대학교 사범대학동창회. 여기에 표시된 내용처럼 이 일대는 서울대학교가 새로 조성한 관악캠퍼스로 1975년에 통합이전을 완료한 때까지 ─ 경성여자사범학교와 경성여자사범대학 시절까지 합치면 ─ 35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도록 사범대학(1968년 12월에는 ‘가정대학’ 분리신설)이 터를 잡고 있던 구역이었다. 그에 앞서 일제강점기에는 경기도원잠종제조소(京畿道原蠶種製造所, 1916년 12월 이전), 경기도농사시험장(京畿道農事試驗場, 1917년 4월 개설), 경기도잠업취체소(京畿道蠶業取締所, 1929년 9월 이전) 등의 조선총독부 산하 농잠실무기관이 순차적으로 들어섰다가 1938년 3월 1일에 이르러 일괄하여 경기도 부천군 소사면 벌응절리의 신축청사로 옮겨갔고, 다시 그 자리는 1939년 9월 이후 경성여자사범학교(京城女子師範學校)의 차지가 되었다. 그리고 한참의 세월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시대 이래로 이 일대는 선농단(先農壇, 제기동 274번지)과 아울러 그 아래쪽으로 동적전(東籍田, 용두동 138번지)이라는 너른 벌판이 펼쳐 있던 곳이었다. 이곳은 역대

경기도 독립운동 참여자 및 유공자 발굴 연구 보고

2026년 3월 5일 525

경기도 독립운동 참여자 및 유공자 발굴 연구 보고 임무성 상임교육위원 1.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이하 사업회)는 2025년 5월부터 2026년 1월까지 경기도 용역 사업 「경기도 독립운동 참여자 및 유공자 발굴 연구」를 진행했다. 민족문제연구소 후원회원인 김도훈 전 교원대교수를 책임연구원으로 관련분야 전공자 10여 명으로 팀을 꾸려 3‧1운동, 국내항일, 해외항일 부문으로 나눠 연구를 진행하였고 연구소에서는 박광종, 안정희, 임무성 연구원이 참여하였다. 사업회는 일제의 국권 침탈 전후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본적 또는 주소가 경기도 출신인 독립운동 참여자를 발굴하고 정리하였다. 연구원들은 국내외 3,000여 건의 자료를 확보하여 사료 목록으로 정리하고 분석 대상을 분류한 후 인명부, 판결문 등의 행형기록 분석과 추가로 미전산 자료와 국외 자료까지 분석하여 경기도 출신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하고 이중에 648명의 공적조서를 작성하여 국가보훈부에 포상신청을 하였다. 2.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착수‧중간‧결과 보고회를 경기도청에서 가졌고 여기서 나온 의견들을 연구에 적극 반영하여 더욱 세밀하고 다양한 형태로 독립운동가 발굴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또한 대학교의 전문연구자를 초빙하여 2차례의 자문회의를 하였다. 자문위원들은 한결같이 사업회의 이번 연구는 조사 대상 자료 범위가 광범위하고 체계적이고 타당하며, 지역민의 애향심과 자부심을 높일 수 있는 것으로 광역지자체 사업으로는 획기적인 성과와 의의를 둘 수 있다고 평가하였다. 따라서 연구 결과는 경기도 내 각 지역의 전시자료 및 콘텐츠 기초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였다. 또한 독립운동 자료의 현장 확인과 추가 발굴을 위해 도내 31 개

[취임사] 존경하는 회원 여러분, 그리고 민족문제연구소의 모든 구성원 여러분

2026년 3월 5일 538

[취임사] 존경하는 회원 여러분, 그리고 민족문제연구소의 모든 구성원 여러분 김민철 신임 소장 오늘 저는 민족문제연구소 제4대 소장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연구소와 첫 인연을 맺은 것이 1990년 겨울이니 벌써 35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책임연구원, 연구실장, 연구위원으로서 미력이나마 보탤 수 있었던 저로서는 이 자리가 영광이자 무거운 짐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동료 후배들이 저를 놀리는 말로 ‘무책임연구원’이라 부르곤 합니다. 주로 일은 벌여놓고 뒤처리는 떠맡기는 때문인지 일종의 경고성 놀림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가끔 쓸모가 있을 때면 ‘무책임’의 ‘무’에 ‘한’을 붙여 ‘무한책임’으로 슬쩍 바꿔 놓기도 합니다. 이제 그게 현실이 된 것 같아 몸과 마음이 더더욱 무거워집니다.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권력도, 자본도 아닌 시민의 자발적 결의와 연대가 모여 연구와 실천을 해 온 민족문제연구소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독특한 단체입니다. 시민이 스스로 기억의 주권자가 되어 만든 독특한 지성과 실천의 공간이자 의지의 집합체입니다. 35년 동안 연구소를 지탱해 온 회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35년 전 연구소가 출범했을 때 한국 사회는 군사독재의 해체 이후 새로운 민주 질서를 모색하던 전환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과거를 바로 세우는 일은 곧 민주주의의 토대를 다지는 일이었으며, 친일 문제 제기와 사전 편찬은 보수적인 지배 엘리트에게 지난날의 정치적 과오를 세상에 드러내는 기소장이자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어떤 가치를 가져야 하는가를 묻는 선언이었습니다. 친일파에게 법적·정치적·역사적 책임을 묻는 일은 특정 인물을 비판하는

민족사랑 2026년 2월호

2026년 2월 26일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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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자가 국가유공자 둔갑 웬말?” 분노의 ‘4·3버스’

2026년 1월 30일 409

[후원회원마당] “학살자가 국가유공자 둔갑 웬말?” 분노의 ‘4·3버스’ 한요나 후원회원, 시민기자 2026년 1월 14일, 제주에서 육지로 향하는 ‘육지로 가는 4·3 버스’가 운행을 시작했다. 참가한 100여 명의 시민은 왕복 1000km에 달하는 경로를 따라 역사정의를 위한 대장정에 나섰다. 이번 답사는 제주 4·3 당시 진압작전을 주도했던 박진경 대령이 지난해 11월, 국가보훈부에 의해 ‘국가유공자’로 지정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추진되었다. 소리소문 없이 진행된 이번 지정은 제주 4·3의 역사적 성격과 제주도민들이 겪은 상처를 다시금 공론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실장의 주도로 결성된 답사단에는 제주 4·3 유관 단체를 비롯해 역사학자, 4·3 유족회,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참여했다. 여기에 국가보안법 피해자와 세월호 활동가 등 다양한 시민단체와 문화예술인 100여 명이 가세하며, 여정은 왜곡된 성역으로 둔갑한 국가폭력 가해자들의 흔적을 추적하는 역사연대의 장으로 전개되었다. 뒤틀린 과거사 청산: 학살 주범이 유공자로 부활한 모순 이번 답사의 출발점은 ‘역사정의’의 회복에 있다. 박진경 대령은 1948년 제주 4·3 당시 미군정에 의해 발탁되어 진압작전을 총지휘한 인물이다. 그는 부임 직후 “우리나라 독립을 방해하는 제주도 폭동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30만을 희생시켜도 무방하다”는 발언을 남겼다. 이는 단순한 수사적 위협에 그치지 않고 이후 전개된 혹독한 양민 학살 작전의 지침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박진경의 부임은 4·3의 전개 양상을 ‘치안 유지’에서 ‘양민 학살 작전’으로 전환시킨 결정적 지점이었다. 그는 부임 한 달 열흘 만에 약 6천여 명의 도민을 무차별

진도 의신공립보통학교 국기게양탑 건립기

2026년 1월 30일 537

[식민지 자료관 6] 진도 의신공립보통학교 국기게양탑 건립기 이순우 특임연구원 축제일을 당하여 축의를 표하기 위하여 국기를 게양함은 신민 된 자의 본분이라. 그러하지마는 올봄에 소요가 있은 이후로부터 우리 조선사람 중 회사 혹은 은행을 제하고는 도무지 국기를 게양하지 아니하였도다. 그 원인이야 여러 가지이겠지마는 생각건대 이는 외부의 협박으로 말미암음이 가장 많도다. 이제는 소요도 진정되고 불령한 자들의 자취도 점점 없어져 가며 또는 저자들의 빙자하는 강화회의도 끝났도다. 그러하지마는 상금껏 축제일에 국기를 달지 아니하는 것은 신민 된 본분에 위배되었으며 동시에 국가의 큰 불상사일지라. 천장의 가절이 박두하였는 바 식자의 의견을 들을지어다. (이하 개별 의견 있음). 이것은 거족적인 삼일만세시위가 있던 바로 그해 가을, 『매일신보』 1919년 10월 30일자에 수록된 「국기게양문제(國旗揭揚問題), 천장가절이 목전에 박두해, 식자의 의견을 들을지어다」 제하의 기사 첫머리에 나오는 내용이다. 여기에서 보듯이 이 당시에는 일장기에 대한 거부감이 확연히 강했던 탓인지 ─ 식민통치자들로서야 답답하기 이를 데가 없는 노릇이었을 테지만 ─ “조선사람들이 도무지 국기(일장기)를 게양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만주사변(滿洲事變, 1931년 9월 18일)의 국면이 되자 중대한 시국변화(時局變化)의 전개를 빌미 삼아 즉각적으로 국기 관념의 중요성을 고취하는 동시에 이를 의무 게양하고 대대적으로 보급하는 정책이 전면에 등장하기에 이른다. 이 점에서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1932년 1월 22일자로 이뤄진 정무총감의 통첩(通牒) 「국기게양방 여행에 관한 건(國旗揭揚方勵行ニ關スル件)」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조선에 있어서는 종래

경성고학당 출신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의 활동

2026년 1월 29일 1181

[연구소 글방 24] 경성고학당 출신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의 활동 박광종 특임연구원 1. 경성고학당의 8년간 고투(苦鬪) 고학당의 설립은 이준열의 자발적인 교육운동에서 비롯되었다. 공업전문학교의 조선인 자치조직인 공우회(工友會) 회장이었던 이준열은 3·1만세운동에 주도적으로 참가했고, 그해 공업전문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공전(工專) 동창생 최의창을 만나 대중적 교육사업에 의기투합했고 지방 출장 중에 우연히 대한광복회 박상진 열사의 아들 박응수한테서 당시 3만원 가치의 산야를 기증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학비를 전액 면제하는 고학당(苦學堂) 설립안을 구체화했다. 최근 신문을 의거하건대 고학생 구제방법에 대하여 박응수, 이준열, 최의창 등 제씨의 고심한 결과로 고학생을 수용하기 위하여 고학당을 설립하려고 획책중인 바 그 학당에 입학하는 학생은 중등 정도의 교육을 5년간에 완전히 졸업하도록 교수할 터이라 한다(『조선일보』 1923.2.23). 고학당은 무산자을 위한 중등교육기관을 표방했고 이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자 하는 헌신적인 교육자들의 자발적 지원이 있었기에 각 교과별로 적정한 교사진를 확보할 수 있었다. 교사들은 과거 경력에 따라 ① 경성공업전문학교 동창 ② 현직 교사들 및 교육사업가 ③ 해외 유학생 출신으로 분류된다. 설립 초기에는 공업전문학교 동창인 최의창, 김용현, 이대우, 최성옥이 교사진에 참여했고(『매일신보』 1923.4.6), 이후 다른 학교에 재직하고 있던 중견 교사와 교육사업가들이 결합하였다. 1923년 5월 개교 당시 교사진은 다음과 같다. 배재고보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권진규가 고학당에 출강하였으며, 박형남이 한문 역사 과목을 담당하고, 타학교 교원이었던 조종환이 수학을, 남상목이 영어, 최성옥이 체조, 그리고 설립자 이준열은 교장을 역임하면서 수신 과목을

2025 민족문제연구소 10대 뉴스

2026년 1월 29일 579

2025 민족문제연구소 10대 뉴스 • 내란 저지 ‘빛의 혁명’ 참여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의 불법적 비상계엄 선포 이후, 2025년 4월 4일 탄핵 심판에서 파면될 때까지 123일 동안 윤석열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 각지에서 진행되었다. 우리 연구소 회원들과 상근자들도 내란 저지에 적극 동참했다. 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은 5월 16일부터 긴급전시행동 〈민주주의와 깃발〉전을 진행하였는데, 518명의 시민들이 기증한 시위용품 2,700여 점으로 전시를 구성했다. 이 기획전은 큰 호응을 받았으며, 부산 민주공원과 서울 민주화운동기념관의 요청으로 관련 전시를 지원하는 성과도 거두었다. • 2025년 2월 『재일조선인단체사전 1895~1945』 일본어판 발간 2007년부터 시작한 재일조선인단체사전 편찬사업은 2021년에 한국어판(대한민국 학술원 우수도서로 선정)을 낸 데 이어 2025년 2월 일본어판 출간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도쿄의 유마니쇼보 출판사에서 E-book으로 나온 일본어판은 대형 서점 배급망을 통해 일본 내 주요 대학과 도서관에 보급되어 재일조선인 사회를 탐구하는 기초 학술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한일 공동작업으로 진행된 사전 발간 사업을 통해 시민사회의 긴밀한 교류협력과 연대가 과거사 문제를 풀 열쇠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 부민관 폭파의거 80주년 특별전 〈조문기의 시한 폭탄은 아직 터지지 않았다〉 개막 부민관 폭파의거 80주년을 맞이해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에서 4월 15일 〈조문기의 시한폭탄은 아직 터지지 않았다〉 특별전을 개막했다. 이 특별전은 우리 연구소 제2대 이사장이자 부민관 폭파의거의 주역인 조문기 지사의 삶과 활동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1부 화성에서 태어난 조문기의

식민지역사박물관, 교원연수 〈“작은박물관”에서 배우는 민주주의 역사〉

2026년 1월 29일 343

[초점] 식민지역사박물관, 교원연수 〈“작은박물관”에서 배우는 민주주의 역사〉 식민지역사박물관은 1월 7일부터 9일까지 3일에 걸쳐 전국 초중고 교사를 대상으로 교원연수를 진행했다. 이번 교원연수 〈“작은박물관”에서 배우는 민주주의 역사〉는 현재 박물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작은박물관 스탬프투어’와 연계하여 민주주의와 민주 열사에 대해 알아보고, 실제 수업에서 민주주의 아카이브 및 전시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총 8강에 걸쳐 다루었다. 첫 강의는 ‘청년 노동자 전태일이 꿈꾼 삶과 민주주의’를 주제로 전태일기념관 장소영 선생에게 전태일의 삶과, 전태일 이후의 노동운동의 역사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2강은 이현주 박종철센터장이 6·10민주항쟁과 박종철, 민주주의에 대한 본인의 경험, 박종철 열사와의 개인적 일화를 사진과 함께 들려주었다. 더불어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것이 기억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현대 민주주의가 나아갈 방법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3강은 문익환 통일의 집 박선정 아키비스트와 함께 「월간 문익환」 제작을 중심으로 시민들이 직접 아카이빙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았다. 관련 활동과 시민 아카이브 사례를 통해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과 직접 아카이빙할 수 있는 방법도 배워볼 수 있었다. 4강은 식민지역사박물관 김승은 학예실장이 시민 참여형 전시 만들기와 공공역사를 주제로 강의했다. 긴급전시행동 ‘민주주의와 깃발’ 전시 기획과 전시 방법, 공공역사로서 전시를 평가해보는 시간이었다. 5강은 이한열기념사업회 이은영 사무국장이 ‘보고싶은 얼굴, 청년 이한열을 마주하다’를 주제로 1980년대 민주화운동과 인간 이한열에 대해 강의를 진행 했다. 민주주의를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민주주의를 기리는 기념관은 어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