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족사랑
길을 만든 사람들, 이어가는 발걸음
[후원회원마당] 길을 만든 사람들, 이어가는 발걸음 김현정 후원회원 옥수수밭을 헤치고 나아가다 “여러분, 다 왔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직진하시면 됩니다!” 방학진 실장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크게 들려왔다. “앞에 얼룩소가 있습니다. 다 왔습니다.” 우리는 어느 공장 외벽을 따라 수풀을 헤치며 나아갔다. 곧이어 옥수수밭이 시작되는 곳에서 1시 방향으로 한참을 더 걸었다. 앞사람을 놓칠세라 부지런히 걸으면서 두 손으로 연신 눈앞의 이파리를 꺾어냈다. 밭고랑을 디딜 때마다 진흙이 들러붙어 발이 몹시 무거웠다. 팔에 상처가 나기는 했지만 모두 무사히 신흥무관학교 고산자 터에 도착했다. 신흥무관학교, 길을 만들다 1911년 문을 연 신흥무관학교는 3•1운동 이후 찾아오는 청년들이 크게 늘었다. 본교였던 합니하를 분교로 하고 새로 교사를 지어 확장한 곳이 바로 고산자다. 학생이 700여 명 정도로 가장 번성한 시기였다. 생도들은 역사와 지리를 배우고 군사 훈련을 받으며 독립군의 주역으로 거듭났다. 10년 동안 약 3천 5백 명이 졸업했고 해방을 맞기까지 우리나라 독립전쟁 역사의 굵은 줄기가 되었다. 고산자 터에서 제를 올리다 잎이 무성하고 풀이 우거진 여름은 다른 계절과 다르게 터를 찾기가 어렵다. 키 넘게 자란 옥수수가 특정 지형지물을 가리기 때문이다. 홀로 선 나무와 몇 그루 모여 자란 나무, 이 두 곳을 기준삼아 고산자 터를 조망할 자리를 잡았다. 햇볕을 받은 옥수수-만주 어디에 가도 끊임없이 보이는 옥수수, 옥수수밭 위로 집 한 채와 기지국 송수신탑이 올려다보였다. 우리가 선 자리를
누에의 혼령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전형적인 일본식 풍습
[이 땅에 남아있는 저들의 기념물 1] 누에의 혼령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전형적인 일본식 풍습 한국잠사박물관(청주)에 남아 있는 ‘충북 잠령탑(1934년)’의 조성 연혁 이순우 특임연구원 일제강점기를 통틀어 이 땅에서 벌어진 참으로 괴기스럽고 별난 일들이 한둘이 아닐 테지만, 그 가운데 몇 가지를 손꼽아보면 우선은 온갖 동물(動物)의 혼령(魂靈)에다 제사를 지내거나 이것들을 위한 비석 또는 위령탑을 세우는 장면들이 퍼뜩 떠오른다. 가령, 도수장(屠獸場, 도살장)에서 죽은 짐승들의 수혼비(獸魂碑)를 조성하여 위령제를 올린다거나 총독부의원(總督府醫院) 구내에 실험동물공양탑(實驗動物供養塔)을 설치한다거나 군용모피(개가죽)의 공출에 희생된 개들을 위한 견혼비(犬魂碑)를 만든다거나 일본군 기병대와 포병대에 속한 군용마를 위한 마혼비(馬魂碑)를 세우는 따위의 일들이 바로 그것이다. 신문자료를 뒤져보면, 심지어 부산요리조합 같은 곳에서는 식재료로 사람들이 먹어 치운 하돈(河豚, 복어)의 혼을 달래고자 법요(法要)를 거행했다고도 하고, 조선조어연맹(朝鮮釣魚聯盟)에서는 낚싯줄에 걸려 최후를 마친 무수한 부어(鮒魚, 붕어)를 위한 공양제 행사를 올렸다고 하는 흔적도 눈에 띈다. 식민지 조선에서 벌어진 일은 아니지만, 일본 오사카에서 효능 좋은 해충박멸제 ‘이마즈 승취분(イマヅ 蠅取粉, 파리약)’에 의해 몰살의 위기에 처한 파리떼를 위한답시고 커다란 승(蠅, 파리) 모형을 걸어두고 죽은 해충들의 명복을 빌며 조문(弔文)을 낭독하고 향을 피워 올리는 공양회가 벌어진 소식이 전해지는 등 우스꽝스럽다 못해 헛웃음이 나오는 장면이 곧잘 연출되곤 하였다. 그러고 보면 축령(畜靈)이니 축혼(畜魂)이니 수령(獸靈)이니 수혼(獸魂)이니 어령(魚靈)이니 견혼(犬魂)이니 마혼(馬魂)이니 우혼(牛魂)이니 하여 ‘무슨 혼(〇魂)’이니 ‘무슨 령(〇靈)’이니 하는 따위의 용어들이 속출하고, 덩달아 ‘무슨 령제(〇靈祭)’, ‘무슨
‘조선의 잔다르크’ 김명시 지사 관련 신문자료
[자료소개] ‘조선의 잔다르크’ 김명시 지사 관련 신문자료 이번 호에 소개할 자료는 ‘조선의 잔다르크’ ‘백마 탄 여장군’으로 칭송받은 김명시(金明時. 1907~1949) 지사를 다룬 신문자료이다. 김명시 지사는 경남 마산 출신으로 1933년 조선공산당 재건운동 혐의로 징역 6년을 언도받아 만기 출옥했다. 이후 만주로 건너가 화북조선독립연맹에 참가하고 조선의용군과 함께 일본군에 대항해 싸웠다. 8·15 해방 후 서울로 귀국하여 사회주의 입장에서 통일정부 건립 활동에 힘썼다. 김명시 지사는 뚜렷한 항일운동 공적에 비해 사회주의 계열이란 이유로 그에 대한 연구가 드물었고 일반인에게도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18년 말 열린사회희망연대(김영만 대표, 창원 소재)는 김명시 지사의 항일운동을 널리 알리기 위해 흉상 건립과 표지판 제작을 추진했으며 2019년부터 독립운동가 포상 신청을 하였다. 첫 심의에서 불가 판정을 받았으나 ‘북로당 정치위원’이란 경력에 의구심을 제기하고 이에 대한 입증자료를 추가해 2021년 다시 서훈 신청을 하였다. 그 결과 정부는 2022년 8월 김명시 지사께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사후 73년 만에 이루어져 만시지탄(晩時之歎)은 있으나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 하겠다. 다음에서 소개할 자료는 ①조선공산당 재건사건 때의 기사(매일신보 1932.8.29.) ②1945년 12월 중순 귀국 직후 가진 기자회견 기사(동아일보 1945.12.23. 국민보 1946.7.17, 7.24) ③국군준비대 전국대회에서의 축사(자유신문 1945.12.27) ④1946년 11월 인터뷰 기사(독립신보 1946.11.21.)이다. 김명시 지사의 생애에 대해서는 『민족사랑』 2017년 2월호에 실린 「비운의 여장군 김명시」를 참조 바람 ― 편집자 주 공산대학 출신으로 반제동맹 부인부장, 밀사로 들어왔다 피체 김명시의
22세 청년이 꿈꾼 조선혁명
[연구소 글방 8] 22세 청년이 꿈꾼 조선혁명 조한성 선임연구원 1934년 11월 14일 한 젊은이가 온양에 있는 자택에서 체포됐다. 그날 밤 그는 수원경찰서로 끌려갔다가 곧바로 경기도 경찰부로 호송됐다. 사건을 보도한 기자는 경찰이 내용을 공개하지 않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격문사건 아니면 상해 방면에서 중대 사명을 가지고 비밀리에 들어왔다가 검거된 것 같다며, 사건의 확대를 예상했다. 기자의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이 사건은 독립운동 관계 사건이었다. 그것도 의열단이 중국 난징에서 비밀요원들을 교육시켜 조선과 만주국에 수십 명을 밀파했다고 하여 조선을 떠들썩하게 했던 일명 ‘남경군관학교사건’ 가운데 하나였다. 이날 체포된 청년은 22세 홍가륵이었다. 심문 투쟁 “나는 조선독립운동을 목적으로 중국 난징에서 의열단에 가입했고,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이하는 조선혁명간부학교로 약칭)를 졸업한 후, 단의 사명을 띠고 조선에 들어왔소.” 체포된 날 밤 시작된 경찰 조사에서 피의 사실을 묻는 경찰의 첫 번째 질문에 홍가륵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는 의열단에 가입한 사실도, 의열단이 난징에 세운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졸업한 사실도, 그리고 의열단의 사명을 띠고 조선에 들어온 사실도 모두 순순히 인정했다. 피의 사실이 가볍지 않은 만큼, 혐의를 부인할 법도 한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첫 질문과 첫 진술 사이에 있었을 엄청난 고문과 구타이다. 그렇다. 일제의 경찰은 이쪽으로 너무 유능했다. 그들은 치사사건도 별로 겁내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 경찰의 고문과 구타로 숨진 조선인들이
유엔 인권이사회에 강제동원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다
[현지 활동 보고] 유엔 인권이사회에 강제동원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다 ― 2023년 10월 20일 유엔인권이사회 참가기 김영환 기획실장 1 제54차 유엔인권이사회(2023년 9월 11일~10월 13일, 스위스 제네바 유엔본부)에서 파비안 살비올리(Fabian Salvioli) 유엔 진실, 정의, 배상 및 재발방지 증진에 관한 특별보고관(Special Rapporteur on the promotion of truth, justice, reparation and guarantees of non-recurrence, 아래‘진실정의 특보’)은 한국의 과거청산에 대한 공식 보고서를 발표했다. 유엔 진실정의 특보는 2022년 6월 8일부터 14일까지 대한민국을 공식 방문하여 외교부, 법무부, 행정안전부, 여성가족부, 국방부, 교육부, 경찰청, 국가기록원, 국가인권위원회, 진실화해위원회,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위원회,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위원회, 국회의원 및 사법부 관계자들과 면담했다. 또한, 국가폭력 피해자와 그 가족, 시민사회단체 대표, 인권활동가, 연구자, 전문가 등을 만나 국가폭력에 의한 한국 사회 인권침해 실태를 확인하고, 국제인권법에 비추어 피해자들의 진실, 정의, 배상 및 재발방지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한국 정부의 이행조치를 조사했다. 이번에 유엔인권이사회에서 발표된 진실정의 특보의 보고서는 한국의 과거청산에 관한 유엔의 첫 번째 공식 보고서라는 점에서 대단히 큰 의미가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022년 진실정의 특보의 한국 공식방문 당시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과 함께 진실정의 특보를 면담하여 2018년 강제동원 대법원판결의 이행, 야스쿠니무단합사문제 등 강제동원 문제의 해결을 위한 활동을 소개하고 이 문제의 해결을 호소했으며, 관련 시민단체와 함께 발간한 ‘한국의 과거사 청산 시민사회 보고서’에서 강제동원 부분을 작성하여 진실정의 특보에게 제출했다. 2
김상진 열사의 뜻을 새기며 생명운동에 나서다
[인터뷰] 김상진 열사의 뜻을 새기며 생명운동에 나서다 -강석찬 후원회원(화성한과 대표) 방학진 기획실장 명절이면 어른들에게 보내드리는 선물 중 고급 한과 세트가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은 소비 경향이 변하여 다양한 건강식품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도 묵묵히 우리 한과를 만들며 생명운동을 실천하는 ㈜화성한과 대표인 강석찬 후원회원을 만나 보았다. 화성한과의 소재지는 이름대로 화성시 양감면에 있다. 대목인 설과 추석 명절은 일손이 부족해 밀려드는 주문을 채우기 어렵다고 한다. “1985년 말에 결혼하고 농촌에 농사를 지으러 들어와서 한살림협동조합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친환경이나 유기재배 같은 인증이 없던 시기에 우리 땅을 살려 좋은 먹거리를 생산하고 건강한 식재료의 생산과 소비를 통해 생명운동을 실천하려는 움직임이 이제 막 움튼 시기라 쌀을 친환경으로 경작해도 수요가 따라주지 못하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해선 식품 가공이 필요하였고 그중에서도 우리 농업의 근간인 쌀을 이용한 가공제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가공제품의 대부분은 정크푸드로 지탄을 받고 있지만 우리 전통식품은 원료 자체의 영양과 맛을 화학첨가제에 의존치 않고 살릴 수 있었기에 한과와 미숫가루, 떡과 조청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한살림 외에도 많은 소비자협동조합이 있지만 40년 전에 그러한 생각을 가진 데에는 어떤 동기가 있었을까. “시골생활을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서울내기로 1976년 서울대 농과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입학 후 비로소 노동의 귀중함과 우리 농업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또 야학활동을 통해 인간에 대한 배려를 조금은 배울 수
<한일 과거청산 운동의 기억과 전망> 국제회의 개최
[초점] <한일 과거청산 운동의 기억과 전망> 국제회의 개최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보추협)가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한지 20년이 되었다.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들이 중심이 되어 2001년 2월 23일 결성한 보추협은 2003년부터 연구소와 힘을 합쳐 강제동원 문제 해결을 위해 싸워왔다. 지난 20여 년간 한일 과거청산 운동을 총결산하는 국제회의〈한일 과거청산 운동의 기억과 전망〉이 10월 13일에 열렸다. 보추협이 주최하고 연구소가 주관한 이번 국제회의를 위해 특별히 식민지역사박물관과 마주하고 있는 한국순교복자수녀회가 강당을 제공해 주었다. 국제회의에는 일본과 한국에서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과 피해 회복 투쟁을 해 온 피해자들과 지원단체 활동가, 변호사, 전문가 등 80여 명이 참석했다. 한국과 일본 측에서 발표와 토론을 서로 마주하는 구성으로 모두 8편의 발표와 토론이 있었다. 1부 “한일 과거청산의 성과와 과제”에서는 일본의 ‘전후보상운동’의 역사에 대해 야노 히데키(강제동원 문제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한국의 강제동원 관련 특별법에 대해 장완익(보추협 공동대표, 변호사)의 발표가 있었다. 토론은 김민철(전 보추협 집행위원장)과 나카타 미쓰노부(일본제철 전 징용공재판을 지원하는 모임)가 맡았다. 이 4명은 모두 1990년대 후반부터 보추협 회원들과 일본제철 재판투쟁, 재한군인군속재판 등을 함께 해 왔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30년의 강제동원 문제를 총괄했다. 2부 “한일 과거청산의 현안과 쟁점”에서는 현재까지 일본 법정에서 투쟁 중인 ‘야스쿠니 무단합사 철회 소송’, 일본 관계 정부와 지속적인 교섭을 하는 ‘유골문제’를 다루었다. 두 현안은 남상구(동북아역사재단)와 우에다 케이시(전몰자 유골을 가족의 품으로 연락회)가 발표하고, 즈시 미노루(노!합사재판지원회)와 김영환 대외협력실장이
민족사랑 2023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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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워싱턴디씨 지부 6월 역사캠프 ‘책거리’ 행사
[후원회원 마당] 민족문제연구소 워싱턴디씨 지부 6월 역사캠프 ‘책거리’ 행사 Louis Knight 후원회원 행사 취지 2022년 8월 시작된 〈영어로 배우는 한국사, 역사캠프〉(이하 역사캠프)가 이번 학기 마지막 수업을 맞았다. 역사캠프는 미국 워싱턴디씨, 매릴랜드, 버지니아 지역의 초등학교 2, 3, 4학년을 위한 기초 한국사 강의로, 영어에 더 익숙한 교포 2, 3, 4세들이나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을 위해 기획되었다. 그동안 역사캠프는 버지니아 페어팩스 지역의 공립 도서관에서 매월 셋째 주 토요일 4~6시에 진행되었다. 역사캠프의 이번 학기 마지막 수업인 책거리 행사는 6월 17일 토요일 한인커뮤니티센터 대강당에서 열렸으며 종강파티인 만큼 연령제한 없이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책거리’는 지난 1년간 배워 온 한국사 전반에 대한 리뷰로 시작되어 한반도의 선사시대부터 문화강국이 된 지금의 대한민국 이야기까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들로 각 시대의 중요한 흐름을 짚어보았다. 축사 1년 동안 열심히 한국사를 배워온 아이들과 그 가족들을 응원하기 위하여 워싱턴디씨 지부의 이사장인 윤흥노 박사와 전 독립기념관 관장인 이준식 교수의 축사가 있었다. 윤흥노 이사장은 미국에서 자라는 학생들에게 지금처럼 꾸준히 한국사를 공부하며 우리의 뿌리를 잊지 말 것을 당부했다. 한국에서 영상으로 인사를 한 이준식 관장은 일제강점기 해외에서 활동했던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떠올리며 그 후손이나 다름없는 이곳 학생들이 열심히 한국사를 배우고 있는데 대한 격려의 말씀을 남겼다. 필립 커디 씨 라이브 인터뷰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손자이자 미 해군 최초 아시아계 여성 장교였던 안수산 여사의 아들인
항일무장투쟁 유적지 간도(間島)를 가다
[답사기] 항일무장투쟁 유적지 간도(間島)를 가다 김재광 경기 북부 후원회원 DMZ 녹슨 철조망 앞에서 대륙으로 달리는 꿈을 꾸다 지난 4월 29일 민족문제연구소 경기북부지역위원회에서 주최하고 연천지회에서 주관한 ‘정전협정 70주년기념 연천평화기행’이 진행되었다. 허리 잘린 한반도 DMZ를 사이에 두고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남북의 청년들이 총부리를 겨누고 대치하고 있는 이 비극의 현장 연천군 태풍전망대를 견학하고 분단된 조국의 뼈아픈 현실 앞에 가슴이 조여드는 심정은 평화를 사랑하는 국민이면 누구나 느끼는 감회일 것이다. 말없이 남북을 흐르는 임진강은 알아주려나… 무거운 짐을 가슴에 안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동행한 이진선이 본인 소개 시간에 홍보한 ‘항일무장투쟁유적지 간도를 가다’ 역사탐방 프로그램을 듣고 “북녘땅이 아니면 어떠랴! 북중 국경을 가보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되었다. 5박 6일 역사탐방에 참여하려면 여러 가지 난관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아내의 허락을 받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역사탐방에 동행한 동지 박충식이 함께 가자는 강력한 권유에 이끌 려 용기를 내서 아내에게 허락을 받고 결정하니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번 역사탐방을 통해서 보고 느끼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첫째, 윤석열 보수정부가 취임한 후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북중러 관계가 노태우 정권에서 추진한 북방외교의 성과인 한중·한소 수교 전보다 더 분위기가 냉각되어서 북중러 국경을 맞대고 있는 ‘옌벤조선족자치주’를 중심으로 살고있는 조선족의 감상을 알고 싶었다. 둘째, 북중러 삼국 접경지 훈춘시 방천풍경구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두만강의 현재 모습과 동해를 친견하고 싶은 꿈과 단둥에서 바라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