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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디저트보다 더 달콤한 기부

2024년 7월 24일 115

[소감문] 디저트보다 더 달콤한 기부 여현정 일본학연구소 연구보조원 안녕하세요.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의 연구보조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여현정입니다. 저희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는 6월 27일, 대학교 축제에서 부스를 운영해 크로플과 에이드를 판매한 수익금을 식민지역사박물관에 후원하였습니다. 축제에서 일본학연구소 연구보조원으로서 후원 활동에 참여하게 되어 매우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지금부터 부스 운영 준비 과정부터 식민지역사박물관 후원 활동 결과까지의 경험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번 기획은 일본학연구소에서 격주로 진행하는 ‘목요회’라는 독서토론 활동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저희는 히토쓰바시대학의 가토 게이키 교수님 세미나에서 활동한 학생들과 졸업생이 쓴 『확산되는 ‘한일’의 답답함과 우리들(ひろがる「日韓」のモヤモヤとわたしたち)』이라는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이 책은 일본 대학생의 시선으로 한일의 역사, 문화, 정치, 경제, 그리고 사회를 바라보고 현재의 한일관계를 고찰하며 올바른 역사관과 깊은 이해를 촉진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일본의 가해 역사를 배우고자 하는 일본 학생들의 적극적인 자세를 보며 저 또한 올해 10월에 마무리되는 일본학연구소 연구보조원으로서 의미 있는 결실을 맺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학을 공부하는 대학생으로서 일본학연구소 소속으로서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활동을 고민하던 중, 마침 5월에 한림대학교 대동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뜻을 함께하는 팀원들을 모집해 부스 운영을 통한 모금 활동을 추진하였습니다. 부스 운영을 기획하면서 팀원들과 여러 아이디어를 모았습니다. 지난 2월 일본 대학생 친구들과의 교류회를 가진 적이 있습니다. 그때 방문했던 식민지역사박물관이 인상 깊게 남아 있었고, 역사정의실천이라는 저희의 목적과도 일치해

척화비(斥和碑), 위정척사의 상징 혹은 박해와 순교의 증거물

2024년 7월 24일 152

[특집] 척화비(斥和碑), 위정척사의 상징 혹은 박해와 순교의 증거물 이순우 특임연구원 서울 용산구 청파동2가에 있는 식민지역사박물관과 나란히 이웃하는 자리에 터를 잡고 있는 한국순교복자수녀회(韓國殉敎福者修女會, 1946.4.21일 개성에서 설립 이후 1950.3.9일 서울 청파동으로 이전)에는 드물게 구경할 수 있는 근대문화유산 한 점이 보관되어 있다. 지난 2022년 10월 13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 화재 제534호로 지정된 ‘척화비’가 바로 그것이다. 문화재지정을 위한 사전조사자료에 따르면, 이 비석의 원래 위치는 “강원도 횡성읍 읍상리 횡성성당 정문 앞 개울에 버려져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따라서 이 비석은 엄밀하게 말하여 ‘횡성 척화비’로 명명되는 것이 더 합당한 일이 아닌가도 싶다. 이곳의 척화비가 정확하게 어느 시기에 한국순교복자수녀회로 수습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미처 자세히 탐문해보지 못하였으나, 우선 아주 오래전 세종문화회관 대전시실에서 열린 가톨릭조선교구설정 150돌 기념 가톨릭미술전 및 교회사자료전(1981.9.6~9.12)에 전시유물로 출품된 사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보다 앞서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고종시대사 1』(1967)을 보면, 571쪽 부분에 ‘도판 제21도 척화비’ 사진자료로 종로 척화비(경복궁 근정전 회랑)와 더불어 ‘횡성 척화비(장소미상의 실내공간)’의 모습이 나란히 수록된 것이 확인된다. 이러한 사실에 비춰 보면 이 척화비는 이미 반세기 훨씬 이전에 서울로 옮겨진 상태였다는 것을 가늠할 수 있다. 지금의 시점에서 전국 각처에 흩어져 있는 옛 척화비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 수량은 대략 36 기(基; 복제품은 제외)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 가운데 현재 지방문화재(향토유적 포함)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것이 21기이며, 나머지는 모두

텍스트 마이닝을 활용한 〈항일음악 330곡집〉 분석

2024년 7월 24일 109

[기고] 텍스트 마이닝을 활용한 〈항일음악 330곡집〉 분석 방학진 기획실장 해방 이후 정부가 손놓은 상황에서 2017년 『항일음악330곡집』(민족문제연구소기획, 노동은 책임 집필)이 발간되어 서울, 충남, 제주 등 일부 교육청을 통해 학교 현장에 보급되었다. 2022년에는 『다시 부르는 독립의 함성 : 항일노래 600곡』(반혜성, 김수현, 김명섭, 노복순)도 출간되어 항일음악 연구의 토대가 더욱 확장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발굴·정리된 항일음악들이 삼일절, 광복절 등 기념일은 물론 역사, 음악 시간에 활용되고 있는 사례는 드물다. 항일음악이 ‘일제침략을 반대하며 국권회복과 독립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노래’라고 할 때 그 노래의 가사와 선율 속에는 독립운동의 정신이 깃들어 있음은 불문가지이다. 특히 항일음악에 담긴 가사는 독립운동 관련 선언문, 신문, 잡지, 저서, 연설문, 편지와 마찬가지로 텍스트로 존재하지만 수많은 텍스트는 개념과 연결되고 다시 그 개념은 사상으로 발전한다. 예를 들어 한국광복군 창설 이후인 1942년 만들어진 <광복군가1>(이두산 작사·작곡)의 마지막 가사는 “독립 독립 조국 광복 민주 국가 세워보자”이다. 여기에서 ‘독립’ ‘조국’ ‘광복’ ‘민주’ ‘국가’는 각각 별개의 텍스트지만 ‘독립’ ‘조국광복’ ‘민주국가’ 개념으로 발전하고 다시 ‘독립투쟁을 통한 광복 그리고 광복 후 민주국가 건설’이라는 사상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향후 항일음악 연구의 다양한 접근을 바라면서 텍스트 마이닝(text mining) 기법으로 『항일 음악 330곡집』에 수록된 모든 곡의 가사를 분석했다. 분석은 텍스톰(textom.co.kr)을 이용하여 정제 작업(‘때’, ‘너’, ‘일’, ‘날’, ‘피’ 등 한 음절 단어 삭제 등)을 거친 후 텍스트 마이닝

‘나치 할머니’와 홀로코스트 부정론

2024년 7월 24일 124

[기고] ‘나치 할머니’와 홀로코스트 부정론 나종석 독일사 연구자 1 우르줄라 헤드비히 하퍼베크Ursula He dwig Haverweck라는 독일 사람이 있다. 이 이름은 최근 국내 언론에서 간혹 언급되었고 해외 언론에서는 좀 더 자주 언급되었으며 그의 조국 독일에서는 제법 유명하다. 하지만 그 유명세는 그다지 명예로운 것이 아니다. 그는 소위 ‘나치 할머니Nazi-grandma’다. 1928년 독일 헤센주에서 태어난 이 노부인은 그간 독일 극우파의 확신에 찬 선전가로 활동해 왔으며 이제는 독일 극우 진영의 명망가 중 한 명이다. 그가 특히 주력해온 분야는 나치 정권의 역사적 범죄행위에 대한 부정이다. 유대인 대량 학살, 즉 홀로코스트는 존재하지 않았던 “신화”이며 아우슈비츠는 노동수용소였을 뿐 대량 가스 학살을 저지를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게 그 주장의 요체다. 나치 할머니는 직접 우익 단체를 운영했고(독일 연방정부에 의해 2008년에 해 산되었다) 여러 극우 단체 및 인사들과 연계하며 활동하는 가운데 다양한 매체를 통해 ‘홀로코스트 부정론’을 거듭 설파해왔다. 2018년에는 극우파 군소정당인 ‘우파당Die Rechte’의 2019년 유럽의회 선거 후보로 선출되며 정치 무대로의 진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랬으니 좋건 나쁘건 간에 사회의 주목을 받으며 나름의 명성을 얻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게 마련이다. 독일에서는 홀로코스트라는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여 ‘공공의 평안’을 교란할 경우 형법 제130조 3항에 의거하여 ‘국민선동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되기에 나치 할머니도 예외가 되지 못했다. 우르즐라 하퍼베크는 2004년 6월 바트

재한군인군속재판의 요구실현을 지원하는 모임 활동가를 만나다

2024년 7월 23일 67

[인터뷰 2] 재한군인군속재판의 요구실현을 지원하는 모임 활동가를 만나다 김선영 학예연구사 2024년 7월 6일 강제동원 피해자운동 기록사진전의 연계행사인 자료기증교류회가 개최되었다. 기증자는 재한군인군속재판의 요구실현을 지원하는 모임(2001년 결성, 이하 군군재판지원모임)의 후루카와 마사키(古川雅基) 님, 기무라 아야코(木村章子) 님, 쓰카모토 미쓰노리(塚本光則) 님이다.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과 함께 꾸준히 활동 중인 세 분을 만나 군군재판 지원 계기와 그 의미에 대해 알아보았다.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오늘 일본 간사이(關西) 지역에서 활동하시는 세 분께서 함께 민족문제연구소를 방문해 주셨는데, 한 분씩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후루카와 저는 후루카와 마사키라고 합니다. 군군재판지원모임의 초기부터 사무국장을 맡았습니다. 쓰카모토 저는 쓰카모토 미쓰노리입니다. 저도 군군재판 초기부터 ‘서포터(supporter)’ 중 한 명으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기무라 오사카에서 온 기무라 아야코라고 합니다. 저도 재판이 시작될 때부터 스스로 ‘서포터’라고 부르며 활동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어느덧 25년이 되었네요. • 군군재판지원모임에 대해서 소개해 주시겠어요? 후루카와 네. 이 모임의 목적은 군군재판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2001년 6월에 제기한 1차 소송만 해도 원고가 252명이나 되는 대규모 재판이었습니다. 야스쿠니신사 합사, 시베리아 억류, BC급 전범 등 수많은 피해자 재판이 있습니다. 재판에서 어떠한 요구를 해야 할 지 저희가 먼저 공부했습니다. 추가 제소 때는 시베리아 억류 피해자들이 많이 들어가서 총 414명이 되었습니다. 재판 결과는 굉장히 안타깝습니다만, 재판은 끝났어도 피해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니 계속해서 원고를 지원하고 활동하자는 취지로 이 모임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 세

강제동원 피해자운동 기록사진전의 큐레이터로 참여한 야지마 츠카사 사진작가

2024년 7월 23일 68

[인터뷰 1] 강제동원 피해자운동 기록사진전의 큐레이터로 참여한 야지마 츠카사 사진작가 김혜영 학예부팀장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는 7월 28일까지 <강제동원 피해자운동 기록사진전>이 열린다.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 제정 20년과 강제동원 대법원판결을 기념하고 피해자 운동을 기억하는 전시다. 전시를 준비한 사람들의 이름을 보면 낯익을 수도, 낯설 수도 있는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야지마 츠카사(矢嶋宰). 이번 전시에 큐레이터로 참여한 그를 만나 전시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일본인으로 한국과 독일에서 활동가 겸 사진작가로 살아온 이야기도 들어보았다. • 연구소와 박물관 후원회원분들에게 간단하게 자신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제일 어려운 질문이네요. (웃음). 제 이름이 야지마 츠카사라고 하고, 야지마(矢嶋)가 성이고, 츠카사(宰)가 이름입니다. 대학교에서는 역사를 공부했었고, 그 다음에 사진을 배워서 신문사에서 사진기자로도 있었습니다. 제가 다녔던 대학교에서는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하고 친구가 되면서 일제강점기 역사에 관심도 생겼고, 방학 때면 아시아 여러 나라를 혼자서 방문하고 일본이 그때 당시에 어떻게 했느냐? 그런 것을 찾는 답사라고 할까요? 그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계속 역사를 테마로 하는 사진작가로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2000년 8월 ‘동아시아 공동 워크숍’이라는 한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역사 워크숍에 참가했고요. 참가자를 모집하는 광고가 일본 신문에 나왔는데 위안부 할머니들과 만날 수 있다고 되어 있어 꼭 참석하겠다고 다짐했고 그래서 처음으로 나눔의 집에 가서 할머니들하고 만났습니다. 그때는

강제동원 피해자운동 기록사진전 ‘이야기마당’

2024년 7월 23일 63

[초점] 기억을 잇는 다리 – 강제동원 피해자운동 기록사진전 ‘이야기마당’ 2024년 7월 6일, 강제동원 피해자운동 기록사진전 ‘이야기마당’이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 돌모루홀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는 ‘재한군인군속재판의 요구 실현을 지원하는 모임(아래 ‘군군재판 지원회’)이 지난 전시 개막행사에서 제안된 ‘아카이브 네트워크’에 첫 번째로 소장 자료를 기증하는 행사로 열렸다. ‘군군재판 지원회’는 2001년부터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이하 ‘보추협’)와 소중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지원회 사무국장을 역임한 후루카와 마사키 님이 소장 관리하던 사진자료 930장과 영상 21편을 이번 기회에 기증한 것이다. 1부 행사는 김승은 식민지역사박물관 학예실장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큐레이터로 참여한 야지마 츠카사 작가의 전시에 대한 소감 발표,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의 특별강연으로 진행되었다. 이희자 대표는 강제동원 피해자 운동의 역사를 기억하고 알리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참가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다. 2부는 ‘군군재판 지원회’의 후루카와 마사키님, 기무라 아야코 님, 츠카모토 미쓰노리 님이 기증자료를 소개하며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군군재판 지원회’는 지난 시간 동안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한국의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함께 싸워왔다. ‘군군재판 지원회’는 지난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현장에서도 자료를 기증해 주셨다. 쓰카모토 미쓰노리 님은 ‘안녕, 사요나라’ 공동체 상영회 감상 소감문과 뉴스레터 등 5점을, 기무라 아야코 님은 2010년 나카가와촌 교류사진과 영상, 집회에서 사용했던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 사진 등 63점의 소장 자료를 기증했다. ‘군군재판 지원회’가 이번에 기증한 자료는 일본과 한국에서의 만남, 김치 강습회, 다큐멘터리 ‘안녕, 사요나라’ 그리고

영남, 충청 등 권역별 회원 수련회 열어

2024년 7월 23일 112

[초점] 영남, 충청 등 권역별 회원 수련회 열어 매년 전국 단위로 진행했던 회원 수련회를 올해부터 권역별로 열고 있다. 6월 22일~23일에는 경북 김천, 성주, 고령에서 영남권 수련회를 7월 6일~7일에는 충남 천안에서 충청권 수련 회를 각각 진행했다. 영남권 수련회 첫날에서는 김천의 김단야 생가와 재령교회, 성주의 심산 김창숙 생가와 명성학교를 답사했다. 김천에서는 구자숙 후원회원이 성주에서는 김창숙 선생 손녀인 김주 여사가 각각 안내를 맡아주었다. 숙소인 가야호텔에서 친교 시간을 갖고 이튿날에는 고령군 저전리 반민특위 김상덕 위원장의 생가를 방문했다. 생가 마을의 한 어르신은 소년 김상덕과 문상직을 마을사람들이 대동계를 조직해 서울로 유학시킨 일화를 들려주었다. 수련회에 참석한 권시용 연구원은 현재 우리 연구소는 신흥무관학교 관련자 인물 DB작업을 하고 있고 그 가운데 미서훈 상태인 문상직 선생의 신흥무관학교를 비롯한 독립운동 행적의 일부를 찾았다고 밝히면서 향후 독립운동가 서훈도 적극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해 참가자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영남권 답사는 고령읍내에 있는 김상덕 기념비와 의열단 창립 단원인 신철휴 선생의 기념비 주변을 정비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충청권 수련회는 천안 병천에 있는 ‘1923 역사관’에서 시작했다. 이 역사관은 1923년 간토대학살의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는 김종수 목사가 운영하고 있다. 이곳 역사관에서 간토대학살의 역사와 향후 과제를 듣고 숙소인 관성리 3.1펜션에서 이용길 천안역사문화연구회장은 동학의 경전인 『동경대전』 천안 목천판 발굴 배경 그리고 동학과 천안의 연관에 대해 특강을 했다. 백범 증손자인 민주당 김용만 국회의원은

‘지나정벌개선쌍어육’ (1894.12)

2024년 7월 23일 226

[소장자료 톺아보기 60] 침략전쟁의 선전 도구로 이용된 쌍육 놀이 : 청일전쟁 ⌈지나정벌개선쌍어육⌋(1894.12) ‘쌍육(雙六. 스고로쿠)’은 주사위를 이용해 말을 움직여 승부를 가리는 일종의 보드게임이다. 한무제(漢武帝) 때 서역에서 중국으로 전해졌고 중국에서 한국과 일본으로 유입되어 백제에서도 유행했으며 일본에서는 전통놀이 ‘스고로쿠’가 되었다. 쌍육에는 바둑처럼 반상 위에 말을 배치해 승부하는 반(般)쌍육과 그림판에서 말을 움직여 제일 먼저 결승점에 도착하면 이기는 그림[繪]쌍육이 있다. 현재 반쌍육은 거의 자취를 감추고 스고로쿠라 하면 대체로 그림쌍육을 일컫는다. 쌍육은 에도 시대를 비롯해 메이지, 다이쇼, 쇼와 시대에 걸쳐 새해 첫날 온 가족이 즐기는 명절 놀이로 자리잡았다. 초기에는 불교, 출세, 가부키 등을 제재로 했고 메이지 유신 후에는 문명개화, 부국강병이 주된 테마가 되었다. 특히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 일본의 대외 침략전쟁을 주제로 한 쌍육이 다수 만들어져 일본인의 애국심을 고취하고 전쟁 열기를 부추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쌍육은 우리나라 윷놀이처럼 개인별, 팀별 플레이가 가능하다. 각 플레이어가 번갈아 가며 주사위를 던져 나오는 숫자만큼 말을 움직여 도착지점에 제일 먼저 도달하면 승리한다. 말 이동 방법은 위 그림처럼 시계방향으로 나선형으로 돈다. 다만 쌍육판 출발의 다음 칸처럼 ‘한 회 쉬기’ 또는 ‘나온 숫자만큼 뒤로 가기’ 등 함정 칸이 있어 게임의 묘미를 배가시킨다. 그림판은 총 33칸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칸에는 청일전쟁에 관련한 역사적 사실과 설명을 상세히 그려놓았다. 예를 들면 공사의 담판, 대원군

1년간의 ‘부천 역사 바로세우기’가 남긴 것

2024년 7월 2일 149

[후원회원마당] 1년간의 ‘부천 역사 바로세우기’가 남긴 것 박종선 부천지역위원장 경기문화재단 조사연구팀은 지난 5월 21일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2시간가량의 작업을 통해 2018년 경기문화재단 문화유산과가 2018년 말에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부천역 남부 경원여객 앞에 설치했던 ‘계남면사무소 3.1운동 만세 시위지’ 안내판과 표지판을 철거하였다. 이 철거에는 경기문화재단 관계자 2명과 양경직 계남역사문화연구소 소장,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장인 나, 총 4명이 참여하였다. 이러한 철거가 진행될 수 있었던 계기는 작년 5월 12일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이하 부천지부) 주최로 부천시의회에서 진행되었던 부천시 항일독립운동 기념 학술토론회에서 양경직 계남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이 ‘계남면사무소 습격항쟁! 사실인가? 오류인가?’란 발제를 통해 해당 사건이 인천 계양의 장기리에서 일어난 황어장터 만세운동 일환으로 벌어진 계양면사무소 습격사건의 일부로, 4번의 보고 과정 중 세 번째 보고서에서 ‘계양면’을 ‘계남면’으로 잘못 표기하여 발생한 오류라는 것을 밝혀냈기 때문이다. 부천지부는 학술토론회 후 양경직 소장과 협의하여 발표된 내용들이 사장되지 않고 시민들이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발제 내용을 책으로 만들었다. 부천지부는 이 책들을 먼저 경기문화재단과 독립기념관 관계 부서 담당자에게 보냈다. 또한 부천시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부천시장을 비롯해 부천시의장, 부천시의원, 시민단체, 담당부서에 배포하였다. 그리고 미래의 주역인 학생들이 볼 수 있도록 부천 관내 130여 개 초중고 학교 내 도서관을 비롯해 16개 시립도서관에도 무료로 배포하였다. 그렇다면 ‘계남면사무소 습격항쟁’의 역사적 오류를 잘못 설명하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