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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연구소 설립 30주년 기념식

2021년 3월 25일 116

[초점] 연구소 설립 30주년 기념식 학예실 김슬기 연구원 1991년 2월 27일 문을 연 민족문제연구소가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2월 27일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 돌모루홀에서 ‘민족문제연구소 30주년 기념식’을 진행하였다. 코로나로 회원들을 초대하지 못하는 대신 유튜브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된 이 행사에는 동시 접속자 300여 명이 온라인으로 참여하였으며 당일 2천여 명이 행사영상을 감상하였다. 먼저 회원들과 각계 인사들의 30주년 축하인사를 담은 영상을 감상한 후 광주지부 회원이자 작가인 주홍 씨가 샌드아트로 그린 연구소 30년사 영상으로 기념식의 문을 열었다. 함세웅 이사장은 30주년 기념사를 통해 “나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뿌리이듯 지금까지 민족문제연구소가 든든히 성장할 수 있도록 밑거름과 뿌리가 되어주신 분들은 후원회원 분들”이라며 감사인사를 전했다. 이어 김영환 대외협력실장과 안미정 자료실 주임연구원의 사회로 지난 30년의 역사를 훑어볼 수 있는 ‘민족문제연구소 10대 뉴스’를 진행했다. 마지막 순위를 발표하기 전 막간을 이용해 회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소식 5가지를 소개하는 ‘당신이 몰랐던 민족문제연구소’ 뉴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어 모두가 예상했던 ‘친일인명사전 발간’이 1위로 선정되고 당시 영상이 재생되자 모두에게 그때의 감격이 다시금 떠오르는 듯했다. 음악 교사이자 <항일음악 330곡집>을 집필한 고 노동은 선생의 자제인 노관우 회원의 밴드는 축하공연으로 항일음악 ‘대한혼가’, ‘광복군 아리랑’ 등을 선보였다. 특히 연구소 30주년을 기념하여 새롭게 편곡·헌정한 ‘장타령’에는 흥겨운 가락과 함께 가사 ‘삼십년을 한결같이, 삼백년도 끄떡없게, 삼천리에 퍼져가세’가 울려 퍼지자 현장에 있던

‘후원회원 초대의 날’ 첫 행사

2021년 3월 25일 112

‘후원회원 초대의 날’ 첫 행사 김무성 회원사업 부팀장 연구소는 3월 19일 금요일 저녁 7시에 연구소 30주년을 맞아 기획한 ‘후원회원 초대의 날’ 행사를 처음으로 시행했다. 25년 이상 연구소를 후원해온 후원회원 중에서 수도권에 거주하는 후원회원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30주년 기념식 때 방영한 회원극장의 주인공인 유동성 회원을 비롯해 김기흥 회원, 김석규 전 부 위원장, 김성종 전 이사, 김희준 회원과 동반인, 민삼홍 전 이사, 신창헌 전 이사 부부, 신희철 회원, 이수익 강남서초지부장, 이용훈 회원, 장필수 서울동부지부 자문위원, 최수전 감사, 황평우 전 부위원장 등 총 15명이 자리를 빛내주었다. 연구소는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자리를 띄워두고 칸막이를 설치하여 방역지침을 철저히 지켰다.  1부 행사에서는 25년 이상 후원을 지속해온 회원들인 만큼 그간의 연구소 활동에 참여하며 쌓은 추억을 나누는 자리를 가졌다. 2부 행사는 ‘나의 삶과 민주화 운동’이란 주제로 함세웅 이사장과 회원들 간의 토크콘서트였다. 한평생 민주화 운동에 몸 바쳐 온 함세웅 이사장의 진솔한 얘기는 회원들의 가슴속에 깊이 스며들어 크나큰 감명을 주었다. 연구소는 이번 행사를 포함해 올해 총 7회에 걸쳐 후원회원을 초대하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한다. 아울러 30년 동안 꾸준하고 독보적인 연구와 실천의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근간이 바로 함께 하고 있는 후원회원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다가가는 회원친화적인 사업을 준비할 계획이다.

기증자료

2021년 3월 25일 56

– 연구소 30주년 행사 중 ‘회원극장’에 출연한 유동성 후원회원(경기북부지부)이 지속적으로 소장자료를 기증하고 있다. 이번 기증자료는 새마을(1987), 중학국어(1982) 등 도서 7권과 「국민연금수장」 총8점이다. – 2월 22일 즈시 미노루 씨가 신사 관련 총 94점을 기증했다. 야스쿠니 관련 족자, 다색판화(니시키에) 등 식민지기부터 최근 발간한 자료까지 지속적으로 수집하여 연구소에 기증하고 있다. • 안미정 자료실 주임연구원

노세 노세 휴전선에서 놀아보세

2021년 3월 25일 69

[후원회원 마당] 노세 노세 휴전선에서 놀아보세 정해랑 주권자전국회의 공동대표 가세 가세 북으로 가세 오세 오세 남으로 오세 만나세 만나세 휴전선에서 만나세 징 꽹과리 들고 만나세 기타 드럼도 들고 만나세 휴전선 155마일 철조망 걷어내고 말뚝도 뽑아내고 흰 옷 입은 무리들 만나 얼굴 맞대고 손 한번 잡으면 아니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 고라니도 함께 노세 소리개도 같이 노세 동해바다 서해바다 멸치도 뛰며 노세 백두산 호랑이도 불러 함께 노세 보내세 보내세 양키군대 제 집으로 보내세 같이 노래 부르고 춤도 함께 추다가 딱 사흘만 어울려 놀고 제 집으로 보내주세 전쟁으로 군사훈련으로 멍든 우리 강산 돈벌이로 욕심으로 병든 우리 어머니 산천 치유하세 치유하세 말끔히 치유하세 놀며 놀며 옛 금수강산 되찾아보세 노세 노세 휴전선에서 놀아보세 백두에서 한라까지 손에 손 잡고 덩실덩실 춤추며 멋들어지게 놀아보세

일본에서 온 편지

2021년 3월 25일 49

[후원회원 마당] 일본에서 온 편지 조영숙 도쿄지회 총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인사가 늦어졌네요. 새해인사가 무색할 정도로 온세계가 코로나로 힘든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와중에 어떻게 지내시고 계신지요? 동경은 1월 7일 코로나로 인해 ‘긴급사태선언’이 발표되었는데, 한 달 후 해제할 예정이었으나 결국 3월 7일까지 연장하고 있습니다. 저도 마음이 더욱 움츠려 드는 것을 느껴 가능한 한 외출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2020년은 코로나로 인해 모든 활동이 중단된 상황 속에서 저는 집 가까이 있는 강둑을 찾아 자연과 인간이 공생하는 모습을 나름대로 보고 느꼈고, 또한 그 강을 따라 산재해 있는 옛 도래인(渡來人)의 흔적도 알게 되었습니다. 옛 도래인이 일본 열도에 문명을 전해주면서 함께 살아나가는 길을 열어나갔듯이,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이 코로나 시대에 우리도 함께 힘을 합쳐 미래를 열어나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올해의 새해인사 작품의 제목을 ‘뿌리와 미래’로 정했습니다. 특히 약육강식의 역사 속에서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진 민초들, 재일동포들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들의 한 많은 역사가 100년을 넘어 재일동포 3, 4, 5 세대가 자라나 살아가고 있습니다. 국가 간의 분쟁 속에서 ‘끼어 살아 온’ 역사의 피해자, 평화의 토양 위에서만 활짝 꽃피는 그들의 ‘함께 살기’가 이루어지는 세상을 기원했습니다. ‘뿌리와 미래’ 액자 작품과 시조는 2019년에 만들고 남았던 천으로 제작했습니다. 2019년 작품을 내일을여는역사재단에 기증했는데, 이번에도 같은 재단에 기증합니다. 그리고 2020 상반기에 연구소가 보내온

‘민족지도자’로 둔갑한 조선총독부의 모범생

2021년 3월 25일 323

‘민족지도자’로 둔갑한 조선총독부의 모범생 – 김성수(金性洙) 장례식 풍경 해방공간을 거세게 휘몰아치던 ‘친일파 청산’ 구호는 친일세력과 손잡은 이승만이 반민특위를 와해시키자 서서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친일파는 오히려 ‘건국의 주역’, ‘반공투사’로 둔갑하여 한국 사회의 지배층으로 견고하게 자리 잡았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일제 부역언론인 동아일보의 사주, 김성수다. 김성수는 중일전쟁(1937년) 직후 전국시국강연회의 강사로 나선 것을 시작으로, 각종 친일단체의 간부로 활동하면서 전쟁협력을 독려하는 수많은 기고문과 연설을 남겼다. 심지어 제자들에게 ‘순국의 길이 열렸다’면서 ‘천황’을 위해 전쟁터로 나가라고 몰아세웠다. 그의 친일활동은 전시체제기 내내 지속적이고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해방 후, 미군정청 한국교육위원회 위원과 한국인고문단 의장으로 활동하고 동아일보 사장, 보성전문학교 교장을 지냈으며 1951년 6월에 대한민국 부통령이 되었다. 김성수는 1955년 2월 18일 오후 5시 25분에 사망했다(①). 빈소는 서울시 계동 132번지 김성수자택에 마련되었는데(②) 김성수가 전시물자 부족현상을 메꾸기 위한 ‘금속회수운동’에 적극 동참하기 위해 자택 철문 등 약 2백관(750kg)을 떼어 해군무관부에 헌납한 바로 그 집이다(③). 김성수 사망 바로 다음 날인 2월 19일 오전, 빈소에 이승만이 방문(④)하고 이날 국무회의에서 김성수의 장례가 ‘국민장’으로 결정되었다. 동아일보는 2월 20일자 지면을 통해 ‘일생을 국가, 민족을 위해 바친 인촌 선생이 「펭끼」(페인트)조차 벗겨진 초라한 자택에서 만민의 애도 속에 세상을 떠났다.’고 김성수의 사망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육당 최남선은 김성수를 애도하는 시를 동아일보에 게재하였다(⑤). 2월 24일 오전 8시에 명동성당에서

[식민지비망록] 일본 황태자의 결혼기념으로 세워진 경성운동장

2021년 3월 2일 283

스포츠중계를 할 때면 으레 “여기는 성동원두, 서울운동장입니다”라는 아나운서의 멘트로 시작하던 시절이 있었다. 성동원두(城東原頭)는 성동 벌판의 들머리라는 뜻이며, 서울운동장은 옛 경성운동장이자 한때 동대문운동장으로 통용되었던 곳을 가리킨다. 이것 말고도 일제강점기에는 이곳을 일컬어 훈련원원두(訓練院原頭)라고 했던 사례들도 곧잘 눈에 띈다. 88서울올림픽으로 잠실경기장이 생겨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서울운동장은 그야말로 유일무이하다시피 했던 한국 스포츠 역사의 산실이었다. 전국체전과 소년체전은 말할 것도 없고 국내의 어지간한 경기대회는 빠짐없이 이곳에서 열렸으며, 막판 탈락을 아쉬워했던 올림픽 축구나 월드컵 아시아예선전이 벌어졌던 곳도 여기였다. 하지만 서울운동장이 스포츠의 공간만은 아니었다. 이곳은 때로 정치의 공간이자 근현대사의 현장이기도 했다. 가까이는 체제수호 명분의 무수한 궐기대회와 규탄대회가 자주 열렸고, 좀 더 거슬러 올라가서는 해방 직후에 찬탁이다, 반탁이다 하여 좌우익이 충돌하던 때의 정치집회공간이었는가 하면 여러 애국지사들의 영결식(永訣式)이 거행되는 곳으로도 사용된 적이 많았다. 더구나 일제강점기에는 전시동원체제에 편승한 각종 행사가 자주 개최되던 그러한 장소였다. 그렇다면 이곳에 운동장 시설이 처음 들어선 것은 언제이며 또한 어떠한 연유로 만들어진 것일까? 서울도성이 지나고 하도감(下都監)이 자리한 지역에 경성운동장(京城運動場, 경성그라운드)이라는 이름으로 개장이 이뤄진 것은 1925년 10월 15일이었고, 정식 준공일은 이듬해인 1926년 3월 31일이었다. 그런데 경성운동장 앞에 꼭 함께 따라 붙는 것이 “동궁전하어성혼기념(東宮殿下御成婚記念)”이라는 수식어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동궁 전하’는 장차 소화천황(昭和天皇)이 되는 일본 황태자 히로히토(裕仁)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그 당시 섭정궁(攝政宮)의 노릇을 했던 히로히토 황태자의 결혼식은 1924년 1월 26일에 있었다. 당초

[인터뷰] 역사 1도 모르던 피디, 역사에 푸욱 빠지다

2021년 2월 26일 256

[인터뷰] 역사 1도 모르던 피디, 역사에 푸욱 빠지다 – 이은지 YTN라디오 뉴스제작팀장 인터뷰: 방학진 기획실장 정리: 김혜영 선임연구원 ● 독립운동歌 복원 프로젝트 <100년의 소리>를 소개해달라 ● YTN라디오가 연구소 자문, 경기도와 경기아트센터 제작 지원으로 지난해 11월부터 시작한 장기 프로젝트다. 독립운동가들이 남긴 독립운동가(歌)를, 생존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의 육성으로 직접 녹음하고 복원해 프로그램으로 제작한다. 음악 문화 콘텐츠로 재탄생한 한 곡의 독립운동가에는 노래와 함께 그들의 선조 이야기도 담겨있다. 이 프로그램은 공익적 목적의 방송물임과 동시에 역사 기록물로도 가치가 깊어, 청취자들이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레 독립 정신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 YTN라디오, 이은지PD와 연구소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 2018년 YTN라디오 <이동형의 뉴스정면승부> 프로그램 광복절 특집 기획 자문을 얻기 위해 홍기희 작가와 함께 연구소에 직접 방문했었다. 당시 제작했던 광복절 특집 5부작 ‘그들이 꿈꾸는 나라’는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 사회문화발전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이듬해 같은 프로그램에서 3·1운동 100주년 연속기획으로 반민특위 등 근현대사 관련 특집 방송을 했다. 그해 여름에 신흥무관학교 옛터 답사 에 참가해, YTN라디오 특집 다큐멘터리 <서간도 독립운동가 어느 무명씨의 꿈>을 제작, 연출했 다. 겨울에는 러시아 독립운동 유적지를 방문하면서 연해주 지역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만나 취 재하면서 언론인으로서 가져야할 역사 의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시 취재 기록들 은 <연해주 연가>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2020년 YTN라디오를

친일인사의 유물·유적을 조사하여 친일 청산 교육의 장으로 만들자

2021년 3월 2일 263

[돌려보기] 친일인사의 유물·유적을 조사하여 친일 청산 교육의 장으로 만들자 이계형 국민대학교 교양대학 교수   얼마 전 어느 젊은 웹툰 작가가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을 비하하는 글을 올려 논란이 일었다. 자 신의 페이스북에 “친일파 후손들이 저렇게 열심히 살 동안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도대체 뭐 한 걸 까”라는 질문을 던지고서는 자문자답의 글과 함께 ‘친일파 후손의 집’이라 적힌 고급 단독주택과 낡고 허름한 ‘독립운동가 후손의 집’ 사진을 나란히 보여줬다. 올바른 역사의식을 지닌 사람이라면 친일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않을까?   친일인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 높이기 친일파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청장년층에까지 친일을 긍정하는 인식이 확산한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2019년 ‘신친일파’가 쓴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이 인기도서가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김백일 동상 옆에 세워진 김백일 친일행적단죄비   당시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로 어느 때보다도 독립운동의 의미를 되새겼음에도 말이다. 이런 비판적인 시각에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친일문제를 어떻게 이해하도록 할 것인지 다시금 되돌아봐야 한다. 2009년 대통령 직속으로 꾸려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1,005명을 친일파로 최종 선정한 바 있고, 같은해 비영리 단체 민족문제연구소는 식민지 지배에 협력한 인사 4,389명의 친일행각과 광복 전후 행적을 담은 ????친일인명사전????을 펴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친일인사들을 총정리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었다. 이후 ‘친일파와 관련한 기념비 등을 철거해야 한다, 국립묘지에 안장된 친일파 묘소를 이장해야 한다, 친일파의 이름을 딴 문학상을 폐지해야

투 스타의 추억 한 토막(1)

2021년 3월 2일 208

[돌려보기] 투 스타의 추억 한 토막(1) 임헌영 소장•문학평론가   이 글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관지 ????기억과 전망???? 43호(2021)에 실린 글로 세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임헌영 소장은 1974년 ‘문인간첩단 사건’으로 갖은 고초를 겪었고 1979년에는 남민전 사건으로 투옥되기도 했다. 이 글에는 문인간첩단 사건 당시 ‘빙고호텔’(육군보안사 서빙고분실)에서의 끔찍한 고문의 과정, 서대문 귀소에서의 생활, 재판 진행과정, 석방 후 요시찰 인물로 살아야 했던 이야기 등이 담겼다.― 편집자주   1. 박정희와 같은 뱀띠의 다른 운명 분단 한국은 별들의 전쟁이래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진짜 별들과 5·16쿠데타를 비판하며 민주화와 통일을 염원하다가 투옥당했던 국립 서대문대학(서대문구 현저동의 서울교도소)을 나온 전과자라는 별들의 전쟁 말이다. 교도소에서는 전과 1범을 별 하나, 둘은 투 스타로 불렀는데 원수급인 5성도 적잖으니 아마 별들의 숫자로 보면 국방부의 별보다는 법무부의별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두 별들의 차이는 엄청나게 많으나 가장 중요한 점은 국방부의 별들은 한 번 달면 평생을 보장받는 신분적인 우대로 성우회란 막강한 단체가 있으나, 법무부의 별들은 천차만별인 데다 분파가 많다는 점이다.  1974년 3월 2일 문인간첩단 사건으로 법정에 선 이호철ㆍ임헌영ㆍ김우종ㆍ장백일ㆍ정을병 씨의 모습(오른쪽부터)   군부독재란 바로 이런 다양한 별들을 과잉 배출하는 별을 찍어내는 공장인지라, 그래서 총총 하늘에는 별들도 많고 국민들 가슴엔 근심만 많은 세월이었다. 박정희와 내가 닮은 건 같은 뱀띠라는 건데, 세속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그의 사주는 정사년(丁巳年) 출생으로 신해월(辛亥月)에다 경신일(庚申日)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