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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식민지역사박물관, 긴급전시행동 〈민주주의와 깃발〉 폐막행사

2025년 10월 27일 198

[초점] 식민지역사박물관, 긴급전시행동 〈민주주의와 깃발〉 폐막행사 식민지역사박물관은 10월 18일 긴급전시행동 〈민주주의와 깃발〉 폐막행사를 개최했다. 행사는 김현지 전략홍보팀 활동가의 사회로 2부로 나눠서 진행되었다. 1부는 〈우리는 우리가 놀랍지 않다〉를 주제로 동명의 책 저자인 이슬기 기자를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북토크는 김승은 학예실장의 사회로, 12월 3일 이후 광장에서의 활동, ‘말벌 동지’, ‘남태령 정신’의 현재 의미, 광장에서 나온 열망들을 현실에 적용시키기 위한 노력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책 『우리는 우리가 놀랍지 않다 – 광장을 바꾼 청년 여성들의 정치력』의 인터뷰이인 김강리 대학원생노조 수석부지부장과 김후주 농업회사법인 주원 유기농 대표·남태령 축제 주최자도 패널로 참여해 뜻깊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2부에서는 〈민주주의와 깃발〉 전시를 함께 만들어 주신 기증자와 박물관 상근자들의 못 다한 이야기를 들었다. 국세현 대외협력실 부팀장은 5월 16일 전시 개막 이후 157일 동안 박물관을 방문해 주신 관람객의 소감과, 전시와 연계한 다양한 연대 활동에 대해서 소개했다. 지난 광장에서 악기 연주로 시위에 참여했던 멜로디언 연주자 신해나 님과 플루트 연주자 채윤님의 연주와 인사, 응원봉과 몸자보 등을 기증해 주신 김수빈 님, 박물관 외벽에 게시된 깃발의 디자인을 맡아주신 김철규 님의 소감도 순서대로 들을 수 있었다. 긴급전시행동 〈민주주의와 깃발〉은 10월 19일을 마지막으로 폐막되었지만, 온라인 전시는 계속될 예정이며 박물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30일부터 을사늑약 120년·한일협정 60년을 맞아 새로운 기획전이

근현대사기념관, 각종 교육 프로그램(어린이·청소년·성인 대상) 실시

2025년 10월 27일 163

[초점] 근현대사기념관, 각종 교육 프로그램(어린이·청소년·성인 대상) 실시 근현대사기념관은 지난 9월 20일(토)과 10월 18일(토)에 성인 대상 교육프로그램 독립민주시민학교 〈무너미에 잠든 독립운동가〉 1차 역사 탐방 및 강좌 5강을 진행했다. 1차 역사 탐방은 수유리에 안장된 7명의 독립운동가 묘소와 봉황각을 둘러보았다. 부슬비가 내리는 오전에 참가자들을 두 팀으로 나누어 신익희, 이준, 이시영, 김병로, 김창숙 묘소를 방문했고, 오후에는 손병희 묘소와 봉황각 그리고 여운형 묘소를 끝으로 탐방을 마무리했다. 5강은 이강수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이 맡아 ‘신익희의 생애와 민족운동’을 주제로 진행되었다. 독립민주시민학교에서는 11월에도 강좌와 2차 역사 탐방이 이어진다. 6강은 독립과 통일에 일생을 바친 여운형(변은진 전주대 HK교수)을 주제로 11월 15일(토)에 열리며, 2차 역사 탐방은 신익희 생가와 여운형기념관 방문으로 11월 29일(토)에 진행될 예정이다. 근현대사기념관에서는 성인 대상 교육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딱딱하고 어려운 우리의 근현대사를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상설 교육·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어린이 역사교실 〈근현대사기념관의 비밀을 찾아라〉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상설 교육·체험 프로그램이다. 초등 교과과정과 연계된 워크북 활동과 함께 봉황각 무드등 만들기 체험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체 신청은 11월 30일까지 가능하다. 청소년 역사교실 〈준희의 어쩌다 시간여행〉은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근현대사 상설 교육·체험 프로그램이다. VR과 메타버스를 활용해 강북구 독립운동가들을 만나보는 워크북 활동과 자개 틴케이스 만들기 체험으로 구성되어 있다. 청소년 개인은 10월 25일(토), 11월 1일(토), 11월 8일(토) 14시에 진행한다. 단체

2025 북미평화워크숍과 캠페인

2025년 10월 27일 182

[초점] 2025 북미평화워크숍과 캠페인 해방 80년, 한일국교수립 60년을 맞아 동아시아 평화실현 과제를 모색하기 위해 한미일 시민사회와 학계가 9월 15일부터 20일까지 미국에서 ‘해방 80년, 한일국교수립 60년 한국전쟁 종결과 식민지 청산을 위한 동아시아 북미평화워크숍과 캠페인’ 개최했다. 공동 주최자로 참여한 민족문제연구소는 김민철 연구위원과 김세호 PD가 직접 캠페인에 참가해 6박 7일간의 일정을 함께 했다. 이번 평화워크숍은 ‘한국전쟁 종전 선언과 식민주의 청산’이라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두 과제를 두고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과 조지워싱턴대학과의 공동 학술회의와 시민단체 간의 워크숍을 진행했다. 공동 학술회의와 워크숍을 통해 ‘식민지 지배가 남긴 유산 해결과 한국전쟁 종전의 시급성, 전쟁으로 인한 심각한 인권침해와 피해회복, 이를 위한 미국과 일본의 역할’ 등을 토론했다. 김민철 연구위원은 발표에서 ‘기억, 진실, 정의는 분리될 수 없다’고 말하며, 최근 국내외에서 벌어지는 역사부정주의가 정치적 양극화와 혐오 표현 등과 결합하여 민주적 가치와 질서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탈식민은 단순한 과거청산이 아닌, 인간 존엄의 회복, 보편적 인권 실현, 공동체 치유의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18~19일에는 미연방의회, 국무부, 브루킹스 연구소를 방문해 캠페인을 전개했고 ‘한국전쟁의 조기 종전과 평화체제 전환, 식민지 지배 청산의 국제적 책임 이행, 희생자의 기억·추모와 평화교육의 제도화, 일본–미국 공동 책임의 공식화와 실행’ 네 영역으로 구성된 ‘한미일 시민사회공동제안서’를 전달했다. 현지 시간으로 18일 밤에는 ‘전범기업 일본제철의 식민 청산과제-조선인 강제노동 보상 문제와 연합국 포로문제’에 관한 긴급 온라인 워크숍을 진행했다. 이번 워크숍에서는 김민철

민족사랑 2025년 10월호

2025년 10월 26일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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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시사(富川市史)』의 오류 수정을 기대한다

2025년 10월 2일 205

[후원회원마당] 『부천시사(富川市史)』의 오류 수정을 기대한다 박종선 부천지부장 부천시는 시 승격 50주년을 맞이하여 2023년에 『부천시사(富川市史)』(이하 시사)를 새롭게 편찬하였다. 1988년과 2002년에 이어 20여 년 만에 새롭게 편찬한 것으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변화된 부천에 대해 연구하여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였다. 시사에는 부천에 관한 역사, 인물과 문화유산, 정치와 행정, 경제와 산업, 사회, 교육 문화와 생활에 관한 내용을 자세히 수록하고 있어 부천을 알고자 한 사람들에게는 필수적인 책이다. 부천을 알리는 백과사전으로 이보다 더 자세하게 설명한 자료는 없다. 하지만 자료 곳곳에 오류가 있다. 지난 8월 29일 자 오마이뉴스 기사 <부천의 독립운동가로 소개된 이유선, 실제 행적은 달랐다>를 통해 부천의 제헌국회의원이었고 근현대인물로 소개된 이유선 행적의 오류를 지적했다. 이러한 오류는 시민들로 하여금 시사에 대한 불신을 불러일으키며, 더 나아가 부천시 행정의 정확성에 의심을 갖게 하므로 더 세밀하게 편찬되었어야 하는데 아쉬움이 있다. 이번에는 일제강점기 부천에 설치된 교육기관에 대한 오류를 지적하고 역사적 근거를 추가하고자 한다.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소사심상소학교의 설립 연도이며, 다른 하나는 소사공립보통학교의 설립과 이전이다. 먼저 문제가 된 내용은 아래와 같으며, 『부천시사』 3권 중 제7편 ‘교육’에 나온다. 그 후 1908년경 이곳에 일본인들에 의해 복숭아 과수원이 생겨나면서 경작을 위한 노동력의 필요에 따라 주민들이 급격하게 이주했다. 또 일본인들이 대거 이주하면서 주로 일본인 자녀들을 교육하기 위한 근대적 교육기관으로 심곡본동에 1922년 소사심상소학교(현재의 부천남초등학교)가 최초로 설립되었다. 이

연천중앙공립심상소학교의 황국신민서사지주 건립기

2025년 10월 2일 215

[식민지 자료관 4] 연천중앙공립심상소학교의 황국신민서사지주 건립기 이순우 특임연구원 미나미 총독(南總督)의 반도시정 중 교육체제의 근간이 되는 ‘황국신민의 조성(造成)’에 관하여 총독부 학무국에서는 시국극복과 함께 더욱 일본정신의 철저발양에 매진하기로 되어 반도 신민중으로 하여금 항상 “우리는 일본인민이다”라는 관념을 머릿속에 깊이 새기여 언제나 이를 잊지 않도록 전조선의 학교, 청년단, 소년단, 기타 각종 단체에서 적어도 다수인이 회합하는 때에는 일동이 합창하여 그 정신을 전지에 피력시키기 위해 ‘황국신민의 서사(誓詞)’라는 것을 작성하여 지난 2일 미나미 총독의 결재를 거쳐 곧 각 도지사에게 통첩을 띄웠다. 서사는 소년용과 청년 이상용의 2부에 나누어 자못 간단 명쾌한 글로써 작성하여 첫째 제국신민의 신념과 둘째로는 내선일체, 동포상애의 강조, 셋째로는 근로단련과 일본국가로서 세계에 대한 적극적 활동을 표증한 제국신민의 전수의 세 가지로 결정시킨 것인데, 초등학교에서는 매일 조회(朝會)에 이를 합창하고 일반단체도 모든 회합에 이를 합창하게 할 터이라는데 학무국에서는 곧 이를 인쇄하여 전조선에 배부하기로 되었다. 이것은 『조선일보』 1937년 10월 5일자에 실린 「황국신민(皇國臣民)의 서사(誓詞), 전조선(全朝鮮)의 학교, 청년단, 소년단에서 사용토록, 학무국(學務局)에서 각도지사(各道知事)에 통첩(通牒)」 제하의 기사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이른바 ‘지나사변(支那事變, 중일전쟁)’의 개시로 전시체제기가 본격 도래하고 있던 바로 그 시점에 나온 것으로, 이는 곧 일제패망기에 이르도록 이른바 ‘내선일체’와 ‘일시동인’이라는 미명 아래 조선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옥죄었던 바로 그 ‘황국신민서사’의 첫 등장을 알리는 기사였던 것이다. 황국신민의 서사 (구성 내용) 특히, 1939년에 이르러서는 남산 기슭 조선신궁 구내의 한쪽에

조세이탄광 터에서 기적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

2025년 10월 2일 213

[돌려보기] 조세이탄광 터에서 기적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도코나미 해안의 조세이탄광은 1942년 2월3일, 해저 갱도가 무너지며 183명(조선인 136명, 일본인 47명)의 노동자가 차가운 바닷속에 수장된 비극의 현장이다. 사고 당시 회사는 2차 사고를 막는다며 갱도 입구를 막아버렸고, 희생자들은 83년이 지나도록 깊은 바닷속에 갇혀 있었다. 지난 8월 25일과 26일 43m 바다 밑에서 강제동원 희생자의 뼈로 보이는 유골 3점과 두개골이 발견되어 마침내 세상의 빛을 보았다. 식민지 조선에서 강제동원되어 참혹하게 희생된 분들의 진상을 밝혀줄 명확한 단서를 찾아낸 기적을 만들어 낸 것은 일본 정부도 한국 정부도 아니었다. 조세이 탄광 강제동원의 역사를 밝히기 위해 활동해 온 ‘조세이탄광 수몰 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이하 모임)이 오로지 시민의 힘으로 해낸 것이다. 그 활동의 중심에는 이노우에 요코 공동대표와 우에다 게이시 사무국장이 있다. 이노우에 대표는 1991년 모임이 만들어질 때부터 참여하여 활동을 이끌어왔다. 작년 12월 3일 ‘모임’이 리영희상 특별상으로 선정되어 모임의 대표로 수상식에 참석한 그는 수십 년 동안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기적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참사 직후 봉인된 갱구를 찾지 못해 고심하고 있을 때 지역의 토건업자가 자신이 해보겠다며 나섰다. 마침내 찾아낸 갱구에는 극도로 시계가 불투명한 흙탕물이 넘쳐났다. 작업의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이번에는 수중탐험 전문잠수사가 나섰다. 이노우에는 이런 뜻있는 사람들의 자발적 헌신과 용기가 어우러져 기적이 이어졌다고 공을 돌렸다.

긴급 전시 행동을 하는 이유

2025년 10월 1일 176

[긴급전시행동 ‘민주주의와 깃발전’ 기증자 인터뷰④] 긴급 전시 행동을 하는 이유 박이랑 전략홍보팀 오늘 전할 내용은 광장의 이야기를 보러 박물관을 방문해 준 관람객들의 목소리다. 기증자뿐 아니라 매일 수많은 시민들이 전시를 보러 온다. 그들이 남긴 눈물과 발자국들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 자 한 자 적어보려 한다. 균열에서 피어난 희망 전시의 마지막에는 ‘당신이 피운 민주주의 꽃으로 이곳을 가득 채워주세요’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그 아래에는 동대구역 광장에 전시된 피켓 내용이 적혀 있다. 콘크리트에는 이미 금이 갔고 우리는 그 균열을 비집고 돋아난 싹이다. 굳어진 콘크리트는 스스로를 메울 수 없지만 싹은 자라 나무가 되고 큰 숲이 되어 마침내 차가운 회색 땅을 깨뜨릴 것이다. 균열이 간 콘크리트 위로 관람객들은 직접 제작한 깃발 스티커를 붙이기도 하고, 깃발의 문구를 적기도 했다. 무너뜨릴 수 없을 것 같던 아주 견고한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벽들에 금이 가고, 그 사이에서 희망이 솟아났다. 관람객들은 서로가 남긴 희망을 보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고 미소를 짓기도 했다. 대구에서 오신 분은 입구에서부 터 눈가가 촉촉한 상태로 입장했다. 그는 ‘TK(대구·경북 지역을 일컫는 영어 약자)의 딸’이 제작한 ‘우리는 보수의 텃밭이 아니다’ 피켓 앞에서 한참 동안 서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일이 일상다반사가 되었고, 누군가와 눈 맞추고 이야기하는 것이 힘들 때 그는 대구에서 개최된 윤석열 탄핵

<쿠바로 간 화성인> 취재 후기: 산티아고의 바다에서 대한민국의 민낯을 마주하다

2025년 10월 1일 188

[기고] <쿠바로 간 화성인> 취재 후기: 산티아고의 바다에서 대한민국의 민낯을 마주하다 임상범 SBS 기자 광복 8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쿠바로 간 화성인>을 제작하며 접한 독립유공자 안순필 선생 가족의 역사는 저에게 국가의 존재 이유와 그 사회적 책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졌습니다. 쿠바의 뜨거운 태양 아래, 거대한 청새치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 늙은 어부 산티아고의 이야기, 헤밍웨이의 명작 『노인과 바다』가 바로 그곳, 쿠바에서 쓰였다는 사실이 제게는 결코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고전의 무대에서, 또 다른 산티아고를 만났습니다. 독립유공자 안순필 선생의 증손자인 알베르토였습니다. 그의 삶은 흡사 거대한 청새치와 홀로 싸우는 노인의 고뇌와 같았으며, 그의 일상은 백년을 이어온 망국의 설움이자,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던지는 끝나지 않은 질문이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안순필 가족의 서사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독립의 진정한 의미를 외면해 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우리는 먼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100년 전, 그토록 많은 조선인이 왜 낯선 쿠바 땅까지 흘러가야 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명합니다. 일제 식민지 지배라는 국가적 폭력과 그로 인한 민중의 극한적 빈곤이 바로 그들을 등 떠밀었습니다. 안순필 선생의 가족도 멕시코를 거쳐 쿠바에 당도한 수백 명의 조선인 무리에 섞여 있었습니다. 이들의 굴곡진 이민사는 개인의 선택이 아닌, 국가가 제 기능을 상실했을 때 국민의 삶이 얼마나 파괴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집단적 비극의 증거입니다. 쿠바에서의

2025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수련회 – 파주 (9.13~14)

2025년 10월 1일 139

[초점] 2025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수련회 – 파주 (9.13~14) 매년 전국 단위로 열리던 회원수련회가 작년에는 권역별로 네 번을 진행하였다. 보다 지역 친화적인 수련회였다는 반응에 올해도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다. 지난 8월 경남 산청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회원수련회가 자연재해로 불가피하게 취소되면서, 9월 13일~14일 경기도 파주에서 첫번째 회원수련회가 열렸다. 이번 수련회에는 이틀간 상근자를 포함해 70여 명이 참석했다. 첫째 날, 참가자들은 숙소인 홍원연수원에 집결하여 두 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파주 일대 답사를 하며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민통선(민간인출입통제선) 안쪽의 통일촌에서 점심을 먹고, 도라산역, 덕진산성, 그리고 허준 묘소 등을 둘러봤다. 오전에는 폭우가 쏟아져 걱정했지만, 일정이 시작되자 야외 답사에 최적화된 날씨 덕분에 모든 일정을 무사히 마쳤다. 특히 마지막으로 방문한 북한군 묘지에서는 이름도 없이 누워있는 이들을 보며 전쟁의 덧없음과 분단의 아픔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답사를 마친 후, 숙소인 홍원연수원으로 돌아온 회원들은 저녁 식사를 함께하며 교류의 시간을 가졌다. 미국 워싱턴D.C.에서 온 염영환 지부장을 비롯해, 진주, 울산, 부산 등 멀리서 온 회원들의 열정에 반가움이 더했다. 처음 참석하거나 오랜만에 참여한 회원들도 거리낌 없이 어울려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둘째 날 아침을 먹고 카풀을 이용해 참회와 속죄의 성당과 근처에 있는 장준하 선생의 묘소를 방문하며 이틀간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접경 지역인 파주에서 진행된 이번 회원수련회는 단순한 만남을 넘어, 우리 민족에게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