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족사랑
어린이 역사교실 <근현대사기념관의 비밀을 찾아라!>
[초점] 어린이 역사교실 <근현대사기념관의 비밀을 찾아라!> 근현대사기념관에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우리의 근현대사를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상설 교육체험 프로그램인 어린이 역사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근현대사기념관의 비밀을 찾아라!>라는 제목의 어린이 역사교실은 초등 교과과정과 연계된 워크북 활동과 봉황각 무드등 만들기 체험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북구와 민족문제연구소가 주최하고 근현대사기념관이 주관하는 어린이 역사교실은 국가보훈부의 현충시설 활성화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운영되고 있다. 올해는 성북강북교육지원청과 업무협약을 체결하여 4월부터 9월까지 강북구 관내 초등학교 학생들이 총 28회에 걸쳐 근현대사기념관을 방문할 예정이다. 참가 신청 또한 큰 호응 속에서 조기 마감되었다. 5월 16일, 토요일에는 특별한 손님들이 근현대사기념관을 찾았다. 강북구 가족센터에서 9명의 어린이들이 아빠들과 함께 근현대사기념관을 방문하였다. 강북구 가족센터 대상의 어린이 역사교실은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아빠와 어린이들은 2층 강의실에 모여 전체 프로그램에 대한 진행 안내와 근현대사기념관이 설립된 이유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을 들은 후 1층 상설전시실로 이동하였다. 상설전시실에서는 아빠와 어린이가 짝을 이뤄서 <근현대사기념관 비밀을 찾아라!> 워크북의 내용을 자유롭게 채워나가는 시간을 가졌다. 해당 워크북은 근현대사기념관 상설전시의 내용과 연계되어 어린이들이 워크북을 완성하면서 자연스럽게 상설전시실을 관람할 수 있다. 워크북을 완성한 뒤에는 상설전시실에 대한 해설을 들으면서 워크북의 정답을 맞춰보았다. 다음으로 2층 강의실로 이동하여 봉황각 무드등 만들기 체험을 진행하였다. 강북구 가족센터의 어린이들은 아빠와 함께 봉황각을 색칠하고, 조립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마지막으로 강의실의 불을 끄고, 완성한 봉황각 무드등의 불을 켜서
“3·1운동은 민주 공화제로 귀결되는 민족‧민주 혁명이었다.”
[초점] “3·1운동은 민주 공화제로 귀결되는 민족‧민주 혁명이었다.” 현장 보고 <제2회 민연포럼-‘3·1혁명’과 대한민국: 독립국, 민주정치, 자유민을 향하여> 5월 14일, 민족문제연구소와 포럼 진실과 정의가 주최·주관한 제2회 민연 포럼 <‘3·1혁명’과 대한민국: 독립국, 민주정치, 자유민을 향하여>가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열렸다. 이번 포럼에서는 한인섭 서울대 명예교수의 강연을 통해 3·1운동을 ‘3·1혁명’으로 바라보며, 역사적·법률적 의미를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행사는 민족문제연구소 함세웅 이사장의 축하 인사로 시작됐다. 함세웅 이사장은 “한인섭 교수는 시대의 문제를 깊이 고민하며 연구해 온 학자”라며 “오늘 포럼이 ‘3·1혁명’ 정신을 배우는 뜻깊은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강연에 나선 한인섭 명예교수는 “3·1운동을 단순한 독립운동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하며 3·1운동이 일본 제국주의로부터의 독립을 넘어, 민주정치와 자유민의 나라를 지향했던 혁명의 출발점이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운동’이 아닌 ‘혁명’으로 명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한 명예교수는 조선의 독립이 외부 세력에 의해 주어진 결과가 아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이 지속되지 않았다면, 국제회의 때마다 독립운동가들이 조선의 현실을 세계에 알리지 않았다면 해방 이후의 독립 역시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카이로 선언 등을 함께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당시 독립운동은 일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투쟁일 뿐만 아니라 인간 존엄성을 위한 투쟁이었음을 짚었다. 1919년 3·1혁명 독립 선언서는 스스로를 주체적 인간이자 민족으로 선언한 것이며, 이러한 정신이 대한민국의 근간이 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제2회 민연 포럼은 3·1혁명과 독립 선언서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고, 한 사람의 움직임이
국군조직법 개정을 통한 국군 정통성 강화 법제화 추진 토론회 개최
[초점] 국군조직법 개정을 통한 국군 정통성 강화 법제화 추진 토론회 개최 이성윤 민주당 의원은 4월 18일 국군의 역사적 정통성을 법률에 명시하는 내용의 국군조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의 취지는 국군은 임시정부와 독립군, 한국광복군의 역사와 정신을 계승한다는 점을 법에 명시하고 장병과 사관생도에 대한 항일 독립운동 역사교육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4월 28일 국회의원회관 제10간담회의실에서 이성윤 의원실 주최로 ‘국군조직법 개정을 통한 국군 정통성 강화 법제화 추진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윤경로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상임대표가 좌장을,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이 발제를, 방학진 사무처장과 정형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박사가 각각 토론을 맡았다. 이준식 전 관장은 발제에서 “임시정부는 처음부터 한국광복군을 ‘국군’으로 불렀으며 이는 한자 문화권에서는 처음”이며 또한 임시정부는 “한국광복군은 단순히 독립전쟁을 수행하는 군대가 아니라 민군일치의 원칙에 따라 민주공화국 건설의 책무까지 맡은 군대 즉 국민의 군대”로 인식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의병-독립군-한국광복군으로 이어지는 독립전쟁의 역사가 있는데도 남이 만들어준 군대를 자신의 뿌리로 여기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끝으로 “일부에서는 국민의 군대를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군대’로 의미를 축소하고 있으나, 독립전쟁 과정에서 확립된 국군의 개념은 군 통수권자의 군대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군대를 의미하는 만큼 군사 권력의 원천은 국민이라는 사실을 국군 관련 기본법에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학진 사무처장은 토론에서 국군조직법 개정 전이라도 군인 대상으로 독립군가 교육, 독립운동 사적지 및 민주묘지 답사,
민족사랑 2026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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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독립운동을 기억하십니까?
[후원회원마당] 소년독립운동을 기억하십니까? 이주영 어린이문화연대 상임대표 1. 소년독립운동이 소외당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1일자 아침 신문을 읽다가 「일제 맞서다 옥고 치러도…10대들 독립운동 인정 ‘높은 벽’」이라는 기사 제목1에 눈길이 멎었습니다. 기사를 읽어 보니 짐작한 대로 일제강점기에 어린 나이로 독립운동에 기여했지만 단순히 어리다는 이유로 정부 서훈에서 제외된다는 내용입니다. 1931년 9월, 전남 완도군 대신리 유치원에서 당시 15살이던 윤덕율 소년이 ‘일본어와 국어’라는 제목으로 웅변하였답니다. 우리 말과 한글을 잘 살려서 써야 한다는 내용인데, 웅변이 끝나자마자 일제 경찰한테 마을 사람 7명이 끌려갑니다. 그중 윤덕율 소년을 지도한 야학교사 고 김병규(당시 44살) 씨는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고, 다른 청년 5명도 각각 징역 1년∼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답니다. 그러나 15살로 미성년자였던 윤덕율 소년은 열흘 동안 폭행을 비롯한 가혹행위를 당하고 풀려났다고 합니다. 해방 후 6명은 독립운동가로 서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날 웅변한 윤덕율 소년은 그동안 8차례나 서훈 신청을 했지만 계속 탈락했다고 합니다. 그 까닭이 웅변 사실과 체포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판결문에 ‘내용도 모르면서 지도교사가 써준 대로 낭독만 했 다’라고 쓰여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례는 그나마 조금 알려진 독수리소년단에서도 발견됩니다. 독수리소년단은 경기도 이천군 장호원에서 8세에서 17세 소년 14명이 만든 비밀모임입니다. 체력을 길러서 18살이 되면 만주 독립군으로 가겠다는 꿈을 갖고 체력을 단련함과 더불어 군자금을 모으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1942년 3월 초에 장호원 읍내와 버스 뒤에 항일 구호를 붙인
간도특설대 선전 화보와 매일신보 관련 기사
[자료소개] 간도특설대 선전 화보와 매일신보 관련 기사 이번 호에 소개할 자료는 『동맹사진특보(同盟寫眞特報)』 1943년 1월 1일자의 간도특설대(間島特設隊) 선전 화보와 『매일신보』 1943월 1월 11일자의 「현지보고 – 반도징병제에 선구(先驅)하는 간도특설대의 활약」 기사이다. 1942년 12월말 일제의 국책통신사인 동맹통신사(同盟通信社)는 1943년 신년호 준비를 위해 나카무라(中村) 특파원을 간도성 연길현 명월구로 파견했다. 나카무라 특파원은 북풍한설 속에서 간도 일대의 항일무장세력을 토벌하고 소만 국경의 수비를 위해 복무하는, 조선인으로 구성된 ‘간도특설대’를 취재하고 이 부대의 위용과 공적을 칭송하는 화보와 기사를 작성해 『동맹사진특보』 1943년 신년 화보와 『매일신보』의 현지 보고 기사로 내보냈다. 이 화보와 기사에서는 “북변 진호에 철벽의 방비로 지키는 만주국군의 정예” “북변 진호의 중책을 맡아 황군과 협력, 빙설의 광야에서 활약하는 용사” “가혹한 한파에 맞서 철화(鐵火)의 맹훈련을 이어가는 용사” “일만공동방위에 민족협화의 꽃” “엄정한 군규, 충성과 유신의 대도를 매진하는 그들”이라고 간도특설대를 과대 포장하여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과연 간도특설대의 활약상을 선전하는 내용을 1943년 신년 화보와 기사로 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 개시로 일제는 전장 확대로 인한 병력 보충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일본 본토는 물론 식민지와 괴뢰국 즉 조선, 대만, 만주국, 남양군도 등에서 징병제를 실시해 부족한 병력 수급을 해결하고자 했다. 만주국에서는 이미 1941년 징병제를 전면 시행했고, 조선에서는 1943년 3월 징병제를 공포, 8월에 시행했으며 아울러 10월에 학도지원병제를 실시했다. 이러한 징병제 시행 일정을 감안할 때 1943년 1월초에 간도특설대
“요강을 바칩시다!” 강연꾼 이동화
[연구소 글방 25] “요강을 바칩시다!” 강연꾼 이동화 권시용 선임연구원 1937년 2월 16일 일본 도쿄시의회 선거가 있었다. 이때 도쿄시 후카가와구에서 입후보한 이동화는 ‘반도 출신’으로서는 최초로 시의원에 당선되는 영예를 안았다.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나 큰 뜻을 품고 도쿄에 건너가 분투하기를 20년, 일본 제국의 심장부에서 일본인 유력자들을 제치고 조선인 최초로 시의원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언론은 일본 제국의회 중의원 의원이 된 박춘금이 노동계급의 추대로 당선된 것이라면, 이동화는 인텔리 계급의 지원을 받았다는 점을 부각했다. 영예의 자리에 선 이동화에게 지난 20년의 기억이 차례차례 스쳐 지나갔다. 강연꾼의 등장 이동화에게는 ‘강연꾼’, ‘선전꾼’이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이동화는 인기 있는 강연가였고, 강연은 그의 삶을 이끌어 간 기관차였다. 이동화가 강연을 삶의 동력으로 선택하게 된 계기는 1920년의 일본 대학생단 순회강연이었다. 이동화는 1893년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이장식은 교장과 면장을 역임한 ‘엄청난 일본 우호가’였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일본에 친밀감을 가지고 일본을 동경하는 가정환경에서 성장했으리라고 추정된다. 사립 진명학교,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한 이동화는 1916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어를 배운 후 니혼대학에 입학했다. 1920년 7월 29일 일본 도쿄 각 대학 학생들로 조직된 순회강연단이 부산에 상륙했다. 이들은 ‘일선융화를 목적으로 하는 학생단’을 표방했다. 와세다 대학 설립자이자 총리대신을 지낸 오쿠마 시게노부, 대아시아주의 주창자이며 일본 우익의 대부 도야마 미쓰루, 정치가 시마다 사부로의 후원을 받은 이들은 조선을 시찰하며 동시에 일선융화를 대대적으로 선전하려는 목적을 가진 강연단이었다.
강우규 의사의 항일의거와 관련한 몇 가지의 자료보완(2)
[특별기고] “몸은 있으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상이 없을소냐!” – 강우규 의사의 항일의거와 관련한 몇 가지의 자료보완(2) 이순우 특임연구원 (4) 강우규 의사가 직접 그렸다는 수류폭탄의 모양 스케치 『매일신보』 1920년 1월 30일자에 게재된 예심결정문을 보면 강 의사가 남대문역두에서 사용한 수류폭탄의 정체와 입수경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된 내용이 나온다. …… 수월 전에 동부 시베리아 ‘우수리’철도의 어떠한 역[청룡역]에서 어떠한 노국사람[러시아인]에게 사용법을 배워가지고 사두었던 주석으로 만든 예화수류폭탄(曳火手榴爆彈, 그 형상과 구조로부터 미국제 영국식의 예화수류탄이라고 추정하는 것) 1개를 가지고 그것으로써 총독을 살해할 목적을 달하고자 다시 포렴사덕[블라디보스톡]에 가서 그 폭발탄은 헝겊조각에 싸서 허리에 차고 교묘히 숨어서 동년 6월 11일 동지를 출항하는 기선 월후환(越後丸, 에치고마루)을 타고 동월 14일 아침에 조선 원산부에 상륙하여 …(중략) … 오른손으로 폭탄을 끄집어내어 장치한 안전전(安全栓. 안전핀)을 빼어들고 총독을 목격하여 폭탄을 던졌는데 그 폭탄은 총독이 탈 마차 앞 약 7보(步)의 거리 되는 곳에서 큰 소리를 내이며 폭발되고 폭탄의 조각은 사방으로 비산하여 그중 두어 개의 폭탄조각은 총독의 탑승한 마차에 맞고 한 개는 마차 뒤를 뚫어 사이토 총독의 허리에 띤 혁대를 손상케 하였을 뿐이므로 총독은 다행히 무사하였으나 사면으로 헤어지는 탄환 조각으로 그 주위에 있던 (하략) 『조선공론』 1924년 9월호에 수록된 강우규 폭탄사건 회고록 관련 기사에는 “강우규가 몸소 그려 보여준 폭탄의 그림”이라는 스케치 한 장이 함께 소개되어 있다. 지금까지 알려지지
전범기업 일본제철, 미쓰비시로부터 반드시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고자 힘써 – 대법원 판결 이행 촉구를 위한 방일행동 보고
[초점] 전범기업 일본제철, 미쓰비시로부터 반드시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고자 힘써 – 대법원 판결 이행 촉구를 위한 방일행동 보고 이번 방일행동은 2018년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죄와 배상을 거부하고 있는 전범기업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에 판결 이행을 강력히 촉구하기 위해 추진되었다. 96세의 고령인 강제동원 피해자 정신영 할머니와 유족인 이창환, 정종오 씨, 그리고 한일 시민단체들이 함께 도쿄를 방문하여 가해 기업의 본사를 직접 항의 방문하고 사죄를 요구했다. 방일단은 매달 전범 기업 본사 앞에서 열리는 ‘마루노우치 행동’ 집회에 합류했다. 정신영 할머니는 휠체어에 의지한 채 81년 만에 도쿄 미쓰비시중공업 본사를 방문하여 사죄와 배상을 담은 요청서를 전달하려 했으나, 기업 측은 “담당자가 없다”거나 “예약이 되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며 면담을 거부하고 이들을 문전박대했다. 일본제철 역시 책임 회피와 무대응으로 일관하며 비겁한 태도를 보였다. 정신영 할머니(피해자 원고)는 “일본에 가면 공부도 시켜주고 돈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14살에 나고야로 끌려갔지만, 현실은 배고픔과 강제노역뿐이었다”고 회상했다. 특히 사죄 대신 ‘탈퇴 수당’ 명목으로 99엔(약 931원)을 보낸 일본의 행태에 대해 “과잣값도 안 되는 돈을 왜 보냈느냐”며 격분했다. “100세가 되더라도 죽기 전에는 반드시 사과를 받아내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밝혔다. 이창환 씨(유족)는 일본제철 강제동원 피해자 고 이춘식 씨의 장남으로서, “일본제철은 뒤로 숨지 말고 강제동원의 불법성을 인정하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라며 배상을 받을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결의했다. 정종오 씨(유족)도 미쓰비시 히로시마조선소로
4.4 내란청산 사회대개혁 주권자 승리의 날, 시민행동 부스 참여
[초점] 4.4 내란청산 사회대개혁 주권자 승리의 날, 시민행동 부스 참여 민족문제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지난 4월 4일 〈4.4 내란청산 사회대개혁 주권자 승리의 날 시민행동〉 부스에 함께했다. 〈당신의 민주주의를 기록합니다〉를 주제로 끝나지 않은 내란과 전쟁의 위협 속에서 민주주의를 지켜낸 시민들을 기억하고, ‘전쟁 반대! 야스쿠니 반대!’ 활동을 알리기 위해 설치한 부스에서는 지난해 박물관에서 개최한 긴급전시행동 〈민주주의와 깃발〉 기록집 발간 안내와 기록집 배부 사전 신청을 받았다. 전시 개막 1주년에 맞춰 발간 예정인 기록집에는 윤석열 탄핵과 내란 청산을 위해 12월 3일부터 4월 4일까지 123일간 시민들의 투쟁과 연대의 흔적이 담길 예정이다. 이날 기록집 발간 홍보뿐만 아니라 야스쿠니 무단 합사의 문제점을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는 활동도 함께 진행했다. 시민들은 침략신사 야스쿠니의 실상에 대한 설명을 듣고 “NO WAR! NO YASUKUNI! YES PEACE!”라는 문구의 피켓을 만드는 작업에 동참했다. 완성된 피켓은 8월 도쿄에서 열릴 ‘야스쿠니 반대 촛불행동’에 참가자들이 직접 들고 행진할 예정이다. 2006년부터 이어온 촛불행동은 올해로 21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시민행동 부스 행사에 참여하지 못해 아쉽다면, 현재 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세상을 바꾼 시민, 함께 만든 역사〉 전시에서 ‘야스쿠니 반대 촛불행동’에 사용될 현수막 함께 만들기에 참여할 수 있다. 연구소와 박물관은 지난 2025년 12월 시작된 ‘야스쿠니 한국인 합사 철폐 소송’ 지원 등 앞으로도 관련 활동을 활발히 펼칠 계획이다. 다음 달 예정된 긴급전시행동 〈민주주의와 깃발〉 기록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