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huge collection of 3400+ free website templates, WP themes and more http://jartheme.com/ at the biggest community-driven free web design site.

민족사랑

연구소 후원회원들에게 면 마스크 기증

2020년 4월 21일 217

[초점] 연구소 후원회원들에게 면 마스크 기증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로 전세계적인 위기 속에서도 우리나라는 수준 높은 시민의식으로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어 어려운 가운데 서도 희망을 보게 된다. 연구소는 이번 사태가 진정되고 다시 일상을 회복할 때까지 후원회원과 그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면서 전국 65세 이상 후원회원 약 600명에게 면 마스크를 발송했다. 호흡기 증상이 있거나 감염 위험이 높은 환경에서는 보건용 마스크 사용이 필수적이지만 밀집도가 낮거나 환기가 잘 되는 곳 등 감염 우려가 낮은 환경에서 건강한 일반인을 위한 보조적 예방수단으로 당국에서도 면 마스크 착용을 권장하고 있다.

‘효창독립커피’ 출시

2020년 4월 21일 902

연구소는 국내외 후원회원들의 정기적인 후원금 외에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노력하는 기업과 자영업자 분들의 기부금도 적지 않다. 4월 8일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는 ‘효창독립커피협약식’이 열렸다. 함세웅 이사장과 성빈인터내셔널 전혁준 대표이사 사이에 체결된 이번 협약에서 성빈인터내셔널은 효창독립커피 매출의 10%를 매달 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기부 키로 했다. 효창독립커피 사업은 2018년 김태욱 후원회원(전 장안대학교 교수)의 제안과 기획으로 커피·원두 판매사인 ㈜카페리즈(대표 강인규)와 유통 전문업체인 성빈인터내셔널(대표이사 전혁준)이 기업의 사회적책임을 다하기 위해 자사가 판매, 유통하는 커피 매출의 일정액을 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기부하기로 뜻을 모으면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뜻을 전달받은 연구소는 두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 이 사업을 지속 가능한 형태로 발전시키기 위해 독창적인 커피 브랜드 제작을 제안하였다. 그 결과 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 인근으로 독립운동의 상징적 장소 중 하나인 효창공원에 착안하여 ‘효창독립커피’로 제품 이름을 결정하고 첫 번째 효창독립커피 디자인 인물로는 효창공원 임정요인 묘역에 모셔져 있는 동암 차리석 선생을 정하였다. 효창독립커피 디자인은 평소 독립운동가 작품으로 유명한 젊은 그라피티 작가 레오다브(Leodav)가 참여하였다. 또한 효창독립커피 로고의 ‘獨立’은 대한민국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에서 집자(集字)한 것이다. 동암 차리석 선생의 아드님으로서 효창독립커피 디자인을 허락해 준 차영조 선생은 “평소 흑백 사진으로만 존재하던 아버지께 화려한 새 옷을 선물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면서 “많은 시민들이 효창독립커피를 마시며 나의 아버지 나아가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분들을 한 번 더 생각해 주시길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와 서울시 차원에서도 효창공원을 대표적인 독립운동

민족문제연구소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5 개시

2020년 4월 21일 266

[초점] 민족문제연구소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5 개시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5가 시작되었다. 이번 시즌에서는 다양한 외부 전문가들을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책으로 만나는 한국근현대사’ 코너를 마련했다. 근현대역사를 다루는 신간의 저자들을 초대해 책을 소개하고 근현대 역사를 이야기하는 코너이다. 첫 번째 초대손님은 <첩보 한국 현대사>의 저자인 국사편찬위원회 고지훈 편사연구사이다. 이외에도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의 저자인 한겨레 김효순 대기자를 비롯하여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흥미로운 신간들이 속속 소개될 예정이다.   연구소 식구들이 꾸미는 코너들도 있다. 임헌영 소장의 ‘문학이야기’, 방학진 실장의 ‘시민운동의 현장’, 김영환 실장의 ‘한반도 평화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먼저 소개되는 코너는 임헌영 소장의 ‘문학이야기’이다. 임헌영 소장의 풍부한 지식과 입담으로 즐거운 방송이 될 것이다. 또한 올해 60주년을 맞는 4·19혁명, 40주년을 맞는 5·18민주화운동, 70주년을 맞는 한국전쟁과 조선일보·동아일보 100년 등을 다루는 특집방송도 준비하고 있다. 시즌5를 위해 연구소는 지난겨울 연구소 5층에 팟캐스트 녹음과 영상 제작이 가능한 조그만 스튜디오를 마련했다. 급격히 변화해가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적극 대응하고 고유의 컨텐츠 생산 능력을 배가하기 위해서다. 새로운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팟캐스트와 유튜브 영상을 많이 청취해 주시고 아울러 변함없는 성원을 부탁드린다. • 조한성 출판팀장 • 업로드 : 매주 화요일 • 오디오 팟빵 : www.podbbang.com/ch/14024/?e=23229402 • 출연진 : MC 노기환, 임헌영, 방학진, 김영환, 조한성, 권시용, 초대손님 • 연출 : 김세호 PD • 촬영 : 오경아

지고의 희생은 찬연한 역사를 창조한다

2020년 4월 21일 638

[소장자료 톺아보기•14] 지고至高의 희생은 찬연燦然한 역사를 창조한다 <민권투쟁> – 민주혁명의 역사적 기록 “인간 기본 권리의 부활과 억압당한 민권을 쟁취하기 위하여 조국의 부름에 奮然히 총궐기한 전국 애국학도의 피의 의거는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靑史에 기록될 英勇한 민권의 투쟁이었다. 또다시 있어서는 안 될 폭정에 吊鍾을 울리고 민권의 승리를 이룩한 이 투쟁은 감격적 세기의 軌道에 絢爛한 역사를 창조하였다. 이제 우리는 영원히 기억될 민주혁명의 교훈을 받들어 「제2공화국」의 밝아오는 여명기에부여된 과업을 수행하여 원한의 흉탄에 쓰러져 간 영혼들에 보답하여야 할 것이다! 여기피흘린 자죽처럼 엮어진 민권투쟁의 이 적은 기록을 삼가 비통하고 거룩한 희생으로 散華한 젊은 애국학도들의 영전에 바치나이다.” – 편집인 일동, 단기 4293년 5월 19일-   이번에 소개할 자료는 올해로 60년을 맞이한 4월혁명을 생생하게 기록한 사진 화보이다. 서울의 동방사진뉴스사에서 1960년 5월 23일 <동방사진뉴스> 제180호 임시증간호로 발행한 것으로 총 51쪽으로 구성하여 <민권투쟁 – 민주혁명의 역사적 기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승만 독재정권의 부정선거에 대한 반대로 시작한 1960년의 4월혁명은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던 2월 28일 대구학생시위를 시작으로 3월 15일 마산 시위, 4·18 고려대생 시위에 이어 혁명의 절정에 이른 4월 19일의 대규모시위와 4·25 대학교수단 시위로 전개되었다. 특히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던 마산상고 김주열 군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이승만 정권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학생과 시민들의 시위가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 지방에서 발생하였다. ‘피의 화요일’이라고도 불린 4월 19일

수원화성 방화수류정 언덕에 자리했던 순직경찰관초혼비 3•1만세운동 때 처단된 일본인 순사들을 위한 기념물

2020년 3월 25일 506

[식민지 비망록 56] 수원화성 방화수류정 언덕에 자리했던 순직경찰관초혼비 3•1만세운동 때 처단된 일본인 순사들을 위한 기념물   이순우 책임연구원   수원화성 팔달문 쪽에서 성벽 옆의 계단길을 삼백미터 남짓 따라 올라가면 서남 암문 앞쪽에 이르러 숲속의 작은 빈터에 자리한 ‘3.1독립운동기념탑’을 만나게 된다. 이것은 1969년 3월 1일 ‘삼일독립기념탑’이란 명칭으로 중포산(中布山)에 조성되었던 것을 삼일동지회(三一同志會, 1969년 4월 12일 창립)에 의해 그해 10월 15일에 다시 지금의 자리로 이전 건립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이 기념탑 바로 옆에는 이것과 함께 옮겨온 약간은 이색적인 또 다른 기념비 하나가 남아 있는데,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앞뒷면에 한글로 ‘대한민국독립기념비’라고 새겨넣은 것이 눈에 띈다. 한쪽 옆에는 ‘수원읍민 수원군내 학생 일동’이라고 되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단기 4281년 8월 15일 건립(유근홍 씀, 이상훈 만듬)’이란 글씨가 있다.   수원 팔달산에 자리하고 있는 ‘대한민국독립기념비’의 모습이다. 원래 수원화성 화홍문 옆 방화수류정 언덕에 있었으나 1969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동아일보> 1949년 1월 18일자에 수록된 ‘대한민국독립기념비’ 제막 관련 기사이다. 일제 때 조성된 ‘순직경찰관초혼비’를 헐어내고 바로 그 자리에 이 비석이 건립되었다.   이 비석의 건립 내력이 궁금하여 신문자료를 찾아보았더니, 한참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동아일보> 1949년 1월 18일자에 수록된 「수원에서 대한독립기념비 제막식 성대 거행」 제하의 기사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수원] 잔악무도한 왜적을 이 땅에서 몰아내고 또 그대들이 세운 가증한 공비를 부시고

“대한의 광복을 죽기로 맹세한 땅” 해간도 항일독립운동의 본거지를 가다

2020년 3월 25일 448

[기고] 항일운동 유적지 취재기 “대한의 광복을 죽기로 맹세한 땅” 해간도 항일독립운동의 본거지를 가다 이은지 YTN 라디오 PD   과거 역사를 더듬어보고 미래로 이어주는 중간지점이 한·러수교 30주년이라고 생각해요. 과거와 미래를 잇는 데에 연해주 독립운동 유적지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러시아가 소련의 많은 레거시(전통)를 부정했는데 현대까지 계속 유지되는 것 중 하나가 ‘꺼지지 않는 불꽃’ 이라는 겁니다. 조국을 위해 싸운 무명용사들을 우리 후손들이 기억하겠다, 그들의 불빛이 꺼지지 않게 하겠다는 거죠. 우리에게도 이런 정신이 필요합니다. 독립운동에는 좌우가 없습니다. 이념 때문에 잊힌 러시아의 항일독립운동 유적지를 우리가 새롭게 발굴하고 체계화하여 지켜나가고, 의미를 재조명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오성환 총영사 인터뷰에서   역사는 기억을 둘러싼 투쟁이다 지난해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서간도를 답사한 후 제작한 라디오 다큐멘터리 〈서간도 독립운동가 무명씨의 꿈〉(연출 : 이은지, 구성 : 홍기희)에 담았던 문장입니다. 잊혀진 역사를 복원하는 데에도 이런 ‘투쟁’은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필수적인 과정은 시간을 다툽니다. 기억은 한 세대를 거치면서 그 양과 선명도가 현저히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연해주 독립운동가의 대부라고 불렸던 ‘페치카 최’ 최재형의 손자인 최 발렌틴 러시아 독립유공자후손협회장이 지난 2월 14일 별세했습니다. “이제라도 찾고, 우선 기억하는 것부터 기록해놓아야 한다”던 그의 한마디가 마음에 사무칩니다. 이에 저는 지난해 11월 해간도 항일독립운동 본거지라고 불리는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수리스크 일대를 답사하고 온 기억들을 이곳에 기록합니다. 연해주(沿海州)는 해간도(海間島)로 불리며 만주의 북간도, 서간도와

민족문학연구회, <겨레의 큰 별들> 출간

2020년 3월 25일 394

[초점] 민족문학연구회, <겨레의 큰 별들> 출간 민족문학연구회(회장 맹문재)는 지난해 광복절에 펴낸 독립운동가 기림시선 1집 〈독립운동의 접두사〉에 이어 올 3월에 기림시선 2집 〈겨레의 큰 별들〉을 민연출판사에서 출간했다. 이 시집에는 민족문학연구회 소속 작가 45인이 쓴 가네코 후미코와 그 남편 박열, 김구, 민영환, 유관 순, 유일한, 이동녕, 장준하, 차리석, 한용운 등 45인의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 45편이 실렸다. ‘책을 펴내며’에서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해 삶을 바친 그 분들의 삶과 정신을 올곧게 되찾아 바로 세우고 그 정신의 바탕 위에서 우리를 성찰하는 것은 단순히 그 분들의 업적을 기리는 의미만이 아니라 우리가 처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정신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라며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기림시선의 편찬작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책에는 45편의 기림시뿐 아니라 45인의 독립운동가 약력을 수록했고 김성동 작가의 발문 「‘친일파’가 아니라 ‘민족반역자’다」를 실었다. 민족문학연구회는 기림시선을 앞으로도 꾸준히 발간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101년 전 3·1운동의 함성 소리가 귀에 맴도는 요즘,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김산의 <아리랑>로드를 찾아서(2)

2020년 3월 25일 493

[후원회원 마당] 김산의 <아리랑>로드를 찾아서(2) 주동욱 서울 송파 후원회원 광주(광저우)에 도착하다 2020년 1월 10일 ‘아리랑 답사단’ 33명이 4박 5일 일정으로 중국 광주(광저우, 廣州)에 도착했다. 민족문제연구소 광동지부 회원들이 공항에 나와 반갑게 맞이했다. 〈아리랑 로드〉 답사는 독립운동 유적지 발굴과 연구에 앞장선 광동지부 회원들이 기획했다. 중국 남방지역 역사 답사는 드문 편이다. 이번 〈아리랑 로드〉는 독립운동사 전공자도 처음 방문하는 곳이 많고, 김산(金山)의 삶에서 가장 치열했던 현장을 찾아가는 답사여서 관심을 끌었다. 버스에서는 이정찬 교수의 열정넘친 중국 근대사 강의가 날마다 이어졌다. 〈아리랑〉과 〈김산평전〉을 읽는 답사자도 눈에 띄었다. 첫날 광주공항에서 동쪽으로 험한 길과 산을 넘어 용문현(龍門縣) ‘홍군 4사(紅軍 4師) 주둔지’에 도착했다. 1927년 12월 광주봉기(광저우기의) 실패 후 약 1,200여 명의 봉기군이 화현(花縣, 현재 화두 화성소학교)에서 개편한 부대가 홍군 4사이다. 김산을 비롯한 조선인 20여 명이 홍군 4사에 있었다.   고담진과 해풍 답사 이튿날 고담진(가오탄, 高潭鎭)의 ‘붉은 거리’를 산책하며 본격적인 답사에 나섰다. 홍군 4사부대가 잠시 머물렀던 ‘붉은 거리’는 1927년 러시아혁명 10주년을 맞이해 조성되었다. 마르크스 동상이 세워진 광장을 중심으로 마르크스거리, 레닌거리가 이어졌고 건물마다 사회주의 혁명 구호가 적혀있다. 답사단은 연화산(蓮花山) 선인동을 거쳐 해륙풍(하이루펑, 海陸豊)의 주요 도시인 산웨이(汕尾) 해풍(하이펑, 海豊)으로 향했다. 광동성 해풍현(海豊縣)과 륙풍현(陸豊縣)을 합쳐 부르는 해륙풍은 중국 최초로 농민소비에트가 세워진 곳이다. 농민혁명가 팽배(펑파이, 彭拜)가 일찍이 해풍에서 농민운동을 전개하며 농민자위군을 창설했다. 광주에서 반혁명

식민지 관료의 옷차림까지 규정하다

2020년 3월 25일 588

1910년 8월 29일, 총칼로 대한제국을 삼킨 일본은 원활한 식민통치를 위해 각종 제도를 꼼꼼하게 손보기 시작했다. ‘한국병합조약’ 체결과 함께 제3대 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를 임시총독으로 임명하고 ‘조선 총독은 법률이 필요한 사항을 제령으로 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의 긴급 칙령을 발포하였다. 그리고 1910년 9월 30일 총독부 및 소속관서관제를 공포하여 총독부를 설치했다. 이와 함께 조선총독부 관리들의 옷차림도 새롭게 규정하였다. 이번에 소개할 자료는 조선총독부 관리의 복식을 살펴볼 수 있는 <제국복제요람帝國服制要覽>(이하 요람)이다. 요람은 일본이 조선을 강제 병합한 바로 다음해인 1911년(명치 44년) 1월 1일, 일본의 오사카매일신문大阪每日新聞 부록(제9828호)으로 발행되었다. 조선총독부 및 소속관서직원 복제는 1911년 6월 23일(칙령 제176호)에 제정되었기 때문에 요람은 조선총독부복제는 통감부 시절의 복제를 그대로 따라한 것[襲用]이라고 해설하고 있다. 도판 상단의 ‘帝國服制要覽’을 중심으로 우측에 ‘육군복제’, 좌측에 해군복제를 배치하고 부분별로 상세하게 그림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복제 중 군복의 비중이 상당함을 알 수 있다. 요람의 중앙에는 제복을 입은 군인과 관료들의 풍경을 그린 삽화를 수록하여 제복 착용의 예를 보여준다. 삽화 둘레는 일본 본국에서 착용하였던 ‘문관대례복’, ‘외교관대례복’, ‘유작자有爵者대례복’ 등 관료들의 복제와 ‘경찰관’, ‘사법관’, ‘세관’, ‘철도원’ 등 소속관서 직원 복제가 나열되어 있다. 또한 일본이 식민지로 삼았던 ‘조선총독부’를 비롯하여 대만, 관동주關東州 지역의 관복자료가 소개되어 있다. 테두리에는 일제의 훈장을 그려 배치하였으며 요람의 하단 양 옆에는 복식과 훈장에 대한 ‘도해圖解’를 넣어 요람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하였다. 즉 요람은 일제와 식민지 관료들이

역사학계의 녹두장군 이이화 선생 별세

2020년 3월 25일 177

[초점] 역사학계의 녹두장군 이이화 선생 별세   민족사 정립과 역사 대중화에 헌신해온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이 3월 18일 오전 11시경 향년 8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이이화 선생은 최근까지도 전봉준장군동상건립위원회 이사장, 식민지역사박물관건립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목표를 달성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여왔으나, 담도암 진단에 따른 두 차례의 수술 후 5개월 간 투병 끝에 영면에 들었다. 장례는 고인이 마지막까지 관여한 (재)전봉준장군동상건립추진위원회,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역사문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 등이 중심이 되어 장의위원회를 구성하여 시민사회장으로 치러졌다. 코로나바이러스감 염증19 사태에도 500여 명의 조문객이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아와 고인을 추모했다. 21일 오전 10시 약식으로 치러진 영결식에도 100여 명이 참석해 이이화 선생과 마지막 이별의 시간을 가졌다. 추모 행렬은 고인이 전국을 누비며 많은 이들의 뜻을 모아 세운 전봉준장군 동상을 거쳐 자택 헤이리에서 노제를 올렸다. 평소 가까운 이웃으로 정을 나누었던 헤이리 주민들도 노제에 함께했다. 장지는 파주 동화경모공원에 마련되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김거성 시민사회수석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로 보내 고인의 업적을 기리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적을 기려 1등급 국민훈장무궁화장을 추서, 20일 오전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고인의 영전에 훈장을 바쳤다. 연구소는 직접 조문하기 어려운 시민들을 위해 19일 오후부터 연구소 홈페이지에 추모사이트를 개설, 운영하고 있다. 이이화 선생의 연보와 연구 업적을 정리한 논저목록, 170여 장의 사진과 추모영상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