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족사랑
남북화해·협력 기원, 백두대간 산행
[초점] 남북화해·협력 기원, 백두대간 산행 1998년 11월 18일 시작한 금강산관광은 2008년 8월 11일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으로 인해 그 이튿날부터 전면 중단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 연구소는 금강산관광이 시작된 27주년을 기억하고 금강산관광 재개를 통한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11월 15일, 16일 이틀 동안 ‘남북 화해·협력 기원 백두대간 산행’을 진행했다. 우리 연구소 회원 30명은 강원도 고성군이 제공한 버스로 구리역을 출발하여 옛 알프스스키장 주차장에서 마산봉까지 왕복 4시간을 산행했다. 쾌청한 날씨 덕분에 마산봉 정상에서는 금강산의 여러 봉우리들이 육안으로도 잘 보였다. 하산 후 저녁 식사 자리에 동석한 함명준 고성군수는 새 정부 출범으로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동해북부선 철도와 도로는 물론 백두대간도 다시 이어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금강산콘도에서 숙박한 회원들은 이튿날 폐쇄된 제진역과 현대아산 고성사무소 등을 둘러보고 새로 개관한 화진포 셔우드홀 문화공간 관람을 끝으로 다시 구리역에 도착했다. 첫날 산행에는 여러 차례 백두대간을 등반한 구자명 회원(전 천안 한마음고 교장)이 길잡이를 맡아 수고해 주었다. 앞으로도 우리 연구소는 금강산은 물론 철길, 도로 등 끊어진 백두대간을 잇는 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일 예정이다. • 방학진 기획실장
제19회 임종국상 시상식과 제36주기 추모식
[초점] 제19회 임종국상 시상식과 제36주기 추모식 11월 12일 수요일 오후 6시 30분 서울 종로 교원 챌린지홀에서 회원 및 각계 인사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9회 임종국상 시상식이 열렸다. 시상식은 장병화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장의 기념사를 시작으로,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의 축사, 임종국 선생의 일대기 영상 상영, 윤경로 심사위원장의 선정경위 설명, 시상과 수상자들의 수상연설, 특별상 수상자 축하영상 상영, 임종국 선생 아드님 임정택 님의 인사, 함세웅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의 인사말 순서로 진행됐다. 올해 수상자 후보 공모에는 학술·문화 부문 18건, 사회·언론 부문 7건 등 총 25건이 올라왔으며, 지난 9월 24일의 예심과 10월 21일 열린 심사위원회 본심에서 열띤 토론 과정을 거쳐 학술부문에 김영범 대구대 명예교수를, 언론부문에는 이은지 YTN라디오 PD를 최종 선정하였다. 아울러 긴급전시행동〈민주주의와 깃발〉전 기증자를 만장일치로 제19회 임종국상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하였다. 심사위원장인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을 비롯해 도면회 대전대 명예교수, 이지원 대림대 명예교수, 장완익 변호사, 조재곤 서강대 연구교수, 한상권 덕성여대 명예교수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학술부문 수상자인 김영범 대구대 명예교수는, 의열투쟁을 비롯한 독립운동사 연구에 독보적인 업적을 쌓아온 사회학자로서, 날카로운 문제의식 아래 제주4·3사건의 진상규명 등 현실참여에도 앞장서 왔다. 수상 저작인 『독립운동의 역사사회학』은 수상자가 오랜 기간 천착해온 의열단과 조선의용대 연구를 집대성한 역저로, 통념에 대한 도전과 폭넓고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사위원회는 독립운동사의 지평을 넓히고 독립운동가 선양사업과 역사대중화 작업에 기여해온 김 교수의
광복 80주년 기념, 항쟁 유적지를 찾아서
[초점] 광복 80주년 기념, 항쟁 유적지를 찾아서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 서울지부(지부장 최수동)는 11월 7일부터 9일까지 2박 3일 일정으로 ‘광복 80주년 기념, 항쟁 유적지를 찾아서’ 답사를 진행했다. 이 답사에는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원은 물론 우리 연구소와 숙명여대민주동문회 회원 등 50명이 참여했다.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역을 출발한 답사단의 첫 방문지는 광주광역시 동구 양림동의 정율성 생가였다. 정율성(1914~1976)은 이육사가 1기로 졸업한 난징의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2기생이다. 이후 조선민족혁명당, 조선민족해방동맹, 화북조선혁명청년학교 등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했으나 해방 후 북한 정권에 가담한 경력으로 독립운동가 서훈에서 제외되었다. 양림동 생가에서는 정율성의 조카손녀인 정은덕 여사도 함께하며 소감을 밝혔다. 이어서 3·1운동의 중심이었던 양림동 일대와 오월어머니집을 거쳐 옛 전남도청과 헬기 사격을 비롯한 245개의 탄흔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전일빌딩 245, 옛 가톨릭센터였던 5·18민주화운동기록관 등을 관람했다. 답사단은 숙소인 담양청소년수련관에서는 백금렬, 최도은 가수의 노래를 청해 들었다. 노래 공연에 앞서 소설 『소년이 온다』의 실제 주인공인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인 김길자 여사님이 함께해 답사의 의미를 더해 주었다. 답사 이튿날에는 5·18민주묘지와 망월동 구묘지를 참배하고 여순항쟁(10.19)역사관을 관람했다. 박소정(전 순천YMCA 이사장) 여순10·19범국민연대 운영위원장의 안내로 여순항쟁역사관을 관람한 답사단원들은 열악하고 비좁은 역사관을 힘겹게 지켜내고 있는 데에 감사하며 적지만 성금을 전달하고 다음 답사지인 보성 태백산맥문학관을 방문하고 순천만 습지 산책 후 숙소로 이동했다. 마지막날에는 순천만 국가정원을 두루 둘러보고 점심식사 후 서둘러 임종국 선생 추모식이 열리는 천안공원묘원에 도착했다. 추모식을 마친 답사단은 무사히 서울에 도착해 다음에도
제68회 전국역사학대회에서 우리 연구소, ‘논쟁이 되는 역사’ 주제 발표
[초점] 제68회 전국역사학대회에서 우리 연구소, ‘논쟁이 되는 역사’ 주제 발표 제68회 전국역사학대회가 10월 25일(토),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열렸다. 광복 80주년이자 을사늑약 120주년을 맞아 올해 대회는 ‘기억과 기념’을 공동 주제로 채택했다. 우리 사회가 겪어온 역사적 사건과 그 의미를 보존하고 전승하는 과정을 조망하고, 디지털 사회에서 기억과 기념의 역할과 한계를 논의하자는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논쟁이 되는 역사’를 주제로 대회에 참가했다. 제1발표는 이명숙 연구실장이 「친일인물을 둘러싼 기억갈등과 시민의 역사청산운동」을 주제로 발표했다. 발표는 친일인물에 대한 사회적 기억과 그에 따른 갈등, 그리고 이를 극복하려는 시민들의 역사청산운동을 다뤘다. 대표적 사례로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 청산 활동과 마산 지역 ‘열린사회희망연대’의 친일·친독재인물기념사업 반대운동을 살폈다. 특히 지역에서 친일인물을 기념하겠다고 나서는 움직임이 실은 지역 토호 세력과 긴밀하게 연결됐다는 지적이 인상적이었다. 토론에 나선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신 교수는 “과거에 퇴출됐던 기억들이 망각을 핑계로 스물스물 기어 나오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한편, “오늘의 현실에서 친일 청산과 기억 투쟁은 어떠해야 할 것인가”란 물음을 던졌다. 제2발표는 「친일(파) 문제를 밝히는[究明·糾明] 다양한 방식-『친일인명사전』을 중심으로」란 주제로 이용창 연구위원이 맡았다. 이 연구위원은 역사 용어로서 ‘친일·친일파’가 시민권을 획득하는 연원을 정리하고 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편찬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개괄했다. 특히 친일(파) 청산을 거부하거나 ‘회색지대론’처럼 친일 청산을 의미 없는 것으로 평가하는 일련의 움직임을 비판했다. 토론을 맡은 연세대학교 이태훈 교수 역시 “친일문제를 규명하고 성찰하는 작업을 놓고 의미 없는 도그마의 구축이거나 과잉된 민족주의에 의한
을사늑약 120년‧한일협정 60년 기획전시 〈1965, 망각에 가둔 과거 – 부정에 맞선 질문들〉 개최
[초점] 을사늑약 120년‧한일협정 60년 기획전시 〈1965, 망각에 가둔 과거 – 부정에 맞선 질문들〉 개최 을사늑약 120년‧한일협정 60년을 맞아 오래도록 실타래처럼 얽힌 한일 관계를 다시 돌아보는 기획전이 열렸다. 이번 전시는 민족문제연구소·재단법인 역사와책임·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가 주최하고 동북아역사재단이 후원하였고, 10월부터 내년 2월까지 운영될 예정이다. 전시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부 「한일회담을 이해하기 위한 8가지 질문」에서는 한일 관계의 얽힌 실타래의 시작점이 되는 샌프란시스코 체제 강화조약의 문제점과 한국과 일본의 협상에 대한 인식 차이, 그리고 1965년 한일협정 체결 진행 과정을 시기순으로 설명하고 있다. 2부 「굴욕외교 중단하라, 평화헌법 준수하라」에서는 한일협정에 대한 한국과 일본 양국 국민들의 협정 반대 운동의 모습과 연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3부 「나는 싸우고 있다」에서는 한일회담 논의 선상에서 소외되어 아무런 사죄와 배상을 받지 못한 여러 역사적 사건의 피해자 운동사를 상세히 조명하고 있다. 4부 「망각과 부정에 맞선 질문들」에서는 일본군에 포위된 채 강제로 체결된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강력히 주장한 1906년 프랑스 국제법 학자 프랑시스 레이(Francis Rey)의 논문 등 국제법 자료들을 인용하며 을사늑약의 불법성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식민지 불법 강점에 대한 사죄와 반성 없이 1965년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하며 ‘독립축하금’이라는 명목으로 과거사를 봉인시키고자 했다. 이에 대해 을사늑약 120년‧한일협정 60년을 맞아 우리는 어떤 자세로 역사를 올바로 인식할 것인지 박물관은 관람객들의 도전적인 질문을 기다리고 있다. 무료로 배포되는 전시 리플릿에는 이 전시의 이해를 돕는
1905년 7월 러일전쟁 일본측 육군 수뇌부 8인의 봉천 회동 사진
[소장자료 톺아보기 75] 1905년 7월 러일전쟁 일본측 육군 수뇌부 8인의 봉천 회동 사진 이번 달에 소개하는 자료는 류영철 회원(대구 지부)이 기증한 ‘러일전쟁 일본측 육군 수뇌부 8인의 회동 사진(1905.7.26)’이다. 러일전쟁 당시 일본측 육군 수뇌부 전체가 한 자리에 모여 기념촬영한 사진이 희소하여 역사자료로서의 가치가 높다고 판단된다. 또한 회동 장소, 일시와 참석자 이름이 뚜렷이 박혀 있다. 즉 사진 한켠에 “於奉天 明治三十八年(1905) 七月二十六日 黑木大將(구로키 다메모토) 野津元帥(노즈 미치즈라) 山縣元帥(야마가타 아리모토) 大山元帥(오야마 이와오) 奧大將(오쿠 야스카타) 乃木大將(노기 마레스케) 兒玉大將(고다마 겐타로) 川村大將(가와무라 가게아키)”이라고 기록되어있다. 사진이 좋은 재질로 표구되어 있음을 비추어볼 때 이 사진의 위상이 당시 얼마나 높았는지 짐작하게 한다. 1904년 1월 1일 일본군 제3사단이 러시아 제1태평양 함대의 근거지였던 여순항을 함락한 것을 필두로 육상과 해상 전투 양쪽에서 일본군이 러시아군을 격퇴하였다. 1905년 2~3월에 전개된 격렬한 봉천(현재의 심양) 전투에서 일본군이 쿠로파트킨 장군이 이끄는 러시아군을 선양 북쪽으로 밀어부쳤고 1905년 5월 쓰시마해협에서 일본 연합함대가 러시아 발트함대를 격침하여 대승을 거둠으로써 러일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었다. 1905년 7월 러시아군과의 전선이 교착상태에 있자 일본군 참모총장이었던 야마가타 아리토모(①)가 봉천 일대의 전략 요충지를 시찰하였다. 1905년 7월 25일 봉천성에서 야마가타 참모총장을 영접하기 위해 중국에 진주해 있던 육군 수뇌부 대부분이 한 자리에 모였다. 오야마 이와오 만주군 총사령관(④), 고다마 겐타로 만주군 총참모장, 구로키 다메모 제1군 사령관, 오쿠 야스카타 제2군 사령관, 노기 마레스키 제3군
민족사랑 202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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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지역위원회, 조병옥 역사적 과오를 기록하다
[단신] 충남지역위원회, 조병옥 역사적 과오를 기록하다 최근 제주 4·3 역사를 왜곡한 영화 <건국전쟁 2>가 개봉해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우리 연구소 충남지역위원회(위원장 최기섭)는 제주 4·3 당시 민간인 학살 책임자인 조병옥의 역사적 과오를 알리는 표지판을 천안 병천 조병옥 생가 앞에 설치할 예정이다. 안내판 내용은 아래와 같다. 조병옥의 역사적 과오를 기록하다 조병옥(1894~1960)은 공주 영명소학교, 평양 숭실중학교, 미국 컬럼비아대학을 졸업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신간회, 광주학생운동 배후 혐의, 수양동우회 사건 등으로 5년간 수감되었다. 광복 후 한국민주당에 참여하였고 미군정청 초대 경무국장이 되었다. 조병옥은 친일경찰을 pro-JAP(친일파)이 아닌 pro-JOB(직업인)이라고 옹호하면서, 친일경찰들이 미군정을 거쳐 한국 경찰의 주류가 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조병옥의 지휘를 받은 경찰들은 대구 10월항쟁, 제주 4·3, 여수·순천 10.19사건 당시 수많은 민간인 학살을 자행하였다. 제주 4·3 당시 조병옥은 평화적 해결에 반대하고 강경 진압을 주장하며, 서북청년단을 제주도민 학살에 대거 동원하였다. 조병옥은 ‘(제주) 주민 90%가 좌익’이라 규정하고, ‘제주도 사람들은 사상적으로 불온함으로 건국에 저해가 된다면 싹쓸어 버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2025년 4월 제주 4·3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기념하여, 4·3항쟁 당시 민간인 학살을 직접 지시했던 조병옥의 과오를 다시 새겨 기록한다. 2025년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 충남지역위원회·천안지회 제주4·3범국민위원회
소년이 간다
[후원회원마당] 소년이 간다 김순흥 광주지부장 고3 때 5.18을 겪은 소년시민군 김향득 5.27 새벽 계엄군이 쳐들어올 때까지 YWCA를 지키다 잡혀서 뚝뚝한 성격 때문에 유난히 고문을 많이 받았던 소년시민군 손가락 사이에 볼펜을 끼우고 발로 짓밟는 고문으로 ‘볼펜’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소년시민군 고문의 후유증으로 오랫동안 파킨슨병을 앓으면서 마지막 2년은 병원에서 지내다 이제 간다 소년이 간다 소년시민군이 간다 병상에 눕기까지 평생을 카메라를 메고 도청앞 광장을 비롯 5‧18, 세월호, 촛불… 아픈 역사의 현장 구석구석을 백만 장의 사진 기록으로 남긴 역사의 증인 병상에 눕기 전 마지막 5.27 새벽에도 도청앞 광장에서 밤을 새우다가 이제 먼 길을 간다 소년이 간다 소년시민군이 간다 10월 7일 광주 대동고 3학년으로 1980년 계엄군의 전남도청 진압 작전에 맞서 끝까지 현장을 지키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던 김향득 사진작가가 별세했다. 향년 62세. 생전에 고인은 “광주의 민중들은 과거나 현재나 도청으로 모이고, 역사를 바꿔갔다”면서 “광주 곳곳에 우리가 매일 스쳐 지나는 곳곳에 5·18의 역사가 서려 있다”고 말했다.
철원이 낳은 독립운동의 거목 우성 박용만 나신터 비석 제막식
[후원회원마당] 철원이 낳은 독립운동의 거목 우성 박용만 나신터 비석 제막식 김용빈 철원독립운동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독립운동의 의지가 높았던 철원의 기운을 바로 세우고 우성 박용만선생의 독립정신과 열정으로 가득했던 발자취를 기억하고 따르기 위한 나신터 비석 제막식 및 서세 97주기 추모제와 학술 세미나가 지난 10월 17일 선생의 생가터에서 열렸다. 1부 추모제와 제막식은 철원의 단체장, 이장님들과 주민분들 그리고 독립운동가 김철회선생의 후손분들, 독립기념관 이문원 초대관장, 실학 훼밀리 회원 여러분, 광복회 강원지부 김문덕회장, 박용만 선생의 친필로 비석 글씨를 집자한 날개 안상수선생, 대형초상화와 만장을 준비해서 달려오신 김건태선생일행, 그리고 선생의 유적비가 있는 철원초등학교 학생들, 화환을 보내온 우원식 국회의장 등 각계의 관심과 참여 속에 열렸다. 제막식 후에는 2부 행사로 ①선각자 박용만 선생의 활동과 독립운동사에서의 위상 ②1910~1920년대의 출판활동을 주제로 학술 세미나가 진지한 관심 속에 진행되었다. 우성 박용만 선생(1881~1928)은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중리 109번지에서 출생하여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해외에서 계몽운동가이자 언론인, 군인으로 독립의 길에 일생을 받친 독립운동의 거목이었다. 우성은 문무를 두루 갖춘 독립운동가로 미국의 네브라스카주에서 소년병학교를 세우고 독립을 위한 실질적인 무력 투쟁의 힘을 기르기 시작했고 하와이에서는 한인군사조직인 대조선국민군단을 창설하여 무력을 통한 독립투쟁을 줄기차게 준비하였습니다. 언론인으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신한민보, 하와이에서 국민보의 주필 등으로 활동을 하였고 군사 학교에서 필요한 ‘군사수지’ 수첩을 저작하고 모국어를 잃어가는 이주 한인 2세대들을 위한 모국어 교육에도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국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