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

김원봉과 함께 대구 의열투쟁답사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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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회원마당]

김원봉과 함께 대구 의열투쟁답사를 다녀와서

박영희 마을산책

2025년 6월 6일~7일 김원봉과 함께가 주최하고 민족문제연구소와 조선의열단기념사업회가 후원한 답사단은 전통적인 보수의 심장인 대구로 향했다. 12·3 계엄령과 내란죄로 탄핵당한 윤석열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보수의 원조인 대구로…

처음 대구에 내려갈 때는 대구에 어떤 독립운동가와 의열활동을 하신 분들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고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답사를 통해 대구가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사랑하는 아주 특별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새삼 매우 놀라웠다.

1907년 2월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은 일본에 진 빚을 국민들이 대신 갚기 위해 벌인 범국민적인 모금운동이다. 이 운동은 각계각층의 참여를 이끌어 내어 큰 성황을 이루었지만, 일제의 집요한 방해로 인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끝났다. 국채보상운동의 궁극적 목적은 한국의 국권회복에 있었다.

2·28 민주운동은 1960년 2월 28일, 이승만 정권이 야당 부통령 후보의 대구 선거 유세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대구 시내 고등학생들에게 일요일 등교 지시를 내리자, 이에 반발한 학생들이 전개한 시위 사건입니다. 4월혁명 기간에 발생한 최초의 민주화운동을 소개한 2·28 민주운동기념관에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휴무여서 보지 못했으나 민주운동의 시작인 곳에서 김영범 교수님의 설명을 통해 그 당시 대구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대구의 자랑 이육사 시인의 집터와 기념관을 돌아보고 그가 근무했다고 하는 중외일보 지국을 찾아갔다. 아직도 여전히 건물이 남아있어 얼마나 다행이던지 ….. 사라져 버려 흔적도 없는 독립운동 역사의 유적지를 이렇게 볼 수 있다니 감사했다. 또한 대구의 근대문화골목 거리를 걸으면서 이상화 고택, 서상돈 고택,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을 돌아보며 목포, 군산의 근대 골목과 비교하는 재미도 있었다.

최초, 유일의 여성 의열단원 현계옥 주거지 자리와 현정건의 집터는 사라졌지만 그들의 의열활동의 의미를 알리는 표지석 하나라도 세워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현정건과 현계옥은 대구에 와서 처음 들었다. 그만큼 독립운동가들을 잘 알지 못하고 있었던 나 자신이 부끄럽고 앞으로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자리였다. 현정건의 꼿꼿한 모습은 그의 아우인 현진건에 의해 장편소설 『적도(赤道)』에 생생하게 묘사되었다고 하니 이 책도 한번 읽어보면 좋겠다.

첫날 4시간의 대구 답사는 대구에 대한 내 인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보수적인 고장 대구에 조국광복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와 민주주의를 위해 말없이 숨어서 활동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 그분들의 공적을 일일이 나열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6월 7일 둘쨋날 신암선열공원에 가서 잘 조성된, 국내 유일 독립유공자 전용 국립묘지를 보면서 이곳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의 넋을 기리고 대구형무소가 있었던 자리로 가 보았지만 형무소는 사라지고 ‘대구형무소 터’라는 표지판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가끔은 아픈 역사도 기억하고 알리는 그런 공간이 필요한데 그런 아픈 역사를 지우기 바쁘고 기억하지 않는 우리 현실이 너무나 씁쓸하기만 하다.

그 다음 답사는 조양회관. 독립운동가 서상일 선생과 민족지도자들이 민중을 깨우치고 국권을 회복하려는 염원으로 1922년 10월 달 성공원에 건립하였다가, 1984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복원이 잘 되어 있고 그 주변 항일운동기념탑과 주변의 독립운동 동상들은 여성, 학생, 이름없는 백성, 의병 등 다양한 독립운동의 모습을 동상으로 형상화한 것이 특별하게 보였다. 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독립을 위해 헌신하고 염원하고 온몸으로 독립을 쟁취하는 모습에서 큰 감동을 받았고 이곳에 꼭 한번 가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이번 답사를 통해 대구의 참모습을 볼 수 있었고 대구를 좋아하는 도시로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직접 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또 이런 답사가 있다면 다시 한번 참여하고 싶다. 그때는 여러분 모두를 초대하고 싶다.

서울 올라가는 길에 청주에 있는 단채 신채호 묘역을 참배하고 돌아왔다. 단채 신채호의 수형번호는 411번, 이육사 시인의 수형번호 264번. 왠지 마음이 무겁고 대한민국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을 가지고 서울에 도착했다. 이틀간의 짧은 답사지만 여운은 아주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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