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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조병옥 생가에 제주4·3학살 책임 묻는 안내판 설치

2025년 12월 1일 89

[후원회원마당] 조병옥 생가에 제주4·3학살 책임 묻는 안내판 설치 박진우 후원회원, 시민기자 민족문제연구소 충남지역위원회(위원장 최기섭)와 천안지회, 그리고 (사)제주4·3범국민위원회(이사장 백경진)는 11월 9일(일) 천안시 동남구 병천읍에 조성된 조병옥 생가 앞에 해방과 정부수립과정에서 경무부장 조병옥이 행한 학살의 진실을 밝히는 안내판을 설치했다. 시민단체들은 ‘조병옥의 역사적 과오를 기록하다’라는 제목으로 천안시(1995년 천안군수)가 세운 조병옥을 찬양하는 안내판 옆에 학살의 진실을 설명하는 안내판을 설치하여 방문자들이 조병옥의 ‘공’과 ‘과’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지난 4월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 제221차 집행이사회가 제주4·3의 학살과 진실을 밝히는 기록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한 바 있다. 국가유산청 누리집 <한국의 세계기록유산> 내 ‘제주4·3기록물’에는 제주4·3기록물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세계적 냉전이 전 지구적으로 확산, 지역적으로 압축되는 양상을 하나의 사건을 통해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냉전시대의 희귀한 기록물이며, 대한민국 행정·입법·사법부, 미군정 및 미군, 봉기세력 등 제주 4·3 당시 이해 당사자들이 각자 생산한 기록물, 사건의 서사적 진실을 담고 있는 희생자와 유족의 피해신고서와 구술증언, 그리고 민간과 정부기관의 진상규명과정 기록 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어, 제주 4·3의 완전한 기록물로 볼 수 있다. 제주 4·3의 해결 과정은 국가폭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라는 폭력성을 넘어 화해와 상생이라는 인간성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점에서 제주4·3기록물은 전 세계 과거사 해결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인권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의미 있는 기록으로 볼 수 있다. 제주4·3 세계기록유산은 ‘진실을 밝히다: 제주 4·3기록’이라는 명칭으로 등록되었으며, 1948년 군법회의 수형인 명부와 옥중 엽서 등

하얼빈 역사 기행 답사기

2025년 12월 1일 87

[후원회원마당] 하얼빈 역사 기행 답사기 김윤슬 윤슬국어학원장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민족문제연구소의 문을 두드린 지 15년이 훨씬 넘었다. 서울에서 지낼 땐 그래도 민족문제연구소 활동에 관심을 두기도 했는데 제주라는 작은 섬에 온 뒤로는 연구소 활동은 보내주시는 소식지로 접하는 것이 전부였다. 대학 입시를 위해 한국사는 30점 이상만, 4등급 이내에 만들면 된다고 말하는 학생들을 보며, 이 아이들에게 교과서에서 알려주지 않는 역사도 알려주고 싶었다. 선조들이 피와 눈물로 지켜주신 이 나라의 이야기를 단순히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님을 알려주고 싶었다. 이런 내 생각을 지지해주시고 응원해 주신 제주지부의 많은 분과 방학진 실장님을 비롯하여 연구소 식구들 덕분에 올해 초에는 제주의 강태선 지사님도 뵙고, 역사 교과서에 기록조차 없는 법정사 항일 무장 운동을 공부하고 60명이 넘는 학생들과 2회에 걸쳐 답사도 다녀올 수 있었다. 또 『끝나지 않는 석정의 노래』의 저자이자 밀양 독립운동사연구소 최필숙 선생님을 모셔 의열단의 삶과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강연을 들은 아이들 또한 직접 밀양과 난징에 가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뜻깊은 시간이었다. 제주에서 난징은 서울 가는 거리와도 비슷하므로 꼭 한번 추진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중 민족문제연구소와 HURA에서 주관하는 신흥무관학교 옛터 답사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안중근 의거 116주년과 이석영 선생 탄생 17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라고 했다. 116년이 흐른 2025년 10월 26일에 내가 하얼빈역에 설 수

재중 조선족 작가의 항일문학과 재중 동포문학의 현재

2025년 11월 27일 95

[돌려보기] 재중 조선족 작가의 항일문학과 재중 동포문학의 현재 리홍규 (중국 하얼빈) 시인·소설가 중국조선족 항일문학은 광복 전에는 재중 조선인(한국인)에 의해 광복 후에는 중국조선족에 의해 중국 본토에서 한글과 한어(漢語, 중국어)로 창작했거나 발표된 항일 관련 문학작품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중국조선족 항일문학은 시간적으로 크게 광복 전과 후로 갈라볼 수 있고 광복 후 조선족문학은 또 중국의 개혁개방을 분기점으로 그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글은 광복 전 재중 조선인 항일문학, 광복 후 30여 년간 조선족 항일문학, 개혁개방 후 조선족 항일문학, 중국조선족 문학의 현재 등 네 개 부분으로 나뉘어 서술하게 된다. 편폭의 제한으로 광복 전 항일문학은 항일가요와 항일연극을 위주로, 광복 후 항일문학은 소설과 항일 관련 전기문학을 위주로 다루고자 한다. 1. 광복 전 재중 조선인 항일문학 광복 전 재중 조선인 항일문학을 살펴보기에 앞서 항일문학의 역사적 문화적 그리고 정치적 배경이 되는 중국 동북으로의 조선인 이민과 그 과정에서 조선인 이민공동체문화와 그 구성부분인 조선인문학의 형성에 대해 간략하게 서술할 필요가 있다. 당시 만주(滿洲)라고 불렸던 중국 동북으로 조선인들의 본격적인 이민은 1869년부터 1874년까지 5년에 걸쳐 조선북부의 흉작이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다가 1905년 “을사보호조약”과 1910년의 “한일합방”으로 조선이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된 후 농민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간도(間島)라는 현재의 연변으로 대거 이주해오기 시작했다. 그 이후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을 시작으로 식민통치가 날로

이른바 ‘철도파괴범’ 처형장면 목격담

2025년 11월 27일 83

[식민지 자료관 5] 이른바 ‘철도파괴범’ 처형장면 목격담 이순우 특임연구원 일제 패망 직전에 조선총독부 정보과에서 펴낸 『새로운 조선(新しき朝鮮)』(1944)이라는 선전책자의 첫머리에는 이러한 구절이 나온다. “禿山の赤土山の山つづき 悲しき國をつくれるもの哉(벌거숭이 붉은 흙산의 산줄기가 슬픈 나라를 만든 것일까)” 일찍이 어느 가인(歌人)이 탄식했듯이 자토색(赭土色)의 민둥산과 빨래하는 백의부인(白衣婦人), 이것이 20년 전 혹은 10수년 전까지의 조선의 인상(印象)이자 슬픈 현실이었다. …… 일찍이 ‘슬픈 나라’라고 읊었던 가인은, 지금 이 싸우는 조선(戰ふ朝鮮)의 격렬한 기백과 늠름한 현실을 직시하고 과연 뭐라고 노래할 것인가. 조선은 전진(前進)한다. 그 목표는 단 하나 ‘황국일본(皇國日本)의 무궁(無窮)한 발전(發展)과 함께’ 조선은 전진한다. 당당(堂堂)하고, 또 역강(力强)한 2,600만 동포(同胞)의 밀물 같은 전진의 공음(跫音, 발소리)에, 우리 잠시 귀를 기울여보지 않겠는가. 여기에 “어느 가인(歌人)”이라고 적어놓은 이의 정체는 야마지 하쿠우(山地白雨, 1879~1914) [본명은 야마지 쥰이치(山地純一)]이다. 그는 현직 체신서기(遞信書記; 경성우편국 근무)이면서 이런저런 문필활동을 했던 작가이기도 했다. 그러한 그가 심장마비로 급작스레 죽자 절친했던 — 신문기자 출신이자 언론출판인으로 활동했던 — 호소이 하지메(細井肇, 1888~1934)의 손으로 그의 유고문집이 만들어지는데, 그것이 곧 『슬픈 나라(悲しき國を)』(1922)이다. 이 책을 뒤적이다 보니 「총형(銃刑)」이라는 제목의 글이 퍼뜩 눈에 띈다. 이것은 이른바 ‘철도파괴범’ 처형(1904년 9월 21일 집행) 당시의 목격담인데, 러일전쟁 당시 이 땅에 주둔한 일본군에 의해 김성삼(金聖三), 이춘근(李春勤), 안순서(安順瑞) 등 3인의 조선인이 억울하게 ‘철도파괴범’으로 몰려 마포 공덕리 부근에서 공공연하게 포살(礮殺)로 처형된 바 있다. 이 사건에 관해서는 앞서 『민족사랑』 2019년 12월호에

[제19회 임종국상 수상소감] 언론 부문 수상자 이은지

2025년 11월 27일 70

[제19회 임종국상 수상소감] “신종 보이스피싱인가” 언론 부문 수상자 이은지 당신은 임종국상 수상자로 선정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전화 통보를 받고, 단박에 뇌리를 스친 생각은. ‘고객 맞춤형’ 피싱이구나. 네? 제가요? 임종국 선생이 누구인가. ‘친일역사 연구’의 개척자이자 역사정의를 실현하는 일에 일평생을 바친 위대한 학자이자 역사운동가 아니신가. 그런 분의 유지를 잇는 이 영광된 상을 받을 자격이 내게 있는가. 수많은 ‘부끄러움’이 수일에 걸쳐 가슴을 잠식했습니다. 이 부끄러운 감정의 뿌리를 찾고자 지난 시간들을 가만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친일행위에 대한 참회와 반성, 발본색원이 없는 한 우리는 ‘부끄러운’ 조상임을 면할 날이 없다.” 임종국 선생이 남긴 유고입니다. 역사학자로서 느꼈을 부끄러운 감정을 감히 추측해봅니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100년의 소리〉를 제작할 때 백하 김대락의 후손 김시중 씨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3시간을 훌쩍 넘긴 인터뷰 취재 중 마지막 질문. 증조부는 왜 ‘망명’을 선택했을까요. “나는 한 마디로 ‘부끄러움’이라고 봐.” 그는 또 백하 선생의 부끄러움을 다른 말로 나라를 지키지 못한 어른의 ‘염치’라고 칭했습니다. 독립운동가 후손이 전해주던, 망명 독립운동가들의 부끄러웠을 감정도 헤아려봅니다. 시인 윤동주도 그의 작품 ‘서시’에서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럽지 않기를 기도하며 글을 적었지요. 시대의 아픔을 오롯이 감당해야 했던 일제 강점기 지식인의 괴로웠을 감정도 어렴풋이 가늠하려 애써봤습니다. 처음, 만주 땅을 밟았던 날이 기억납니다.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일종의 ‘내적 각성’ 말입니다. 다큐 〈서간도의 별들 3500〉을 제작하기 위해

[제19회 임종국상 수상소감] 학술 부문 수상자 김영범

2025년 11월 27일 67

[제19회 임종국상 수상소감] 오래된 회한과 뒤늦은 변명 학술 부문 수상자 김영범 ‘임종국 상(賞)’이 있는 줄은 때때로 보도를 접하여 알고 있었지만,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주관한다는 정도 말고는 내용을 거의 모르고 있었습니다. 매년 수상자가 발표되면 관심이 가고 축하의 마음도 자연스레 들었지만, 자신을 결부시켜 생각해본 적은 전혀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언감생심이었으니까요. 그런데다 멀리 시골에 박혀 산다고 시상식에 와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던 제가 올해의 학술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얼마나 놀라고 당혹스러웠는지 모릅니다. 두렵기조차 하여 감당이 어렵다고 느껴짐에 수상을 고사하고 싶었고, 그 의사를 주관처에 표했다가 면박을 받기도 했습니다. 올해 들어 순전히 개인적인 의미와 이유를 몇 가지 담아내며 출간을 준비하여 두 권의 졸저를 내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중의 하나가 지목되어 임종국상을 받게 되었음은 정말 뜻밖입니다. 당연히 영광스러울 일이긴 하지만, 그리된 데에 어떤 곡절과 연유가 있는지 정말 모르겠고, 너무도 부끄럽기만 합니다. 이런 심경을 새삼 언표하는 것은 그저 겉치레의 겸양이 아니라 그만한 까닭이 있어서입니다. 돌이켜보면 격동의 시절이던 1988년의 봄인지 가을인지의 어느 날, 임종국 선생님을 천안시 삼룡동의 댁으로 찾아 뻧었습니다. 그때 저는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의 풋내기 연구원이었고, 연구용 도서 구입으로 인연 맺어진 천안 시내의 서점주 겸 사회운동가 김대기 씨의 귀띔을 받고 동행해서였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김형이 작고하시기 전의 선생님을 계속해서 5년간 시봉했다는군요. 큰길에서 한참 들어가 외진 들머리에 오도카니 자리 잡은

남북화해·협력 기원, 백두대간 산행

2025년 11월 27일 56

[초점] 남북화해·협력 기원, 백두대간 산행 1998년 11월 18일 시작한 금강산관광은 2008년 8월 11일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으로 인해 그 이튿날부터 전면 중단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 연구소는 금강산관광이 시작된 27주년을 기억하고 금강산관광 재개를 통한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11월 15일, 16일 이틀 동안 ‘남북 화해·협력 기원 백두대간 산행’을 진행했다. 우리 연구소 회원 30명은 강원도 고성군이 제공한 버스로 구리역을 출발하여 옛 알프스스키장 주차장에서 마산봉까지 왕복 4시간을 산행했다. 쾌청한 날씨 덕분에 마산봉 정상에서는 금강산의 여러 봉우리들이 육안으로도 잘 보였다. 하산 후 저녁 식사 자리에 동석한 함명준 고성군수는 새 정부 출범으로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동해북부선 철도와 도로는 물론 백두대간도 다시 이어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금강산콘도에서 숙박한 회원들은 이튿날 폐쇄된 제진역과 현대아산 고성사무소 등을 둘러보고 새로 개관한 화진포 셔우드홀 문화공간 관람을 끝으로 다시 구리역에 도착했다. 첫날 산행에는 여러 차례 백두대간을 등반한 구자명 회원(전 천안 한마음고 교장)이 길잡이를 맡아 수고해 주었다. 앞으로도 우리 연구소는 금강산은 물론 철길, 도로 등 끊어진 백두대간을 잇는 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일 예정이다. • 방학진 기획실장

제19회 임종국상 시상식과 제36주기 추모식

2025년 11월 27일 56

[초점] 제19회 임종국상 시상식과 제36주기 추모식 11월 12일 수요일 오후 6시 30분 서울 종로 교원 챌린지홀에서 회원 및 각계 인사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9회 임종국상 시상식이 열렸다. 시상식은 장병화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장의 기념사를 시작으로,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의 축사, 임종국 선생의 일대기 영상 상영, 윤경로 심사위원장의 선정경위 설명, 시상과 수상자들의 수상연설, 특별상 수상자 축하영상 상영, 임종국 선생 아드님 임정택 님의 인사, 함세웅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의 인사말 순서로 진행됐다. 올해 수상자 후보 공모에는 학술·문화 부문 18건, 사회·언론 부문 7건 등 총 25건이 올라왔으며, 지난 9월 24일의 예심과 10월 21일 열린 심사위원회 본심에서 열띤 토론 과정을 거쳐 학술부문에 김영범 대구대 명예교수를, 언론부문에는 이은지 YTN라디오 PD를 최종 선정하였다. 아울러 긴급전시행동〈민주주의와 깃발〉전 기증자를 만장일치로 제19회 임종국상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하였다. 심사위원장인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을 비롯해 도면회 대전대 명예교수, 이지원 대림대 명예교수, 장완익 변호사, 조재곤 서강대 연구교수, 한상권 덕성여대 명예교수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학술부문 수상자인 김영범 대구대 명예교수는, 의열투쟁을 비롯한 독립운동사 연구에 독보적인 업적을 쌓아온 사회학자로서, 날카로운 문제의식 아래 제주4·3사건의 진상규명 등 현실참여에도 앞장서 왔다. 수상 저작인 『독립운동의 역사사회학』은 수상자가 오랜 기간 천착해온 의열단과 조선의용대 연구를 집대성한 역저로, 통념에 대한 도전과 폭넓고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사위원회는 독립운동사의 지평을 넓히고 독립운동가 선양사업과 역사대중화 작업에 기여해온 김 교수의

광복 80주년 기념, 항쟁 유적지를 찾아서

2025년 11월 27일 50

[초점] 광복 80주년 기념, 항쟁 유적지를 찾아서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 서울지부(지부장 최수동)는 11월 7일부터 9일까지 2박 3일 일정으로 ‘광복 80주년 기념, 항쟁 유적지를 찾아서’ 답사를 진행했다. 이 답사에는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원은 물론 우리 연구소와 숙명여대민주동문회 회원 등 50명이 참여했다.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역을 출발한 답사단의 첫 방문지는 광주광역시 동구 양림동의 정율성 생가였다. 정율성(1914~1976)은 이육사가 1기로 졸업한 난징의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2기생이다. 이후 조선민족혁명당, 조선민족해방동맹, 화북조선혁명청년학교 등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했으나 해방 후 북한 정권에 가담한 경력으로 독립운동가 서훈에서 제외되었다. 양림동 생가에서는 정율성의 조카손녀인 정은덕 여사도 함께하며 소감을 밝혔다. 이어서 3·1운동의 중심이었던 양림동 일대와 오월어머니집을 거쳐 옛 전남도청과 헬기 사격을 비롯한 245개의 탄흔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전일빌딩 245, 옛 가톨릭센터였던 5·18민주화운동기록관 등을 관람했다. 답사단은 숙소인 담양청소년수련관에서는 백금렬, 최도은 가수의 노래를 청해 들었다. 노래 공연에 앞서 소설 『소년이 온다』의 실제 주인공인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인 김길자 여사님이 함께해 답사의 의미를 더해 주었다. 답사 이튿날에는 5·18민주묘지와 망월동 구묘지를 참배하고 여순항쟁(10.19)역사관을 관람했다. 박소정(전 순천YMCA 이사장) 여순10·19범국민연대 운영위원장의 안내로 여순항쟁역사관을 관람한 답사단원들은 열악하고 비좁은 역사관을 힘겹게 지켜내고 있는 데에 감사하며 적지만 성금을 전달하고 다음 답사지인 보성 태백산맥문학관을 방문하고 순천만 습지 산책 후 숙소로 이동했다. 마지막날에는 순천만 국가정원을 두루 둘러보고 점심식사 후 서둘러 임종국 선생 추모식이 열리는 천안공원묘원에 도착했다. 추모식을 마친 답사단은 무사히 서울에 도착해 다음에도

제68회 전국역사학대회에서 우리 연구소, ‘논쟁이 되는 역사’ 주제 발표

2025년 11월 26일 67

[초점] 제68회 전국역사학대회에서 우리 연구소, ‘논쟁이 되는 역사’ 주제 발표 제68회 전국역사학대회가 10월 25일(토),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열렸다. 광복 80주년이자 을사늑약 120주년을 맞아 올해 대회는 ‘기억과 기념’을 공동 주제로 채택했다. 우리 사회가 겪어온 역사적 사건과 그 의미를 보존하고 전승하는 과정을 조망하고, 디지털 사회에서 기억과 기념의 역할과 한계를 논의하자는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논쟁이 되는 역사’를 주제로 대회에 참가했다. 제1발표는 이명숙 연구실장이 「친일인물을 둘러싼 기억갈등과 시민의 역사청산운동」을 주제로 발표했다. 발표는 친일인물에 대한 사회적 기억과 그에 따른 갈등, 그리고 이를 극복하려는 시민들의 역사청산운동을 다뤘다. 대표적 사례로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 청산 활동과 마산 지역 ‘열린사회희망연대’의 친일·친독재인물기념사업 반대운동을 살폈다. 특히 지역에서 친일인물을 기념하겠다고 나서는 움직임이 실은 지역 토호 세력과 긴밀하게 연결됐다는 지적이 인상적이었다. 토론에 나선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신 교수는 “과거에 퇴출됐던 기억들이 망각을 핑계로 스물스물 기어 나오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한편, “오늘의 현실에서 친일 청산과 기억 투쟁은 어떠해야 할 것인가”란 물음을 던졌다. 제2발표는 「친일(파) 문제를 밝히는[究明·糾明] 다양한 방식-『친일인명사전』을 중심으로」란 주제로 이용창 연구위원이 맡았다. 이 연구위원은 역사 용어로서 ‘친일·친일파’가 시민권을 획득하는 연원을 정리하고 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편찬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개괄했다. 특히 친일(파) 청산을 거부하거나 ‘회색지대론’처럼 친일 청산을 의미 없는 것으로 평가하는 일련의 움직임을 비판했다. 토론을 맡은 연세대학교 이태훈 교수 역시 “친일문제를 규명하고 성찰하는 작업을 놓고 의미 없는 도그마의 구축이거나 과잉된 민족주의에 의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