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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주의 청산, 인권과 평화의 관점에서 강제동원 문제의 해결을!
김영환 대외협력실장
지난 3년 동안 나라 전체를 그야말로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린 윤석열 정권은 결국 스스로 일으킨 내란으로 파국을 맞았다.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특히 새 정부가 시급히 바로잡아야 할 사회대개혁의 중요한 과제 가운데 역사정의를 바로 잡아야 하는 과제가 있다.
‘역사쿠데타’ , ‘대일 굴욕외교’ , ‘역사 퇴행’
윤석열 정권이 거꾸로 되돌린 역사의 시곗바늘을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올 지경이다. 윤석열 정권은 주요 역사기관장의 자리에 뉴라이트 인사를 잇달아 임명하여 역사부정 세력의 전성시대를 열었고, 육사의 홍범도 장군 동상 철거 시도를 비롯하여 독립운동 폄훼와 독립운동가 모욕을 일삼았다.
이승만, 박정희 등 독재자와 친일파를 우상화하는 기념사업에 정권이 앞장섰으며, 규정을 위반한 뉴라이트 교과서를 검정 통과시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국가폭력 사건의 진실을 규명해야 할 진실화해위원회의 뉴라이트 세력들은 오히려 진실규명을 방해하고 피해자들을 모욕하기까지 했다.
또한, 윤석열 정권은 시종일관 일본에 대한 굴욕외교로 많은 시민을 분노하게 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최근 윤석열 정권의 역사퇴행을 『윤석열 정권 3년, 역사쿠데타 기록보고서』로 정리하여 온라인으로 공개했다.
윤석열 정권은 2018년 강제동원 대법원판결에 대한 해결책이라며 ‘제3자 변제안’을 내놓으며 대일 굴욕외교로 파국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피해자들의 역사적인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일본제철에 강제동원된 피해자들이 1997년 일본에서 시작한 20여 년의 소송투쟁 끝에 쟁취한 대법원판결은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식민지배가 불법’이라는 점과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강제동원·강제노동이 반인도적 불법행위’라는 점을 명확히 밝혔다.
이 판결은 식민주의 극복을 촉구한 ‘더반 선언’(2001년)의 정신을 반영한 것이며, 국가 중심의 국제법에서 개인의 인권 중심으로 발전해 온 국제인권법과 국제인도법의 성과를 반영한 것이라는 점에서 세계사적으로도 그 의미가 작지 않다. 또한, 이 판결은 강제동원 피해자들 그리고 그들과 연대한 한일시민사회가 일본과 한국에서 벌인 20여 년의 법정투쟁을 통해 이른바 ‘65년 체제’를 극복한 역사적인 판결이다.
2023년 3월 6일 윤석열 정부는 대법원판결을 받은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제3자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기부금을 모아 ‘배상금’을 대신하여 ‘판결금’을 지급한다는 이른바 ‘제3자 변제안’을 발표했다. 윤석열 정권은 일본 정부가 대법원판결을 이유로 정부 간의 대화를 거부하자 한일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며 졸속으로 만들어진 ‘제3자 변제안’을 발표했다.
‘제3자 변제안’은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의 책임을 완벽하게 면제해 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사법 주권을 포기한 것이며, 행정부가 대법원의 판결을 무력화한다는 점에서 삼권분립을 부정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는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선언한 대법원판결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헌법 위반이라는 각계의 비판이 쏟아졌다.
일본 정부는 2018년 판결 직후부터 한국 최고 법원의 판결에 대해 ‘국제법 위반’이라며 한국의 사법 주권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일본제철, 미쓰비시(三菱)중공업, 후지코시(不二越) 등 피고 전범 기업은 일본 정부 뒤에 숨어서 판결의 이행을 위한 대화조차 거부하며 피해자의 인권을 짓밟고 있다.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의 책임을 ‘완벽하게’ 면제해 주는 제3자 변제안이 발표되자 일본 정부는 반색하며 윤석열 정권과 한미일 군사협력을 추진했다. 윤석열 정권이 대법원판결의 배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니 일본 정부와 기업은 뒷짐만 지고 구경만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한국 정부가 제3자 변제로 해결하겠다는데 일본 전범 기업이 사죄하고 배상할 까닭이 있겠느냐?”
평생을 바쳐 전범 기업으로부터 사죄와 배상을 받기 위해 싸워온 강제동원 피해자의 뼈아픈 지적대로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말만 2018년부터 7년째 되풀이하고 있다.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과 평생 싸워온 피해자들이 이제는 한국 정부와 싸워야 하는 기가 막힌 현실에 대해 윤석열 정권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역사정의를 정면으로 거스른 윤석열 정권은 결국 민주주의 회복을 향한 시민들의 찬란한 ‘빛의 혁명’으로 무너졌다. 역사의 법정에 선 그들에게 준엄한 단죄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이제 윤석열이 되돌린 역사 퇴행의 시곗바늘을 되돌려야 할 때이다. 일본 정부는 그 어떤 정권보다 일본에 양보에 양보를 거듭한 윤석열 정권이 무너지자 다음에는 ‘반일’ 정권이 들어설 것이라며 공포에 떨고 있다.
노무현, 문재인 정권은 ‘반일’이며 윤석열은 ‘친일’이라는 단순 도식이 지배하는 일본 사회에서 미디어들은 한국의 새 정부가 역사 문제에 대해 ‘골대를 또 옮길 것’이라며 공포를 조장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 제3자 변제 중단, 일본군‘위안부’문제에 대한 2015 ‘합의’ 파기라는 정당한 요구를 약속 위반이라며 깎아내릴 것이다. 일본 주류 언론의 보도에서는 윤석열 탄핵이 주권자의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정당한 투쟁이라는 인식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제 강제동원과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은 한국과 일본의 역사갈등이 아니라 식민주의 청산이라는 시대정신과 인권과 평화라는 보편적인 가치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국제정치의 논리로 피해자 개인을 외면한 채 ‘국익’이라는 명분으로 더는 피해자를 배제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국익’과 ‘안보’라는 미명 아래에 외면받아 온 피해자 개인의 인권과 존엄의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이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으로 고통받은 피해자가 인권과 존엄의 회복을 위해 싸웠고 역사정의와 평화의 실현을 바라는 한국, 재일동포, 일본 시민들이 그들의 손을 잡고 연대하여 싸운 결과가 2018년 대법원판결로 마침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윤석열이 강제동원 대법원판결을 무시하고 내달린 한미일 군사협력의 결과를 보자. 남북한의 대화를 통한 평화는 온데간데없고 군사적 위협과 갈등만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다. 일본은 어떠한가? 오키나와를 비롯한 난세이(南西)제도에 미사일 기지가 급속하게 배치되었고, 한반도와 가까운 규슈(九州)와 시코쿠(四国) 각지에서 군사기지화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하여 시민들이 저항하고 있다. 식민주의 청산과 역사정의 실현, 피해자의 인권과 존엄의 회복이라는 시대정신과는 거꾸로 ‘힘에 의한 평화’라는 구호 아래에 동아시아의 평화가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식민주의를 청산하고 역사정의를 실현하는 문제는 곧 한반도와 일본, 동아시아의 평화와도 직결된 문제이다.
한일협정 60년, 해방 80년을 맞아 더는 미룰 수 없는 강제동원 문제의 해결을 위해 새 정부는 한일 정부가 협력하여 해결할 수 있는 문제부터 함께 해결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 조세이(長生)탄광 등의 강제동원 희생자의 유골 봉환, 강제동원 노무자의 우편저금 통장과 연금 기록, 군인·군속의 군사우편 저금기록, 사도 광산 반도노무자 명부, 우키시마호 희생자 자료 등 일본 정부와 기업이 보유한 강제동원 피해자의 관련 자료 등도 일본으로부터 받아야 한다.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2만여 명의 무단 합사 피해자의 합사철폐 소송투쟁도 잊지 말아야 할 과제이다. 무엇보다 2018년 강제동원 대법원판결의 조속한 이행을 위해 새 정부는 정정당당하게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해야 한다. 식민주의 청산과 역사정의 실현, 인권과 평화를 향한 우리들의 정의로운 투쟁은 다시 새로운 발걸음을 힘차게 내디딜 것이다.
• <한국노총> 20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