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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언더우드 동상을 밀쳐낸 자리에 대신 들어선 ‘흥아유신기념탑(1942년)’

2025년 8월 27일 438

[이 땅에 남아있는 저들의 기념물 18] 언더우드 동상을 밀쳐낸 자리에 대신 들어선 ‘흥아유신기념탑(1942년)’ 미나미 총독의 휘호일자를 1941년 12월 8일로 소급하여 표시한 까닭 이순우 특임연구원 “섭섭함을 불금(不禁)” [중추원 부의장 이진호(李軫鎬, 창씨명 李家軫鎬)] “정(情)은 떠날 수 없다” [중추원 고문 한상룡(韓相龍)] “불후(不朽)의 공적 찬연(功績 燦然)” [연희전문학교 교장 윤치호(尹致昊, 창씨명 伊東致昊)] “내선일체(內鮮一體)에 큰 공적(功績)” [조선귀족회장 이해승(李海昇) 후작] “영원(永遠)히 못 잊을 자부(慈父)” [화신 사장 박흥식(朴興植)] “좀 더 모시고 싶었다” [경성방직 사장 김연수(金秊洙)] “통치사(統治史)에 획기적(劃期的)” [중추원 참의 이병길(李丙吉) 후작] 여기에 소개하는 내용들은 『매일신보』 1942년 5월 30일자의 지면을 장식한 기사의 소제목(小題目)이다. 제7대 조선총독(재임 1936.8.5~1942.5.29)이던 미나미 지로(南次郞; 1874~1955)가 현직에서 물러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여러 친일인사와 친일귀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는 꼴이 그의 치적을 찬양하고 칭송하는 말을 뱉어내는 것이었다. 원래 기병장교(騎兵將校) 출신으로 조선군사령관 (1929.8.1~1930.12.22), 육군대신(1931.4.14~1931.12.13), 관동군사령관(1934.12.10~1936.3.6)을 거친 미나미 총독은 ‘전시체제기’와 맞물려 무수한 시국구호와 시정방침을 탄생시켰고 식민지 조선에 대해 내선일체를 앞세운 황민화정책과 병참기지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강요했던 인물이었다. 대표적으로 그는 1937년 4월 20일 제2차 도지사회의의 석상에서 국체명징(國體明徵), 선만일여(鮮滿一如), 교학진작(敎學振作), 농공병진(農工倂進), 서정쇄신(庶政刷新)을 시정근본방침으로 내세웠는데, 이것이 흔히 ‘미나미즘(南イズム, Minamism)’으로 일컫는 5대 정강(五大政綱)이다. 여기에 더하여 그는 이른바 ‘지나사변(支那事變, 중일전쟁)’이 개시된 직후 1937년 7월 13일에 총독부 제2회의실에서 열린 재성(在城; 재경성) 신문통신사 대표자 간담회 석상에서는 “내선융화(內鮮融和)는 이미 과거사이며 이제는 내선일체(內鮮一體)를 구현해야 할 시기”라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강변하기도 했다.

식민지역사박물관, 광복절 80주년 행사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 진행

2025년 8월 26일 160

[초점] 식민지역사박물관, 광복절 80주년 행사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함께해요’ 진행 식민지역사박물관은 광복절 80주년을 맞아 다양한 체험 행사를 진행하였다. 〈내가 드리는 상장 만들기〉는 2층 상설전시실에 전시되어있는 다양한 독립운동가와 인권·평화운동가들을 찾아보고, 감사의 마음을 담아 직접 상장을 만들어보는 시간이었다. 여성독립운동가 허은 여사에게는 ‘독립군의 어머니상’, ‘아직 알려지지 않은 우리의 숨은 영웅상’을, 친일파 연구의 선구자 임종국 선생에게는 ‘국민의 목소리상’, ‘애국연구상’ 등을 수여했으며 그 외에도 관람객들이 직접 만든 다양한 상장이 만들어졌다.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에게는 아픔에 공감하며 연대를 약속하는 쿠폰을 만들었다. ‘증언과 노력의 감사 쿠폰’, ‘아내와 아이와 행복하게 아빠로 사는 쿠폰’ ‘행복한 기억으로 가득하길 쿠폰’, ‘가족과의 행복한 시간 선물 쿠폰’ 등 많은 참가자가 강제동원 희생자들이 누리지 못했던 가족과의 행복을 바라는 쿠폰을 만들며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피해자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시간을 가졌다. 〈공개수배〉 활동지 체험은 제대로 처벌받지 않은 일제 침략자와 친일파를 찾아 그들의 죄를 적는 방식이었다. 죄명 외에도 어떻게 벌을 받아야 하는지를 꼼꼼히 적어 남겨두었다. 참가자들은 제대로 친일 청산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다짐을 되새겼다. 그리고 광복절 하루 동안 세 번의 특별해설을 진행하였다. 강동민 자료실장, 김승은 학예실장, 김영환 대외협력실장이 각 한 차례씩 진행했는데, 〈내가 드리는 상장 만들기〉 체험과 연계하여 상설전시실에 전시된 각 인물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현재 박물관은 10인 이상의 단체일 경우 해설 신청이

광복 80주년기념 국회도서관 특별전 〈오늘 다시 보았네, 우리 태극기〉개최

2025년 8월 26일 263

[초점] 광복 80주년기념 국회도서관 특별전 〈오늘 다시 보았네, 우리 태극기〉개최 민족문제연구소는 8월 13일 광복 80주년을 맞아 국회도서관 1층에서 특별전 <오늘 다시 보았네, 우리 태극기>를 개최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한 이 전시는 5·18민주화운동 제45주년 기념 서울행사위원회와 국회 역사정의포럼(공동대표: 이수진·김용만 국회의원), 국회도서관이 주최했으며 서울시가 후원했다. 기념행사가 열린 8월 18일에는 우원식 국회의장과 역사정의 포럼 소속 국회의원, 함세웅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황정근 국회도서관장, 소설 ‘소년이 온다’의 실제 주인공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 여사가 참석했다. 애국지사 신영호 선생의 외손자인 배성우 배우와 배성재 아나운서, 5·18민주화운동 단체 회원들이 많이 참석하였으며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이희자 대표와 박진부 회원도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본 전시는 전체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 ‘독립의 염원을 담아’, 2부 ‘다시 찾은 우리 태극기’, 3부 ‘휘날리는 영광의 깃발’이라는 주제로 한국 역사의 흐름 속 민중과 함께 한 태극기의 모습을 담아냈다. 1부 ‘독립의 염원을 담아’에서는 태극기의 원형을 알 수 있는 도안을 소개하며 대표적인 태극기 중 몇 가지를 선정해 전시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태극기로 알려진 ‘데니 태극기’를 시작으로, 불원복(不遠復) 태극기, 남상락 자수 태극기, 진관사 태극기,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태극기, 뉴욕 윌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게양 태극기, 김구 서명 태극기, 한국광복군 서명 태극기까지 독립을 갈망하던 한국인의 염원을 담은 다양한 태극기가 전시되었다. 2부 ‘다시 찾은 우리 태극기’ 도입부에서는 갑작스럽게 해방을 맞은 한국인들이 해방을 축하하며 손수 준비한 태극기를 꺼내

2025 ‘평화의 촛불을! 야스쿠니의 어둠에’ 도쿄촛불행동

2025년 8월 26일 269

[초점] 2025 ‘평화의 촛불을! 야스쿠니의 어둠에’ 도쿄촛불행동 ‘전쟁하는 나라와 야스쿠니 시스템 부활’ 심포지엄에 참석했던 200여 명의 우리는 행사장인 전수도회관 앞 도로에서 행진 구도로 섰다. “선생님! 선생님은 여기, 여기 서세요.” 김영환 대외협력실장이 행렬의 선두를 추스렸다. 이희자, 박남순, 박진부 선생들과 서승 선생이 맨 앞이다. 물론 낮부터 회관 앞에서 진을 치던 일본 극우들과 경찰들도 꽤 있었다. “야스쿠니 노오(야스쿠니 반대)” “고우시 한따이(합사 반대)” “사베츠 한따이(차별 반대)” “오키나와 기지 한따이(오키나와 기지 반대)” “센소우 한따이(전쟁 반대) “헤이와 마모루(평화 수호)” 우리는 차량에서 흘러나오는 낭랑한 구호를 따라 외치며 행진을 시작했다. 비바람 부는 8월 10일 일요일 저녁 7시 도쿄 한복판이었다. 야스쿠니의 어둠에 평화의 촛불을!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이 올해 20주년이니 촛불집회도 20회째이다. 한국, 일본, 대만, 오키나와 4개국에서 활동가들과 단체가 함께 하였다. 1시부터 5시간 30분 동안 열린 심포지엄에서 각국의 상황과 평화현안이 발표되었다. 다카하시 선생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란과 이스라엘 전쟁은 가히 세계 3차대전이라 불릴 수 있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움직임과 한국, 대만, 일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설명하였다. 후지이 선생은 대만 집권당의 문제와 대만 젊은이들의 엄혹한 현실과 희망 찾기를 절절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조선대 노영기 선생은 한국 현대사에서 한국군과 정치의 관계를 정리하면서 윤석열 파면을 이끈 광장의 의미를 다루었다. 이상의 심포지엄 주제는 그날 밤 비바람 속에서 행진하며 외친 구호로 요약된다. 곧 야스쿠니 NO는 전쟁 반대,

광복 80주년 기념 학술회의 〈독립운동가들이 꿈꾼 나라〉

2025년 8월 26일 165

[초점] 광복 80주년 기념 학술회의 〈독립운동가들이 꿈꾼 나라〉 근현대사기념관은 광복 8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가들이 꿈꾼 나라>를 주제로 학술회의를 8월 8일(금) 강북구청 대강당에서 개최하였다. 이번 학술회의는 민족문제연구소와 서울시 강북구가 주최하고, 근현대사기념관이 주관하였으며 재단법인 역사와 책임이 후원하였다. 학술회의는 기조 발제와 4개의 주제 발표 그리고, 종합토론으로 구성되었다. 기조 발제는 ‘독립국가 건설의 이상과 지향(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을 다루었다. 첫 번째 주제는 ‘수립 초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민주·법치·주권’ 국가 이상’(김은지 독립기념관 연구위원)을 다루었고, 두 번째 주제 ‘조선민족혁명당의 ‘혁명’과 그 추진 활동에 관한 검토: 해방과 국가건설 구상을 중심으로’(류동연 국가보훈부 학예연구관)를, 세 번째 주제 ‘코민테른의 민족통일전선론과 조선 공산주의자의 신국가 수립 구상’ (홍종욱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에 관한 내용을, 네 번째 주제는 ‘조선건국동맹 운동가의 해방일지 : 장용석의 편지와 해방정국의 삶’(이규수 동농문화재단 강덕상자료센터장)을 다루었다. 종합토론은 김민철 경희대 교수가 주재하였다.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 주제별 발표자와 장세윤(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수석연구원), 조은경(독립기념관 학예연구관), 윤덕영(연세대 국학연구원 전문연구원), 조형열(동아대 교수) 등 분야별 전문가들이 참여해 뜻깊은 논의를 나누었다. 이번 학술회의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선열들이 어떤 나라를 꿈꾸었는지 조명하고, 대한민국의 미래상에 대한 지혜를 모아보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 • 근현대사기념관 학예연구사 이현아

근현대사기념관, 광복 80주년 기념 특별전 ‘무너미에 깃든 독립운동가의 숨결’

2025년 8월 26일 162

[초점] 근현대사기념관, 광복 80주년 기념 특별전 ‘무너미에 깃든 독립운동가의 숨결’ 근현대사기념관은 광복 80주년 기념 특별전 ‘무너미에 깃든 독립운동가의 숨결’ 개막식을 8월 1일(금) 오후 2시에 개최하였다. 개막식에는 민족문제연구소 함세웅 이사장, 임헌영 소장, 근현대사기념관 윤경로 관장, 강북구 이순희 구청장과 강북구의회 김명희 의장 등 많은 내빈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이번 특별전은 수유 국가관리묘역에 안장된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삶과 정신을 재조명한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다양한 유물과 기록을 통해 되돌아보고, 그분들이 우리에게 남긴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한 자리다. 무너미 언덕에 고요히 잠든 독립운동가들의 숨결을 느끼며, 광복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뜻깊은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전시는 서울 강북구와 민족문제연구소가 공동주최하고 근현대사기념관이 주관하여 12월 31일까지 진행된다. 또한 국가보훈부 지원을 받아 제작된 디지털 실감 영상 ‘조국의 밤을 지킨 별들’도 전시되어 관람객의 몰입감을 높인다. 이 영상은 독립운동가들의 활동과 정신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전시에 깊이를 더한다. 광복절 당일에는 체험행사 ‘광복구의 영웅을 소개합니다’를 진행하였다. MBTI로 나만의 독립운동가 찾기, 퀴즈풀이, 손병희 자개 틴케이스 만들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어린이와 청소년, 학부모 등 많은 시민들이 참여해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이와 함께 광복 80주년 기념전시 ‘Heritage: 되찾은 빛, 이어갈 유산-이현승 옻칠 특별전’이 서울북부보훈지청과 근현대사기념관 주최·주관으로 8월 12일부터 9월 26일까지 진행된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 근현대사기념관 학예연구사 정햇살

광복 80주년 맞아 기념음반 〈해방의 노래〉 제작 보급

2025년 8월 26일 185

[초점] 광복 80주년 맞아 기념음반 〈해방의 노래〉 제작 보급 연구소와 옛가요사랑모임 유정천리가 〈광복 80주년 기념 : 해방의 노래〉 음반을 제작해 보급한다. CD와 USB에 실린 음원들은 광복 직후부터 1940년대 말까지 해방의 감격을 표현해 대중의 사랑을 받은 노래들이다. 당시 발매되었던 SP음반을 복각한 20곡과 악보를 바탕으로 재연한 17곡 등 총 37곡을 함께 실었다. 누가 ‘해방은 도둑처럼 찾아왔다’라고 말하는가? 일제의 패망은 필연이었다. 해방 며칠 전인 7월 24일에도 일제강점기 마지막 의열투쟁인 ‘경성 부민관 폭파 의거’가 일어나 조선총독부 고위 관료들과 아시아 각국 친일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해방의 그 순간에도 일제에 저항하다 체포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옥고를 치르고 있었다. 과연 ‘해방은 도둑처럼’ 찾아온 것인가? 아니다! 해방은 도둑처럼 찾아온 것이 아니라 기적소리를 울리며 달려왔다. 〈해방의 노래〉 음반은 그때의 감격이 오롯이 실린 가요 모음집이다. 작사가와 작곡가의 면면은 해방공간의 실상을 반영하듯 다양하다. 일제 말 군국가요가 우리 음악사의 어둠이 었다면, 새로운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염원이 담긴 해방의 노래들은 빛이라고 할 수 있다. 〈해방의 노래〉 음반에 담긴 37곡에 작사·작곡, 노래, 연주 등으로 참여한 56명 중 14명(김건, 김성태, 김해송, 남인수, 박시춘, 안익태, 이봉룡, 이인범, 이재호, 이흥렬, 임학수, 장세정, 조명암, 최희남)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 ‘천황’의 나팔수로 군국가요를 전파하던 인물들이 하루아침에 애국자가 되어 해방을 찬양했던 행태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또 해방과 분단과 전쟁의 여파로 월북하거나 납북되어

연구소, 독립운동가 37명 포상 신청

2025년 8월 26일 152

[초점] 연구소, 독립운동가 37명 포상 신청 민족문제연구소는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아 국가보훈부에 37명의 독립운동가에 대한 독립유공자 포상을 신청했다. 연초부터 연구소는 체계적인 독립유공자 발굴 계획을 수립하고 조사·연구를 진행해 왔다. 그 결과 1차로 37명의 독립유공자를 발굴해 상세한 내용이 담긴 포상신청서를 작성한 것이다. 이번 독립운동가 발굴과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의 분석 대상은 2023년에 연구소가 발간한 『조선인요시찰인약명부』(이하 약명부)에 실린 인물들이다. 『약명부』는 일제 고등경찰이 요주의 조선인에 대한 인물정보를 각 도별로 정리해 일본과 조선 등지의 보안 관계자 그리고 연안·국경 지역의 경찰서와 헌병대 치안 책임자에게 배포한 문서철이다. 1945년 3~4월 무렵 작성된 『약명부』에는 모두 790명의 신상 정보와 함께 당시 주소와 직업, 항일 행적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일제판 블랙리스트라 할 만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독립운동가들의 항일운동을 입증할 강력한 근거가 될 수도 있는 중요자료이기도 하다. 연구소는 『약명부』에 수록된 인물 가운데 169명이 독립유공자로 서훈됐지만, 나머지 인물들 가운데도 독립운동 업적이 명백한 이들이 상당수라는 것을 확인했다. 이에 1차로 전라남도 관할 인물을 대상으로 정밀 조사를 실시했다. 전라남도 관할 인물은 모두 206명인데, 이미 서훈된 분이 59명이었다. 연구소는 나머지 인물들 가운데 국가보훈부의 현행 서훈 기준을 충족하는 인물을 선별하는 작업을 먼저 진행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정부보고서에 수록했던 이선홍, 강영석 같은 친일파는 물론, 1945년 현재 ‘면서기’, ‘면장’ 등 부일 협력 행적이 있는 사람들은 조사대상에서 제외했다. 최종적으로 일제에 의해 ‘처벌’받은 기록이 있는

순국오열사(殉國五烈士) 인쇄물

2025년 8월 26일 453

[소장자료 톺아보기 73] 순국오열사(殉國五烈士) 인쇄물 이번 호에 소개할 소장자료는 한국광복청년회(韓國光復靑年會)에서 제작한 순국오열사 인쇄물이다. 이준(李儁)을 중심으로 윤봉길(尹奉吉), 백정기(白貞基), 안중근(安重根), 이봉창(李奉昌)의 사진이 있고, 왼쪽에는 각 인물들의 약력이 간략히 적혀있다. 상단 중앙에 태극기가 위치하고 각 사진 주변에는 무궁화 문양이 감싸고 있다. 다만 제작일자는 기재되어있지 않다. 먼저 순국오열사의 이력을 전재한다. 이준(1859~1907) 선생 서기 1907년, 전 평리원 검사로 관계를 떠난 선생은 우국단심에 불타는 동지 이상설(李相卨)선생과 동년 6월에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되는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호소하여 침략자 왜적의 비행을 봉쇄하려고 고종황제의 밀칙(密勅)을 받들어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대기중인 동지 이위종(李瑋鍾) 선생과 마침내 동년 4월에 국경을 돌파하였다. 그러나 회의는 약소국 평화를 유지하려는 회의는 아니었으니 그들은 세 선생을 한국의 정식 대표임을 끝끝내 거부하다가 최종일인 7월 5일에야 겨우 이선생에게 발언권을 주었다. 우국지성에 불타는 선생의 일언일구는 왜적 대표에 폐부를 찔러 당황케 하였으나 선생의 정의를 인식치 못한 열국 대표는 도리어 왜국의 비행을 지지하려 하나 통분한 선생은 그들 면전에서 할복하여 정의를 절규하시어 열국 사신의 간담을 서늘케 하시고 순국의 충혼이 되시었다. 안중근(1880~1910) 의사 1880년 황해도 출생으로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며 열렬한 애국지사이었다. 침략자 왜적에게 소위 5개조약(을사늑약), 7개조약(정미조약) 등으로 국운은 날로 기울어짐에 통분한 의사는 조약의 장본인 이토 히로부미를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두에서 세 발의 총탄으로 즉사시키고 조선만세를 고창하며 분연히 포박되어 1910년 3월 26일 의사는 교수형의 집행으로 순국하였다.

민족사랑 2025년 8월호

2025년 8월 25일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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