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전시행동 ‘민주주의와 깃발전’ 기증자 인터뷰④]
긴급 전시 행동을 하는 이유
박이랑 전략홍보팀
오늘 전할 내용은 광장의 이야기를 보러 박물관을 방문해 준 관람객들의 목소리다. 기증자뿐 아니라 매일 수많은 시민들이 전시를 보러 온다. 그들이 남긴 눈물과 발자국들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 자 한 자 적어보려 한다.
균열에서 피어난 희망
전시의 마지막에는 ‘당신이 피운 민주주의 꽃으로 이곳을 가득 채워주세요’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그 아래에는 동대구역 광장에 전시된 피켓 내용이 적혀 있다.
콘크리트에는 이미 금이 갔고 우리는 그 균열을 비집고 돋아난 싹이다. 굳어진 콘크리트는 스스로를 메울 수 없지만 싹은 자라 나무가 되고 큰 숲이 되어 마침내 차가운 회색 땅을 깨뜨릴 것이다.

균열이 간 콘크리트 위로 관람객들은 직접 제작한 깃발 스티커를 붙이기도 하고, 깃발의 문구를 적기도 했다. 무너뜨릴 수 없을 것 같던 아주 견고한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벽들에 금이 가고, 그 사이에서 희망이 솟아났다. 관람객들은 서로가 남긴 희망을 보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고 미소를 짓기도 했다.
대구에서 오신 분은 입구에서부 터 눈가가 촉촉한 상태로 입장했다. 그는 ‘TK(대구·경북 지역을 일컫는 영어 약자)의 딸’이 제작한 ‘우리는 보수의 텃밭이 아니다’ 피켓 앞에서 한참 동안 서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일이 일상다반사가 되었고, 누군가와 눈 맞추고 이야기하는 것이 힘들 때 그는 대구에서 개최된 윤석열 탄핵 집회에서 ‘TK의 딸’이 제작한 피켓을 보았다. ‘TK의 딸들이 너희를 박살내러 왔다’는 문구를 보고 다시 타인과 대화할 용기가, 힘들었던 순간들을 이겨낼 힘이 생겼다고 했다. 균열에서 희망을 본 것이다.
전시를 행동으로 만들어준 사람들
전시장에 부모님을 모시고 온 관람객이 있었다. 전시를 다 보고 가려는 찰나 ‘빨강은 혁명이다’ 기수와 마주하면서 다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서 광장의 인연이 점이 아닌 선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느꼈다.
박물관을 찾아오는 이들이 전시를 살아있게 만들어주었다. 세상을 바꾸는 네트워크에 함께하는 각 단체 활동가들이 찾아와서 함께 웃고 울던 시간을 나누며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 갔다. 광장의 시간은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가고 있었다.
광장의 연대도 전시를 통해 확장되고 있다. 7월 6일. 박물관에서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지회와 야스쿠니 무단 합사 철폐 2차 소송 보고회를 위해 방한한 아사노 후미오 변호단장이 만났다.
전시 2부 ‘광장은 학교였고, 우리는 서로의 교과서였다’에서 소개하고 있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의 모회사는 니토덴코라는 일본기업이다. 니토덴코의 부당해고에 대해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지회에서는 한국에서 소송을 진행 중이며, 이들을 지원하는 일본 시민 모임이 니토덴코 본사 앞에서 항의 활동을 계속해 왔다. 그런데 니토덴코에서 항의 활동을 벌여온 일본 시민들을 고소하여 이와 관련한 소송이 진행 중이며, 이 소송을 아사노 후미오 변호사가 대리하고 있다. 한국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는 일본 시민 모임에는 야스쿠니 무단 합사 철폐를 지원하는 이들도 있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조선인 2만 천여 명이 무단 합사되어 있다. 2013년부터 유족들은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합사 취소를 요구하고 있다. 일본 우익 심장이라는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조선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일본 시민들의 연대가 없었다면 시작도 못 할 싸움이었다. 그리고 이 연대가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지회로도 연결된 것이다. 연대의 물결이 박물관에서 퍼져나가는 순간이었다.


이번 전시에 ‘전시 행동’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이 전시를 통해 광장의 목소리를 더 널리 퍼뜨리는 역할을 박물관이 하겠다는 일종의 선언이었다. 그 선언에 관람객들이 함께해주고 있었다. 박물관에는 그들이 붙인 스티커와 스티커 나눔 공간, 여전히 투쟁하고 있는 농성장을 기억하기 위해 농성 기간을 적어 놓은 칠판이 있다. 박물관은 관람객과 함께 행동하고 있다.
시민이 만든 전시
긴급전시행동 민주주의와 깃발을 보러오는 이들에게 국세현 부팀장이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혹자는 연대를 약한 사람들이 한다고 하지만, 저는 존엄한 사람만이 연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 존엄이 어디에서 무너지고 있는지, 어디에서 휘발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연대를 하는 것이죠.
‘집·밥·평화’ 깃발을 기증해 주신 천주교도시빈민회(이하 ‘천도민’)는 40년 넘게 존엄한 연대를 이어오고 있다. 90년대 초반까지 재개발 지역의 철거민들을 조직하고 투쟁을 지원했던 이들은 90년대 중반부터 주민운동과 지역운동을 이어오고 있다. 가난한 지역에서 공부방과 어머니 교실을 운영하고 주민회를 조직했다고 한다. 윤석열 계엄 이후 주말 집회에 모이는 인원이 늘어나자 표식이 있으면 모이기 좋겠다 싶어서 깃발을 제작했다.
40년 전 가난했던 이들과 함께하려 했던 마음을 담아, 천도민이 지향하는 가치 ‘집·밥·평화’를 깃발에 새겼다. 단체에서 가장 나이가 적은 소위 ‘막내’가 50대라던 이들은 2030세대가 들었던 깃발과 피켓을 보면서 민주주의를 향한 모두의 뜨거운 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고 소회를 남겼다.
이 전시는 광장을 지킨 존엄한 시민들이 모여 만든 전시이다. 12·3 계엄을 맨몸으로 막아선 시민들이 없었더라면, 농민들이 트랙터를 몰고 서울로 올라오지 않았더라면, 체감 온도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추위 속에서도 광장을 지킨 이들이 없었더라면, 연대 현장으로 어디든 달려가는 말벌 동지가 탄생하지 않았더라면 이 전시는 시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삶을 지탱하고 있던 민주주의라는 근간이 흔들리기 시작할 때 자신을 내던져 그것을 지키고자 했던 수많은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는 다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일상이 위태로운 이들이 너무나 많다. 전시 행동을 멈출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삶에서 중요한 가치들이 더 이상 무너지거나 후퇴하지 않도록 광장의 외침이 모두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전시를 기록집으로 제작하여 전하고자 한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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