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자료 톺아보기 74]
태극기 또는 태극 문양이 새겨진 우리나라 우표


우리나라 근대적 우편제도의 시작은 1884년 갑신정변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개화파의 일원인 홍영식이 일본과 미국의 근대 우편제도를 시찰하고 돌아온 후, 고종의 명을 받아 1884년 3월 우정총국(郵征總局)을 창설했다. 이후 인천분국을 설치하고 우정국사무장정, 우정국직제장정 등을 제정해 체계적인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일본 대장성 인쇄국에 위탁해 그해 8월 최초 한국 우표 원판 5종을 완성했고 11월 18일(음력 10월 1일) 우정 업무를 개시하여 2만여 장의 우표를 제작, 유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2월 4일 우정총국 낙성식 축하연에 즈음해 김옥균·박영효·홍영식 등의 개화파가 일본의 지원하에 정변을 일으켰으나 결국 삼일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이때 우정총국 총판을 맡은 홍영식이 피살되어 우정총국은 개설 20일 만에 폐쇄되었다(1884.12.8).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1895년 5월 우체사(郵遞司)가 개설되면서 우편업무가 재개되었다. 서울을 중심으로 인천, 부산, 원산 등 주요 항구에 우체사가 설치되었으며, 1900년에는 만국우편연합(UPU)에 가입하며 국제적인 우편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이 시기에 태극(太極)보통우표, 전위첨쇄(錢位添刷) 보통우표, 이화(李花)보통우표, 독수리보통우표 등 다양한 일반우표가 제작되었다.
대한제국의 우편업무가 정비되어갈 무렵 일제는 을사늑약 체결을 강요하기에 앞서 한국의 통신권을 먼저 빼앗았다. 즉 1905년 4월 1일 한일통신기관협정(韓日通信機關協定)을 강제 조인하여 대한제국의 통신권을 박탈한 것이다. 이에 따라 모든 우편 기구가 일본인 손으로 넘어가고 대한제국의 우표와 엽서도 6월까지만 이용하고 이후에는 일본 우표와 엽서만을 사용토록 강제하였다.
1945년 해방 후 미군정은 미군정청 통신부를 설립하여 우편 행정을 관리하였고 1947년 체신부로 개편하였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체신부가 새로이 발족하면서 한국의 우편 행정 주권을 되찾았다. 1949년 8월에 지방체신국은 체신청으로, 우편국은 우체국으로 변경되었다.

1884년 홍영식이 다섯 종류의 우리나라 우표를 태극기의 태극 문양으로 디자인해서 일본에 인쇄를 의뢰했는데, 일본 대장성 인쇄국이 성리학자 주돈이의 『태극도설』에 나오는 태극 디자인으로 바꿔서 납품했다고 한다. 흔히 한국 최초로 만들어진 다섯 종의 우표를 문위(文位)우표라고 부르는데, 이는 당시의 화폐 단위인 ‘문(文)’자가 새겨져 있기 때문에 나중에 붙여진 이름이다. 문위우표를 필두로 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거의 모든 우표와 우편엽서에 태극기 혹은 태극 문양을 사용해오고 있다.
• 박광종 특임연구원
[참고문헌]
나봉주, 『체부―한국 근현대 우편사 징비 사료집 1884~1948』. 박영사, 2022
편집부, 『2001 한국우표도감』, 우문관, 2000
국민대통합위원회 블로그, 「홍영식과 태극기 도안 우표, 그리고 로웰」, 2015.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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