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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시사(富川市史)』의 오류 수정을 기대한다
박종선 부천지부장
부천시는 시 승격 50주년을 맞이하여 2023년에 『부천시사(富川市史)』(이하 시사)를 새롭게 편찬하였다. 1988년과 2002년에 이어 20여 년 만에 새롭게 편찬한 것으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변화된 부천에 대해 연구하여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였다. 시사에는 부천에 관한 역사, 인물과 문화유산, 정치와 행정, 경제와 산업, 사회, 교육 문화와 생활에 관한 내용을 자세히 수록하고 있어 부천을 알고자 한 사람들에게는 필수적인 책이다. 부천을 알리는 백과사전으로 이보다 더 자세하게 설명한 자료는 없다.
하지만 자료 곳곳에 오류가 있다. 지난 8월 29일 자 오마이뉴스 기사 <부천의 독립운동가로 소개된 이유선, 실제 행적은 달랐다>를 통해 부천의 제헌국회의원이었고 근현대인물로 소개된 이유선 행적의 오류를 지적했다. 이러한 오류는 시민들로 하여금 시사에 대한 불신을 불러일으키며, 더 나아가 부천시 행정의 정확성에 의심을 갖게 하므로 더 세밀하게 편찬되었어야 하는데 아쉬움이 있다.
이번에는 일제강점기 부천에 설치된 교육기관에 대한 오류를 지적하고 역사적 근거를 추가하고자 한다.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소사심상소학교의 설립 연도이며, 다른 하나는 소사공립보통학교의 설립과 이전이다.
먼저 문제가 된 내용은 아래와 같으며, 『부천시사』 3권 중 제7편 ‘교육’에 나온다.
그 후 1908년경 이곳에 일본인들에 의해 복숭아 과수원이 생겨나면서 경작을 위한 노동력의 필요에 따라 주민들이 급격하게 이주했다. 또 일본인들이 대거 이주하면서 주로 일본인 자녀들을 교육하기 위한 근대적 교육기관으로 심곡본동에 1922년 소사심상소학교(현재의 부천남초등학교)가 최초로 설립되었다. 이 시기 부천에서는 근대적 학교보다는 옛 서당이 초등교육기관으로 역할을 했다. 한국인 대상의 학교는 1925년 원미동에 소사보통학교(현 부천북초등학교), 1932년 원종동에 오정공립보통학교(현 오정초등학교)가 각각 설립되었다.
소사심상소학교(素砂尋常小學校)의 설립

결론부터 말하면 소사심상소학교(素砂尋常小學校, 소사공립심상소학교를 줄여 소사심상소학교로 부른다)는 1922년이 아니라 1913년 설립되었다. 이러한 내용은 조선총독부 관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소사심상소학교 대정 2년인 1913년 6월 4일 설립 인가되고 6월 6일 관보에 게시되었다. 설립된 장소는 현재의 부천역 남부지역으로 이곳에 조선총독부는 식민 통치와 수탈을 위해 1917년 계남면사무소를 설치하였다. 동시에 내선일체와 황국신민화를 실행한 소사신사(素砂神社)도 만들었으며, 이보다 앞서 조선의 자본을 잠식하기 위해 소사금융조합도 설치하였다. 일본인들이 소사역 부근에 많이 정착함에 따라 자녀들을 위해 일제가 소사심상소학교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사심상소학교의 흔적은 언론기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왕전하 어람(御覽)의 날’을 맞이하여 소사(素砂)소학교 33명의 학생이 서울에 참가했다는 기사로 이 당시 소사(素砂)에는 소사심상소학교밖에 없었다.(『매일신보』 1915.9.26)
1920년 이후 소사역 부근은 급속히 발전한다. 일제는 산미증식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부평수리조합을 설치하였으며 부평평야에서 생산되는 쌀을 소사역과 인천을 경유하여 일본으로 반출하였다. 식민정책과 수탈로 물류가 증가하고 자본이 몰림으로써 소사역 부근은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조선인들의 삶은 더 고달파졌다. 1927년에는 소작인들이 만주로 야반도주할 정도였다고 하니 식민지 조선인들의 애환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살아야 하므로 조선인들은 일본인 지주와 관료들 아래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연유로 소사 부근은 인구가 증가하였으며 학생 수 또한 증가하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37년 소사공립보통학교를 조종리(朝宗里), 현재의 원미동으로 이전하였다.(『조선일보』 1937.4.1)
시사에서 일제강점기 부천의 교육기관에 관한 소개 내용이 7~8줄에 불과하지만 이를 확인하는 과정은 오래 걸리는 것을 이번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시사는 방대한 양의 부천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글이 압축될 수 있지만 역사적 사실까지 왜곡해서는 안 된다. 또한 중요한 사실을 빠뜨려서도 안 된다. 역사는 있는 그대로 기록되고 기억되어야 한다. 부천을 대표하고 시민들의 자존심인 시사가 추후에 잘 수정되길 기대해본다.
• 『콩나물신문』 2025.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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