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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와 관련한 단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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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와 관련한 단상들

한상권 덕성여대 사학과 명예교수

<은평역사답사> ‘2025, 독도 영유권 칙령 반포 125주년 기념 울릉도·독도 답사’를 6월 26일(목)부터 28일(토)까지 기획·진행해주신 은평구청과 민족문제연구소에 감사드리며, 독도 수호에 선구자적인 노력을 하신 최종덕·이종학 두 분의 공적을 이번 답사 참가하신 분들과 함께 되새겨보고자 간단히 정리해보았습니다. – 2025년 7월 1일 울릉도 독도 답사 참가자 한상권 아룀

1. 독도는 대한민국 영토이고, 우리가 실효 지배하고 있다(고유 영토설). 교육부가 마련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기준」에는 “독도가 우리의 영토임을 역사적 연원과 내력을 통해 증명하고, 일제에 의해 이루어진 독도 불법 편입 과정의 문제점”을 한국사 교과서에 서술하도록 되어 있다. ‘고유 영토설’에 입각해, “독도가 역사적으로 우리 영토이며,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부당한 것임을 자료를 통해 설명하고, 러·일 전쟁 때 일본이 독도를 불법적으로 자국 영토에 편입시켰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교과서에 서술하라는 게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인 것이다.

2. 반면 일본은 독도, 센카쿠열도 등이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며, 독도 영유권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독도를 분쟁지역화하겠다는 입장 을 날로 강화하고 있다(분쟁 지역설). 일본 교과서에 독도 영유권 주장 내용이 실리기 시작한 시기가 2005년부터이다. 일본 고등학교 지리교과서를 보면, 독도를 시마네현 소속으로 하고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에 포함시켜 일본의 고유영토로 나타내고 있다. 또한 독도 관련 내용 기술도,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이다’(5종), ‘독도가 한국에 점거되어 있다’(3종) ‘한일 간에 독도영유권을 둘러싸고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3종) ‘일본은 한국 정부에 항의하고 있다’(1종)라고 서술함으로써, 독도를 세계의 주요 분쟁지역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3. 윤석열 정부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방치하고 분쟁지역화를 사실상 방조함으로써 과연 영토 수호의 의지가 있는지 의심받기에 이르렀다. 그의 대통령 당선에 발맞추어, 일본 정부는 “일본 땅 독도는 한국에 불법 점령되어 항의하고 있다”고 서술하고, ‘강제 연행’이란 단어는 아예 삭제한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 검정 결과를 발표했다(2022.3.10). 이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재확인하고 식민 지배를 부정하는 명백한 도발이었다. 이후 공개된 일본 2022년 외교청서 또한 독도가 ‘역사적 사실에 비춰 봐도 국제법상으로도 명백히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기존 주장을 반복했다. 윤석열 정부는 이처럼 제국주의적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에 항의하기는커녕, 국방부가 발간한 장병 대상 정훈 교재인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에서 “한반도 주변은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여러 강국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군사력을 해외로 투사하거나,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 쿠릴열도, 독도 문제 등 영토분쟁도 진행중에 있어 언제든지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라고 기 술하였다. 독도를 우리 영토가 아닌 분쟁지역이라고 기술한 것이다.

4. “명명백백한 자국의 영토도 주장하지 않는 자에게는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독도는 우리 땅’임을 온몸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독도 주민이다. 이들은 독도가 국제법상 암초가 아닌 자연섬이 되는 데 필요한 ‘사람 사는 섬’을 증명한 주인공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독도 주민은 최종덕(1925-1987)이다. 우리나라 최동단의 영토 독도에 최종덕씨의 가족 3명이 사상 처음으로 주민등록을 옮기고 정착한 해는 1977년이다. 최씨의 정착은 이제까지 국제적으로나 정치, 지리학상으로 무인도로 되어온 독도를 유인도로 규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최종덕의 입도(入島)는 독도의 실효적 지배 강화의 측면에서 큰 평가를 받고 있는 데, 독도박물관은 그 의의를 다음 세 가지로 설명하였다.

첫 번째 최종덕은 정부가 시행한 다양한 독도 개발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독도 영유권 강화를 몸소 실천한 산증인으로서 평 가된다.

두 번째 최종덕의 선구적인 독도에서 정주기반 조성은 후세대의 독도 유인화에 기여했으며, 이는 독도 거주와 주민등록 이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세 번째 주민등록을 독도로 이전하고 이를 한국 정부가 승인함에 따라 독도가 한국이 관리하는 명백한 자국의 영토임을 입증하는 실증 적 근거를 확보하게 되었다. 최종덕은 독도에 대한 선구자적인 사랑으로 영원한 독도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5. 최종덕과 더불어 ‘독도 영유권 수호를 위하여 일생을 바친’ 인물로 사운(史芸) 이종학(1927-2002)을 들 수 있다. 사운은 ‘역사를 김매기한다’는 뜻으로, “역사가 제대로 누릴 정신의 옥토라면 지금 제대로 갈아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호를 사운이라 하였다.

이종학 선생은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사료를 찾아내면서 독도 영유권을 확립하는 데 평생을 바친 서지학자이다. 그의 업적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독도 영유권 확립을 위한 자료수집이라 할 수 있다. 공이 평생을 통해 모은 독도자료 830종 1,301점은 국내 유일 영토박물관인 독도박물관 건립과 운영의 토대가 되었으며, 1998년까지 2월부터 2001년 2월까지 초대 독도박물관장을 역임하였다. 공이 이 땅에 심어준 거룩한 업적을 영원히 기리고 흠모하기 위하여 2003년 울릉군민이 정성을 모아 「사운 이종학공 송덕비」를 독도박물관 입구에 세웠다. 2002년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뜬 사운 선생의 유골은 경기 수원시 자택 부근의 납골당에 임시로 안치됐다가 “독도에 가까운 곳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에 따라 울릉도로 옮겨져 송덕비 밑에 봉안 됐다. 송덕비는 선생의 공덕을 다음과 같이 기리고 있다.

“공은 1980년대 초부터 20여 년간 일본을 50여 차례 방문하여 방대한 ‘한일관계사 및 독도 관련 자료’를 수집, 이를 집대성하였으며, 평소 “조선해는 민족의 풍요로운 미래를 보장해 주는 옥토요, 독도는 조선해를 지키는 파수꾼이다”라고 주장하시면서 독도의 영유권 확립과 동해를 조선해로의 명칭 환원운동 등 우리 영토 수호와 왜곡된 역사 바로잡기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셨다.”

한국국가기록연구원은 고인이 중국 일본 등에서 수집한 사료를 통해 독도 영유권을 확립하는 데 기여한 공로 등을 인정해 제3회 한림기 록문화상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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