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

견피(犬皮) 공출과 임실 견혼비의 건립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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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자료관 3]

견피(犬皮) 공출과 임실 견혼비의 건립과정

이순우 특임연구원

“왕년에 내가 만주서 개장사할 때는 말이야, 어쩌고저쩌고~.” 어느 정도 연배가 있는 사람이라면 필시 살면서 이런 식의 농담을 몇 번쯤은 입에 담아봤을 것이다. 왜 하필 만주에서 개장사를 했다는 표현이 생겨났을까도 싶지만, ‘개털모자’라든가 ‘개가죽외투’의 존재에서 떠올려지듯이 만주지역의 지독한 추위와 어우러진 그 시절의 고생담(苦生談)이 그러한 표현으로 함축되어 전해져 내려온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고 보면 일제강점기에 이 땅에서 벌어진 무수한 식민지 수탈사를 통틀어 우리 개들이 겪어야 했던 어마어마한 희생(犧牲)의 장면들도 결코 빼놓기가 어렵다. 일찍이 『동아일보』 1934년 4월 24일자에 수록된 「조선견피(朝鮮犬皮), 연(年) 8만 5천 매(枚), 군수용품(軍需用品) 및 방한(防寒) 등에 애용(愛用)되고, 외국수출(外國輸出)도 다수(多數)」 제하의 기사를 보면, “군수용품은 적피(赤皮)로써 가격은 중품(中品)이 많이 수요되며, 용도는 방한용(防寒用)의 동의(胴衣)에 사용된다”고 소개한 구절의 눈에 띈다.

그리고 이러한 군용피복을 생산하기 위한 견피공출(犬皮供出)이 본격화한 것은 — 다음의 신문기사에서 보듯이 — 이른바 ‘지나사변(支那事變, 중일전쟁)’이 발발한 직후의 시점이었다.

(1) 『매일신보』 1938년 1월 16일자, 「방한피복(防寒被服)의 재료(材料)로 조선견모피(朝鮮犬毛皮) 헌납(獻納), 조선개의 모피는 퍽 따뜻하다, 군당국(軍當局)은 크게 감사(感謝)」 제하의 기사:

방한피복의 재료로서 모피가 부족되어 그 보급(補給)에 대하여는 비상시인 만큼 여러 가지로 문제가 되어 있었는데 아직도 이것이 충분치 못하여 군당국에서는 각 방면과 협력해서 모피자원의 공급방법을 여러 가지로 연구해 왔었다. 그런데 이번 경기도 농무과의 스기모토 기사(杉本技師)는 경기도 내의 축견가(畜犬家)와 연락하여 방한피복재료로서 조선산 축견의 모피를 대량으로 헌납하겠다고 하는 것을 군당국으로 신청해 왔으므로 군당국은 크게 감격하고 있다. 이 조선산 축견모피는 방한모피로서 좋은 자원이 될 뿐 아니라 퍽 따뜻한 것이므로 군당국에서도 이번 헌납에 대하여 적지 않은 감사를 하고 있다 한다.

(2) 『동아일보』 1938년 1월 19일자, 「털짐승 공포시대(恐怖時代)! 군용모피(軍用毛皮) 대량수요(大量需要)」 제하의 기사:

시국(時局)의 진전에 따라 각종 군수품(軍需品)의 수요가 증가하는 형세로 자연 군수품의 하나인 군용모피의 수요량은 점차 증가의 일로를 밟고 있는데 이의 조변(調辨)에 대하여서는 이미 각기 수배를 하여 왔으나 아직 대부족을 느끼어 금번 다시 전조선에 그 증가조변이 요구되어 털짐승의 공포시대가 출현하였다.

즉, 개, 토끼, 산토끼, 산고양이, 고양이, 양의 모피가 전조선적으로 공출(供出)되게 되었는데 경기도에서도 상당한 책임매수가 있으므로 각군에 그 배당매수의 공출방을 통첩하는 일방 도농회(道農會)에서는 특히 ‘모피조제의 이정표[毛皮調製の栞]’를 인쇄하여 관서(官署)와 각 단체에 배부, 공출을 장려하기로 되었다.

그리고 일부 독지농가에서는 이미 모피의 헌납이 있었는데 이런 경우에도 일차 육군창고에서 이를 매상하여 대금을 헌납케 한다고 한다.

이에 따라 각 지역에 할당된 개가죽을 확보하기 위해 광범위한 도살(屠殺)이 이뤄졌으며, 여기에는 이를 통해 차제에 광견병(狂犬病)을 예방할 수 있다느니 하는 식의 명분을 덧붙이기도 했다. 또한 질 좋은 개가죽은 겨울철(11월 하순에서 다음해 2월까지)에 나오지만, 여름철에 개를 많이 잡아먹는 조선인의 관습이 견피공출에 막대한 지장을 주므로 이를 자제시키도록 할 것을 각 지역의 군수와 경찰서장에게 독려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이와 함께 각종 신문지상에는 상등급의 모피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자세하게 안내하는 내용이 여러 차례 등장하였는데, 가령 『동아일보』 1938년 12월 25일자에 수록된 「[산업수첩(産業手帖)] 모피조제상 주의(毛皮調製上 注意)」 제하의 기사에는 이러한 내용이 남아 있다.

  1. 육측면(肉側面) 부착물(附着物)의 제거(除去) — 육편(肉片), 혈액(血液), 지방(脂肪)을 충분제거(充分除去)하기를 요(要)함. 기(其) 제거불충분한 것은 태워서 피질(皮質)을 변질(變質)하고 부패(腐敗)하여 탈모(脫毛)하는 것으로 한다.
  2. 건(乾) — 충분건조(充分乾燥)하는 것을 가(可)타고 하나 엄동시(嚴冬時)에 있어서는 얼지 않도록 주의(注意)하고 충분한 건조곤란(乾燥困難)하여 공출(供出)을 급(急)히 할 경우(境遇)는 반건조정도(半乾燥程度)로는 부득이(不得已)하나 난기(暖氣)에 향(向)하여 생산(生産)하는 것만은 충분건조하는 것이 좋다. 육측면(肉側面)의 부착(付着)을 잘 제거하면 건조도 속(速)해지는 것이다. 모피(毛皮)의 안에 이토(泥土)를 도말(塗抹)하여 온돌(溫突)에 깔아가지고 건조하려고 하는 자(者)도 있으나 이토(泥土)를 부착한 것은 피(皮)의 검사(檢査)를 불편(不便)케 하고 온돌에 건조한 것은 피질(皮質)을 경화(硬化)케 함으로써 본방법(本方法)에 의(依)하여 건조치 않는 것이 좋다.
  3. 모면(毛面)을 혈액 기타(血液 其他)에 의하여 오손(汚損)한 것이 지어서 검교(檢校)에 제(際)하여 모질(毛質)의 감정곤란(鑑定困難)하고 등급(等級)을 부(附)키에 불편(不便)하므로서 모면(毛面)은 생체시(生體時) 그대로 오손치 않도록 보지(保持)하는 것이 좋다.
  4. 토모피(兎毛皮)의 장법(張法) — 규격(規格)에 시(示)한 폭(幅) 1, 장(長) 2의 비율(比率)로 장(張)하여 지방(脂肪)을 충분제거하여 건조(乾燥)케 할 것.
  5. 도살(屠殺)은 모두 박살(撲殺)하고 [약살(藥殺) 우(又)는 질식사(窒息死)는 절대(絶對)로 폐(廢])할 것) 속(速)히 충분방혈(充分放血)할 것.

1940년 3월 8일에 이르러서는 효율적인 군용 모피 수집을 위해 조선총독부령 제28호 「피(皮)의 판매제한에 관한 건」을 제정(시행일은 3월 10일)하였는데, 이에 따르면 견피(犬皮, 개가죽)와 토피(兎皮, 토끼가죽)는 조선총독이 지정한 판매업자 또는 도지사가 지정한 중매인이 아니면 이를 구입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와 동시에 조선총독은 ‘조선원피판매주식회사(朝鮮原皮販賣株式會社)’를 지정하여 이곳에서 견피와 토피의 조달을 독점하게끔 만들었다.

그런데 이러한 견피공출과 관련하여 벌어진 요상한 일의 하나는 그렇게 무참히 희생된 개들의 영혼을 위로한답시고 각처에서 이른바 ‘견혼비(犬魂碑)’의 건립이 잇달았다는 사실이었다. 여기에서 소개하는 내용은 전라북도 임실군의 사례인데, 임실이라고 하면 예로부터 ‘오수(獒樹)의 의견비(義犬碑)’로 유명한 고장이 아니던가 말이다. 바로 이러한 동네에서 일본군을 위한 방한용 모피를 생산하기 위해 1,600마리가 넘는 개를 집단 몰살시키는 일이 벌어졌고, 그러한 희생을 기린다고 하여 만들어진 결과물이 ‘견혼비’였다 하니 참으로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동아일보』 1938년 1월 29일자, 「모피보국운동(毛皮報國運動)에 핀 눈물의 총후미담(銃後美談), 독자병사(獨子病死)도 불고(不顧)코 활동한 구장(區長), 임실군민(任實郡民) 크게 감격(感激)」
[임실(任實)] 황군방한용(皇軍防寒用) 모피로 임실군 농회에서는 지난 일주일간에 개가죽(犬皮) 1천 5백 장을 구하게 되어 여하히 가족과 같이 사랑하던 개라도 나라를 위하여서는 하등의 아까운 마음 없이 개를 도살(屠殺)하여 그 가죽을 헌납하였는데 이 모피보국운동에 있어 한 가지 눈물겨운 임실에서는 다음과 같은 미담이 있다.
즉, 거(去) 20일 임실군 삼계면 후천리(任實郡 三溪面 後川里) 구장(區長) 노원조(盧源祚) 씨는 마침 17세 된 자기의 아들이 병에 위독하여 있어 다른 데에는 조금도 정신이 없게 된 판에 그날 그 구역에는 개가죽을 헌납하기 위하여 개의 도살한 날이었다. 그때에 노구장은 여하히 자기의 외아들의 병이 위독할지라도 나라를 위하여는 개가죽 한 장이라도 더 구하는 것이 보국심이라고 하여 그날 종일 개가죽을 구하기에 분망하고 집으로 돌아와 본 즉 자기의 아들은 벌써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 『매일신보』 1938년 2월 11일자, 「모피헌납(毛皮獻納)에 희생(犧牲)된 개무덤[견총(犬塚)]을 건설(建設), 임실(任實)의 충견보국가화(忠犬報國佳話)」
[임실(任實)] 황군의 방한(防寒)을 위하여 임실군민들은 자기들의 사랑하는 개를 조금도 아까운 마음 없이 헌납하게 되어 그 견피(犬皮)가 1천 5백 88매에 달하여 당군농회에서는 거(去) 5일에 육군창고(陸軍倉庫)로 발송하였다. 그리고 보국충견희생에 있어서 박 군수(朴郡守; 박부양)는 이러한 계획이 있다. 개는 짐승이지만 주인에게 충성이 많아야 절개를 고치지 아니하며 주인을 위하여는 헌신적 희생을 아까워하지 아니한 짐승이니 요번에 나라를 위하여 임실군내에서 1천 6백여 마리가 희생되었으나 개의 본질적 정신에 비춰서 살해가 아니므로 그대로 둘 수가 없어서 개무덤(견총)을 하여 비를 세워 기념코자 하며 또 임실에는 오수(獒樹)라는 곳이 있어서 개의 유명한 전설이 있는 곳이니 오수의 뜻이 일층 더 새로워질 것도 사실이다.

▲ 『매일신보』 1938년 4월 27일자, 「모피보국(毛皮報國) 희생(犧牲)의 견혼비(犬魂碑) 제막식(除幕式)
[임실(任實)] 임실군에서는 선반(先般) 모피헌납(毛皮獻納)에 있어서 그 수량이 지정수의 배(培) 이상에 달하여 1천 7백여 견피(犬皮)를 애견자(愛犬者)들이 헌납하였고, 또 그 품질이 ‘전선(全鮮)에서 제일(第一)’이라는 평판을 얻었다. 차(此)에 있어 임실군과 당(當) 경찰서에서는 모피 희생된 축견(畜犬)의 영(靈)을 위(慰)하여 견혼비를 임실시장전(任實市場前)에 건립하고 그 제막식을 거(去) 23일 오후 2시에 관민유지(官民有志) 다수 열석하(多數 列 席下)에 성대히 거행하였다. (사진은 임실시장에 건립한 견혼비)

그리고 이 대목에서 전국적으로 개도살 작업이 한창 벌어지고 있던 바로 그 시기에 ‘진도견(珍島犬, 진돗개)’에 대한 천연기념물(제53호, 1938년 5월 3일)의 지정이 이뤄졌다는 사실도 함께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이에 관해서는 『조선(朝鮮)』 1937년 8월호에 「왕(ワン, 멍멍)계의 왕(王) 진도견(珍島犬)」이라는 글이 남아 있으므로 참고삼아 여기에 덧붙여 소개하여 두기로 한다.

반도(半島) 동물계(動物界)의 권위(權威), 경성제대교수(京城帝大敎授) 모리[森; 모리 타메조(森爲三)] 박사는 진작부터 반도의 남단(南端) 다도해(多島海) 중의 큰 섬 전남 진도(全南 珍島)에 순조선산(純朝鮮産)의 양견(良犬)이 있다는 것은 전해듣고 있던 차, 2월 상순부터 약 2주간 동섬에 체재하며 실험연구한 결과, 이것이야말로 동교수가 다년간 탐구하여 얻으려고 했던 세계적 양견(世界的 良犬), 순수한 동아계통(東亞系統)의 개라는 것이 판명되었으나, 애석하게도 이것들은 현재 육식용(肉食用)으로서만 이용되고 있는 것인데, 동 박사는 한시라도 속히 이것들을 구해 군견(軍犬), 엽견(獵犬), 번견(番犬)으로 그 진가를 십분 발휘하도록 할 것과 귀성(歸城, 경성으로 돌아옴)하여 서둘러 천연기념물보존령(天然記念物保存令)에 의해, 내지(內地, 일본)의 추전견(秋田犬, 아키타켄), 토좌견(土佐犬, 토사켄)처럼 보존 지정견(保存指定犬)으로 하고자 목하(目下) 관계방면(關係方面)과 교섭중이다. 진도견은 명견(名犬) 추전견과 같은 크기로서 동일계통으로 보이는 스마트한 체격(體格)을 지녔으며, 들이랑 산에 풀어놓으면 굉장한 스피드로 달리는 영맹(獰猛)함을 지니고 있으나, 반면에 사주(飼主, 주인)에 대해서는 비상히 온후(溫厚)하고 독실(篤實)하다고 말하며, 꽤나 친분(親分)한 성질을 지닌 인상이다. 개의 생명선(生命線)인 후각(嗅覺)도 역시 비상하게 발달되어 있고 극히 민감 영리(敏感 怜悧)하다. 모리 박사의 연구가 발표되자마자, 우리 축견계(畜犬界)에 다대한 센세이션을 던져주고 있지만, 세계(世界)의 공기(空氣)가 점점 더 뒤숭숭해지고 있어, 고양이도 작자(杓子, 국자)까지도 국방자원(國防資源)으로 끌어넣고 있는 이 무렵에, 이 같은 명견(名犬)이 발견된 것은 군민일반(軍民一般)에게 의지를 북돋우는 일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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