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족사랑
『윤석열 정권 3년, 역사쿠데타 기록보고서』 발간
[초점] 『윤석열 정권 3년, 역사쿠데타 기록보고서』 발간 연구소는 윤석열 정권 3년여 동안 극에 달했던 역사퇴행을 기록해 다시는 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윤석열 정권 3년, 역사쿠데타 기록보고서』(이하 『역사쿠데타 기록보고서』)를 발간했다. 『역사쿠데타 기록보고서』에서는 윤석열 정권의 굴욕적인 대일외교가 한미일 ‘군사동맹’의 구체적 실행 속에서 ‘전쟁가능국’으로 발돋움하는 일본 정부 용인으로 나아갔으며, 이 과정에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인권과 식민지기 피해사실을 묵살하는 ‘제3자 변제안’이라는 굴욕 해법으로 도출되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 국내에서는 3년 내내 ‘이념전쟁’과 ‘역사전쟁’에 몰두해 독립운동가 모욕, 독재자·친일파 기념사업들이 버젓이 진행되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러한 역사부정의 뿌리가 이명박 정권부터 발흥했던 ‘뉴라이트’였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박근혜 정권에서는 박정희를 비롯한 독재자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며 ‘국정교과서’의 망령을 불러냈고, 문재인 정권에서는 숨고르기를 한 후 윤석열 정권에 이르러 각종 역사기관장과 주요 국가기관 수장에 기용되었다. 현재 윤석열의 탄핵에도 불구하고 사퇴하는 이가 하나도 없어, 남은 임기를 다 채울 가능성이 높다. 이제 새 정부에서 내란청산은 물론 역사부정 세력의 준동을 막기 위한 다방면의 대안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그러자면 윤석열 3년의 역사퇴행에 대한 치밀한 복기가 필요하다. 『역사쿠데타 기록보고서』 〈발간사〉에서 임헌영 소장이 “전사불망 후사지사(前事不忘 後事之師) 즉 지난 일을 잊지 않으면, 뒷날에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면서 “이 책이 윤 정권의 친일 매국 외교와 역사변조를 기록으로 남겨 두고두고 기억하게 하는 현대판
1971년 5·25 총선 선거 공보물과 평화민주당의 부정선거 획책방지 전단지(1987)
[소장자료 톺아보기 71] 1971년 5·25 총선 선거 공보물과 평화민주당의 부정선거 획책방지 전단지(1987) 이번 호에 소개할 자료는 심정섭 연구소 지도위원의 기증자료의 하나로 1971년 5·25 총선 선거 공보물 8점과 평화민주당의 부정선거 획책방지 전단지이다. 최근 무사히 끝난 6·3 대통령선거에 즈음하여 소개할 가치가 있는, 시의적절한 기증자료라 생각된다. 1971년은 대선과 총선이 한 달 남짓 간격으로 치러진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해였다. 1969년 3선개헌 이후 장기 집권을 꾀하는 박정희 정권·민주공화당과 이를 견제하려는 신민당이 대선과 총선을 놓고 치열하게 경합했다. 4월 27일 치러진 제7대 대선에서 박정희 후보가 야당의 김대중 후보에 94만 표 차이로 근소하게 승리했지만 야당과 시민사회의 민주화 열기가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었다. 총선에서도 그 여세를 몰아 신민당이 89명(지역구 65명, 전국구 24명)을 당선시켜 여당인 민주공화당의 113명(지역구 86명, 전국구 27명)에 비해 24명이라는 근소한 차이로 좁혔다. 또한 ‘여촌야도(與村野都)’ 현상이 뚜렷해 도시와 농촌 간의 정치 성향 괴리가 극명했으나 대도시를 중심으로 한 야당에 대한 지지가 확산되면서 정권교체의 가능성을 열었고 민주화 세력의 역량이 한층 강화되어 갔다. 전북 제5지역 선거구(진안군)와 전남 제7지역 선거구(담양·장성군)에서도 여촌야도 현상이 반영되어 두 선거구 모두 민주공화당 후보인 전휴상, 고재필이 당선되었다. 두 선거구의 득표 결과는 다음과 같다. 농촌지역이었던 진안과 담양·장성에서 여당이 각각 60%, 53%로 과반을 넘겼다. 하지만 담양·장성 선거구에서 나타나듯이 전라도에서 양당 대결로 가면 53% 대 47%로 차이가 좁혀짐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담양·장성
민족사랑 2025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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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뇌출혈로 쓰러졌는데… 한약사 남편의 선행
[후원회원마당] 아내가 뇌출혈로 쓰러졌는데… 한약사 남편의 선행 조호진 기자 정직하고 성실한 한약사이자 미혼모와 위기 청소년을 묵묵히 후원하는 ‘스마일어게인사회적협동조합’ 이사인 박종선(48) 씨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협동조합은 경기도 부천에서 이주 청소년을 위한 ‘방과후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두 아들을 잘 키우면서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박씨의 아내가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뇌출혈이란 수술이 중요한 질환이라서 ‘어쩌면 좋아, 어쩌면 좋아’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했는데 8일 기준 15일째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박씨에게 현재 상황을 조심스럽게 여쭈었더니 이런 답을 주셨습니다. “지난 3일 오후에 두 아들과 담당 의사를 만났습니다. 수술 경과는 다행히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로 약 2주째입니다. 빨리 의식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위기 청소년을 돕는 공익 활동가인 저는 좀 약골이라 골골거리며 삽니다. 이런 저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박종선 한약사가 쌍화탕을 수년째 거저 지어주십니다. 이런 호사를 혼자 누리는 게 죄송해서 미혼모 증손주를 혼자 키우는 원미동 할머니(75)와 나눈 적이 있습니다. 보내주신 쌍화탕 2박스 중 1박스(100봉)를 드렸습니다. 며칠 전, 원미동 할머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박종선 한약사의 ‘쌍화탕’을 먹고 큰 효험을 봤다면서 한약을 더 짓고 싶다고 하셔서 전화번호를 알려드렸습니다. 박종선 씨가 뇌출혈로 쓰러진 아내 병원비를 어찌 감당하실까? 안타까운 마음에 얼마간의 도움이 될까 싶어서 원미동 할머니를 소개했던 것인데 할머니가 저에게 다시 전화해서는 “약값을 받지 않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지요?”라며 미안한 목소리로 되묻는 것이었습니다.
내란 종식의 길, 가열차게 지치지 말자
[후원회원마당] 내란 종식의 길, 가열차게 지치지 말자 한요나 〈민들레〉 시민기자 2024년 12월 3일 계엄의 밤, 국민들은 아직도 각자의 계엄에 대한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다. 그날 밤, 대한민국은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서울과 근교의 시민들과 국회의원들은 혹여 생명도 잘못될 각오를 하고 국회로 달려갔다. 한편, 먼곳에서는 수많은 국민들이 가슴을 졸이며 나라의 앞날과 그곳에 달려간 사람들의 안전을 걱정하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가족들에게, 지인들에게 12·3 계엄사태에 대해 토로하고 무엇을 해야할 지를 생각해보았다. 일단, 여러 곳에 알리고 유튜브나 채팅방을 통해서 뜻을 모아야 했다. 미약한 목소리일지라도 더 크게 내야만 했다. 유혈사태가 발생한다거나, 유사시에 계엄이 해제되지 않을 경우를 마음을 졸이며 상정해보았다. 급박한 상황에서 머리가 더 빠르게 돌아갔다. 국가폭력에 저항해야 한다고 느꼈고 집회, 시위와 구호 외에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들이 나섰듯이 조직된 시민들의 연대로 싸워나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연행, 구금, 의료, 의식주를 해결할 방법도 고민했다. 국민의힘의 이해할 수 없는 비협조로 계엄해제가 가까스로 가결된 이후에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 불안감은 윤석열이 계엄해제 가결 이후에도 지하 벙커에 장시간 틀어박혀서 해제를 발표하지 않고 시간을 끌면서 더욱 커졌다. 그 이후 우리는 각자의 일상을 각자가 할 수 있는 만큼 갈아넣어 투쟁했고, 내란범들의 온갖 권모술수와 비상식으로 말미암아 다섯 달이 넘도록 끝나지 않은 내란의 시대를 살아내고 있다. 여태까지 있었던 많은 일들을 생각해보면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고 매번
시정기념관(옛 남산총독관저) 탐방기
[식민지 자료관 2] 시정기념관(옛 남산총독관저) 탐방기 이순우 특임연구원 남산 예장동에 자리한 서울유스호스텔(옛 안기부 본관)로 들어서는 초입에는 이 일대가 경술국치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통감관저 터’ 표석(2010년 민족문제연구소 세움)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은 원래 1885년 한성조약(漢城條約)에 따라 일본공사관이 들어섰다가 그 이후 차례대로 통감관저와 총독관저의 용도로 전환되어 사용된 공간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들에게는 ‘망국(亡國)’의 치욕을 겪은 곳이지만 식민통치자들에겐 ‘한국병합의 대업(大業)’을 이룬 더할 나위 없이 영광스러운 장소였던 것이다. 그러한 탓인지 1939년 9월에 경무대 총독관저가 신축되면서 빈터로 남게 된 이곳 남산총독관저는 역대 총독의 치적과 함께 그러한 사실을 오래도록 기리기 위해 공간으로 전환되어 고스란히 보존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이른바 ‘시정기념관(始政記念館, 1940년 11월 22일 개관)’이다. 식민통치자들이 즐겨 사용했던 ‘시정(始政)’이라는 표현은 — 더러 ‘시정(施政)’이라고 적기도 하지만 — “조선총독부의 설치와 더불어 신정(新政)이 개시(開始)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총독부가 출범한 10월 1일을 일컬어 ‘시정기념일’이라 하고 1915년 이후로는 이날을 아예 공휴일로 삼기도 했다. ‘시정’이라는 말에는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통치로 인해 조선은 날로 번창하고 질서회복, 제도정리, 식산흥업 등의 새로운 기틀이 마련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여기에 소개하는 시정기념관 탐방기는 『오사카아사히신문(大阪朝日新聞)』 1940년 11월 11일자에 수록된 「[시정30년의 발자취, 13도 내고향 자랑이야기(お國自慢物語り) 경기도편(그 2)]시정삼십년기(始政三十年記)의 축도(縮圖) 왜성대(倭城台)에 여는 기념관(記念館)』[사카이 특파원(坂井特派員)] 제하의 글을 옮긴 것이다. 일제의 패망과 더불어 시정기념관의 수명은 불과 5년이었지만, 그들이 이 땅에 남겨놓은 폐해는 광복 80년이 다 되어가도록
문학으로 제국의 목소리를 대변한 작가 최정희
[연구소 글방 22] 문학으로 제국의 목소리를 대변한 작가 최정희 강은정 선임연구원 1. 시대를 이야기하는 목소리, 어디로 향하는가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정부가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초유의 상황에 맞닥뜨린 날 이후, 광화문 광장과 서울시청 앞을 가득 메웠던 수많은 외침들을 기억한다. 서울의 중심은 상반된 두 진영의 외침이 교차하는 중심지가 되었고, 서로의 목소리가 격렬하게 충돌하는 거대한 선전장이 되었다. 확성기를 통해 터져나오는 날 선 목소리와 영상들, 휘날리는 피켓과 깃발들, 그리고 그 파동에 동요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웅웅거리는 분위기 속에서 때로는 감동과 결연함이 휘몰아쳤고, 때로는 알 수 없는 공포와 위압감에 소름이 돋기도 했다. 말과 글은 형체가 없지만 목소리로 발현되어 의미를 가지게 된 순간,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는지, 그리고 대중은 얼마나 쉽게 동요하고 휩쓸릴 수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목격했다. 그 와중에도 성평등, 사회 정의, 인권 등 보편적인 가치를 외치며 불평등한 사회구조의 변화를 쉴 새 없이 쏟아내는 여성들의 목소리와 울림이 유독 눈에 띄었다. 그녀들은 다양한 목소리들과 연대하면서 사회 변화를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이 ‘낯선’ 여성들의 목소리를 시대가 변한 영향으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여성들의 목소리는 늘상 존재했었음을 안다. 다만, 임계치를 넘어선 분노 앞에서 그녀들은 더 이상 주변부를 맴도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이제는 광장의 중심, 그 전면에 나서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이다. 그 무렵이었던 것
진실화해위원회의 ‘국회프락치사건’에 대한 결정과 의미
[기고] 진실화해위원회의 ‘국회프락치사건’에 대한 결정과 의미 이강수 반민특위기념사업회 학술위원장 진화위의 국회프락치사건 <결정서> 국회프락치사건은 제헌국회 내 소장파 의원들이 남로당 프락치로 활동했다면서, 노일환, 이문원 등 15명의 의원들을 체포하고, 이중 13명의 의원들에게 3년에서 10년형을 선고한 대한민국 최초의 국제간첩단 사건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경찰, 군, 검찰, 재판부까지 국가권력을 총동원해 제헌국회의원 다수를 간첩으로 몰아 ‘제거’하려 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에 대해 진실화해위원회는 2025년 4월 15일 제105차 위원회에서 ‘1949년 국회프락치사건(故 김옥주, 故 김병회)’에 대해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결정했다. 특히 <결정서>에는 “헌병대에서 나체로 성기에 전기고문을 가하는 등의 가혹행위로 자백을 받아낸 사실을 밝혀냈다”고 한다. ‘고문에 의한 사건’이라는 사실을 국가기관에서 처음으로 인정한 것이다. 그러면서, 국가는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명예회복을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했다. 진화위의 <결정서>는 크게 4가지 사항에 대해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결정했다. 첫째, 제헌국회의원들은 체포 당시 헌병들로부터 영장을 제시받지도 않았고, 범죄사실 등도 사전에 고지받지 않은 상태에서, 헌병대에 끌려가서야 영장을 보았고, 범죄사실도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행위는 “범죄사실을 고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위법 행위라고 결정한 것이다. 둘째, 구속기간의 위법이다. 김옥주, 김병회 의원 등은 1949년 6월 21일 구속되어 7월 11일 송치되었다. 당시 형사소송법에는 수사기간이 10일로 정해져 있고, 1회에 한해 10일간 연장할 수 있어, 최대 20일까지 구속이 가능했지만 1일이 초과하여 송치된 것은 ‘직권 남용’이라는 것이다. 즉, 피의자의 “구속기간을 준수하지 않았다”고 결정했다. 셋째,
긴급전시행동 〈민주주의와 깃발〉전 개막
[초점] 긴급전시행동 〈민주주의와 깃발〉전 개막 5월 16일 오후 5시 긴급전시행동 〈민주주의와 깃발〉전 개막식이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 돌모루홀에서 개최되었다. 기증자와 전시참여자 모두가 공동주최자로 이름을 올린 이번 전시는 지난 2024년 12월 3일 불법 비상계엄부터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까지 123일 동안 여의도, 광화문, 남태령, 한남동 등 전국 곳곳에서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투쟁을 재현하였다. 기증자 518명의 깃발, 응원봉, 피켓 등 시위 도구뿐만 아니라, 사진, 영상, 시국선언, 시민발언록, 투쟁지도, 설문 분석 아카이브도 전시에 담겨있다. 개막식 역시 전시 주최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행사로 진행되었다. 박물관 깃발에 롤링 페이퍼를 적고 개막식 참가자 모두가 ‘민중의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했다. 박물관 함세웅 이사장님, 윤경로 관장님의 환영사가 있었고 기증자 가운데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로 작품을 출품한 유성은(리우) 작가와 4개월 동안 광장에서 무료 음식 나눔을 했던 ‘일상을 돌려받고 싶은 사람들’ 대표 신아름 님의 축사가 있었다. 축하공연 또한 광장에서 악기를 들고 연대한 ‘광장의 악사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과 ‘바위처럼’을 연주했고 참석자들의 합창으로 박물관을 가득 채웠다. 전시는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12월 3일, 어제와 다른 날들, 어제와 다른 나들〉을 주제로 12월 3일부터 ‘빛의 혁명’으로 광장의 민주주의를 되찾은 시민들의 투쟁을 담았다. 2부 〈광장은 학교였고, 서로의 교과서였다〉에서는 광장에서 만난 ‘동지’들이 깃발을 들고 달려간 ‘연대’의 현장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합의 다이인(Die-in) 행동, 동덕여대 재학생연합의 ‘민주동덕에
근현대사기념관, <무너미에 잠든 독립운동가> 강좌 및 답사
[초점] 근현대사기념관, <무너미에 잠든 독립운동가> 강좌 및 답사 강북구와 민족문제연구소가 주최하고 근현대사기념관이 주관하는 ‘2025년 독립민주시민학교’가 4월 19일부터 11월 29일까지 시민과 학생을 대상으로 운영된다. 독립민주시민학교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무너미에 잠든 독립운동가’를 주제로 강좌 6회와 답사 2회로 구성된다. ‘무너미’는 수유동의 옛 지명으로 북한산 골짜기의 물이 흘러넘치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강북구 수유동에 안장된 독립운동가 6인의 생애와 활동을 조명한다. 지난 4월 19일과 5월 17일에는 ▲1강 삼한갑족의 독립운동, 이시영(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 ▲2강 손병희의 생애와 민족운동(정용서 연세대 사학과 강사)이 진행되었다. 이어지는 강좌는 ▲3강 앉은뱅이 선비, 심산 김창숙(홍윤정 심산김창숙기념관 학예실장) ▲4강 고종 황제의 마지막 특사 이준(이계형 국민대 교수) ▲5강 신익희의 생애와 민족운동(이강수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6강 독립과 통일에 일생을 바친 여운형(변은진 전주대 HK교수)이 예정되어 있다. 3강부터 6강은 6월부터 11월까지(단 8, 9월 제외) 매월 셋째 주 토요일 오후 2시에 근현대사기념관 강의실에서 진행된다. 답사는 총 2회로 운영된다. 1차 답사는 9월 20일에 진행되며, 강북구 독립운동가 6인의 묘소를 탐방하고, 2차 답사는 11월 29일에 신익희 생가 및 몽양여운형기념관을 탐방할 예정이다. 모든 강좌는 근현대사기념관 유튜브를 통해 누구나 수강할 수 있으며 1부터 4강은 8월 중에, 5과 6강은 11월 중에 업로드된다. 자세한 사항은 근현대사기념관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많은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 • 근현대사기념관 학예연구사 이현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