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huge collection of 3400+ free website templates, WP themes and more http://jartheme.com/ at the biggest community-driven free web design site.

주요기사

【동관东莞】민족문제연구소 광동 지부, 동관에 문 열어

2019년 4월 18일 232

민족문제연구소 광동 지부 개소식 민족문제연구소 광동지부 창립식이 지난 15일(월) 오후 5시 동관 东城国际호텔 3층 회의장에서 박호균 사무국장의 사회로 열렸다. 이날 참석한 문학평론가인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좌, 사진)은 “3.1혁명과 촛불혁명”은 인간혁명의 출발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가졌다. 이어 방학진 기획실장은 민족문제연구소의 소개와 앞으로의 방향 그리고 근현대사에 대한 간단한 강의가 있었다. 초대 지부장을 맡게 된 김유(우, 사진) 광동 지부장은 인사말에서 “묻어버린 역사는 다시 되풀이되어 언젠가는 비수를 들이댄다” 면서 역사바로세우기를 강조하였다. 민족문제연구소는 평생을 친일문제를 연구한 문학가이며 재야 사학자 임종국(林鐘國)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1991년에 설립된 비영리 사단법인으로서 친일문제 관련 학술 행사와 전시회, 친일파 기념사업 저지, 독립운동유적지 및 독립운동가 발굴,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유해 발굴 등 역사정의실현에 앞장서고 있다. 운영재원은 전국과 해외의 약 1만 3천여 후원회원들의 기부금과 연구소가 발간한 서적판매 대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설립 당시의 이름은 ‘반민족문제연구소’였으며, 1995년 현재의 이름인 민족문제연구소로 이름을 바꾸면서 인권변호사 이돈명이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제2대 이사장은 일제강점기 부민관 폭파의거의 주인공인 독립운동가 조문기 선생이, 제3대 이사장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설립한 김병상 몬시뇰 신부가 맡았으며 현재는 한국 민주화운동의 원로인 함세웅 신부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내일의 바람직한 역사를 열어가기 위한 첫 단계로 국민성금을 바탕으로 2009년 을 편찬한데 이어 국치일인 작년 8월 29일에는 역시 시민들의 성금으로 을 건립했다. 친일인명사전에는 모두 4389명의 친일인사들이 올라 있는데 이는 당시 조선 인구를

[팩트체크K] “이승만이 현상금 1위” 한국당 정미경 위원님께

2019년 4월 17일 219

이승만이 현상금 1위? 30만 달러 액수 근거 부족 김원봉·김구 현상금 역시 공식 근거는 부족해 “이승만이 현상금 1위”라는 자유한국당 정미경 최고위원님께. 정 위원님께서 오늘 아침 한국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지난 주 목요일 전화를 한 통 받았다”면서 말씀하신 KBS 기자입니다. 그날 아침 회의에서 말씀하신 “이승만 대통령이 현상금 1위”라는 근거가 궁금했습니다. 널리 알려진 바처럼 김원봉에게 가장 많은 현상금이 걸린 것 아닌가 궁금했습니다. 팩트체크 취재의 기본은 관련 주장을 한 인물 또는 단체 등에게 주장이 나오게 된 근거를 먼저 확인하는 것입니다. 위원님은 질문에 “검색포털 등에서 관련 기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하셨죠. 바로 언론진흥재단에서 운영하는 언론기사 검색 사이트와 인터넷 포털 등에서 연관 단어들을 검색했습니다. 역시 대부분의 언론 기사와 인용된 전문가 인터뷰들은 김원봉 100만원, 김구 60만 원에 이어 이승만 30만 달러라고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위원님의 말씀을 맞다 틀리다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KBS 펙트체크팀은 기사가 아니라, 원문과 공식 자료를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들 중 일제의 공식적인 현상금 기록이나 원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김원봉이 ‘현상금 100만 원의 사나이’라는 것은 일종의 ‘신화’라는 점도 새로 알게 됐습니다. 이승만 현상금의 근거…<소년중국紙> “이승만 등 3인에 30만 상금” 마침 취재하던 문제도 있고 해서 이 문제는 잠시 미뤄뒀습니다. 오늘 위원님께서 다시 언급하시기 전까지 말입니다. 위원님께서 제가 드린 전화를 언급하시며 친절히 답해주신 점

[팟캐스트]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9편 “이승우” 창씨개명을 적극적으로 앞장 서 추진한 변호사

2019년 4월 16일 117

[바로듣기] ☞ (4.16)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9편 “이승우” 창씨개명을 적극적으로 앞장 서 추진한 변호사 ☞ (4.09)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8편 “김우영” _내선융화의 상징, 조선인 부영사 되다 ☞ (4.02)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7편 “최린” 독립선언의 주역, 변절의 아이콘이 되다 ☞ (3.26) ‘내역사’ 시즌 3: 강제동원 3편 “피해자 변호인단에게 판결과정과 향후 활동계획을 듣는다 ☞ (3.21)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6편 “박중양” 3.1운동 진압을 위해 자제단을 이끈 거물급 친일파 ☞ (3.12)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5편 “김대우” – 황국신민서사를 제정 입안하여 황국신민화에 앞장선 인물 ☞ (3.06)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좌담회 2부 ☞ (3.05)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좌담회 1부 ☞ (2.27)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만세열전2부 ☞ (2.26)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만세열전1부 ☞ (2.19)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4편 “심우섭” 한 시대 형제의 다른 삶, 기회주의자 지식인의 원형 ☞ (2.12) ‘내역사’ 시즌 3: “일제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이후?_2편_한일청구권협정의 쟁점은? ☞ (2.05)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3편 “오현주” 독립운동가 김마리아를 밀고한 배신자, 반민특위 법정에 선다 ☞ (1.29)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2편 “노덕술” 고문으로 유명한 악덕 친일경찰, 대한민국 훈장을 받다 ☞ (1.22)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1편 “이종형” 의열단 행세하며 독립군 때려잡은

고양시, 일제 강점기 아픔의 장소 30사단 내 ‘항일음악회’ 성료

2019년 4월 15일 153

고양시 항일음악회 성황리 개최… 남북공동행사로 개최되길 희망해이재준 고양시장”강제 징집된 피해자들의 아픔을 되새기게 되어다. [내외통신]정석철 기자=고양시가 지난 13일,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이해 일제 강점기 아픔의 장소인 30사단 내(고양시 화전동 소재)에서 항일음악회를 열었다. 고양시가 주최하고 고양문화재단이 주관했으며, 민족문제연구소가 후원한 이번 행사는 30사단이 가진 역사적 아픔의 의미(일제강점기 일본군 주둔지 및 강제징집 피해자들의 집결소)를 되새기고, 잊혀져가는 광복군가 등의 항일음악 연주를 통해 새로운 희망과 평화의 불씨를 되살리자는 취지로 진행됐다. 이재준 시장은 이날 인사말을 통해 “100년 전 그날을 기억하고 그간의 발전 과정을 차분하게 성찰하는 동시에, 3.1운동 정신을 바탕으로 희망찬 미래 100년을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 가고자 한다”며, “역사의 아픔을 지닌 이곳에서 잊혀져 가는 광복군가와 독립운동가를 함께 부르며 강제 징집된 피해자들의 아픔을 되새기게 되어 뜻깊다”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약 2천5백여 명의 시민 및 군 장병들의 참여와 함께, 고양시 교향악단, 고양시립합창단 등의 공연을 시작으로 고양신한류예술단, 노관우 밴드, 30사단 군악대 등이 항일음악을 연주했다. 또한,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참여해 그 의미를 더했으며, 마지막으로 출연한 싱어송라이터 인기가수 신형원씨는 누구에게나 친숙한 개똥벌레를 시작으로 독립애국가, 더좋은날 등의 히트곡과 항일음악을 불렀고, 마지막 무대는 전 출연진이 함께 올라와 터를 부르며 많은 시민들의 가슴에 묵직한 울림을 줬다. 이재준 시장은 이날 인사말을 통해 “100년 전 그날을 기억하고 그간의 발전 과정을 차분하게 성찰하는 동시에, 3.1운동 정신을 바탕으로 희망찬 미래

[독립견문록] “백범은 수십만 독립운동가중 한 분…잊힌 영웅 아직도 많아”

2019년 4월 13일 160

홍소연 임정기념관건립추진위 자료실장 인터뷰 38년간 독립운동 알리기 헌신`독립견문록` 3000㎞ 취재 동행 백범일지 영인본 만든 1994년원본 품고 다니던 감동 못잊어 재산 다 팔고 독립운동 떠났던이명서·명선 형제 기억됐으면 ◆ 3·1운동, 임시정부 100주년 / 독립견문록, 임정을 순례하다 ◆ 툭 치면 와르르 쏟아졌다. 중국 상하이에서 충칭까지 향하는 길, 한 장의 사진에서 독립운동가 생애가 재현됐고 한 권의 책 표지에서 100년 전 기억이 육화됐다. `독립견문록, 임정을 순례하다`의 마지막 편을 송고한 뒤 만남을 청하자 “독립운동사의 교통순경일 뿐, 그럴 자격도 능력도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진심을 다하는 막후(幕後)의 배후자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설득해 오래 사양하던 그를 탁자에 앉혔다.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이면을 쫓아 38년간 외길을 걸은 홍소연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 자료실장(61)을 지난 5일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 서울 경교장(京橋莊)에서 만났다. ―첫 출근 날 풍경부터 기억해 볼까요. ▷1982년 가을, 친구 집에 놀러가니 친구 시아버님이 “뭐하는 친군가” 하고 물으셨어요. 그분이 백범 제자 안윤기 선생이었습니다. 얼떨결에 출근했죠. 을지로3가 상지빌딩 3층, 좁은 방에 철제 책상 3개뿐이었어요. 안 선생님이 떠나시면서 맡게 됐습니다. 그 일이 평생 업(業)이 됐네요. ―벅차오르는 한순간은. ▷글쎄…. `백범일지` 영인본을 만든 1994년 기억이 생생해요. `백범일지` 원본(原本)을 품고 인쇄소를 한 달간 오갔어요. 흑백으로 하자는 어른들을 겨우 설득해 컬러로 했죠. 가슴이 두근거려 혼났어요. 시대의 분신(分身)이었으니까요. 아, 그땐 `백범일지`가 보물로 지정되기 전이었습니다(`백범일지`는 1997년 보물 제1245호로 지정됐다). ―보급판 `백범일지`도 만드셨죠.

“백범 가족과 백범 암살 배후가 한자리 묻혀 있어서야…”

2019년 4월 12일 154

대전 현충원 가보니 백범 어머니·아들 묘역에서600m 떨어진 곳에 김창룡 묘 시민들, 이장 촉구만 20년째 “법 개정안, 국회 통과 안돼” “저 너머에 김구 선생의 어머니와 아들이 묻혀 있습니다. 자식과 아버지의 암살 배후로 지목된 인물과 같은 곳에 계신 셈이죠. 역사적 단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우리 민족사가 국립묘지에 그대로 응축돼 있는 겁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10일 오전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장군1묘역. 홍경표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사무국장이 김창룡의 묘 앞에서 산 너머를 가리키며 말했다. 김창룡의 묘는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장군1묘역 상단 두 번째 열에 자리 잡고 있다. 홍 국장은 “장군1묘역은 현충원 안에서도 가장 높은 위치에 좌청룡 우백호가 감싸고 있는 형국의 명당”이라며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되도록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김창룡은 일본군 헌병 오장 출신으로,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인물이다. 해방 후 소련군정에 전범으로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탈출했고, 1947년 조선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 전신)에 입교해 육군 장교로 임관하면서 군내에서 승승장구했다. 기무사령부 전신인 육군 특무부대장을 지내며 소장까지 진급했고, 1956년 암살된 후엔 중장 계급이 추서됐다.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는 죽기 전 “김창룡으로부터 강한 암시를 받았다”며 그를 사실상 암살의 배후로 지목했다. 김창룡이 묻힌 장군1묘역에서 조금만 걸어 내려가면 애국지사 묘역이 나온다. 직선거리로 600m 정도 떨어진 곳이다. 이곳에 김구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 지사와 아들

[팟캐스트]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8편 “김우영” 내선융화의 상징, 조선인 부영사 되다

2019년 4월 9일 136

[바로듣기] ☞ (4.09)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8편 “김우영” _내선융화의 상징, 조선인 부영사 되다 ☞ (4.02)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7편 “최린” 독립선언의 주역, 변절의 아이콘이 되다 ☞ (3.26) ‘내역사’ 시즌 3: 강제동원 3편 “피해자 변호인단에게 판결과정과 향후 활동계획을 듣는다 ☞ (3.21)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6편 “박중양” 3.1운동 진압을 위해 자제단을 이끈 거물급 친일파 ☞ (3.12)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5편 “김대우” – 황국신민서사를 제정 입안하여 황국신민화에 앞장선 인물 ☞ (3.06)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좌담회 2부 ☞ (3.05)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좌담회 1부 ☞ (2.27)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만세열전2부 ☞ (2.26)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만세열전1부 ☞ (2.19)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4편 “심우섭” 한 시대 형제의 다른 삶, 기회주의자 지식인의 원형 ☞ (2.12) ‘내역사’ 시즌 3: “일제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이후?_2편_한일청구권협정의 쟁점은? ☞ (2.05)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3편 “오현주” 독립운동가 김마리아를 밀고한 배신자, 반민특위 법정에 선다 ☞ (1.29)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2편 “노덕술” 고문으로 유명한 악덕 친일경찰, 대한민국 훈장을 받다 ☞ (1.22)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1편 “이종형” 의열단 행세하며 독립군 때려잡은 악명 높은 밀정 ☞ (1.15) ‘내역사’ 시즌 3: “일제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이후 우리의 과제는?_1편

‘김일성과 동급’ 허형식 장군은 서훈을 받을 수 있을까

2019년 4월 8일 232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 항일 파르티잔 허형식 서훈 신청 지난 2일에 마침내,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아래 민문연, 지회장 전병택)가 창립 이후 추진해 온 ‘허형식 장군 독립유공자 포상’이 신청됐다. 이날 오전 11시 50분 민문연 구미지회의 장기태 허형식 장군 서훈 추진위원장과 신문식 회원(구미시의원)은 대구지방보훈청에 구미시 임은동 출신 허형식(1909~1942) 장군에 대한 독립유공자 포상을 신청했다. 모바일 단체 대화방으로 낭보를 접하면서 나는 지난해 10월 21일, 110년 만에 이루어진 왕산(旺山) 허위(許蔿, 1855~1908) 선생의 추모제를 떠올렸다. 13도 의병 연합부대(십삼도창의군)를 이끈 왕산이 서대문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한 것은 1909년 10월 21일이었다. 이날 추모제에서 절규에 가까운 통한의 추모사로 좌중을 숙연하게 만든 이가 장기태 위원장이었다. 곧이어 창립한 구미지회에서 우선 사업으로 허형식 장군 서훈을 추진할 때 그가 이를 맡아 책임지기로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관련 글 : 왕산 허위, 110년 만에 시민 추모를 흠향하다) 그리고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얼마 전 만났더니 그는 두툼한 서류뭉치를 내밀며 준비가 거의 끝났다고 말했다. 수고했다고 공치사를 하다 말고 나는 서류를 들여다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이 서훈 신청이지 그게 만만찮은 일이라는 걸 모르는 이 어디 있겠는가. 그는 독립운동가 공적조사서, 평생 이력서, 제적등본, 족보 등을 비롯하여 관련 기사, 논문, 단행본, 중국어 자료 등 모두 8종 115쪽에 이르는 증빙자료를 모았다. 생업에 종사하면서 이런 가외의 일에다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고양의 청소년·시민들이 재현한 100년 전 행주나루터 만세 외침

2019년 4월 5일 200

3·1혁명 100주년 기념 행주나루터 선상만세시위 민족문제연구소 고양파주지부 주최대규모 상황극으로 100년 전 만세함성 되살려 800명 청소년·시민, 행사 주인공으로 적극 참여새로운 100년 위해 ‘친일 청산’ 다짐 “일제는 물러가라, 대한독립 만세!” 행주산성에서, 마을에서, 배 위에서…. 100년 전 행주나루터에서 울려 퍼졌던 고양땅 선조들의 외침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 고양파주지부(지부장 백창환)가 주최한 3·1혁명 100주년 기념 행주나루터 선상만세시위 재현행사가 지난달 30일 고양 행주산성역사공원에서 열렸다. 이재준 고양시장이 태극기를 높이 들고 행진에 앞장섰고,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주먹을 불끈 쥐고 친일파 청산을 외쳤다. 백창환 민족문제연구소 고양파주지부장은 만세를 선창했다. 그러나 이날의 재현행사를 성대한 기억과 체험의 장으로 완성시킨 진정한 주인공은 자발적으로 모여든 800여 명 시민과 청소년들이었다. 100년 전 기미년 3월, 민족대표와 지식인·학생들이 앞장서 시작한 독립만세의 외침이 노동자, 농민들에 의해 전국 방방곡곡의 장터와 마을로 들불처럼 번져나간 것을 연상케 했다. 고양시와 고양시3·1혁명100주년추진위원회, 민족얼지킴이, 고양시민사회연대회의, 행주어촌계 후원으로 열린 이날 행사는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지는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시종 뜨거운 열기 속에 진행됐다. 특히 고양시 소재 10여 개 학교 550여 명의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참석해 고양의 자랑스런 독립운동 역사를 되새겼다. 정치권에서는 이재준 고양시장, 이규열 고양시의회 부의장과 김해련·김미수·정봉식 시의원, 김경희 경기도의원이 참석했고, 이이화 역사학자와 김재득 농협중앙회 고양시지부장을 비롯해 많은 지역인사들이 참석해 고양을 대표하는 독립운동 기림행사에 동참했다. 오전 10시가 되자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진밭두레보존회가 길놀이

강제징용 피해자들 추가 손배소…”日, 짐승 취급했다”

2019년 4월 4일 216

일본제철·후지코시·미쓰비시·코크스 4곳 피해자 “인간에 자유 있어도 한계 있어” 민변 “더 이상 늦출 수 없어 소송 제기” 【서울=뉴시스】옥성구 기자 = 일본강점기 시절 강제징용 피해자들과 유족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추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제기하기 전 기자들 앞에 선 김한수(101) 할아버지는 “짐승과 같은 대우를 받았던 시절을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민족문제연구소는 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일제 강제동원 사건 추가소송 제기’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후 피해 당사자인 김 할아버지 등 생존 피해자 4명과 사망 피해자 6명의 유족 27명은 일본 기업 일본제철(신일철주금)·후지코시·미쓰비시중공업·코크스공업 4곳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 소장을 접수했다. 손해배상 금액은 개인당 1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할아버지는 “일본에 강제로 끌려가서 사람이 아닌 짐승과 같은 대우를 받으며 살았던 그 시절을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다”며 “당시 같은 식당에서 일본 사람은 하얀 쌀밥을 먹고, 한국 사람은 기름짜고 남은 것에 쌀을 넣어 먹는데 그것도 배불리 먹을 수 없었다. 그런 세월이 흘러갔다”고 말했다. 이어 “이것이 과연 참고 살아야 하는지, 아니면 사과를 받고 손을 싹싹 비는 모습을 봐야 하는지 대단히 어려운 문제다”면서 “그들이 생각할 때 한국 사람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을 거다. 아무리 인간에 자유가 있다고 해도 자유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할아버지는 지난 1944년 8월께 목재를 실어 나른다는 설명을 듣고 회사 트럭을 타고 갔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