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요기사
[영상] 민족문제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이 광복절에 진짜 전하고 싶은 이야기
김창숙 지사의 손녀이자 김찬기 지사·손응교 여사의 딸, 김주 선생 이관술 지사의 외손녀 손옥희 선생 민족문제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은 8월 15일(토)부터 29일(토)까지 2026〈기억과 성찰〉 특별주간을 운영합니다. 1910년 8월 29일 국치일부터 1945년 8월 15일 광복절까지 일제 식민지배 35년의 아픔과 저항의 역사를 성찰하고 저항과 연대를 통해 평화와 인권의 기틀을 만든 민중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활동입니다. 8월 15일 북토크 〈후손과의 대화〉에서는 김창숙·김찬기 지사의 후손 김주 여사, 이관술 지사의 후손 손옥희 여사를 만났습니다. 스승 이관술과 제자 손응교(김주 여사의 모친), 선대의 인연을 이어온 두 후손의 증언을 통해 현대사의 그늘에 가려진 독립운동가 집안의 삶과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할 역사의 진실을 알아보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만족문제연구소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외면받은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후손을 비롯하여 영광보다 많은 상처를 입은 독립운동가 후손 열한 분의 인터뷰를 정리해 2026년 『결국, 뿌리로 산다』로 엮어냈습니다.
[영상] 2026년 야스쿠니반대 촛불행동
지난 8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는 ‘야스쿠니반대촛불행동’에 참가해 일본시민들과 함께 야스쿠니신사가 보이는 거리에서 ‘야스쿠니반대’, ‘전쟁반대’를 외치며 행진을 했습니다.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의 8월 촛불행동’은 2006년 한국, 일본, 대만, 오키나와 시민들이 올해로 21년째 매년 8월 초에 도쿄에 모여 야스쿠니신사의 본질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연대와 투쟁을 해 왔습니다. 야스쿠니는 과거 주변 아시아국가들에 대한 식민지배를 부정하고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천황을 위한 성스러운 전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야스쿠니는 과거 영광스러운 시대로 돌아가자는 정확히 말해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는 상징적인 시설인 것입니다. 야스쿠니에는 식민지시절 전쟁에 강제로 끌려가 죽음을 당한 2만 1천여 명의 당시 조선인들이 합사되어 있습니다. 강제로 끌려가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친 신으로 모셔지고 있는 것입니다. 합사된 강제동원 피해자의 유족들이 2001년부터 합사철회를 요구하는 소송을 일본에서 시작했고, 현재 손자녀 소송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2025년 12월에는 한국법원에 일본정부와 야스쿠니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하였습니다. 올해 야스쿠니반대촛불행동에서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청년활동가들이 응원봉과 깃발, 그리고 다양한 시위용품을 가지고 나와 윤석열 탄핵 집회 때 봤던 한국의 시위문화를 일본시민들에게 선보였습니다. 특히 거리행진 때는 ‘다시 만난 세계’와 ‘위플래시’에 맞춰 참가자들 전체가 깃발과 응원봉을 흔들며 ‘야스쿠니반대’와 ‘전쟁반대’를 외치기도 했습니다. 마치 윤석열 탄핵 집회를 도쿄 한복판에서 보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행진이 끝나갈 무렵에는 한국의 민중가요인 ‘님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번 ‘야스쿠니반대촛불행동’의 또다른 중요한 의미는 한일청년들의 연대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청년활동가들과 일본의 ‘평화헌법을 지키는 긴급행동
[뉴시스]’일제판 블랙리스트’ 독립운동가 4명 서훈…3명은 ‘사후 행적’ 등 보류
김한동·이강진…광복절 계기 김상구·김서호 추가 포상 3명 추가자료·공적 조사 및 사후 행적 등 이유로 보류 “사후 행적 검증 필요…미확인 장기 보류는 개선해야” [서울=뉴시스] 조성하 기자 = 일제가 패망 직전까지 감시했던 조선인 명부에서 발굴된 독립운동가 37명 가운데 4명이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았다. 명부에 기록된 항일 행적을 토대로 민간 연구기관이 발굴한 인물들로, 기존 2명에 이어 이번 광복절을 계기로 2명이 추가로 서훈 대상에 올랐다. 다만 심사 결과가 나온 나머지 3명은 추가 조사나 공적 보완의 필요성, 독립운동 이후 행적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이번 포상에서 제외됐다. 독립운동 공적뿐 아니라 친일 행적과 해방 이후 북한 정권과의 관련성 등 생애 전반을 살피는 현행 독립유공자 서훈 심사 기준이 적용된 결과다. 광복절인 15일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민족문제연구소가 지난해 6월 ‘조선인요시찰인약명부(약명부)’ 등을 토대로 발굴해 국가보훈부에 독립유공자 포상을 신청한 독립운동가 37명 가운데 이날까지 김한동·이강진·김상구·김서호 지사 4명이 서훈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김한동 지사는 올해 3·1절 계기 포상에서 건국훈장 애국장을, 이강진 지사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올해 광복절 계기 포상에서 김상구 지사가 건국훈장 애족장, 김서호 지사가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나머지 33명 가운데 3명도 심사 결과가 통보됐다. 이 중 한 명은 ‘추가자료 조사 후 재심사’, 다른 한 명은 ‘추가 공적 조사’, 나머지 한 명은 ‘사후 행적 이상’을 사유로 이번 포상에서 제외됐다. 이들을 제외한 30명은 아직 심사가 진행
[KBS]〈지원병의 노래〉 음반 발굴…최고 가수의 ‘잊혔던 친일’
앵커 일제 치하 말기 조선 청년들의 일본군 입대를 독려했던 당대 최고 인기 가수 채규엽의 노래가 실린 음반이 발굴됐습니다. 같은 내용을 다룬 선전 영화의 주제가이기도 한 데 그동안 음원이 유실된 탓에 이 가수는 친일인명사전에도 등재되지 않았습니다. 김용덕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1940년 첫 개봉한 영화 ‘지원병’. 식민지 조선 청년이 일본군에 입대하는 과정을 다룬 영홥니다. [방학진/민족문제연구소 사무처장 : “(조선 청년들을) 군대에 동원하는 것이 무척 필요했습니다. (이를 위해 예술인의) 직업과 역할에 맞춰서 일제에 공헌하라.”] 당시 영화 주제가 두 곡의 가사는 공모로 선정됐습니다. 이 가운데 ‘지원병의 노래’는 당대 최고 가수인 채규엽이 불렀습니다. 해방 후 음원이 유실됐었는데 최근 KBS 수장고에서 이 노래가 실린 음반이 발굴됐습니다. [‘지원병의 노래’/채규엽 노래 : “熱い血潮は若者の 胸に開いた大和魂 内鮮結ぶ感激に. (뜨거운 피는 젊은이의 가슴에 피어난 야마토 정신, 일본과 조선을 잇는 감격에).”] [이준희/대중음악 연구가 : “직접 듣게 된 거는 이번이 처음이죠. (1930년대 통틀어) 단 한 명의 인기 가수를 꼽자면 아마도 채규엽이지 않을까.”] 1920년대 일본 유학 시절 좌파 문예 집단인 카프에서 활동했고 아리랑 등 대표곡이 조선총독부에 의해 금지곡이 되기도 하지만, [‘아리랑’/채규엽 노래/총독부 금지곡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일제 말기로 접어들며 여러 친일 행적을 보입니다. [이준희/대중음악 연구가 : “(30년대 중반까지) 채규엽의 음반을 쭉 놓고 보면 금지곡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나 이후 일본군) 지원병이 이분이 스스로가 지원병이 돼요.”] 원로
[연합뉴스] 광복절 앞두고 하영 ‘증조부 친일논란’ 일파만파
<출연 : 이명숙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김헌식 문화평론가> 배우 하영 씨가 증조부 친일 논란에 사과했지만, 논란은 좀처럼 가시지 않는 모습입니다. 성급한 해명에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증조부 안상호의 추가 친일 행적이 등장했는데요. 자세한 내용 이명숙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김헌식 문화평론가와 살펴보겠습니다. <질문 1> 배우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의 친일파 행적 논란이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성급한 대처가 논란을 키웠다는 지적도 나오는데요? <질문 2>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는 어떤 인물인가요. 친일 행적에 대한 기록이 어디에, 어떻게 남아 있나요? <질문 2-1> 대정친목회에 회원이었다고, 어떤 조직이고 안상호에 대해선 어떻게 기술돼 있나요? <질문 3> 하영이 자필 사과문을 냈죠. 어떤 내용이고, 이후에 불거진 새로운 논란은 어떤 것이 있나요? <질문 4> 안상호가 이토 히로부미 추모 모임에 참가했다는 주장이 추가로 제기됐는데, 근거를 어디서 찾을 수 있나요. 한국과 일본은 하나라는 의미의 ‘내선 융화’에도 앞장섰다고요? <질문 5> 안상호의 이름이 친일 인명 사전에 미등재돼 있다고요. 등재 기준이 있나요. 연구소에서 추후 등재를 검토하고 있는지요? <질문 6> 사과에도 이번 논란은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습니다. 하영에 대해 광고계도 손절하고 있다구요. 촬영을 마친 작품은 어떻게 되나요? 방송 활동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요? <질문 7> 하영 뿐만 아니라 과거 조상들의 친일 논란으로 곤욕을 치른 연예인들이 꽤 있었는데요. 당시 그들이 어떻게 대처했는지도 재조명되고 있죠? <질문 8> 논란이 이어지면서 광복절을 앞두고 독립운동가와 국가유공자의 후손으로 알려진
[MBC] ‘친일 논란’ 독립유공자 최소 31명‥8년째 취소는 1명
앵커 오늘은 독립운동가들의 헌신으로 조국을 되찾은 광복절 81주년입니다. 친일 청산 문제가 어느 때보다 관심을 모으고 있는 올해 광복절을 맞아 MBC는 친일 의혹이 있는 독립유공자들에 대해 취재했는데요.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은 독립유공자 가운데 친일 의혹이 있는 사람이 최소 31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보훈부가 재조사에 나선 이후 8년 동안 서훈이 취소된 사람은 단 한 명에 불과했습니다. 정혜인 기자의 단독 보도입니다. 리포트 일제 침략 만행과 친일파들의 매국 행적 등을 모아놓은 식민지역사박물관. 이곳에 보관 중인 ‘일제협력단체사전’에는 ‘배헌’이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배헌은 일제 말기 한국인의 전쟁 동원을 위해 조직된 친일단체 ‘조선임전보국단’에 발기인으로 이름을 올리고, 지금의 지방의원 격인 읍회 의원으로 세 차례 당선되는 등 친일 의혹이 잇따라 제기됐습니다. 하지만, 항일단체 신간회의 지회 창립을 도모해 6개월간 옥고를 치른 경력이 있다는 이유로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은 뒤 여전히 독립유공자로 남아 있습니다. [이명숙/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조선총독부나 일제에 협력하는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읍회의원으로 출마를 하고 당선이 되기도 하고… 꾸준히 읍회의원에 당선됐다는 것은 굉장히 협력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탄압과 고문이 자행된 옛 종로경찰서 인근. 과거 의열단원 김상옥 의사가 이곳에 폭탄을 던져 이렇게 표석도 세워졌습니다. 그 사건 3년 뒤 창의단 역시 이곳에 폭탄을 던지려다가 거사 직전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이 폭탄 미수 사건을 주도한 전좌한은 당시 징역 5년을 받은 공적으로 건국훈장
[뉴스1] “아버지 영혼 해방시키고 싶어요”…야스쿠니에 맞선 여든셋 딸
광복 81년에도 창씨명으로 야스쿠니에…한국서 첫 손배소 “판결과 기록, 그 자체가 중요” 아버지 명예회복 위해 바친 30년 “ “돈보다 중요한 건 이것(소송 과정)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는 겁니다. 기록은 하나의 무기를 만드는 것이니까요.” 이희자 씨(83)는 ‘이원사현’이라는 창씨명이 적힌 유수명부(일본 후생성이 일본군으로 징용된 조선 군인·군속의 신상을 담은 문서)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14일 서울 용산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뉴스1>과 만난 그는 아버지의 이름을 되찾기 위해 벌여 온 30년의 싸움을 이야기하면서 ‘기록’을 강조했다. 아버지 고(故) 이사현 씨는 10남매의 든든한 장남이자 살가운 맏사위였다. 1944년 스물셋의 나이에 일본군 육군 군속으로 강제동원됐고, 이듬해 6월 11일 중국 광시성에서 전투 중 입은 부상으로 숨졌다. 이 씨가 태어난 지 불과 13개월 무렵이었다. 두 달 뒤 조선은 광복을 맞았지만 아버지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아버지의 죽음 뒤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 것은 반세기가 흐른 1996년이었다. 이 씨는 아버지가 일본이 패전한 지 14년이 지난 1959년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다. A급 전범 14명을 비롯해 일본이 일으킨 전쟁의 전몰자들을 ‘영령’으로 떠받드는 곳에 강제동원 피해자인 아버지의 이름까지 올라가 있었다. 유족에게 동의를 구하거나 합사 사실을 알리는 절차는 없었다. 합사는 유골을 옮긴 것이 아니라 일본 정부가 제공한 자료를 토대로 희생자의 이름과 사망 정보를 명부에 올려 신사의 제신으로 삼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유족에게는 아버지를 누구와, 어디에서, 어떻게 추모할지를
[뉴스1] 한일 시민사회 국제토론회…”日총리 개헌 시도 반대 2030 늘어”
“전쟁국가 위기감…평화헌법 지키는 30%가 2030” 역사부정 우려 목소리도…”韓정부, 법적 배상 판결 이행 요구해야” (서울=뉴스1) 신윤하 기자 한수민 수습기자 = 일본을 전쟁 가능한 국가로 전환하려는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개헌 시도를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본 내 청년들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는 현지 시민단체의 주장이 나왔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광복절을 이틀 앞둔 13일 서울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식민주의 극복과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한일 시민사회 국제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토론회에 참석한 일본 시민단체는 최근 개헌과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본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시위 참석자 중 청년과 여성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게 특이점이라고 한다. 요네야마 아쓰코 헌법 공동센터 공동대표는 “지난 2월 이후 평화헌법을 지키기 위한 집회와 국회 앞 행동이 개최되고 있으며, 전국 각지에서 행동이 동시에 이뤄지면서 세대를 불문하고 참가자가 많아지고 있다”며 “특히 20대와 30대가 약 30%, 여성이 절반이었다”고 말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른바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헌법 제9조를 개정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일본 헌법 9조는 전쟁 포기와 전력 불보유, 교전권 부인을 규정한 조항이다. 일본 현지에서는 헌법 9조 개정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집회·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아사히신문이 지난 3~4월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개헌 자체에 대한 찬성은 반대 응답보다 높지만, 9조 개헌에 대해선 반대하는 여론이 63%로 찬성(30%)보다 더 높았다. 요네야마 대표는 “‘전쟁을 멈춰라’, ‘헌법을 지켜라’라는 구호를 내건 젊은 여성들을 선두로 연대라는 문구를 손에
[한겨레] ‘친일 명단’ 1만장 훑은 일본인…“가장 폭력적인 일본, 고통 가중한 친일파”
[만리재사진첩] 용산 식민지역사박물관 ‘세상을 바꾼 시민 함께 만든 역사’ 전시 “이 역사를 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전시를 보러 왔어요” 광복 81주년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일본인 대학생 다니구치 마이(19)가 유창한 한국어로 말했다. 일본 고베에서 한국어를 전공하는 그는 숙명여대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왔다. 다니구치는 일본어로 쓰인 해설집을 들고 천천히 걸으며 모든 전시물을 꼼꼼하게 살펴봤다. 그는 “(일제가) 자원을 수탈했을 뿐 아니라 사람들의 삶과 마음을 점령해 상처 줬다는 걸 다시 알게 됐다”며 “한국인뿐 아니라 일본인들도 이 역사를 알아야 서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창립 35주년을 기념해 ‘세상을 바꾼 시민 함께 만든 역사’라는 제목으로 기획전시를 열고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친일 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역사학자 임종국(1929~1989) 선생이 남긴 1만3천여 장의 ‘친일인명카드’를 살펴볼 수 있다. 친일파의 이름, 본적, 친일 행위가 빼곡히 써 있는 임 선생의 카드들은 18년이라는 편찬 과정을 거쳐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자 4389명의 이름과 행적을 확인할 수 있는 ‘친일인명사전’으로 거듭났다. 발간된 지 17년이 지났지만 최근 배우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의 친일 논란이 불거지며 안상호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지 않았음에도 친일 행적을 기록하고 검증하는 대표 사료인 친일인명사전의 의미와 역할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날 박물관에선 일본인 관람객 대여섯 명이 함께 전시를 관람했다. 도쿄 히토츠바시 대학교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전공하는 카다야마 토모키(22)는 친일인명카드를 보며 “친일파가 생기도록 한 일본의
[KBS] 대법 ‘일본제철 강제동원’ 또 배상 판결…“유족에 8천만 원 지급”
앵커 일본제철이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에게 8천만 원을 배상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이같은 배상 판결이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데, 하지만 실제로 배상을 받기까지는 또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신현욱 기잡니다. 리포트 1942년 일본으로 강제동원된 민문식 씨. 다섯 달간 일본제철 가마이시제철소에서 일하다 도망쳤고, 광복 후 귀국했습니다. 유족들은 민 씨가 강제동원돼 열악한 환경에서 위험한 노동에 종사했다며, 일본제철을 상대로 1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습니다. 쟁점은 ‘소멸시효’ 여부였습니다. 불법행위를 알게 된 날로부터 3년 안에 소송을 제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은 2012년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판단했는데, 파기환송심을 거쳐 2018년 전원합의체에서 최종 확정됐습니다. 민 씨 유족이 소송을 제기한 건 2019년 4월. ‘불법을 안 날’을 2018년으로 봐야 청구권이 인정되는 겁니다. 이에 대법원은 2018년을 기준점으로 삼아, 일본제철이 유족들에게 8천만 원을 배상하라는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민병조/고 민문식 씨 아들 : “아버지가 생전에도 구제를 받으려고 노력을 많이 하셨는데 길이 없어서 애만 쓰시고 그러셨는데.”] 유족 측은 일본제철의 한국 자산을 압류하고 강제집행 절차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영환/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 : “저희들이 계속 압류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이 전범 기업의 이자가 쌓이는 겁니다.”] 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의 승소 판결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기업들이 배상을 거부하고 있는 데다, 기업의 국내 자산이 없는 경우 배상금을 받을 방법도 요원한 상황입니다. KBS 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