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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오마이뉴스] 한국사 교사조차 부끄럽게 만든 책, 추천합니다

2021년 3월 10일 403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가 발간한 가볍고도 무거운 역사책 ‘한 시대 다른 삶’ 글을 시작하기 전에 부끄러운 고백부터 해야겠다. 이 두 권의 책에 등장하는 스무 명의 인물 중에 태어나 처음 들어본 이름이 무려 네 명이나 된다. 명색이 20년 넘게 아이들에게 한국사를 가르쳐온 현직 교사로서 면구하기 짝이 없다. 학교에서도 근현대사를 주로 가르쳐왔고, ‘현대사 전문가’라는 상찬까지 들으며 십수 년 동안 여기저기 대중 강연을 다니기도 했다. 아이들도 수강생들도 그런 나를 현대사와 관련된 박사 학위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줄로 안다. 책을 읽는 내내 얼굴이 화끈거려 혼났다. 가령, 신석구와 한형석. 신석구 선생은 3.1 운동 당시 기독교를 대표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이시고, 한형석 선생은 1940년대 광복군 선전대에서 활약한 항일 음악가다. 해방 후 친일 청산 노력이 물거품 되면서 지금껏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시된 친일파들이야 그렇다 해도, 독립운동가의 생애는커녕 이름조차 낯설어하는 내가 과연 한국사 교사 맞나 반성하게 된다. 솔직히 일독을 권유받았을 때, 마치 감수자라도 되는 양 스스로 거들먹거렸다. 수업 교재나 교양 도서로서 어디 하자는 없는지 찾아 훈수를 두려는 거만한 태도로 책을 폈다. 내용을 살펴보기도 전에 아이들에게 먼저 읽어보라고 권한 것도 그래서다.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다 아는 내용일 거라고 지레짐작했던 거다. “도서관 서가에 꽂혀 있는 두툼한 세 권의 <친일인명사전>보다 불과 두세 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는 이 두 권의 책이 친일 청산이

민족사랑 2021년 02월호

2021년 2월 24일 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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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단독] “동족 학살·독립군 체포”..간도참변 ‘한국인 경찰 48명 공적서’ 발굴

2021년 3월 1일 656

[앵커] 지금부터는 KBS가 최초로 발굴해 취재한 내용, 자세히 전해드리겠습니다. 1919년 들불처럼 일어난 3.1운동의 거대한 동력은 한반도를 넘었습니다. 상하이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그리고 이듬해 봉오동·청산리 전투의 승전으로 이어집니다. 일제는 곧바로 보복에 나섭니다. 간도 지역 항일 독립운동가와 수많은 민간인들을 무참히 학살한 사건, 바로 ‘간도참변’입니다. KBS가 발굴한 이 문서, 오늘(1일)로부터 꼭 100년 전인 1921년 3월 1일, 재간도일본총영사가 결재했다고 표기돼 있습니다. 학살의 현장, 간도참변에 동참했던 한국인 경찰관들의 공적을 적은 일본 외무성 문서입니다. 일제에는 충실한 경찰이었지만, 우리 민족에겐 동포를 붙잡고 살해하는 데 가담한 반역자들이었습니다. KBS는 이 자료를 토대로 당시의 참상을 돌아보는 한편, 경찰의 ‘친일 청산’ 작업은 어디까지 왔는지 짚어보겠습니다. 먼저 홍진아 기자입니다. [리포트] 봉오동, 청산리 전투에서 패한 일제는 그 보복으로 독립군을 말살하겠다는 명목으로 간도 지역 한인 마을에 불을 지르고 민간인을 학살했습니다. 독립신문에 기술된 간도참변 희생자 규모는 3천 명이 넘습니다. [신주백/한국독립운동사 연구소장 : “어린이부터 노약자까지 남성은 모두 다 한곳에 모아서 학살하는 형태를 취했고요. 총알이 아까워서 칼이나 창으로 찔러 죽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KBS는 간도참변에 가담한 한국인 경찰관 48명의 공적이 적힌 일본 외무성 문서를 최초 발굴했습니다. 일제가 이들에게 상훈을 주기 위해 작성한 600쪽 분량의 문서인데, 꼭 백 년 전인 1921년 3월 1일 결재됐다고 나옵니다. “순사 박양운, 무장 독립군 7명을 붙잡은 공로가 크다.” “순사 허린, 어두운 밤과 혹한을 무릅쓰고

[인천일보][일제 강제동원 피맺힌 증언] 오키나와, 그 지옥의 조선인 1

2021년 3월 4일 296

탈출하다 붙잡힌 동포는 숨이 붙은 채 땅에 묻혔다 태평양전쟁에서 열세에 몰린 일제는 1944~1945년 조선인 군속(인부, 군부) 1만여명을 오키나와에 급히 배치했다. 당시 미군은 오키나와의 조선인 군속 포로를 ‘노예노동자(slave laborers)’라고 표기했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조사·발표한 ‘오키나와 강제동원 조선인 희생자 피해실태'(책임연구원 김민영 군산대 교수) 자료에 따르면 오키나와 게라마 제도의 일본군 특설수상근무대에서는 1945년 3월 탈주 또는 식량을 훔쳤다는 이유로 13명의 조선인을 처형했다. 처형 지휘자인 오노다 조장은 “1926년식 권총의 위력을 시험해 보고 싶어서 죽였다”고 자랑했다고 한다. 이같은 실상을 알리기 위해 인천일보는 3월4일자 지면부터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사장 김용덕)과 함께 오키나와에 ‘강제동원’ 되었던 경북 상주 출신 장윤만(1917~1963)씨의 수기 ‘태평양전쟁 실기집’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이와 함께 김영선, 이인신, 이공석씨 등의 일제강점하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 구술자료 등을 토대로 일본 북해도 탄광 감금생활, 남태평양 미래도의 조선인 살해 및 식인사건 전모, 남태평양 밀리환초의 조선인 반란사건 등도 잇달아 7회에 걸쳐 소개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민족문제연구소와 국사편찬위원회의 자료 지원도 받을 예정이다. 장윤만씨는 1944년 6월10일 경북 상주군 공성면에서 일제에 강제 징용되어 1년 동안 오키나와 전투에서 일본군 군속으로 동원됐다. 1945년 6월8일 미군에 체포됐고, 오키나와 포로수용소를 거쳐 1946년 11월20일 집으로 귀환했다. 그는 자신이 겪은 감금·학대·살육의 현장을 몰래 메모해 왔다. 그리고 귀향 후 병석에서 친동생인 장재달(당시 중학생)씨에게 자신이 두루마리에 적어온 수기를 일기와 3.4조 형식으로 정서하도록 했고, 1948년 2월 완성했다. 이 수기집은 딸 장현자(70·전 반도상사

[한겨레][정병호의 기억과 미래] 친일파, 현재진행형 가해자

2021년 3월 4일 266

정병호 |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미국 하버드대의 램자이어가 “위안부는 계약 매춘부”라고 주장해서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전범기업 미쓰비시 후원으로 석좌교수가 된 그의 노골적인 역사 왜곡 논문을 반박하느라 애쓰고 있는 해외 학자들이 있다. 군사독재 시대부터 촛불혁명까지 한국 민주화와 인권을 지원하며 국제사회의 병풍이 되어준 70~80대 원로 교수들도 참여했다. 그런 해외 학자들에게 “외부인은 논할 자격이 없다”고 경고한 이른바 ‘친일’ 한국 학자들이 있다. 도대체 누가 ‘외부인’인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나치의 강제노동 같은 인류에 대한 범죄는 시효도 국경도 없는 것이다. 인류 모두가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피해자 편과 가해자 편이 있을 뿐이다. 피해자들의 증언을 무시하고 가해권력의 논리를 대변하는 것은 학문이 아니라 정치다. 수많은 희생 위에 겨우 자리 잡은 학문의 자유에 대한 모독이다. “권력에 맞서서 싸워보지도 못한 것들이!” 돌아가신 리영희 교수의 추상같은 일갈이 그립다. 국적을 가지고 자격을 논하는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1910년 ‘한일합방’에 앞장서서 일제의 귀족 작위와 토지를 받은 ‘매국노’를 완곡하게 표현해서 ‘친일파’라고 했다. 1965년 ‘한일협정’도 대한민국 정부가 한 일이다. 일본군 출신 독재자가 시민들의 반대를 군사계엄령으로 누르고 조약을 체결하면서 받은 돈을 피해자들 모르게 돌려썼다. 2015년 ‘한일위안부합의’도 그의 딸이 대통령이었던 대한민국 정부가 했다. 10만명 이상의 피해 여성의 피눈물을 단돈 백억원으로 갈음하고 더 이상 거론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친일’의 면면한 계보는 이어져왔다. 제국주의 권력과 그 조력자들이 맺은 사기성 농후한 협약도 국제간의

[한겨레] 쑥대밭 위 ‘황군 위안소’ 공개…“문명사상 이런 대규모는 없다”

2021년 3월 4일 260

중국에서 확인된 위안소만 1000곳 넘어 대만까지 1200곳 이상…”추가 발견 계속” 중 전문가 “역사상 유례없는 부끄러운 사건” 중국 상하이(上海)시 훙커우(虹口)구 둥바오싱(東寶興)로에는 전면에 아치 모양 창문이 나란히 박힌 오랜 2층 서양식 벽돌 건물이 서 있다. 이 건물에는 아픈 역사가 깃들어 있다. 세계 최초의 일본군 위안소가 바로 이 건물에 있던 것이다. 일본군은 1931년 11월부터 1945년 8월 2차 세계대전 패전 때까지 이곳에서 일본군 장교를 위한 위안소인 ‘다이살롱'(大一沙龍)을 운영했다. 다이살롱은 세계 최초로 들어선 일본군 위안소였다. 또 가장 오래 운영된 일본군 위안소이기도 했다. 존 마크 램지어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 동원성을 부정하는 취지의 논문을 써 거센 비판에 직면한 가운데 중국 지역에서만 다이살롱처럼 실제 존재한 것으로 확인된 일본군 위안소만 해도 1천 곳을 훌쩍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위안부문제연구센터는 28일 연합뉴스에 지금까지 중국에서 각종 사료를 통해 실재한 것으로 확인한 일본군 위안소가 최소 1천127곳에 달한다고 밝혔다. 현행 성(省)·직할시별로 보면 후베이성이 295곳으로 가장 많았고 산둥성(208곳), 저장성(183곳), 상하이시(172곳), 장쑤성(70곳), 안후이성(70곳), 후난성(50곳), 광둥성(42곳), 윈난성(37곳) 등이다. 당시 한국처럼 일본의 식민지였던 대만에서도 최소 137곳의 위안소가 운영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센터 측은 설명했다. 대만까지 합쳤을 때 중국어권 지역에서 발견된 일본군 위안소는 ‘1천264곳 이상’이다. 센터 측은 1천여 곳에 달하는 일본군 위안소가 각종 사료를 통해 철저히 확인된 곳만 추려낸 것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동북3성, 베이징시, 톈진시, 허난성, 허베이성,

[축하공연] 노관우밴드 ‘장타령’♬ | 민족문제연구소 30주년 헌정곡

2021년 3월 2일 372

민족문제연구소 30주년 기념 헌정곡 노관우밴드가 부르는 ‘장타령’♬ 민족문제연구소는 30주년을 기념하여 온라인 기념식을 진행하였습니다 https://youtu.be/QEDikInS_CY

[SBS] 가난하고 서운하지만…”다시 돌아가도 독립운동”

2021년 3월 2일 132

<앵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다 보면, ‘신흥무관학교’가 자주 등장합니다. 독립군을 양성했던 곳으로 실제로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광복군의 주축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젊음을 바쳤던 광복군 가운데는 지금 국내에만 일곱 분이 계신데, 임상범 기자가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기자> [영화 ‘암살’ 중 : 신흥무관학교 나오셨죠? (네) 졸업할 때 혈서도 남기셨던데‥ (나 신흥무관학교 출신이야)] 신흥무관학교는 110년 전 만주 서간도에 문을 열었습니다. 독립군 양성의 요람답게, 신흥무관학교 소식은 독립신문의 인기 있는 기사였습니다. 그리고 1940년, 광복군이 창설됐고, 총사령관이었던 지청천 장군을 비롯해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대거 참여했습니다. 역사책에 나오고, 영화로 만들어진 많은 승리들이 이때 이뤄졌습니다. 집집마다 태극기가 걸려 있습니다. 독립 유공자들이 모여 사는 임대아파트입니다. 이곳에 광복군 출신 이영수 지사 부부가 살고 있습니다. 이 지사는 20살 때 광복군에 자원입대했고 군자금 전달과 유격전을 담당했습니다. [이영수/애국지사(광복군 3지대 활동) : 왜놈들이 잡으러 온다고 하면 미리 지하에 지뢰를 파묻는다든지. 오는 길목에서 왜놈들하고 전투를 많이 했고 그랬어요.] 부인 홍봉옥 여사에게는 신혼생활이 곧 독립운동이었습니다. [홍봉옥 여사 : 환자가 급하니까 나보고 가서 그 환자를 보래요. 모르는 사람이지만 독립군이거든요.]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인 이준식 씨. 광복군의 후손임을 평생 영예로 여겨왔건만 이번 3·1절에는 마음이 착잡합니다. 항일무장단체를 테러리스트 취급하거나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비하하는 망언들이 외국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준식/전 독립기념관장(지청천 장군 외손자) : 독립운동을

[YTN라디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1~14편

2021년 3월 5일 229

민족문제연구소 자문으로 YTN 라디오와 경기도가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를 방송 중입니다. 올해 10편을 시작으로 내년까지 꾸준히 제작, 방송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14편 : 여옥사_8호감방의노래 _ 김정애(유관순 열사 조카 며느리) ☞ 3·1절특집: 끝나지않은노래’독립운동歌’ ☞ 13편 : 기전사가 _ 정철승(독립운동가 규운 윤기섭 장손) ☞ 12편 : 최후의결전 _ (임시정부 법무국 비서국장 김한 외손자 우원식 국회의원) ☞ 11편 : 애국가 _ 김주(심산 김창숙 선생 손녀) ☞ 10편 : 광복군 아리랑 _ 장병화(광복군 장이호 선생의 장남) ☞ 9편 : 앞으로 행진곡 _ 김자동(독립운동가 김의한, 정정화 선생 아들) ☞ 8편 : 독립군가 _ 임청각 복원 ☞ 7편 : 신흥학우단가 _ 이종걸(우당 이회영 선생 손자) ☞ 6편 : 새야새야 파랑새야 _ 정남기(동학농민군 정백현 선생 손자) ☞ 5편 : 격검가 _ 차영조(동암 차리석 선생 아들) ☞ 4편 : 압록강 행진곡 _ 김영관(한국광복군동지회 회장) ☞ 3편 : 신흥무관학교 교가 _ 이항증(석주 이상룡 선생 증손자) ☞ 2편 : 안중근 옥중가 _ 함세웅(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 ☞ 1편 : 국치추념가 _ 이준식(독립기념관장) ☞[출처] YTN Radio: 독립운동歌 복원 프로젝트, 100년의 소리

[헤럴드경제] 이준 열사 집터 찾은 이낙연 “정부 대신 민간이 발견…후손으로서 송구”

2021년 3월 1일 183

3ㆍ1절 맞아 “선조 희생” 강조해 與 서울시장 후보들도 막판 ‘총력’ [헤럴드경제=유오상 기자] 3·1절을 맞아 이준 열사의 집터를 방문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선조의 희생과 헌신의 기록을 찾고 유지하고 전승하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대표는 1일 오전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이 열사의 집터 표석 앞에서 “표지석을 설치하고 기억하고 보존하려는 노력이 이어진다는 것은 후손으로서 당연한 도리지만, 그런 일을 해주신 유지들께 감사를 드린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부가 찾지 않고 민족문제연구소라는 민간 지사들에 의해서 발견되었다는 것 자체도 후손으로서 부끄럽고 송구스러운 일”이라고 강조한 이 대표는 “앞으로라도 우리는 어려운 시절에 독립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셨던 선조들의 발자취, 그분들의 희생과 헌신의 기록을 찾고 유지하고 전승하는 노력을 강화해야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준 열사님은 헤이그특사, 그 일 자체 만국평화회의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먼저 하셨던 분”이라며 “가셔서 끝내 돌아오시지 못했는데, 그런 비장한 생각과 삶과 죽음에 대한 그 분의 확고한 사생관(死生観)은 후대에게 깊은 깨우침을 주신다”고 언급했다. 또 “이준 열사님은 돌아오시지 못하고 그 분의 마지막 사셨던 집터만 저희들에게 전달되어 오는 것도 참 우리의 슬픈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후대의 사람으로서 많은 것을 깨닫게 하는 그런 장소”라고 방문 소회를 밝혔다. 이날 서울시장 보궐선거 최종 후보 확정을 앞두고 있는 민주당 소속 예비후보들도 각자 3.1절 일정을 소화했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역임한 박영선 예비후보는 이날 “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