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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연합뉴스] “나는 일본군 조병창서 무기만든 소년” 94세 노인의 증언

2022년 4월 6일 248

강제동원 피해자 문주현옹…日항공기 제작소로 재차 끌려가 (인천=연합뉴스) 홍현기 기자 = “공업학교와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했어. 학비도 안 들고 공부할 수 있다고 했지.” 일제강점기인 1943년 14살 나이에 인천에 있던 일본군의 무기공장 ‘일본 육군 조병창’에 강제 동원됐던 문주현(94)옹은 최근 대전시 자택에서 동원 과정을 담담하게 전했다. 문옹은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구술 채록’ 사업을 추진하는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와 이상의 인천대 초빙교수를 만나 79년 전 강제 동원의 기억을 회상했다. 전북 완주군에서 태어난 그는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공업학교 시험을 봤으나 합격하지 못했고, 국민학교 교장의 추천으로 1943년 4월 조병창에 동원됐다. 일본 육군 조병창은 일제가 강제 동원한 조선인들의 노동력을 착취해 전국 각지에서 수탈한 금속품으로 무기를 만들던 공장이다. 문옹은 처음에는 조병창 기능자 양성소에서 이따금 공부하면서 무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조병창 2공장에 배치된 문씨는 매일 소총의 몸통을 만드는 일을 했다. 당시 공장은 소총의 각 부속품을 만드는 장소를 분리하는 등 철저한 분업체계로 운영됐다. 문옹은 “시간이 지나면서 공부는 안 시키고 공장에서 소총만 만들게 했다”며 “공장이 넓고 사람도 많았는데 소총 부속을 만드는 장소가 여러 개 있었다”고 했다. 조병창에는 문씨와 같이 전국 각지에서 온 학생들이 많았다. 조병창 기능자 양성소의 기숙사 앞에서 찍은 문씨의 사진을 보면 조병창에 동원된 학생들의 면면을 짐작할 수

[cpbc 뉴스] [깊은 내공] 제주4·3 추념식 참석한 윤석열, 의미는? -함세웅 신부

2022년 4월 5일 248

○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이기상의 뉴스공감> ○ 진행 : 이기상 앵커 ○ 출연 : 함세웅 신부 /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 (주요발언) – “제주4·3 어린시절 폭동이라고 배워” – “노무현, 제주4·3에 대해 사과…공론화 계기” – “제주4·3 희생자 덕분에 역사 진전되고 여기까지” – “제주 아픔 치유될 때 한반도 아픔 치유되는 의미” – “동적인 의미 살아있는 표현인 ‘항쟁’, 이젠 제주4·3 항쟁” – “국가보안법 폐지, 인권위 가장 가치 있는 제안” – “윤석열 불안하지만, 제주4·3 추념식 참석은 희망” – “尹, 제주 방문·삼성 조사했던 기백…희망 보여” – “가톨릭교회, 여성 사제직 예수님이 안하셨다? 비겁한 논리” 말이나 글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죠. 뿌리 깊은 나무처럼 웬만한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보고 내공이 있다고 표현하는데요. 오늘 선보이게 될 새로운 초대석 코너 깊은 내공에서는 우리 사회와 정치, 종교계의 거목과도 같은 원로 분들 모시고 다양한 현안들에 대한 깊은 생각과 거침없는 쓴 소리 들어보는 시간 준비했습니다. 오늘 첫 시간으로 안중근 의사 기념사업회 이사장이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고문을 맡고 계신 함세웅 신부님 모시고 어제로 74주년을 맞이한 제주4.3사건에 대해 우리 사회의 진실과 화해라는 주제로 함께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신부님, 어서 오십시오. ▶안녕하세요? ▷한 달에 한 번씩 사회 각계각층의 내공 깊으신 좋은 말씀해 주실 분들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게 됐습니다. 어떻습니까?

[한겨레] “문익환·정경모·유원호 선생 묘역 ‘모란통일동산’ 만들어요”

2022년 4월 4일 228

‘4·2남북공동성명’ 33돌 맞아 고 정경모 선생 묘비 제막식 한·일 시민 260여명 성금 모아 ‘4·2남북공동성명’ 33돌을 맞아 통일운동가이자 재일 언론인 고 정경모(1924~2021) 선생의 묘비 제막식이 지난 2일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묘역에서 열렸다. 자유언론실천재단(이사장 이부영)이 주관한 이날 행사에서는 지난해 2월 일본에서 별세한 뒤 반세기만에 유골로 귀국한 고인의 유해봉안 1주기를 기려 시민 성금으로 마련한 묘비를 세웠다. 묘비명에는 ‘시대와 불화한 마지막 망명객/ 하지만 신념을 지켜낸 역사의 불침번/ 여기 동지들과 잠들다’라고 새겼다. 유족을 비롯해 40여명이 참석한 이날 제막식에서는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인 함세웅 신부와 임재경 <한겨레> 초대 부사장, 여순항쟁 서울유족회 이자훈 회장의 추모사에 이어 민중가수 손병휘씨가 추모곡을 올렸다. 고인의 조카인 정진영씨와 고 문익환 목사의 아들 문성근씨가 유족을 대표해 인사를 했다. 이부영 이사장은 “지난해 9월 문익환 목사·박용길 장로 부부, 유원호·안순심 부부의 묘를 이장한 데 이어 뒤늦게나마 정경모 선생의 묘비까지 세울 수 있어서 감회가 새롭다”면서 “이로써 1989년 3월 방북한 ‘통일의 씨앗 3인’의 공적을 함께 기리며 ‘4·2 남북공동성명’의 의의를 되새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게 됐다”고 묘비 조성 과정과 의미를 설명했다. 자유언론실천재단은 몽양여운형기념사업회(이사장 장영달)와 늦봄문익환목사기념사업회(이사장 송경용)와 공동으로 지난해 10월부터 진행한 묘비건립 1만원 모금운동을 통해 국내 240여명과 일본 20여명 등 시민과 단체에서 참여해 1500만원 가까운 성금을 모았다고 밝혔다. 더불어 이날 참석자들은 문익환·정경모·유원호 선생의 묘역을 ‘모란통일동산’으로 조성하기로 뜻을 모으고 성금을 계속 모으기로 했다.

[오마이뉴스] 민성기 가옥 이상한 안내문… 여흥 민씨 가문 이래선 안된다

2022년 4월 5일 327

[김종성의 히,스토리] 민영휘 묘 관리하는 민성기 가옥에 ‘친일 행위’ 표기해야 친일파 민영휘(1852~1935)의 무덤을 관리하는 ‘춘천 민성기 가옥’에 그의 친일행위를 표기하는 문제가 난관에 부딪혀 있다. 1920년대 건축된 이 가옥이 1985년에 강원도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뒤 수억 원의 세금이 투입됐지만 후손들의 반발에 막혀 친일행위 표시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 춘천시 동면 장학리 70번지에 소재한 이 가옥은 건축 목적 자체가 민영휘와 관련돼 있다. 문화재청이 운영하는 국가문화유산포털은 ‘춘천 민성기 가옥’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민영휘의 묘소를 관리하기 위해 묘 가까이에 세운 묘막이다”라고 설명한다. 친일파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 주택임을 알 수 있다. 이 가옥에 대한 문화재 지정을 취소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2017년부터 있었다. 그 뒤에는 가옥 안내판에라도 친일행위를 표기하자는 타협적인 목소리가 나왔다. 그 결과 지난해 12월 안내판이 변경됐다. 3월 31일 자 YTN 보도 ‘친일파라 부르지도 못하고… 슬그머니 교체한 안내판’에 따르면 변경된 안내판은 민영휘에 관해 이렇게 서술했다. 춘천 민성기 가옥은 조선 후기 관료이자 정치인인 민영휘의 묘를 관리하기 위해 세워진 묘막이다. 이 가옥은 화천에 있던 민가를 1925년 옮겨 지은 것으로 전해지며, 강원 지역의 전통 가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건축물로 평가된다. YTN 보도에 등장하는 춘천시 관계자는 “저희가 문안은 만들어서 전문가 자문 받아서 이제 감수 중이에요”라고 말했다. 전문가의 자문을 받은 결과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엉뚱한 안내문이다. 친일파 민영휘와 관련된 가옥에 ‘강원도 전통 가옥을 이해하는

[한겨레] 주임신부가 담 넘어 성당에 들어갔던 까닭

2022년 4월 6일 81

[함세웅의 붓으로 쓰는 역사 기도] (27) 3·1민주구국선언 “모세는 죽어 모압 땅에 있는 뱃브올 맞은편 골짜기에 묻혔는데 그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는 오늘까지 아무도 모른다. 모세는 죽을 때 나이 120세였다. 그러나 그의 눈은 아직 정기를 잃지 않았고 그의 정력은 떨어지지 않았다.” (신명기 34,6-7) “사람이 앞길을 계획하여도 그의 발걸음을 이끄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잠언 16,9) 모세는 히브리 백성을 이집트 노예살이에서 해방시킨 위대한 첫 예언자입니다. 울부짖는 백성과 함께 아파하시는 공감의 하느님을 체험하고, 그들 속에 들어가 함께 살며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신의 인간적 한계를 깨닫고,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느보산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모세의 눈동자는 죽는 순간에도 맑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역사의 주재자임을 확신하고 고백하며 오직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산 하느님의 충실한 종이었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이 이러한 모세의 정신을 본받도록 호소하고 기도했습니다. 1975년 4월 30일 월남이 패망하자, 위기감을 느낀 박정희 정권은 베트남의 상황을 빌미로 5월 13일 긴급조치 9호를 선포합니다. 일체의 비판이나 반대를 허용치 않겠다는 살벌한 경고였습니다. 긴급조치 선포 며칠 전인 5월 5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상임위원회는 두 번째 담화문을 통해 “그동안 사제들이 중심이 되어 자발적으로 전개해온 현실비판과 인권옹호 운동을 주교단이 책임지고 차원을 높여 정부와 직접 대화로써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빈말이었습니다. 국회의장을 앞에 두고 박정희 비판 교회 안팎의 암울한

[오마이뉴스] 친일청산 응원한 조선일보 사주… 기묘한 행각

2022년 4월 4일 396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3 – 방응모 조선일보사가 모기업인 조선미디어그룹은 조선방송·디지틀조선일보·조선비즈·스포츠조선·조선뉴스프레스·조선교육문화미디어·헬스조선·조선아이에스·방일영문화재단·조선일보미디어연구소를 관계사로 두고 있다. 총수 일가의 재산 규모도 상당하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0 한국언론연감>에 따르면, 방상훈 조선일보 대표이사의 자사 지분은 2018년에도 30.03%, 2019년에도 30.03%다. 실제로는 이보다 많다는 것이 2017년 4월 4일 자 <미디어오늘> 기사 ‘조선일보 후계자 방준오의 경쟁자가 사라지다’ 등에 보도되기도 했다. 김의겸 의원이 2021년 9월 16일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조선일보 총수 일가가 보유한 부동산 규모는 40만여 평이다. 서울 여의도 면적 45%에 해당하고 당시 기준으로 공시지가 4800억 원, 시가 2조 5천억 원에 달한다. 방씨 일가의 재산이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부터 축적된 게 아니라는 점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이 재산은 해방 이전과 연속성을 갖고 있다. 그것도 해방 이전의 친일 반민족 행위와 관련돼 있다. 방씨 일가의 재산은 이들의 조상인 친일파 방응모의 재산에 기초를 두고 있다. 김성수와 닮은 듯 다른 방응모 조선일보 방응모의 친일은 동아일보 김성수의 친일에 비해 덜 부각돼 있지만, 방응모 역시 만만치 않은 친일파였다. 김성수는 군국주의 침략 전쟁을 홍보하는 방송 활동과 순회강연을 하고, 국민정신총동원연맹·국민총력조선연맹·흥아보국단·조선임전보국단에 참여하고, 일제의 전쟁 수행을 위한 국방헌금을 기부하고, 징병제와 학도지원병 참여를 독려하는 등의 친일행위를 했다. 방응모의 친일에서도 김성수의 친일 방식이 나타난다. 방응모도 국민총력조선연맹에 가담했다. 또 친일 조직인 조선신궁봉찬회·조선대(大)아세아협회·조선문예회·경성군사후원연맹·조선춘추회·배영동지회에도 가담했다. 일본군을 위한 기관총 구입비도 헌납했다. 또 시국 강연에서 자신과

[국민일보] “日, 한국과 관계 고려 않겠다는 것… 우리 정부도 단호하게 대처해야”

2022년 3월 30일 376

교과서 왜곡에 전문가들 격앙 ‘강제 연행’ ‘종군 위안부’ 표현이 사라진 역사 교과서가 일본 정부 검정 심사를 통과하자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 한국을 배려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표한 것과 다름없어 한국 정부도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29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일본이 역사 문제에 있어서 한국과의 관계를 배려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표시한 일”이라며 “일본 정부의 역사 인식이 ‘부정론’에 가까워졌다”고 평가했다. 이신철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장도 “역사 문제에 일본 정부가 노골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의사를 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일본 고교 교과서에서 과거 식민지배 등의 행위들이 합법적이었다고 왜곡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 소장은 “교과서에서 ‘강제성’이라는 용어가 빠진 것은 일본 학생들에게 식민지배 행위가 합법적인 틀에서 이뤄졌다는 점을 교육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검정 심사를 통과한 일부 교과서에는 조선인 노동자 강제 동원 사실을 설명하며 사용한 ‘강제 연행’이라는 단어를 ‘동원’이나 ‘징용’으로 변경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노 담화’에 포함됐던 ‘종군 위안부’도 ‘위안부’로 대체됐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양학부 교수는 “위안소를 실질적으로 운영한 주체는 일본군이지만 이를 나타내주는 공문서 등의 내용이 빠진 점도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한국 정부가 단호하면서도 풍부한 근거로 일본 정부의 왜곡에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 실장은 “일본은 침략 전쟁을 벌였고 식민지배를 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반성하지 않는 국가라는 점이 명확해진 만큼 한국 정부가 왜곡된

[뉴시스] ‘친일인명사전’ 등에 등재된 충남 출신 202명…고등경찰 등

2022년 3월 30일 258

기사내용 요약 송덕비·기념비 등 친일 기념물 53건 존재 충남도, 일제강점기 흔적 지우기 나서 [홍성=뉴시스] 유효상 기자 = ‘친일반민족행위 명단’ 및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충남 출신은 202명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도내 출생자는 114명, 출신자(본적자 포함) 88명 등이며, 대부분 군수, 고등경찰 등 관리·경찰직으로 나타났다. 충남도는 29일 도청 소회의실에서 ‘충청남도 친일잔재연구위원회 제2차 회의’를 열고 친일 잔재 기초조사 연구용역 결과를 공유했다. 친일 잔재 기초조사 연구용역은 체계적인 친일 잔재 조사·관리를 위한 것으로, 도내 친일 인물과 기념물, 건축물 등을 조사 대상으로 했다. 기초조사 대상 시기는 1904년 러일전쟁부터 1945년 8월 해방 전후까지이며, 대상 지역은 현재의 도내 전 지역이다. 용역사인 민족문제연구소는 도 출신 친일 인물과 이들의 친일 재산 등을 파악하고 친일 인물과 관련 있는 기념물과 건축물 등을 조사했다. 친일 재산은 도내 출신 친일 인물의 도 소재 국가귀속결정 토지를 조사했다. 구체적으로는 ▲논산·공주·부여 등 김갑순의 국가귀속결정 토지 116필지 ▲김서규·김종흡·박철희·이기승·이기원·이종덕·정두화·정주영·지희열·한창동의 도내 산재한 국가귀속결정 토지 등이다. 도내 친일 기념물 및 건축물 조사는 옛 신문자료에 수록된 각종 비석의 제막 관련 기사를 추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각 시군이 편찬 간행한 여러 향토지와 지역 조사 보고서 등을 취합해 간추렸으며, 현장 조사를 통해 발견한 사례도 포함했다. 송덕비, 기념비 등 친일 기념물은 총 62건으로 이 중 9건은 멸실 또는 망실돼 현재는 53건만 존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용역사는 53건의 친일 기념물

[팟캐스트] 역발상 시즌1_식민지시대 사람들 2편 _한국의 고가 마사오 ‘박시춘’ 탁월한 대중성으로 군국가요도 탑

2022년 3월 29일 233

☞ (03.29) ‘역발상’ 시즌 1: 식민지시대 사람들 2편 _한국의 고가 마사오 ‘박시춘’ 탁월한 대중성으로 군국가요도 탑 ☞ (03.22) ‘역발상’ 시즌 1: 식민지시대 사람들 1편 _대중가요 최초의 슈퍼스타 남인수 “군국가요에서부터 국가보안법 피해까지” ☞ (03.15) ‘역발상’ 시즌 1: 새로운 시작 그리고 재일조선인단체사전 발간

[한겨레] “이게 무슨 재판이냐” 판사 책상 걷어찬 청년 이명준

2022년 3월 28일 262

[함세웅의 붓으로 쓰는 역사 기도] (26) 천주교정의구현 청년전국연합 시온 때문에 나는 잠잠히 있을 수가 없고 예루살렘 때문에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의 의로움이 빛처럼 드러나고 그의 구원이 횃불처럼 타오를 때까지.” (이사야 62,1) “우리 어찌 주님의 노래를 남의 나라 땅에서 부를 수 있으랴? …… 예루살렘아, 내가 만일 너를 잊는다면 내가 만일 너를 생각 않는다면, 내가 만일 예루살렘을 내 가장 큰 기쁨 위에 두지 않는다면 내 혀가 입천장에 붙어버리리라.” (시편 137,1.4-6) 사람은 늘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죽음은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는 과정’이라고 그리스도교는 신앙으로 고백합니다. 한 차원 높은 삶, 무한한 영생의 삶을 전제한 가치관 설정입니다. 생명의 범주에는 자신과 가족 그리고 신의와 우정, 정의와 공정, 동족과 공동체라는 사회의 연대적 가치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신앙과 신의, 조국애와 동포애가 바로 그 예범입니다. 교회와 조국, 모교와 고향을 사랑하고 그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언자들은 하느님 때문에 시온과 예루살렘을 기리고 칭송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성전이 자리 잡은 예루살렘이 곧 하느님의 현존과 모국의 상징입니다. 고향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단순한 장소를 넘어선 그 어떤 초월적 의미를 지닌 이상향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물리적이고 정신적인 두 가지 유형의 고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정의구현 청년전국연합의 이명준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이 소중하듯 1970~80년대 수많은 이들에게 명동성당은 아주 귀중한 영적 보루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