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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죽으면 군번 대신 써라”…백범이 건넨 ‘광복군 반지’ 첫 공개

2026년 3월 4일 919

‘독수리 작전’ 앞두고 백범이 사비로 맞춰…’결사항전’ 증표 故 송창석 지사 아들 민족문제연구소에 위탁…진위 검증 필요성도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백범 김구 선생이 광복 직전, 국내 진입 작전을 앞둔 한국광복군 대원들의 결의를 다지기 위해 사비를 털어 나눠줬다는 반지가 3·1절을 맞아 처음으로 공개됐다. 광복군 대원이었던 고(故) 송창석 독립지사의 아들 송진원(60)씨는 지난달 27일 서울 용산구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아버지의 유품인 ‘광복군 반지’를 연구소에 대여 형식으로 맡긴다고 밝혔다. 1940년대 중국군 소속으로 일제와 싸우던 송 지사는 1945년 광복군에 합류해 암호명 ‘독수리 작전’으로 불리는 한미합작특수훈련(OSS 훈련)을 받았다. 일제의 패색이 짙어지던 당시 임시정부가 미국 첩보부대와 공동 추진한 비밀 연합 작전이었다. 공개된 반지는 무궁화와 별 문양이 특징이다. 번개 표식은 송 지사가 속했던 무전반을 뜻한다. 흔히 알려진 광복군 제1∼4지대 문양과는 다르지만, 1945년 임시정부가 낸 휘장 도안의 장교 표식과 유사하다. 안쪽엔 제품 번호와 ‘한광무전반'(한국광복군무전훈련반)이라는 한문 표식이 남아 있다. 송 지사가 별세(1990년·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전 자필로 남긴 문서에는 이 반지에 얽힌 비장한 사연이 담겼다. 1945년 8월께 충칭에서 산시성 시안으로 넘어온 임시정부 주석 김구 선생이 무전반의 훈련을 시찰하던 중 ‘조국 땅으로 죽으러 가는 이들이니 기념품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에 선임이었던 이재현 지사가 반지를 제안하자, 김구 선생과 지청천 총사령관 등 수뇌부가 사비를 털어 44명분의 ‘훈련 수료 반지’를 마련했다고 기록돼 있다. 송씨는

[한겨레] 일제, 지름 2m ‘왕의 소나무’ 대량학살…백두대간 원시림 초토화 사진 공개

2026년 3월 4일 330

녹색연합, 일제 고성군 원시림 벌목 보고서 발굴 도쿄제대 연구 빙자해 매년 2만본 일본 반출 일제가 연구·실습을 빙자해 한국 백두대간의 원시림을 대량 벌목했다는 일제 스스로의 기록이 발굴됐다. 이 보고서는 왜 한국에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원시림이 없는지, 뉴라이트(친일 우파)의 ‘식민지 근대화론’이 왜 허구인지를 잘 보여주는 자료로 평가된다. 27일 녹색연합은 도쿄제국대학(이하 도쿄제대) 농학부 부속 연습림(연구·실습용 숲)에서 펴낸 ‘조선 강원도 연습림 적송’이라는 보고서를 발굴해 공개했다. 이 보고서는 1931년 3월 도쿄제대에서 펴낸 것으로 지도와 사진 4장, 글을 포함해 모두 16쪽으로 이뤄져 있다. 작성 책임자(인쇄인)는 미야자키 겐조 도쿄제대 농학부 교수다. 이 책을 입수한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일본 교원 노조의 도움을 받아 도쿄대의 간행물 관리 기관에서 매입했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가 다룬 강원도 연습림은 백두대간 금강산과 설악산 중간 지대인 고성군 수동면 사천리 오소동·고진동 일대이며, 동해안으로 흐르는 남강 주변이다. 현재는 민간인 통제선 북쪽 지역과 비무장지대 일대이며, 백두대간 보호구역과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 천연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먼저 이 보고서는 이 일대에서 벌목한 나무가 적송, 곧 금강소나무이며, 조선 때 왕실에서 보호한 ‘황장목’(누런 창자 나무)이라고 설명했다. 나무속이 누런 색을 띤다고 붙은 이름이다. 황장목은 한국의 대표적인 소나무이며,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황장목이 자라는 곳이 바로 고성군 수동면 일대였다. 조선 왕실에서 쓸 나무를 확보하기 위해 특별히 보호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1910년 한-일 병합 이후 도쿄제대가

[오마이뉴스] 구미에 박정희 뿐이라고요? ‘충절의 고향’을 만든 이름들

2026년 3월 4일 448

조선은행 대구지점을 폭파한 독립운동가, 장진홍 의사 경북 구미를 대표하는 역사 인물은? 구미 시민은 물론, 전국 어디에서 물어도 남녀노소 같은 대답을 내놓을 것이다. 누구는 답변 대신 “이런 싱거운 사람을 보았나”라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질문을 던졌고, 하나같이 이렇게 반문했다. “구미에 박정희 대통령 말고 누가 있어?” 지금 구미는 박정희의 도시다. 현재 인구가 40여만 명에 이르는, 경북에서 포항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곳이지만, 어딜 가나 박정희의 ‘유산’뿐이다. 그가 굴욕적인 한일 협정과 베트남 파병 등의 대가로 받은 차관을 종잣돈 삼아 고향에 전자공업 단지를 조성한 게 지금의 구미다. 구미의 진산인 금오산 자락에는 ‘새마을운동 테마공원’이 널찍이 조성돼 있다. 그의 생가부터 동상, 그의 업적을 기리는 역사 자료관, 새마을운동 글로벌관 등이 세워져 있고, 여전히 공사 중이다. 그곳에 서면 발아래로 그가 세운 대규모 공업 단지가 내려다보인다. 인근 초등학교의 이름도 ‘정수 초등학교’다. 박정희의 ‘정’과 영부인인 육영수의 ‘수’를 이어 붙인 명명이다. 구미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간선도로 이름도 ‘박정희대로’이고, 구미 실내 체육관 이름도 ‘박정희 체육관’이다. 내달 1일, 제107주년 3.1절에 맞춰 열리는 구미시 주관 마라톤 대회의 이름 역시 ‘박정희 마라톤’이다. 구미 앞에 박정희는 실과 바늘처럼 늘 붙어 다니는 수식어가 됐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예비후보의 현수막마다 세부 공약 대신 ‘박정희 정신’만 부르대는지 알 수 있다. “영남 인재의 절반은 선산에서 난다” 온통 박정희라는 세 글자에 뒤덮여

[한겨레] 615개 시민·사회단체 “제2의 3·1혁명 필요…친일·뉴라이트 청산해야”

2026년 3월 4일 295

삼일절 107주년을 하루 앞둔 28일 시민·사회 단체들이 일본 다카이치 정권의 극우화를 규탄하고 국내 친일·뉴라이트 세력의 철저한 청산을 촉구했다. 정의기억연대, 민족문제연구소 등 615개 시민·사회단체는 이날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인근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3·1 혁명 107주년, 한일 역사정의와 평화를 위한 시민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 우리에게는 ‘제1의 3·1혁명이 필요하다”며 이같은 내용의 시민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시민선언문에서 “일본 다카이치 정권의 군국주의 폭주와 역사 부정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일본 정부는 침략 전쟁 미화와 강제동원·일본군 ‘위안부’ 범죄 부정을 즉각 중단하고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독도 영유권 주장과 ‘전쟁 가능한 국가’를 향한 평화헌법 개정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했다. 이들은 또 이재명 정부가 들어섰음에도 친일·뉴라이트 세력이 여전히 건재하다며, 극우세력은 일본 우익과 연대해 강제 동원·일본군 ‘위안부’ 범죄를 부정하는 역사 왜곡 공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정부를 향해 “친일·뉴라이트 적폐를 청산하고 역사 정의를 실현하라”고 촉구하며 “이재명 정부는 반헌법적 친일·뉴라이트 인사를 즉각 파면하고, 일본군 ‘위안부’ 역사를 왜곡하고 피해자를 모욕하는 역사 부정세력을 엄단하라”고 촉구했다. 또한 “굴욕적인 ‘강제동원 제3자 변제안’도 공식 철회하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정부에 식민지 과거사 문제를 해결할 ‘역사정의회복위원회'(가칭) 구성과 한미일 군사협력 중단도 촉구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2026-02-28> 한겨레 ☞기사원문: 615개 시민·사회단체 “제2의 3·1혁명 필요…친일·뉴라이트 청산해야” ※관련기사 ☞통일뉴스: 3.1혁명 107주년 615개 단체 시민선언, “역사정의가 바로 서야 평화도 가능” (전문)

[보도자료] 민족문제연구소 창립 35주년 기념식 및 창립 35주년 기획전 <세상을 바꾼 시민, 함께 만든 역사>

2026년 2월 27일 491

☞ 다운로드: [보도자료] 민족문제연구소 창립 35주년 기념식 및 창립 35주년 기획전 <세상을 바꾼 시민, 함께 만든 역사> 민족문제연구소 창립 35주년 기념식 및 창립 35주년 기획전 <세상을 바꾼 시민, 함께 만든 역사> 2026년 2월 28일(토) 오후 3시, 한국순교복자수녀원/식민지역사박물관 1991년 2월 27일, 임종국 선생의 뜻을 이어 첫발을 내디딘 민족문제연구소가 2026년 2월 창립 35주년을 맞았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35년 동안 한국 사회의 오랜 바람인 친일인명사전(2009년)을 세상에 내놓았고, 오로지 시민의 힘으로 식민지역사박물관(2018년)을 세우는 등 망각과 침묵에 맞서 사회적 금기를 깨는 질문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미완의 친일 청산이라는 역사적 무게를 짊어지고 식민지의 긴 그림자를 걷어내 민주주의를 뿌리내리는 실천으로 세상을 바꾼 시민들이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만든 35년의 역사를 돌아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창립 35주년 기념식은 2026년 2월 28일(토) 오후 3시 민족문제연구소 옆 한국순교복자수녀원 강당(서울 용산구 청파로47나길 14)에서 열리며(민족문제연구소 유튜브에서 생중계), 창립 35주년 기획전 <세상을 바꾼 시민, 함께 만든 역사>는 2월 28일(토)부터 8월 2일(일)까지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열립니다. 또한, 온라인에서도 민족문제연구소 35년 역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민족문제연구소 창립 35주년 기획전 온라인 전시 https://readmore.do/minyeon35th

[경북도민일보] 악질 친일파 처단… 19년 옥고 버틴 독립운동가

2026년 2월 26일 532

3·1만세운동 그날의 함성 역사적 현장 구미 구미 봉곡동 출신 박희광 선생 1922년부터 통의부 5중대 배속 1923~1924년 임시정부 지령 받아 만주·한만서 일본군 공격 작전 참가 ‘3인조 암살단’ 활약하며 이름 떨쳐 1924년 7월 펑톈 일본 총영사관 폭탄 투척 실패 후 일본경찰에 체포 혹독한 고문 겪으면서 19년간 복역 출옥 후 고향서 양복 수선하며 생계 1970년 1월 고문 후유증으로 숨져 서울 국립현충원 애국자 묘원에 안장 구미 금오산도립공원으로 가는 길을 오르다 보면 금오지가 끝나는 길목에서 금빛 동상 한 개를 만날 수 있다. 저수지를 등진 채 금오산을 바라보면서 오른손을 들고 있는 입상은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하다. 이 동상의 주인공은 바로 박희광(1901~1970) 의사다. 그는 일제강점기 펑톈성에서 보민회와 일민단 등 친일 부역자 숙청작업을 담당한 독립운동가다. 다가오는 3.1절을 맞아, 조국을 위해 헌신했던 박희광 선생의 숭고한 삶을 다시금 주목해본다. ▲만주를 누빈 3인조 암살단과 친일파 응징 이름을 상만으로도 쓴 박희광은 구미 봉곡동 출신으로 박윤하의 아들이다. 경술국치(1910) 이후 부친을 따라 만주로 갔는데 일가가 만주로 이주한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부친 역시 의병으로 활동했다고 추정되기도 하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박희광은 남성자학교를 졸업하고 1922년부터 오동진(1889~1944) 휘하 통의부에 들어가 제5중대에 배속돼 친일 세력을 비밀리에 암살하는 특공대원 임무를 맡았다. 그는 김병현(?~1926, 1995 애국장), 김광추(?~1924, 1996 애국장)와 함께 수행한 암살 임무로 뒷날 재판 과정에서 ‘3인조 암살단’으로 불리었다. 1923년에서

[한겨레] “제자들 못 지키고 죄책감 시달린 어머니…” 올해도 메아리만

2026년 2월 26일 394

‘후지코시 강제동원’ 사과 촉구 한일 시위 “어머니는 제자들을 근로정신대에 보냈다는 생각에 죽을 때까지 나쁜 일을 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았던 겁니다.” 25일 일본 동북부 도야마현에 있는 기계·부품회사 후지코시의 도야마 본사 앞에서 후지코시가 조선인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배상할 것을 촉구하는 한·일 시민들의 시위가 열렸다. 후지코시 주주총회 날에 열린 이 시위에는 어머니가 일제 강점기 조선에서 교사였던 와카타니 마사키(76)도 참여했다. 그는 전날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태평양 전쟁 당시 어린 조선인 아이들이 왜 일본에서 강제노역을 했어야 하냐”며 “후지코시가 과거 잘못에 대한 사과와 강제노역 피해자 및 유족들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어머니 와카타니 노리코는 인천 송현공립국민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1944년, 제자 7명이 군수품 제조 공장이던 후지코시로 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 정부는 군수 물자 생산에 필요한 일손을 메우기 위해 식민지 조선에서 당시 국민학생들까지 강제동원했다.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1944년 7월4일자는 “인천부(현재 인천시) 여자 근로정신대 모집에 따라 송현국민학교 졸업생 중 27명이 응모, 13명이 합격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본에 가면 여자아이들도 공부를 할 수 있다”, “큰돈을 모아 부모님께 보낼 수 있다”는 같은 거짓말에 속아 일본에 간 아이들이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초등학생 또래 아이들이 철제 부품들을 자르고 깎아 전쟁 물자를 만들었다. 하루 14시간 노동이 일상이었다. 중기계를 다루다가 손가락이 잘리거나, 머리카락이 기계에 빨려들어가 큰 부상을 입는 일도 잦았다. 끼니는

민족사랑 2026년 2월호

2026년 2월 26일 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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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고기사가 ‘방귀 발언’으로 도배된 정치인, 그의 진정한 죄과

2026년 2월 24일 406

[이승만 시대별곡]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발언의 주인공, 이익흥 부고 기사에는 가급적 좋은 이야기가 실린다. 대단히 큰 악행이 아니라면 고인과 유족을 민망하게 할 만한 내용은 담기지 않는다. 그런데 전 내무부장관 이익흥에 관한 부고에는 그런 일화가 소개됐다. 1993년 11월 27일자 <경향신문> 17면은 전날에 그가 국립경찰병원에서 88세를 일기로 사망한 소식을 간략히 전하면서, 이 짧은 기사의 3분의 1 가량을 그런 이야기로 채웠다. 이 기사는 “이씨는 내무장관 시절 이승만 대통령이 방귀를 뀌자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고 말한다. 같은 날짜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도 이 일화만을 소개했다. 한 개인의 88년 인생을 민망한 이야기 하나로 압축한 셈이다. 민망한 이야기 이익흥이 내무부장관일 때인 1956년 8월 1일이었다. 지금은 서울시의회 건물인 국회의사당에서 여야가 충돌했다. 이기붕 민의원의장(국회의장)의 장기 무단결석 등이 원인이었다. 자유당·민주당·진보당추진위원회가 격돌한 그해 5·15 부통령 선거에서, 진보당 박기출의 사퇴에 힘입어 민주당 장면이 자유당 이기붕을 꺾는 이변이 있었다. 뒤이어 6월 8일에 민의원 의장이 된 이기붕은 그 후 무단결근을 이어갔다. 이기붕 측은 ‘몸이 아파서’라고 해명했고, 여론은 부통령 낙선의 충격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결국 민주당은 8월 1일에 이기붕 출석요구 결의안과 사직권고 결의안을 상정했다. 다수당인 자유당은 민주당의 안건들을 무산시키다가 갑자기 추가경정예산안을 전격 상정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민주당의 유옥우 의원이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 그는 세 시간 넘게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끌었다. 그해의 중복은 7월 22일이고, 말복은

[연합뉴스] 소설로 복원한 백범의 삶…”흔들림 없이 강직했다”

2026년 2월 23일 244

임순만 작가 ‘백범 강산에 눕다’ 출간…”거인의 어깨 위에서 글 써 힘들지 않았다” (서울=연합뉴스) 김정은 기자 = “백범 선생은 참으로 강직하셨습니다. 우리나라에서뿐 아니라 세계 독립운동 역사에서도 이렇게 강직한 분은 없는 것 같습니다.” 장편소설 ‘백범 강산에 눕다’를 집필한 임순만 작가는 23일 서울시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출간 간담회에서 백범 선생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쓴 이유로 “흔들림 없는 강직함”을 꼽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자 독립운동가였던 백범 김구의 일생을 다룬 이 소설은 언론인 출신 작가 임순만이 10여년에 걸친 구상과 자료 조사, 집필 끝에 완성한 작품이다. 그는 “작품을 쓰는 5년 동안 이상하게 힘들지 않았다”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주는 정신에 힘입어 제가 글을 썼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말하자면 거인의 어깨 위에서 무등을 타고 있어 힘들지 않았던 것 같다”며 “여기에 많은 독립운동가가 나오는데, 한 분 한 분 대단한 정신을 갖고 있었던 분들”이라고 덧붙였다. 방대한 사료를 토대로 쓴 이 소설에는 가공의 인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모든 사건이 사료와 기록에 근거해 백범의 생애를 따라간다. 과거시험의 낙방과 치하포 사건, 동학 활동과 망명, 남의 땅에서 벌인 광복의 염원, 이봉창·윤봉길 의거로 이어지는 임시정부의 분투, 해방 이후의 혼란과 분단의 갈림길, 경교장에서 맞은 안타까운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간 김구가 온몸으로 겪은 날들이 밀도 있게 펼쳐진다. 소설은 총 24개 장으로 이뤄졌는데, 각 장은 하나의 단편소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