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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JTBC] 유네스코 “부산서 사도광산 안건 심의”…한·일 결정문 초안 막판 협의 중

2026년 7월 9일 195

19~29 부산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 개최 일본, 사도광산 등재 뒤 ‘약속 미이행’ 결정문에 ‘약속 이행’ 명시될지 주목 오는 19일 한국 부산에서 열흘 동안 열리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사도광산 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한·일 양국이 결정문 초안을 놓고 협의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유네스코 대변인은 JTBC의 이메일 질의에 “일본의 세계유산 사도광산의 보존상태가 이번 세계유산위에서 정식 안건으로 심의될 예정”이라고 어제(6일) 답했습니다. “회의를 앞두고 관련 정보가 유네스코 홈페이지에 추가로 공개될 예정”이라고도 밝혔습니다. 사도광산이 48차 세계유산위원회 의제에 포함된 사실은 알려져 있었지만, 유네스코가 심의 여부를 공식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다만 통상 위원회가 열리기 전에 공개되는 결정문 초안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유네스코 측은 결정문 초안 공개 시점에 대해서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사도광산 안건은 오는 22~24일 사이 논의됩니다.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 한·일 정부는 초안의 내용과 문구 등을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협의가 마무리되는 대로 초안이 공개될 전망입니다. 관건은 초안에 일본 측에 강제동원 관련 이행 조치를 촉구하는 내용과 구속력 있는 모니터링 조건 등이 담길지입니다. 우리 정부가 어느 정도의 의지를 가지고 일본의 조치 이행을 촉구할지, 그런 노력이 결정문에 얼마나 반영될지도 핵심입니다. 외교부 “일본ㆍ유네스코 사무국에 입장 전달” 일본 에도시대 최대 금광인 사도광산은 1940년대 초반 태평양전쟁 당시 조선인 1500여명이 강제로 끌려가 구리 채굴 등에 투입된 곳입니다. 이 때문에 유네스코

[오마이뉴스] “‘인간 김철’의 모습을 기억 속에서 되살리다”

2026년 7월 6일 202

[현장] 4일 당산 김철 탄생 100주년 <내가 본 김철> 출판기념회 한국 사회민주주의의 선구자 당산(堂山) 김철(1926~1994)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내가 본 김철> 출판기념회가 지난 4일 오후 2시 30분 서울 종로구 창덕궁길 노무현시민센터 다목적홀 ‘가치하다’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당산의 차남 김한길 전 의원과 삼남 김누리 중앙대 교수를 비롯해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이종찬 광복회장(전 국가정보원장), 정대철 헌정회장, 안민석 경기도교육감,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 권영국 정의당 대표, 문국현 전 의원,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정범구 전 의원,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차광렬 차병원그룹 회장 등 내외빈 150여 명이 참석했다. 김철 선생과 같은 시대를 함께 걸어온 옛 동지들의 자제들과 안필수 통일사회당 위원장의 막내딸 안미숙 여사도 함께했다. 행사는 당산의 장손녀인 김날해 SBS Biz 보도국 산업1부장이 사회를 맡았다. 행사는 약 2시간 반에 걸쳐 진행됐다. “그의 삶은 시대와의 불화 그 자체였다” 권희경 사회민주주의청년연맹 준비위원장의 약력 소개에 이어 연단에 오른 홍을표 간행위원장(전 가천대 교수)은 당산의 어록으로 간행사를 열었다. “우리들은 이상 사회가 하루아침에 실현되리라고 환상을 품는 자가 아니다. (중략) 다만 주어진 조건 위에서 실현할 수 있는 한계까지 달성한다면 우리는 각기 자기 생애의 역사적 진실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홍 위원장은 “김철 선생의 삶을 돌아보고자 하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그가 살아온 시대를 먼저 살펴야 한다. 그의 삶은 시대가 빚은 것이고, 시대

[오마이뉴스] 방학진 “학생, 제복 시민, 공무원 등 역사체험 교육 필요”

2026년 7월 6일 126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처장, 내란청산 198차 촛불집회 발언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처장이 4일 오후 ‘내란청산 촉구, 198차 촛불집회’에서 리박스쿨 사태와 배재고 야구부 사건을 언급하며 “독립운동 유적지, 민주화운동 유적지 등 학생 역사체험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방학진 사무처장은 4일 오후 6시부터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내란청산-국민주권실현 촉구, 198차 촛불대행진’ 집회에 참석해 무대 발언을 했다. 방 사무처장은 “제가 여기 오기 전, 천안에 있는 ‘망향의 동산’ 묘지를 다녀왔다”며 “묘지에 위안부 할머니들이 안장돼 있다”고 밝힌 후 “김학순, 김복동, 이옥선 등 여러 위안부 할머니들이 안장된 곳”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대부분 국민들이 이곳을 잘 모르고 있고, 특히 충남지역에 살고 있는 학생과 교사들이 거의 방문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며 “이게 문제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로 현재 생존해 있는 분들이 딱 다섯 명이다. 평균 나이가 95세이다. 대한민국 독립운동가로서 서훈을 받은 분들이 1만 8000여명인데, 그중 생존한 분이 딱 네 분이다. 평균 나이 100세가 넘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재명 정부 안에서 위안부 할머니와 독립운동가들, 일제때 강제 징용피해자들이 모두 돌아가신다는 얘기이다. 역사의 증인들이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다. 이렇게 독립운동가 부재시대가 다가오고 있고, 피해자들의 부재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이 피해자들이 없으면 극우 일베들이 얼마나 더 활개를 칠까. 소름이 돋는다.” 이어 “이재명 국민주권정부는 이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며 “배재고 사태를 통해 일베들이 학생들에게 얼마나 침투했는지 우리가 낱낱이 알게 됐다.

[MBC] ‘역사’ 눈감은 국립묘지

2026년 7월 1일 258

■ 현충원에 묻힌 그들 1980년 5월 19일 광주. 탱크와 장갑차가 시내를 점령했고, 공수부대가 투입됐습니다. 무자비한 과잉진압에 분노한 시민들의 시위가 계속되던 그날 오후. 계엄군이 처음으로 총을 쐈습니다. 그때 총탄을 맞고 쓰러진 건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던 김영찬 씨였습니다. [김영찬/5·18 첫 발포 피해자] “(친구들이) ‘영찬아 빨리 와라. 무섭다’ 그러고 해서 알았다고 뛰어가는데 다시 한번 총소리가 따다다닥 나더라고요. 이렇게 뒤돌아보는데 아스팔트에서 불이 파바박 튀는 걸 봤어요. 그 순간 갑자기 하체 힘이 쭉 빠지는 거야.” 총탄은 손목과 하복부를 관통했습니다. 생사를 오가는 7번의 수술 끝에 살아남았지만, 46년째 극심한 후유층에 시달리며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김영찬/5·18 첫 발포 피해자]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개복을 해서 7번 수술을 한 거죠. 내 사지를 이렇게 침대 난간에 묶고 학교 친구들 불러서 한 10명이서 제 몸을 이렇게 누르고 입 틀어막고 막 생살을 이렇게 수술을 했어요.” 교복을 입은 김 씨에게 총을 쏜 건 장갑차에 타고 있던 11공수여단 소속 차정환 대위. 그는 닷새 뒤인 5월 24일, 광주에 투입된 군인들 간의 오인 사격으로 사망했습니다. 당시 정부는 차 대위에게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했는데, 공적 조서엔 오인 사격 사망이 아닌, “사태 진압을 선두에서 지휘하던 중 불의의 흉탄에 맞고 순직했다”고 돼 있습니다. 김영찬 씨에게 총을 쐈던 그는 현재 국립서울현충원에 묻혀있습니다. [김영찬/5·18 첫 발포 피해자] “힘들게 살다가 돌아가신 분들도 묘지에, 국립묘지에 못

민족사랑 2026년 6월호

2026년 6월 25일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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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제주로 향한 4·3버스’ 국가폭력 상흔과 시대의 과제

2026년 6월 23일 167

민족문제연·제주다크투어가 기획한 ‘평화기행’ 독립운동가 김동삼 후손 김원일이 제안해 시작 학살의 현장에서 독립운동가 강태선 자택까지 경찰 총탄에 턱 잃은 진아영 할머니 삶터 숙연 역사 왜곡에 맞서는 민주시민 저항 정신 고취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몫이자, 기록하는 자의 책무다. 지난해 제주 4·3 학살의 책임자 중 한 명인 박진경 대령의 서훈 취소와 상훈법 개정을 요구하며 육지 전역을 누볐던 ‘육지로 가는 4·3 버스’가 이번에는 제주의 아픈 역사의 현장 속으로 향했다. ‘제주로 향한 4·3 버스’가 된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제주 4·3기념 사업위원회의 지원 아래, 일송 김동삼 독립운동가 기념사업회 회원들과 일반 시민 등 28명의 참가자는 제주다크투어의 해설과 함께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아픈 역사의 현장들을 밟았다. 이번 여정은 단순한 유적지 탐방을 넘어, 친일과 국가폭력으로 점철된 110여 년의 굴곡진 현대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엄숙한 연대의 현장이었다. ​■ 학살의 동굴과 통곡의 길…제주 전역에 새겨진 국가폭력의 흔적 ​답사단이 첫날 마주한 제주 하늘은 무거웠다. 제주 4·3 평화공원을 찾은 참가자들은 50여년 해원(解冤)되지 못한 채 구천을 떠돌던 희생자들의 넋을 위령하며 첫발을 디뎠다. 평화공원 전시실에서 당시의 참상을 전하는 해설이 이어지자, 곳곳에서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고 무자비한 국가권력의 학살 행위에 분노를 감추지 못하는 참가자들도 많았다. ​이어 발길이 닿은 곳은 조천읍 선흘리의 목시물굴이었다. 1948년 11월, 토벌대의 초토화 작전을 피해 도틀굴과 목시물굴로 숨어들었던 주민들의 운명은 참혹했다. 협박과 고문으로 위치를

[주간경향] 6·25 전쟁 때 강원 평강에 원폭 6~10발 투하…미국 극비문서에 담긴 ‘소름 돋는’ 구상 [이기환의 사래자(思來者)

2026년 6월 19일 213

“현재의 군사적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조처를 하겠다.” 1950년 11월30일이었다. 기자회견에 나선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재임 1945년 4월12~1953년 1월20일)이 아주 민감한 발언을 터뜨렸다. 기자들이 “그 모든 조치에 핵무기(원자탄)도 포함되느냐”고 계속 묻자 트루먼은 “핵무기 사용에도 항상 적극적인 고려가 있었다”고 답했다. 말 그대로 핵폭탄 발언이었다. 그의 발언은 유럽을 비롯한 국제 사회에 벌집을 쑤셔놓았다. 동맹국들은 ‘충격과 분노(Shock and outrage)’라는 표현을 쓰면서 미국을 비난했다. 반대한 이유는 세 가지였다. 우선 자칫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련이 원자탄으로 대응하면 어쩌냐는 것이었다. 또 ‘한국에서 원자탄 사용’은 유색인종에 대해 인종차별주의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이 원자탄을 사용하더라도 중국·소련을 굴복시킬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었다. 이러한 동맹국들의 ‘핵무기 절대 불가’ 여론을 등에 업은 클레멘트 애틀리 영국 총리가 서둘러 트루먼과의 회담을 성사시켰다. 마침내 12월4일 열린 애틀리-트루먼의 역사적인 회담은 “핵무기가 사용될 작전사항이라면 언제든 영국 총리에게 미리 알린다”는 구두합의로 마무리됐다. 이로써 트루먼의 원자폭탄 사용발언은 10일 만에 일단락된 것 같았다. 원자폭탄의 유혹 하지만 이것이 처음과 끝이 아니었다. 미국은 전쟁을 한 방에 끝낼 수 있는 원자폭탄의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연구에 따르면 미국은 모두 5차례에 걸쳐 핵무기(원자폭탄) 카드를 꺼내려 했다. 첫 번째는 북한군이 기습 남침했을 때(1950년 6~9월)였다. 트루먼 행정부와 군부는 개전초부터 핵무기 사용을 고려했다. 특히 더글라스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은 합참에

[전자신문] 유한양행 ‘제약보국’ 100년…신약으로 이어온 故 유일한 박사의 꿈

2026년 6월 19일 207

1926년 한 독립운동가는 “건강한 국민이 있어야 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신념으로 제약사를 세웠다. 고(故) 유일한 박사가 창업한 유한양행은 불모지였던 의약품 국산화를 개척하고 국산 항암신약 ‘렉라자’를 탄생시키며 한국 제약산업의 이정표를 세워왔다. 창립 100주년을 맞은 유한양행은 신약 개발로 벌어들인 성과를 다시 연구개발과 사회공헌에 투자하며 ‘제약보국’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유일한 박사가 서울 종로에 설립한 유한양행의 출발점은 ‘건강한 국민만이 잃었던 조국을 되찾을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었다. 유일한 박사는 어린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하며 민족 자강의 중요성을 체감했는데, 독립을 위해서는 정치적 자유뿐 아니라 경제력과 국민 건강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일본 기업들이 장악한 의약품 시장에서 우리 손으로 좋은 약을 만들어 국민 건강을 지키겠다는 것이 유한양행 창업 배경이었다. 유한양행은 설립 초기부터 단순 수입 판매에 머물지 않았다. 자체 생산 시설을 세우고 의약품 국산화에 나섰다. 해외 전문가를 영입해 기술력을 축적했고 일본 자본이 독점하던 시장에 정면 도전했다. 이는 한국 제약산업 토대를 구축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유한양행은 1933년 자체 개발 의약품 ‘안티푸라민’을 선보이며 국산 의약품 개발의 물꼬를 텄다. 안티푸라민은 9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국민 상비약으로 자리 잡으며 유한양행 연구개발 역사의 출발점이 됐다. 그리고 현재 유한양행의 폐암 치료제 ‘렉라자(레이저티닙)’는 한국 혁신 신약 개발 성과의 계보를 잇는 대표 제품이 됐다. 국산 신약 31호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최초의 국산 항암제다. 글로벌 제약사

[경기일보] 후손의 기억으로 본 독립운동가와 가족의 삶…‘결국, 뿌리로 산다’

2026년 6월 11일 279

민족문제연구소 ‘독립운동가 후손 구술 수집사업’ 녹취 소설 형식으로 옮겨 100년 전 조선공산당 6·10투쟁특별위원회 책임자 권오설 후손 등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1926년 6월 10일, 이른 아침부터 순종의 장의행렬이 지나가는 길은 추모객들로 인산인해였다. 일제는 시민들의 시위를 막기 위해 단단히 준비했다. 창덕궁 돈화문에서 을지로 2가, 을지로 4가까지 도로 양쪽앞 열에 ‘의장대’ 명목으로 무장한 기마경찰과 헌병을 도열시켰다. 그 다음 열에는 고등보통학교생과 전문학교생 2만1천명을 배치했다. 일반시민 추모객들은 그 뒤편에 자리 잡았다. 오전 8시, 추모객들의 호곡 속에 상여가 돈화문 앞을 출발해 장지인 금곡을 향해 종로3가 쪽으로 서서히 움직였다. 8시30분 장의행렬이 종로3가 단성사 앞을 통과할 무렵 동양루 쪽에서 이선호가 도로 중앙으로 뛰어나오면서 한 뭉치의 ‘격문’을 뿌렸다. 그리고 태극기를 흔들면서 외쳤다. “조선독립만세!” 6·10만세운동은 일제의 철통같은 사전·사후 탄압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되지 못했다. 하지만 국내외 독립운동세력에 미친 영향은 대단했다.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이 실천적으로 연대해 항일운동을 전개한 새로운 경험이었으며 1927년 2월 신간회가 성립할 수 있게 한 디딤돌이었다. 분열상을 보이던 독립운동세력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국민 주권을 요구한 운동이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6·10만세운동은 순수한 학생운동으로만 기억돼 왔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를 두고 “반공 이데올로기에 짓눌려 온 우리 사회 분위기 탓에 만세운동의 계획과 준비, 진행에서 사회주의 계열의 주도적 움직임을 의도적으로 외면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사회주의 이념을 발판으로 항일투쟁,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독립운동가들을 외면하고, 나아가 지속적으로 우리 사회

[뉴스타파] [특집 기획] 한일 극우의 데칼코마니

2026년 6월 10일 255

폭력화되는 극우 지난 1월 19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면서 법원에 난입한 사람들이 있었다. 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붙잡겠다며, 판사실을 찾고 경찰과 공수처 직원, 언론인을 폭행하는 등 매우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다. 전담수사팀에 의해 구속기소 된 그들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를 외치는 극렬 지지자들이었다. 일본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꽤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환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시위 모습을 보면 일본회의 시위와 굉장히 닮았습니다. – 스가노 다모쓰 / 독립 언론인 광복 80주년이 되는 올해 삼일절을 맞아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성과 반대를 놓고 집회의 성향은 좌우로 극명하게 갈린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일본 극우의 뿌리를 찾는 여정 삼일절을 맞아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와 함께 일본 극우의 뿌리를 찾기 위해 일본으로 떠났다.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시모노세키로 이동했다. 시모노세키로 이동하는 바닷길은 일제강점기인 1905년부터 40년간 운항됐던 부관연락선의 항로였다. 부관연락선, 침략과 수탈의 항로 부산에서 시모노세키까지의 거리는 200km, 11시간을 이동하는 항로다. 배가 운행을 시작한 1905년은 을사늑약이 체결돼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일본에 강제로 박탈 당한 해이기도 하다. 당시 배는 남만주철도 주식회사가 운영하면서 철저히 한반도의 자원을 수탈하는 루트로 이용됐다. 지금은 한일 우호의 상징이 됐지만, 일제강점기 때는 선조들의 절망과 눈물이 흐르던 항로이기도 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정한론’의 기원지 과거 조슈번으로 불렸던 일본 야마구치현 하기시. 이곳에 메이지 유신의 정신적 지도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