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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은 뭐하니] 인턴편 Ep.3 어서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처음이지? ② 미션 찾기

2021년 4월 2일 101

  [박물관은 뭐하니] Ep.3 어서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처음이지? ② 미션찾기 ※관련영상  ☞유튜브: [박물관은 뭐하니] 인턴편 Ep.1 인턴은 뭐하니 VLOG  ☞유튜브: [박물관은 뭐하니] 인턴편 Ep.2 어서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처음이지? ① 미션찾기 

[YTN라디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1~17편

2021년 4월 1일 322

민족문제연구소는 2017년 『항일음악 330곡집』을 발간한 이후 <항일음악회> 개최 등 항일음악 보급을 통한 독립정신 선양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YTN 라디오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자문을 받아 2020년 11월 ‘국치추념가’를 시작으로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를 방송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17편 : 희망가 _ 김수옥(우사 김규식 선생 손녀) ☞ 16편 : 목동가 _ 김정륙(독립운동가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아들) ☞ 15편 : 고려인 홀로아리랑 _ 안톤 강(독립운동가 유상돈 선생 증손자) ☞ 14편 : 여옥사_8호감방의노래 _ 김정애(유관순 열사 조카 며느리) ☞ 3·1절특집: 끝나지않은 노래’독립운동歌’ ☞ 13편 : 기전사가 _ 정철승(독립운동가 규운 윤기섭 장손) ☞ 12편 : 최후의결전 _ 우원식 국회의원(임시정부 법무국 비서국장 김한 외손자) ☞ 11편 : 올드랭사인애국가 _ 김주(심산 김창숙 손녀) ☞ 10편 : 광복군아리랑 _ 장병화(광복군 장이호 지사 장남) ☞ 9편 : 앞으로행진곡 _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김의한, 정정화 외아들) ☞ 8편 : 독립군가(임청각이 복원되던 날) ☞ 7편 : 신흥학우단가 _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의장(우당 이회영 손자) ☞ 6편 : 새야새야파랑새야 _ 정남기(동학농민군 비서 정백현 손자) ☞ 5편 : 격검가 _ 차영조(동암 차리석 아들) ☞ 4편 : 압록강행진곡 _ 광복군 김영관 지사 ☞ 3편 : 신흥무관학교교가 _ 이항증(석주 이상룡 증손자) ☞ 2편 : 안중근옥중가 _ 함세웅 신부 ☞ 1편 :

[오마이뉴스] 일본군 총칼에 죽은 모자, 102년 뒤 세워진 추모비

2021년 4월 2일 97

[현장] 충남천안 ‘독립운동’ 주도하다 죽은 김구응 열사, 그의 모 최정철 열사 ‘추모비 제막식’ 지난 1일 찾은 충남 천안시 병천면 가전리의 모자(母子) 무덤에서는 102년 전, 아우내장터의 만세 함성이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천안 아우내장터 독립만세운동 주동자인 최정철·김구응 열사 무덤이었다. 뜻깊은 날을 기려, 무덤 주변에서는 과거 천안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최정철(1995, 애국장), 김구응(1991, 애국장) 열사 모자의 추모비 제막식이 있었다. 흔히 아우내 만세운동이라고 하면 유관순 열사를 떠올리지만, 102년 전 4월 1일, 아우내장터 만세시위를 주도하다 일제 순사의 총검에 의해 현장에서 순국의 길을 걸은 모자(母子)가 있다. 바로 어머니(최정철, 당시 66세)와 아들(김구응, 당시 32세)이 그분들이다. 한날한시에 목숨을 잃은 모자는 가전리 산 8-6번지에 묻힌 채, 지난 100여 년간 침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과거 어떤 일 벌어졌나 보니… ‘독립선언’ 하려 모인 6400명, 일본군과 맞서다 “천안군 병천시장에서 의사(義士) 김구응이 남녀 6400명을 소집하여 독립선언을 할 때 일본헌병(일경)이 조선인의 기수(旗手, 행사 때 대열의 앞에 서서 기를 드는 일을 맡은 사람, 곧 조선인들)를 해치고자 했다. 조선인들은 맨손으로 이를 막느라 피가 낭자했다. 그러자 일본 헌병은 이들의 복부를 칼로 찔러 죽음에 이르게 하는지라, 김구응이 일본 헌병의 잔인무도함을 꾸짖자 돌연 총구를 김구응에게 돌려 그 자리에서 즉사케 했다. 김구응은 머리를 맞아 순국했으나 일본 헌병은 사지(四肢)를 칼로 난도질했다. 이때 김구응의 노모(최정철 지사)가 일본 헌병을 향해 크게 질책하자 노모마저 찔러

[오마이뉴스] [주장] 전봉준·최시형, 독립유공 서훈해야

2021년 4월 2일 98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독립유공자법)에는 “일제의 국권침탈에 항거하다가 순국한 자는 순국선열에 해당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순국선열에 해당하는 자는 독립유공자로 서훈된다. 그런데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 심사위원들은 이 법률에 의거하여 독립유공자를 심사하지 않고 있다. 을미년(1895년)에 경복궁을 점령한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싸운 인사는 독립유공자로 인정하고 있다. 반면에 갑오년(1894년)에 경복궁을 점령한 일본군을 제거하기 위해 거병한 인사는 아직까지 독립유공자로 포상하지 않고 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필자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을미의병 참여자는 1962년부터 독립유공 서훈을 시작하여 2020년까지 총 120명을 포상하였다. 대한민국 정부가 너무도 잘한 일이었다. 1962년 안승우(1865∼1896)에게 독립장을, 1963년에 이춘영(1868∼1896)·서상렬(1856∼1896)·홍사구(1888∼1896)에게 각각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2018년에 김진림(1838∼1900, 63세)·윤병의(1822∼1899, 78세)·이강하(1873∼1940, 68세)에게 각각 대통령표창을, 2020년에 이면수(1833∼1898, 66세)·류인목(1839∼1900, 62세)에게 각각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상의 총 120명은 을미의병 참여만으로 서훈을 받은 분들이다. 을미의병 참여와 이후의 의병 참여로 서훈을 받은 분은 58명으로 확인되었다. 이로써 1962년에 이병도와 신석호(둘 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됨)가 정한 독립유공 내규 즉 ‘독립운동의 기점은 을미의병이다’라는 내규에 의거하여 심사하고 있음이 분명히 확인됐다.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거병한 2차 동학농민혁명은 나라를 지키기 위한 애국적인 행동이었다. 항일 독립운동인 2차 동학농민혁명을 이끈 항일 투쟁의 총사령관이 전봉준이었고, 최고 지도자가 최시형이었다. 전봉준·최시형과 함께 1894년과 1895년에 걸쳐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일어나 싸운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도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항거하였고, 그 반대와 항거로 인하여 순국하였다. 같은 시기 일본군을 몰아내다가 순국한 을미의병(1895)·을사의병(1905)·병오의병(1906)·정미의병(1907)

[성명] 진실화해위는 피해자들과 유족들의 눈물과 한을 매순간 기억하라!

2021년 3월 25일 346

[다운로드][공동성명]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첫 번째 위원회 개최에 부쳐 진실화해위는 피해자들과 유족들의 눈물과 한을 매순간 기억하라! 지난해, 12월 10일 출범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가 국회의 위원 추천이 지연되어 출범 100일을 넘겨서야 첫 번째 위원회를 개최하게 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하루하루 잊히지 않는 과거의 고통과 상처를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는 피해자들과 유족들, 대한민국의 올바른 과거사정리와 진실규명을 기다리는 국민들께 머리 숙여 사과하고 남은 시간 최선을 다해 진실규명에 매진할 것을 다짐하는 마음으로 첫 번째 위원회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2기 진실화해위가 출범한 지 넉 달 만에 형제복지원과 선감학원, 서산개척단 피해자들,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유족들,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피해자들, 군의문사 유족들, 권두영, 김두황, 문승필, 박창수, 박태순, 안치웅, 이내창, 이덕인, 이윤성, 이재문, 이진래, 이철규, 장준하, 정경식, 정성희, 김용권, 최우혁, 한영현, 한희철 등 의문사 유족들을 비롯하여 2,774건, 5,180명에 이르는 진실규명신청이 접수되었고 앞으로도 수천 건, 수만 명의 진실규명신청이 이어질 것이 예상된다. 피해자들과 유족들에게 진실화해위의 활동기한 3년은 충분한 시간이 아니다. 피해자들과 유족들 중에는 고령의 어르신들도 많으시고, 여러 후유증으로 건강이 상한 분들도 많다. 피해자들과 유족들에게 진실규명 없는 날은 하루하루가 고통일 뿐이다. 진실화해위의 위원들과 조사관들이 그분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헤아리고 있다면 앞으로는 진실화해위의 단 하루도 허투루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 진실화해위의 모든 구성원은 피해자들과 유족들의 피와 눈물을 어깨 위에 짊어지고 있다는 생각으로 위원회 활동에 임해야

[한겨레] “박정희 등 ‘일제 빛낸 사람들’ 92명 수갑 채워 심판했죠”

2021년 3월 30일 632

[짬] 민중미술가 이상호 화가 서대문형무소에 갇혔을 때였다. 감옥 안 마룻바닥에서 글을 새긴 흔적을 발견했다. ‘대한독립만세’라는 글씨였다. 독립운동가들의 삶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 “친일파 후손들은 떵떵거리며 살고, 목숨바쳐 나라를 구한 독립지사들의 후손은 가난조차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했다. 친일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광주비엔날레 초대작가 이상호(61) 화가는 화폭에 친일파 92명을 그려 일일이 손에 포승줄로 묶고 수갑을 채웠다. 이 작가는 30일 “70여년 전 ‘반민특위’ 해체로 심판받지 못했던 자들을 그림으로 심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광주비엔날레(4월1~5월9일)에 그는 7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일제를 빛낸 사람들’(417㎝×245㎝)에서 그는 친일 인사 92명을 소환했다. 그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친일인명사전’(2009) 수록 인물 중 군인·경찰·관료·언론·문화예술 부문에서 92명을 간추렸다. 박정희·노덕술·방응모·김성수·김기창·김은호·최남선·이광수·서정주·안익태·김활란 등이다.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아버지 백낙승, 소설가 전혜린의 아버지 전봉덕, 우장춘 박사의 아버지로 민비 시해사건 주동자 우범선도 포함됐다. 인물 옆엔 그의 행적을 기록했다. 이 작가는 “반복해서 색을 칠해가며 그들의 비열한 내면세계를 드러내는 데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부터 작업을 시작한 그는 “친일파들의 얼굴을 그리면서 메스꺼움이 가슴에서 튀어나와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럴때마다 “김구·장준하 선생의 얼굴이나 내가 그린 ‘통일열차 타고 베를린까지’라는 그림을 보며 붓을 곧추 세웠다”고 했다. 친일파들의 기록과 사진 등을 찾는 것은 이지훈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사무국장이 도맡아 큰 힘이 됐다. 그의 이번 작품은 최근 <뉴욕타임스>에 소개되기도 했다. ‘일제를 빛낸 사람들’은 광주비엔날레가 끝나면 서울 민족문제연구소 식민지역사박물관에

[오마이뉴스] 충남교육청, 학교 내 일제잔재 청산 2기 사업 나섰다

2021년 3월 30일 97

전국 최초 청산위원회 구성, 조사범위 학대… 1기 때 일본 향나무 56곳 교체 등 성과 충남도교육청(교육감 김지철)이 ‘일제 잔재 청산위원회'(아래 청산위원회)를 구성하고 학교 내 일제 잔제 청산 2기 사업의 시작을 선언했다. 다른 지역 일부 도교육청에서 학교 내 일제 잔재 청산 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청산위원회를 구성하고 청산 범위를 확대한 곳은 충남교육청이 처음이다. 충남도교육청은 29일 오후 3시 도교육청 1층 회의실에서 ‘학교 내 일제 잔재 청산위원회 협의회’ 위원 위촉식과 1차 협의회를 개최했다. 이날 회의에서 청산위원회는 충남도 학교 내 일본풍 음계 교가 파악, 일본식 기념비 시설물 조사, 친일 반독재 경력자(설립자, 이사장) 파악과 더불어, 학교에서 기리는 친일 반독재 인물을 조사하기로 의결했다. 조사범위도 일선 학교에서 산하기관까지로 확대하기로 했다. 충남교육청의 일제 잔재 청산 활동은 지난 2018년부터 김 충남교육감의 강한 의지로 본격 추진됐다. 일본인 학교장 사진 게시, 교가, 교표(학교를 상징하는 무늬를 새긴 휘장), 교훈, 학생징계규정 등 일제 잔재를 조사했다. 지난해에는 도교육청과 민족문제연구소충남지부 간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이를 통해 많은 성과를 남겼다. 충남도교육청은 지난해까지 일본인 교장 사진 29개를 철거했다. 또 친일행위 경력자가 작사, 작곡한 교가를 둔 24곳을 찾아냈다. 이 중 4곳이 교가를 변경했다. 일본이 원산지인 58곳에 있는 가이즈 향나무를 교체했고, 머릿돌도 4개 철거했다. 충남도의회에서는 이에 호응해 ‘일제잔재청산특위’를 구성했다. 이번 청산위원회는 그동안 조사에서 누락된 내용을 추가 조사하고, 이를 교육공동체의 합의로 폐기 또는

[한겨레] ‘전범이 된 조선청년’ 한맺힌 65년 투쟁 빈손으로 떠나다

2021년 3월 30일 193

[가신이의 발자취] ‘마지막 비시급 전범’ 이학래 회장 별세 17살 때 ‘콰이강의 다리’ 포로감시원 일제 패망뒤 연합군 재판 ‘사형선고’ 전후 일본 국적 박탈해 보훈도 제외 55년 70여명 동진회 결성 ‘보상’ 요구 65년 ‘한·일협정’ 구실로 ‘창구’ 닫아 91년부터 법정 투쟁 99년 최종 패소 지난해까지 의회 상대로 ‘입법’ 촉구 “슬픈 소식을 전해야겠습니다.” ‘마지막 조선인 비·시(B·C)급 전범’ 이학래 동진회 회장의 죽음을 알리는 부고는 짤막한 문장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자이니치(재일동포)들이 집단 거주하는 오사카 이카이노에서 ‘샛바람 문고’를 운영하는 후지이 고노스케는 28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 회장이 이날 오후 숨졌다고 밝혔다. 향년 96. “이학래상이 지난 26일 자택에서 넘어져 머리를 부딪히고 다리가 부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치료의 보람도 없이 28일 오후 2시10분 숨졌습니다. 학래상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먼저 숨진 동료들을 생각하고 (비시급 전범들을 구제하기 위한) 입법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아베 신조 정권이 힘으로 입법화를 가로막았습니다.” 후지이의 설명대로, 조선인 비시급 전범 이학래의 일생은 부당한 일본 국가권력을 상대로 한 투쟁으로 점철된 삶이었다. 1925년 전라남도 보성에서 3남매의 첫째로 태어난 그는 1942년 봄 면장에게서 갑작스런 호출을 받았다. “‘남방 포로감시원’을 모집하는데, 자네가 가소!” 근무 기간은 2년, 한 달 월급은 50원이라고 했다. 17살 소년은 2년만 고생하면 징용과 머잖아 시행될 징집을 면할 수 있다는 생각에 지원서를 제출했다. 1942년 8월19일 부산에서 동남아시아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그로부터 3년 뒤 일제가 패망하면서 연합국

민족사랑 2021년 03월호

2021년 3월 26일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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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민족문제연구소 출범 30년을 돌아본다

2021년 2월 23일 945

[전문] [다운로드] 민족문제연구소 출범30년을 돌아본다 상임이사 조세열 친일문제 연구의 선구자 임종국 선생의 유지와 반민특위의 정신을 이어받은 민족문제연구소가 2월 27일(일제침략이 시작된 강화도조약 체결일)로 창립 30주년을 맞는다. 그간 연구소는 숱한 고난과 역경을 뚫고 역동하는 조직으로 성장했다. 짧지 않은 세월인 만큼 괄목할만한 성과도 거두었지만 역량이 따라주지 않아 미처 주목하지 못한 아쉬운 부분도 적지 않았다.    자화자찬이 될까 조심스러운 면이 없지 않지만 지난 30년간 연구소가 이루어낸 주요성과들을 정리해본다.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업적은 물론 2009년 11월 8일 『친일인명사전』 발간이다. 연구소 창립부터 치면 18년, 편찬위원회가 발족한 뒤로도 8년의 시간과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전3권 2,882쪽 4,389명의 친일파를 수록한 대사전이 빛을 보게 되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성원과 헌신이 있었다. 대학교수 1만2천여 명의 편찬 지지선언, 단 11일만에 5억여 원의 성금을 모아주고 후원회원으로 가입한 어린이 청소년 대학생 시민들, 진보언론의 대대적인 보도, 아무런 대가 없이 작업에 참여한 편찬위원들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정을 바친 상근자들. 그야말로 전 국민적 여망과 시대정신이 만들어 낸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기적의 산물이었다. 오랜 기간 소송과 협박에 시달렸으나 『친일인명사전』은 이제 정부기관과 사법부까지 잣대로 삼는 역사의 이정표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2008년 집권한 이명박 정권은 실용주의를 택할 것이라는 일반적 예상과 달리 철저하게 퇴행의 길을 걸으며 극우세력과 손을 잡았다. 정권인수위원회의 일성이 과거사청산 중단이었던 데서 드러나듯, 뉴라이트의 역사인식을 고스란히 수용해 정책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