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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팟캐스트] 역발상 시즌1_민족영화의 대명사 “아리랑과 나운규”_식민지시대 사람들 7편

2022년 5월 4일 156

☞ (05.03) ‘역발상’ 시즌 1: 민족영화의 대명사 “아리랑과 나운규”_식민지시대 사람들 7편 오늘 이야기:파란만장한 나운규의 삶 그는 어떻게 한국영화의 전설이 되었나? 출연:한상언(영화역사연구자,한상언영화연구소 대표) 이준희(옛가요 전문가,성공회대 교수) 해방 후 나운규는 남과 북 모두에서 영화계의 전설이 되지만 아쉽게도 그가 만든 영화는 필름이 남아 있지 않아 한 편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역발상에서 나운규의 실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아주 희귀한 녹음본을 구해 여러분께 들려 드립니다. 아리랑은 어떻게 민족의 노래가 되었나? 3.1운동과 러시아혁명 그리고 도판부 사건 <심청전>의 심봉사로 연기를 깨우치다 <아리랑>을 만들다 나운규의 전성시대 방탕과 방종 그리고 몰락 영화계 복귀와 좌익극 활동… 그리고 <임자없는 나룻배> 토오키 시대의 시작과 <말못할 사정> <아리랑 3편>과 <오몽녀> 그리고 죽음 남북 모두에서 민족영화의 첫 자리에 자리한 나운규 ※지난 방송 ☞ (04.19) ‘역발상’ 시즌 1: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나간 최고의 가수 ‘이난영”_식민지시대 사람들 5편 ☞ (04.12) ‘역발상’ 시즌 1: 영화로 혁명을 꿈꾸다 ‘주인규”_식민지시대 사람들 4편 ☞ (04.05) ‘역발상’ 시즌 1: 식민지시대 사람들 3편 _독립운동을 위해 상해로 떠난 조선영화의 개척자 “이경손” ☞ (03.29) ‘역발상’ 시즌 1: 식민지시대 사람들 2편 _한국의 고가 마사오 ‘박시춘’ 탁월한 대중성으로 군국가요도 탑 ☞ (03.22) ‘역발상’ 시즌 1: 식민지시대 사람들 1편 _대중가요 최초의 슈퍼스타 남인수 “군국가요에서부터 국가보안법 피해까지” ☞ (03.15) ‘역발상’ 시즌 1: 새로운 시작 그리고 재일조선인단체사전 발간

[한겨레] 5월1일은 근로자의날 아닌 노동절이다

2022년 5월 9일 155

[함세웅의 붓으로 쓰는 역사 기도] (31) 노동절 ‘8시간 노동제’ 위한 투쟁 등 노동자의 정신 기리는 노동절 박정희때 ‘근로자의날’로 격하 날짜 찾았어도 정명 회복 못해 “너희 동족들 가운데에서나, 너희 땅, 너희 성안에 있는 이방인들 가운데에서 가난하고 궁핍한 품팔이꾼을 억눌러서는 안 된다. 그의 품삯은 그날로 주어야 한다. 그는 가난하여 품삯을 애타게 기다리므로,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품삯을 주어야 한다.”(신명기 24,14-15) “자, 이제 부자들이여! 그대들에게 닥쳐온 재난을 생각하며 소리를 높여 우십시오. …… 그대들이 밭에서 곡식을 벤 일꾼들에게 주지 않고 가로챈 품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곡식을 거두어들인 일꾼들의 아우성이 만군 주님의 귀에 들어갔습니다.”(야고보 5,1-4) 인류의 역사는 강자들 중심으로 강자의 시각에서 쓴 기록입니다. 우리 역사의 현실도 한 가지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끊임없이 약자의 처지에서 약자들을 배려하는 하느님의 큰 가르침을 선포하고, 노동자들의 정당한 품삯을 보장하도록 부자들에게 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20세기 후반에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The preferential option for Poor)이 교회와 신앙인의 핵심임을 깨닫고 선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5월1일은 근로자의 날입니다. 관련 법령은 “노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근로자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제정된 법정기념일”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법령에는 모순과 함정이 있습니다. ‘노동의 중요성’을 인식한다면서 막상 노동자를 근로자라고 기술한 저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노동의 중요성은 노동자의 품위에 근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근로자라고 지칭한 그 배경을

[콩나물신문] 2018년, 부천의 일제 잔재 청산이 시작되다 – 친일 문인 작품의 철거

2022년 4월 29일 128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의 설립과 활동 4 친일반민족행위자(줄여서 ‘친일파’)를 기억해야만 하는 이유 우리나라는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항복에 의해 해방을 맞이하였으나 미국과 소련으로 대변되는 강대국에 의해 남북으로 분단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친일파들은 미군정에 의해 다시 등용되었으며, 해외에서 오랜 세월 독립운동을 했던 임시정부 대표 김구,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한 여운형, 조선공산당의 박헌영 등에 비해 국내 정치적 기반이 약했던 이승만은 친일파와 손을 잡았습니다. 해방 후 친일파를 처벌하자던 사회적 열기는 뜨거웠으나 상황은 정반대로 돌아갔습니다. 이러한 결과 청산되었어야 할 친일파들은 우리 사회의 주류를 형성하며 기득권층이 되었으며, 반성과 자숙을 해야 할 친일파들은 오히려 권력을 통해 독립운동가분들을 탄압하고 억압하는 등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들이 발생하였습니다. 도덕적 불감증에 걸린 친일파들은 권력과 힘이 정의라고 호도하며 친일한 것이 무엇이 잘못이냐 항변하며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는 풍조까지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 이익과 권력을 위해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은 친일파들은 우리 사회의 상식과 정의를 철저하게 파괴하였으며 이로 인해 우리의 민족정기와 가치는 크게 훼손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미래로 그리고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상동 ‘시와 꽃이 있는 거리’의 친일 문인 작품을 철거하다 우리 부천에서는 2018년 상동의 ‘시와 꽃이 있는 거리’에 설치된 친일 문인 3인의 4개 작품에 의해 청산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와 「동천」, 주요한의 「샘물이 혼자서」, 노천명의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가 그것입니다. 세 사람은 모두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JTBC뉴스] ‘친일 화가’ 논란에…100원 동전 속 ‘이순신 얼굴’ 바뀔까

2022년 4월 29일 169

[앵커] 100원짜리 동전 속에서 많이 본 이순신 장군의 표준영정입니다. 그런데, 이 초상을 그린 화가가 친일인명사전에 올라있고, 그림 속 복장도 시대에 맞지 않는단 이유로 3년째 바꾸자는 논란 속에 있습니다. 무슨 일인지, 이선화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이순신 영정을 걸어둔 사당 앞에서 오늘(28일)도 기념 행사가 열렸습니다. 대한민국 표준영정 1호인 이 초상, 그러나 지정해제 심의가 진행 중입니다. 이 영정을 그린 월전 장우성 화백이 지난 2009년 친일인명사전에 오르면서 논란이 시작됐습니다. [방학진/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 (일제가) 징병제를 기념한다든지, 미국과 영국 연합군을 격퇴하자는 미술대회 결전 미술전 이런 곳에 출품하게 만들었고.] 후손들은 적극적 친일매국 행위가 아니라며 반발하지만, 문화재청 현충사 관리소는 2010년 처음 지정해제를 신청했고, 당시 문체부는 ‘화가의 행적은 심의 규정에 없다’며 반려했습니다. 그러나 초상화 속 복장도 시대에 맞지 않다는 지적까지 나오면서 현충사는 2017년 또 한 번 지정해제를 신청했는데, [권오창/화가 (표준영정 다수 제작) : 19세기의 옷을 착용하고 있는 게 아쉽고, 여기 있지 말아야 할 병부 주머니를 착용하고 있다든가 이런 것이 시대에 맞지 않기 때문에…]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교과서는 물론 화폐까지 바꿔야 해 사회적 혼란과 비용이 예상된단 겁니다. 재작년 6월, 현충사의 세 번째 신청에도 논의만 3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 : 작년엔 코로나 상황 때문에 원활하게 개최를 못 해서 올해는 한두 달 간격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논의사항이 많고 신중하게 검토를 해야 하는

[YTN라디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31편 – 그리운 강남

2022년 4월 28일 203

민족문제연구소는 2017년 『항일음악 330곡집』을 발간한 이후 <항일음악회> 개최 등 항일음악 보급을 통한 독립정신 선양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YTN 라디오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자문을 받아 2020년 11월 ‘국치추념가’를 시작으로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를 방송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31편 : 그리운 강남_김시중(백하 김대락 후손) ☞ 30편 : 소년남자가_최재황(권준 후손) ☞ 29편 : 한국행진곡_한종수(한형석 후손) ☞ 28편 : 해방행진곡_손명원(손정도, 손원일 후손) ☞ 27편 : 거국행_박만규(흥사단 이사장) ☞ 26편 : 애국가_김흥태(오희옥 지사 아들) ☞ 신흥무관학교 제8편 : 끝나도 끝나지 않았다 ☞ 신흥무관학교 제7편 : 자랑스런 신흥인 ☞ 신흥무관학교 제6편 : 독립전쟁의 주역, 독립군의 총 ☞ 신흥무관학교 제5편 : 서간도 국치일의 풍경 ☞ 신흥무관학교 제4편 : 신흥무관학교 24시 ☞ 신흥무관학교 제3편 : 서간도는 어떤 곳일까 ☞ 신흥무관학교 제2편 : 망명로드 ☞ 신흥무관학교 제1편 : 신민회 ☞ 25편 :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라 ☞ 24편 : 광복군 제3지대가 _ 김일진(광복군 제3지대장 김학규 장군, 광복군 오광심 지사 아들) ☞ 23편 : 추도가 _ 원형재(원심창 선생 아들) ☞ 22편 : 한반도가 _ 나중화(나창헌 선생 아들) ☞ 21편 : 독립군행진곡 _ 김완태(전 육군사관학교장) ☞ 20편 : 영웅추도가 _ 김성태(오석 김혁 장군 증손자) ☞ 19편 : 선봉대가 _ 권현(권기옥 선생 후손) ☞ 18편 :

민족사랑 2022년 04월호

2022년 4월 27일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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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현대그룹으로 흘러들어간 호남 갑부 가문의 과거

2022년 4월 27일 152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현준호 일제강점기 때의 ‘호남 출신 재벌’ 하면 <동아일보> 김성수가 떠오른다. 지금은 많이 잊혀 있지만 현준호(1889~1950) 역시 손꼽히는 일제강점기 호남 재벌이었다. 김성수처럼 현준호 역시 친일파였다.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2010년에 펴낸 백서 <친일재산조사, 4년의 발자취>는 친일파 현준호에 대해 “일제강점 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9호의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고문 또는 참의로 활동한 행위’를 한 자에 해당”한다고 기술한다. 정규직 갑부 친일파 그가 일제 치하에서 역임한 관직은 총독부 자문기관인 중추원의 참의만이 아니었다. 광역의회에 해당하는 전라남도 도평의회에도 참여했다. 또 전쟁 협력을 위한 기구에도 가담했다. 전남 특별지원병후원회 부회장, 전남 군사후원연맹 부회장, 국민정신총동원 전남연맹 이사장, 조선임전보국단 이사 등도 역임했다. 식민지 한국인들을 전쟁터로 내모는 데도 관여했다. 동족 청년들에게 학병 참여를 권장하는 현장에도 그가 있었다. 조선의 자치제도 주장했으나 이는 일제의 미움을 사는 일이 아니었다. 일본제국의 테두리 내에서 자치를 하자는 것이었다. 또 금전도 많이 기부했고, 금 현물도 많이 기부했다. <친일인명사전> 제3권에 따르면, 1939년 4월 본인 명의로 금제품 26점을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에 기부했고, 다음 달에는 그의 부인이 조선군애국부에 금제품을 헌납했다. 이런 행위들로 인해 상을 많이 받았다. 일본 정부가 주는 상도 받고 총독이 주는 표창도 받았다. 만 32세 때인 1927년에는 다이쇼 일왕(천황) 장례식에 참석할 전남 대표로도 선정됐다. 또 중추원 참의로 일하는 대가로 오랫동안 봉급을 받았다. 이 봉급은 1930년 6월부터 1944년 12월까지

[팟캐스트] 역발상 시즌1_대중가요 작사의 쌍두마차 박영호와 조명암_식민지시대 사람들 6편

2022년 4월 26일 260

☞ (04.26) ‘역발상’ 시즌 1: 대중가요 작사의 쌍두마차 박영호와 조명암_식민지시대 사람들 6편 오늘의 이야기: 대중가요 작사계의 투톱 출연: 이준희(옛가요 전문가) 이영미(대중문화평론가) ■ 양적인 면이나 질적인 면에서 모두 해방 이전 대중가요 작사를 대표하는 쌍벽, 박영호와 조명암. 두 사람이 다양한 필명으로 발표한 작품은 대략 1100여 곡. 작사자가 확인된 작품이 대략 3500여 곡이니, 약 1/3을 점하는 셈. <꿈꾸는 백마강> ■ 두 사람은 또 특이하게 같은 필명을 공동으로 사용하기도. 김다인이 바로 문제의 필명. 김다인 명의로 발표된 작품 중 어떤 것이 조명암의 작품이고 어떤 것이 박영호 작품인지는 확정하기 어려운 문제. 음반회사를 기준으로 보는 것이 그나마 타당. <온돌 야화> ■ 대중가요에서 작가의 개성을 찾는 것이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으나, 두 사람의 대비는 그래도 꽤 확인되는 편. 박영호는 작사가인 동시에 극작가로 활약했고, 조명암은 역시 극작도 했지만 시인으로 문필 활동을 시작. 가사만으로 작사자를 충분히 추정할 수 있는 곡들도 다수 존재. <타국의 여인숙> ■ 작품 활동만 했던, 그래서 그런지 작품 수가 좀 더 많기도 한 조명암과 달리, 박영호는 음반 기획을 총괄하는 음반회사 문예부장을 몇 차례 맡기도. 녹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가사를 완성하지 않아 가수들을 초조하게 했다는 박영호의 집필 스타일이 그런 상황과 관련이 있는지도. <오빠는 풍각쟁이> ■ 많은 작품을 발표한 두 사람은 군국가요에서도 역시 쌍벽을 이루는 작가. 특히 조명암은 확인된 군국가요의

[영상] 한승헌 변호사님 ‘민족문제연구소에 소장자료를 기증하며’

2022년 4월 26일 352

한승헌 변호사님은 평소 기록의 소중함을 강조해 오셨습니다.2012년 유신40년 특별전에 한 변호사님이 맡으셨던 시국사건 변론 기록물을 출품해 주셨고, 2018년에는 소장도서와 사건 기록 등을 기증해 주셨습니다. 한승헌 변호사님이 주신 뜻, 남긴 말씀 깊이 새기고 이어가겠습니다.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편히 쉬십시오.

[통일뉴스] 역사의 공백 ‘일제하 재일조선인’, 조직활동으로 조명

2022년 4월 26일 389

[화제의책] 한일공동편찬위 『재일조선인단체사전 1895~1945』 “일본 사람들은 우리를 바퀴벌레라고 불렀지. 땅 속에 다시 처박아야 된다면서.” 최근 인기리에 ‘애플TV’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파칭코> 속 대사 한 대목이다. 일본땅에서 일제 암흑기를 견디며 살아가는 조선인들의 처지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일본군성노예(‘위안부’)나 강제징용자들의 한맺힌 일대기들이 더러 소개되기도 했지만 식민본국 일본땅에서 일제시기를 살아낸 ‘재일조선인’들의 삶은 드라마 <파친코>가 그러하듯 이제야 우리 곁으로 조금씩 다가서고 있다. 1945년 해방 당시 2,500만 조선인 중에 재일조선인이 200만에 달했던 사정에 비추어 보면 그들에 대한 역사적 조명이 너무 소홀했고, 늦었다 할 것이다. 『친일인명사전』을 출간해낸 민족문제연구소가 10년간 공을 들여 『재일조선인단체사전 1895~1945』(이하 사전)을 올해 3.1절을 맞아 세상에 내놓았다. 재일조선인들의 삶을 그들이 몸담았던 ‘조직’을 통해 조명한 1,263쪽에 달하는 역작이다. 재일조선인이 주로 모여살았던 ‘집중 거주지’ 중심으로 동향(同鄕) 조직, 상호부조 조직, 민족단체, 노동단체, 학생 조직, 예술‧연극 단체, 종교 단체 등 다양한 ‘조직’이 만들어졌고, “일본사회에서 차별과 억압을 받았던 재일조선인”들은 이러한 ‘조직’에 참여해 ‘자주적 운동’을 펼쳐나갔다. 1934년에 재일조선인 단체는 1,000개가 넘었고, 1937년 재일조선인은 73만 5,685명 중 조직인원이 15만 6,842명에 달했다. 성인 남성 중심으로 계산할 경우 매우 높은 조직률인 셈이다. 그러나 가만히 보고 둘 일본 정부가 아니었다. “1937년 중일전쟁이 전면화된 이후에는 재일조선인들의 자주적 단체를 해산시키고 통제하는 것이 치안 당국에게 매우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고, 좌익 단체들은 사실상 탄압 속에 사라져갔다. 도쿄에서 조직된 대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