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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SBS] “200억을…” 독립운동 헌신 최부잣집 신화, 진짜였다

2019년 8월 11일 762

<앵커> 경주 최부잣집은 조선 시대 손꼽히는 부자 가문이면서 늘 주변의 가난한 이웃을 챙겨 존경받아 왔는데요, 경주 최씨 가문이 ‘나라가 없으면 부자도 없다며’ ‘독립운동에도’ 헌신했던 사실이 최근 발견된 사료로 입증됐습니다. 제희원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최진립 선생을 시작으로 조선 400년 일명 ‘최부잣집’을 일군 경주 최씨 집안. ‘재산을 1만 석 이상 지니지 말라’는 가훈으로 대표되는 청부 정신의 명문가로 인정받아 왔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시기 최 부자 가문이 독립운동에도 헌신했다는 이야기 역시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왔는데 지난해 여름 경주 고택 오랜 광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사료들이 대거 발견됐습니다. 1907년 빚의 구렁에서 나라를 구하자며 일어난 국채보상운동. 11대 최현식 선생 주도로 경주 군민들도 이에 헌신했는데 당시 군민 대부분인 5천여 명의 이름과 운동 과정이 소상히 기록된 연금 명부가 이를 증명합니다. 12대 최준 선생이 1920년대 백산무역 주식회사를 통해 전 재산을 담보로 독립운동 자금 조성에 이바지한 사실은 산업은행의 전신인 조선식산은행에서 돈을 빌리며 작성한 ‘근저당 설정 계약서’가 말해줍니다. 당시 빌린 돈은 35만 원, 지금 가치로 200억 원에 이릅니다. [조세열/민족문제연구소 상임이사 : 최 부자가 전 재산을 바쳐 독립운동했다는 것이 거의 신화 같은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었는데 그것을 실증할 수 있는 많은 문서들이 발견됐습니다. (예를 들면) 전 재산을 압류당한 서류라든지.] 계속되는 감시와 탄압 속에 최 부자 가문은 결국 파산했지만, 긍지와 자존심은 이어졌습니다. [최염/故 최준 선생 손자

[한겨레] 국가에서 교가까지 친일파 음악 추방 운동 본격화

2019년 8월 20일 126

경기도, 친일파 이홍렬의 도가 폐지친일파 안익태 지은 애국가도 논란중전문가 “정부가 나서지 않는게 문제”행안부 “여론 형성돼야 바꿀 수 있어” 경기도가 ‘삼각산 솟은 아래 고을고을이 긴 역사 아로새긴 전통의 터전’으로 시작되는 도 노래(도가)를 새로 만들기로 했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은 올해,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반일감정이 확산하는 상황에서 친일 음악가인 이흥렬이 작곡한 도 노래를 바꾸는 것은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작업이라는 이유에서다. 친일 음악가인 안익태가 작곡한 애국가와 친일 음악인들이 만든 교가를 바꿔야 한다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경기도는 작곡자 친일 논란을 빚은 도 노래 사용을 중단하고 전국민을 대상으로 ‘새로운 경기도 노래 공정한 공모전’을 11월8일까지 연다고 19일 밝혔다. 이성호 경기도 문화종무과장은 “새로운 도가 제정은 경기도의 친일잔재 청산 노력의 하나로 시작됐으며 도민의 삶과 애환을 담은 경기도 대표 노래가 탄생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경기도 노래는 친일 작곡가 이흥렬의 곡이다. ‘섬 집 아기’ 등의 동요·가곡 수백곡을 쓴 그는 일제강점기 친일 음악단체인 ‘대화악단’과 ‘경성후생악단’에서 활동한 친일 인사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일제강점기에 민족 반역, 부일 협력 등 친일반민족행위를 자행한 4389명의 목록을 정리해 2009년 을 발간했는데, 여기에 그의 이름이 올라 있다. 애국가도 교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곡을 쓴 이가 친일 작곡가인 안익태라는 점 때문이다. 애국가는 1930년대 그가 쓴 ‘한국환상곡’ 4악장의 일부다. 작사가는 독립운동가 안창호라는 설과 친일파 윤치호라는 설로 나뉜다. 안익태는 1965년 문화훈장 대통령장을 받았지만, 친일행적이

[SBS] 해방 후에도 타향살이..아픔 담긴 ‘위안부 귀국인 명부’

2019년 8월 19일 101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은 이후 타국을 떠돌던 독립운동가와 시민들은 잇따라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위안부’ 피해자들은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몇 년씩 타향살이를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함께 보시죠, 배준우 기자입니다. 1946년부터 1947년까지 중국 상해 일대에서 작성된 ‘위안부’ 피해자 명단입니다. 해방 이후 한국광복군 간부가 피해자를 대면해 작성한 것으로, 한국행 배에 탑승할 명단을 정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들의 이름과 나이, 주소 등이 상세하게 적혀 있는데 220명이 넘습니다. [‘위안부’ 탑승객 명단 작성 및 기증자 : (해방 후) 책임을 군인 중에서 내가 맡았어. 내가 아는 사람이 거기 타고 있었고. ‘위안부’들한테도 굉장히 그게(명부가) 가치 있는 줄 사람들은 아직 모르고 있더라고 그걸.] 민족문제연구소가 보관 중인 이 ‘위안부’ 귀국인 명부는 해방 이후에도 ‘위안부’ 피해자들이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2년 가까이 타향살이를 이어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국 상해는 필리핀과 타이완 등 세계 각지에서 흩어져 있던 ‘위안부’ 피해자들이 한국으로 향하기 위한 마지막 경유지였습니다. [김승은/민족문제연구소 실장 : 사지에 내몰린 상황인데, 서로가 도와서 귀국의 길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이 여성들에 대한 작은 기록이나마 남아 있다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독립기념관이 보유하고 있는 영상입니다. 고국에 돌아가지 못한 ‘위안부’ 피해자들이 상해에 있는 ‘한국부녀공제회’ 시설에서 집단 수용 생활을 했던 것으로 학계는 해석하고 있습니다. “갱생과 건전한 정조” 등을 교육한다는 명분으로 세워졌는데, 이 관리자는 상해 일대에서 위안소를 운영했던 업자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황선익/국민대

[YTN] 함세웅 신부 “극일? 집안 도둑 더 무서워, 우리 안에 내재된 아베 먼저 극복해야”

2019년 8월 17일 169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방송: FM 94.5 (18:10~20:00)■ 방송일: 2019년 8월 16일 (금요일)■ 대담: 함세웅 신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함세웅 신부 “극일? 집안 도둑 더 무서워, 우리 안에 내재된 아베 먼저 극복해야” – 광복절 경축사, 도덕적으로 크게 절제한 발언… 아주 균형 있었다– 반일은 부정적 측면, 극일은 자기 결심과 수련의 표현– 때로는 집안의 도둑이 더 무섭다… 압에 극복 선결 과제는 우리 안의 친일 잔재 사고 바꿔드려야– 아베가 일본에만 있는 것 아니라 우리 안에 내재, 한국적 아베 극복해야– 이영훈 교수, 이런 분ㄷ르도 치유하고 껴안고 함께 손잡고 나아가야– 참된 보수는 민족적 가치 보존하고 지키는 것– 자유총연맹, 연설 다음 날 책임있는 간부들 너무 좋았다고 전해– 3.1혁명 정신 연장, 임시정부 확인, 공동체 위한 헌신과 다짐이 우리 시대정신– 김워봉, 제3지대에서 독립 정신 실현했던 분, 통일 열망하셨던 분– 박삼득, 경직된 군사 문화가 민주주의 시대 이끌 수는 없다 ◇ 앵커 이동형(이하 이동형)>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어제, 광복절 경축사의 가장 핵심적인 문구였습니다. ‘극일’ 의지와 함께 ‘평화경제’도 강조했는데요. 물론 아직은 먼 얘기 같습니다. 늘 또 발사체를 쏜 북한의 손을 잡고, 일본을 넘어서기 위한 그 과정이 결코 녹록치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흔들리지 않는 나라’가 되기

[프레시안] 온가족 日강제동원 피해자 “사실 미안해요, 우리 때문에”

2019년 8월 17일 101

‘해방 74년 강제동원 문제의 어제, 오늘, 내일 김정주 할머니(88)가 일본에 간 건 13살 때였다. 한 해 먼저 일본에 간 언니와 함께 일본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일본인 선생님의 권유 때문이었다. 일본에 도착했을 때 할머니를 기다리던 건 언니가 아니라 군복 한 벌이었다. 할머니는 그렇게 도야마의 후지코시 강재공장으로 보내졌다. 나이도 어렸고 키도 작았던 김정주 할머니는 사과 궤짝 두 개를 놓고 그 위에 올라서서 하루 종일 쇳덩어리를 깎았다. 한참 후에야 그때 만들던 것이 비행기 발통이라는 걸 알았다. 노예처럼 일만했다. 하도 배를 곯아서 머리카락이 빠질 정도였다. “신발을 벗고 잔 적이 없어요. 언제 공습이 있을지 모르니까. 공습이 시작되면 도망갔다가 새벽에 기숙사로 돌아오는데, 오는 길에 죽은 사람을 보기도 했어요. 저렇게 처참하게 죽는구나, 우리도 언제 저렇게 죽을지 모르는구나 생각하면서 살았어요.” 해방된 줄도 모르고 한국에 돌아갈 땐 맡겨 놓은 돈도, 옷 보따리도 아무것도 챙기지 못했다. 고향인 순천으로 돌아와 보니 아버지는 징용에 갔다 왔고, 일본에서 공부한다던 언니는 나고야의 미쓰비시 중공업 공장에 갔다 왔다고 했다. 다시 만난 언니의 손가락 끝은 잘려 있었다. 김정주 할머니의 언니 김성주 할머니(90)는 지난해 대법원에서 강제동원 피해를 확정 받았다. 강제동원, 해결되지 못한 문제 지난 14일, 조계사 국제회의장에서 일제 강제동원 문제 해결을 주제로 한 ‘해방 74년 강제동원 문제의 어제, 오늘, 내일’이라는 국제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는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KBS] 90 넘은 징용피해자들, 日대사관에서 “아베는 사과하라!”

2019년 8월 17일 79

[앵커] 우리 시민들이 궂은 날씨에도 다시한번 일본의 사죄를 촉구했습니다. 강제 동원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에는 구십이 넘은 고령의 피해자들도 직접 나왔습니다. 강푸른 기자입니다. [리포트] [“무엇이 두려운가, 일본 정부는 사죄하라!”] 일본대사관을 마주하고 선 90대의 두 노인.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와 양금덕 할머니입니다. [“하루 속히 사죄하라! 양금덕이가 왔다!”] 일본의 사죄를 촉구하는 만 6천여 명의 서명을 전하러 빗속을 뚫고서 30분을 걸어왔습니다. 하지만 대사관 측은 ‘공휴일이라 직원이 없다’며 문조차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앞서 열린 집회에서도 피해자들은 직접 겪은 일제의 만행을 생생히 증언했습니다. [양금덕/강제 동원 피해자 : “(일본 미쓰비시 공장에서) 아주 생전에 없는 고생을 다하고 왔습니다. 화장실에서 조금만 늦게 와도 어디서 놀다 왔느냐고 발로 차고 때리고…”] 궂은 날씨에 모인 2천 여 명의 시민들도 힘을 보탰습니다. [이연희/겨레하나 사무총장 : “광복 74주년이 될 때까지 한번도 일본은 진심으로 사죄·배상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강제 동원 피해자분들과 손잡고 끝까지 싸우자는 의미에서…”] 이춘식 할아버지는 ‘목이 메어 말을 못 잇겠다’며 시민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이춘식/강제 동원 피해자 : “눈물 납니다. 그때 가서 고생한 것이 원통하기만 했는데… 대단히 감사합니다.”] 지난해 10월, 강제 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우리 법원의 배상 확정 판결 이후 처음 맞는 광복절, 고령이 된 피해자들의 손을 잡은 시민들은 일본 아베 정부에 맞서 끝까지 싸우겠다고 밝혔습니다. KBS 뉴스 강푸른입니다. 강푸른 기자 (strongblue@kbs.co.kr)

[정책브리핑] 식민지역사박물관서 되새기는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2019년 8월 17일 98

올해는 특별한 해다.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로 역사를 제대로 알고자 하는 열망들이 각계 각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제74주년 광복절 역시 이러한 사회적 상황 가운데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다짐했다. 아무도 흔들 수없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 갖춰야 할 여러 항목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우리 역사의 제대로 된 진실을 올바르게 알아야 한다는 것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분위기에 힘입어 일본군 ‘위안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이 최근 잇달아 개봉했다. 영화 ‘김복동’과 ‘주전장’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과 해야 할 숙제를 알려 주었다. 영화 ‘주전장’은 일본열도를 뒤흔든 그들이 숨기고 싶어 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로 지난 7월 25일 개봉했다. 주전장은 일본계 미국인 미키 데자키 감독이 철저하게 제3자의 입장에서 사실만을 다룬 내용이다. 한국과 미국, 일본을 다니며 3년 동안 모은 내용과 추적한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영화는 ‘위안부’ 역사를 덮고자 하는 일본 아베 정권의 놀랍도록 위협적인 역사 왜곡의 수위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심각함을 체감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시점에서 일제 식민지의 역사를 재조명해볼 필요성이 느껴졌다. 작년에 문을 연 서울 용산구에 있는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일본 제국주의 침탈의 역사와 그에 부역한 친일파들의 죄상, 독립운동가들의 항일투쟁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는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 역사박물관이다. 박물관 조성에 있어서

[한겨레] “포기하지 않아야 이긴다“…‘강제동원 피해자 유족’과 일본 시민단체 한 목소리

2019년 8월 16일 96

야스쿠니신사 합사 피해자 유족 다룬 영화〈안녕, 사요나라〉15일 유족과 일본 시민단체 모여 관람 뒤 ‘관객과의 대화’“최근 일본의 경제보복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1944년 2월, 강화도에 살던 이희자(76)씨의 아버지는 일본군에 강제동원됐다. 이씨가 갓 돌을 지날 무렵이었다. “빨리 돌아오겠다”며 집을 나선 아버지의 소식은 해방 뒤에도 들려오지 않았다. ‘태평양전쟁피해자유족회’ 활동을 하며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헤맨 이씨는 1997년에서야 아버지가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사실을 알아냈다. 강제동원 피해자인 아버지가 일본 천황을 위해 목숨 바친 ‘신’으로 모셔졌다는 사실에 이씨는 분노했다. 그로부터 23년 뒤인 현재, 이씨는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보추협) 공동 대표가 돼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15일 오후 2시께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야스쿠니 신사에 묻힌 이씨 아버지 위패의 합사 취하 소송을 다룬 영화 상영회가 열렸다. 광복절을 맞아 박물관에 온 시민 20여명이 상영회를 찾았다. 식민지역사박물 영화의 주인공인 이씨와, 이씨와 함께 일본에서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온 야노 히데키(69) 일본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사무국장이 관객과의 대화를 위해 자리했다. 영화 는 야스쿠니 신사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아버지의 야스쿠니 신사 합사 취하 소송을 하고 있는 이씨와 피해자들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이씨를 포함한 유족들과 피해자들은 2001년, 2003년, 2013년 일본 법원에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신사를 상대로 무단 합사를 철폐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피해자들이 소송을 제기하면 돈 문제로만 보는 것 같다”며 위자료는

[뉴스프리존] 독립운동가에게 바치는 시인 50인의 헌시

2019년 8월 16일 104

조선반도 50명의 독립운동가에게 바치는 참 된 자주독립 평화세상을 바라는 시인의 노래 [뉴스프리존=문해청 기자]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 문학평론가)는 15일 미완의 광복, 해방 광복절 74주년을 맞아 『독립운동의 접두사』(민족문학연구회 엮음)를 ‘독립운동가 기림 시선 1’로 출간했다. 이날 ‘독립운동가 기림 시선 1’의 출간은 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생명을 바쳤던 독립운동가를 호명하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그들의 귀한 행적과 정신을 되살리기 위한 시창작으로 밝혔다. 최근 일본의 경제전쟁과 각종 망언이 넘쳐나는 2019년 오늘, 이 시집의 메시지는 과거의 회고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임을 인식시켜주는 ‘독립운동가 기림 시선 1’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아래의 좌측은 독립운동가이고 우측은 독립운동가의 삶을 재조명하여 시창작하고 참여한 시인이다. 강주룡 _ 유순예 / 권동진 _ 봉윤숙 / 권오설 _ 임성용 / 김규식 _ 박정애 / 김동삼 _ 김명수 / 김마리아 _ 박선욱 / 김상옥 _ 조미희 / 김원봉 _ 김이하 / 김좌진 _ 정세훈 / 김향화 _ 김윤환 / 나운규 _ 장우원 / 나 철 _ 백무산 / 남자현 _ 양정자 / 박차정 _ 이지호 / 방정환 _ 박상률 / 백정기 _ 백남이 / 손병희 _ 나해철 / 신돌석 _ 권혁소 / 신채호 _ 안명옥 / 안경신 _ 천수호 / 안중근 _ 정원도 / 안창호 _ 김창규 / 여운형 _ 권서각 / 윤동주 _ 최두석 /

[내가역사의증인이다] 13 – 여성 광복군, 독립운동가 故 지복영 선생

2019년 8월 15일 239

※관련영상 [내가역사의증인이다] 12.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이희자 “김학순 할머니 이야기” [내가역사의증인이다] 11. 일본제철 재판 원고 故 김규수 할아버지 [내가역사의증인이다] 10. 야하타 제철소 노무동원 故 주석봉 할아버지 [내가역사의증인이다] 9. 학도특별지원병 故 정기영 할아버지 [내가역사의증인이다] 8. 조선여자근로정신대 故 유찬이 할머니 [내가역사의증인이다] 7. 일본제철 강제동원 피해자 故 여운택 할아버지 [내가역사의증인이다] 6. 하이난도 강제동원 피해자 故 고복남 할아버지 [내가역사의증인이다] 5. 일본제철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 [내가역사의증인이다] 4. 일본군 ‘위안부’ 故 김화선 할머니 [내가역사의증인이다] 3. 포로감시원 강제동원 피해자 故 오행석 할아버지 [내가역사의증인이다] 2. 미쓰비시탄광 강제동원 피해자 故 임재훈 할아버지 [내가역사의증인이다] 1. 일본제철 강제동원 피해자 재판투쟁의 기록 민족문제연구소, 식민지역사박물관과 함께하는 역사의증인 프로젝트! 강제동원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기억하겠습니다. 강제동원 피해자와 함께 하겠습니다. 평화를 지키는 세계시민과 연대하겠습니다. 역사의 증인이 되겠습니다. #강제징용 #내가역사의증인이다 #역사의증인 #기억 #공감과연대 #withyou #youareawitness ☞ ‘역사의증인’ 메인페이지 http://www.minjok.or.kr/youtube.html ☞ ‘역사의증인’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useumoch ☞ ‘역사의증인’ 유튜브 https://bit.ly/2l5LOFj ☞ ‘역사의증인’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museumo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