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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사람이길 거부한 존재 폭로…‘친일인명사전’ 읽으며 써내려가”

2026년 7월 13일 279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 묻는 기담집 ‘인비인’ 펴낸 성해나 작가 “수많은 이가 지켜온 기반 흔들려 역사 청산이 제대로 안 이뤄진 탓 불의에 맞서는 것은 작가의 사명” 전작 ‘혼모노’ 40만부 이상 판매 한국 문학계의 차세대 주자 주목 차기작 장편소설 9월 출간 예정 ‘소설가 성해나의 기담집.’ 최근 출간된 소설집 <인비인>(한겨레출판)은 이 짧은 설명으로 소개가 가능하다. 지난해 출간돼 40만부 이상 판매된 <혼모노>로 한국 문학계의 차세대 주자로 이름을 올린 성해나의 신작인데, 게다가 기담이라니. 새롭고 낯설면서도 시대의 단면을 포착한 소설을 원하는 젊은 독자들의 관심을 비켜 나가기 어려워 보인다. 무엇이 작가를 기묘한 세계로 이끌었는지 최근 서면 인터뷰를 통해 들었다. ‘인비인’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사람이 아닌 것, 혹은 사람이어야 마땅하나 사람이기를 스스로 멈춘 존재를 뜻한다. 책에는 이와 같은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 9편이 실렸다. 일제의 잔재를 다룬 소설이 여럿 눈에 띈다. 표제작 ‘인비인’은 731부대의 생체실험에 가담했던 한 노인과 관련한 이야기를 다룬다. 책의 문을 여는 첫 소설인 ‘벚나무로 짠 5자 너비의 책상’에는 친일 후손이 물려받는 선대의 책상이, ‘소돔의 의로운 혈육들’에는 친일 유물이 소재로 쓰인다. 작가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행한 <친일인명사전>을 소설 집필 당시에도 읽었고, 지금도 읽는다고 했다. “뉴라이트나 동북공정 등 역사 왜곡을 통해 수많은 이가 지켜온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에 탄식할 때도 많은데, 이는 제대로 된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발생한

[머니투데이] 40cm 방망이로 폭행, 숨지게 했는데…”감옥 보내지 마” 구제 운동, 왜[뉴스속오늘]

2026년 7월 10일 319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1년 전인 지난해 7월 10일 백범 김구 암살범을 처단한 박기서씨가 향년 76세로 사망했다. 고인은 47세이던 1996년 10월 안두희 집에 찾아가 직접 만든 ‘정의봉'(正義棒)으로 그를 구타해 사망케 했다. 육군 장교였던 안두희는 1949년 6월 독립유공자 김구를 권총으로 살해한 인물이다. 안두희는 체포된 후 조사 과정에서 끝까지 범행 동기를 밝히지 않았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가 징역 15년으로 감형된 안두희는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자 잔형을 면제받았다. 박씨가 세상을 떠난 뒤 민족문제연구소는 “우리 시대의 의인, 21세기 독립군 박기서 선생께서 별세했다”며 “김구 선생 곁으로 가시는 길에 깊은 애도와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11년간 가슴 속에 품고 있던 결심을 실행한 날 1985년 우연히 ‘백범일지’를 접하게 된 박씨는 평생을 독립운동에 매진한 백범 김구를 진심으로 존경해 왔다. 그런 김구를 암살한 안두희는 박씨에게 있어 처단해야 할 민족반역자였다. 하지만 안두희는 실질적인 법적 처벌을 받지 않은 채 평범한 이들과 같은 노년을 보내고 있었다. 가슴 속에 늘 안두희를 향한 분노를 가지고 있었던 박씨는 그의 주거지를 알아낸 뒤 직접 처단에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박씨는 1996년 10월 23일 오전 5시30분쯤 인천 중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 들어갔다. 비장한 표정의 박씨 허리춤에는 길이 약 40㎝ 나무 방망이가 걸려 있었다. 방망이에는 정의봉이란 글씨가 적혀 있었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6시간가량을 기다린 박씨는 안두희 동거인이 집을

[보도자료] 제4회 민연 포럼 혐오와 차별에 맞서 싸우는 작가 ‘야스다 고이치’ 초청 강연

2026년 7월 9일 177

☞ 다운로드: [보도자료] 제4회 민연 포럼 혐오와 차별에 맞서 싸우는 작가 ‘야스다 고이치’ 초청 강연 민족문제연구소와 포럼 진실과 정의는 오는 7월 10일(금) 오후 7시, ‘제4회 민연 포럼’을 개최합니다. 이번 포럼은 ‘학살과 차별의 현장을 가다—혐오는 일본을 어떻게 망가뜨렸나’라는 주제로, 일본 사회 내 혐오 발언(헤이트 스피치)과 차별 문제를 집중적으로 조명할 예정입니다. 이번 포럼의 강사 야스다 고이치(安⽥ 浩⼀)는 일본의 혐오와 차별에 맞서 싸우는 저명한 논픽션 작가입니다. 그는 『주간보석』, 『선데이 마이니치』 등 주간지 기자를 거쳐 현재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일본 사회의 혐오 발언과 외국인 노동자 문제 등을 집요하게 추적해 온 전문가입니다. 그는 그동안의 취재를 바탕으로 다수의 저서를 집필하여 평단과 독자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주요 수상 이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34회 고단샤 논픽션상: 『넷과 애국(ネットと愛国)』 (2012년), 제46회 오야 소이치 논픽션상 (잡지 부문): 『르포 외국인 “예속” 노동자(ルポ外国⼈『隷属』労働者)』 (2015년), 마이니치 출판문화상 특별상 및 JCJ(일본저널리스트회의)상 대상: 『지진과 학살 1923-2024(地震と虐殺1923-2024)』 (2025년) 이 밖에도 그는 『”우익”의 전후사』, 『헤이트 스피치』, 『단지와 이민』 등 다수의 저서를 통해 오늘날 일본 사회의 혐오와 차별의 실태를 현장 취재를 통해 고발하고, 이것이 일본 사회에 어떤 파괴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깊이있게 살펴보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이 행사는 7월 10일(금) 오후 7시부터 ‘민족문제연구소 유튜브’ 채널을 통해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며, 누구나 참여하여 시청할 수 있습니다.

[JTBC] 유네스코 “부산서 사도광산 안건 심의”…한·일 결정문 초안 막판 협의 중

2026년 7월 9일 250

19~29 부산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 개최 일본, 사도광산 등재 뒤 ‘약속 미이행’ 결정문에 ‘약속 이행’ 명시될지 주목 오는 19일 한국 부산에서 열흘 동안 열리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사도광산 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한·일 양국이 결정문 초안을 놓고 협의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유네스코 대변인은 JTBC의 이메일 질의에 “일본의 세계유산 사도광산의 보존상태가 이번 세계유산위에서 정식 안건으로 심의될 예정”이라고 어제(6일) 답했습니다. “회의를 앞두고 관련 정보가 유네스코 홈페이지에 추가로 공개될 예정”이라고도 밝혔습니다. 사도광산이 48차 세계유산위원회 의제에 포함된 사실은 알려져 있었지만, 유네스코가 심의 여부를 공식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다만 통상 위원회가 열리기 전에 공개되는 결정문 초안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유네스코 측은 결정문 초안 공개 시점에 대해서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사도광산 안건은 오는 22~24일 사이 논의됩니다.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 한·일 정부는 초안의 내용과 문구 등을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협의가 마무리되는 대로 초안이 공개될 전망입니다. 관건은 초안에 일본 측에 강제동원 관련 이행 조치를 촉구하는 내용과 구속력 있는 모니터링 조건 등이 담길지입니다. 우리 정부가 어느 정도의 의지를 가지고 일본의 조치 이행을 촉구할지, 그런 노력이 결정문에 얼마나 반영될지도 핵심입니다. 외교부 “일본ㆍ유네스코 사무국에 입장 전달” 일본 에도시대 최대 금광인 사도광산은 1940년대 초반 태평양전쟁 당시 조선인 1500여명이 강제로 끌려가 구리 채굴 등에 투입된 곳입니다. 이 때문에 유네스코

[오마이뉴스] “‘인간 김철’의 모습을 기억 속에서 되살리다”

2026년 7월 6일 249

[현장] 4일 당산 김철 탄생 100주년 <내가 본 김철> 출판기념회 한국 사회민주주의의 선구자 당산(堂山) 김철(1926~1994)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내가 본 김철> 출판기념회가 지난 4일 오후 2시 30분 서울 종로구 창덕궁길 노무현시민센터 다목적홀 ‘가치하다’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당산의 차남 김한길 전 의원과 삼남 김누리 중앙대 교수를 비롯해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이종찬 광복회장(전 국가정보원장), 정대철 헌정회장, 안민석 경기도교육감,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 권영국 정의당 대표, 문국현 전 의원,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정범구 전 의원,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차광렬 차병원그룹 회장 등 내외빈 150여 명이 참석했다. 김철 선생과 같은 시대를 함께 걸어온 옛 동지들의 자제들과 안필수 통일사회당 위원장의 막내딸 안미숙 여사도 함께했다. 행사는 당산의 장손녀인 김날해 SBS Biz 보도국 산업1부장이 사회를 맡았다. 행사는 약 2시간 반에 걸쳐 진행됐다. “그의 삶은 시대와의 불화 그 자체였다” 권희경 사회민주주의청년연맹 준비위원장의 약력 소개에 이어 연단에 오른 홍을표 간행위원장(전 가천대 교수)은 당산의 어록으로 간행사를 열었다. “우리들은 이상 사회가 하루아침에 실현되리라고 환상을 품는 자가 아니다. (중략) 다만 주어진 조건 위에서 실현할 수 있는 한계까지 달성한다면 우리는 각기 자기 생애의 역사적 진실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홍 위원장은 “김철 선생의 삶을 돌아보고자 하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그가 살아온 시대를 먼저 살펴야 한다. 그의 삶은 시대가 빚은 것이고, 시대

[오마이뉴스] 방학진 “학생, 제복 시민, 공무원 등 역사체험 교육 필요”

2026년 7월 6일 186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처장, 내란청산 198차 촛불집회 발언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처장이 4일 오후 ‘내란청산 촉구, 198차 촛불집회’에서 리박스쿨 사태와 배재고 야구부 사건을 언급하며 “독립운동 유적지, 민주화운동 유적지 등 학생 역사체험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방학진 사무처장은 4일 오후 6시부터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내란청산-국민주권실현 촉구, 198차 촛불대행진’ 집회에 참석해 무대 발언을 했다. 방 사무처장은 “제가 여기 오기 전, 천안에 있는 ‘망향의 동산’ 묘지를 다녀왔다”며 “묘지에 위안부 할머니들이 안장돼 있다”고 밝힌 후 “김학순, 김복동, 이옥선 등 여러 위안부 할머니들이 안장된 곳”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대부분 국민들이 이곳을 잘 모르고 있고, 특히 충남지역에 살고 있는 학생과 교사들이 거의 방문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며 “이게 문제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로 현재 생존해 있는 분들이 딱 다섯 명이다. 평균 나이가 95세이다. 대한민국 독립운동가로서 서훈을 받은 분들이 1만 8000여명인데, 그중 생존한 분이 딱 네 분이다. 평균 나이 100세가 넘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재명 정부 안에서 위안부 할머니와 독립운동가들, 일제때 강제 징용피해자들이 모두 돌아가신다는 얘기이다. 역사의 증인들이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다. 이렇게 독립운동가 부재시대가 다가오고 있고, 피해자들의 부재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이 피해자들이 없으면 극우 일베들이 얼마나 더 활개를 칠까. 소름이 돋는다.” 이어 “이재명 국민주권정부는 이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며 “배재고 사태를 통해 일베들이 학생들에게 얼마나 침투했는지 우리가 낱낱이 알게 됐다.

[MBC] ‘역사’ 눈감은 국립묘지

2026년 7월 1일 293

■ 현충원에 묻힌 그들 1980년 5월 19일 광주. 탱크와 장갑차가 시내를 점령했고, 공수부대가 투입됐습니다. 무자비한 과잉진압에 분노한 시민들의 시위가 계속되던 그날 오후. 계엄군이 처음으로 총을 쐈습니다. 그때 총탄을 맞고 쓰러진 건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던 김영찬 씨였습니다. [김영찬/5·18 첫 발포 피해자] “(친구들이) ‘영찬아 빨리 와라. 무섭다’ 그러고 해서 알았다고 뛰어가는데 다시 한번 총소리가 따다다닥 나더라고요. 이렇게 뒤돌아보는데 아스팔트에서 불이 파바박 튀는 걸 봤어요. 그 순간 갑자기 하체 힘이 쭉 빠지는 거야.” 총탄은 손목과 하복부를 관통했습니다. 생사를 오가는 7번의 수술 끝에 살아남았지만, 46년째 극심한 후유층에 시달리며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김영찬/5·18 첫 발포 피해자]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개복을 해서 7번 수술을 한 거죠. 내 사지를 이렇게 침대 난간에 묶고 학교 친구들 불러서 한 10명이서 제 몸을 이렇게 누르고 입 틀어막고 막 생살을 이렇게 수술을 했어요.” 교복을 입은 김 씨에게 총을 쏜 건 장갑차에 타고 있던 11공수여단 소속 차정환 대위. 그는 닷새 뒤인 5월 24일, 광주에 투입된 군인들 간의 오인 사격으로 사망했습니다. 당시 정부는 차 대위에게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했는데, 공적 조서엔 오인 사격 사망이 아닌, “사태 진압을 선두에서 지휘하던 중 불의의 흉탄에 맞고 순직했다”고 돼 있습니다. 김영찬 씨에게 총을 쐈던 그는 현재 국립서울현충원에 묻혀있습니다. [김영찬/5·18 첫 발포 피해자] “힘들게 살다가 돌아가신 분들도 묘지에, 국립묘지에 못

민족사랑 2026년 6월호

2026년 6월 25일 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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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제주로 향한 4·3버스’ 국가폭력 상흔과 시대의 과제

2026년 6월 23일 199

민족문제연·제주다크투어가 기획한 ‘평화기행’ 독립운동가 김동삼 후손 김원일이 제안해 시작 학살의 현장에서 독립운동가 강태선 자택까지 경찰 총탄에 턱 잃은 진아영 할머니 삶터 숙연 역사 왜곡에 맞서는 민주시민 저항 정신 고취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몫이자, 기록하는 자의 책무다. 지난해 제주 4·3 학살의 책임자 중 한 명인 박진경 대령의 서훈 취소와 상훈법 개정을 요구하며 육지 전역을 누볐던 ‘육지로 가는 4·3 버스’가 이번에는 제주의 아픈 역사의 현장 속으로 향했다. ‘제주로 향한 4·3 버스’가 된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제주 4·3기념 사업위원회의 지원 아래, 일송 김동삼 독립운동가 기념사업회 회원들과 일반 시민 등 28명의 참가자는 제주다크투어의 해설과 함께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아픈 역사의 현장들을 밟았다. 이번 여정은 단순한 유적지 탐방을 넘어, 친일과 국가폭력으로 점철된 110여 년의 굴곡진 현대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엄숙한 연대의 현장이었다. ​■ 학살의 동굴과 통곡의 길…제주 전역에 새겨진 국가폭력의 흔적 ​답사단이 첫날 마주한 제주 하늘은 무거웠다. 제주 4·3 평화공원을 찾은 참가자들은 50여년 해원(解冤)되지 못한 채 구천을 떠돌던 희생자들의 넋을 위령하며 첫발을 디뎠다. 평화공원 전시실에서 당시의 참상을 전하는 해설이 이어지자, 곳곳에서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고 무자비한 국가권력의 학살 행위에 분노를 감추지 못하는 참가자들도 많았다. ​이어 발길이 닿은 곳은 조천읍 선흘리의 목시물굴이었다. 1948년 11월, 토벌대의 초토화 작전을 피해 도틀굴과 목시물굴로 숨어들었던 주민들의 운명은 참혹했다. 협박과 고문으로 위치를

[주간경향] 6·25 전쟁 때 강원 평강에 원폭 6~10발 투하…미국 극비문서에 담긴 ‘소름 돋는’ 구상 [이기환의 사래자(思來者)

2026년 6월 19일 250

“현재의 군사적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조처를 하겠다.” 1950년 11월30일이었다. 기자회견에 나선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재임 1945년 4월12~1953년 1월20일)이 아주 민감한 발언을 터뜨렸다. 기자들이 “그 모든 조치에 핵무기(원자탄)도 포함되느냐”고 계속 묻자 트루먼은 “핵무기 사용에도 항상 적극적인 고려가 있었다”고 답했다. 말 그대로 핵폭탄 발언이었다. 그의 발언은 유럽을 비롯한 국제 사회에 벌집을 쑤셔놓았다. 동맹국들은 ‘충격과 분노(Shock and outrage)’라는 표현을 쓰면서 미국을 비난했다. 반대한 이유는 세 가지였다. 우선 자칫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련이 원자탄으로 대응하면 어쩌냐는 것이었다. 또 ‘한국에서 원자탄 사용’은 유색인종에 대해 인종차별주의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이 원자탄을 사용하더라도 중국·소련을 굴복시킬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었다. 이러한 동맹국들의 ‘핵무기 절대 불가’ 여론을 등에 업은 클레멘트 애틀리 영국 총리가 서둘러 트루먼과의 회담을 성사시켰다. 마침내 12월4일 열린 애틀리-트루먼의 역사적인 회담은 “핵무기가 사용될 작전사항이라면 언제든 영국 총리에게 미리 알린다”는 구두합의로 마무리됐다. 이로써 트루먼의 원자폭탄 사용발언은 10일 만에 일단락된 것 같았다. 원자폭탄의 유혹 하지만 이것이 처음과 끝이 아니었다. 미국은 전쟁을 한 방에 끝낼 수 있는 원자폭탄의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연구에 따르면 미국은 모두 5차례에 걸쳐 핵무기(원자폭탄) 카드를 꺼내려 했다. 첫 번째는 북한군이 기습 남침했을 때(1950년 6~9월)였다. 트루먼 행정부와 군부는 개전초부터 핵무기 사용을 고려했다. 특히 더글라스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은 합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