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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오마이뉴스] 대전현충원 걸으며 듣는 네 가지 이야기

2025년 11월 25일 178

제8회 이야기가 있는 현충원 평화둘레길 걷기 대전자주통일평화연대, 현충원평화해설단 등 대전지역 단체들은 11월 23일(일) 오후 2시, 대전현충원에서 ‘이야기가 있는 현충원 평화둘레길 걷기’ 행사를 열고, 애국지사들의 삶을 돌아보며 나라 사랑의 마음과 평화통일 의식을 높였다. 지난 2018년 처음 시작된 이 행사는 올해로 8회를 맞았고, 올해 행사는 대전자주통일평화연대, 민족문제연구소대전지역위원회, 유성평화너머,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대전모임, 현충원평화해설단, 진보당유성구위원회가 함께 주최했다. 주최단체를 대표해 인사말에 나선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대전모임 진경모 운영위원은 “현충원에는 우리 역사에 진짜 잊어서는 안 될 훌륭한 분들이 많이 있다”며, “오늘 행사에 참석한 여러분들이 많이 배워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성평화너머 추도엽 공동대표는 “해방 이후 올바른 청산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제강점기에 친일파로 또는 친일 경찰로 또는 일본군으로 복무했던 사람들이 한국전쟁 때는 신분을 세탁해서 한국군으로 참전을 해서 훈장을 받고 또 사후에는 국립묘지에 모셔져 독립운동가와 함께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대전현충원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며 국립묘지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걷기 대회는 ‘역사 정의 실현’, ‘대전현충원과 서울의 봄’, ‘끝나지 않은 독립운동’,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 이들’ 코스로 4가지 코스가 준비되었고, 참가자들은 그중 한 곳을 선택해 걸었다. 각각의 코스는 1.5km에서 2.5km가량 걸으며 해설사가 동행해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역사 정의 실현’ 코스에서는 조선민족혁명당 사건으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옥고를 치른 이재상(독립유공자1-1-497)과 그를 재판했던 조선총독부 판사 민복기(국가사회공헌자-18)가 불편하게 공존하고 있는 현실을 목도할 수 있었다. ‘대전현충원과 서울의 봄’ 코스는 12.12군사쿠데타 당시 반란군

[한겨레] “두개골 깨져 숨져” 증언에도…‘사도광산 조선인’ 강제동원 부인 여전

2025년 11월 21일 201

“한반도 출신 사도광산 노동자가 위험한 갱내 작업에 종사한 비율이 높았음을 나타내는 기록이 남아 있다.” 21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 아이카와향토박물관 별관 2층. 조선인 노동자 관련 전시실에선 한국어와 일본어를 포함한 5개 나라 음성으로 이런 무미건조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조선인들의 ‘강제노동’ 관련 기록은 없다. 지난해에 이어 일본 정부가 보였던 태도와 마찬가지로 전시실도 지난 1년간 달라진 게 없었다. 7평(23㎡) 남짓 공간에는 “(조선인을 포함한) ‘징용’은 법령에 기반한 것”이라는 안내 문구가 담겼다. 조선인들이 한달 평균 28일 일했고, 처우개선 쟁의를 벌인 일, 사다리 가설 작업 도중 사망 실태 등 가혹한 노동 환경 일부를 기록했지만, 끝내 강제동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전시관 한쪽 구석에는 어느 조선인 노동자의 나무 도시락통 하나가 말끔한 모습으로 놓여 있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 당시 “전체 역사를 알리겠다”고 했지만 강제동원 기록을 제외하는 꼼수로 대응하고 있다. 2022년 민족문제연구소와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가 낸 ‘사도광산과 조선인 강제노동’ 보고서에는 조선인 110여명의 기구한 사연들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갱내에서 떨어져 두개골이 깨지는 사고를 당했다.” 1941년 충남 청양군에서 사도섬에 끌려간 김주환은 이렇게 갱도 내에서 참혹하게 숨졌다. 그해 10월20일 오전 7시, 불과 25살 나이였다. 같은 해 사도섬에서 바위 깨는 작업에 투입된 노병구는 “갱도 안에선 추락·승강기·누전·발파사고로 사망한 사람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일본인 기숙사감의 말을 듣지 않으면 매를 맞아야 했다. 이기상은 31살 때 이곳

[시사IN] 장화 신고 누운 바닷속 유골 “한·일 정부 움직여야”

2025년 11월 20일 235

조세이 탄광 수몰사고 83년 만인 지난 8월, 바닷속에서 두개골 등 유골이 발견됐다. 일본의 시민단체가 잠수 조사를 벌인 결과다. 그러나 유골 수습 2개월이 지나도록 DNA 감정은 진전이 없다. 기적이 일어났다. 1942년 2월3일 일본 야마구치현의 해저 탄광인 ‘조세이 탄광’이 무너져내려 조선인 136명을 포함한 183명이 사망한 지 83년이 지난 2025년 8월25일, 그 탄광에서 일하다 숨진 노동자들의 것으로 보이는 대퇴골(허벅지뼈) 등 뼈 세 점이 바닷속에서 발견됐다. 다음 날인 8월26일에는 두개골이 나왔다. 일본의 시민단체 ‘조세이 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이하 ‘새기는 모임’)이 크라우드펀딩으로 자금을 모아 옛 갱도를 찾고, 잠수부들을 투입한 결과다. 같은 장소에서 유골 4구가 추가로 발견됨에 따라, ‘새기는 모임’은 내년 2월 일본인 잠수부 이사지 요시타카 씨와 세계 각지의 잠수부 6명을 투입해 또다시 잠수 조사에 나설 예정이다. 이를 포함해 내년의 유골 수습 프로젝트에 필요한 비용 3500만 엔(약 3억2784만원)을 확보하기 위해 모금을 진행 중이다(chouseitankou.com/한글-페이지).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에도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유골을 유족들에게 돌려주기 위해서는 DNA 감정이 필요하다. ‘새기는 모임’은 한국인 희생자 25명과 일본인 희생자 4명에 해당하는 DNA 정보를 일본 경찰청에 제출했다. 그러나 유골 수습 두 달이 지나도록 진전이 없다고 한다. 감정을 일본 정부가 할지 한국 정부가 할지, 어떤 방식일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면담차 한국을 방문한 ‘새기는 모임’의 이노우에 요코 공동대표(75)와 우에다

[노컷뉴스] ‘학원침투 간첩 조작 사건’ 50주년…국가폭력 피해자 행사 열린다

2025년 11월 19일 269

11·22 사건…박정희 유신정권 국가폭력 사례 유신정권의 ’11·22 학원 침투 간첩단 검거’ 사건 50주년을 맞아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투쟁을 기리는 행사가 열린다. 한일 과거사 청산 문제를 연구하는 민족문제연구소와 국가폭력생존자회 등은 오는 21일과 22일 ‘국가폭력 피해자와 함께하는 치유와 평화의 한마당’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오는 21일에는 오후 3시 서울 종로구에 있는 향린교회에서 11·22사건 국가폭력 피해당사자와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토크쇼가 열릴 예정이다. 22일 오후 3시에는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피해자들의 인권회복 투쟁을 위로하는 콘서트가 열린다. 11·22 사건(재일교포유학생 간첩 조작 사건)은 박정희 유신정권의 대표적인 국가 폭력 사례다. 1975년 11월 22일 당시 중앙정보부는 ‘북괴의 지령으로 국내에 잠입한 간첩 일당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으로 재일동포 유학생 17명과 서울의대·한신대·부산대 대학생들이 간첩 누명을 쓰고 대규모로 옥살이를 했다. 이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재심 권고로 당시 구속됐던 피해자들이 줄줄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군부독재의 국가폭력에 의해 삶과 청춘을 유린당한 모든 국가폭력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기념행사”라며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화는 이들의 희생에 빚지고 있음을 기억하자는 취지”라고 밝혔다. <2025-11-18> 노컷뉴스 ☞기사원문: ‘학원침투 간첩 조작 사건’ 50주년…국가폭력 피해자 행사 열린다 ※관련기사 ☞한겨레: 유신 국가 폭력에 휘말린 재일한국인…‘11·22사건’ 기념 행사

[오마이뉴스] “을사늑약 120년, 일본 역사부정-군국주의 부활 규탄”

2025년 11월 18일 209

[현장]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국가 책임 회피 비판… “한일-한미일 군사협력 중단해야” 을사늑약 120주년을 맞아 시민사회단체들이 일본의 역사 부정과 군국주의를 규탄하고, 한국 정부에 과거사를 외면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을사늑약 120년, 역사정의와 평화 그리고 올바른 한일관계를 위한 각계 인사 기자회견’이 지난 17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렸다. 정의연대,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자유언론실천재단, 자주통일평화연대, 민족문제연구소 등 단체 대표들이 참석했다. 기자회견문에서 참가자들은 “다카이치 총리는 위안부 강제성 부정, 무라야마 담화 수정 주장,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극우 노선을 강화하고 있다”며 “일본 정부가 역사 왜곡과 국가 책임 회피를 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일본 총리가 공식 석상에서 대만 개입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매우 위험한 선례”라며 “군사대국화와 대만 군사 개입 야욕을 규탄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후쿠시마 오염수, 사도광산, 간토대학살, 재일 조선인 차별 등 핵심 이슈를 외면한 것은 역사 정의의 포기”라며 “정부의 과거사 외면 및 굴욕 외교”를 비판했다. 참가자들은 “한국 정부 또한 과거사를 외면하고 굴욕적인 외교를 이어가고 있다”며 “일본의 전쟁 가능성을 전제한 모든 군사협력, 한일·한미일 군사협력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발언에 나선 이나영 정의연대 이사장은 “을사늑약은 국제법상 명백히 무효이며,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강제동원, 학살, 성노예제 등 구조적 범죄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박석운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공동대표는 “을사늑약 120년, 두 번째 60갑자의 해를 맞아 반복되는 일본 군국주의의 어두운 흐름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보도자료] 아름답지만 슬픈, 그러나 희망을 놓지 않은 독립운동가의 발자취『김산 따라 아리랑 로드로』 출간

2025년 11월 18일 293

☞ 다운로드: [보도자료] 아름답지만 슬픈, 그러나 희망을 놓지 않은 독립운동가의 발자취『김산 따라 아리랑 로드로』 출간 [보도자료] 민족문제연구소는 11월 10일 김산 따라 아리랑로드로-혁명과 반혁명의 광둥 3년을 찾아서를 출간했다. 이 책은 아리랑 노래를 통해 널리 알려진 독립운동가 김산(金山, 장지락)의 햇수로 4년, 기간으로 만 3년간의 ‘광둥 시절’을 사건사적 배경과 전체 맥락을 실제와 최대한 가깝게 재구성하면서 순차대로 복원시켜 보려는 소박한 시도다. 이 책의 저자 김영범 대구대학교 명예교수는 의열단, 조선의용대 등 의열투쟁을 비롯한 독립운동사 연구에 독보적인 업적을 쌓아온 사회학자이다. 그는 민족문제연구소가 2020년부터 진행한 ‘아리랑 답사’ 심화작업의 하나로 진행된 ‘아리랑 로드’ 사전 답사에 참여하면서 이 책을 집필하기로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이 책의 1부. ‘김산과 광저우 봉기’는 김산의 ‘광둥 시절’의 배경이 되는 중국 국민혁명의 소용돌이 속 국공합작과 분열의 시기, 광저우 봉기와 의열단의 기의 가담에 대한 사건사적 배경과 아리랑 로드의 이야기를 엮어 김산의 행적을 자세히 다룬다. 2부. ‘100년 후의 옛길과 격정의 흔적들’에서 광저우 시내의 황포군관학교 유지와 광저우기의 기념관부터 시작해, 김산이 퇴각했던 화현(花縣), 룽먼현(龍門縣)을 거쳐 하이루펑의 펑파이 생가 그리고 최종 탈출지였던 산터우(汕頭)까지 이어지는 고난의 로드를 직접 추적한다. 저자는 답사를 마무리하며 ‘역사란 하나가 아니고 여러 겹의 것이며 언제나 그럴 수밖에 없음도 다시금 실감했다’고 소회를 남긴다. 이는 김산의 흔적을 쫓으며 현장에서 느낀 감회와 수많은 역사적 평가들이 겹쳐진 결과일 것이다. 김산의 ‘광둥

[새책소개] 『김산 따라 아리랑 로드로』

2025년 11월 12일 2432

바로가기 >>>☞ [도서구매]  [주요내용] 『김산 따라 아리랑 로드로 ― 혁명과 반혁명의 광둥 3년을 찾아서』 민족문제연구소는 11월 10일 『김산 따라 아리랑로드로-혁명과 반혁명의 광둥 3년을 찾아서』를 출간했다. 이 책은 아리랑 노래를 통해 널리 알려진 독립운동가 김산(金山, 장지락)의 햇수로 4년, 기간으로 만 3년간의 ‘광둥 시절’을 사건사적 배경과 전체 맥락을 실제와 최대한 가깝게 재구성하면서 순차대로 복원시켜 보려는 시도다. 제19회 임종국상 학술상 수상자인 김영범 대구대학교 명예교수는 의열단, 조선의용대 등 의열투쟁을 비롯한 독립운동사 연구에 독보적인 업적을 쌓아온 사회학자이다. 그는 민족문제연구소가 2020년부터 진행한 ‘아리랑 답사’ 심화작업의 하나로 진행된 ‘아리랑 로드’ 사전 답사에 참여하면서 이 책을 집필하기로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저자는 답사를 마무리하며 “역사란 하나가 아니고 여러 겹의 것이며 언제나 그럴 수밖에 없음도 다시금 실감했다”고 소회를 남긴다. 이는 김산의 흔적을 쫓으며 현장에서 느낀 감회와 수많은 역사적 평가들이 혼재된 결과일 것이다. 김산의 ‘광둥 시절’은 표면적으로 ‘패배’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김산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혁명적 낭만주의와 ‘패배’가 있었기에 조국 독립이라는 ‘승리’도 가능했다. 최근 들어 독립운동가 중 사회주의 계열 활동으로 인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이들이 재조명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김산에게 아리랑은 ‘비극의 상징이고 죽음의 노래이며, 아름답지만 슬픈 노래’였다. 전투에서 패하고 먹을 것을 찾아 헤맬 때 동지들과 부르던 것은 ‘패배의 노래’였지만, 절망의 심연에 빠져들 때 이 노래는 ‘희망의 숨구멍 같은 노래’였기 때문이다.

[광주일보] 이길 수도 질 수도 없었던…‘광주고보 야구사건’ 만화로 부활

2025년 11월 14일 230

송재영 작가, 1924년 ‘광주고보 vs 일본야구단’ 다룬 ‘볼셋!국용’ 출간 선수 연행 반발 동맹 휴학, ‘광주학생독립운동’ 촉발…크라우드펀딩 시작 “선동열, 이종범, 서재응, 김병현…. 이들을 배출한 야구 명문 광주제일고에 100여년 전 대한민국 역사를 바꾼 야구 경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1924년 일제강점기, 광주고등보통학교(광주고보·현 광주일고)와 일본인 야구단의 승부가 펼쳐졌다. 일장기와 태극기가 운동장에 나란히 걸렸다. 이 경기는 단순한 체육대회가 아니었다. 식민지 지배 아래 조선 학생들이 절대 질 수 없었던, 그러나 섣불리 이길 수도 없는 ‘두렵고도 위험한 경기’였다. 광주고보는 1-0으로 승리했고 운동장에는 마치 광복이 온 듯 “만세!”가 터져 나왔다고 전해진다. 당시 경기에서 승리의 순간은 소요로 번졌다. 일본팀 단장 안도 스스무가 경기 운영에 항의하며 폭력을 행사했고, 400여 명의 학생과 관중이 뒤엉키며 아수라장이 됐다. 경찰은 광주고보 선수 9명을 모두 연행했다. 불합리한 처분에 한국인 학생들은 3개월여간 동맹휴학으로 항거했다. 다수의 학생이 퇴학·무기정학 처분을 받았고, 이 흐름은 결국 1929년 독립운동의 분수령이 된 ‘광주학생독립운동’으로 이어졌다. ‘광주고보 야구사건’을 모티브로 광주의 역사와 항일정신을 되살린 만화 한 편이 최근 크라우드펀딩을 시작해 눈길을 끈다. 작가이자 문화기획자로 활동 중인 송재영(여·42)씨가 13일 플랫폼 ‘텀블벅’에서 만화책 ‘볼셋! 국용’ 프로젝트를 개시했다. 작품 속 줄거리는 이렇다. 왕년에 야구천재였지만 지금은 평범한 백수 아저씨가 된 ‘한국용’. 시한부 판정을 받은 어느 날 그의 머리 위로 붉은 야구공이 떨어지고, 정체불명의 혼령 ‘홍구신’과 함께 100년 전 조선으로

[경남도민일보] 진주중총동창회 ‘남인수’ 포함 음악회 비판

2025년 11월 12일 292

15일 진주중서 남인수 등 기리는 음악회 친일 인사 기리는 음악회 개최 비판받아 남인수 진주중 출신 여부도 불분명해 친일 행적으로 비판 받은 가수 남인수와 관련한 음악회 개최 논란이 진주에서 계속되고 있다. 최근 남인수가요제가 열린데 이어 진주중학교총동창회 주최로 남인수가 포함된 진주중 출신 음악가를 추모하는 음악회가 진주중학교에서 열릴 예정이다. 특히 남인수는 진주중 출신인지 여부조차 분명하지 않아 비판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진주중총동창회는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15일 오후 3시 진주중학교 강당에서 진주중 출신 음악가 ‘남인수, 이봉조, 이재호’를 기리는 음악회를 연다. 진주예총과 진주연예인협회가 공동으로 여는 이번 음악회에서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지역 가수들이 참여해 이들 음악가 노래를 연주하고 부를 예정이다. 진주중총동창회 측은 “남인수가 부른 ‘산유화’가 당시 활동했던 진주중 교사 출신인 작곡가 이재호 선생의 작품이었고 작곡가 이봉조 선생은 이재호 선생의 제자였다”라며 “이번 음악회는 진주가 낳은 음악가들의 예술적 유산을 기념하기 위한 자리”라고 밝혔다. 그러나 지역에서는 친일행적으로 비판 받는 남인수를 포함한 음악회를 학교에서 개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남인수는 진주중을 다녔다는 근거가 없어서 이번 음악회에 남인수를 포함시킨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있다. 남인수는 진주중 전신인 진주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학교에 입학하거나 다녔다는 학적부 등 기록은 전혀 없다.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백과’에서만 진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고 적혀 있을 뿐이다. 진주중총동창회 측은 남인수가 진주중을 다녔다는 확실한 증거를 내놓지 못했으며 객관적인 근거가 될 수

[남도일보] [광복 80주년 기획]광주전남 해외 항일 현장을 찾아서(12) 독립운동 유공자 발굴

2025년 11월 12일 231

‘후손 못 찾아’…서훈 미전수 광주·전남 독립유공자 296명 국외 활동 많아 후손 찾기 어려워 묘소 위치 확인 중 유공자도 441명 독립운동 인정받고도 행적 논란에 미서훈자 다수…장재성·이기홍 등 시·도, 독립유공자 후손 찾기 전개 전남, 미서훈자 2천584명 발굴해 1천103명 서훈 신청…32명 확정 “시간이 갈수록 발굴 어려워져” 광복 80주년을 맞아 광주와 전남이 지역 독립운동가를 찾기 위한 조사와 후손 연결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광주시는 올해 역사문화 프로젝트를 본격화했고, 전남도는 단계별 발굴·서훈 신청 사업으로 성과를 이어가고 있다. 독립운동가의 뜻은 1895년부터 1945년 8월 광복 이전까지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해 여러 가지 민족 운동을 전문적으로 하던 사람을 뜻한다. 10일 광주시·전라남도 등에 따르면 지난 8월 18일 기준 광주·전남지역 독립유공자(독립운동가)는 1천551명에 달한다. 그 중 전수자는 1천255명으로 미전수자는 296명이다. 미전수자는 ▲독립장 7명 ▲애국장 70명 ▲애족장 67명 ▲건국포장 25명 ▲대통령표창 127명이다. 300명에 가까운 광주·전남 출신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을 찾지 못해 서훈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광주는 포상자 126명 중 전수자 100명, 미전수자 26명이고 전남은 포상자 1천425명 중 전수자 1천155명, 미전수자 270명이다. 발굴인원과 서훈신청 인원이 다른 이유는 ‘서훈신청 요건’이 미충족됐기 때문이다. 다만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10일 기준 독립운동에 참여했지만 후손이 확인되지 않아 전수 못한 ‘독립유공자 후손찾기’ 대상은 289명이다. 같은 이유지만 ‘묘소 위치’ 등을 확인 해야 하는 독립 유공자도 441명이나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