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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민중의소리] 아베 주장 ‘터무니 없다’는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

2019년 8월 15일 119

“일본 가면 언니 만날 수 있다고 혀서, 일본인 선생님이 거짓말을 혀서, 순천서 기차 타고 후지코시로 갔습니다. 군복 한 벌, 모자 한 벌 받아서 공장에서 일했어요. 그때는 키가 적어서 사과 궤짝 두 개를 놓고 서서 쇳덩어리를 깎았어요. 밥도 너무 적게 줘서, 일본말로 ‘시루’(국)라고 하는디 된장국인디 파도 없고 무도 없고 맹물 된장국 한 가지에다가. 일허다가 중간에 화장실 가서 쬐끔 늦게 나오믄 일본 남자 반장들이 쫓아와서 뺨을 때렸어요. 그래도 우리는 30개면 30개 5시(퇴근 시간)까지 다 깎았어요” 89세 김정주 할머니는 74년 전 일을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 김 할머니는 근로정신대로 끌려간 언니를 볼 수 있다는 초등학교 교사의 꼬임에 넘어가 도야마현 후지코시 공장에서 근로정신대로 강제 동원됐다. 그는 후지코시에서 강압적이고 열악한 생활환경에서 강제노동, 폭격에 의한 위협에 시달리다가 광복 후 귀국했다.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를 인정하고, 일본 기업에 배상을 명령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여전히 투쟁 중이다. 과거 강제동원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일본 정부와 기업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이미 해결됐다’라며 ‘국제법에 비춰 있을 수 없는 판결’이라고 비난했다. 심지어 ‘경제 보복’으로 한국을 굴복시키려 했다. 일본 기업은 정부 뒤에 숨어 판결을 무시하고 있다. “제 일생을 망친 것은 일본 사람입니다. 아베가 테레비에 나올 때마다 ‘저 죽일 놈, 거짓말을 또 한다’고 해요. 아주 뵈기

[연합뉴스] [인터뷰]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광복절 의미, 통합·통일 다짐에 있어”

2019년 8월 14일 126

“1945년 8·15 광복은 그냥 남이 준 선물 아냐, 독립운동의 결과” “일본의 경제침략, 경제자립·기술독립은 새로운 독립운동”“독립운동가의 후손인 나에게 역사운동은 제2의 독립운동” (천안=연합뉴스) 이은중 기자 = “2019년 광복절의 의미는 우리가 광복 이후 이뤄온 민주주의의 꿈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에게 남은 과제인 민족통합, 평화통일 의지를 다짐하는 데 있습니다” ‘민족혼의 산실’인 독립기념관 이준식(63) 관장은 14일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올해 광복 74주년의 의미를 이같이 밝혔다. 지청천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의 외손자이기도 한 이 관장은 “1945년 8월의 해방은 그냥 남이 준 선물이 아니었고, 독립운동가들이 벌인 독립운동의 결과”라고 힘줘 말했다. 그는 “최근 일본의 경제침략에 맞서 경제자립·기술독립을 외치는 우리의 모든 행동은 21세기의 새로운 독립운동”이라고 피력했다. 다음은 이 관장과 일문일답. — 광복 74주년의 의미는. ▲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들이 목숨까지 바쳐가며 이루려고 했던 조국 광복이란 단순히 일제 식민지배에서 벗어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광복’이나 ‘독립’이란 말속에는 일제 식민지배에서 벗어나서 국민이 주권을 갖는 민주공화국을 만들고, 그 민주공화국 안에서 더 많은 사람이 자유와 평등을 누려야 한다는 꿈도 담겨 있다. 그렇지만 광복과 동시에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38선이 그어지면서 한반도에는 분단체제가 들어섰다. 광복 이전에 우리는 민족이 하나가 되는 새로운 나라 건설이라는 꿈을 갖고 있었는데 그 꿈이 좌절된 거다. 분단은 남북 모두에서 완전한 자주독립을 이루는 데 결정적인 장애가 됐다.

[KBS] [시사기획 창] 밀정 1부 – 배신의 기록

2019년 8월 14일 921

▶ KBS 탐사보도부, 일제강점기 ‘밀정’ 추적▶ 일본·중국 기밀문서 5만 장 분석▶ 밀정 혐의자 895명 실명 공개…독립유공자도 포함▶ “청산리 전투 김좌진 장군의 비서는 밀정이었다”▶ ‘안중근 거사 동지’ 우덕순의 이상 행적 포착 올해 3.1운동·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KBS 탐사보도부가 ‘독립운동의 보이지 않는 적’이었던 밀정을 추적했다. 지난 8개월 동안의 추적이었다. 일본 외무성과 방위성 기밀문서, 헌정자료실에 보관된 각종 서신, 중국 당국이 생산한 공문서 등 5만 장의 문서를 입수해 분석했다. KBS 탐사보도부는 △895명 이름 전체와 △이들 가운데 독립유공자가 된 이는 누군지 △또 이들의 밀고 내용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8월 13일과 20일 방송되는 ‘밀정 2부작'(밤 10시, KBS1TV)에서 나눠 공개한다. <2019-08-13> KBS NEWS  ☞기사원문: [시사기획 창]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특집 – 밀정

[한겨레TV] [이슈인 #12] 2019년에 다시 짚는, 친일파란 무엇인가

2019년 8월 12일 240

박수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처장, ‘한겨레 라이브’에 출연 12일 방송된 ‘한겨레 라이브’의 특별인터뷰 코너 ‘이슈인’에서는 친일인명사전 편찬실장을 지낸 박수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처장이 출연했다. 오늘 방송에선 친일인명사전 편찬작업을 할 때 인물 선정 기준과 현 시점에서 친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등을 살펴보았다. 이규호 피디 pd295@hani.co.kr <2019-08-12> 한겨레TV  ☞기사원문: [이슈인 #12] 2019년에 다시 짚는, 친일파란 무엇인가

[뉴스1] ‘일제잔재 없앤다’…민족문학연구회 15일 창립

2019년 8월 14일 169

친일문인 기념사업 철폐운동 전개…’독립운동가 기림 시선’ 간행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민족문학에 활력을 더하기 위한 민족문학연구회가 창립된다. 민족문학연구회 창립준비위원회(위원장 맹문재)는 오는 15일 오후 3시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창립식을 연다고 12일 밝혔다. 민족문학연구회는 주요사업으로 한국근현대 민족문학에 대한 조사·연구와 자료발굴, 일제강점기의 항일·친일문학 비교 연구, 분단시대의 남·북·해외 민족문학 조사·연구, 통일시대를 예비하는 창작활동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특히 민족문학연구회는 문학계의 일제잔재와 친일문인 기념사업 철폐운동을 전개해 역사정의 실현의 길에 기여한다는 목표를 삼았다. 연구회는 창립식에 앞서 이날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 효창원 백범 김구 묘소에서 헌정식을 가진다. 또한 시인 50명이 창작한 독립투사 50분에 대한 헌시가 실린 ‘독립운동가 기림 시선’ 1권을 발간한다. 민족문학연구회는 앞으로도 ‘독립운동가 기림 시선’을 연차적으로 계속 간행할 예정이다. lgirim@ <2019-08-12> 뉴스1  기사원문: ‘일제잔재 없앤다’…민족문학연구회 15일 창립  ※관련기사  ☞연합뉴스: 민족문학연구회 발족..15일 서대문형무소서 창립식  ☞KBS: “민족문학에 활력을”…민족문학연구회 15일 창립식  ☞국민일보: 3.1혁명 100돌 민족문학연구회 창립 문학인 150여명 15일 총회  ☞아주경제: 15일 민족문학연구회 발족

[한겨레21] “피해자들은 아직 해방을 맞지 못했다”

2019년 8월 12일 207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를 제대로 된 국가라고 말할 수 있나” “대법원 판결이 이런 파문을 가져올 줄은 생각 못했죠. 하지만 저희 피해자들 입장은 언제나 같아요. 할아버지(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생전에 제게 항상 하셨던 말씀이 ‘나는 죽어도 너는 포기하지 마라. 우리 죽는다고 재판 끝내지 말고 끝까지 가라’였어요. 할아버지 말씀대로 저희는 포기하지 않고 있어요. 돌아가신 분들이 생전에 일본의 진정한 사죄를 받고 명예회복을 하셨다면 ‘해방된 나라에서 사는 게 맞구나’ 하며 눈물을 흘리셨을 거예요. 여러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피해자와 유족들은 아직 해방을 맞지 못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어요.” “우리 죽어도 재판 포기하지 마라” 과거사 문제로 촉발된 한-일 갈등이 전면적으로 치닫는 가운데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유족들은 지금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8월6일 서울 용산구에 있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이희자(76·사진)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보추협) 공동대표를 만났다. 강제동원 피해자의 유족인 그는 2000년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과 손잡고 보추협을 만들었다. 보추협은 일본 시민사회와 연대해 강제동원 피해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 유해 봉환과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전범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도 이끌어왔다. 과거 한·일 정부의 무관심과 냉대 속에서도 보추협과 여러 피해자 단체가 노력해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일제강점기에 가려진 역사적 진실을 수면 위로 끌어냈다. “할아버지들 말대로 포기하지 않고 재판을 계속 끌고 갔기 때문에, 대법원 판결(2018년 10월30일 신일철주금에

[MBC] 차리석 선생이 외증조부?..”하늘에서 통곡할 것”

2019년 8월 12일 225

◀ 앵커 ▶ “일제 강점기 강제 동원이나 위안부 성 노예는 없었다…” 이런 주장을 펼쳐서 친일 논란에 휩싸인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이 전 교수는 친일 논란에 반박하면서 자신이 독립운동가 故 차리석 선생의 외 증손주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사실과 달랐는데요. 차리석 선생의 외아들인 차영조 씨가 오늘 MBC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분노했습니다. 박소희 기자가 만났습니다. ◀ 리포트 ▶ 이영훈 전 교수는 자신이 대표 저자인 책 에 대해 조국 전 청와대 수석이 ‘친일파’라 비판하자 이같이 반박했습니다. [이영훈/전 서울대 교수] “임시정부를 사실상 끝까지 지켜온 故 차리석 선생은 저의 외증조부가 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독립운동가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독립운동가 故 차리석 선생. 그러나 이 발언을 뉴스로 접한 그의 외아들 차영조 씨는 기가 막힌다며 분노했습니다. [차영조/故 차리석 선생 아들 (독립유공자유족회 부회장)] “(뉴스에) 故 차리석 선생의 외증손자라는 제목이 뜨더라고.. 깜짝 놀랄 수 밖에, 그걸 보고는 껄껄 웃었습니다.” 1944년 임시정부 청사에서 태어난 그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렵게 살았지만, 평생을 독립유공자로 역사바로세우기와 친일청산에 힘써 왔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기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참 치욕적으로 느낍니다. 이런 데에 이용해먹으려고 준비를 하지 않았나.. 외아들 하나 나 남았는데 지금이라도 날 와서 만나서 자기 신분을 밝히고..” 족보에서도 이 전 교수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친척들에게 수소문한 결과, 차리석 선생 큰 형님의

[서울&] 총독부 관리 칼·친일파 양성책…잊지 못할 ‘기억’

2019년 8월 12일 217

서울의 작은 박물관⑪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 우리의 부모, 조부모가 겪었던우리들의 이야기가 살아서우리들의 가슴을 울린다 우리가 몰랐던 일제강점기의 역사, 잊힌 사람들, 낱낱의 일들에 대한 기록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겪었던 우리들의 이야기가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따뜻한 체온으로 살아 사람들 마음을 울린다. 강제징용에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용산구 청파동2가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 전시관 벽에 적힌 글 ‘빼앗긴 어버이를 그리며’. 일제강점기에 일본, 중국, 동남아, 남양군도, 러시아 사할린 등의 전쟁터로, 탄광으로, 공장으로, 공사장으로 끌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고 이역에서 숨져갔던 사람들과 그들 가족 이야기에 가슴이 저민다. 1945년 광복이 되었지만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 걱정에 앓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굶기를 밥 먹듯 하던 동생마저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던 이아무개씨의 그때 나이는 11살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1944년에 군속(군무원)으로 남태평양에 강제 동원된 뒤 1945년 팔라우에서 사망했다. 1944년에 강제징용되어 오키나와로 끌려갔던 아버지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른 채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학교도 못 다니고 공사판을 전전하며 살면서도 아버지가 살아서 돌아오실 것 같아 사망신고도 못하다가 1996년에 아버지가 행방불명됐다는 기록을 찾은 권아무개씨는 아버지가 끌려간 오키나와에 가서 아버지 제사를 올렸다. 박물관 1층 벽에 전시된 유족들이 남긴 글과 기증한 문서와 기록 등을 하나하나 읽는다. 일본 해군이 1950년 후반에 쓴 일본 해군 ‘군속신상조사표’는 강제동원한 조선인 약 7만9천 명의 기록을 담고 있다. 1971년 일본 정부로부터 인수한 피징용 사망자

[연합뉴스] 14년째 도쿄 도심서 펼쳐진 ‘야스쿠니 반대’ 촛불 시위

2019년 8월 11일 168

평화지지 일본 시민 등 400여명 ‘아베 퇴진’ 구호 외쳐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돈을 달라는 게 아니에요. 이름 석 자를 빼달라는 건데….” 야스쿠니(靖國) 합사 취소소송 원고 중 한 명인 이병순 씨는 10일 오후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재일본 한국YMCA에서 ‘야스쿠니 반대 도쿄 촛불행동’ 주최로 열린 심포지엄의 연단에 섰다. ‘지금의 야스쿠니와 식민지 책임…왜 가해자가 피해자 행세를 하는가’란 주제의 이날 심포지엄에 참석한 일본인 방청객들에게 일제의 침략전쟁에 강제로 끌려가 숨진 뒤 야스쿠니의 영령이 된 아버지를 구해 달라고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이 씨는 “저는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면서 “야스쿠니에 합사된 아버지의 이름을 그곳에서 지워 제가 당당하게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한국인에게는 광복절이고 일본인에게는 패전일이자 종전일인 매년 8월 15일을 앞두고 주목받는 곳이 바로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야스쿠니신사다. 이곳에는 야스쿠니의 신(神)들로 통하는 총 246만6천위(位)가 명부로 합사(合祀, 여러 혼령을 모아 제사를 지낸다는 뜻)돼 있다. 영령(英靈)이라 불리는 이들의 주류는 일왕(덴노, 天皇) 중심의 정치체제를 만든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일제(日帝)가 일으켰던 침략전쟁에 동원됐다가 숨진 이들이다. 특히 전체 영령의 90%에 가까운 213만3천위는 일본이 대동아(大東亞)전쟁이라고 부르는 태평양전쟁(1941년 12월~1945년 8월)과 연관돼 있다. 일제 패망 후 도쿄 전범 재판(극동국제군사재판)을 거쳐 교수형을 당한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당시 총리 등 7명을 포함해 태평양전쟁을 이끌었던 A급 전범 14명도 1978년 비밀리에 합사 의식을 거쳐 야스쿠니의 신이 됐다. 일제의 군인이나 군속으로

[연합뉴스] 식민지배 불법성 인정 않는 아베 정부 비판 ‘봇물’

2019년 8월 11일 207

야스쿠니 반대 도쿄 촛불행동, ‘식민지 책임’ 심포지엄“후기 식민주의 체제 반복…1965년 이전 인식으로 후퇴”“강제동원자, 재판 없이 총살당한 사례도”김세은 변호사 “국가 간 약속 때문에 피해자 침묵해야 하나”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지금 한일 관계에서 최대 문제는 아베 정부가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태평양전쟁피해자 보상추진협의회, 촛불행동 일본실행위원회 등 한일 시민단체들이 참여하는 ‘야스쿠니 반대 도쿄 촛불행동’은 8.15 광복절을 닷새 앞둔 10일 도쿄 재일본 한국YMCA에서 ‘지금의 야스쿠니와 식민지 책임’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일본 지식인들과 한국의 시민운동가들은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배와 강제동원, 위안부 문제 등을 살펴보고 해법을 강구하는 데 머리를 맞댔다. 다카하시 데쓰야(高橋哲哉) 도쿄대 교수는 ‘식민지주의의 중단’이란 발제를 통해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을 근거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배상 판결을 부인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현 일본 정부의 성격을 ‘포스트 콜로니얼니즘'(후기 식민주의)로 규정했다. 다카하시 교수는 2013년 12월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참배하는 등 일제의 침략 전쟁을 인정하지 않는 행보를 보이는 아베 정부는 후기 식민주의적 체제의 반복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대법원의 징용배상 판결로 부각된 것이 바로 한국 및 조선 문제에 대한 아베 정부의 인식이라며 아베 정부는 한국의 식민지배를 사실상 정당화하고자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아베 정부의 행보는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총리 등 역대 일본 총리들이 한반도 식민지배에 대해 사과했던 것과 대비되는 것이라며 그런 연장에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한 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