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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팟캐스트]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11편 “박인덕” 여성계몽운동가로 화려한 활동 그러나 황국식민의 여성으로 급격한 변신

2019년 4월 30일 76

[바로듣기] ☞ (4.30)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11편 “박인덕” 여성계몽운동가로 화려한 활동 그러나 황국식민의 여성으로 급격한 변신 ☞ (4.23)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10편 “문명기” 애국기 헌납운동을 일으킨 맹목적 친일파 ☞ (4.16)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9편 “이승우” 창씨개명을 적극적으로 앞장 서 추진한 변호사 ☞ (4.09)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8편 “김우영” _내선융화의 상징, 조선인 부영사 되다 ☞ (4.02)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7편 “최린” 독립선언의 주역, 변절의 아이콘이 되다 ☞ (3.26) ‘내역사’ 시즌 3: 강제동원 3편 “피해자 변호인단에게 판결과정과 향후 활동계획을 듣는다 ☞ (3.21)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6편 “박중양” 3.1운동 진압을 위해 자제단을 이끈 거물급 친일파 ☞ (3.12)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5편 “김대우” – 황국신민서사를 제정 입안하여 황국신민화에 앞장선 인물 ☞ (3.06)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좌담회 2부 ☞ (3.05)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좌담회 1부 ☞ (2.27)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만세열전2부 ☞ (2.26)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만세열전1부 ☞ (2.19)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4편 “심우섭” 한 시대 형제의 다른 삶, 기회주의자 지식인의 원형 ☞ (2.12) ‘내역사’ 시즌 3: “일제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이후?_2편_한일청구권협정의 쟁점은? ☞ (2.05)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3편 “오현주” 독립운동가 김마리아를 밀고한 배신자, 반민특위

100년 전 파리로 간 식민지 청년의 돌아오지 못한 여정

2019년 4월 29일 107

앙투안 리가 말하는 아버지 이용제 1920년 일제 감시 피해 프랑스행가보지도 않은 대만 국적으로66년간 고단한 ‘이방인의 삶’ 견뎌 귀향 꿈꾸며 간직해온 낡은 유품들이봉창 의사 등 독립진영 성명서‘기미독립선언서’ 새 판본도 눈길 “한국이 둘로 나뉘어 있는 한…남한 여권도 북한 여권도 싫다”독립 뒤엔 남북 분단이 발길 막아 뒤늦게 아버지 고국 알게 된 아들“이곳엔 흔치 않은 노란 은행나무유난히 좋아한 이유 알 것 같네요” “봉 쑤와르, 마담. 위, 마되무와젤. 위, 마되무와젤.” 거듭 되뇌어도 낯선 말이었다. 긴 항해로 멀미가 몰려왔다. 청년은 드넓은 바다로 눈길을 돌렸다. 그의 고향엔 추위가 몰아닥칠 11월이지만 인도양은 6월 초여름처럼 후텁지근했다. 조선의 구습과 일본의 압제가 지배하는 조선 땅을 벗어나, 이국의 대양 위에 있다는 사실에 22살 이용제는 잠시나마 가슴이 뛰었다. 3·1운동이 일어난 기미년(1919년) 이듬해의 일이다. 이 항해가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임을 청년은 미처 알지 못했다. 지난 18일 프랑스 파리 외곽의 도시 부르라렌에서 만난 앙투안(73)은 이용제가 99년 전 불어를 꾹꾹 눌러쓴 수첩을 보여주며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의 첫 불어 실력입니다.” 은발에 은빛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앙투안은 평범한 프랑스인처럼 보이지만 이씨다. 1920년 프랑스에 도착한 이용제는 1936년 현지인인 마들렌 쾨클랭과 결혼해 앙투안을 비롯한 3남3녀를 낳았다. 성장하는 동안 앙투안은 아버지의 삶에 대해 잘 몰랐다. “아버지는 자신을 키워준 그의 작은할아버지나 시베리아에서 벌목 일을 했던 자신의 아버지에 관해 얘기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순서가

중국 혁명성지, 연안에서 만난 조선인

2019년 4월 26일 157

[원광대 ‘한중관계 브리핑’] 정율성의 연안송을 듣다 김주용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교수 1919년 11월 중국 길림시 중국인 반(潘)씨 성을 가진 집에서 단장 김원봉을 비롯한 13명의 투사들이 의열단을 조직하였다. 그후 의열단은 여러 차례 변모하면서 1932년 남경에 조선혁명정치군사학교를 설립하였다. 그 다음해, 이곳에 자신을 단단한 독립투사로 만들기 위한 청년이 입학하였다. 바로 정율성이다. 중국의 국민가요 <연안송>을 만들었으며, 정식 군가인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그는 지금도 한중 간 음악으로 소통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교량 역할을 하고 있다. 정율성, 연안으로 가다 1937년 7월 7일 일제가 베이징 근교 노구교를 공격하면서 중일 전쟁은 본격화됐다. 항일의 전세가 전 중국으로 퍼져 나갔으며, 정율성은 이즈음 연안행을 결정한다. 정율성이 연안행을 택했던 것은 두 가지였다. 먼저 음악적 요소이다. 본명인 정부은을 ‘율성(律成)’으로 바꿨다. 말 그대로 음율을 이룩하리라, 강한 의지가 반영된 이름은 평생 그를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하지만 그는 ‘조국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음악이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것을 일찍 깨달았다. 조국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던 정율성의 연안행은 이러한 이유로 이뤄졌다. 뿐만 아니라 그의 친매부였던 박건웅은 개인적 차원의 한중연합이 아닌 상설기관을 통한 통일적 계획 속에 항일전쟁 수행을 역설했는데 이것이 정율성의 연안행에도 영향을 미쳤다. 1937년 9월 하순 상하이의 전쟁 형세가 위급하자 정율성은 난징으로 갔다. 김성숙의 부인 두군혜(杜君惠)는 정율성에게 혁명음악가로 알려진 이공박을 소개시켜 주었다. 이공박은 정율성의 음악적 재질과 독립운동에 대한 열정을

[팟캐스트]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10편 “문명기” 애국기 헌납운동을 일으킨 맹목적 친일파

2019년 4월 24일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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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2019년 04월호

2019년 4월 24일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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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 100년 특집, ‘친일과망각’ 스페셜판

2019년 4월 23일 164

100년 전 오늘, 1919년 4월 11일은 대한민국이 탄생한 날입니다. 그날 오전 10시, 중국 상하이 김신부로에서 열린 임시의정원 회의에서는 이회영, 신채호, 여운형 등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29명이 12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 끝에 임시 정부 수립을 선포했습니다. 임시 정부의 국호는 ‘대한민국’이었습니다. 한반도 역사 시대 5,000년래 처음으로, 왕국이나 제국이 아닌 ‘민국’이 탄생한 순간이었습니다. 임시정부의 탄생은 필연적으로, ‘민국’의 국토와 국권을 강탈한 일제의 극복과 그 잔재의 청산을 지향하는 것이었습니다. 역사의 순리대로였다면, ‘민국’의 탄생은 곧 이러한 과업으로 이어졌어야 합니다. 그러나 역사의 섭리는 비정하게도 이러한 순리를 비껴가고 말았습니다. 해방 이후 미군정에 의해 친일 관료와 경찰이 대거 등용됐고, ‘민국’은 이 땅에 발붙일 곳이 없어졌습니다. 친일 청산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부여받은 반민특위는 이승만의 비호를 받은 친일 경찰들에 의해 허망하게 무력화되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지금, 친일 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업이 과연 제대로 완수되었는가를 냉엄히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식 석상에서 “반민특위로 인해 국민이 무척 분열했다”라고 말한 제1 야당의 원내대표가 어떠한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아도 괜찮은 게 오늘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뉴스타파는 을 선보입니다. 지난 2015년 해방 70년 기획으로 제작해 큰 화제를 모았던 의 주요 내용을 추리고, 이듬해 방송한 가운데 친일파와 관련된 부분을 발췌해 합본으로 다시 제작한 스페셜판입니다. 이번 스페셜판이 민국 100년의 의미와 친일 청산의 굴곡진 역사를 되새겨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 정지성글

“나경원, 수렁에 빠졌다”

2019년 4월 20일 288

반민특위 김상덕 위원장의 외아들 김정륙씨는 70년 전 봄을 생생히 기억한다. 이승만 대통령이 아버지에게 친일 경찰들을 다 풀어주라고 협박했다. 김씨는 연좌제로 오랜 고통을 겪었다. ■ 관련기사 – 약산 김원봉 욕보이는 빨갱이 프레임 – 4·19혁명 도화선 김주열 가족의 59년 – 여성 독립운동가 공적을 기리는 협동조합 – 김마리아 열사에게 ‘대한민국장’을 허하라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부회장 김정륙씨(85)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김상덕 위원장의 외아들이다. 반민특위는 1949년 6월 친일파 경찰의 습격을 받고 사실상 해체됐다. 그는 아버지가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던 1935년 중국 난징에서 태어났다. 반민특위 활동이 한창이던 1949년 김정륙씨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그는 그해 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이승만 대통령이 집으로 찾아와 아버지와 마주앉았다. 이 대통령은 ‘살살 다루고 다 풀어줘라. 노덕술을 포함해 경찰을 다 풀어줘라’ 하고 명령하듯 말했다. 이어 ‘몇 달 안 남은 반민특위 시한이 끝나면 내각에 자리를 마련해줄 테니 들어와라’ 하고 회유했다. 아버지가 정중히 거절하자 이 대통령은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후회할 날이 올 것이다’라고 쏘아붙이고는 자리를 떴다.” 일주일 정도 지난 6월6일, 이승만 대통령이 언급한 ‘후회할 일’의 윤곽이 드러났다. 경찰 80여 명이 반민특위 청사를 습격했다. 경찰은 무력을 행사했고 사무실에 보관된 친일파 조사 서류를 모조리 강탈해 불태웠다. 반민특위 직원 22명은 부상을 입고 적십자병원에 입원했다. 국회 특별입법으로 출범한 반민특위에 친일 경찰이 들이닥치자, 국회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즉각 책임자 처벌과 반민특위 원상회복을 요구했다. 이 대통령은 국회 요구를 묵살하는 담화를 냈다. 외신기자들에게는 반민특위 습격과 특경대

“학생들도 이승만 동상에 침 뱉어”… “빨갱이들은 북으로”

2019년 4월 20일 185

[현장] 4.19혁명기념일 맞아 대전단체들, 배재대 이승만 동상 철거 촉구 4.19혁명기념일을 맞아 대전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배재대학교에 서있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동상 철거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에 반대하는 보수단체들도 태극기를 들고 나타나 ‘맞불집회’를 열었다. 대전지역 53개 단체로 구성된 ‘이승만동상철거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은 19일 오전 대전 서구 도마동 배재대학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백만 민간인 학살 책임자 이승만의 동상을 즉각 철거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시작 전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공동행동이 기자회견을 예고한 11시보다 앞선 10시 30분 보수단체 회원들은 이미 길 건너편에 자리를 잡고 맞불 집회를 시작했다. 이후 보수단체 회원들과 공동행동 회원들은 서로 목소리를 높이며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욕설이 오가며 충돌 위기까지 치달았으나 경찰과 다른 회원들의 만류로 직접적인 충돌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 과정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은 공동행동 측을 향해 욕설을 쏟아 부었다. 이들은 “이게 나라냐, 이 XX들아”, “양심도 없는 것들”, “너희 같은 쓰레기들은 북에 가져다 버려야 한다”는 등의 험한 말을 쏟아냈다. 이들은 한 손에는 태극기를 든 채 이승만 동상과는 관계없는 ‘박근혜 대통령은 억울하다’, ‘사기 재판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감옥에 갇혔다’, ‘문재인은 나라를 이 모양 만들었다’, ‘김경수는 내보내 주면서 왜 박근혜 대통령은 가줘 두느냐’는 등 정치적 발언을 쏟아 냈다. 오전 11시가 되자 공동행동 주최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이에 보수단체들은 스피커의 볼륨을 더 올려 구호를 외치는 등의 맞불집회를 이어갔다. 공동행동 발언자로 나선 박해룡 민족문제연구소

“학교 향나무, 이토 히로부미가 들여온 친일잔재”

2019년 4월 20일 163

[인터뷰] 학교 친일잔재 청산 전수조사 나선 경상남도교육청 -대부분 가이즈카 향나무…이토 히로부미가 대구에 처음 심어-경남교육청에 심어진 향나무 뽑아내고 소나무로 교체-교체 강제할 순 없지만 교체 적극 권장할 계획 -친일 음악가 조두남, 창원에만 7개 학교 교가 제작-일장기 모양의 학교건물도 남아있어-일본 식민주의 사관 넘어 향나무 뽑는 실천부터 ■ 방송 : 경남CBS <시사포커스 경남> (창원 FM 106.9MHz, 진주 94.1MHz)■ 진행 : 김효영 기자 (경남CBS 보도국장)■ 대담 : 경남교육청 중등교육과 이일만 장학관 ◇김효영> 여러분이 다녔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요. 교가는 누가 만들었는지 기억을 하실지 모르겠습니다.그 가운데는 우리가 흔히 친일파로 분류하는 음악가가 만든 교가도 적지 않습니다.이처럼 교육기관 곳곳에 친일 잔재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그래서 박종훈 경남교육감의 지시로, 경남교육청에서는 전수조사가 실시가 되고 있습니다.친일잔재 청산을 위한 전수조사를 맡고 계신 경남교육청 중등교육과의 이일만 장학관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안녕하세요? ◇김효영> 특별히 전수조사까지 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을 기념해서 우리 교육청 차원에서 일제 잔재 청산과 우리 얼 살리기 교육사업을 전 교육기관을 대상으로 해서 한 번 실시를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으로 판단이 돼서 2년간에 걸쳐서 실시를 할 계획입니다. ◇김효영> 조금 전에 제가 교가를 예로 들었습니다만, 교가 말고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오래된 역사를 가진 학교들에서는 가보면 교장실에 역대 교장들 사진이 걸려 있는

종로도서관 친일파 동상, 그냥 두고보면 안 되는 이유

2019년 4월 19일 212

[도서관 그 사소한 역사 10] 종로도서관 ② 도서관 이용자와 도서관 사서가 함께 쓴 도서관 역사 여행기입니다. 대한제국부터 대한민국까지 이어지는 역사 속 도서관, 도서관 속 역사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편집자말] * ①편에서 이어집니다. 근대 문화시설인 도서관을 선구적으로 이끈 이범승의 노력을 폄하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범승의 공적과 별개로 일제가 경성도서관 운영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의도’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식민 시대 일제의 도서관 정책을 고려하면, 일제가 이범승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모양새로 도서관 건립과 운영을 지원했다고 보는 게 진상에 가깝지 않을까. 이용재 교수가 이범승의 경성도서관 건립 제안에 대해 평한 부분을 살펴보자. “조국의 왕통(王統)이 일제의 상징 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일제를 향하여 조선 땅에 ‘민중의 대학’을 설립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으로서 할 수 있는 애국계몽사상의 실천 중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하겠다.” 도서관 건립을 통해 ‘애국계몽사상을 효과적으로 실천’하려 한 이범승이 일부러 일제의 비위를 맞추며 도서관을 ‘쟁취’했던 걸까. 경성도서관 이전과 이후 이범승의 행보가 애국계몽과 독립운동으로 이어져 있다면 이런 해석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범승은 그렇게 해석하기 어려운 삶을 이어간다. 이범승의 애국계몽활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범승은 1887년 8월 29일 만석 갑부 이기하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에서 고등학교와 교토제국대학 독법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남만주철도주식회사(만철)에서 2년 동안 일했다. 이범승은 경성도서관 운영 시절인 1924년 4월부터 반일운동 배척과 일선융화를 표방하며 만든 친일 협력단체 ‘동민회’ 이사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