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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민일보] 악질 친일파 처단… 19년 옥고 버틴 독립운동가
3·1만세운동 그날의 함성 역사적 현장 구미 구미 봉곡동 출신 박희광 선생 1922년부터 통의부 5중대 배속 1923~1924년 임시정부 지령 받아 만주·한만서 일본군 공격 작전 참가 ‘3인조 암살단’ 활약하며 이름 떨쳐 1924년 7월 펑톈 일본 총영사관 폭탄 투척 실패 후 일본경찰에 체포 혹독한 고문 겪으면서 19년간 복역 출옥 후 고향서 양복 수선하며 생계 1970년 1월 고문 후유증으로 숨져 서울 국립현충원 애국자 묘원에 안장 구미 금오산도립공원으로 가는 길을 오르다 보면 금오지가 끝나는 길목에서 금빛 동상 한 개를 만날 수 있다. 저수지를 등진 채 금오산을 바라보면서 오른손을 들고 있는 입상은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하다. 이 동상의 주인공은 바로 박희광(1901~1970) 의사다. 그는 일제강점기 펑톈성에서 보민회와 일민단 등 친일 부역자 숙청작업을 담당한 독립운동가다. 다가오는 3.1절을 맞아, 조국을 위해 헌신했던 박희광 선생의 숭고한 삶을 다시금 주목해본다. ▲만주를 누빈 3인조 암살단과 친일파 응징 이름을 상만으로도 쓴 박희광은 구미 봉곡동 출신으로 박윤하의 아들이다. 경술국치(1910) 이후 부친을 따라 만주로 갔는데 일가가 만주로 이주한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부친 역시 의병으로 활동했다고 추정되기도 하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박희광은 남성자학교를 졸업하고 1922년부터 오동진(1889~1944) 휘하 통의부에 들어가 제5중대에 배속돼 친일 세력을 비밀리에 암살하는 특공대원 임무를 맡았다. 그는 김병현(?~1926, 1995 애국장), 김광추(?~1924, 1996 애국장)와 함께 수행한 암살 임무로 뒷날 재판 과정에서 ‘3인조 암살단’으로 불리었다. 1923년에서
[한겨레] “제자들 못 지키고 죄책감 시달린 어머니…” 올해도 메아리만
‘후지코시 강제동원’ 사과 촉구 한일 시위 “어머니는 제자들을 근로정신대에 보냈다는 생각에 죽을 때까지 나쁜 일을 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았던 겁니다.” 25일 일본 동북부 도야마현에 있는 기계·부품회사 후지코시의 도야마 본사 앞에서 후지코시가 조선인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배상할 것을 촉구하는 한·일 시민들의 시위가 열렸다. 후지코시 주주총회 날에 열린 이 시위에는 어머니가 일제 강점기 조선에서 교사였던 와카타니 마사키(76)도 참여했다. 그는 전날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태평양 전쟁 당시 어린 조선인 아이들이 왜 일본에서 강제노역을 했어야 하냐”며 “후지코시가 과거 잘못에 대한 사과와 강제노역 피해자 및 유족들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어머니 와카타니 노리코는 인천 송현공립국민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1944년, 제자 7명이 군수품 제조 공장이던 후지코시로 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 정부는 군수 물자 생산에 필요한 일손을 메우기 위해 식민지 조선에서 당시 국민학생들까지 강제동원했다.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1944년 7월4일자는 “인천부(현재 인천시) 여자 근로정신대 모집에 따라 송현국민학교 졸업생 중 27명이 응모, 13명이 합격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본에 가면 여자아이들도 공부를 할 수 있다”, “큰돈을 모아 부모님께 보낼 수 있다”는 같은 거짓말에 속아 일본에 간 아이들이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초등학생 또래 아이들이 철제 부품들을 자르고 깎아 전쟁 물자를 만들었다. 하루 14시간 노동이 일상이었다. 중기계를 다루다가 손가락이 잘리거나, 머리카락이 기계에 빨려들어가 큰 부상을 입는 일도 잦았다. 끼니는
민족사랑 2026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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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고기사가 ‘방귀 발언’으로 도배된 정치인, 그의 진정한 죄과
[이승만 시대별곡]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발언의 주인공, 이익흥 부고 기사에는 가급적 좋은 이야기가 실린다. 대단히 큰 악행이 아니라면 고인과 유족을 민망하게 할 만한 내용은 담기지 않는다. 그런데 전 내무부장관 이익흥에 관한 부고에는 그런 일화가 소개됐다. 1993년 11월 27일자 <경향신문> 17면은 전날에 그가 국립경찰병원에서 88세를 일기로 사망한 소식을 간략히 전하면서, 이 짧은 기사의 3분의 1 가량을 그런 이야기로 채웠다. 이 기사는 “이씨는 내무장관 시절 이승만 대통령이 방귀를 뀌자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고 말한다. 같은 날짜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도 이 일화만을 소개했다. 한 개인의 88년 인생을 민망한 이야기 하나로 압축한 셈이다. 민망한 이야기 이익흥이 내무부장관일 때인 1956년 8월 1일이었다. 지금은 서울시의회 건물인 국회의사당에서 여야가 충돌했다. 이기붕 민의원의장(국회의장)의 장기 무단결석 등이 원인이었다. 자유당·민주당·진보당추진위원회가 격돌한 그해 5·15 부통령 선거에서, 진보당 박기출의 사퇴에 힘입어 민주당 장면이 자유당 이기붕을 꺾는 이변이 있었다. 뒤이어 6월 8일에 민의원 의장이 된 이기붕은 그 후 무단결근을 이어갔다. 이기붕 측은 ‘몸이 아파서’라고 해명했고, 여론은 부통령 낙선의 충격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결국 민주당은 8월 1일에 이기붕 출석요구 결의안과 사직권고 결의안을 상정했다. 다수당인 자유당은 민주당의 안건들을 무산시키다가 갑자기 추가경정예산안을 전격 상정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민주당의 유옥우 의원이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 그는 세 시간 넘게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끌었다. 그해의 중복은 7월 22일이고, 말복은
[연합뉴스] 소설로 복원한 백범의 삶…”흔들림 없이 강직했다”
임순만 작가 ‘백범 강산에 눕다’ 출간…”거인의 어깨 위에서 글 써 힘들지 않았다” (서울=연합뉴스) 김정은 기자 = “백범 선생은 참으로 강직하셨습니다. 우리나라에서뿐 아니라 세계 독립운동 역사에서도 이렇게 강직한 분은 없는 것 같습니다.” 장편소설 ‘백범 강산에 눕다’를 집필한 임순만 작가는 23일 서울시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출간 간담회에서 백범 선생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쓴 이유로 “흔들림 없는 강직함”을 꼽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자 독립운동가였던 백범 김구의 일생을 다룬 이 소설은 언론인 출신 작가 임순만이 10여년에 걸친 구상과 자료 조사, 집필 끝에 완성한 작품이다. 그는 “작품을 쓰는 5년 동안 이상하게 힘들지 않았다”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주는 정신에 힘입어 제가 글을 썼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말하자면 거인의 어깨 위에서 무등을 타고 있어 힘들지 않았던 것 같다”며 “여기에 많은 독립운동가가 나오는데, 한 분 한 분 대단한 정신을 갖고 있었던 분들”이라고 덧붙였다. 방대한 사료를 토대로 쓴 이 소설에는 가공의 인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모든 사건이 사료와 기록에 근거해 백범의 생애를 따라간다. 과거시험의 낙방과 치하포 사건, 동학 활동과 망명, 남의 땅에서 벌인 광복의 염원, 이봉창·윤봉길 의거로 이어지는 임시정부의 분투, 해방 이후의 혼란과 분단의 갈림길, 경교장에서 맞은 안타까운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간 김구가 온몸으로 겪은 날들이 밀도 있게 펼쳐진다. 소설은 총 24개 장으로 이뤄졌는데, 각 장은 하나의 단편소설로
[중도일보] 의술로 독립운동 광복 후엔 대전형무소 의무과장 17년 ‘안사영’ 재조명
대전시의사회와 대전교도소, 안사영 함께 연구키로 서간도 신흥무관학교서 조선청년들 치료·자금 마련 1946년부터 대전형무소 의무과장 맡아 수용자 돌봐 독립유공자 포상은 보류상태…시의사회 공훈 파악나서 3·1절을 앞두고 대전시의사회와 대전교도소가 의사이면서 독립운동에 투신하고 광복 후 대전형무소 의무과장을 맡아 17년간 수용자들 돌본 안사영(安思永, 1890~1967) 선생의 생애 재조명에 나섰다. 1919년 신흥무관학교에서 장차 독립군이 될 조선 청년들의 부상을 치료하고, 안동병원을 세워 조선인 치료와 군자금 모금에 전념한 활약이 비교적 근래에 알려진 데다가 개원을 마다하고 대전에 정착해 수용자를 돌본 그의 삶은 충분히 조명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22일 대전시의사회와 대전교도소(소장 윤창식)에 따르면, 두 기관은 최근 간담회를 갖고 광복 직후 1946년부터 1962년까지 대전형무소 의무과장을 지낸 안사영 선생에 대해 함께 연구하기로 했다. 당시 형무의무감으로 불린 의무과장은 교도소와 구치소의 시설에서 수용자들의 건강 관리, 질병 치료, 보건 위생 업무를 전담하는 의사를 말한다. 그는 부친을 따라 충남 청양으로 이주해 감리교 계열 공주 영명학교(1회)에서 수학하고, 서울에서 세브란스연합 의학전문학교를 1917년 졸업해 청년의사가 됐다.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그는 1919년 초 국권회복의 뜻을 품고 중국 길림성의 서간도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 의무감을 지냈다. 그곳에서는 독립운동을 위해 이주한 수많은 조선청년들을 진료했으며, 이때 총상을 입은 이범석 장군을 치료했다. 안사영 선생은 길림성의 독립운동 거점이었던 삼원보 항일운동단체인 ‘독립단’의 검찰(檢察)을 지냈으며, 1920년께 일본 경찰에 검거돼 평양형무소에서 2년간 복역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전시가 2019년 발행한 ‘옛 대전형무소 역사관광자원 조성사업 전시콘텐츠 발굴
[오마이뉴스] 독립운동과 소금, ‘미나리타령’
[붓의 향연 95] 흔히 게릴라 활동은 ‘물과 물고기’의 관계에 비유된다 일제강점기 우리 독립운동가들, 특히 백두산이나 타이항산 등 깊은 산중이나 인가가 없는 만주 내륙에서 빨치산활동과 게릴라 무장투쟁을 하는 경우, 식량·신발·성냥·소금이 가장 곤란한 문제였다. 도시에서 단체를 만들고 광복운동을 하는 경우는 부단한 일제군경과 밀정들의 추적으로 안위가 위협을 받았으나, 적어도 성냥이나 소금 등 생존의 절대 필수품은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사람이 일정기간 동안 염분을 섭취하지 못하면 몸이 붓고 힘이 없어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과다 섭취는 인체에 치명상이 되지만 반대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이다. 흔히 게릴라 활동은 ‘물과 물고기’의 관계에 비유된다. 물이 없으면 물고기가 살 수 없듯이, 게릴라는 주민들의 지원이 있어야만 활동이 가능하다. 베트남이나 남미지역의 게릴라 활동은 자급자족이 가능하지만 한반도와 만주·노령에서는 겨울의 혹한 때문에 쉽지가 않았다. 항일투쟁이 그만큼 어려웠다. 일제가 한국을 침략할 때 이른바 삼광작전(三光作戰)이라 하여 의병지역에서 “모조리 죽이고 모조리 약탈하고 모조리 소각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일본군은 의병마을에 들어가면 식량과 가축을 약탈하고 장독을 깨부수고 소금가마는 우물에 던졌다. 또 청산리·봉오동전투에서 참패한 일본군이 인근 지역 조선인 거주 마을을 불태우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학살한 ‘경신참변’ 때도 유사했다. 활동의 근거지를 없애버리는 초토화 작전이었다. 우리 독립운동가들에게 소금이 얼마나 중요했던가. 독립운동가 이상룡 선생의 손부 허은 여사의 회고록, 해삼위의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시절의 일이다. 깊은 내륙이라 소금이 귀했다. 50리, 60리 가야 소금을 구할 수 있었다. 농삿거리 서너 말
[연합뉴스] 민족문제연구소 23년 만에 신임 소장…김민철 경희대 교수
(서울=연합뉴스) 양수연 기자 = 민족문제연구소는 제4대 소장으로 김민철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조교수가 선출됐다고 12일 밝혔다. 김 신임 소장은 1991년 민족문제연구소 창립 때 발기인으로 참여한 이래 책임연구원과 연구실장,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을 역임했다. 2005∼2009년에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기획총괄과장, 2021~2024년에는 국사편찬위원회 편사부장을 지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소장 교체는 23년 만이다. 2003년부터 연구소를 이끌어온 임헌영 소장은 지난달 8일 국립한국문학관 관장으로 임명됐으며 정부의 기관장 겸직 금지 원칙에 따라 소장직을 사임했다. 이취임식은 오는 28일 오후 3시 용산구 청파동 순교복자수녀회 강당에서 열리는 연구소 창립 35주년 기념식에서 진행된다. seele@yna.co.kr <2026-02-12> 연합뉴스 ☞기사원문: 민족문제연구소 23년 만에 신임 소장…김민철 경희대 교수 ※관련기사 ☞민족문제연구소: [보도자료] 민족문제연구소 4대 소장에 김민철 경희대 교수 ☞한겨레: 민족문제연구소 새 소장에 김민철 경희대 교수 ☞아시아경제: 민족문제연구소, 23년 만에 새 수장…김민철 경희대 교수 ☞뉴스1: 민족문제연구소 23년 만에 소장 교체…김민철 경희대 교수
[새책소개]『백범 강산에 눕다』
☞ 다운로드: [보도자료] 역사의 격동 속에서 역사의 별이 된 사람들 『백범 강산에 눕다』 “독립지사들의 말과 글은 눈물을 삼키며 써내려간 피의 기록이다. 그들의 말과 글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고 사상이었고 인간이었으며 생명이었다.” 소설로 복원한 백범 김구의 ‘진짜’ 삶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백범 김구라는 이름과 그의 명언 몇 마디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격동의 시대 한복판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포기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지 못한다. 올해로 창사 50주년을 맞은 한길사는 백범 김구 선생 탄신 150주년과 2026년 유네스코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백범을 기념해 장편소설 『백범 강산에 눕다』를 펴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이자 독립운동가였던 백범 김구의 일생을 다룬 이 작품은 언론인 출신 소설가 임순만이 10여 년에 걸친 구상과 자료 조사, 집필 끝에 완성한 역작이다. 방대한 사료를 토대로 쌓아올린 이 소설은 백범의 생애를 실록처럼 따라간다. 상놈으로 태어난 고통과 실패, 과거시험의 낙방과 치하포 사건, 동학 활동과 망명, 남의 땅에서 벌인 광복의 염원, 이봉창·윤봉길 의거로 이어지는 임시정부의 분투, 해방 이후의 혼란과 분단의 갈림길, 그리고 경교장에서 맞은 안타까운 죽음까지 인간 김구가 온몸으로 겪은 날들이 밀도 있게 펼쳐진다. 임순만 작가는 허구의 인물을 내세워 극적 효과를 더하는 손쉬운 길을 택하지 않고,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격동의 근현대사를 통과한 한 인간의 선택과 책임을 촘촘히 복원한다. 모두가 알 듯, 이 소설에 ‘해피 엔딩’은 없다. 오히려
[대구MBC] “3·1절 구미 박정희 마라톤대회 취소해야”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역위원회가 경북 구미시에 오는 3·1절 열릴 ‘2026 구미 박정희 마라톤대회’를 취소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이들은 2월 12일 구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항일 독립운동 기념일인 3·1절에 일제강점기 만주국 육군군관학교 출신인 박 전 대통령의 이름을 건 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광복의 가치를 존중하는 이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구미시 후원으로 열리는 행사지만 구미 시민의 뜻과는 다르다며 명칭도 바꿔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또 대회 예산과 명칭, 일정을 어떻게 결정했는지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촉구했습니다. 그러면서 구미시가 수십 년간 박 전 대통령 기념사업에 예산 1,391억 원가량을 썼다고 지적했습니다. 연구소가 밝힌 구미시의 박 전 대통령 관련 사업은 상모동 생가 주변 공원화, 새마을운동 테마 공원 건립, 민족중흥관 건립, 역사자료관 건립, 탄신제 추모제 행사, 탄신 100돌 등입니다. 구미시가 추진하고 있는 역사자료관 2관 사업과 함께 박 전 대통령 기념사업 전반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2026-02-12> 대구MBC ☞기사원문: “3·1절 구미 박정희 마라톤대회 취소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