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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시민단체들 “조세이탄광 진전 평가…과거사 책임 문제는 회피”

2026년 1월 15일 566

(서울=연합뉴스) 이율립 기자 =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한일정상회담에서 이뤄진 조세이 탄광 조선인 희생자 유골 발굴 관련 진전을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은 뒷전에 놓였다며 우려했다. 정의연은 14일 논평을 내고 양국 정상이 조세이 탄광 유해 공동 발굴·감식을 추진하기로 한 데 대해 “오랜 세월 방치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유해 문제를 국가 차원의 협의와 책임 영역으로 다루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변화”라고 평가했다. 다만 일제의 과거사 문제를 두고는 “미래 협력과 실용 외교라는 이름 아래 부차적인 사안으로 밀려났으며 가해 국가의 책임을 묻는 핵심적 질문은 회피됐다”고 지적했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도 논평을 내고 “조세이 탄광 유해 봉환과 신원 확인은 시작일 뿐”이라며 “한국 정부는 이번 성과에 안주하지 말고 일본 정부에 식민 지배의 불법성, 전쟁범죄 인정과 법적 배상, 역사 왜곡 중단이라는 본질적인 요구를 더욱 강력하게 제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도 논평에서 “한일 양국 정부는 모든 강제동원 희생자의 유해 조사와 봉환을 위해 하루빨리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2yulrip@yna.co.kr 이율립 기자 <2026-01-14> 연합뉴스 ☞기사원문: 시민단체들 “조세이탄광 진전 평가…과거사 책임 문제는 회피” ※관련기사 ☞통일뉴스: 민문연 등, “한일 정부가 모든 강제동원 희생자 유해반환 나서야” ☞민들레: 드럼 합주보다 ‘조세이 원혼’에 눈 돌렸으면… ☞가톨릭평화신문: 민족문제연구소 “조세이 탄광은 성과…과거사 해결 위해 노력해야”

[성명] 한일 양국 정부는 모든 강제동원 희생자의 유해조사와 봉환을 위해 하루빨리 나서야 한다

2026년 1월 14일 965

☞ 다운로드: [성명] 한일 양국 정부는 모든 강제동원 희생자의 유해조사와 봉환을 위해 하루빨리 나서야 한다 한일 양국 정부는 모든 강제동원 희생자의 유해조사와 봉환을 위해 하루빨리 나서야 한다 2026년 1월 13일 한일정상회담에서 양국 정부는 일본의 조세이 탄광에서 발굴된 희생자 유해에 대해 양국 정부가 유해의 신원 확인을 위한 DNA 감정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는 한일 양국 정부가 국가의 책임으로 강제동원 희생자의 유해조사에 합의한 것에 대해 환영하며, 이번 합의를 바탕으로 해방 80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모든 강제동원 희생자의 유해 반환에 양국 정부가 하루빨리 나설 것을 촉구한다. 강제동원 희생자의 유해봉환은 유족들의 한 맺힌 염원이다. 이번 양국 정부의 합의는 이러한 유족의 오랜 염원에 응답하기 위해 노력해온 한일 시민사회가 양국 정부를 움직이게 한 중요한 성과이다. 강제동원 문제의 진상규명과 희생자의 인권 회복을 위해 노력해 온 민족문제연구소와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는 오랫동안 일본 정부에 강제동원 희생자의 조속한 유해봉환을 요구해왔다. 우리는 일본 정부와 미 군정의 방기, 한국 정부의 무관심으로 방치되어 온 강제동원 희생자의 유해봉환을 실현하기 위해 2000년 강제동원 희생자 유해 반환 청구 소송을 시작으로 2005년 일제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에 1948년 한국으로 송환된 유해에 대한 진상조사를 요구했으며, 2014년부터는 일본 시민단체와 함께 일본 정부와의 교섭을 통해 강제동원 희생자의 유해조사와 반환을 요구해왔다. 2016년 일본 정부가 제정한 ‘전몰자유골수집추진법’이 조선인 희생자를 조사대상에서 제외한 것에 문제를 제기하여 일본 정부의

[이데일리] 한일정상회담 D-1…시민단체 “다카이치 망언, 사죄 요구해야”

2026년 1월 13일 483

반일 관련 시민단체 청와대 앞 기자회견 “침묵한 채 손을 잡는 것은 외교 아닌 굴종” “과거사 인정과 공식 사죄 필요성 분명히 전달해야” [이데일리 염정인 기자] 한일정상회담을 앞두고 시민사회단체가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과거 발언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자주통일평화연대는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침략을 부정하고 전쟁범죄를 지우려는 일본에 침묵한 채 손을 잡는 것은 외교가 아니라 굴종”이라며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과거사에 대한 인정과 공식 사죄 없이는 어떠한 미래지향적 관계도 없다는 입장을 일본 측에 분명히 전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일정상회담은 오는 13일부터 14일까지 일본 나라현에서 열린다. 지난해 경주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과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 이어 세 번째 한일 정상 간 만남이다. 특히 이번 회담의 과제로 ‘조세이 탄광 조선인 유해 발굴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인도적 차원의 협력’이 명시된 만큼 역사 문제에 대한 양국의 의견이 드러날 전망이다. 이들 단체는 “한일정상회담을 앞두고 다카이치 총리의 행보가 도를 넘고 있다”며 “취임 이후 과거 일본의 침략 행위를 “자위권 행사”라면서 침략의 역사를 미화하고 전쟁범죄를 부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명백한 대한민국의 고유 영토인 독도에 대해서도 “역사적, 국제법적으로 일본의 영토”라는 망언을 거듭 이어가고 있다”고 규탄했다. 특히 일본의 재무장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이들은 “일본이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2% 수준으로 대폭 증액하고, ‘반격 능력’이라는 이름으로 중거리 공격 무기 배치도 추진하고 있다”며

[한겨레] 국립한국문학관 신임 관장에 임준열 민족문제연구소장

2026년 1월 8일 553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립한국문학관 신임 관장에 문학평론가 임준열(필명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을 임명했다고 8일 밝혔다. 임기는 3년이다. 임 신임 관장은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경향신문 기자를 지냈다. 그 뒤 한국문학평론가협회 회장, 세계한민족작가연합 공동대표, 중앙대 국어국문학과 겸임교수, 서울디지털대 객원교수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임 신임 관장은 오랜 기간 한국문학을 연구해온 문학평론가로, 다수의 논문과 단행본을 발표하며 15편이 넘는 평론집을 펴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세계한민족작가연합, 한국작가회의,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등 여러 문학단체에서 활동하며 문학계 전반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쌓아왔다. 국립한국문학관은 2019년 설립된 이후 한국문학 자료의 수집·보존과 전시, 연구, 문학 대중화 사업을 추진해왔다. 현재 서울 은평구 진관동에 시설을 건립 중이며, 2027년 상반기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휘영 문체부 장관은 이날 임명장을 수여하고 “문학관이 문인과 국민이 주인이 되는 열린 문학 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힘써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2026-01-08> 한겨레 ☞기사원문: 국립한국문학관 신임 관장에 임준열 민족문제연구소장 ※관련기사 ☞연합뉴스: 국립한국문학관장에 문학평론가 출신 임준열 민족문제연구소장 ☞뉴시스: 최휘영 장관, 임준열 국립한국문학관 관장에 임명장 수여 ☞경향신문: 국립한국문학관장에 문학평론가 출신 임준열 민족문제연구소장 ☞서울신문: 국립한국문학관 새 관장에 임준열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파이낸셜뉴스: 국립한국문학관 신임 관장에 임준열 평론가…3년 임기 시작 ☞서울경제: 내년 개관하는 국립한국문학관 관장에 임준열 문학평론가 ☞뉴스1: 국립한국문학관 신임 관장에 임준열 평론가…3년 임기 시작 ☞매일일보: 국립한국문학관 신임 관장에 임준열 씨 임명

[민들레] 2026년을 ‘역사 대화’ 통한 한중 관계 개선의 해로

2026년 1월 5일 994

일방적이지 않은 주고받기로 접근해야 성과 선언 넘어서 ‘실질적인 역사대화’ 하기를 이재명 대통령이 2026년 1월 4일부터 7일까지 중국을 국빈 방문한다니 기대된다. 그동안 뉴라이트와 전광훈 따위에 의해 창궐하고 있는 혐중 정서를 극복하고 한중 관계 개선의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방중에서 일정한 성과를 낸다면 2026년 11월 중국 광둥성 선전(深圳)에서 개최될 APEC에서의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2026년은 중국으로서는 ‘대장정 승리 90주년’을 맞는 해이므로, 반제 항일을 자국 헌법에 명시하고 있는 한국과 중국 사이에 유익한 역사 대화(historical dialogue) 복원이 가능하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序 “1949년 중국 각 민족 인민은 … 마침내 제국주의·봉건주의·관료 자본주의의 지배를 뒤엎고, 신(新) 민주주의 혁명의 위대한 승리를 쟁취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을 건립하였다.” 국가보훈부는 2025년 12월 18일 업무보고에서 신흥무관학교 옛터에 표지물을 설치할 계획을 보고했다.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신흥무관학교가 처음 시작한 터에 표석을 세우려는 노력은 2011년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을 계기로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를 중심으로 꾸준했지만, 한국 정부의 무관심과 중국 당국의 경계로 성과가 없었다. 하지만 그간의 시행착오를 교훈삼아 다시 추진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중국 내 독립운동 사적지 표지물은 거의 대도시 소재 임시정부 관련 유적지로 국한되었다. 물론, 이미 설치된 경우에도 제대로 관리가 안 된다며 한국 언론은 중국 정부를 타박하기 일쑤다. 하지만 역지사지해 보면 필요에

[더팩트] 북한 사람이란 오해…국적 없는 재일동포 ‘조선적’ 현실

2026년 1월 5일 1330

한반도 남쪽서 많이 넘어가 日 거주 조선적 2만 2711명 “고국 방문 전면 허용해야” 북한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군사적 긴장, 비핵화 협상이라는 틀 속에서 종종 한반도 내부에만 머물러 있다. <본지>는 ‘국경 밖 한반도’ 시리즈를 통해 한반도 바깥의 현장에서 포착한 북한의 모습을 조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 협력의 실질적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오사카(일본)=정소영 기자] 일본 사회에는 국적 없이 살아가는 재일동포들이 있다. ‘조선적’ 동포들이다. 조선적은 흔히 북한 국적으로 오해되지만 특정 국가의 국적이 아니다. 무국적자로 분류되는 조선적 동포는 대다수 한국에 뿌리를 둔 사람들이지만, 고향 방문이나 귀환에는 적지 않은 제약을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조선적 문제는 과거사가 아닌 현재 진행형의 인권·통일 문제”라고 지적한다. ◆무국적자로 남겨진 ‘조선적’ 조선적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으로 이주하거나 강제 동원된 조선 출신자들이 패전 이후 갖게 된 일종의 표식이다. 직접적인 계기는 1947년 5월 시행된 일본의 ‘외국인 등록령’이다. 당시 일본 정부는 미국 연합군사령부(GHQ) 통제 아래 새 헌법 시행을 준비하며 일본 내 조선인과 대만인을 헌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고, 이들을 외국인으로 분리 등록했다. 이 과정에서 국적란에는 일괄적으로 ‘조선’이 기재됐다. 여기서 말하는 조선은 국가를 의미하지 않는다. 식민지 시기 조선 출신이라는 출신지를 행정적으로 표시한 것에 가깝다. 일본 정부도 조선적을 ‘옛 조선 호적에 등록돼 있으나 대한민국 국적으로 변경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오마이뉴스] 김구가 특별히 기억한 이 사람의 정체… 쿠바에서 무슨 일 했길래

2026년 1월 5일 523

[어떤 어른] 쿠바에서 독립운동하고 한글교육 펼친 임천택 임시정부는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렇지만, 1919년 3·1운동의 정통성과 가치를 지켜냈다. 대한제국임시정부나 대한왕국임시정부가 아니었다. 그해 9월 11일 시행된 임시헌법 제2조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대한인민 전체에 재(在)함”이라고 선언했다. 독립된 나라는 인민의 나라, 민국(民國)이어야 한다는 3·1운동 이념을 지켜내며 1945년 해방을 맞이했기에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소중한 존재다. 임시정부가 그런 사명을 지킨 데는 정부 출범 당시 43세였던 백범 김구의 공이 크다. 그는 임정의 위상이 떨어진 뒤인 1926년에 국무령이 되어 정부에 활력을 불어넣고 1932년에 한인애국단 이봉창·윤봉길 의거를 성사시켜 한인애국단과 더불어 임정의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 <백범일지>에서 김구는 임정 출범 당시를 회고하면서 “나는 안씨에게 정부 문지기를 청원하였”고 말한다. 이 요청을 받은 내무총장 안창호는 ‘백궁(백악관)을 지키는 사람처럼 임시정부 청사를 지켜달라’며 경무국장직에 임명했다. 김구의 겸손과 더불어 당시 그의 위상을 반영하는 이 장면에서 나타나듯이, 1919년 당시의 김구는 임정 내의 완벽한 비주류였다. 충직한 ‘경비 아저씨’에서 출발한 그가 훗날 그곳 ‘주석’이 된 데는 해외동포들의 도움이 컸다. 동포들은 성금을 보내고 지지성명을 발표하는 등의 방법으로 한국 독립운동을 세계에 알리고 임정에 힘을 실어줬다. 그런 재외교민 중 하나로 김구가 특별히 기억하는 인물이 있다. <백범일지>는 김구가 한국인 노동자가 많은 미국·멕시코·쿠바 동포사회에 편지를 보내 자금 지원을 당부한 일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쿠바에 임천택·박창운 등이 임시정부에 후원”했다고 한 뒤, “(쿠바 동포들이) 정부 유지·발전에 공동책임을 지게” 됐다고

민족사랑 2025년 12월호

2025년 12월 30일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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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야스쿠니 한국인 합사 철폐 소송 제소 기자회견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는 내 아버지를 해방시켜라!”

2025년 12월 24일 844

☞ 다운로드: [보도자료] 야스쿠니 한국인 합사 철폐 소송 제소 기자회견 2025년 12월 23일 일본의 침략전쟁에 군인과 군속으로 강제로 동원되어 죽음에 이른 한국인 희생자 10명의 유족은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신사의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야스쿠니 한국인 합사 철폐 소송’을 시작합니다. 이 소송은 2001년부터 일본 법정에서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신사의 책임을 묻기 위해 싸워 온 희생자 유족들이 일본 법원이 외면한 인권과 존엄의 회복, 정의의 실현을 위해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신사를 상대로 한국 법정에 처음으로 제기하는 소송입니다. [붙임5. 원고 대표 발언] “내가 한국에서 일본 정부와 싸우는 이유” 야스쿠니 한국인 합사 철폐 소송을 한국 법원에 제기하기까지 25년이 걸렸습니다. 제 아버지가 돌아가신 1945년으로부터 꼭 80년 만에 그 억울한 죽음에 대한 문제를 한국 법원에 제기하게 된 것입니다. 올해가 광복 80주년이라지만 아직도 야스쿠니에 갇혀 계신 우리 아버지들은 해방을 맞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들의 자식인 우리는 여전히 일본과 야스쿠니신사의 식민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여기 모인 우리 원고들은 모두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평생 한을 품고 살아온 유가족입니다. 1990년대에 들어서야 피해자들이 스스로 일본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피해 사실에 관한 기록을 하나씩 찾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증거로 야스쿠니 무단 합사 철폐를 요구하는 법정 싸움(재한 군인군속 소송)을 시작한 것이 2001년 6월부터입니다. 그 소송투쟁 과정에서 우리 유족들은 대한민국이 엄연한 독립국으로서 존재했던 1959년에 우리

[오마이뉴스] 한국인 영령 2만 1000명, 야스쿠니에서 풀려날 수 있을까

2025년 12월 24일 468

[김종성의 히,스토리] 강화도 약탈자를 태평양전쟁 희생자와 융합시키는 야스쿠니 신사 야스쿠니 신사에서 신으로 추앙되는 약 246만 6000명 중에서 2만 1000명 정도는 한국인으로 추정된다. 일본은 유족에 대한 통지나 동의 요청도 없이 한국인 강제징병 희생자들을 자국 신사의 신으로 만들어놓고 합동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 같은 합사(合祀) 조치를 취소하라는 소송이 지난 23일 한국인 유족들에 의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기됐다. 일본 법원에는 2001년부터 합사 취소소송이 제기됐지만, 한국 법원에 제소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2012년과 2018년에 한국 대법원에서 승소한 일이 한일 양국에 미친 파장을 감안하면, 합사 피해자 유족들이 한국에서 승소할 경우에도 상당히 긍정적인 국면이 조성되리라 전망할 수 있다. 야스쿠니 신사는 1868년 이후에 발발한 각종 전쟁에서 일왕(천황)을 위해 전사한 영령들에게 제사를 지낸다. 246만의 대부분인 약 213만 4000명은 이른바 대동아전쟁인 태평양전쟁에서 배출됐다. 일본이 제국주의 국가로 전환된 것은 메이지유신(1868) 직후인 1870년대다. 이런 전환이 1874년 대만 출병을 계기로 본격화됐고, 야스쿠니 신의 대부분은 제국주의 침략 과정에서 배출됐다. 그래서 이 신사의 신으로 추앙되는 것은 일본제국주의에 헌신했다는 의미가 된다. 이는 일제 침략으로 수난을 겪다가 그곳의 신으로 억류된 한국인과 유족들에게 중대한 모욕이다. 67세 때인 1985년 8월 15일 현직 일본 총리 최초로 야스쿠니를 참배해 국제적 논란을 일으킨 나카소네 야스히로(1918~2019)는 86세 때인 2004년 2월 15일 아사히TV에 출연해 ‘A급 전범들을 야스쿠니에서 떼어내 분리 제사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200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