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고 끌려가서 전쟁터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한 없이 불쌍해요.”
이희자(82)씨의 아버지(고 이사현)는 딸이 갓 돌을 넘겼을 무렵인 1944년 2월 중국으로 끌려가 일본 육군 특설건축근무 제101중대 소속 군속(군에 소속된 민간 직원)으로 근무했다. 그는 해방 두 달을 앞둔 1945년 6월11일 24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이후 창씨개명된 ‘이원사연’이란 이름으로 1959년 4월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됐다. 1997년에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씨는 “우리는 해방된 민족이고 해방된 가족인데 돌아가신 분들을 강제로 합사하고 있는 것은 아직도 (한국을) 자기네 식민지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와 민족문제연구소 등은 23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야스쿠니 한국인 합사 철폐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이번 소송은 야스쿠니 신사에 가족이 강제로 합사된 유족 10명이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 신사를 상대로 한국 법원에 내는 첫 소송이다. 현재 야스쿠니 신사에는 도조 히데키 등 에이(A)급 전범 14명과 함께 한국인 2만1천여명이 합사돼 있다.
유족들은 일본 정부가 △조선인들을 군인·군속으로 강제동원해 전쟁터에서 사망에 이르게 했고 △이후 희생자 정보를 야스쿠니 신사에 제공해 합사에 관여했으며, 야스쿠니 신사는 △유족들의 동의 없이 희생자들을 무단 합사해 유족들의 추모 감정과 인격권 등을 침해하고 있으며 △‘천황을 위한 전몰자’ 신격화로 침략 전쟁에 강제동원된 희생자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유족들은 야스쿠니 신사의 제신명표(전사자 정보가 기재된 표) 등에서 희생자 성명 삭제를 요구하고,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 신사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들이 청구한 손해배상 총액은 8억8천만원이다.
유족들은 24년 야스쿠니 합사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일본에 배상을 요청했지만 일본 법원은 번번이 이를 외면했다. 유족들은 2001년 군인·군속 소송 피해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시작으로 2007년과 2013년 각각 1·2차 야스쿠니 무단 합사 철폐 소송을 추진했지만, 모두 패소했다. 일본 법원은 “유족들이 불쾌감이나 혐오감을 느꼈다고 하더라도 종교단체(야스쿠니 신사)의 종교적 자유는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펼쳤다. 현재는 야스쿠니 합사 피해자 3세가 지난 9월 제기한 3차 소송이 일본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동안 한국 법원에서 소송이 진행되지 못했던 이유는 다른 나라의 재판관할권에 기속되지 않는다는 ‘주권 면제’ 법리 때문이었다. 한국 법원은 일본 정부가 피고인 사건의 재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 일본 정부가 아니라 미쓰비시 등 전범기업들을 피고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2021·2023년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한국 법원이 “반인도적 범죄나 불법 행위가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 발생한 경우 주권 면제를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일본 정부를 상대로도 유족들이 소송을 낼 수 있게 됐다.
우여곡절 끝에 소송이 접수됐지만, 앞으로의 재판 과정은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일본 정부는 위안부 소송 등에서 무대응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소송 대리인단 단장인 장완익 변호사는 “소장을 보내도 일본 정부가 수령을 하지 않아 시간이 허비될 가능성이 높다”며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 신사가 이번에는 진지한 자세로 소송에 임해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장종우 기자 whddn3871@hani.co.kr
<2025-12-23> 한겨레
☞기사원문: 야스쿠니 강제 합사 유족들, 한국서 첫 소송 제기…“아버지 돌려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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