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적이지 않은 주고받기로 접근해야 성과
선언 넘어서 ‘실질적인 역사대화’ 하기를

이재명 대통령이 2026년 1월 4일부터 7일까지 중국을 국빈 방문한다니 기대된다. 그동안 뉴라이트와 전광훈 따위에 의해 창궐하고 있는 혐중 정서를 극복하고 한중 관계 개선의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방중에서 일정한 성과를 낸다면 2026년 11월 중국 광둥성 선전(深圳)에서 개최될 APEC에서의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2026년은 중국으로서는 ‘대장정 승리 90주년’을 맞는 해이므로, 반제 항일을 자국 헌법에 명시하고 있는 한국과 중국 사이에 유익한 역사 대화(historical dialogue) 복원이 가능하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序
“1949년 중국 각 민족 인민은 … 마침내 제국주의·봉건주의·관료 자본주의의 지배를 뒤엎고, 신(新) 민주주의 혁명의 위대한 승리를 쟁취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을 건립하였다.”
국가보훈부는 2025년 12월 18일 업무보고에서 신흥무관학교 옛터에 표지물을 설치할 계획을 보고했다.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신흥무관학교가 처음 시작한 터에 표석을 세우려는 노력은 2011년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을 계기로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를 중심으로 꾸준했지만, 한국 정부의 무관심과 중국 당국의 경계로 성과가 없었다. 하지만 그간의 시행착오를 교훈삼아 다시 추진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중국 내 독립운동 사적지 표지물은 거의 대도시 소재 임시정부 관련 유적지로 국한되었다. 물론, 이미 설치된 경우에도 제대로 관리가 안 된다며 한국 언론은 중국 정부를 타박하기 일쑤다. 하지만 역지사지해 보면 필요에 따라 장제스(蔣介石)의 지원을 받으며 활동했던 임시정부의 유적지를 중국 당국이 애지중지하며 관리할 명분은 크지 않다. 다만 중국도 경제와 안보 분야 등에서 한국과의 협력이 중요하므로 선별적이고 제한적으로 독립운동 유적지를 관리하고 있다.

역사 대화는 말 그대로 일방적일 수 없고 주고받기이다. 중국 땅에 한국 독립운동 유적지 보존을 요구하려면 우리도 그에 상응하는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 땅에는 중국의 반제 운동의 유적지는 없다. 1919년 당시 21살이던 저우언라이(周恩來, 1898~1976)는 일본 유학 중 3·1운동 소식을 듣고 그해 7월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출발하여 부산, 서울, 평양으로 거쳐 중국 단둥으로 들어갔다. 그렇다고 저우언라이가 도착한 옛 서울역 건물 어딘가에 그의 표석을 설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기서 제안한다. 독립운동가 김훈(金勳, 1901~1936, 1995년 독립장 추서)과 저우언라이를 매개로 중국과 역사 대화를 나눠보자. 양림(楊林)으로 더 잘 알려진 김훈은 신흥무관학교 출신으로 1920년 청산리 대첩에 참전했고 이후 황포군관학교에서 저우언라이와 인연을 맺은 뒤 줄곧 중국 공산당의 반제 항일 투쟁 중심에 있었다. 김훈은 위기 속 홍군이 황하를 성공적으로 건너기 위한 중요한 작전을 지휘하다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 김훈의 부인 김금주(金錦珠, 1901~1936, 이명 이추악 李秋岳) 또한 3·1운동에 참여한 이후 김훈과 마찬가지로 중국 공산당에 입당했는데 최초의 조선인 여성 당원이다. ‘중국 인민의 벗’으로 칭송받는 저우언라이만큼 한국 독립운동에 깊이 인연을 맺은 인물도 드물다.
“조선의 3·1독립운동은 5·4운동과 함께 세계 신사조의 영향을 받았고 동아시아 역사상 각 민족을 더욱 자각케 한 사건이었다.” …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역에서 쓰러뜨린 안중근 의사의 쾌거야말로 일본 제국주의 침략을 반대하는 한중 공동 투쟁의 시작” – 저우언라이, 〈텐진 학생연합회 회보〉에서, 1919년 7월호.
“학생 시대와 황포 시대, 그리고 혁명 군대에서 한국 동지들과 같이 사업을 진행하였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 조선 용사들은 중국의 대지에서 끓는 피를 뿌렸지만, 조선의 혁명 문제와 나라를 회복하는 문제를 논할 때는 서로 논쟁하게 된다. 사실상 그들의 목적은 모두 한국의 회복과 독립을 위함이요, 차이점은 방법이 다를 뿐이다.” – 저우언라이, 한국 임시의정원 의원들과의 간담회에서, 1942년 11월 10일.

사드 배치 문제를 둘러싼 한중 간 갈등이 고조되던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베이징대학에서 행한 연설이 바로 역사 대화 시도의 대표적 사례이다. 다만 이재명 정부는 선언에 그치지 말고,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역사 대화의 테이블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과 중국은 근대사의 고난을 함께 겪고 극복한 동지입니다. 나는 이번 중국 방문이 이러한 동지적 신의를 바탕으로 양국 관계를 한 차원 더 발전시켜 나가는 출발점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또한 나는 한국과 중국이 ‘식민 제국주의’를 함께 이겨 낸 것처럼 지금의 동북아에 닥친 위기를 함께 극복해 나가길 바랍니다. – 문재인 대통령, 베이징대학 연설에서, 2017년 12월 15일.
[참고문헌]
최용수, 「주은래와 조선 항일투사들」, 한국민족운동사학회, 1998.
김정헌, 「저우언라이와 한반도」, 동북아역사재단 뉴스레터, 2015. 2.
김주용, 「청산리 전투의 숨은 주역, 김훈」, 프레시안 2020. 12. 4.
국가보훈부, 「국가보훈부 업무보고」, 2025. 12. 18.
디지털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 https://search.i815.or.kr/dictionary/intro.do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방학진
<2026-01-11> 민들레


![img-top-introduce[1]](/wp-content/uploads/2016/02/img-top-news1.p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