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huge collection of 3400+ free website templates, WP themes and more http://jartheme.com/ at the biggest community-driven free web design site.

주요기사

[제주일보] 제주4.3 양민 학살….군경 지휘관 ‘국립묘지 안장’ 예우

2026년 4월 6일 451

집단 학살 작전 전개해도 ‘서훈.공로’ 이유로 현충원에 안장 제주4·3 당시 양민 학살에 가담한 군·경 지휘관들이 국립묘지에 안장돼 논란이 일고 있다. 2일 본지 취재 결과, 4·3당시 강경 진압 작전으로 전개했음에도 서훈·공로를 인정받거나 전몰·전상·순직 등 국가유공자로 등록된 이들의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구체적으로 서울 현충원에 박진경·김명·문용채·최석용, 대전 현충원에 함병선·서종철·유재흥·김두찬의 묘비가 있다. 2003년 정부가 발간한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박진경은 1948년 5월 6일 육군 9연대장으로 제주에 부임한 후 양민을 무차별 검거·연행, 강경 진압 작전을 주도하고도 그해 6월 중령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김명 대위는 2연대 작전참모이자 무장대(산사람)로 위장해 활동한 특수부대 부대장으로 ‘함정 토벌’로 많은 양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4·3당시 제주경찰장이었던 문용채는 일본군 헌병 소위 출신으로 도민들에게 무조건 경찰에 순종할 것을 요구했고, 1948년 5월 1일 오라리 방화사건에도 깊숙이 개입했다. 최석용은 항일운동을 하다 변절한 이래 1949년 2연대(연대장 함병선) 소속 대대장으로 부임 후 서북청년회를 지휘하며 강경 진압 작전의 선두에 서서 제주도민을 학살했다. 대전 현충원에 안장된 함병선은 제2연대장 부임 후 1949년 1월 조천면 북촌리 주민 400여 명의 집단 학살을 주도하고, 두 차례 군법회의 최고지휘관으로서 재판 절차 없이 수많은 민간인을 처벌했다. 또한 11연대가 9연대로 교체되면서 9연대 부연대장을 맡았던 서종철과 민간인 학살을 명령했던 해병대 정보참모 김두찬도 도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1949년 3월 2일 제주도지구전투사령부가 설치되면서 사령관으로 부임한 유재흥 대령은 선무공작으로 양민들을 귀순시켰지만, 많은 이들이 군법회의에 회부돼 육지

[전북일보] 친일잔재 청산 확실히 해야한다

2026년 4월 1일 358

일제치하에서 해방된 지 작년에 80년이 됐으나 역사 청산이 크게 부진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광복회가 지난해 광복 80주년을 앞두고 실시한 독립유공자 후손과 국민 대상 정체성 인식조사에서 ‘해방 이후 친일 잔재가 청산되지 않았다’는 응답이 후손 78.0%, 국민 70.9%로 나타났다. 지금이라도 친일 잔재 청산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후손 83.1%, 국민 71.8%에 달했다. 미완의 과제임이 분명하다. 때마침 전북특별자치도가 친일 잔재 청산에 다소 미온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도 스스로 청산대상으로 규정한 인물들의 선양사업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전북도는 지난 2020년 ‘친일 잔재 전수조사 및 처리방안 연구용역’을 통해 도내 친일 잔재 133건을 규명했다. 가미카제 특공대를 미화하는 등 친일 행적이 뚜렷한 인물들을 명백한 청산대상으로 분류한 것이다. 하지만 올해 문화재단 지원사업에서 청산대상으로 지목된 인물을 기리는 특정 단체가 선정돼 자금지원을 받게 된 것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재단 측은 “기획안 내용이 우수하고 제자들에게까지 연좌제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해명했으나 어쨋든 친일잔재 논란을 만든 것은 어설픈 행정이다. 군산시가 운영하는 채만식문학관은 연간 1억3000만원의 예산이 투입되는데 친일행적 논란과 관련, 비판적 시각이 없지 않다. 군산의 ‘백릉길(채만식)’이나 고창의 ‘인촌로(김성수)’ 등 친일인사의 호를 도로명주소로 고수하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 시각이 있다. 물론 과거에 대한 행적에 대한 비판과 예술 창작에 대한 평가는 별개의 문제로 볼 수도 있겠으나 민족의식 고양이라고 하는 큰 틀에서 벗어나선 안된다. 지금까지도 친일잔재 청산이 완결되지 않은 것은 분명 큰

[경향신문] 대통령도 호응한 ‘고문 수사관’ 상훈 취소···7년 전 시민사회도 “정부가 나서야” 주문

2026년 4월 1일 399

북한 공작원에 포섭돼 간첩활동을 한 혐의로 1986년 2월 체포된 김양기씨(76)는 그를 지하실에 묶어두고 발가벗겨 고문하던 육군본부 505보안대 지휘관들의 이름을 지금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지휘관들은 공을 인정받아 상훈을 받았다. 김씨의 끈질긴 요구로 2018년 지휘관 3명의 보국훈장과 대통령 표창이 취소됐다. 그는 30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자신을 고문한 일을 공적 삼아 떵떵거리며 사는 가해자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속이 쓰렸다고 말했다. 김씨는 “1994년 이들을 고소했지만 담당 검사가 ‘내가 무슨 힘이 있어요. 법을 고치세요’라고 할 뿐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25일 사망한 ‘고문 기술자’ 이근안씨의 상훈 대부분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정부가 뒤늦게 고문 수사관 등의 상훈을 전수조사해 취소하는 작업에 나섰다. 하지만 김씨처럼 억울한 목소리는 어제오늘 나온 게 아니었다.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이고 상훈 박탈을 주장하던 시민사회의 움직임은 예전부터 계속돼 왔다. 2019년 12월 홍익표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현 청와대 정무수석)이 ‘역사정의실천연대 과거사특위’에 의뢰해 작성한 ‘과거청산 입법 현황과 과제’ 문건에는 국가폭력 가해자 상훈 취소가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하고 이를 입법화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특위는 2012년 민족문제연구소 등 422개 단체가 모인 단체로 친일·독재 잔재 청산과 역사정의 실현을 위해 상훈 취소 등을 추진해왔다. 특위는 이 문건에서 당시 행정안전부가 2018·2019년 간첩조작사건 및 광주민주화운동 등 관련자 61명의 서훈 취소 결정을 한 것에 대해 “소극적·수동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인권침해 사건 238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했고, 79개

민족사랑 2026년 3월호

2026년 3월 27일 387

[바로보기] * 왼쪽 바로보기로 들어가셔서 표지의 각 목차를 클릭하시면 해당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오마이뉴스] 잔혹하게 폭행하고 사회적 불구로… 가해자의 이름 공개합니다

2026년 3월 24일 508

[1980 사북, 늦은 메아리] <왕사남> 천만 넘는 나라에서 46년간 방치된 이 사건 [기자말] 특별기획 ‘1980 사북, 늦은 메아리’는 박봉남 감독의 영화 <1980 사북> 전국 상영을 계기로 공론화한 사북 사건을 단지 과거사로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건의 역사적 의미와 국가의 대응, 공동체와 시민 사회의 변화 과정을 추적 기록해 국가 폭력의 기억과 치유 과정을 시민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S’의 이야기 그는 46년을 살았다. 태어나 자라고 학교 들어가고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다시 자녀를 낳아 그 아이들이 성인의 문턱에 와 있을 시간. 46년이면 ‘세월’이라는 말이 붙어도 좋을 만큼, 누구에게든 삶 전체가 완성되기에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다. 하지만 그에게 지난 46년은 마치 존재할 가치가 없었던 것 마냥 삶 전체가 송두리째 부정 당하고 파괴되어 온 시간이었다. 그동안 그는 부당하게 덧씌워진 누명과 낙인 속에서 불명예를 안고 숨죽이며 살아왔다. 가장 가까운 이웃들이 제일 먼저 그를 멀리했고, 심지어 그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도 많았다. 직장을 잃고 변변한 일자리도 구하지 못해 아이들을 제대로 먹이지도 가르치지도 못했고, 몸은 나이보다 더 늙고 병들었다. 어디 가서 높은 분들에게 좀 이야기를 하자고 해도 본체 만체, 아무리 하소연을 해도 들은 체 만 체다. 왜곡된 과거 때문에 어디 가서 당당히 말하기도 힘들었던 그의 이름을 그냥 S라고 하자. ‘K’라는 두려운 이름 S는 누구 때문에 삶이 이렇게

[오마이뉴스] 부천의 독립운동, 왜 1919년 3월 24일 만세운동이 벌어졌을까

2026년 3월 24일 431

소사독립만세운동은 이후 1927년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으로 이어지다 1919년 3월 1일, 우리 선조들은 일제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자주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전 민족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을 진행했다. 서울에서 시작된 독립만세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으며, 일제의 억압과 수탈에 지쳐있던 우리 민족의 가슴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3.1운동은 국내에 국한되지 않고 만주와 연해주 등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해외에서도 진행되었으며, 심지어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도 진행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참여와 희생으로 진행된 3.1운동은 우리 민족에게 큰 의미를 남겼다. 독립운동가들은 한달 후인 4월 11일 중국 상해에 모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하였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될때까지 항일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되었다. 또한 현재 대한민국의 뿌리가 되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군주제를 반대하며 국민이 주인인 민주공화국을 지향하여 현재의 대한민국의 모태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부천은 왜 3월 24일 만세운동이 진행되었을까? 이 날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기 서부지역의 3.1운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날을 통해 확산되었다. 지금처럼 방송과 통신이 발달되지 않았으로 장날에 정보가 많이 교환되었기 때문이다. 김포지역은 1919년 3월 22일 시작하여 29일까지 8일간에 걸쳐 양촌면, 월곶면, 하성면, 고촌면 등에서 진행되었다. 인천에서는 3월 24일 계양의 황어장터에서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약 600명의 사람들이 모여 만세운동을 진행하였는데 일제 순사들이 주도자인 심혁성을 체포하자 만세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심혁성을 석방시키기 위해 호송순사를 공격하였는데 안타깝게도 순사의 칼에 이은선이 사망하게 된 것이다. 분노한 사람들은 이은선의 사망원인을 밝히기

[연합뉴스] “야스쿠니 합사,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 두 번 죽이는 행위”

2026년 3월 24일 364

日서 ‘합사 철회 소송 제기’ 희생자 손주 세대 “젊은 세대에도 굴욕” (도쿄=연합뉴스) 경수현 특파원 = “일본 야스쿠니신사 합사는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을 두 번 죽이는 행위이고 할아버지가 합사돼있다는 것은 저 같은 젊은 세대에도 매우 불명예스럽고 굴욕적인 일입니다.”. 야스쿠니 신사에 무단 합사된 희생자의 손주 세대 6명이 지난 9월 일본 도쿄지방재판소(지방법원)에 제기한 소송의 2차 구두변론이 23일 열렸다. 원고 중 한 명인 박선재 씨는 재판소에 낸 진술서에서 “할아버지를 강제 동원해 죽음에 이르게 한 것에 그치지 않고 가족 동의조차 구하지 않고 야스쿠니 신사에 무단 합사한 것은 우리 집 전체에 치유할 수 없는 피해를 주고 있다”며 이처럼 강조했다. 그는 하루라도 빨리 합사를 취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씨의 할아버지는 일본의 침략전쟁에 강제로 동원돼 중국에서 억울하게 숨졌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태평양 전쟁 때 숨진 자국 군인뿐만 아니라 강제로 끌려가 참전한 한국인 전몰자 명부도 야스쿠니신사에 제공하는 바람에 태평양전쟁 A급 전범과 함께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돼있다. 그는 이날 재판 후 일본 시민단체 등의 지원으로 참의원 의원회관에서 열린 2차 구두변론 보고 모임에도 참석해 “잘못된 역사 문제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지 않고 빨리 해결되기를 바란다”며 “일본에서도 많은 분이 도와준다는 것을 직접 보고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번 소송을 지원하는 민족문제연구소의 김영환 대외협력실장은 작년 12월 23일 한국 법원에도 야스쿠니신사 합사 취소 소송이 제기됐다며 일본 정부가 재판에 응하지

[오마이뉴스] 고향 구미에 독립운동기념관이 건립되기를 바라는 이유

2026년 3월 24일 319

지난 14일, 서울역 근처 민족문제연구소를 처음 찾았다. 과거사 청산을 연구하는 시민모임 ‘즐기게’에서 ‘네팔의 이행기 정의’를 발제하기 위해서였다. 서울로 가는 길에 마침 식민지와 이행기 정의에 관한 논문을 읽었다. 이행기 정의란 독재나 전쟁, 식민 지배 등 과거의 불의를 청산하고 사회가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제도적 노력을 뜻한다. 발제를 하러 도착한 곳이 민족문제연구소였으니, 그 우연이 어쩐지 필연처럼 느껴졌다.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는 민족문제연구소 창립 35주년을 맞아 기획전으로 ‘세상을 바꾼 시민, 함께 만든 역사’가 열리고 있었다. 나는 발제 전에 이들 전시물을 천천히 둘러보며 오래전부터 품어온 생각들이 다시 떠올랐다. 민족문제연구소 하면 임종국 선생이 먼저 떠오른다. 평생을 친일파 연구에 바친 학자로, 그의 유지를 이어받아 연구소가 완성한 <친일인명사전>은 우리 사회가 외면해온 불편한 진실을 기록한 귀중한 문헌이다. 창립 35주년, 사람으로 치면 장년에 접어든 이 연구소가 걸어온 길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음을 전시물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법학을 공부하면서 <친일인명사전>을 여러 차례 참고했다. 사전에 등재된 법학자로는 전봉덕, 유진오, 홍진기 등이 있다. 전봉덕은 일제강점기 고위직 경찰이었고, 유진오는 조선임전보국단 등 친일 단체에서 활동했으며, 홍진기는 일제 판사로 복무했다. 이들은 광복 이후 친일 행적을 지운 채 법조계와 학계, 언론계의 사회지도층으로 행세했다. 그들의 후학들 중에 이들을 여전히 찬양하는 행태가 남아 있으니, 무지의 소치인지, 아니면 그 삶을 은근히 동경하는 것인지, 어느 쪽이든 씁쓸하기는 마찬가지다. 고향 구미로 눈을 돌리면

[MBC] 가짜 인감 동원한 ‘日 제3자 변제’‥尹대통령실 개입 정황 확인

2026년 3월 23일 2493

①지원재단 ②지원단 ③재단법인‥정부 산하기관 도장이 3개? 지난해 말부터 올 초까지 실시된 외교부와 행정안전부의 자체 감사에서 황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행안부 산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재단’의 수발신 문건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3가지 종류의 인감도장이 나온 것입니다. 확인된 도장 중 하나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명칭 그대로였고, 다른 하나는 ‘지원재단’이 아니라 ‘피해자지원단’이라고 각인됐습니다. 또 다른 도장은 ‘재단법인’이라는 문구가 추가됐습니다. ‘지원단’이라는 도장은 3개, ‘재단법인’이 들어간 도장은 2개 만들어진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지원재단’이 공식 명칭이고, 공식 인감도장도 이대로 만들었으니, 나머지들은 효력이 없는 가짜 도장입니다. 가짜라면 비슷하게라도 만들어야 할 법한데, 심지어 글자까지 틀렸을 정도로 허술합니다. 그런데 이 도장들이 정부의 ‘일제 강제동원 제3자 변제안’ 소송 과정에 버젓이 활용됐습니다. 그 내막은 더 충격적입니다. ‘가짜 인감’ 5개 만들어 58차례 사용‥군사작전하듯 처리 윤석열 전 대통령 취임 이듬해, 정부가 ‘제3자 변제안’을 발표했습니다. 일본 전범기업들이 줘야 할 돈을 우리나라 재단이 대신 지급하자는 건데, 국민적 반발이 일었습니다. 당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까지 맞물려, 일본에 대한 여론의 반감은 대일본 저자세를 고수하는 윤석열 정부로 옮겨붙고 있었습니다. 당사자인 강제동원 피해자들 일부도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정부와 피해자지원재단이 이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한 끝에 15명 가운데 11명은 배상금을 수령했지만, 4명은 끝내 수용을 거부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이 돈을 법원에 맡겨 채무를 면제받기 위해 ‘공탁’ 절차를 밟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지원재단 측은 시간을 끌 경우 반발에 직면해 동력을

[성명] 윤석열 정권의 3자 변제 추진과정에 대한 위법사항을 전면 수사하라

2026년 3월 20일 663

☞ 다운로드: [성명] 윤석열 정권의 3자 변제 추진과정에 대한 위법사항을 전면 수사하라 윤석열 정권의 3자 변제 추진과정에 대한 위법사항을 전면 수사하라 최근 언론 보도와 정부 감사 결과를 통해 윤석열 정권이 추진한 일제 강제동원 ‘제3자 변제’ 과정에 대통령실이 직접 개입하여 조직적인 위법행위를 저지른 정황이 낱낱이 드러났다. 2018년 강제동원 대법원 승소 판결은 피해자들이 수십 년의 피눈물 나는 투쟁을 통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이라는 장벽을 극복하고,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와 일본 전범 기업의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 책임을 명확히 선언한 역사적인 성과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권은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부당한 제3자 변제를 강요하며 사법 주권을 포기하고,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선언한 판결을 부정하는 반헌법적 폭거를 자행했다. 나아가 역사 정의를 거부하는 피해자들에게 배상금 공탁을 억지로 시도하다 법원에 의해 모두 기각당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쟁취한 승소 판결을 무력화하려던 윤석열 정권의 제3자 변제안은 이로써 역사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이미 완벽하게 파탄 났다. 파탄 난 제3자 변제안을 무리하게 강행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실이 개입한 정황은 참담할 따름이다.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실 안보실은 일본과의 다자외교 일정 및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출을 앞두고 ‘리스크 관리’를 명분으로 공탁을 서두를 것을 외교부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종용했다. 피해자들의 아픔을 단순한 외교적 걸림돌로 치부한 이 속도전 속에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과 파견 공무원들은 사용 승인조차 받지 않은 위조 인감을 무단으로 복제하여 법원 공탁 서류에 수십 차례나 찍어 제출하는 초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