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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구가 특별히 기억한 이 사람의 정체… 쿠바에서 무슨 일 했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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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어른] 쿠바에서 독립운동하고 한글교육 펼친 임천택

임시정부는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렇지만, 1919년 3·1운동의 정통성과 가치를 지켜냈다. 대한제국임시정부나 대한왕국임시정부가 아니었다. 그해 9월 11일 시행된 임시헌법 제2조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대한인민 전체에 재(在)함”이라고 선언했다. 독립된 나라는 인민의 나라, 민국(民國)이어야 한다는 3·1운동 이념을 지켜내며 1945년 해방을 맞이했기에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소중한 존재다.

임시정부가 그런 사명을 지킨 데는 정부 출범 당시 43세였던 백범 김구의 공이 크다. 그는 임정의 위상이 떨어진 뒤인 1926년에 국무령이 되어 정부에 활력을 불어넣고 1932년에 한인애국단 이봉창·윤봉길 의거를 성사시켜 한인애국단과 더불어 임정의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

<백범일지>에서 김구는 임정 출범 당시를 회고하면서 “나는 안씨에게 정부 문지기를 청원하였”고 말한다. 이 요청을 받은 내무총장 안창호는 ‘백궁(백악관)을 지키는 사람처럼 임시정부 청사를 지켜달라’며 경무국장직에 임명했다.

김구의 겸손과 더불어 당시 그의 위상을 반영하는 이 장면에서 나타나듯이, 1919년 당시의 김구는 임정 내의 완벽한 비주류였다. 충직한 ‘경비 아저씨’에서 출발한 그가 훗날 그곳 ‘주석’이 된 데는 해외동포들의 도움이 컸다. 동포들은 성금을 보내고 지지성명을 발표하는 등의 방법으로 한국 독립운동을 세계에 알리고 임정에 힘을 실어줬다.

그런 재외교민 중 하나로 김구가 특별히 기억하는 인물이 있다. <백범일지>는 김구가 한국인 노동자가 많은 미국·멕시코·쿠바 동포사회에 편지를 보내 자금 지원을 당부한 일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쿠바에 임천택·박창운 등이 임시정부에 후원”했다고 한 뒤, “(쿠바 동포들이) 정부 유지·발전에 공동책임을 지게” 됐다고 회고했다.

당시 김구는 동포들로부터 “우리 민족에 큰 생색이 될 것을 하고 싶은데, 거기 쓸 금전이 문제된다면 주선하겠다”는 서신을 받았다. ‘생색을 내다’라는 말이 ‘체면을 세우다, 할 일을 하다’ 같은 좋은 뉘앙스로 쓰였던 당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쿠바 교민들과 임천택의 후원은 민족을 위해 큰 생색을 내는 일이었다.

쿠바에서 독립운동 지원한 임천택

▲임천택씨 ⓒ재외동포청

국가보훈부가 발간한 <독립유공자공훈록> 제14권 임천택 편은 임천택이 “1920년대 말 이후 광복 시까지 여러 차례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지원”했다며 대한인국민회(본부 샌프란시스코) 쿠바지방회의 서기·총무·회장·고문, 대한여자애국단 마탄사스지부(쿠바 최북단인 아바나에서 동쪽 약 80km)의 고문, 재미한족연합위원회의 미주지방 의원, 재큐한족단 마탄사스지방회의 대표 등을 역임했다고 알려준다.

그런데 임천택의 고국 사랑에서 눈여겨볼 지점이 있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가 펴낸 <독립운동인명사전> 임천택 편은 “1903년 4월 16일에 경기도 광주군에서 태어났다”고 한 뒤 “두 살이 되던 1905년 홀어머니와 멕시코로 이민가서 1921년 3월 쿠바로 이주하였다”고 기술한다. 어머니가 그를 데리고 인천항을 떠난 때가 1905년 2월이었으므로, 한국을 떠날 때의 그는 만 1세에 불과했다.

그가 자신이 기억하는 고국을 살리기 위해 임정과 김구를 지원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만 1세 때의 고국 풍경을 기억했다 해도 희미하고 어렴풋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확실히 기억한 것은 자신을 안고 혹은 업고 한국을 떠난 어머니의 품 혹은 등과, 이국땅에서 혼자 힘으로 자기를 키워낸 어머니의 모정이다. 그는 어머니의 몸과 모정을 통해 형상화시킨 고국을 위해 머나먼 쿠바에서 일생을 바쳤다. 한민족에 대한 그의 애정은 곧 어머니에 대한 효(孝)였다.

그는 고국 동포들이 일제에 항거할 때마다 그 효를 실천했다. 경기도 광주 태생인 그는 고국의 전라도 광주 학생들이 1929년 11월 3일 궐기했을 때도 응원을 보냈다. <재외한인연구> 2023년 제62호에 실린 김재기 전남대 교수의 논문 ‘쿠바에서 광주학생독립운동 지지운동’은 이 시기에 마탄사스에서 동쪽 30킬로미터 정도인 카르데나스에 거주했던 임천택을 거명하는 대목에서 “카르데나스지회에서도 회장 임천택을 중심으로 후원금을 모금”했다면서 여기서는 38명이 참여했다고 기술한다.

보훈부가 발간한 <국외독립운동사적지 실태조사보고서 III: 멕시코·쿠바>는 “(임천택은)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1943년 4월 4일 아바나 등 3곳의 한인회를 통합한 재쿠한족단 창립에 앞장서 쿠바 한인사회의 존재와 항일투쟁 의지를 대외에 천명했다고 한다”라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때 그가 주도한 것은 국군의 뿌리인 한국광복군 지원을 위한 ‘1전 모금운동’이다. 1920년대부터 일제 패망 때까지 변함없이 독립운동을 지원했던 것이다.

민족 정체성 지키고자 했던 어른

▲독립운동가 임천택(에르네스토 임. 1903∼1985) 선생이 쿠바 마탄사스 주 마탄사스 시의 엘 볼로 마을에 세운 한글 학교 건물의 모습. ⓒ연합뉴스

그런데 그가 독립운동에만 기여한 것은 아니다. 쿠바 교민의 정체성 유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처음에는 지리적 이유로, 나중에는 경제체제의 이질성 때문에 한국과의 교류가 힘들었던 이곳에서 한국 교민들이 민족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던 데는 그의 공로가 크다.

일본제국주의는 쿠바의 한국인들이 일본인의 정체성을 갖도록 하기 위해 압력을 행사했다. <한국민족운동사연구> 2018년 제95권에 실린 성주현 당시 전남대 강사의 논문 ‘쿠바 한인사회를 통해 본 천도교와 민족운동’은 “한인사회가 형성된 곳이면 어김없이 일본영사관에서 찾아와 한인의 등록을 요구”했다고 한 뒤 이에 맞선 임천택의 활동을 기술한다.

“이 시기 쿠바 한인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는 한글교육이었다. 쿠바지방회는 1923년 민성국어학교를 설립하고 후원하다가 1932년 지방회 직속기관으로 전환한 후 모든 운영비를 제공하였다. 임천택은 1925년부터 3년 동안 교사로, 1931년부터 5년간은 교장으로 활동하였다. 이 외에도 임천택은 야학강당을 개설하고 한인 노동자와 2세를 위한 한글교육을 1942년까지 지속하였다.”

임천택은 고국에서 한글을 배웠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런 그가 쿠바에서 한글을 가르치는 데 청춘을 바쳤다. 그는 그 글자로 쿠바 한국인들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했다.

본래 기독교인이었던 임천택은 인내천 사상에 감동해 1926년에 천도교로 개종하고 1930년에 천도교 쿠바종리원을 세웠다. 그러다가 1938년부터 흐지부지됐다. 보훈부의 <독립운동사자료집 제8권: 임시정부사 자료집>은 “최린 일파가 일본 정책에 협동하여 천도교 안에 친일 태도가 만연”한 것에 실망했다고 알려준다. 1937년 중일전쟁 이래로 일본이 독립운동가들을 집중 공략해 다수의 친일파를 만들어내는 상황에서 임천택이 천도교 본부의 일부 친일파들에게 실망했던 것이다.

쿠바 한국인들의 정체성을 위한 그의 활동은 해방 이후에도 변함없었다. 위의 <독립운동인명사전>은 “1952년 4월 1일부터 마탄사스와 카르데나스 지방에서 국어교육을 실시하였으며, 1954년 <큐바한인 이민력사>를 태평양주보사에서 출판하였다”고 기술한다.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쿠바의 구체제를 전복한 사건도 그의 집념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1997년 8월 28일 자 <경향신문>은 대한민국정부가 그의 사후 12년 만에 뒤늦게 그를 독립유공자(건국훈장 애국장)로 지정한 일을 보도하면서 “쿠바가 공산화된 59년부터 임옹은 한국인 2, 3세를 상대로 한글교육운동을 벌이다 85년 9월 신경쇠약증세 등으로 숨졌다”고 전했다.

위의 “1952년 4월 1일부터”와 “59년부터”의 ‘부터’는 ‘이후에도’로 바꿔 읽어야 한다. 1952년 이전과 이후에도, 1959년 이전과 이후에도 그가 항상 신경을 쓴 것은 민족정체성과 한글 보급이다.

신경쇠약증의 발병 원인이 다른 데 있었을 수도 있지만, 일관된 인생 역정을 감안하면 그의 신경쇠약은 독립운동과 더불어 민족정체성 및 한글교육과도 무관치 않으리라 볼 수 있다. 어머니가 만 1세 때 자신을 데리고 떠난 고국을 지구 반대편에서 항상 그리워한 그는 독립운동과 민족정체성 및 한글에 온 신경을 기울이며 살다가 향년 82세로 눈을 감았다.

김종성

<2026-01-04>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김구가 특별히 기억한 이 사람의 정체… 쿠바에서 무슨 일 했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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