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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국군의 날 행사에도 일제의 흔적이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2025년 10월 1일 465

국군의 날 행사가 열리는 ‘계룡대’에 남아있는 일제잔재  군부대 소재지를 통틀어 ‘〇〇대(臺)’라는 별칭으로 부르는 방식은 일제 군국주의 시절의 유습과 맞닿아 있습니다. 보통 ‘대(臺)’는 높고 평평한 공간이나 그 위에 조성된 건축물을 뜻합니다. 하지만 1937년 일왕이 카나가와현으로 새로 이전한 육군사관학교의 소재지에 ‘상무대(相武台, 소부다이)’라는 별칭을 내린 것을 시작으로 1941년 육군항공사관학교를 ‘수무대(修武臺, 슈부다이)’로, 1943년 육군예과사관학교를 ‘진무대(振武臺, 신부다이)’로 잇따라 명명하기 시작했습니다. 내용 자세히 보러 가기 해방 이후 무분별하게 차용된 일제식 이름 짓기 일제가 즐겨 사용했던 이같은 이름 짓기는 해방 이후에도 이승만, 박정희 등 독재정권에 의해 단절되지 않고 그대로 차용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연무대(鍊武臺, 논산 육군제2훈련소), 상무대(尙武臺, 광주 육군종합학교), 화랑대(花郎臺, 육군사관학교), 선봉대(先鋒臺, 육군지상자전분대), 문무대(文武臺, 육군학생군사학교)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육·해·공군본부가 자리하며 국군의 날 행사가 주로 열리는 ‘계룡대(鷄龍臺)’ 역시 이러한 ‘○○대’의  별칭입니다. *참고문헌: 식민지비망록 1(이순우, 2024) 일본 사이타마현에 자리한 육군예과사관학교에 대해 소재지 전체의 명칭으로 ‘진무대(振武臺)’라는 이름이 하사 되었다는 소식이 수록된 <매일신보> 1943년 12월 11일자의 보도내용. 전라남도 광주에 신설된 육군종합학교에 대한 기지명명식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이곳에 ‘상무대(尙武臺)’라는 이름을 부여하였다는 소식이 수록된 <경향신문> 1952년 1월 9일자의 보도내용.   현재 국회에는 국군의 정통론을 명확히 하기 위해 2024년 10월 「국군조직법」개정안이 발의되었습니다. 국군의 날을 맞아 군에 남아있는 일제잔재를 없애고 나아가 ‘홍범도 부대’, ‘지청천 부대’, ‘양세봉 부대’, ‘윤세주 부대’ 등 독립투사들의 이름을 부대 이름에 넣으면 어떨까요?  제1조(목적)

[성명] 역사정의 없는 한일협력, 모래 위에 쌓은 성이다.

2025년 9월 30일 534

☞ 다운로드: [보도자료] 250930_역사정의 없는 한일협력, 모래 위에 쌓은 성이다. [이시바시게루 방한 및 한일정상회담에 즈음한 입장] 역사정의 없는 한일협력, 모래 위에 쌓은 성이다. 9월 30일 오늘,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한국을 방문했다. 지난 8월 23일 이재명 대통령의 방일과 한일 정상회담에 이은 정상회담이다. 지난 8월 23일 한일 정상회담은 역사정의는 사라지고 평화는 멀어지는 허울뿐인 정상회담이었다. 겉보기에는 셔틀외교의 복원, 트럼프의 통상압력 공동대응, 지역소멸에 함께 대응하는 등 좋은 이야기로 치장되어있으나, 국민주권 정부라는 이재명 대통령은 주권자 시민의 요구인 일본은 불법식민지배에 대한 사과 배상 요구를 하지 않았고 이시바 총리는 모르쇠로 일관 했다. 일본은 식민지배 가해국으로서 한국민에게 식민지, 전쟁범죄 사과하라. 이시바 총리는 8월 23일 공동발표에서 1998년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포함하여 역사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는 모호한 입장만을 되풀이 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뿐만 아니라 일본군’위안부’가 조직적 강제동원없는 자발적 선택이었다, 자국후손에게 사죄와 반성하게 하지말라던 아베 내각, ‘종군위안부’의 ‘종군’이 일본군을 연상시킨다며 삭제한 스가총리의 각의결정도 포함한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또다시 국민적 요구를 무시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식민지 전쟁범죄 피해국으로서 할 말을 해야 한다 이것이 광복 80년, 빛의 혁명으로 탄생한 국민주권 정부의 수반으로 이재명 대통령이 요구받은 국민의 명령이다. 일제 불법적 식민지배와 반인권적 전쟁 범죄에 대한 진실 규명, 사죄와 배상에 대해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또 지난 3년간

민족사랑 2025년 9월호

2025년 9월 26일 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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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3대 아닌 4대가 ‘망한(?)’ 독립운동 가문…“무릎 꿇어 노예 되지 않겠다”

2025년 9월 24일 1299

3대 아닌 4대가 ‘망한(?)’ 독립운동 가문…“무릎 꿇어 종이 되지 않겠다”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더는 통용될 수 없도록….” 이재명 대통령이 8월14일 ‘광복 80주년, 대통령의 초대’ 행사에서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다짐한 약속이다. 친일파 집안은 떵떵거리며 호의호식하고, 독립투사의 가문은 불우한 삶을 대물림해온 쓰라린 역사를 일컫는 표현이다. 그런데 3대가 아니라 ‘4대가 망한’ 가문이 있다.(좀더 정확하게는 ‘4대가 고초를 겪은’이라는 표현이 맞다.) ‘임청각’(보물)으로 알려진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인 석주 이상룡(1858~1932)과 그 가문이다. 한번 꼽아보자. 이상룡 선생(독립장)과 부인 김우락(1854~1933·애족장), 아들 이준형(1875~1942·애국장), 손자 이병화(1906~1952), 동생 이상동(1865~1951·애족장)·이봉희(1868~1937·독립장), 조카 이형국(1883~1931·애족장)·이운형(1892~1972·애족장)·이광민(1895~1945·독립장), 손주 며느리 허은(1909~1997·애족장), 당숙(아버지의 사촌 형제) 이승화(1876~1937·애족장) 등 11명이다. 그 뿐이 아니다. 석주의 종고모부인 의병장 김도화(1825~1921·애국장), 처남 김대락(1845~1914·애족장), 사위 강호석(강남호·1895~1950·애족장), 동생(이상동)의 사위 김태동(1897~1982·대통령 표창), 매부 박경종(1895~1938) 등 인척(혼인으로 맺어진 관계)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엄청나다. ■“공자왈 맹자왈은 필요없다” 다른 형제들은 차치하고 석주 이상룡 선생의 직계만 따져보자. 고성 이씨의 종손인 석주는 1858년 임청각에서 태어났다. 퇴계 학통을 계승한 전형적인 유학자 가문에서 수학했다. 바람 앞 촛불처럼 위태로웠던 나라의 운명이 그를 가만 두지 않았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 및 단발령 반포 이후 각지에서 봉기한 의병을 배후에서 자문·지원했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기자 석주는 박경종(매부)와 함께 만거금(萬鋸金·1만 돈꿰미)을 마련하여 가야산에 의병기지를 세우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실패로 돌아간다.(1908) 석주는 ‘공자왈맹자왈’ 만으로는 나라를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시를 음미해보라.

[경남도민일보] 진주시, 진주성 친일 비석 이전·행적 안내판 설치

2025년 9월 24일 637

진주성내 친일 관련 비석 철거 또는 행적 안내판 설치키로 진주성 내에 있는 친일 관련 비석과 관련해 진주시가 50여 년 만에 이들 비석을 이전 또는 친일 행적 안내판을 설치하기로 했다. 진주시는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가 진주성 내 친일 관련 비석들의 철거를 촉구한 이후 내부 검토를 거쳐 친일 비석들을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시는 비석 중 한 기는 후손을 확인해 이전을 협의하고 있다. 시는 앞으로 후손을 찾아 비석 이전을 협의할 예정이며, 후손이 나타나지 않으면 친일 관련 행적을 적은 안내판을 설치할 계획이다.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는 지난달 호국정신 상징적 공간인 진주성에 친일 관련 인사들 비석이 오랫동안 있었다며 철거 또는 친일 행적을 알리는 안내판 설치를 진주시에 요구했다. 현재 진주성 안에는 1973년 도시개발 과정에서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비석을 모아둔 비석군이 있다. 이를 포함해 친일파로 알려진 인물들의 이름(7명)과 공적 등이 새겨진 비석 8기가 있다. 허귀용 기자 <2025-09-23> 경남도민일보 ☞기사원문: 진주시, 진주성 친일 비석 이전·행적 안내판 설치

[오마이뉴스] 제주4·3 학살 막은 문상길의 유언, 언론은 왜 X표로 가렸나

2025년 9월 23일 894

[조천봉수 제주살이] 제주4.3 당시 처형된 군인의 가려진 진실과 언론의 역할 ‘1948년 9월 23일 하오 3시 35분 동 45분, 水色(수색)동방 5리 지점 이름없는 붉은 산기슭에 터져나온 10발의 총탄은 두 젊은 생명을 빼앗아 가고야 말았다.’ 두 젊은 생명은 육군 11연대 문상길(23) 중위와 손선호(22) 하사다. ‘이름 없는 붉은 산기슭’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에 있는 야산으로 추정될 뿐 정확한 처형 장소와 매장 장소는 아무도 모른다. 문상길은 사형집행장교가 총살형 집행장을 낭독하고 유언 기회를 주자 이렇게 말했다. “스물세살을 최후로 문상길은 갑니다. 여러분은 조선의 군대입니다. 마지막 바라건대 XXX의 XX 아래 XXX의 XX 아래 XX를 하는 조선군대가 되지 말기를 바라며 갑니다.” 진실을 보도하려는 의로운 기자도 있었지만 <조선통신>에 소속돼 이 ‘총살형 목격기’를 쓴 이는 조덕송 기자다. 그와는 안면이 있었다. 1984년 그가 <조선일보> 논설위원일 때 초보 기자인 나는 비서실에 파견돼 있었는데, 논설위원실 문이 열려 있으면 위원들의 토론 내용까지 들렸다. 당시 선우휘 주필이 강경보수였던 반면 조덕송 위원은 중도 성향 발언을 하곤 했다. <조선일보>는 수구화 노선을 걸어왔지만, 해방 직후에는 그런 신문이 아니었다. 2021년 제주도민이 된 이래 제주4.3 관련 문헌을 공부해보니 조덕송이야말로 4.3을 객관적으로 보도하려 노력한 당시에는 보기 드문 기자였다. 월간잡지 <신천지> 등에 기고한 조덕송의 글을 보면 학살을 피해 어쩔 수 없이 입산한 자들의 운명에 동정적인 시선도 보내고 있다. 조상길, 손선호 처형 당시

[오마이뉴스] ‘친일잔재’ 찾기 고등학교 수행평가, 압권은 이것이었다

2025년 9월 23일 588

[아이들은 나의 스승] ‘평가’보다 ‘수행’에 방점을 찍은 한국사 수행평가를 소개합니다 지필평가를 전후한 수행평가 기간이다. 수행평가는 획일적인 정답을 요구하는 지필평가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중고등학생 대상의 평가 방식이다. 도입 초기엔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한다는 교육의 본령에 부합하는 평가라며 주목을 받았다. 이내 모든 교과에 수행평가가 의무화됐다. 수행평가의 결과로만 성적을 산출하는 교과도 여럿이고, 아예 지필평가를 없애고 수행평가로 대체한 지역도 있다. 고교학점제가 전격 시행되면서 수행평가의 비중은 더욱 높아졌다. 내신 반영 비율이 높아진 데다 비슷한 시기에 모든 교과의 수행평가가 몰리다 보니 아이들의 부담이 크게 늘었다. 수행평가를 폐지해 달라는 청원마저 잇따르고 있다. 이는 전국의 모든 학교가 대입에 목매단 현실에서 ‘수행’보다 ‘평가’에 방점이 찍힌 까닭이다. 서론이 길었다. 내 과목 한국사의 수행평가는 모둠별로 진행된다. 개인별 평가는 지필평가로도 족하다는 생각에서다. 아예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곤 모둠원끼리는 점수가 동일하다. 모둠활동을 요약 정리한 보고서만 제출하면, 반 아이들 대부분 만점을 받는다. 모둠별로 보고서 양식과 함께 주제가 주어지면 교실이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할 만큼 왁자지껄해진다. 옆 교실 수업에 방해되지나 않을지 우려될 만큼 토론이 활발하다. ‘무임승차’하는 아이들이 아예 없진 않지만, 기회비용으로 여기고 이를 줄이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다. 친일 잔재 찾기 수행평가… ’10인 10색’ 보고서 이번 수행평가 주제는 ‘우리의 일상 속 친일 잔재’로 잡았다. 각자 친일 잔재라고 여기는 걸 찾아, 그렇게 생각하는 나름의 이유를 적게

9월 22일, 반민족행위처벌법 제정 77년

2025년 9월 22일 2013

오늘(9월 22일)은 반민족행위처벌법(반민법)이 제정된지 77년이 되는 날입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41년 〈건국강령〉을 공포하면서 ‘적(敵)에 부화(附和)한 자와 독립운동을 방해한 자는 선거와 피선거권이 없음’이라고 명시해 친일파들이 척결의 대상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 정신을 이어 해방 후 제헌헌법 101조에서 악질적인 반민족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특별법 제정의 근거가 마련되었고, 그 결과 법률 제3호로 「반민족행위처벌법」이 1948년 9월 22일 제정되었습니다.     좌절된 친일파 청산 안타깝게도 반민법에 따라 구성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는 그 목적을 다하지 못하고 1949년 6월 6일 강제로 해산되는 비극을 맞이했습니다. 해방 후 미군정은 친일파를 이용했고, 지지 기반이 약했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권력 강화를 위해 친일파와 손을 잡고 독립운동 세력을 청산해 나가는 위험한 선택을 했습니다. 1949년 6월 6일 새벽. 이승만의 비호 아래 무장 경찰들이 반민특위를 습격해 요원들을 강제 연행하고 활동을 정지시켰습니다. 경찰 권력에 의해 헌법기구가 유린당한 중대한 사건이었습니다. 결국 6.25 와중인 1951년 2월 14일 「반민족행위처벌법」이 폐지되고 맙니다. 친일 청산의 중요성 이 사건으로 우리 역사는 거짓과 불의의 시대로 접어들었고, 친일 문제는 금기의 영역이 되어버렸습니다. 해방 후에도 독립운동가들이 겪었던 억울한 현실은 오늘날까지도 우리 사회에 깊은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이처럼 왜곡되고 잊힌 역사를 바로잡고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77년 전 반민법이 제정된 오늘. 반민특위가 짓밟혔던 비극적인 순간과 그로 인해 뒤틀린 우리 역사의 흐름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함께

[연합뉴스] 日야스쿠니 무단 합사 한국인 유족 또 소송 제기 “합사 철회”

2025년 9월 22일 549

(도쿄=연합뉴스) 경수현 특파원 = 일본 야스쿠니신사에 무단으로 합사된 한반도 출신 군인·군속(군무원) 유족들이 19일 합사에서 빼달라며 일본 법원에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야스쿠니신사에 무단 합사된 희생자의 손주 세대인 박선엽(56)씨 등 유족 6명은 이날 도쿄지방재판소(지방법원)에 유족 동의 없이 야스쿠니 신사에 무단 합사된 희생자들의 합사 철회와 사과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지원하는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번 3차 소송은 일본에서 한국인 강제동원 희생과 관련해 현재도 진행 중인 유일한 전후 보상 소송”이라며 “3차 소송에는 손주 세대가 원고로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는 태평양 전쟁 때 숨진 자국 군인뿐만 아니라 강제로 참전한 한국인 전몰자 명부도 야스쿠니신사에 제공, 결국 야스쿠니신사에 한국인들까지 태평양전쟁 A급 전범과 함께 합사됐다. 한국인 합사 사실은 1990년대 들어 뒤늦게 알려졌고 이를 바로 잡고자 시민단체와 유족들은 2000년대 이후 여러 차례 소송을 냈지만 일본 법원은 그동안 유족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가장 최근인 지난 1월 판결한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 격)는 2013년 한국인 합사자 유족 27명이 낸 합사 취소 소송에서 원고들이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정 기간(제척기간)인 20년이 지났다면서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당시 원고들은 원고 1인당 위자료 1엔(약 9원)을 지급해달라는 상징적 배상을 청구하는 형식으로 소송을 냈다. 이번 소송에서는 박 씨 가족 3명이 합사 취소 요구와 함께 1인당 40만엔을 다른 원고 3명은 각각 120만엔을 요구했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한국인 2만여명이 합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마이뉴스] 여전히 강제동원 피해자들 외면하는 일본제철

2025년 9월 19일 659

한일 시민단체 “즉각 사죄와 책임 이행하라” 촉구 18일 오후 8시 (미국 현지 시각) ‘긴급 온라인 워크숍 및 기자 간담회’가 워싱턴 디시의 아시아폴리시포인트에서 열렸다. ‘전범기업 일본제철의 식민지 청산 과제 ― 조선인 강제노동 보상 문제와 연합국 포로 문제’를 주제로 1부에서는 공동 워크숍이 열렸고, 2부에서는 질의응답과 기자 간담회가 진행되었다. 한국의 민족문제연구소(CHTJ), 태평양전쟁 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미국의 아시아 폴리시 포인트 (APP), 일본의 강제동원문제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일본제철 옛 강제징용공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등 ‘2025 북미평화워크숍’에 참여 중인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들이 이 행사를 공동 주최했다. 공동 워크숍에서는 김민철 교수(민족문제연구소)의 조선인 강제노동 보상 문제, 민디 코틀러 이사(아시아 폴리시 포인트)의 연합국 포로 문제와 역사적 정의, 서재정 (국제기독교대학) 교수의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문제와 과제, 우쓰미 아이코 교수(전 일본평화학회회장, POW연구회)의 연합국 전범 문제와 조선인 전범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발표자들은 강제동원과 전쟁포로(POW) 배상 문제와 관련해 일본이 지고 있는 미완의 역사적 책임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했다. 이들은 이 문제가 “이미 끝난 과거”가 아니라 정의를 요구하는 현재적 과제임을 강조했다. 질의응답 및 기자 간담회에서는 ‘일본제철은 강제노동 피해자의 인권과 존엄, 정의의 회복을 위해 즉각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제목의 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일본제철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약 1만 명의 조선인과 연합군 포로를 강제동원해 가혹한 노동을 시켰으나, 지금까지 사죄와 배상을 거부하고 있다. 한국 대법원은 2018년과 2023년에 피해자 및 유족의 손해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