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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정에는 한락연도 있다
노수영 충북대 명예교수
길림성 용정에는 윤동주 시인도 있지만 한락연이란 화가도 있다. 한락연이란 화가는 과연 누구일까?
중국의 석굴과 불교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돈황을 가기 위해 2026년 5월 책을 찾아보다가 한락연이란 이름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돈황과 연관이 있는 중국동포 조선족 화가가 있었는데 바로 한락연韓樂然(1898~1947)이었다.
한락연은 짧은 인생에서 산발적으로 불꽃 같은 열정과 기량을 뿜어낸 매우 독특한 화가라고 판친스는 평가한다.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판친스는 한락연이 민족과 조국을 위해 분투했던 전사였으며 동시에 예술가로서 중국의 현대 미술에 뛰어난 공헌을 하였다고 보았다. 1898년 지린성吉林省 룽징촌龍井村(오늘날 龍井市)의 조선인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원래 이름은 광우光宇이고 때로는 소공素功이라는 이름을 썼으며 字를 낙연이라고 했다. 김동수에 의하면 행지幸之라고도 불렀으며 프랑스 유학시기에는 소공과 수공樹功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했다고 한다.
젊은 시절 동북지방에서 미술교육에 종사하면서 항일민족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다가 1929년 프랑스로 유학해 1931년 파리 루브르 예술대학에 입학하여, 1937년 졸업 후 중국으로 돌아왔 다고 한다. 그후 항일전쟁에 적극 참여하다가 국민당에 체포되어 3년간 감옥에 갔다가 1943년 가석방되었다. 그는 1943년부터 1947년까지 두 차례 둔황에 가서 벽화를 모사했다. 이때 창수홍常書 鴻이 한락연과 둔황예술과 신장의 벽화에 대해 이야기하다 한락연의 수채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고 한다. “당신 그림을 보니 모두 빛과 색의 명쾌함이 가득하고 어색한 곳이 하나도 없다. 능숙하고 세련된 수채화 기법은 이미 신선의 경지에 든 것이다.”
그리고 둔황예술연구소에서 ‘키질 천불동 벽화의 특징과 발굴과정’을 주제로 강연하고 둔황예술 연구에도 공헌을 크게 했다고 한다. 고창국(투르판) 유적지에서 고고학 조사를 진행했고 바이청현拜城縣 키질 불교석굴 유적지를 세밀히 연구 조사했다. 그는 신장에서 5년간 고고학 연구를 하고 서북박물관을 세우려고 했으나 1947년 7월 30일 우루무치에서 란저우로 가던 중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한락연은 중국에서 키질 석굴사원을 최초로 연구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둔황석굴에 남은 진귀한 제기題記를 기록하고 자신의 번호체계를 만들고 더 나아가 수십 점의 모사작을 남겼다. 그의 벽화 모사작은 둔황 막고굴 벽화, 키질 천불동 벽화 등이 있는데 키질 벽화가 많다. 유화, 수채화가 많지만 특히 유화 작품이 더 많다.
돈황에서 돌아와서 용정에 사는 지인 임호에게 위챗으로 물었더니 바로 답이 왔다.
한락연은 용정 출생이며 우리의 3.1만세운동과 같은 용정 3.13 반일운동 때 사람마다 흔든 태극기를 그린 분이다. 중국의 피카소로 불리며 중국 조선족과 중국 미술계에서 첫 사람으로 1923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한 사람이다. 1929-1937 프랑스 등 유럽에 유학하고 1939년 국공합작 항일시 국군 소장으로 활약하였으며 1947년 7월 30일 적화에서 란주로 가는 길에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현재 용정에 락연공원과 한락연전람관이 있다.
유홍준은 문화유산 답사기의 중국편을 쓰면서 제목을 “조선족 화가 한락연을 아시나요”로 하고 16쪽에 걸쳐 소개하면서 한락연을 생각하면 부끄럽고 미안해진다고 썼다.

한락연의 일생을 1.용정에서 프랑스 유학까지, 2.귀국 후의 항일운동, 3.서역에서의 작품활동 으로 나누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1990년에는 연변에서 기념전이 열리고 용정엔 추모동상이 세워졌다고 썼는데 현재 용정의 락연공원에 있는 흉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1940년 그는 팔로군에 정보를 전하려고 서안을 떠나 중경으로 가는 도중에 보계시에서 국민당 특무기관에 체포되어 수감되었다. 1943년 3월 한락연은 석방될 때 활동지역을 서북지역 즉 서안의 서쪽, 감숙성, 신강성으로 한정할 것과 작품에 노동인민을 그리지 않는 것이 조건이었다. 왜 돈황에서 벽화를 모사하고 쿠차등에서 소수민족의 초상과 풍경을 많이 그리게 되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여기서 풀리게 된 것이다. 1947년 7월 30일 군용기로 난주로 오는 도중 비행기가 추락하여 비행기 파편은 수습되었지만 시신은 찾지 못했다고 적고 있다.
그런데 한락연을 찾아볼 수 있는 더 없는 기회가 기대 이상으로 빨리 왔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주최하고 후라에서 주관한 김진향과 함께 ‘경계를 따라’ 가는 기행(2026.7.25~30)의 마지막 여정이 연길에서 끝나게 되어 있어서 일행과 헤어져 한락연전람관을 방문할 수 있었다.
일요일(8월 2일)이라서 문이 닫혀 있었는데 지인이 전화로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볼 수 있었다. 연길에서 용정으로 가는 방향으로 용정시내 입구에 용정시 당업관(서류보관실) 내 1층 왼편에 전시실이 있었다. 이 건물 문 앞에는 韓樂然生平展(한락연 평생 전시관)이란 빨간 예서체의 입석이 있었다. 로비에 있는 흉상이 한락연 아닌가 하고 생각하며 전시실에 들어서자 벽면 전체에 위에는 혁명가, 예술가, 은폐전선 우수전사라고 쓰여 있고 아래에 한락연생평전이라고 쓰여 있으며 왼쪽에 흉상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야말로 한락연의 일생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상하게 한글 설명은 없었다.
전시장에 소개된 책을 보니 『한락연 기념활동문헌집』이 중국어로, 청소년을 위한 중국조선족인물전기로 『중국의 피카소 한락연의 이야기』라는 책과 김동수의 『락연을 찾아서』가 우리말로 발간되었고 의무교육 조선족 학교 교과서 『한어漢語』 4학년 상권에 한락연이 소개되었다고 전시하고 있다.
용정의 지인 임호가 선물로 준 『락연를 찾아서』에 보면 훈춘에서 멀지 않은 장고봉長鼓峰은 한락연이 3.13 항일시위에 태극기를 대량으로 그리는 바람에 일본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로 갈 때 이용한 길이라고 한다. 중국 소련, 조선 세 나라 국경에 위치한 산봉우리로 장고봉 전투 유적지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연변박물관에 가면 한락연이 그린 <신강 천지>라는 그림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2012년 따님 한건립 여사는 장소아 여사가 남겨준 <신강천지>를 연변박물관에 무상으로 기증해서 여러 사람이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민병훈에 의하면 1993년에 서울에서 중국의 조선족 화가 한락연의 작품전이 개최되었다고 한다.5 한락연은 신중국 성립 후에도 제대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권영필은 이 전시를 준비하면서 한락연과 동시대에 활약한 돈황연구소 초대 소장 창수홍과의 면담을 추진하였고 그의 화가로서의 면모와 석굴사원의 조사와 보호에 앞장섰던 학자로서의 역량을 평가하는 논고를 도록 『한락연유작전韓樂然遺作展』(KBS 문화사업단, 1993)에 게재하였다고 한다. 그 당시 유화모사 3점과 수채화 4점이 전시되었다. 그 이후 두 번째로 2005년 국립현대미술관 주관으로 『광복60주년 기념 중국조선족 화가 한락연 특별전』(도록: 컬쳐북스, 2005)이 열렸다고 한다.
2007년 4월 14일에는 심천시深川市 관산월關山月 미술관과 북경의 중국 미술관이 공동으로 기획한 특별전 <열혈단심주화혼熱血丹心鑄畵魂–한락연 회화예술전>이 관산월미술관에서 개최되어 121점 가운데 돈황벽화 모사도 14점과 돈황 풍경화 2점이 소개되었다. 한락연 이후 일본 도쿄예술대학에서 수학한 화가 김대식이 돈황에 장기 체류하며 모사한 작품들을 1990년 5월과 1994년에 서울에서 <돈황벽화 모사전>에 소개하였다. 그 외 북경 중앙미술학원에 유학하여 동양화를 전공한 화가 서용徐勇은 1997년부터 7년동안 막고굴에 체류하며 모사와 창작을 한 결과를 국내외에 선보인 바가 있다고 한다.
지난 8월 9일에는 용정 한락연연구회가 주최한 <락연과 이야기하다> 좌담회가 용정시 동성용진에 있는 연변인물연구회 회의실에서 열렸다고 지인이 알려왔다. 한락연을 혁명가이자 예술가, ‘비단의 길’ 문화유산보호에 선구자적 역할을 한 인물로 소개하고 있다.
<락연을 찾아서>라는 책의 저자인 김동수 회장의 주재로 열린 이날 좌담회에는 한락연의 딸 한건립 여사와 여러 관련 학자와 역사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참석하였다. 한락연 홍보용 PPT는 250여 장의 귀중한 사진으로 구성되었으며 『한락연 연구문헌 총람』을 편찬하였다고 했다.
더 나아가 2028년 한락연 탄생 130주년을 맞으며 <기억되는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대형 화보집을 기획, 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연보 편찬과 사료 디지털화 작업을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고 연구회 고승룡 부회장(연변대학 인문사회과학원 부원장)이 설명했다.
그러고 보니 국내 미술계에서는 어느 정도 한락연에 대해 알려져 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인 것이다. 앞으로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한락연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용정 한락연연구회와 교류하며 연구하고, 후라에서는 한락연 전시관과 장고봉 전투유적지 등을 답사지로 고려해 볼 대상이라고 제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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