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석재 | 도쿄 특파원
“짐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아침에 만든 빵인데요.”
지난해 11월24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에서 아침 일정을 나서는 길이었다. 뜻밖에 숙소 주인이 비닐봉지에 담긴 수제 빵 하나를 내밀었다. 한눈에도 맛있어 보이는 빵을 ‘짐이 되지 않을까’ 염려하며 건네는 그의 손에서 일본 시골의 인심이 느껴졌다. 우리 돈 10만원 정도로 값싼 숙소였지만 아침·저녁 식사를 주고, 바닷가와 맞닿은 아름다운 풍광은 덤이었다. 지난 400여년간 일본 광산 노동자들의 삶의 터전이었고, 현재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 사도광산이 자리한 섬은 그렇게 소박함과 따뜻함으로 기억에 남았다.
하지만 이곳에는 안타깝게도 한-일 갈등의 불씨가 살아 있다. “과거사에 대해 일측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다.” 지난해 11월 일본 정부가 마련했던 ‘사도광산 추도식’이 파행을 빚자 우리 외교부는 이런 발표를 냈다. 상황은 꽤 심각했다. 추도식은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에 한국이 동의해주는 조건으로, 일제강점기 사도광산에서 희생된 강제동원 조선인 노동자 등을 위로한다는 취지로 한·일이 합의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첫 추도식에서 일본 정부 대표는 ‘조선인 강제동원’을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일본 쪽이 행사 명칭에 ‘감사’라는 표현을 넣어 ‘강제성’을 희석하려 했던 게 큰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결국 11월24일 추도식 하루 전, 외교부는 전격 불참을 선언했다. 당시 윤석열 정부의 ‘저자세 대일 외교’로 유지되던 한·일 우호 분위기도 소용이 없었다. 이튿날 우리 정부는 과거 조선인 노동자들이 기거하던 숙소 ‘제4 상애료’ 터 앞에서 자체 추도식을 열었다. 이미 니가타현 현지에 도착했던 유족들과 궁여지책으로 만들어진 자리다.
사도광산에 다시 11월이 돌아왔다. 일본 쪽은 올해도 같은 입장을 고수했다. 지난 9월 이미 한국인 유족이나 정부 관계자 없는 ‘반쪽 추도식’을 치렀다. 일본 정부 대표는 추도사에서 “사도광산 노동자의 노고를 생각하며 돌아가신 모든 분에게 진심으로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했다. ‘강제성’ 언급은 없었다. 뻔한 일이 예고돼 있었지만, 한국 정부는 12·3 내란 사태와 정권 교체 등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지난 1년간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이달 말께 한국 정부가 유족들과 사도섬에서 ‘또 다른 반쪽 추도식’을 하는 판박이 같은 상황이 기다리고 있다.
외교부는 지난해 7월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동의 경위를 설명한 자료에서 “(사도광산에) 강제동원을 포함한 전체 역사가 반영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주장”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자료 어디에도 ‘강제성에 대한 약속’을 받았다는 문구는 없다. 당시 외교부는 사도광산을 통해 “한-일 관계 개선 흐름을 이어가길 기대한다”고 했지만 상황은 거꾸로 흘러가고 있다.
게다가 일본 쪽이 해마다 추도식 개최를 약속한 터라, 한·일이 제각각 ‘반쪽 추도식’을 여는 불편한 상황은 매년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두 정부가 과거사 갈등 해소의 실마리로 기대했던 사도광산이 되레 문제의 단면을 더 노골적으로 드러내게 된 것이다. 꼬리가 드러났는데 머리만 감췄다고,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 잘못 끼운 첫 단추를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한·일 정부의 지혜로운 해법이 필요한 때다.
forchis@hani.co.kr
홍석재 | 도쿄 특파원
<2025-11-06>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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