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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야스쿠니 합사,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 두 번 죽이는 행위”
日서 ‘합사 철회 소송 제기’ 희생자 손주 세대 “젊은 세대에도 굴욕” (도쿄=연합뉴스) 경수현 특파원 = “일본 야스쿠니신사 합사는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을 두 번 죽이는 행위이고 할아버지가 합사돼있다는 것은 저 같은 젊은 세대에도 매우 불명예스럽고 굴욕적인 일입니다.”. 야스쿠니 신사에 무단 합사된 희생자의 손주 세대 6명이 지난 9월 일본 도쿄지방재판소(지방법원)에 제기한 소송의 2차 구두변론이 23일 열렸다. 원고 중 한 명인 박선재 씨는 재판소에 낸 진술서에서 “할아버지를 강제 동원해 죽음에 이르게 한 것에 그치지 않고 가족 동의조차 구하지 않고 야스쿠니 신사에 무단 합사한 것은 우리 집 전체에 치유할 수 없는 피해를 주고 있다”며 이처럼 강조했다. 그는 하루라도 빨리 합사를 취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씨의 할아버지는 일본의 침략전쟁에 강제로 동원돼 중국에서 억울하게 숨졌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태평양 전쟁 때 숨진 자국 군인뿐만 아니라 강제로 끌려가 참전한 한국인 전몰자 명부도 야스쿠니신사에 제공하는 바람에 태평양전쟁 A급 전범과 함께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돼있다. 그는 이날 재판 후 일본 시민단체 등의 지원으로 참의원 의원회관에서 열린 2차 구두변론 보고 모임에도 참석해 “잘못된 역사 문제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지 않고 빨리 해결되기를 바란다”며 “일본에서도 많은 분이 도와준다는 것을 직접 보고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번 소송을 지원하는 민족문제연구소의 김영환 대외협력실장은 작년 12월 23일 한국 법원에도 야스쿠니신사 합사 취소 소송이 제기됐다며 일본 정부가 재판에 응하지
[오마이뉴스] 고향 구미에 독립운동기념관이 건립되기를 바라는 이유
지난 14일, 서울역 근처 민족문제연구소를 처음 찾았다. 과거사 청산을 연구하는 시민모임 ‘즐기게’에서 ‘네팔의 이행기 정의’를 발제하기 위해서였다. 서울로 가는 길에 마침 식민지와 이행기 정의에 관한 논문을 읽었다. 이행기 정의란 독재나 전쟁, 식민 지배 등 과거의 불의를 청산하고 사회가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제도적 노력을 뜻한다. 발제를 하러 도착한 곳이 민족문제연구소였으니, 그 우연이 어쩐지 필연처럼 느껴졌다.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는 민족문제연구소 창립 35주년을 맞아 기획전으로 ‘세상을 바꾼 시민, 함께 만든 역사’가 열리고 있었다. 나는 발제 전에 이들 전시물을 천천히 둘러보며 오래전부터 품어온 생각들이 다시 떠올랐다. 민족문제연구소 하면 임종국 선생이 먼저 떠오른다. 평생을 친일파 연구에 바친 학자로, 그의 유지를 이어받아 연구소가 완성한 <친일인명사전>은 우리 사회가 외면해온 불편한 진실을 기록한 귀중한 문헌이다. 창립 35주년, 사람으로 치면 장년에 접어든 이 연구소가 걸어온 길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음을 전시물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법학을 공부하면서 <친일인명사전>을 여러 차례 참고했다. 사전에 등재된 법학자로는 전봉덕, 유진오, 홍진기 등이 있다. 전봉덕은 일제강점기 고위직 경찰이었고, 유진오는 조선임전보국단 등 친일 단체에서 활동했으며, 홍진기는 일제 판사로 복무했다. 이들은 광복 이후 친일 행적을 지운 채 법조계와 학계, 언론계의 사회지도층으로 행세했다. 그들의 후학들 중에 이들을 여전히 찬양하는 행태가 남아 있으니, 무지의 소치인지, 아니면 그 삶을 은근히 동경하는 것인지, 어느 쪽이든 씁쓸하기는 마찬가지다. 고향 구미로 눈을 돌리면
[MBC] 가짜 인감 동원한 ‘日 제3자 변제’‥尹대통령실 개입 정황 확인
①지원재단 ②지원단 ③재단법인‥정부 산하기관 도장이 3개? 지난해 말부터 올 초까지 실시된 외교부와 행정안전부의 자체 감사에서 황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행안부 산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재단’의 수발신 문건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3가지 종류의 인감도장이 나온 것입니다. 확인된 도장 중 하나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명칭 그대로였고, 다른 하나는 ‘지원재단’이 아니라 ‘피해자지원단’이라고 각인됐습니다. 또 다른 도장은 ‘재단법인’이라는 문구가 추가됐습니다. ‘지원단’이라는 도장은 3개, ‘재단법인’이 들어간 도장은 2개 만들어진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지원재단’이 공식 명칭이고, 공식 인감도장도 이대로 만들었으니, 나머지들은 효력이 없는 가짜 도장입니다. 가짜라면 비슷하게라도 만들어야 할 법한데, 심지어 글자까지 틀렸을 정도로 허술합니다. 그런데 이 도장들이 정부의 ‘일제 강제동원 제3자 변제안’ 소송 과정에 버젓이 활용됐습니다. 그 내막은 더 충격적입니다. ‘가짜 인감’ 5개 만들어 58차례 사용‥군사작전하듯 처리 윤석열 전 대통령 취임 이듬해, 정부가 ‘제3자 변제안’을 발표했습니다. 일본 전범기업들이 줘야 할 돈을 우리나라 재단이 대신 지급하자는 건데, 국민적 반발이 일었습니다. 당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까지 맞물려, 일본에 대한 여론의 반감은 대일본 저자세를 고수하는 윤석열 정부로 옮겨붙고 있었습니다. 당사자인 강제동원 피해자들 일부도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정부와 피해자지원재단이 이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한 끝에 15명 가운데 11명은 배상금을 수령했지만, 4명은 끝내 수용을 거부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이 돈을 법원에 맡겨 채무를 면제받기 위해 ‘공탁’ 절차를 밟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지원재단 측은 시간을 끌 경우 반발에 직면해 동력을
[성명] 윤석열 정권의 3자 변제 추진과정에 대한 위법사항을 전면 수사하라
☞ 다운로드: [성명] 윤석열 정권의 3자 변제 추진과정에 대한 위법사항을 전면 수사하라 윤석열 정권의 3자 변제 추진과정에 대한 위법사항을 전면 수사하라 최근 언론 보도와 정부 감사 결과를 통해 윤석열 정권이 추진한 일제 강제동원 ‘제3자 변제’ 과정에 대통령실이 직접 개입하여 조직적인 위법행위를 저지른 정황이 낱낱이 드러났다. 2018년 강제동원 대법원 승소 판결은 피해자들이 수십 년의 피눈물 나는 투쟁을 통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이라는 장벽을 극복하고,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와 일본 전범 기업의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 책임을 명확히 선언한 역사적인 성과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권은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부당한 제3자 변제를 강요하며 사법 주권을 포기하고,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선언한 판결을 부정하는 반헌법적 폭거를 자행했다. 나아가 역사 정의를 거부하는 피해자들에게 배상금 공탁을 억지로 시도하다 법원에 의해 모두 기각당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쟁취한 승소 판결을 무력화하려던 윤석열 정권의 제3자 변제안은 이로써 역사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이미 완벽하게 파탄 났다. 파탄 난 제3자 변제안을 무리하게 강행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실이 개입한 정황은 참담할 따름이다.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실 안보실은 일본과의 다자외교 일정 및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출을 앞두고 ‘리스크 관리’를 명분으로 공탁을 서두를 것을 외교부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종용했다. 피해자들의 아픔을 단순한 외교적 걸림돌로 치부한 이 속도전 속에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과 파견 공무원들은 사용 승인조차 받지 않은 위조 인감을 무단으로 복제하여 법원 공탁 서류에 수십 차례나 찍어 제출하는 초유의
[JTBC] 주진우 개입 정황…국수본, 윤석열 ‘제3자 변제’ 수사 착수
[앵커] 저희 뉴스룸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위조인감까지 만들어 제3자 변제안을 밀어붙인 정황을 보도해 드렸습니다. 왜 그런 일까지 벌였는지 윤곽이 드러났습니다. 그 배경에 대통령실의 재촉이 있었습니다. 2023년 당시 대통령의 일본 정상과의 일정을 비롯한 해외 순방을 앞두고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 등이 이유였습니다.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역사적 아픔이 리스크로 치부됐습니다. 그것을 해소하겠다며 벌인 속도전에 피해자 목소리는 사실상 배제됐습니다. 외교부 감사에서 드러난 지난 정부의 행태를 신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신진 기자] 2023년 3월 발표된 제3자 변제안은 행안부 산하 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기업 돈을 걷어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대신 주는 해법입니다. 일부 피해자들은 “사과가 먼저”라며 반발했지만 절차는 속전속결로 진행됐습니다. 재단에 기금관리단이 만들어졌고, 15명 중 11명이 배상금을 수령했습니다. 수령을 거부한 4명의 배상금을 당시 정부는 법원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재단과 외교부 관계자들은 위조인감을 만들고, 막도장을 파면서까지 공탁을 서둘렀습니다. [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내부 회의/2023년 7월 14일 : {일본에서 이미 자꾸 예산 때문에 계속 질의가 들어오고 하니…} 좀 급하게 위임장들에 (도장을) 찍어야 하고… 그날 (도장) 여러 개 안 팠으면 불가능했습니다. 그날 공탁 신청은 불가능했어요.] 그런데 정부가 이렇게 서둘렀던 배경엔 당시 대통령실의 재촉이 있었던 걸로 감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당시 대통령실 안보실로부터 “8월 광복절 및 다자외교 일정 이전에 공탁을 마무리 하라”는 취지의 지침이 있었던 겁니다. “일본과의 외교 일정 수립에 유리하다”는 이유였습니다. 특히 당시 7월 나토 정상회의, 8월 한미일
[뉴시스] ‘1919를 걷다’ 수원 만세운동 재연행사, 21일 800명 행진
임시정부 애국가, 수원 공식 행사에선 첫 합창 [수원=뉴시스] 박종대 기자 = 경기 수원시자원봉사센터가 1919년 수원 만세운동의 주요 동선을 시민들이 직접 걸으며 되새기는 ‘수원 독립운동의 길 1919를 걷다’ 재연행사를 21일 연다고 19일 밝혔다. 이번 행사는 ‘수원 독립운동의 길’ 추진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가 공동 주최하고 수원시자원봉사센터가 주관한다. 행사는 오전 10시 30분 연무대에서 시민추진단 출범식이 먼저 열린다. 이 자리에서 출범 선언과 독립선언문 낭독 후 경기소년소녀합창단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애국가를 합창한다. 수원에서 이 곡이 공식 행사에 불리는 것은 처음이다. 출범식 후 시민·청소년 800여 명이 만세 행진에 나선다. 연무대에서 출발해 삼일공업고, 매향여자정보고, 북수동 천도교 교당 안내판을 거쳐 화성행궁까지 이어지는 역사 체험 코스다. 종착지 화성행궁 광장에서는 바리톤 이재혁 축하공연, 독립운동가 그래피티 퍼포먼스, 평전 저자 사인회 등 문화행사를 선보인다. 이주현 ‘수원 독립운동의 길’ 추진위원장은 “시민사회가 지난해부터 지역 독립운동 역사를 공간적으로 연결하는 작업을 논의해 왔다”며 “시민들이 독립운동사를 몸으로 체험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pjd@newsis.com <2026-03-19> 뉴시스 ☞기사원문: ‘1919를 걷다’ 수원 만세운동 재연행사, 21일 800명 행진
[한겨레] “친일인명사전은 역사 정의,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짬] 한상권 제3대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장 “김성수, 김활란, 윤덕영, 윤치호, 박흥식, 이완용…” 지난 9일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만난 한상권 제3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위원장은 전시실 벽 한 켠에 가득한 손바닥만한 크기의 종이에 적힌 이름을 나즈막히 읽어나갔다. 역사학자 임종국(1929~1989) 선생이 친일파들의 이름, 본적, 친일 행위 등을 갈무리해 빼곡히 적어둔 1만3천여장의 친일인명카드였다. 한 위원장은 임 선생의 친일인명카드 제작이 선생의 개인적 아픔에서 시작됐다고 전했다. “선생의 부친이신 임문호 선생은 천도교 활동을 하셨어요. 천도교는 독립운동의 핵심 세력이었죠. 임 선생도 아버지께 ‘나는 독립운동을 했다’ 이렇게만 들었답니다. 그런데 친일파 연구를 하다가 사료에서 아버지 성함을 발견한 겁니다” 충격에 빠진 아들이 진위를 묻자, 아버지는 괴로움에 담배를 태우며 답했다고 한다. “나는 친일파가 맞다.” 그렇게 만들어진 친일인명카드는 훗날 ‘친일인명사전’의 소중한 기초자료가 됐다. 임 선생 사후 자료를 물려받은 역사학자들은 1991년 반민족문제연구소(현 민족문제연구소)를 창립하고 친일인명사전 제작의 물꼬를 틔웠다. 사전에 이름을 올리게 된 친일파와 그 후손들의 항의와 소송이 이어졌다. 온갖 방해가 있었지만, 1999년 ‘친일인명사전 편찬 지지 전국 교수 1만인 선언’을 통해 국민적인 지지를 얻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는 2001년 12월 민족문제연구소를 주축으로 정식 출범했다. 임 선생이 타계한 뒤 20년이 지난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자 4389명을 수록한 ‘친일인명사전’이 완성됐다. 임종국 선생의 부친인 임문호 선생도 사전에 이름을 올렸다. 한 위원장은 “2차 세계대전 전후 청산은 대부분 뉘른베르크·도쿄 전범 재판의 결과에 따라 국가가 주도했다. 우리나라는 이승만
[전남교육통] 성지송학중학교-민족문제연구소, ‘역사로 세상을 배우다’ 업무협약(MOU) 체결
대안교육의 자율성과 역사 전문 기관의 만남, 미래형 역사 인재 양성 기대 성지송학중학교(교장 하승균)는 지난 13일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민족문제연구소와 학생들의 올바른 역사관 정립 및 역사문화탐방 내실화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협약은 ‘자아를 찾고 세상을 배우는 교육’을 지향하는 성지송학중학교의 특성화 교육과정과 국내 최고 권위의 근현대사 연구기관인 민족문제연구소의 전문성을 결합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양 기관은 이번 협약을 통해 ▲국내외 역사문화탐방 프로그램 기획 자문 ▲연구소 소속 전문가의 역사 특강 및 현장 해설 지원 ▲연구소 보유 역사 콘텐츠의 교육적 활용 ▲인권·평화 중심의 민주시민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 특히 성지송학중학교의 대표 교육과정인 ‘해외이동수업’ 시, 민족문제연구소의 네트워크를 활용한 학술적 고증과 현지 교육 지원을 통해 학생들이 더욱 깊이 있는 역사의 숨결을 체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민족문제연구소 조세열 상임이사는 “성지송학중학교 학생들의 뜨거운 배움의 열정에 연구소의 전문성을 더하게 되어 기쁘다”며, “청소년들이 역사를 통해 정의로운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전했다. 성지송학중학교 하승균 교장은 “교실 밖 세상을 배우는 우리 아이들에게 민족문제연구소라는 든든한 길동무가 생겨 매우 기쁘다”며, “이번 협약을 발판 삼아 학생들이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당당히 설계하는 글로벌 역사 인재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성지송학중학교는 이번 협약 이후 첫 행보로 오는 10월 예정된 역사문화탐방에 민족문제연구소의 자문을 반영한 자기주도적 탐구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강민구 기자 <2026-03-16> 전남교육통 ☞기사원문: 성지송학중학교-민족문제연구소, ‘역사로
[서울&] 안중근의사 순국 116주년 추모식 21일 효창원서 거행
‘안중근의사 순국 116주년 추모식’이 3월21일 오후 2시 서울 용산구 효창원(효창공원) 안중근의사 빈 무덤(삼의사 묘역)에서 거행된다. 이번 추모식은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 이하 기념사업회)와 (사)안중근평화연구원(원장 신운용)이 주최하며 용산구, 민족문제연구소, (사)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 효창원을사랑하는사람들 등이 후원한다.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이번 순국 116주년 추모식이 단순한 추모를 넘어, 안중근의사께서 생전에 염원했던 동양평화의 정신을 계승하고 남북의 화해와 공존을 다짐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며 “매년 순국일(3월26일)에 안중근의사 빈 무덤에서 시민사회단체와 일반시민이 참석하여 추모식을 거행하고 있으나 많은 분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주말에 거행한다”고 밝혔다. 기념식에서는 안중근 의사 유언 낭독과 추모사, 안중근어린이합창단과 안중근청소년오케스트라의 추모공연 등이 진행된다. 기념사업회는 또 누리집(https://greatkorean.org/34)와 유튜브 채널 ‘청년안중근’의 안중근 샌드애니메이션(https://www.youtube.com/watch?v=aLKofDlpdAk) 및 효창원 다큐멘터리(https://www.youtube.com/watch?v=ryijxL8pJZ4)로 운영되는 특별추모관을 통해 누구나 안중근의사를 기억하고 기리는 메시지를 남기고, 추모 활동에 적극 참여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동구 기자 donggu@hani.co.kr <2026-03-17> 서울& ☞기사원문: 안중근의사 순국 116주년 추모식 21일 효창원서 거행
[오마이뉴스] ‘3.15 의거’ 김주열 시신 유기한 자의 최후… 아이들 경악
[아이들은 나의 스승]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김주열만큼이나 중요한 이름, 박종표 탁상 달력에 ‘3.15 의거 기념일’이라는 글자가 도드라져 보인다.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3.15 부정 선거에 맞서 마산(현재의 창원특례시 마산합포구) 지역의 중고등학생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의거를 기리는 날이다. 3.15 의거는 한 달여 뒤 4.19 혁명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수업 시간 지나가는 말로 아이들에게 3월 15일이 무슨 날인지 물어봤다. 예년 같으며 조회 시간에 따로 이날의 역사적 의미를 간략히 설명한 뒤 함께 기억하자며 훈화라도 했을 테다. 그런데, 올해는 공교롭게도 일요일과 겹쳐서 미리 이야기를 잠깐 나눠 볼 참이었다. “뭐긴 뭐예요. 화이트데이 다음날이죠.” 천진난만한 아이들에겐 이성 친구들과 애정으로 표현하는 화이트데이가 3.15 의거 기념일보다 백 배는 더 중요하다. 웃자고 건넨 대답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3.15 의거를 알고 있는 경우가 드물었다. “이승만이 부정 선거를 자행한 날”이라고 말한 아이를 향해 대부분의 아이가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였다. 다들 그게 맞나 싶은 표정이었다. 아이들만 손가락질할 일도 아닌 듯하다. 파란만장한 우리 현대사를 증명이라고 하듯, ‘3.1절’을 비롯해 ‘4.3 추념일’, ‘4.19 혁명 기념일’,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6.10 민주 항쟁 기념일’ 등 날짜를 앞세운 기념일이 달력에 빼곡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국가 기념일들이 국민의 관심사에서 나날이 멀어지는 느낌이다. 사건이 발생한 해당 지역의 주민이 아니면, 대부분의 기념일이 왜 지정되었는지도 모르는 이들이 태반이다. 3.1절이나 광복절, 개천절, 올해 공휴일로 추가된 제헌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