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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한동훈이 소환한 정형근…다시 떠오른 ‘고문 검사’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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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근 후원회장 위촉은 고문피해자 2차 가해
김근태 고문에 이근안 투입, 정형근이 배후에
서경원 전 의원 수사 때 참고인 얼굴에 주먹질
방양균 “그가 다녀간 뒤엔 매번 더 포악해져”
김기춘에 진형구, 김학의까지 공안검사 면면
국가폭력 끈질긴 추적·단죄가 내란 청산 완성

2003년 10월 20일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이 국회 대정부 질의 발언을 통해 주독일 북한이익대표부 총책임자로 미국에 망명한 김경필의 `대북 보고문’ 디스켓 사진이 들어간 문건을 들어 보이며 간첩 명단을 입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 의원은 디스켓 원본을 보여달라는 기자의 요구에 복사기 위에 올려놓고 A4 용지를 출력했다며 증거라고 우겼다. 당시 주변에서는 ‘컴맹의 억지’란 비아냥이 적지 않았다. 2003.10.20 연합뉴스 자료사진

법무부는 5월 7일 신임 검사 임관식을 열었다. 같은 날 부산 북구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서는 무소속 한동훈 후보는 정형근 전 의원을 후원회장으로 위촉했다. 신임 검사들이 장차 어떤 검사가 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선배 검사 정형근을 반면교사로 삼으라는 말은 해주고 싶다. 그리고 정형근을 후원회장으로 위촉한 한동훈 후보의 행위가 고문 피해자들에 대한 명백한 2차 가해라는 사실도 알리고 싶다.

‘고문 기술자’ 이근안의 죽음을 계기로 지난달 정부는 국가폭력 가해자들에게 수여된 정부포상을 취소하기 위해 전수조사에 나섰다. 1985년 민청련 의장이던 김근태 고문의 배후가 정형근 당시 안기부 대공수사단장이었다. 정형근 단장이 남영동 대공분실을 직접 방문해 묵비권을 행사하던 김씨를 향해 “혼을 내서라도 철저히 밝혀내라”며 고문수사를 지시한 사실이 박처원 전 치안감의 진술을 통해 확인됐다. 그의 지시가 있은 뒤 이근안 경감이 투입됐고, 김근태는 23일 동안 전기고문 등 가혹한 고문을 당했다.

정형근은 ‘국가 안전보장에 뚜렷한 공을 세운 자에게 수여’한다는 보국훈장(1991, 1993)을 두 차례나 받았다. 따라서 정형근이 받은 훈장도 당연히 취소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후반기 국회는 반드시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안」을 속히 제정하여 ‘국가폭력 범죄에 대한 형사상 공소시효, 민사상 소멸시효를 완전히 폐지해 살아있는 한 끝까지 형사책임을 지고 상속 재산이 있는 한 자손들까지 그 범위 내에서 책임지도록 하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약속을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 내란 청산은 윤석열 일당에 대한 처벌을 넘어 내란의 음습한 자양분이 되었던 국가폭력 가해자들을 끈질기게 추적하고 단죄하는 지난한 과정이어야 한다.

아래 내용은 <전국 국가폭력 고문피해 실태조사(1차~3차)>(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20~ 2022)에서 정형근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정형근이 가담했던 대표적 국가폭력 사건 Ⓒ방학진

<재일 한국인 이헌치 간첩조작 사건>

재일교포 출신의 삼성전자 사원 이헌치는 1981.10.9. 만삭의 아내 박정숙과 함께 보안사에 체포되어 10.28. 구속영장이 발부될 때까지 20여 일간 불법구금 상태에서 가혹한 고문을 당했다. 보안사의 수사 후 서울지검으로 송치된 이헌치는 검찰(검사 정형근)에 의해 ”산업계에 침투하여 지하당 구축을 기도한 고정간첩” 등의 혐의로 기소되어 1심인 서울형사지법(판사 신성택·전효숙·유승정)에서 사형, 2심인 서울고법(판사 최종형·이강국·황우여)과 3심인 대법원(대법원 판사 강우영·김중서·이정우·신정철)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헌치는 1988.12.31. 20년형으로 감형되었고 1996년 8.15 광복절 특사로 가석방되었다. 이헌치는 만삭의 아내와 함께 보안사에 의해 영장 없이 체포되어 19일 동안 불법구금 상태에서 가혹한 고문수사를 받았다. 검찰 조사에서 이헌치가 ‘보안사에서 고문을 당해 허위자백했다’고 말하자 검사 정형근이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되돌려 보냈고, 수사관들은 “방북사실을 인정하면 2〜3년 안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부인하면 집사람도 실형을 받게 될 것이고, 영원히 가족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협박했다. 이헌치는 검사의 면회 및 접견 금지 조치로 한동안 가족면회도 할 수 없었고 변호사의 조력도 제때 받을 수 없었다.

<송씨 일가 간첩단 사건>

1983년 7월 10일 첫공판을 앞두고 안기부 수사단장과 담당 과장, 그리고 정형근 법률보좌관이 담당 재판부를 방문해 “송지섭 사건의 배경 및 간첩수사의 애로점 등을 설명”하고 “유죄판결을 유도”했으며, 7월 13일에는 담당 과장 등이 대법원장 비서실장156)을 다시 찾아가 “보강증거 등 공판대책 협의, 유죄판결 유도” 등을 했다. 2009년 9월 28일 서울고법 형사1부는 국가보안법위반(간첩) 혐의 등으로 기소돼 유죄를 선고받았던 송기복 등 8명에 대한 재심사건 선고공판에서 전원 무죄를 선고하였다.

<심진구 고문 사건>

안기부의 고문 과정에서 정형근 단장과 만난 것은 1986년 12월 크리스마스 이브 전인 22일경, 정형근 당시 대공수사단장이 고문을 받고 있던 내 앞에 나타났습니다.(….) 정형근은 담배연기를 한 모금 내뿜더니 “심진구, 이제는 간첩이라고 불 때가 됐는데. 여기 잡혀오면 15일 이내에 다 불지 않은 사람이 없어. 여기가 어딘 줄 알아? 국회의원도 잡아다 줘 패는 곳이야. 간첩이라고 한마디만 하면 돼. 그러지 않으면 여기서 살아나가지 못해. 죽어. 네가 뭔데 고등학교 밖에 못나온 안성 촌놈(심씨는 어려서부터 경기도 안성에서 자랐다.)이 서울에 올라와 문익환, 계훈제 야당놈들과 박영진(1986년 임금투쟁 중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며 분신) 장례 싸움을 걸어? 네가 뭔데 총대를 매! 아무래도 이상해. 고등학교만 졸업한 놈이 아는 게 너무 많아, 너 어릴 때부터 포섭됐지. 너 북에 갔다 왔지?”하면서 “간첩소리 나올 때까지 더 족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실장과 대머리에 눈이 치켜 올라간 부하가 몽둥이로 내 가슴을 후려쳤습니다. 내가 심문대 책상 뒤로 넘어지자 6명의 부하들이 달려들어 구둣발로 머리를 짓밟아대기 시작했습니다. 온몸을 몽둥이로 난타하더니 실오라기 하나 없이 벌거벗긴 채 손목과 발목에 수갑을 채우고 나서는 6명이 교대로 두들겨 패대는데 뼈가 부러질 것만 같았습니다. 나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온몸을 타이어처럼 둥그렇게 말면서 심문실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고, 온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심문실 바닥에 범벅이 되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그들은 내 발목에 묶인 수갑을 풀고 “일어서! 일어서! 새끼야!”하며 벽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나에게 “일보 앞으로! 일보 앞으로!”하면서 심문대 책상까지 다가오게 하였고, 나의 성기가 심문대 책상에 걸쳐지자 그 중의 한 사람이 몽둥이로 툭툭 치면서 “이것 아직도 살아 있구만”하더니 1미터 정도의 길이의 몽둥이로 내려치기 시작하였습니다. 비명을 지르면서 철제 심문대 책상 앞으로 고꾸라지자 이번에는 뒤에서 어깨와 머리를 쳐 뒤로 젖혀지면 또 앞에서 성기를 내려치기를 수십 차례, 나는 대들면 죽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 개새끼들아! 차라리 죽여라, 죽여! 제발 죽여다오!”라고 외쳤습니다.(<국가폭력피해자 증언대회> 증언록 중에서. 2005년 1월 25일. 국회도서관 대강당)

<서경원 의원 방북 사건>

(피해자 방양균) 잠 안 재우기는 기본이었고, 특히 안경을 벗겨 놓고 야전침대 각목으로 전신을 구타했다. (오른편 손등을 보이며) 아직도 여기에 흔적이 남아 있다. 바로 그가(김군성 수사관) 휘두른 각목에 맞아 찟어졌다가 아문 상처다. 다른 수사관의 심문과정에도 끼어들어 쉴 새없이 나를 협박하고 구타해 고막이 터지고 이마가 깨지기도 했다. 간첩활동을 한 사실을 자백하라며 족치던 김군성은 마치 저승사자와도 같았다. 그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사시나무 떨 듯 벌벌 떨기만 했다. 그리고 검찰로 송치될 때도 안기부에서 수사한 그대로 인정하라고 협박하며 각서를 쓰게 했다. 악랄하기로 따지면 정형근이었다. 그는 여러 차례 수사실에 들어와 나를 주먹으로 마구 구타했다. 마치 수사관들에게 ‘수사는 이런 식으로 한다’는 걸 보여 주는 것 같았다. 그가 다녀가고 나면 김군성의 폭행이 더 심해졌다. (왼쪽 관자놀이 부근을 가리키며) 여기 이 상처가 바로 정형근에게 맞아서 생긴 상처다.(「정형근 고문파트너 ‘독일병정’ 김군성은 경기도 양평에 살고 있었다」, 1999.12, 『월간 말』)

<민족해방운동사 걸개그림 사건>

홍성담 화백은 안기부(국가정보원의 전신) 지하실에서 물고문 끝에 “간첩”이라고 거짓으로 자백했다. 공안 당국은 ‘민족해방운동사 걸개그림’이 1989년 7월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 행사장에 걸린 것을 문제 삼았다. 홍 화백은 전국 화가 30여명이 공동 제작한 이 걸개그림의 사진을 북한에 보낸 혐의로 구속됐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이 사건 담당 공안부 검사였다. 김기춘 검찰총장과 정형근 안기부 대공수사국장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시절이었다.(‘김학의 성접대 의혹’ 등 ‘19금 정치풍자화’ 눈길, 한겨레 2019.9.17.)

무소속 한동훈 부산 북갑 국회의원 보궐선거 예비후보가 4일 오후 부산 구포동 북구선거관리위원회에 예비후보 등록을 한 뒤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6.5.4. 연합뉴스

한동훈 “3선 의원 모셔” 박민식 “북구 출신 아니라 빈자리”

한편 한동훈 후보는 8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전화 통화로 연결해 “지역 선거다. 지역민의 정말 많은 추천을 받았다. 지역 내 신망이 컸다”며 “후원회장으로 모신 것은, 정 전 의원같이 누가 봐도 강한 보수 성향을 가진 분께서도 계엄과 탄핵의 바다를 건너서 보수를 재건하겠다는 한동훈의 뜻에 공감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건 제 선거지 후원회장을 선거하는 건 아니지 않나”라며 “모든 생각이 같은 건 당연히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정작 정 전 의원은 12·3 비상계엄을 두고 “윤석열 대통령이 나름대로 판단해 잘하려 하다가” 이뤄진 일이라며 “내란죄는 되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한 후보가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막아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며 “민주당이 파견한 분대장”처럼 행동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 후보의 장인은 1998년 조폐공사 파업 유도 발언으로 대검 공안부장 직에서 물러난 진형구 씨다. 진보 진영에서는 김기춘-진형구-정형근-김학의 등 공안 검사들의 이름이 줄줄이 나오는 것을 눈여겨 보고 있다.

정 전 의원은 2024년 12월13일 유튜브 채널 자유헌정방송에 나와 이원창 자유헌정포럼 공동대표가 ‘윤 대통령 내란죄에 법적 근거가 있다고 보나’라고 묻자 “(내란죄 성립을 위해서는) 폭동을 해야만 하는데, 폭동을 일으키는 것을 대통령이 사주하거나 공범이 돼야 되는데 무슨 폭동이 일어났나”며 “내란죄는 안 되고 이것은 대통령의 직권남용(이다). 대통령이 나름대로 판단해서 잘하려 하다가 그 요건이 미비하거나 좀 지나쳤거나 이런 식으로 하면서, 내란죄에 대한 적용 같은 것은 언감생심 생각할 수 없는 건데, 내란죄가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은 굉장히 저는 잘못된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1996년 15대 총선에서 부산 북·강서갑에서 당선된 후 같은 지역구에서 내리 3선을 지냈다.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이 야당일 때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실정을 강하게 비판해 이른바 ‘저격수’로 불렸다. 18대 총선을 앞두고 2005년 공천에서 탈락했는데 호텔 객실에서 40대 여성과 몇 시간 함께 있다가 그녀의 남편과 실랑이를 벌인 이른바 ‘필리핀 묵주’ 스캔들 여파였다.

해당 의원직은 이번에 국민의힘 후보로 공천된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이 이어 받았다. 박 후보는 페이스북에 쓴 글을 통해 “정 전 의원은 3선을 지낸 거물급 정치인이었지만, 북구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주민들 마음에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가 있었다”면서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 전국적 지명도, 대선주자급 체급, 그때 그 구도와 지금 이 구도가 어쩌면 이렇게 닮아있는지요”라고 한 후보를 겨냥했다.

방학진 시민기자(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2026-05-08>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기사원문: 한동훈이 소환한 정형근…다시 떠오른 ‘고문 검사’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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