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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야스쿠니신사무단합사 철폐소송지원을 위한 바자회 안내

2007년 9월 28일 532

    민족문제연구소   비로 연기됐던 민족문제연구소, 한겨레21, 아름다운가게 공동주관의 “야스쿠니신사 무단합사철폐소송 지원을 위한 바자회”가 오는 9월 30일(일)에 열립니다. 지난 2월27일 11명의 원고가 야스쿠니신사를 동경지방법원에 제소하면서 무단합사철폐를 위한 법정투쟁이 시작 되었습니다. 2만1천여명의 조선인 합사자들의 영혼을 되찾는 이 투쟁이 승리할 수 있도록 관심있는 모든 분들의 참여와 격려를 부탁 드립니다.바자회를 통해 얻는 수익금은 전액 재판진행 경비로 쓰여집니다.바자회 장소와 시간은 다음과 같습니다.      – 다음 –   1. 때:  2007년 9월 30일(일) 오후 2시~6시2. 곳: 종각역 3번 출구 종로타워 앞(보신각 건너편)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서울시 동대문구 청량리동 38-29 금은빌딩3층 (담당 민연수 02 969 0226)www.anti-yasukuni.org / 280page@minjok.or.kr평화와 인권을 위한 울림  ARS 060-707-1945

김자동 임정 기념사업회장 “광복군 창설일이 ‘국군의 날’ 돼야”-‘동아'(07.09.23)

2007년 9월 28일 470

김자동 임정 기념사업회장 “광복군 창설일이 ‘국군의 날’ 돼야”  “국군의 날을 임시정부 산하 광복군 창설일인 9월 17일로 바꿔야 합니다. 국군의 날 변경 문제를 정부에 정식 건의할 계획입니다.”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사업회의 김자동(79·사진) 회장은 22일 본보 기자와 만나 국군의 날 문제와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김 회장은 “1940년 9월 17일 임시 정부가 머물던 중국 충칭(重慶)에서 100명 정도의 병력으로 광복군이 창설됐다”며 “광복군은 일본군에 끌려간 한국인을 탈출시키고, 광복 직전 국내 침투부대를 양성하는 역할도 했다”고 설명했다.이후 신흥무관학교에서 독립군 간부를 양성했던 독립운동가 지청천(1888∼1957년) 선생이 광복군 총사령관을 맡아 항일전을 이끌었다.광복 직전 광복군은 700여 명으로 늘었고, 1945년 8월 일본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기 직전엔 중국 시안(西安)에서 한국 상륙을 위한 특수부대인 ‘정진대’의 2기생까지 배출했다.현재의 국군의 날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0월 1일 3사단 23연대 병사들이 강원 양양 지역에서 처음 38선을 넘어 북진한 것을 기념해 1956년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김 회장은 “38선을 넘은 것도 의미 있겠지만 상하이 임정의 정규부대인 광복군 창설일을 국군의 날로 바꾸면 역사적 의미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② ‘독도의 날’ 제정 지지부진

2009년 10월 14일 504

<獨島의 달> ② ‘독도의 날’ 제정 지지부진(연합뉴스, 09.10.14)

① 타임광장 전광판에 독도광고 추진

2009년 10월 14일 514

<獨島의 달> ① 타임광장 전광판에 독도광고 추진(연합뉴스, 09.10.14)

조봉암 선생 팔순 큰딸 눈물 “이제야 50년 한 풀어”-경향신문(07.09.28)

2007년 9월 28일 555

조봉암 선생 팔순 큰딸 눈물 “이제야 50년 한 풀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쁩니다. 너무 오랫동안 기다려왔거든요. 50년 동안 그렇게 많은 정권이 바뀌면서도 한번도 안되더니 이제야 겨우 원을 풀었습니다.”죽산(竹山) 조봉암 선생의 사형이 당시 이승만 정권의 정치탄압 때문이었다는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이 나온 27일 장녀 호정씨(80)는 연방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조씨는 “욕심 부리지 않고 열심히 살다보니 이렇게 좋은 일도 있다”면서 “추석 전에 (위원회로부터)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귀띔을 듣고 아버님 묘소를 찾아 아버님께 인사를 드리고 왔다”고 말했다.아버지의 무죄를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추호의 부끄럼 없이 평생을 살아왔다는 조씨는 그러나 지난 세월을 회상하면서 목이 메이는지 말을 잇지 못했다.조씨는 “지금이야 이렇게 말할 수 있지만 그간 가족들의 심적인 괴로움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면서 “그래도 아버님의 길이 자랑스러웠기 때문에 힘든 시절도 잘 견딜 수 있었다”고 말했다.아직까지 진실화해위로부터 공식 결정문을 받아보지는 못했지만 결정문이 도착하는 대로 진보당 사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할 계획이다.조씨는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이 더 많다”면서 “나라에서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해준 만큼 더 큰 욕심은 없다. 다만 재판을 다시 받아 억울한 판결을 되돌려 진실을 밝히겠다”고 말했다.최근 국무조정실이 ‘권고사항 처리단’을 설치, 진실화해위의 권고사항을 적극 수용키로 한 만큼 조봉암 선생에 대한 이번 결정도 구체적인 조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또 진실화해위가 진보당 사건 때문에 독립유공자 선정에서 배제된 조봉암

샌드라 오, 위안부 진상 알리기 나서-‘중앙'(07.09.28)

2007년 9월 28일 487

샌드라 오, 위안부 진상 알리기 나서      미국에서 활약 중인 한국계 인기 배우 샌드라 오가 위안부 문제의 진상을 알리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그는 다음달 4일부터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분교(UCLA)에서 3일 동안 열리는 위안부 관련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한다. 행사 주최 측에 따르면 샌드라 오는 함께 일하는 한국계 영화인들을 통해 “위안부 관련 국제회의에 꼭 참석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주최 측은 그에게 위안부 문제의 참상을 알리는 시낭송을 부탁할 계획이다. 샌드라 오가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올 7월 미 하원에서 일본군 종군위안부 규탄 결의안이 통과되면서라고 한다. 캐나다에서 성장한 그는 위안부 강제동원의 참상 자체를 몰랐다가 결의안이 미국에서 논란을 빚으면서 진상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이번 국제회의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참회를 촉구해온 시민단체들이 마련했다. 결의안 통과를 계기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서다. 샌드라 오는 ‘그레이스 애나토미 (Grey’s Anatomy)’ 등 인기 드라마에 출연, 인상적인 연기로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2005년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을 받았고, 전 남편인 영화감독 알렉산더 페인과 함께 작업한 영화 ‘사이드웨이스’로 2004년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충북 음성에 내달초 사할린동포 영주귀국

2009년 10월 14일 499

충북 음성에 내달초 사할린동포 영주귀국(연합뉴스, 09.10.12)

사할린 동포 181명 경남에 정착한다

2009년 10월 14일 633

사할린 동포 181명 경남에 정착한다(연합뉴스, 09.10.07)

일본군 출신 2인 회견… “日, 전쟁 피해자에 사죄·보상이 미래 여는 길”-국민일보(07.09.13)

2007년 9월 21일 494

일본군 출신 2인 회견… “日, 전쟁 피해자에 사죄·보상이 미래 여는 길”  “일본 정부는 조선인 전범, 일본군 위안부, 시베리아 억류자 등 전쟁피해자들에게 사죄와 공식 보상을 하는 것이야말로 동아시아의 미래와 평화를 위한 가장 가까운 길이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가해와 피해의 경험을 가진 조선인 BC급 전범 이학래(83)씨와 일본인 이케다 코이치(86) 전국억류자협회장이 13일 서울 을지로1가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은 20여개국 역사 관련 시민단체(NGO)들이 역사의 진실규명을 통해 동아시아의 화해를 모색하고자 마련한 제1회 역사 NGO세계대회 참석차 일본에서 방한했다.보성 출신의 이씨는 17세이던 1942년 강제징집을 피하기 위해 조선총독부의 포로감시원 군속 모집에 지원했고 이후 태국 포로수용소에서 복무했다. 그러나 45년 해방되자 그는 전범 혐의로 체포돼 사형언도를 받았고 우여곡절 끝에 56년 가석방됐다. 수감 중 52년 샌프란시스코조약 발효로 일본 국적을 상실했다. 이씨 같은 BC급 전범 중 조선인은 148명. 이 중 23명은 사형됐다. 감옥에서 풀려났어도 52명은 친일파로 보는 따가운 시선 때문에 귀국하지 못했다.현재 이씨는 일본에 있는 조선인 BC급 전범 생존자 9명 및 유가족들과 보상을 받기 위한 입법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씨는 “포기하지 않고 8년이 넘도록 입법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의 양식있는 시민단체들이 지원해 준 덕분”이라며 “국적이 일본이라는 이유로 형을 살았는데, 이제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일본 정부가 우리를 모른 척 하는 처사는 이해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1945년 8월 소집돼 관동군에 배치됐던

[프리뷰]연극 ‘짐’-악몽같은 과거…내릴 수 없는 짐-경향신문(07.09.18)

2007년 9월 21일 669

[프리뷰]연극 ‘짐’-악몽같은 과거…내릴 수 없는 짐 짐이 온다. 보낸 사람도 받은 사람도 ‘당신의 것’이라 우기는 짐이다. 풀어헤쳐 내용물을 확인하든지 어디로든 버리면 될 것을 그들은 굳이 승강이를 하며 짐을 주고 받는다. 사람들이 질긴 고집을 부리는 사이, 짐은 주인 따위는 누구라도 상관 없다는 듯 무대 한가운데 흉물스럽게 앉아 있다.6년 전 연극 ‘배장화 배홍련’으로 호흡을 맞췄던 작가 정복근과 연출가 한태숙이 연극 ‘짐’으로 돌아왔다. 반가운 마음으로 풀어본 짐 안에는 과거에서 현대로 던져진 짐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절필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6년 동안 신작을 내지 않았던 정 작가는 1945년 8월24일 부산항으로 향하던 일본 배가 갑자기 폭발한 ‘우키시마호 사건’을 소재로 들고 나왔다.당시 우키시마호에는 일본에 강제징용되었다 고국으로 돌아가던 조선인들이 타고 있었다. ‘고의적 폭발’이라는 의혹이 제기됐으나 원인은 아직까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사망자가 524명이라고 공식 발표했지만 유가족들은 당시 승선자 수만 7000명이 넘는다고 주장했다.어둡고 끔찍한 과거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극은 관객의 감정을 쥐어짜지 않는다. 그래서 덜 불편하지만 더 섬뜩하다. 70분 동안 흐르는 긴장감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극은 과거와 현재, 이중구조로 나뉜다. 일본인 요시코와 한국인 김윤식은 짐과 함께 주고 받은 편지를 읽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관객과 눈높이를 맞춘다. 우키시마호 사건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과거 문제에 별 관심이 없는 관객들도 극에 집중할 수 있는 이유는 이들의 존재 때문이다.선거를 앞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