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만 정권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강제해산하는 계기가 됐던 ‘국회 프락치 사건’ 피고인들의 유족이 77년만에 재심 청구에 나선다.
1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국회 프락치 사건’에 연루됐던 노일환, 강욱중, 김병회, 서용길 등 제헌의회 의원들의 유족은 사건에 대한 재심 청구서를 오는 2일 법원에 제출한다.
재심 청구서를 보면 유족들은 “피고인들은 국가를 위해 헌신한 제헌 국회의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사기관의 잔혹한 고문과 위법한 절차에 의해 ‘프락치’라는 오명을 쓴 채 신체의 자유와 명예를 박탈당했다”며 “이제라도 위헌적인 국가 폭력으로 왜곡된 사법 정의를 바로 세우고, 피고인들과 그 유족의 맺힌 한을 풀 수 있도록 재심 개시를 결정하여 주시기를 간곡히 청구한다”고 말했다.
이승만 정권은 1949년 5~8월 북한 공작원에게 포섭된 이른바 ‘남로당 프락치 의원’ 명단의 암호 문서를 발견했다며 소장파 국회의원 15명을 체포해 이 중 13명을 구속했다. 1950년 1심에서 서울중앙지법은 이들에게 3~10년형을 선고했다. 이어 같은해 6월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서울고법은 1951년 12월 전쟁 중 기록이 멸실됐다며 공소 기각 결정을 내렸다. 13명 중 서용길을 제외한 12명은 한국전쟁 중 북으로 갔다. 이들이 어떤 이유로 북으로 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국회 프락치 사건으로 구속된 의원 대부분은 친일파 청산에 매우 적극적이거나 반민특위에 참여했다. 반민특위는 1949년 1월 출범해 활동하다 같은해 6월 활동이 중단됐고 10월 해산됐다.
이강수 반민특위 기념사업회 학술위원장은 지난해 5월 민족문제연구소에 기고한 글에서 국회 프락치 사건을 “이승만 전 대통령이 경찰, 군, 검찰, 재판부까지 국가권력을 총동원해 제헌국회의원 다수를 간첩으로 몰아 ‘제거’하려 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유족들은 재심 청구서에서 “재심 대상 판결은 항소심에서 공소기각 결정으로 종결됐으나, 그 실질을 들여다보면 제1심에서 이미 실형이 선고돼 피고인에게 ‘공산당 프락치’라는 극심한 사회적 낙인과 신체의 자유 박탈이라는 인권침해가 발생했다”며 “항소심 재판부는 기록 멸실이라는 명백한 국가의 귀책 사유를 이유로 공소기각이라는 형식적 종결을 했다”고 말했다. ‘기록 멸실’의 책임은 국가에 있음에도 유무죄를 판단하지 않고 공소 기각을 한 것은 타당하지 않고, 그래서 재심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앞서 지난해 4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김옥주, 김병회 전 의원 유족이 신청한 국회 프락치 사건에서 불법 체포, 감금, 고문과 가혹행위 등 중대한 인권 침해가 있었다는 내용의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유족들은 조만간 진화위에 ‘국회 프락치 사건’ 추가 진실규명 신청서도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강한들 기자
<2026-04-01>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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