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학살 작전 전개해도 ‘서훈.공로’ 이유로 현충원에 안장

제주4·3 당시 양민 학살에 가담한 군·경 지휘관들이 국립묘지에 안장돼 논란이 일고 있다.
2일 본지 취재 결과, 4·3당시 강경 진압 작전으로 전개했음에도 서훈·공로를 인정받거나 전몰·전상·순직 등 국가유공자로 등록된 이들의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구체적으로 서울 현충원에 박진경·김명·문용채·최석용, 대전 현충원에 함병선·서종철·유재흥·김두찬의 묘비가 있다.
2003년 정부가 발간한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박진경은 1948년 5월 6일 육군 9연대장으로 제주에 부임한 후 양민을 무차별 검거·연행, 강경 진압 작전을 주도하고도 그해 6월 중령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김명 대위는 2연대 작전참모이자 무장대(산사람)로 위장해 활동한 특수부대 부대장으로 ‘함정 토벌’로 많은 양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4·3당시 제주경찰장이었던 문용채는 일본군 헌병 소위 출신으로 도민들에게 무조건 경찰에 순종할 것을 요구했고, 1948년 5월 1일 오라리 방화사건에도 깊숙이 개입했다.
최석용은 항일운동을 하다 변절한 이래 1949년 2연대(연대장 함병선) 소속 대대장으로 부임 후 서북청년회를 지휘하며 강경 진압 작전의 선두에 서서 제주도민을 학살했다.

대전 현충원에 안장된 함병선은 제2연대장 부임 후 1949년 1월 조천면 북촌리 주민 400여 명의 집단 학살을 주도하고, 두 차례 군법회의 최고지휘관으로서 재판 절차 없이 수많은 민간인을 처벌했다.
또한 11연대가 9연대로 교체되면서 9연대 부연대장을 맡았던 서종철과 민간인 학살을 명령했던 해병대 정보참모 김두찬도 도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1949년 3월 2일 제주도지구전투사령부가 설치되면서 사령관으로 부임한 유재흥 대령은 선무공작으로 양민들을 귀순시켰지만, 많은 이들이 군법회의에 회부돼 육지 형무소로 이감된 후 행방불명됐다.
양민 학살 책임자가 현충원에 안장된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온 민족문제연구소는 훈장이나 공로가 있다는 이유로만 예우를 받는 것을 문제라며, 조속히 국립묘지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더구나 친일행각을 벌인 문용채와 최석용의 묘비에서는 조국 광복을 위해 투쟁했거나 독립운동가로 신분이 세탁된 사례도 있어 비문에 대한 정정도 필요한 실정이다.

좌동철 기자 roots@jejunews.com
<2026-04-02> 제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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