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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출신 2인 회견… “日, 전쟁 피해자에 사죄·보상이 미래 여는 길”-국민일보(07.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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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출신 2인 회견… “日, 전쟁 피해자에 사죄·보상이 미래 여는 길”
 



“일본 정부는 조선인 전범, 일본군 위안부, 시베리아 억류자 등 전쟁피해자들에게 사죄와 공식 보상을 하는 것이야말로 동아시아의 미래와 평화를 위한 가장 가까운 길이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가해와 피해의 경험을 가진 조선인 BC급 전범 이학래(83)씨와 일본인 이케다 코이치(86) 전국억류자협회장이 13일 서울 을지로1가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은 20여개국 역사 관련 시민단체(NGO)들이 역사의 진실규명을 통해 동아시아의 화해를 모색하고자 마련한 제1회 역사 NGO세계대회 참석차 일본에서 방한했다.

보성 출신의 이씨는 17세이던 1942년 강제징집을 피하기 위해 조선총독부의 포로감시원 군속 모집에 지원했고 이후 태국 포로수용소에서 복무했다. 그러나 45년 해방되자 그는 전범 혐의로 체포돼 사형언도를 받았고 우여곡절 끝에 56년 가석방됐다. 수감 중 52년 샌프란시스코조약 발효로 일본 국적을 상실했다. 이씨 같은 BC급 전범 중 조선인은 148명. 이 중 23명은 사형됐다. 감옥에서 풀려났어도 52명은 친일파로 보는 따가운 시선 때문에 귀국하지 못했다.

현재 이씨는 일본에 있는 조선인 BC급 전범 생존자 9명 및 유가족들과 보상을 받기 위한 입법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씨는 “포기하지 않고 8년이 넘도록 입법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의 양식있는 시민단체들이 지원해 준 덕분”이라며 “국적이 일본이라는 이유로 형을 살았는데, 이제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일본 정부가 우리를 모른 척 하는 처사는 이해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1945년 8월 소집돼 관동군에 배치됐던 이케다씨는 종전되면서 스탈린 정부에 의해 시베리아로 강제이송됐다. 이후 우즈베키스탄의 한 수용소에서 3년간 탄광·철도 건설에 내몰렸다. 그는“배고픔이 극심해 언 땅을 파다 발견한 두꺼비를 산 채로 뜯어 먹기도 했다”고 참상을 전했다. 먹을거리 앞에서 동료를 배신하는 등 인간으로서 자존감을 잃은 순간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일본인 60만∼90만명, 조선인 3500명 정도가 시베리아 등지에 억류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케다씨는 “포로들의 강제 노동 대가는 포로가 속한 국가가 지급토록 한 국제법에 따라 미국 억류 일본인들이 보상을 받은 것과 달리 우리는 빨갱이로 취급되는 등 62년째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일본 정부가 위로금 명목으로 준 1인당 10만엔의 물품을 매각해 거둔 수익금 중에서 일부를 한국인억류자단체에 전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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