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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부산민주공원서 일제강제징용 사진전-연합뉴스(07.10.03)
부산민주공원서 일제강제징용 사진전 (부산=연합뉴스) 조성미 기자 = 사진작가 김효산씨가 일본에 남아있는 일제시대 한인 강제징용의 흔적을 기록한 사진 전시회가 12~25일 부산민주공원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3일 부산민주공원에 따르면 ‘잊혀진 이름’으로 명명된 이번 전시회에는 해방 직후 강제연행 한국인 500명을 태우고 귀국하다 폭발한 우키시마호 희생자 추모비, 히로시마 평화공원 전경, 많은 한국인이 혹사당한 일본 철도 산인선(山陰線)의 모습 등 사진 100여점이 전시된다.사진작가 김효산씨는 “강제로 끌려가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이들의 흔적을 찾아 기록함으로써 일제하 강제동원의 진상을 규명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전시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문의 부산민주공원 ☎ 051-462-1016.
(20)후손 정체성 확립-연합뉴스(07.10.04)
<고려인 강제이주 70년> (20)후손 정체성 확립 재정착 고려인에 민족혼 찾아주는 백규성 회장(하바로프스크<연해주>=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시베리아 고려인단체연합 회장이자 민주평통 극동협의회 회장인 백규성(64)씨.그는 일제 강점기 사할린으로 강제징용된 동포 2세지만 하바로프스크로 이주한 뒤에는 고려인에게 재정착을 지원하고 정체성을 찾아주는 데 앞장서고 있다.백 회장은 “사할린 동포나 고려인은 강제징용과 강제이주의 아픔을 지닌 사람들로 똑같이 대우해줘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라며 “힘 닿는 데까지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이산가족회를 비롯해 각종 친목회까지 9개 고려인단체의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현재 하바로프스크주에는 한민족 1만5천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60%는 강제이주 고려인이고, 30%는 사할린에서 건너온 강제징용 후손이며, 나머지는 1864년부터 강제이주 되지 않고 터전을 닦은 조선인이다.이들이 이 곳에서 살아가면서 가장 어렵게 느끼는 것은 고려인으로서 한글을 모르는 것. 1964년까지는 극동지역에 조선학교가 있었지만 학교가 없어지고 난 후 한글 교육의 명맥이 끊겼다.그러다 개혁 개방 이후 한국 바람이 일면서 하바주 내의 16개 대학이 한국학교나 한국어학과를 설치해 한글을 보급했다.백 회장은 “처음에는 부모들이 자녀에게 우리말을 배울 것을 강요해 고려인 수강생이 많았지만 지금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한국 기업들이 하루라도 빨리 들어 오면 그 문제는 해결된다”고 기업 진출을 강력 희망했다.올해 8월 광복절 행사를 7천 명을 수용하는 하바주의 최대 체육관에서 개최한 그는 “추석이나 설 명절은 각 가정에서 반드시 챙길 것을 권유하고, 이 날이 되면 잊지 않고 어르신들을 모셔 식사를 대접했다”고 밝혔다.10월1일에도 강제이주 70주년을
나눔의 집,31일 전문요양시설 준공식
나눔의 집,31일 전문요양시설 준공식(BBS, 09.10.16)
고대 한반도 신을 모시는 ‘기온마츠리’를 보셨나요?
이윤옥·김영조 2009년 7월 16일 밤. 일본 3대 마츠리의 하나인 기온마츠리 전야제가 열리는 교토시내 가라스마 거리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우리 일행 중에는 일본에 여러 번 다녔으면서도 기온마츠리는 처음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기온마츠리 전야제에서는 32기 가마 전체의 제등식과 기온바야시라 불리는 악사들의 악기 연주 등으로 거리는 온통 사람들의 물결로 가득 찼고, 흥청거렸다.젊은이들이 쌍쌍이 유카타를 입고 게다를 신고 나온 모습은 마츠리의 나라 일본이 아니면 볼 수 없는 풍경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가와이이(예쁘다의 일본말)”를 외쳐대며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면 함박웃음을 지으며 흔쾌히 허락한다. 젊은이들이 외래 것이 아닌 자신들의 전통을 즐기는 모습이 부러울 지경이었다.“일본의 마츠리는 지역 경제의 부흥과 밀접하다. 따라서 신사(神社)에서는 단절된 옛 마츠리를 발굴하여 새로운 형태의 마츠리로 만들고자 애쓰고 있다.”라고 민속학자 스가타 씨는 그의 책『일본의 마츠리』에서 말했다. 그러면서 지역관광협회나 상인협회의 후원을 받아 점점 이벤트화해가는 마츠리를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츠리가 지닌 전통적인 성스러움을 잊지 말기를 강조하고 있다.이벤트화 되어가는 일본의 마츠리! 일본 민속학자의 고민을 보면서 우리의 축제 문화를 되돌아본다. 최근 한국에도 축제가 부쩍 늘었다. 지방마다 예외 없이 축제를 치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축제는 이제 한국문화에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요 문화행사다. 영암 왕인문화축제, 전주 세계소리축제, 대가야 체험축제 등의 문화축제가 있는가 하면 대관령 눈꽃축제, 무주 반딧불축제 따위의 자연을 소재로 한 축제, 인제 빙어축제,
(13)좌절딛고 성공한 고려인-연합뉴스(07.10.03)
<고려인 강제이주 70년> (13)좌절딛고 성공한 고려인 카자흐스탄 유일의 고려인 공훈예술가 문공자씨(알마티=연합뉴스) 김병규 기자 = 올해로 환갑을 맞은 문공자(60.여) 씨는 카자흐스탄에서는 유일하게 ‘공훈예술가’ 칭호를 받고 있는 고려인이다.공훈예술가는 이 나라 예술가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다. 지난 1992년 카자흐스탄이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뒤 이 칭호를 받은 예술가는 아직 100명을 넘지 못하고 있다. 문씨는 2005년 훈장과 함께 공훈예술가 칭호를 받았다.“아버지가 ‘일본시대’ 때 징용으로 건너온 한국인 2세”라고 자신을 소개한 문씨는 “러시아 민요도 부르고 카자흐 민요도 부르지만 가장 좋아하는 것은 한국 민요”라며 말문을 열었다.그가 태어난 곳은 사할린의 유주노사할린스크시. 일제에 의해 끌려온 그의 아버지는 딸의 예술적 재능을 살려주려고 아제르바이잔 바쿠에 있는 대학으로 유학을 보냈고 그는 졸업 후 그곳에서 가수로 활동했다.카자흐스탄과 인연을 맺은 것은 30세를 조금 넘긴 1978년이었다. 우즈베키스탄에 순회공연차 온 그는 인근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극장인 고려극장에 ‘스카우트’됐고 이후 30년 가까이 이 극장 소속으로 공연을 펼쳐왔다.“엄하게 ‘고려어’ 공부를 시켰던 부모님 덕에 다른 고려인들보다 한국어에 능했을 뿐 자라면서 (내가) 고려인이라는 사실에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고 말하는 그가 조국을 한층 가깝게 느끼게 된 것은 1990년대 초반 북한과 남한에서 번갈아 공연을 하면서부터다.그는 “1990년 북한의 통일축전에 초청받아 노래를 불렀고 이듬해인 1991년에는 남한 방송국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국 가수들과 함께 공연을 했다”며 “이를 계기로 한국 노래에 관심을 갖게 돼 카자흐스탄으로 돌아온 뒤에도 ‘새타령’이나 ‘뱃노래’ 같은
21세기 대한민국 법률에 담긴 리승만의 국가관
임헌영 소장 민교협·민변·작가회의. 시민사회 진영을 대표하는 세 단체가 뭉쳤다. ‘지식인 공동 행동’이라는 의지를 담아 남북정상의 10·4 합의문에서 제시된 ‘통일 지향적 법제도 정비 대상’으로 꼽히는 국가보안법을 다시 공론의 장에 내놓았다. 북한을 ‘적국’으로 규정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은 지난 2004년, 17대 국회가 출발하면서 개폐 움직임이 일었지만 보수측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오마이뉴스>는 이들 단체의 릴레이 기고를 통해, 한반도가 전쟁의 시대를 종식하고 평화체제로 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처벌을 받고 풀려난 사진작가 이시우씨가 지난 9월 아내 김은옥씨와 함께 서울역 광장에서 벌어진 국가보안법 폐지 집회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팻말을 들고 동참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먼저 고리타분한 소설 한 연을 인용하고 싶다. “불원한 장래에 사어(死語)사전이 편찬된다고 하면 ‘빨갱이’라는 말이 당연히 거기에 오를 것이요, 그 주석엔 가로되 ‘1940년대의 남부 조선에서 볼셰비키, 멘셰비키는 물론, 아나키스트, 사회민주당, 자유주의자, 일부의 크리스찬, 일부의 불교도, 일부의 공맹교인(孔孟敎人), 일부의 천도교인, 그리고 중등학교 이상의 학생들로서… 단지 추잡한 것과 불의한 것을 싫어하고, 아름다운 것과 바르고 참된 것과 정의를 동경 추구하는 청소년들, 그밖에도 000의 정치노선을 따르지 않는 모든 양심적이요 애국적인 사람들, …이런 사람을 통틀어 빨갱이라고 불렀느니라.”(채만식 소설 <도야지>, 1948년) 채만식이 빠트린 세력이 있다. 바로 양심적인 항일독립투사들이다.반대로 “빨갱이 때려잡는 게 곧 애국”이라며 외세와 밀착, 분단, 독재의 복마전을 쌓았던 세력의 주류는 친일파였거나 그 후예들로 이내 친미파로 변신했다. 당연히 ‘맹방’ 미국이나 일본을 비난하는 것도 빨갱이다.남한은 일본이 남긴 치안유지법을 개보수해 ‘국가보안법’으로 재무장, 친일파 청산이나 민주주의 주창자, 통일과 반전 평화주의, 침략전쟁 반대, 미국 비판, 대재벌 비판, 인권과 노동자·농민의 권익, 여성해방, 실직자 구제, 유아와 노인복지, 무상 교육과 무상 의료 제도 등을 비롯한 각종 사회복지 주창자도 ‘빨갱이’로 몰았다. 어째서 우리 사회는 유럽형 사회복지 제도를
사할린 귀국동포와 자매결연
사할린 귀국동포와 자매결연(경향신문, 09.10.14)
‘의병의 날’ 조례 만든다
‘의병의 날’ 조례 만든다(광주드림, 09.10.14)
‘친일행적’ 남인수가요제 찬-반 단체 홍보전
오마이뉴스 윤성효 기자 ▲ 친일잔재청산 진주시민운동은 남인수가요제가 열린 9일 저녁 진주성 정문 안쪽에서 가요제를 주치한 진주문화방송을 비난하는 현수막을 들고 서 있었다. ⓒ 장현진 ▲ 남인수가요제 찬성 단체 회원들은 9일 저녁 진주성 정문 입구에서 유인물을 나눠주기도 했다. ⓒ 장현진 ‘남인수 가요제’ 찬성반대 단체들이 가요제가 열린 진주성 특설무대 주변에서 비슷한 시각 현수막을 걸어놓고 유인물을 나눠주는 활동을 벌였지만, 충돌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진주MBC는 진주시로부터 예산 5000만원을 지원받아 9일 저녁 진주성 특설무대에서 ‘남인수 가요제’를 열었다. 진주 출신인 남인수(본명 강문수, 1918∼1962)는 친일 행적이 드러났으며,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그를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자로 발표했다. “진주성에서 친일인사 기념 웬말이냐” 민족문제연구소와 ‘일제잔재청산 진주시민운동’은 ‘남인수 가요제’ 폐지 내지 명칭 변경을 주장해 왔다. 민족문제연구소 서부경남지회(준) 회원들과 진주시민운동 소속 회원들은 이날 오후 진주성 정문 안쪽에서 가요제에 반대하는 활동을 벌였다.이들은 지나는 시민들에게 ‘친일잔재청산진주정신계승’이라고 새겨진 풍선을 나눠주기도 했다. 또 진주시민운동은 “호국성지 진주성에서 친일인사 기념 웬말이냐”와 “친일시비 남인수 가요제 고집하는 진주MBC는 반성하라”는 현수막을 들고 서 있었다.남인수는 <강남(江南)의 나팔수>(1942년)와 <남쪽의 달밤>(1942년), <낭자일기(娘子日記)>(1942년), <병원선(病院船)(1942년), <이천오백만 감격(二千五百萬 感激)>(1943년), <혈서지원(血書志願)>(1943년) 등의 친일 군국가요를 불었다.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 행적이 드러나자 ‘박시춘가요제’(밀양)와 ‘백년설가요제’(성주)가 명칭이 변경된 사례가 있다”면서 “당시 일제의 통치 방식을 직역봉공(職役奉公)을 기본으로 하는 방식이었다. 직역봉공이란 자신의 직업을 충실히 하며서 친일을 하라는 방식으로 즉 화가는 그림으로 작가는 글로 가수는 노래로 친일에 기여한 행위”라고
부산 ‘노다이사건’ 67주년… ‘항일정신’ 마라톤으로 되살린다-부산일보(07.10.07)
부산 ‘노다이사건’ 67주년… ‘항일정신’ 마라톤으로 되살린다 13일부터 경부마라톤 일제 말기 부산지역의 대표적인 청년저항운동이었던 항일학생의거(‘노다이사건’) 정신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경부마라톤 등을 통해 되살아난다.부산시와 개성고(일제 당시 부산제2상), 동래고(부산중), 부산항일학생의거기념사업회는 오는 13일 오전 10시 서울 한강 잠실선착장에서 ‘제5회 부산항일학생의거 67주년 기념 경부 이어달리기’ 출정식을 갖는다고 7일 밝혔다.모두 8개 구간으로 나뉘어 다음달 18일까지 주말마다 이틀씩 8일 동안 진행될 예정인 이 행사는 ▲13일 서울∼용인(50㎞) ▲14일 용인∼천안(66.3㎞) ▲20일 천안∼대전(69㎞) ▲21일 대전∼김천(65.1㎞) ▲11월 10일 김천∼고령(70㎞) ▲11일 고령∼부곡(70㎞) ▲17일 부곡∼하단(65㎞) ▲18일 하단∼개성·동래고(25, 27㎞) 순으로 이어진다.기념식은 다음달 23일 부산시 부산진구 어린이대공원 내 학생문화회관 광장에서 부산항일학생의거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릴 예정이다. 노다이사건은 일제의 강권통치가 극에 달했던 1940년 11월 23일 부산 서구 부산공설운동장(현 구덕운동장)에서 열린 ‘제2회 경남 전력증강 국방경기대회’에 참가했던 조선 학교인 부산제2상과 동래중학생 1000여명이핡생들이 일본 학교를 거드는 일본인 심판의 편파판정에 불만을 품고 가두시위을 벌인 뒤 당시 경남지역 일본군 사령관인 ‘노다이’ 육군대좌의 영주동 관사를 습격한 사건이다.강대민(54·경성대 사학과 교수) 부산항일학생의거기념사업회 이사장은 “내년부터는 마라톤 계주도 전국 주요 항일학생운동 발생지역을 연결하는 전국 규모로 확대해 독립정신과 애국혼을 일깨우는 방향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