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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왜냐면] ‘조선’ 국적자의 입국을 허하라!

2009년 10월 19일 469

[왜냐면] ‘조선’ 국적자의 입국을 허하라!(한겨레신문, 09.10.18)

-연합뉴스(07.10.10)

2007년 10월 11일 427

<한국비하 앞장 日귀화 오선화씨 한때 입국거부돼>     (서울=연합뉴스) 일본 귀화 한국인으로서 일본을 미화하고 한국을 비하하는 저술 활동으로 비난을 받아 온 일본 타쿠쇼쿠(拓殖)대 오선화(吳善花.51.여) 교수가 이달초 한국을 찾았다가 한때 입국을 거부당했던 것으로 확인됐다.10일 관계 당국에 따르면 오씨는 지난 1일 모친 장례 참석을 위해 제주공항을 통해 입국하려 했으나 출입국 심사 과정에서 입국이 거부됐다.이는 일본에서의 반한(反韓)활동을 이유로 한국 정부에 의해 입국금지조치 대상자로 지정됐기 때문으로 알려졌다.이에 일본 국적인 오씨는 일본의 제주총영사관에 의뢰해 한국측과 접촉, ‘인도적 배려’로서 입국 허가를 받은 뒤 지난 4일 일본으로 출국한 것으로 전해졌다.오씨는 1983년 일본 유학을 계기로 반한.친일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 2005년 3월에는 일제의 식민통치가 조선의 경제와 교육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며 식민지배를 철저히 미화한 단행본을 출간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오선화씨, 日 귀화 이후 노골적 친일행각-한국일보(07.10.10)

2007년 10월 11일 720

오선화씨, 日 귀화 이후 노골적 친일행각제주서 한때 입국거부 반한ㆍ친일활동으로 ‘일본 우익의 앞잡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오선화(吳善花ㆍ51ㆍ사진) 일본 타쿠쇼쿠(拓殖)대학 교수가 한국의 입국금지 대상자 명단에 올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10일 관계 소식통에 따르면 오선화는 최근 어머니의 장례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인 제주도를 찾았지만 일시적으로 입국을 거부당했다. 출입국관리법상의 입국금지자 리스트에 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1991년 일본에 귀화한 그는 일본 총영사관에 이 사실을 알렸고, 결국 한국 당국이 ‘인도적 배려’라는 명목으로 입국을 허용해 귀향이 이뤄졌다.소식통에 따르면 오선화에 대한 입국금지 조치는 노골적인 반한 활동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출입국관리법에는 ‘일제시대 일본 정부와 관련된 활동을 한자’ ‘우리나라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 자’ ‘기타 입국이 부당하다고 판단한 자’ 등은 입국을 금지할 수 있다고 돼 있다.1983년 일본 유학을 계기로 반한ㆍ친일활동을 시작한 오선화는 일본의 침략 역사를 왜곡ㆍ미화하고, 한국과 한국인을 헐뜯고 폄하하는 책과 글을 줄기차게 발표해 비판을 받아왔다.다이도분카(大東文化)대와 도쿄외국어대 대학원(석사)을 졸업한 후 타쿠쇼쿠대 교수가 된 그는 과거사와 관련한 일본 우익의 심정을 그대로 대변해 일본에서 각광을 받고 있기도 하다.이 때문에 재일동포와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일본 우익의 애완견’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지난해 월간 분게이??주(文藝春秋) 7월호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한국남성 비판론을 기고했다.

식민지배층의 특권적 공간 ‘남촌’

2009년 10월 19일 556

식민지배층의 특권적 공간 ‘남촌’(한겨레21, 09.10.16)

日王 명성황후 시해 진상 밝히고 사과해야

2009년 10월 16일 427

日王 명성황후 시해 진상 밝히고 사과해야(연합뉴스, 09.10.06)

감신대 “부끄러운 역사도 기억하자”-국민일보(07.10.10)

2007년 10월 11일 701

감신대 “부끄러운 역사도 기억하자”  감리교신학대학교가 친일을 했던 정춘수 감독과 북한으로 간 김창준 목사를 포함한 민족대표 7인의 부조를 제막했다.감신대는 10일 서울 냉천동 동교 대학원 로비에서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던 감신 출신 민족대표 7명인 이필주 신홍식 오화영 신석구 최성모 정춘수 김창준 목사의 부조를 제막했다. 태어난 연대 순으로 설치된 부조 하단 해설에는 각 인사의 이력과 민족운동 경력을 간략히 소개하고 정 감독과 김 목사의 경우 친일 행적과 월북 사실을 명기했다.독립선언 민족대표로 참여한 뒤 1년6개월 동안 투옥됐던 정춘수 목사는 1939년 감리회 3대 감독이 된 뒤 일본 총독부의 종교정책에 순응해 신사참배를 비롯, 국방헌금 강제징수 등 황민화정책을 추진했다. 33년 감신대 실천신학 교수로 재직했던 김 목사는 신학교 폐교 후인 48년 월북해 57년 북한 최고인민위원회 부의장을 맡았다.감신대는 75년 김 목사를 제외한 6명의 민족대표 부조를 설치했으나 92년 친일 행적을 비판하던 학생들이 정 감독 부조를 철거했다. 올해 개교 120주년을 맞은 감신대는 과거 보존을 통해 역사를 발전적으로 계승하자는 취지에서 7명을 모두 부조하기로 했다. 이덕주 교수는 “1919년을 기준으로 보는 눈도 필요하다. 부끄러움도 기억해야 할 역사이기 때문에 정 감독도 부조했다”고 설명했다.전덕기 강종근 최용신 안창호 등 독립유공자 28명을 배출한 감신대는 국내 최초의 신학대학으로 일제시대 목회자만 500여명이 투옥된 것으로 전해진다. 제막식 후 고상원 총학생회장 등 참가자 100여명은 교북동 독립문까지 평화행진을 했고 민족대표 33인유족회 이현기 회장은 만세삼창을

친일저술가 오선화 제주도 입국거부 논란-나우뉴스(07.10.10)

2007년 10월 11일 516

친일저술가 오선화 제주도 입국거부 논란     한국을 비하하는 내용의 저술로 끊임없는 논란을 일으킨 오선화(51)씨가 지난 1일 자신의 어머니 장례식 참석길에 한국 당국으로부터 입국 거부를 당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일본의 산케이신문(sankei.jp.msn.com) 구로다 서울지국장은 9일 “한국인 여성 평론가 오선화씨가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제주도에 ‘귀국’하려했으나 제주공항에서 입국을 거부 당했다.”고 보도했다.또 “(그녀가) 일본에서의 ‘반한국적인 활동’을 한 이유로 한국 당국으로부터 입국 금지 조치가 내려진것 같다.”며 “오씨가 일본 국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주총영사관에 의뢰해 한국과 교섭해 겨우 ‘인도적 배려’차원에서 ‘귀국’을 인정받았다.”고 덧붙였다.아울러 “오씨는 (당일날) 입국이 거부되면서 일본행 비행기편으로 돌아가야 했고 수시간동안 공항 안에서 발이 묶여있었다.”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한편 MBC PD수첩은 지난해 “오씨가 지난 98년 일본으로 귀화했으나 주변에 이를 숨겨오다 2006년 6월에야 월간지 ‘쇼쿤’(諸君)에 귀화사실을 밝혔다.”고 방송한 바 있다. 사진=산케이신문 인터넷판

독립운동가 김한종 의사와 문학, 음악, 역사 한마당 행사 개최

2009년 10월 16일 467

독립운동가 김한종 의사와 문학, 음악, 역사 한마당 행사 개최(충청일보, 09.10.12)

‘과거사연구재단’ 설립 무의미(?)

2009년 10월 16일 511

<국감초점>‘과거사연구재단’ 설립 무의미(?)(뉴시스, 09.10.16)

일본 강제징용자 유골 이르면 올해 일부 반환-한국일보(07.10.10)

2007년 10월 11일 450

일본 강제징용자 유골 이르면 올해 일부 반환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의해 강제 동원된 조선인 군인ㆍ군속의 유골 중 일부가 이르면 올해 안에 국내로 반환될 전망이다.한일 양국 정부는 9일 도쿄(東京)에서 조선인 강제 징병ㆍ징용자의 유골반환 문제를 협의,우선 유텐지(祐天寺)에 봉안돼 있는 군인ㆍ군속 유골 119위를 한국에 반환하기로 합의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유골 반환은 이르면 올 해 안에, 늦어도 내년 설날 전까지는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도쿄 메구로(目黑)구에 있는 유텐지는 일본 정부의 의뢰로 일제하 징병 군인ㆍ군속 등 조선인 유골 1,135위를 모시고 있는 사찰로, 오래 전부터 유골 반환 문제 해결의 상징처럼 돼 온 곳이다. 남한 출신 유골은 704위(북한 출신 431위)로, 이중 유족이 확인된 119위에 대한 반환이 이번에 이루어진다.이로써 한일간 오랜 현안이었던 조선인 징병ㆍ징용자의 유골 반환 문제가 새 국면을 맞게 됐다. 유골 반환의 첫 물꼬를 틈으로써 민간인 징용자 유골의 반환도 탄력을 받게 됐다.이 문제는 2004년 한일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의 논의를 계기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당시 이 문제에 소극적이었던 일본 정부가 한일관계 개선을 내세워 유골 반환에 합의했다. 사할린동포 귀국사업, 원폭피해자 및 한센병 피해자 보상 사업과 함께 일본이 성의를 보인 한일관계 개선 노력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양국 정부는 이후 유골협의회를 만들어 본격 조사 작업을 했다. 지금까지 양국이 실시한 단독 및 공동 조사는 8차례로, 유골 85위에 대한 확인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 일본 불교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