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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한국사 다시 써야 한다-뉴스메이커(07.10.11)
[커버스토리]한국사 다시 써야 한다 경향신문 ‘코리안루트 탐사취재단’ 1만km 대장정 ‘우리역사 바로보기’동아시아 고대문명 건설 주역인 우리민족사 새로운 시각과 접근 시도 중국을 여행할 때 도시와 시골 곳곳에서 ‘문명성시건설(文明城市建設)’이라는 표어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내년 올림픽을 앞두고 길에 침을 뱉는다든가 아파트 베란다에 빨래를 너는 등 ‘비문명적’인 요소를 척결하자는 뜻이다.고대 4대 문명 가운데 하나인 황하(黃河) 문명의 주인공이었고 역사시대에는 동아시아 문화의 중심이었던 중국이 이제 와서 “문명도시 건설에 매진하자”고 외치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로 치더라도 지독한 아이러니처럼 보인다.그런데 그게 아니다. 중국은 지금 경제뿐 아니라 역사, 민족사, 심지어 문명사까지 ‘문명적으로’ 바꾸려고 애쓰고 있다. 고구려사를 중국 역사에 편입하여 우리와 마찰을 빚고 있는 동북공정은 그 한 단면에 불과할 뿐이다. 부신 사해 유적 입구에 세워진 여신상. 중국 최초 용 형상의 돌무더기가 발견돼 ‘중화제일촌’ 으로 부르고 있다. <김문석 기자> 동이족의 ‘요하문명’ 중국사 새로 써 1980년대 이후 중국 고고학계는 커다란 충격에 빠졌다. 동이족(東夷族)의 영역이었던 요하(遙河)·대릉하(大凌河) 유역에서 황하 문명보다 시기적으로 앞서고 질과 양 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 문명의 증거들이 무더기로 나왔기 때문이다. 1982년 사해(査海), 1983년 흥륭와(興隆窪)에서 발견한 주거 유적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집단 취락지로서 각각 ‘중화(中華) 제일촌’, ‘화하(華夏) 제일촌’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취락이 조성된 시기인 8200~7600년 전 이곳은 화하족의 중심지가 아니었을 뿐 아니라 출토된 유물인 빗살무늬토기, 옥장식(귀고리) 등도 동이족, 나아가서 한반도 문화 유형과 더
“‘또 하나의 조국’을 선물했습니다”-프레시안(07.10.11
“‘또 하나의 조국’을 선물했습니다” [기고]에다가와 조선학교 지원모금 2차 전달식에 다녀와서 일본 도쿄도 정부의 운동장 부지 반환 소송에 맞서 법정 다툼을 벌이던 도쿄조선제2초급학교(에다가와 조선학교). 학교의 위기가 국내에 알려지자 국내에서는 시민들의 지원활동이 벌어졌다. 결국 재판에서 학교는 시가의 1/10에 운동장 부지를 도쿄도로부터 살 수 있게 됐고, 국내에서 학교 지원을 모금한 돈이 에다가와 조선학교에 전달됐다. 지난 6월 있었던 1차 모금 전달식에 이어, 지난 2일 2차 모금 전달식이 도쿄의 에다가와 조선학교에서 열렸다. 국내에서 모금해 전달한 금액만 무려 7억 원에 이른다. 2차 모금 전달식에 다녀온 홍승권 삼인출판사 부사장이 편지글 형식으로 방문기를 보내왔다.<편집자> S형, 선선한 가을 날씨가 여름 내내 늘어진 몸에 상쾌한 자극을 줍니다. 이런 상쾌한 계절, 지난 10월 1일부터 3일까지 일본 동경에 있는 에다가와조선제2초급학교를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지난봄에 SBS의 다큐프로를 통해 동경도지사 이시하라 신타로의 학교 운동장 반환소송 때문에 60년의 역사를 가진 이 학교와, 60여 명의 동포 아이들이 졸지에 배움의 터를 잃을 뻔한 이야기를 잘 알게 되었었죠. 결국 법원은 시가의 1/10 가격에 불하하라는 중재명령을 내려 사실상 학교 측과 동포들의 손을 들어준 셈이 되었지만 넉넉지 못한 에다가와 지역의 동포들에게는 1억4000만 엔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되었던 게 사실입니다. 오랜 세월동안 일본 땅의 동포들에게 무관심하거나 외면해왔던 우리의 부끄러운 역사를 돌이켜 생각해보며 프로를 보는 내내 눈시울을 훔쳐야 했습니다. ‘아이들아 이것이
“정율성은 중국을 여는 일급 문화코드”
“정율성은 중국을 여는 일급 문화코드”(경향신문, 09.10.16)
[길,숲,섬]시대에 맞선 신여성을 기념하며…수원 나혜석거리
[길,숲,섬]시대에 맞선 신여성을 기념하며…수원 나혜석거리(경향신문, 09.10.16)
친일활동 오선화씨, 한때 제주도 입국 거부 알려지며 또다시 관심 집중-한국경제(07.10.11)
친일활동 오선화씨, 한때 제주도 입국 거부 알려지며 또다시 관심 집중 한국인이면서 일본에서의 반한ㆍ친일활동으로 이른바 ‘신친일파’로 불리우며 논란이 됐던 오선화(51)씨가 최근 한국을 방문했다가 입국을 거부당한 사실이 알려져 관심을 끌고 있다.일본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오씨는 지난 1일 제주도에 거주하시던 어머니의 장례식 참석차 제주공항에 도착했으나 출입국관리법상 한국의 입국금지 대상자라는 이유로 일시적으로 입국을 거부당했다는 것.그러나 1998년 일본에 귀하한 오씨는 일본 총영사관에 이 사실을 알려 한국 당국이 ‘인도적 배려’라는 명목으로 입국을 허용해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게 됐다.소식통에 따르면 오선화에 대한 입국금지 조치는 노골적인 친일활동과 한국을 폄하하는 활동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출입국관리법에는 ‘일제시대 일본 정부와 관련된 활동을 한자’ ‘우리나라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 자’ ‘기타 입국이 부당하다고 판단한 자’ 등은 입국을 금지할 수 있다고 돼 있다.이번에 입국이 거부됐던 오선화씨는 지난 2006년 MBC ‘PD수첩’에서 방송된 <신친일파의 정체를 밝힌다>라는 제목의 방송에서 학력ㆍ경력ㆍ국적 위조의 의문을 제기해 논란이 된바 있다.당시 방송에 따르면 일본 우익성향의 대학인 타쿠쇼쿠 대학의 국제개발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 정당화, 한국 폄하 내용의 강연 및 저술활동을 하면서 일본 우익들의 주장을 ‘한국인’의 목소리로 대변해온 오선화씨가 실제로는 1998년 한국 국적을 버리고 일본으로 귀하한 ‘일본인’이라는 것.한국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일본 내에 많지만 오 씨가 특히 조명을 받아온 이유는 바로 그가 한국인이란 점 때문. 따라서 법적으로 일본인이 돼 버린 오 씨의 영향력은 과거보다
오선화 교수 친일행각 어느 정도이길래…-한국일보(07.10.11)
오선화 교수 친일행각 어느 정도이길래… 일본으로 귀화한 뒤 반한·친일 활동을 펼쳐 논란을 일으켰던 오선화(51) 타코쇼쿠 대학 교수가 최근 한국을 방문했다가 입국이 거부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지난 9일 이 같은 사실을 보도한 일본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오씨가 지난 1일 제주도에 거주하던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제주공항에 도착했으나, 일시적으로 입국을 거부당했다. 오씨의 입국이 거부된 이유는 출입국관리법상 한국의 입국금지 대상자 명단에 올라와 있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 정부가 오씨의 반한 활동을 문제 삼아 입국금지조치 대상자로 지정한 것이다.오씨는 결국 일본의 제주 총영사관에 도움을 요청해 ‘인도적 배려’라는 명목으로 한국 정부의 입국 허가를 받아 장례식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현재 우리나라의 출입국관리법을 살펴보면 ‘일제 강점기하에 일본 정부에 관련된 활동을 한 자’ ‘우리나라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 자’ ‘기타 입국이 부당하다고 판단된 자’ 등은 입국을 금지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오씨는 1998년 10월 일본으로 귀화한 뒤 일본의 침략 역사를 미화하는 글과 한국인을 폄하하는 책과 글을 발표하는 등 대표적인 친일·반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하시마 섬’, 강제 징용된 한국인 포로수용소 생활 충격!
‘하시마 섬’, 강제 징용된 한국인 포로수용소 생활 충격!(아츠뉴스, 09.10.18)
[왜냐면] ‘조선’ 국적자의 입국을 허하라!
[왜냐면] ‘조선’ 국적자의 입국을 허하라!(한겨레신문, 09.10.18)
-연합뉴스(07.10.10)
<한국비하 앞장 日귀화 오선화씨 한때 입국거부돼> (서울=연합뉴스) 일본 귀화 한국인으로서 일본을 미화하고 한국을 비하하는 저술 활동으로 비난을 받아 온 일본 타쿠쇼쿠(拓殖)대 오선화(吳善花.51.여) 교수가 이달초 한국을 찾았다가 한때 입국을 거부당했던 것으로 확인됐다.10일 관계 당국에 따르면 오씨는 지난 1일 모친 장례 참석을 위해 제주공항을 통해 입국하려 했으나 출입국 심사 과정에서 입국이 거부됐다.이는 일본에서의 반한(反韓)활동을 이유로 한국 정부에 의해 입국금지조치 대상자로 지정됐기 때문으로 알려졌다.이에 일본 국적인 오씨는 일본의 제주총영사관에 의뢰해 한국측과 접촉, ‘인도적 배려’로서 입국 허가를 받은 뒤 지난 4일 일본으로 출국한 것으로 전해졌다.오씨는 1983년 일본 유학을 계기로 반한.친일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 2005년 3월에는 일제의 식민통치가 조선의 경제와 교육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며 식민지배를 철저히 미화한 단행본을 출간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오선화씨, 日 귀화 이후 노골적 친일행각-한국일보(07.10.10)
오선화씨, 日 귀화 이후 노골적 친일행각제주서 한때 입국거부 반한ㆍ친일활동으로 ‘일본 우익의 앞잡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오선화(吳善花ㆍ51ㆍ사진) 일본 타쿠쇼쿠(拓殖)대학 교수가 한국의 입국금지 대상자 명단에 올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10일 관계 소식통에 따르면 오선화는 최근 어머니의 장례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인 제주도를 찾았지만 일시적으로 입국을 거부당했다. 출입국관리법상의 입국금지자 리스트에 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1991년 일본에 귀화한 그는 일본 총영사관에 이 사실을 알렸고, 결국 한국 당국이 ‘인도적 배려’라는 명목으로 입국을 허용해 귀향이 이뤄졌다.소식통에 따르면 오선화에 대한 입국금지 조치는 노골적인 반한 활동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출입국관리법에는 ‘일제시대 일본 정부와 관련된 활동을 한자’ ‘우리나라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 자’ ‘기타 입국이 부당하다고 판단한 자’ 등은 입국을 금지할 수 있다고 돼 있다.1983년 일본 유학을 계기로 반한ㆍ친일활동을 시작한 오선화는 일본의 침략 역사를 왜곡ㆍ미화하고, 한국과 한국인을 헐뜯고 폄하하는 책과 글을 줄기차게 발표해 비판을 받아왔다.다이도분카(大東文化)대와 도쿄외국어대 대학원(석사)을 졸업한 후 타쿠쇼쿠대 교수가 된 그는 과거사와 관련한 일본 우익의 심정을 그대로 대변해 일본에서 각광을 받고 있기도 하다.이 때문에 재일동포와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일본 우익의 애완견’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지난해 월간 분게이??주(文藝春秋) 7월호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한국남성 비판론을 기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