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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숙대생이 본 친일인명사전 보고회
숙대생 본 친일인명사전 보고대회 오마이뉴스 박솔희 기자 ..백범기념관이라는 말에 무릎을 쳤습니다. 아, 백범기념관이 있었지! 어쩌면 숙명여대 아트센터보다 애초에 백범기념관에서 행사가 치러지는 것이 더 적절했을 지도 모르겠네요. 역시 시민은 위대하다는 괜한 울컥함을 느끼면서 백범기념관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학교 뒤편의 언덕을 오르면 효창공원이 나오고 길을 따라 죽 내려가면 효창운동장이 있습니다. 거기서 오른쪽으로 꺾어 올라가야 백범기념관입니다. 짧은 여정의 대로변에는 온갖 취재 차량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입학한 이래, 학교에 이렇게 많은 취재진이 몰리는 건 처음 봤습니다. 시청앞에서나 보고 ..<기사 발췌> 친일인명사전 보고회, 백범기념관으로 옮겨 개최(오마이뉴스, 09.11.08) 관련기사 뉴라이트, “좌파인명사전도 만들자”(오마이뉴스, 09.11.09)
“오늘은 기쁜날, 드디어 해냈습니다” 백범 김구 묘소에 친일인명사전 헌정
[현장] 발간 보고대회 참여한 500여 시민 “국민의 힘으로 해냈다” “친일인명사전 발간 행사 장소도 구하지 못하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입니다. 고종 황제의 계비가 민족 주체성을 살릴 여성 교육을 위해 세운 숙명여대에서 도대체 친일인명사전 발간 보고대회를 못 열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시 사전 앞에서 국민 모두가 겸허히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실망하지 않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의 묘 앞에서 친일인명사전 보고대회를 가질 것입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8일 오후 2시 결국 숙명여대의 닫힌 교문은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숙대 앞에 모인 500여 시민들은 결코 실망하지 않았다. “오늘은 기쁘고 즐거운 날”, “7천만 겨레의 염원이 실현된 날”이라는 사회자 말에 환호로 화답했고 “국민들의 힘으로 해냈습니다, 친일인명사전 발간”이라고 적힌 현수막 뒤를 따라 발간보고대회가 열릴 백범 김구 묘소로 천천히 움직였다. 500여 시민들이 모두 앉기엔 마련된 의자 수는 턱없이 부족했다. 땅도 전날 새벽부터 내린 비로 젖어있었다. 하지만 모여든 사람들은 아랑곳 않고 빽빽이 앉았다. 앉지 못한 사람들은 서서 친일인명사전 발간보고대회를 지켜봤다. 백범 김구 묘소에 헌정된 친일인명사전 발간 보고대회 행사의 시작은 윤경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 김병상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이 함께 사전을 백범 김구 묘소에 헌정하면서 시작됐다. 시민들은 박수와 환호를 보내며 8년 간 각고의 노력 끝에, 국민이 만든 사전에 축복을 보냈다. 윤경로 위원장은 사전을 들고 “드디어 해냈습니다”라고 ‘보고’했다. 윤 위원장은 “해방 이후 반민특위가 결성돼 이뤄졌어야 할
日 정부, 강제동원 인정 도쿄재판에 “이의없다”-연합뉴스(07.04.20)
日 정부, 강제동원 인정 도쿄재판에 “이의없다” (도쿄=연합뉴스) 최이락 특파원 = 일본 정부는 20일 오전 각료회의에서 2차세계대전 당시 구(舊) 일본군이 중국 구이린(桂林)에서 현지 여성에 군대 위안부 행위를 강제했다고 인정한 연합국의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의 판결과 관련, “그 재판을 수락하며 이의를 말할 입장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확인했다고 교도(共同)통신이 보도했다.일본 정부는 이날 채택한 쓰지모토 기요미 사민당 중의원의 위안부 관련 질문에 대한 답변서에서 이런 입장을 밝혔다.앞서 각료회의는 지난달 16일 역시 쓰지모토 중의원의 질문에 대한 답변서에서 “정부가 발견한 자료 중에는 군이나 관헌에 의한 강제연행을 직접 나타내는 기술은 발견할 수 없었다”고 밝힌 바 있어 주목된다.따라서 일본 정부의 이런 입장 표명은 지난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방일 이후 조성된 양국간 우호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측면이 강한 것으로 분석된다.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번 답변서에서도 “법적인 제 문제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논의가 있지만 재판 결과를 수락하며 이의를 제기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명시해 구 일본군이나 관헌이 위안부를 강제로 동원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인정하지 않았다.도쿄재판에 대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지난해 10월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평화에 대한 죄와 인도(人道)에 대한 죄로서 재판을 받은 것이지만 이는 그(재판) 단계에서 만들어진 개념”이라며 “죄형법정주의상 범죄인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의문을 표한 바 있다.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 ‘한겨레통일문화상’
한겨레신문 손원제 기자 »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이사장 민병석)은 19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언론인 리영희(78) 전 한양대 교수에게 제9회 한겨레통일문화상을 시상했다.한겨레통일문화재단은 상패문안에서 “분단의 어리석음을 꾸짖고 화해의 날갯짓을 가르쳐 통일의 비상을 이끌어준 당신은 민족의 참된 선구자였다”며 “모든 우상을 거부하고 오직 진리와 이성의 길만을 추구해 온 당신께 온 겨레의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이 상을 드린다”고 밝혔다.리 전 교수는 ‘수상소감’에서 “우리 민족에게 막혔던 하늘이 뭔가 트이고 희망의 빛이 비추려는 것 같은 시기에 우리가 와 있다”며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더 냉엄한 현실 인식이 필요한만큼, 지식인들이 안팎의 상황에 깊은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고 말했다.이상희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은 축사에서 “나와 리 선생은 1929년생 동갑 친구”라고 소개한 뒤 “일제 치하와 한국전쟁, 이승만·박정희 독재의 엄혹한 세월 속에서도 리 선생은 두터운 상식과 제도교육의 장벽을 뚫고서 두 눈으로 세상을 보는 이론과 논리를 캐고 들어갔다”며 “이런 뛰어난 사상가가 우리 세대에서 태어난 것은 참으로 놀라운 기적”이라고 상찬했다. 안병욱 한겨레통일문화상 심사위원장은 “다시 한번 역사의 전환기를 맞고 있는 이 때, 리 선생의 철학과 생애에서 다시금 민족의 새로운 진로를 찾아야 한다고 봐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내 생전엔 아마도 통일 못보겠지…” 물질과 인간적 가치가 균형 이뤄야 하는데… 미국숭배 만연한 지금은 통일조차 두렵다 “맹자가 이런 얘길
[보도자료]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
민족문제연구소보도자료 내려받기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추진하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와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위원장 윤경로)는 11월 8일(일) 오후 2시 서울 숙명여대 내 숙명아트센터에서 친일인명사전(전3권) 발간 국민보고대회를 개최한다. 그러나 6일 외부 압력으로 센터 운영업체가 대관을 취소한 바 있어 정상적인 보고회 개최는 불투명한 실정이다. 이번에 출간된 친일인명사전(전 3권)에는 일차로 4,389명의 친일행위자를 수록했다. 편찬사업의 주간연구소를 맡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는 굴욕적인 ‘한일협정’ 체결을 계기로 1966년 ‘친일문학론’을 저술하여 지식인들에게 일대 충격을 주고 친일문제를 한국사회에 본격적으로 제기한 임종국선생의 유지를 계승하여 1991년 출범하였다. 연구소는 이후 18 년간에 걸쳐 「친일파 99인」「청산하지 못한 역사」「식민지 조선과 전쟁미술」「일제협력단체사전」등 다수의 친일문제 연구서를 발간하고 지속적으로 심포지엄과 전시회를 개최하여, 역대 독재정권하에서 금기의 영역이었던 친일문제를 공론화하고 학문적 시민권 확보에 성공하였다. 특히 지난 2004년 초에는 네티즌을 중심으로 친일인명사전 편찬 국민성금운동이전개되어 열흘 만에 목표액 5억 원 전액을 모금하였으며 이후 계속 성금이 답지하여 7억여 원에 달하는 편찬기금이 조성되었다. 지금도 5,000여 명의 회원들이 매월 후원하면서 지역과 사회 각 부문의 친일청산에 참여하는 등, 연구소는 학술연구와 실천운동을 병행하는 보기 드문 사례로 평가 받아왔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는 1999년 8월 ‘친일인명사전 편찬지지 전국 교수 일만인 선언’이 발표된 후 본격적으로 구성이 추진되어, 2001년 12월 관련 학계를 망라한 조직으로 발족하였다. 편찬위원회에는 역사학계를 중심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 등 각 분야의 교수 학자 등 전문연구자 150 여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들을 포함하여 180 여명이 집필위원으로 위촉되어
숙명아트센터, 사전발간 보고대회 대관취소 통보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추진하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와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위원장 윤경로)는 11월 8일(일) 오후 2시 서울 숙명여대 내 숙명아트센터에서 친일인명사전(전3권) 발간 국민보고대회를 개최한다. 그러나 6일 외부 압력으로 센터 운영업체가 대관을 취소한 바 있어 정상적인 보고회 개최는 불투명한 실정이다. 이번에 출간된 친일인명사전(전 3권)에는 일차로 4,389명의 친일행위자를 수록했다. 편찬사업의 주간연구소를 맡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는 굴욕적인 ‘한일협정’ 체결을 계기로 1966년 ‘친일문학론’을 저술하여 지식인들에게 일대 충격을 주고 친일문제를 한국사회에 본격적으로 제기한 임종국선생의 유지를 계승하여 1991년 출범하였다. 연구소는 이후 18 년간에 걸쳐 「친일파 99인」「청산하지 못한 역사」「식민지 조선과 전쟁미술」「일제협력단체사전」등 다수의 친일문제 연구서를 발간하고 지속적으로 심포지엄과 전시회를 개최하여, 역대 독재정권하에서 금기의 영역이었던 친일문제를 공론화하고 학문적 시민권 확보에 성공하였다. 특히 지난 2004년 초에는 네티즌을 중심으로 친일인명사전 편찬 국민성금운동이전개되어 열흘 만에 목표액 5억 원 전액을 모금하였으며 이후 계속 성금이 답지하여 7억여 원에 달하는 편찬기금이 조성되었다. 지금도 5,000여 명의 회원들이 매월 후원하면서 지역과 사회 각 부문의 친일청산에 참여하는 등, 연구소는 학술연구와 실천운동을 병행하는 보기 드문 사례로 평가 받아왔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는 1999년 8월 ‘친일인명사전 편찬지지 전국 교수 일만인 선언’이 발표된 후 본격적으로 구성이 추진되어, 2001년 12월 관련 학계를 망라한 조직으로 발족하였다. 편찬위원회에는 역사학계를 중심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 등 각 분야의 교수 학자 등 전문연구자 150 여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들을 포함하여 180 여명이 집필위원으로 위촉되어 이
‘논개영정 벌금모금운동’ 활발… 1840만원 넘어
오마이뉴스 윤성효 기자 ▲ 민족문제연구소 전남동부지역 회원들은 오는 25일 진주를 방문해 논개영정 벌금모금운동으 로 모은 돈을 전달한다. 사진은 서부경남지역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의 모습. ⓒ 오마이뉴스 윤성효 ‘논개영정 벌금 모금’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진주 지역 시민단체 대표들이 진주성 의기사에 있던 친일화가 김은호 작 ‘미인도 논개'(일명 논개영정) 복사본을 뜯어내 건조물 침입과 공용물건 손상 혐의로 벌금형(4명 각 500만원)을 선고받자 벌금모금운동이 벌어지고 있는데, 18일까지 1840만1000원이 모였다.은행계좌를 개설해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는 진주신문사는 오는 25일 모금을 마감하고 전액을 시민단체에 전달할 예정이다. 권춘현 진주신문사 사장은 "최근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전국 회원들에게 모금운동에 동참하자는 안내문을 낸 뒤, 몇 만원 단위의 돈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진주에서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인사가 500만원을 냈고, 또 다른 인사가 200만원을 냈으며, 경상대의 한 교수가 100만원을 냈다. 형평운동기념사업회에서 100만원, 화요문학회에서 130만원, 여태훈 진주문고 사장이 100만원, 김송현 간디학교 이사장이 미화 100달러, 국제펜클럽(경남)에서 30만원, 민족문제연구소에서 100만원, 6․15남북공동선언 실현을 위한 진주시민운동본부에서 65만1000원을 각각 냈다. 관련기사 ‘논개영정 벌금 모금액’ 2000만원 넘었다(오마이뉴스, 07.04.20)민족문제연구소, ‘논개영정 벌금모금’ 참여(오마이뉴스, 07.04.10)논개영정 뜯어낸 시민단체, 벌금 모금운동 활발(오마이뉴스, 07.04.05) 전남 동부 지역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도 성금을 모아 오는 25일 진주를 방문, 전달할 예정이다. 서부 경남 지역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도 성금 모금운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전남 동부 지역 회원들이 진주를 방문할 때 함께할 예정이다.박주권 민족문제연구소 전남동부지회장은 "논개영정은
야스쿠니의 살아 있는 유령들
한겨레21 길윤형 기자 <야스쿠니 반대 공동행동 한국위원회>(www.anti-yasukuni.org) 사무국을 맡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는 작년 8월 야스쿠니 신사 인근에서 한국, 대만, 일본의 시민단체들과 함께 대규모 규탄 집회를 가진 데 이어 올해는 <한겨레21>과 공동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넘어 동북아 평화정착의길을 고민해 보는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우선 2만여 조선인 합사자들의영령을 야스쿠니 신사에서 구해오는 데 필요한 소송비용 등에 필요한 모금운동에 많은 분들의 동참을 기다립니다. <편집자 주> 아십니까. 야스쿠니신사엔 2만1181명의 조선인이 합사돼 있습니다.아십니까. 이 중엔 살아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전국을 헤매며 생존자들을 찾아냈습니다. 어렵게 인터뷰도 했습니다.야스쿠니신사가 뭐하는 곳인지 모르는 분도 있었습니다.죽을 고비를 넘기고 고향에 돌아오니 전사자로 처리돼 있더랍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영혼이 일본인 전범들과 나란히 누워 있더랍니다. 관련기사 “야스쿠니에서 내 이름을 빼오라”(한겨레21, 07.04.19) <한겨레21> 656호 ‘생존 합사’ 피해자들이 기구한 사연을 전합니다. 그리고 2만여 조선인 합사자들의 영령을 야스쿠니신사에서 구해오는 한ㆍ일 공동 캠페인을 힘차게 시작합니다. 성금 계좌번호: 우리은행 1006-401-235747(예금주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친일인명사전 흠집내기
<중앙><동아> 친일 인명사전 ‘흠집내기’ 민주언론시민연합 1. “박정희 만주군 혈서 지원”…<중앙><동아> 친일 인명사전 ‘흠집내기’<한겨레><경향> “일본에 충성 서약…명백한 친일”<조선> 보도 안 해 5일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의 전면 공개(8일)를 앞두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39년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군관에 응모하면서 지원서류와 함께 ‘충성’을 다짐하는 혈서와 청탁 편지 등을 보냈다고 보도한 당시 <만주신문> 기사를 공개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박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 씨가 ‘친일인명사전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자 “이 문제가 정치쟁점화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자료를 공개했다”며 자료 공개 이유를 밝혔다.6일자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은 관련 내용을 보도했지만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을 반박하는 칼럼을 실었다. 조선일보는 언급이 없었다. <박정희 만주군관학교 지원때 “목숨바쳐 충성” 혈서 사실로> (한겨레, 1면)<일 육사 졸업 뒤 항일연합군 공격 “임정 입장서 박정희는 적군 장교”> (한겨레, 6면)<박지만 “아버지는 만주국 용병” 주장에 민족문제연구소 “일본장교가 만주군 지휘”> (한겨레, 6면) 한겨레신문은 민족문제연구소가 공개한 자료와 함께 박 전 대통령의 친일 행적을 자세히 다뤘다.신문은 1면 기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제강점기 만주국 군관에 지원하면서 ‘죽음으로써 충성을 맹세한다’는 내용의 혈서를 써냈다는 당시 신문 기사가 발견됐다”며 당시 <만주신문> 사본을 보도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설로만 떠돌던 박 전 대통령의 ‘혈서 지원’이 객관적 방증으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 한겨레신문 6면 기사 ▲ 중앙일보 칼럼 6면 기사 <일 육사 졸업 뒤 항일연합군 공격 “임정
친일진상규명위 “박정희=친일파 입증 불가”
친일진상규명위 “박정희=친일파 입증 불가”(오마이뉴스, 09.1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