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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보도자료]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

2009년 11월 8일 4294

민족문제연구소보도자료 내려받기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추진하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와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위원장 윤경로)는 11월 8일(일) 오후 2시 서울 숙명여대 내 숙명아트센터에서 친일인명사전(전3권) 발간 국민보고대회를 개최한다. 그러나 6일 외부 압력으로 센터 운영업체가 대관을 취소한 바 있어 정상적인 보고회 개최는 불투명한 실정이다. 이번에 출간된 친일인명사전(전 3권)에는 일차로 4,389명의 친일행위자를 수록했다. 편찬사업의 주간연구소를 맡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는 굴욕적인 ‘한일협정’ 체결을 계기로 1966년 ‘친일문학론’을 저술하여 지식인들에게 일대 충격을 주고 친일문제를 한국사회에 본격적으로 제기한 임종국선생의 유지를 계승하여 1991년 출범하였다. 연구소는 이후 18 년간에 걸쳐 「친일파 99인」「청산하지 못한 역사」「식민지 조선과 전쟁미술」「일제협력단체사전」등 다수의 친일문제 연구서를 발간하고 지속적으로 심포지엄과 전시회를 개최하여, 역대 독재정권하에서 금기의 영역이었던 친일문제를 공론화하고 학문적 시민권 확보에 성공하였다. 특히 지난 2004년 초에는 네티즌을 중심으로 친일인명사전 편찬 국민성금운동이전개되어 열흘 만에 목표액 5억 원 전액을 모금하였으며 이후 계속 성금이 답지하여 7억여 원에 달하는 편찬기금이 조성되었다. 지금도 5,000여 명의 회원들이 매월 후원하면서 지역과 사회 각 부문의 친일청산에 참여하는 등, 연구소는 학술연구와 실천운동을 병행하는 보기 드문 사례로 평가 받아왔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는 1999년 8월 ‘친일인명사전 편찬지지 전국 교수 일만인 선언’이 발표된 후 본격적으로 구성이 추진되어, 2001년 12월 관련 학계를 망라한 조직으로 발족하였다. 편찬위원회에는 역사학계를 중심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 등 각 분야의 교수 학자 등 전문연구자 150 여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들을 포함하여 180 여명이 집필위원으로 위촉되어

숙명아트센터, 사전발간 보고대회 대관취소 통보

2009년 11월 7일 4148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추진하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와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위원장 윤경로)는 11월 8일(일) 오후 2시 서울 숙명여대 내 숙명아트센터에서 친일인명사전(전3권) 발간 국민보고대회를 개최한다. 그러나 6일 외부 압력으로 센터 운영업체가 대관을 취소한 바 있어 정상적인 보고회 개최는 불투명한 실정이다. 이번에 출간된 친일인명사전(전 3권)에는 일차로 4,389명의 친일행위자를 수록했다. 편찬사업의 주간연구소를 맡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는 굴욕적인 ‘한일협정’ 체결을 계기로 1966년 ‘친일문학론’을 저술하여 지식인들에게 일대 충격을 주고 친일문제를 한국사회에 본격적으로 제기한 임종국선생의 유지를 계승하여 1991년 출범하였다. 연구소는 이후 18 년간에 걸쳐 「친일파 99인」「청산하지 못한 역사」「식민지 조선과 전쟁미술」「일제협력단체사전」등 다수의 친일문제 연구서를 발간하고 지속적으로 심포지엄과 전시회를 개최하여, 역대 독재정권하에서 금기의 영역이었던 친일문제를 공론화하고 학문적 시민권 확보에 성공하였다. 특히 지난 2004년 초에는 네티즌을 중심으로 친일인명사전 편찬 국민성금운동이전개되어 열흘 만에 목표액 5억 원 전액을 모금하였으며 이후 계속 성금이 답지하여 7억여 원에 달하는 편찬기금이 조성되었다. 지금도 5,000여 명의 회원들이 매월 후원하면서 지역과 사회 각 부문의 친일청산에 참여하는 등, 연구소는 학술연구와 실천운동을 병행하는 보기 드문 사례로 평가 받아왔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는 1999년 8월 ‘친일인명사전 편찬지지 전국 교수 일만인 선언’이 발표된 후 본격적으로 구성이 추진되어, 2001년 12월 관련 학계를 망라한 조직으로 발족하였다. 편찬위원회에는 역사학계를 중심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 등 각 분야의 교수 학자 등 전문연구자 150 여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들을 포함하여 180 여명이 집필위원으로 위촉되어 이

‘논개영정 벌금모금운동’ 활발… 1840만원 넘어

2007년 4월 20일 529

    오마이뉴스 윤성효 기자         ▲ 민족문제연구소 전남동부지역 회원들은 오는 25일 진주를 방문해 논개영정 벌금모금운동으      로 모은 돈을 전달한다. 사진은 서부경남지역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의 모습.      ⓒ 오마이뉴스 윤성효    ‘논개영정 벌금 모금’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진주 지역 시민단체 대표들이 진주성 의기사에 있던 친일화가  김은호 작 ‘미인도 논개'(일명 논개영정) 복사본을 뜯어내 건조물 침입과 공용물건 손상 혐의로  벌금형(4명 각 500만원)을 선고받자 벌금모금운동이 벌어지고 있는데, 18일까지 1840만1000원이 모였다.은행계좌를 개설해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는 진주신문사는 오는 25일 모금을 마감하고 전액을 시민단체에 전달할 예정이다.  권춘현 진주신문사 사장은  "최근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전국 회원들에게 모금운동에 동참하자는 안내문을 낸 뒤, 몇 만원 단위의 돈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진주에서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인사가 500만원을 냈고, 또 다른 인사가 200만원을 냈으며, 경상대의 한 교수가 100만원을 냈다. 형평운동기념사업회에서 100만원, 화요문학회에서 130만원, 여태훈 진주문고 사장이 100만원, 김송현 간디학교  이사장이 미화 100달러,  국제펜클럽(경남)에서 30만원, 민족문제연구소에서 100만원, 6․15남북공동선언 실현을 위한 진주시민운동본부에서 65만1000원을 각각 냈다.   관련기사 ‘논개영정 벌금 모금액’ 2000만원 넘었다(오마이뉴스, 07.04.20)민족문제연구소, ‘논개영정 벌금모금’ 참여(오마이뉴스, 07.04.10)논개영정 뜯어낸 시민단체, 벌금 모금운동 활발(오마이뉴스, 07.04.05)   전남 동부 지역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도 성금을 모아  오는 25일 진주를 방문, 전달할 예정이다. 서부 경남 지역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도 성금 모금운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전남 동부 지역 회원들이 진주를 방문할 때 함께할 예정이다.박주권 민족문제연구소 전남동부지회장은  "논개영정은

야스쿠니의 살아 있는 유령들

-0001년 11월 30일 534

    한겨레21 길윤형 기자   <야스쿠니  반대 공동행동 한국위원회>(www.anti-yasukuni.org)  사무국을 맡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는  작년 8월 야스쿠니  신사 인근에서 한국, 대만, 일본의 시민단체들과 함께 대규모 규탄 집회를 가진 데 이어 올해는 <한겨레21>과  공동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넘어 동북아 평화정착의길을  고민해 보는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우선 2만여 조선인 합사자들의영령을  야스쿠니 신사에서 구해오는 데 필요한 소송비용 등에 필요한 모금운동에 많은 분들의 동참을 기다립니다. <편집자 주>       아십니까. 야스쿠니신사엔 2만1181명의 조선인이 합사돼 있습니다.아십니까. 이 중엔 살아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전국을 헤매며 생존자들을 찾아냈습니다. 어렵게 인터뷰도 했습니다.야스쿠니신사가 뭐하는 곳인지 모르는 분도 있었습니다.죽을 고비를 넘기고 고향에 돌아오니 전사자로 처리돼 있더랍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영혼이 일본인 전범들과 나란히 누워 있더랍니다.   관련기사  “야스쿠니에서 내 이름을 빼오라”(한겨레21, 07.04.19)   <한겨레21> 656호 ‘생존 합사’ 피해자들이 기구한 사연을 전합니다. 그리고 2만여 조선인 합사자들의 영령을 야스쿠니신사에서 구해오는 한ㆍ일 공동 캠페인을 힘차게 시작합니다.     성금 계좌번호:  우리은행 1006-401-235747(예금주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친일인명사전 흠집내기

2009년 11월 6일 498

<중앙><동아> 친일 인명사전 ‘흠집내기’ 민주언론시민연합 1. “박정희 만주군 혈서 지원”…<중앙><동아> 친일 인명사전 ‘흠집내기’<한겨레><경향> “일본에 충성 서약…명백한 친일”<조선> 보도 안 해 5일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의 전면 공개(8일)를 앞두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39년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군관에 응모하면서 지원서류와 함께 ‘충성’을 다짐하는 혈서와 청탁 편지 등을 보냈다고 보도한 당시 <만주신문> 기사를 공개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박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 씨가 ‘친일인명사전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자 “이 문제가 정치쟁점화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자료를 공개했다”며 자료 공개 이유를 밝혔다.6일자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은 관련 내용을 보도했지만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을 반박하는 칼럼을 실었다. 조선일보는 언급이 없었다. <박정희 만주군관학교 지원때 “목숨바쳐 충성” 혈서 사실로> (한겨레, 1면)<일 육사 졸업 뒤 항일연합군 공격 “임정 입장서 박정희는 적군 장교”> (한겨레, 6면)<박지만 “아버지는 만주국 용병” 주장에 민족문제연구소 “일본장교가 만주군 지휘”> (한겨레, 6면) 한겨레신문은 민족문제연구소가 공개한 자료와 함께 박 전 대통령의 친일 행적을 자세히 다뤘다.신문은 1면 기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제강점기 만주국 군관에 지원하면서 ‘죽음으로써 충성을 맹세한다’는 내용의 혈서를 써냈다는 당시 신문 기사가 발견됐다”며 당시 <만주신문> 사본을 보도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설로만 떠돌던 박 전 대통령의 ‘혈서 지원’이 객관적 방증으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 한겨레신문 6면 기사     ▲ 중앙일보 칼럼   6면 기사 <일 육사 졸업 뒤 항일연합군 공격 “임정

친일진상규명위 “박정희=친일파 입증 불가”

2009년 11월 6일 555

친일진상규명위 “박정희=친일파 입증 불가”(오마이뉴스, 09.11.06)

1만 3천여 장의 ‘임종국카드’가 남긴 역사의 과업

2007년 4월 17일 678

    김승은 자료팀장   민족문제연구소는 역사자료관건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연구소는  매주 월요일 역사자료관에 소장될 근현대역사자료를 소개하는기사를 게재하기로 하였습니다. 오늘은 그 첫번째 기획기사로 “1만 3천여 장의 ‘임종국카드’가 남긴 역사의 과업”을 게재합니다.     연구소 사무실에 들어서면 왼쪽에 보이는 기둥 위에 임종국 선생의 사진이 걸려 있다. 요산재에서 집필에 몰두하시던  1980년대 중반의 모습인데, 그 형형한 눈빛이 언제나 현실을 직시하라고 우리를 독려하는 듯한 인상적인 사진이다.  회원들도 많이 아는 이 사진은 또 한 가지 중요한 노력의 결실을 증언하고 있다. 얼굴 뒤켠에는 책상 위 엉성한 나무 책장에 빽빽이 꽂혀있는 독서카드들이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임종국카드’로 선생이  평생을 바쳐 모아온 귀중한 자료이다.  선생이 돌아가시기  2년 전 발표한 글에서 “내 침략·배족사의 자료들은 59세인 나로서 두 번 모을 수 없기 때문에, 벼락이 떨어져도 나는 내 서재를 뜰 수가 없다. 자료와 그것을  정리한 카드 속에  묻혀서 생사를 함께할 뿐”(<제2의 매국, 반민법 폐기> 중에서)이라고 쓸 만큼 이 육필카드는 친일파 연구에 바친 선생의 열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 임종국 선생   친일문제연구와 인명사전 편찬을 위한 연구소의  소중한 자산으로 소개된 바 있는  이 카드들은 숫자만 헤아려도 무려 1만 3천여 장에 달한다.  1만 장에 달하는 인명카드는 가나다순으로 5, 60장 혹은 8, 90장씩 묶여 있었는데, 그 묶음이 125개나 된다.  그 외에 친일논설·작품의 작가,

제2회 나눔의 집 평화콘서트

2007년 4월 16일 476

    민족문제연구소   일본 평화헌법 제9조 수호와 한일 평화와 우정을 위해 아래와 같이 행사가 진행됩니다. 이번 콘서트는 일본의 민중가수 5명과 함께 일본의 잘못을 사죄하며 앞으로의 한일간의 형화와 우정을 염원하는 일본인들이 약 80여명 참가합니다. 여러분의 많은 참석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때 : 2007년 4월 29일(일) 오후 2시-4시 30분 곳 : 나눔의 집(http://www.nanum.org) 일본 가수 : 키타가와 테츠, 하시모토 노부요, 타카하시 벤 등 한국 가수 : 손병휘, 창작 판소리 그룹 바닥소리 등 주최 : 나눔의 집 (문의 : 031-768-0064 / 017-247-4372)     ‘나눔의 집’에서 열리는 제2회 헌법9조 페스티벌     “일본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하게 희구하며 국권발동에 의한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이것을 포기한다.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 기타 전력은 이것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것은 일본 헌법9조입니다. 세계대전에서 일본은 아사아의 나라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피해를 주었습니다. 국가로서 한국이나 중국의 여성을 납치하여 성의 노예로 만드는 것까지 했습니다. 아시아의 인민 한테 준 가해의 크기는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 전쟁과 침략에 대한 반성에서 일본헌법은 ‘전쟁을 하지 않는 나라’ ‘전쟁을 못하는 나라’가 되는 것을 선언하였습니다.        ▲ 고 김순덕 할머님께서 그린 그림   그 중심이 되는 것이

박정희·장지연 가처분 모두 기각

2009년 11월 6일 1664

민족문제연구소 2009년 11월 6일 서울북부지법 민사13부(서창원 부장판사)와 민사12부(배준현 부장판사)는 박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씨가 민족문제연구소를 상대로 낸 게재 및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과 장지연 후손과 기념사업회가 역시 민족문제연구소를 상대로 낸 게재 및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을 모두 기각했다. 아래는 결정문의 주요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박정희 관련 결정문> 이 사건에 관하여 살피건대, 기록에 의하면, 채무자(민족문제연구소 – 엮은이)가 친일인명사전에 게재할 것으로 보이는 박정희에 관한 부분은 그 주된 내용이 박정희의 출생에서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시간 순서에 따라 구체적인 사실로 개념 지을 수 있는 주요 경력에 대한 서술로 보이고, 이에 대한 참고문헌을 상세히 명시함으로써 그 진위에 대하여는 본안소송을 통하여 충분한 확인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점, 그 내용 중 이른바 ‘혈서’와 관련된 부분은 1939. 3. 31.자 만주신문 원본을 게재한 후 이에 대하여 기술한 것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이 부분은 이미 2009. 11. 5. 채무자에 의하여 언론매체에 공개된 것으로 보여 이 부분과 관련하여서는 배포금지의 실익이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점, 위와 같은 내용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은 이를 학문적 의견의 개진 내지 표명에 가까운 것으로 볼 여지가 있고, 이러한 견해가 학문적 의견 표명으로서의 한계를 일탈한 것으로 단정하기는 어려운 점, 채무자가 그간에 밝힌 친일인명사전의 편찬 취지와 목적 등에 비추어볼 때, 채무자가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하는 주요 목적이나 동기가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으로 볼 여지가

박정희·장지연 ‘친일사전’ 가처분 기각

2009년 11월 6일 357

박정희·장지연 ‘친일사전’ 가처분 기각(ytn, 09.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