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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일본 국회의원 야스쿠니 집단 참배-ytn(07.04.23)
일본 국회의원 야스쿠니 집단 참배 일본 국회의원들이 오늘 집단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습니다.‘다함께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소속 의원 39명은 오늘 야스쿠니 신사의 ‘봄 대제’에 맞춰 참배했습니다.이들 가운데는 이 모임의 회장인 시마무라 요시노부 전 농림수산상과 고가 마코토 유족회장이 포함됐으나 현역 각료는 참배하지 않았습니다.시마무라 회장은 참배 후 기자회견에서 A급 전범은 사망한 것으로 책임을 졌다며 사망하면 적군도 아군도 모두 명복을 빌어주는 문화가 존중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시마무라 회장은 또 아베 총리의 참배 여부는 총리 스스로가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한일청구권협정 헌재 심판대 올라
한일청구권협정 헌재 심판대 올라(한국일보, 09.11.13)
음성군, 사할린동포에 휠체어 전달
음성군, 사할린동포에 휠체어 전달(뉴시스, 09.11.13)
[영화 가로지르기]‘우리학교’-경향신문(07.04.19)
[영화 가로지르기]‘우리학교’ 다큐멘터리 ‘우리학교’에는 홋카이도(北海道) 조선초중고급학교에서 김명준 감독이 보낸 3년 반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김감독은 두 시간 남짓 동안 재일조선인들의 순수한 내면을 고스란히 영화 안에 녹여낸다. 하지만 이 아이들을 단지 ‘순수한’ 아이들로만 기억해도 되는 것일까. 물론 아이들은 순수하다. 그러나 ‘우리학교’의 아이들은 지극히 순수하면서도, 자신들의 신념에 지극히 투철한 사람들이다. 스스로 규칙을 정해 조선말과 치마저고리를 지켜내는 아이들은 누구보다 의연하고 단호하기 때문이다.따라서 이들을 그저 해맑고 천진한 아이들로만 기억하려는 것은 아이들의 순수성을 신비화하려는 관찰자의 월권이거나 아이들의 신념에 대한 은밀한 폄훼일 수 있다. 이들의 순수성은 가혹한 현실에 맞서는 의지와 열정의 결정체일 뿐, 신비한 ‘동화적 순수성’은 아니기 때문이다.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로 남측에서 온 김감독을 따뜻하게 대하는 아이들은 이미 민족이라는 추상명사를 현실 속에서 치열하게 구체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그저 순수하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미흡하다. 오히려 그것은 ‘너무나 고마운’ 혹은 ‘너무나 존경스러운’ 모습이다. 아이들이 순수한 것은 무엇보다 그들의 신념이 순수하기 때문이 아닐까.아이들이 북한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유리창에 ‘우리나라 통일’이라고 손가락으로 글씨를 쓸 때, 아이들은 우리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드는 동시에 우리를 한없이 감동시킨다. 탈민족주의가 친일과 친미를 정당화하는 세련된 알리바이로 엉뚱하게 악용되는 이 땅의 현실에서, 아이들의 삶과 말에 치열하게 살아 있는 ‘민족’은 이 영화가 선사하는 감동의 원천이다. 일본 우익의 탄압이 일상화된 상황 속에서 자신들의 신념을 온전히 지켜내려는
[기고] 전봉준이 꿈꾸던 ‘됴흔세상’은-경향신문(07.04.23)
[기고] 전봉준이 꿈꾸던 ‘됴흔세상’은 1895년 오늘 전봉준(1855년생)이 서울에서 사형당했다. 고부 ‘민란’에서 이날까지 1년4개월 남짓 녹두장군의 족적과 사고는 숨막히는 고통의 감동으로 점철된 우리 민중사의 절정이었다.임이 30대 말에 구상한 반란계획, 고부성을 격파하고 조병갑(1844~1912)을 목벤 뒤 전주 감영을 함락하며 곧 이어 병력을 휘몰아 서울을 공략하겠다는 이 폭동의 파노라마는 고부-전주-서울, 즉 읍 단위에서 도 단위로 그리고 왕도로 확대 재공격하는 전국 단위의 대규모 내전이었다.굶주리고 헐벗고 병에 찌든 ‘무지렁이’ 백성에게 ‘됴흔세상’을 펼치는 것이 그 목표였다.1894년 4월 말, 백성군대는 조선의 정신적 수도인 전주를 함락해버렸다. 전국이 진동했다. 그간, 야간 기습으로 관군을 궤멸시켜 일거에 관에 대한 백성의 공포감을 해소시킨 황토현 전투, 2만여 백성 앞에서 장쾌하게 연출된 함평벌 군사퍼레이드(효종때 1만3000여 관군의 한강 백사장 퍼레이드 이래 최대).이렇게 살맛나는 쾌거를 집적시킨 원동력은 재야에서 민족·민중의 구원자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었던 대원군의 감국(監國=집권)을 ‘반란’ 수뇌부가 약속한 데에 있었다. 이어 청일전쟁, 일군의 경복궁 점령, 친일정권의 수립이 이어졌다.그러나 12월 초순 공주 전투에서 5만여 명의 백성부대는 일군 200여 명, 관군 3000여 명의 연합군에 대패했다. 12월 말쯤에는 전봉준마저 순창에서 체포, 일군에게 넘겨졌다. 체포에서 사망할 때까지 약 4개월간 임의 생명연장은 신이 내린 민중사의 결정(結晶)이었다. 5차에 걸친 재판기록이, 새 권력체제의 기자회견문이, 전녹두가 실려가는 국민사진이 그것이다.생포된 임이 예상을 깨고 서울의 남산 아래(충무로) 일본 영사관에 구금되자, 어느새 검은 머리 백성들이 산을 이룰(黑山)정도로 인산인해를
징용 피해 유족, 한일청구권협정 등 헌법소원
징용 피해 유족, 한일청구권협정 등 헌법소원(뉴시스, 09.11.13)
“징용피해자 미불임금 보상”…한일청구권협정 헌재 심판대에
“징용피해자 미불임금 보상”…한일청구권협정 헌재 심판대에(헤럴드경제, 09.11.13)
‘친일파’ 후손, 토지 사기 구속-ytn(07.04.24)
‘친일파’ 후손, 토지 사기 구속 서울 남부지방검찰청은 친일파였던 자신의 증조 할아버지가 소유했던 시가 3천억 원대의 수도권 땅을 내세워 수억 원을 가로챈 혐의로 62살 S 모 씨를 구속했습니다.S 씨는 지난 2002년 3월 일제시대에 자신의 증조 할아버지가 소유했던 인천시 부평구 일대 토지 43만 평방미터에 대한 후손들의 소유권을 국방부로부터 인정받았다며 L 씨 등 2명으로부터 로비자금 명목으로 2억 2천만 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검찰 관계자는 S 씨가 국방부로부터 소유권을 인정받은 만큼 정부를 상대로 한 토지소유권 반환소송에서도 승소가 확실시 된다고 설득해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구속된 S 씨 등 친일파 후손 7명은 지난 2002년 9월 문제가 된 부평 땅의 소유권을 갖고 있는 정부를 상대로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했습니다.
일본의 ‘전쟁장치’를 반대한다-한겨레21(07.04.24)
일본의 ‘전쟁장치’를 반대한다 한 일본 기자가 한국의 합사 생존자들을 만나며 생각한 ‘야스쿠니 신앙’의 위험성 ▣ 광주·대전·군산·벌교= 스나미 게스케 프리랜서 기자·전 <에히메신문> 기자 △ 스나미 게스케 기자일본에는 일본을 위해 생명을 바친 사람을 신으로 받들어 모시는 야스쿠니신사가 있다. 야스쿠니 신앙은 일본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메이지 시대에 만든 국가 종교다.필자는 <한겨레21> 취재진과 함께 한국에 살아 있는 야스쿠니 생존 합사자들을 만났다. “어뢰로 배가 가라앉아서 뗏목을 붙잡고 15시간 정도 표류했어. 구조선이 구했을 때 안심하고 죽은 동료도 있었지. 패전한 것도 모르고 정글에서 9개월 동안이나 숨어 있었는데,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자라 있더군.”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서 만난 옛 일본 해군 군속 박원주(81)씨는 생생한 전쟁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려주었다. 일본에서 전쟁 체험자들이 하는 이야기와 같은 내용을 한국 할아버지들에게서도 들을 수 있었다. 야스쿠니신사에는 일본인이나 조선인 등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일본의 수호신으로 모셔져 있다.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의 완성 박씨는 한국으로 살아 돌아왔지만, 야스쿠니신사는 일본군이 낸 사망 통지에 근거해 박씨를 야스쿠니의 신으로 모시고 있다. 박씨는 “살아 있는데 내가 왜 거기에 모셔져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야스쿠니신사 자체에 대해서는 특별한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도쿄에서 훈련을 받았을 때, 아사쿠사에서 영화를 보고 우에노 공원을 구경하고 야스쿠니신사에도 갔었다”라고 도쿄의 관광코스 중 하나로 이야기할 뿐이다. 당시 조선인 군인·군속의 야스쿠니에 대한 감상은
일본 법령집, “독도, 일본 땅 아니다”
일본 법령집, “독도, 일본 땅 아니다”(ytn, 09.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