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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스벅 사태’ 밑바닥엔 ‘정용진 리스크’…“과거 발언 먼저 사과했어야”
밑바닥엔 정용진 회장의 정치 편향적 발언·태도 스타벅스 ‘5·18 탱크데이’ 사태의 진짜 원인은 몇몇 실무자의 실수가 아니라 사회 일반 수준에 미치지 못한 역사인식과 사회적 감수성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 소거된 기업 문화의 잘못이, 대중을 상대로 진행되는 마케팅을 통해 증폭된 단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그 밑바닥에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그간 보여온 정치 편향적 발언과 태도가 깔렸다는 비판이 거세다. 역사학계에서는 이번 논란이 실무자들의 단순한 ‘무지’나 ‘우연’으로 치부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반병률 한국외대 명예교수(사학)는 “5·18은 초등학생도 아는 현대사의 중대한 사건”이라며 “5·18을 생각조차 못 했다는 신세계 쪽 해명은 난센스”라고 잘라 말했다. 아무리 말단 실무자라 해도 이 사건이 한국 사회에서 갖는 의미와 무게를 모를 수 없고, 여러 단계 검토 과정에서도 걸러지지 않은 사실 자체가 “그런 인식이 회사 안에서 용인되는 분위기였다는 방증”이라는 지적이다. 이번 사태는 특정 온라인 집단의 왜곡된 조롱 문화가 일상에 무분별하게 스며든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처장은 이를 ‘극우식 조롱 문화의 일상화’라고 분석했다. 과거 특정 커뮤니티에 갇혀 있던 역사 왜곡이 인터넷 게시판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타고 확산하면서 누구를 조롱하는지도 모른 채 조롱의 형식만 남은 하위 문화(밈)가 됐다는 것이다. 방 처장은 “5·18이 대략 뭔지는 알아도 ‘그걸 조롱하듯 광고 문구로 쓰면 안 된다’는 정서적 공감대가 없는 상태가 바로 ‘역사적
[오마이뉴스] ‘김재규가 쏜 것은 박정희가 아니었다!’
하이브리드 다큐멘터리 극영화 <1026: 새로운 세상을 위한>(감독: 최위안) 예술작품도 스포츠와 흡사해 높은 경지에 있는 예술가들은 힘을 뺄 줄 안다. 최근에 우연히 만난 다큐영화 <1026: 새로운 세상을 위한>(감독: 최위안, 제작: 리얼곤시네마)는 전에 없던 새로운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숏츠가 난무하는 요즈음, 상연 시간 113분 동안의 몰입감을 선사하는 영화다. 다큐인데도 그 흔한 인터뷰 장면 하나 삽입하지 않은 의도가 오히려 빛난다. 관계자들로부터 들어보니 인터뷰 장면들이 있긴 했으나 편집에서 다 삭제시켰다 한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의 깊이와 넓이가 상쇄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신선한 효과를 얻었다. 새 시대, 새 그릇 위에 담아 놓은 맛깔난 음식같다고나 할까! 조미료를 안친 슴슴한 진짜 냉면을 맛본 기분이라 뒷맛도 상큼했다. <1026>은 우리 현대사를 안내해 준 도슨트같은 K-역사영화다. 국내인은 물론, K-현대사를 알고 싶어 하는 외국인들에게도 추천해 주고 싶다. 역사의 ‘1026 사태’는 모두가 다 아는 사건이지만 정작 그 디테일한 내막에 대해선 정치에 몸담고 있거나 군 내부를 잘 파악하고 있는 이 나라의 남성들 외엔 잘 모른다. 이해하기 어렵고 복잡하다. 최위안(71세 본명:崔洛權) 감독은 이 땅의 역사 사건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여준 셰프이다. ‘그것이 궁금했다’를 친절히 총정리 해 압축파일로 생성,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방대한 분량의 자료들을 한 주먹으로 빼내는 일도 그렇겠으나, 그걸 다 소화해 예술작품으로 차려놓은 작업은 초특급 셰프가 아니고선 할 수 없는 일! 이 영화에서는 여느 작품들과는
[오마이뉴스] 항쟁의 한복판에서 안식처 제공한 사찰… 두 스님의 간절한 호소
[1980사북, 늦은 메아리] 사북항쟁의 민중사적 뿌리를 찾아서 [기자말] 특별기획 ‘1980 사북, 늦은 메아리’는 박봉남 감독의 영화 <1980 사북> 전국 상영을 계기로 공론화한 사북 사건을 단지 과거사로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건의 역사적 의미와 국가의 대응, 공동체와 시민 사회의 변화 과정을 추적 기록해 국가 폭력의 기억과 치유 과정을 시민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현재 행정구역상 정선군 고한읍에 있는 함백산 정암사와 적조암은 1980년 당시 사북읍에 소속된 공간이었다. 그 중에서도 적조암은 이 지역에 탄광이 생기기 100년 전에 이 땅에서 시작된 민중운동 동학의 뿌리와 맞닿아 있다. 사북과 고한을 품은 함백산 정암사 부근 적조암 터에는 “천도교 제2대 교조 해월신사 독공지(篤工址)”라고 적힌 비석이 놓여 있다. 가파른 함백산 오솔길의 끝자락 눈에 띄지도 않는 곳에 소박하게 앉아 있는 이 나지막한 비석처럼, 조선 민중운동의 뿌리인 동학이, 한때 사북읍에 속해 있던 정암사 터에서 그 철학적 기반과 실천적 조직을 강고하게 다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동학을 품은 정암사 1861년 경상도 경주의 한마을에 살던 최제우는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고 있던 최경상을 동학에 입교시켰다. 최경상은 이제 더 이상 천대받는 머슴이 아니라 ‘몸속에 한울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 되어 스승이 열어준 새로운 길을 따라갔다. 1863년, 동학에 대한 탄압이 거세지자 최제우는 최경상을 후계자로 공식화하기 위해 그해 음력 7월, 그를 북도중주인(北道中主人)으로 임명하면서 ‘해월당(海月堂)’이라는 도호를 내렸다. 바로 이
[성명] 식민지배 책임 부정하고 동아시아 평화 위협하는 다카이치 수상 규탄한다. 한일 정부는 군사협력 중단하고 역사정의와 평화실현을 위해 노력하라
☞ 다운로드: [성명] 식민지배 책임 부정하고 동아시아 평화 위협하는 다카이치 수상 규탄한다 오늘 안동에서 개최되는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수상의 한일정상회담을 앞두고, 우리는 식민지배의 역사를 부정하고 동아시아 평화를 위협하는 다카이치 총리를 규탄하며 동아시아 평화를 위협하는 한일 군사협력 강화 움직임에 깊은 우려를 밝힌다. 다카이치 수상은 과거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행위를 ‘자위권 행사’라 미화하고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되풀이하며 역사부정론을 고집해왔다. 특히 지난 4월 21일,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봉납한 것은 침략전쟁의 망령을 부활시키려는 도발이자, 유족 동의 없이 무단 합사된 2만 1천여 명의 조선인 희생자들을 다시 한번 모욕하는 행태이다.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신사는 한국인 무단 합사를 즉각 철폐하고 역사부정 시도를 당장 중단하라. 다카이치 수상은 동아시아 평화를 위협하는 평화헌법의 개정 시도를 즉시 중단해야 할 것이다. 또한 한일 정부는 동아시아에 전쟁의 위기를 부르는 군사협력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 현재 일본 정부는 평화헌법 9조를 폐기하고 ‘전쟁 가능한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살상 무기 수출 허용과 국방비 증액 등 군사대국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한일상호군수지원협정(ACSA) 체결 시도와 한·미·일 군사역량 통합을 위한 ‘킬 웹(Kill Web)’ 구상은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전쟁의 위험 속으로 몰아넣는 위험천만한 시도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미국의 압박과 일본의 군사대국화 움직임에 동조하는 군사협력을 중단하고, 국민의 생명과 평화 주권을 지키는 당당한 외교에 나서야 한다.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취재요청서] 한일정상회담에 즈음한 시민사회 기자회견
☞ 다운로드: [취재요청서] 260519_한일정상회담에_즈음한_시민사회_기자회견 <한일정상회담에 즈음한 시민사회 기자회견> 식민지배 책임 부정하고 동아시아 평화 위협하는 다카이치 수상 규탄한다 한일 정부는 군사협력 중단하고 역사정의와 평화실현을 위해 노력하라 2026년 5월 19일(화) 오전 11시 경북도청 동문에서 <한일정상회담에 즈음한 시민사회 기자회견>을 개최합니다. 이번 기자회견에서는 식민지배 책임을 부정하고 군사대국화를 추진해 온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수상을 규탄하고, 한일 양국 정부에 군사협력 중단과 역사정의·동아시아 평화 실현을 촉구할 예정입니다. (1) 일시 : 2026년 5월 19일(화) 오전 11시 (2) 장소 : 경북도청 동문 (3) 주최 : 민족문제연구소, 안동시민단체연대회의,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대구경북자주통일평화연대 (4) 순서 – 발언 1. 김헌택 안동시민연대 대표 – 발언 2. 김재하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공동대표 – 발언 3.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처장 다카이치 수상은 침략전쟁 미화, 야스쿠니신사 공물 봉납, 독도 영유권 주장 등 역사부정 행보를 지속해 온 인물입니다. 또한 일본 정부는 평화헌법 개정과 군비 증강,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를 추진하며 동아시아 긴장을 높이고 있습니다. 이에 시민사회는 한일 양국 정부에 군사협력 확대 중단과 식민지배·침략전쟁에 대한 책임 인정, 강제동원 및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와 배상 이행, 역사정의와 평화 실현을 위한 실질적 조치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합니다.
[새책소개] 『백범 강산에 눕다』
나는 왜 『백범 강산에 눕다』를 썼나 – 작가 임순만이 드리는 편지 저는 우리의 수천 년 역사 가운데 일제 강점기와 그 이후의 분단만큼 억울하고 분한 시절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국권을 빼앗긴 데 이어 해방 후 나라가 둘로 갈라진 이중의 상실은 우리 역사의 가장 큰 비극입니다. 지금 남북분단이 80년을 넘어 백 년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두고두고 가슴 아픕니다. 5천 년 역사에서 100년일 뿐이라고, 우리에겐 더 위대한 미래가 있을 거라고 생각을 바꿔보아도 문이 굳게 닫아 걸린 남북의 현실은 슬프기 짝이 없습니다. 임진왜란 종전 협상에서 일본은 조선 8도에서 경상⬝전라⬝충청⬝황해 등 4개 도의 할양을 요구했습니다. 그래도 조선은 이웃 나라와의 선린을 위해 임란 후 200년간 조선통신사를 일본에 파견해 우리의 문물을 전수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을 시작으로 한반도에 다시 상륙해 동학 농민들을 학살했고, 경복궁에 난입해 을미사변을 일으켰습니다. 이 험난한 시대에 많은 독립지사들이 목숨을 다해 나라를 지켰지만, 그중에서도 백범 김구 선생은 우리가 두고두고 잊어서는 안 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백범은 ‘죽음을 겁내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단 한 번 세상을 사는 유한한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요? 그렇습니다. 김구는 그런 강직함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운다면 애당초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서울 상동교회에 각지의 청년 지도자들이 모였습니다. 회원들은 을사늑약 체결을 반대하는 상소를
[보도자료] 한상언영화연구소 신간 ‘천리마 북한 영화’ 안내
☞ 다운로드: [보도자료] 보도자료_한상언영화연구소 신간 소개-천리마 북한 영화 천리마 북한 영화 한상언 지음 175×245 | 무선 | 450쪽 | 발행일: 2026년 4월 20일 | 39,000원 ISBN: 979-11-93408-04-9 (93680) 문의 : 한상언영화연구소 (010-5532-2866) / didas@naver.com ∎ 책소개 『천리마 북한 영화』는 해방 직후부터 김정일의 『영화예술론』이 발간된 1973년까지 북한 영화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북한 영화사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이 시기 동안 북한은 영화 제작의 인적, 물적 기틀을 마련했다. 특히 항일 무장 투쟁 영화를 비롯해 전쟁 영화, 천리마 시대의 현실을 주제로 한 영화 등 북한 영화를 상징하는 영화 장르를 완성했다. 1960년대 후반 이후 김정일이 영화 부문을 책임지게 되면서 북한 영화는 유일사상체계 확립을 위한 주체 영화의 시대로 이행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 영화의 토대를 다진 많은 영화인이 영화사 서술에서 배제되거나 그 기록이 삭제되었다. 『천리마 북한 영화』는 그동안 연구되지 않은 주체 영화 이전 북한 영화의 발전 과정을 조명하여, 독자들이 북한 영화를 더욱 상세히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 본격적인 북한 영화사 저서 1970년 이전 제작된 북한 영화 대부분을 관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영상 자료의 공백을 메워줄 문헌 자료조차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러한 제약 때문에 초기 북한 영화를 연구하는 것은 연구자들에게 크나큰 도전 과제였다. 『천리마 북한 영화』는 전 세계 아카이브에 흩어진 자료와 중국 및 일본의 고서점에서
[경남도민일보] 진주문화원, 남인수기념사업회 업무협약 체결 취소
지난 11일 회의서 업무협약 취소 결정 진주문화원과 남인수기념사업회의 업무협약 체결 논란과 관련해 진주문화원이 업무협약을 취소하기로 했다. 진주문화원은 지난 11일 원장과 부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고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민족문화연구소가 강력하게 비판했던 남인수기념사업회와 체결한 업무협약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진주문화원은 절차에 따라 15일 열리는 이사회에 업무협약 취소를 보고할 예정이다. 진주문화원 관계자는 “회의에서 업무협약 내용이 부적절하다는 데 공감을 해서 취소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6일 진주문화원과 ㈔남인수기념사업회는 친일 행적으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가수 남인수 관련 사업을 전국 규모 문화축제로 육성·발전시키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해마다 남인수가요제를 열었던 남인수기념사업회는 지난해 남인수가요제를 열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진주시로부터 장소 대관 허가를 받았는데, 이를 어기는 ‘꼼수’를 부려 경찰에 고발당하는 등 물의를 빚어온 단체여서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강하게 일었다. 진주시민행동과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파인 남인수의 숭모사업”이라며 김길수 문화원장 사퇴와 함께 진주시의 문화원 예산 전액 삭감, 한국문화원연합회에 진주문화원 제명 등을 요구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허귀용 기자 <2026-05-13> 경남도민일보 ☞기사원문: 진주문화원, 남인수기념사업회 업무협약 체결 취소 ※관련기사 ☞연합뉴스: 진주문화원, 시민단체 반발에 남인수기념사업회와 협약 취소
[오마이뉴스] 끝까지 추적한다… 재도전 나서는 친일재산 환수
[김종성의 히,스토리] 168명뿐이었던 친일재산 환수… 1기 위원회가 놓친 친일 재벌들의 막대한 재산 친일재산 환수가 다시 시도된다.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를 부활시키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 등에 관한 특별법(친일재산귀속법)’이 지난 7일 국회를 통과했다. 시행일이 “공포 후 6개월”이므로 금년 말쯤에는 친일재산 환수의 시즌 2가 본격화할 수 있다. 2005년 12월 29일 제정된 최초의 친일재산귀속법에 근거한 제1기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7월에 설치됐다가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에 활동을 종료했다. 제1기 위원회의 백서인 <친일재산 조사, 4년의 발자취>에 따르면, 위원회는 친일파 168명으로부터 총 2359필지의 부동산을 국가에 귀속시키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공적인 활동을 많이 했거나 고위 공직에 있었던 친일파들을 주로 수록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된 친일파는 4389명이다.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 시리즈에 수록된 친일반민족행위자는 1006명이다. 168명이라는 숫자가 너무 터무니없다는 점은 두 책에 등재된 친일파의 숫자로도 확인된다. 제1기 위원회의 성과는 친일청산을 이루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친일파 대부분은 신념보다는 이익을 좇은 사람들이다. 이들 대다수가 금전적 대가를 받고 부역행위를 했다는 점은 <친일인명사전>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에 정리된 그들의 경력과 활동에서 잘 드러난다. 여기에 수록된 일반적인 친일파들은 금전적 대가가 수반되는 직책에서 친일행위를 하거나, 아니면 수당이나 원고료 혹은 사례비 등이 지급되는 행위를 매개로 친일을 범했다. 2005년 당시의 친일재산귀속법 제2조 제2호는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하거나 이를 상속받은 재산 또는 친일재산임을 알면서 유증·증여를 받은 재산”을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으로 규정했다. 따라서 친일행위를 통해 획득한 월급이나 수당·원고료·사례비
[JTV 전주방송] ‘친일파’ 이두황 땅⋯’환수’ 길 열리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장관을 지낸 이두황은 동학농민군과 의병을 학살하고, 명성황후 시해에도 가담한 대표적인 친일파입니다. 전주 기린봉 자락에는 아직도 이두황의 묘와 드넓은 토지가, 후손들 소유로 남아 있는데요. 최근 친일 재산 환수를 위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해 이두황 일가의 땅도 환수 대상에 오를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강훈 기자의 보도입니다. 전주 도심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기린봉 자락에 일본식으로 꾸며놓은 무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강훈 기자: 이곳은 조선의 국권이 피탈된 해인 1910년부터 6년 뒤 사망할 때까지 전라북도장관으로 임명된 친일파 이두황의 무덤입니다.] 1894년 동학농민군을 학살하고, 명성황후 시해에도 가담한 대표적인 친일파입니다. 묘를 포함해 주변 3만9천㎡ 땅은 여전히 후손들이 소유하고 있어, 이두황의 친일 행적을 기록한 단죄비도 300m가량 떨어진 도롯가에 설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두황의 땅을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나왔지만 [김재호|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장: “이것이 친일파의 재산입니다”라고 결정할 수 있는 위원회가 없어서 그동안에 친일파 재산을 환수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 CG ] 국가에 귀속시키기 위해서는 친일 행위의 대가로 얻은 재산이라는 점을 증명해야 합니다. // 문제는 이두황이 이 땅을 어떻게 소유하게 됐는지 국가 차원에서 확인하고 판단할 기구가 사실상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최근, 친일 재산을 다시 추적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 등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겁니다. [김용민|국회의원(지난 7일) 과거 조사 과정에서 확인되었지만 법적 한계로 환수하지 못했던 재산과 추가 조사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