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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방학진 “학생, 제복 시민, 공무원 등 역사체험 교육 필요”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처장, 내란청산 198차 촛불집회 발언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처장이 4일 오후 ‘내란청산 촉구, 198차 촛불집회’에서 리박스쿨 사태와 배재고 야구부 사건을 언급하며 “독립운동 유적지, 민주화운동 유적지 등 학생 역사체험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방학진 사무처장은 4일 오후 6시부터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내란청산-국민주권실현 촉구, 198차 촛불대행진’ 집회에 참석해 무대 발언을 했다. 방 사무처장은 “제가 여기 오기 전, 천안에 있는 ‘망향의 동산’ 묘지를 다녀왔다”며 “묘지에 위안부 할머니들이 안장돼 있다”고 밝힌 후 “김학순, 김복동, 이옥선 등 여러 위안부 할머니들이 안장된 곳”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대부분 국민들이 이곳을 잘 모르고 있고, 특히 충남지역에 살고 있는 학생과 교사들이 거의 방문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며 “이게 문제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로 현재 생존해 있는 분들이 딱 다섯 명이다. 평균 나이가 95세이다. 대한민국 독립운동가로서 서훈을 받은 분들이 1만 8000여명인데, 그중 생존한 분이 딱 네 분이다. 평균 나이 100세가 넘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재명 정부 안에서 위안부 할머니와 독립운동가들, 일제때 강제 징용피해자들이 모두 돌아가신다는 얘기이다. 역사의 증인들이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다. 이렇게 독립운동가 부재시대가 다가오고 있고, 피해자들의 부재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이 피해자들이 없으면 극우 일베들이 얼마나 더 활개를 칠까. 소름이 돋는다.” 이어 “이재명 국민주권정부는 이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며 “배재고 사태를 통해 일베들이 학생들에게 얼마나 침투했는지 우리가 낱낱이 알게 됐다.
[MBC] ‘역사’ 눈감은 국립묘지
■ 현충원에 묻힌 그들 1980년 5월 19일 광주. 탱크와 장갑차가 시내를 점령했고, 공수부대가 투입됐습니다. 무자비한 과잉진압에 분노한 시민들의 시위가 계속되던 그날 오후. 계엄군이 처음으로 총을 쐈습니다. 그때 총탄을 맞고 쓰러진 건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던 김영찬 씨였습니다. [김영찬/5·18 첫 발포 피해자] “(친구들이) ‘영찬아 빨리 와라. 무섭다’ 그러고 해서 알았다고 뛰어가는데 다시 한번 총소리가 따다다닥 나더라고요. 이렇게 뒤돌아보는데 아스팔트에서 불이 파바박 튀는 걸 봤어요. 그 순간 갑자기 하체 힘이 쭉 빠지는 거야.” 총탄은 손목과 하복부를 관통했습니다. 생사를 오가는 7번의 수술 끝에 살아남았지만, 46년째 극심한 후유층에 시달리며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김영찬/5·18 첫 발포 피해자]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개복을 해서 7번 수술을 한 거죠. 내 사지를 이렇게 침대 난간에 묶고 학교 친구들 불러서 한 10명이서 제 몸을 이렇게 누르고 입 틀어막고 막 생살을 이렇게 수술을 했어요.” 교복을 입은 김 씨에게 총을 쏜 건 장갑차에 타고 있던 11공수여단 소속 차정환 대위. 그는 닷새 뒤인 5월 24일, 광주에 투입된 군인들 간의 오인 사격으로 사망했습니다. 당시 정부는 차 대위에게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했는데, 공적 조서엔 오인 사격 사망이 아닌, “사태 진압을 선두에서 지휘하던 중 불의의 흉탄에 맞고 순직했다”고 돼 있습니다. 김영찬 씨에게 총을 쐈던 그는 현재 국립서울현충원에 묻혀있습니다. [김영찬/5·18 첫 발포 피해자] “힘들게 살다가 돌아가신 분들도 묘지에, 국립묘지에 못
민족사랑 2026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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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제주로 향한 4·3버스’ 국가폭력 상흔과 시대의 과제
민족문제연·제주다크투어가 기획한 ‘평화기행’ 독립운동가 김동삼 후손 김원일이 제안해 시작 학살의 현장에서 독립운동가 강태선 자택까지 경찰 총탄에 턱 잃은 진아영 할머니 삶터 숙연 역사 왜곡에 맞서는 민주시민 저항 정신 고취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몫이자, 기록하는 자의 책무다. 지난해 제주 4·3 학살의 책임자 중 한 명인 박진경 대령의 서훈 취소와 상훈법 개정을 요구하며 육지 전역을 누볐던 ‘육지로 가는 4·3 버스’가 이번에는 제주의 아픈 역사의 현장 속으로 향했다. ‘제주로 향한 4·3 버스’가 된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제주 4·3기념 사업위원회의 지원 아래, 일송 김동삼 독립운동가 기념사업회 회원들과 일반 시민 등 28명의 참가자는 제주다크투어의 해설과 함께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아픈 역사의 현장들을 밟았다. 이번 여정은 단순한 유적지 탐방을 넘어, 친일과 국가폭력으로 점철된 110여 년의 굴곡진 현대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엄숙한 연대의 현장이었다. ■ 학살의 동굴과 통곡의 길…제주 전역에 새겨진 국가폭력의 흔적 답사단이 첫날 마주한 제주 하늘은 무거웠다. 제주 4·3 평화공원을 찾은 참가자들은 50여년 해원(解冤)되지 못한 채 구천을 떠돌던 희생자들의 넋을 위령하며 첫발을 디뎠다. 평화공원 전시실에서 당시의 참상을 전하는 해설이 이어지자, 곳곳에서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고 무자비한 국가권력의 학살 행위에 분노를 감추지 못하는 참가자들도 많았다. 이어 발길이 닿은 곳은 조천읍 선흘리의 목시물굴이었다. 1948년 11월, 토벌대의 초토화 작전을 피해 도틀굴과 목시물굴로 숨어들었던 주민들의 운명은 참혹했다. 협박과 고문으로 위치를
[주간경향] 6·25 전쟁 때 강원 평강에 원폭 6~10발 투하…미국 극비문서에 담긴 ‘소름 돋는’ 구상 [이기환의 사래자(思來者)
“현재의 군사적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조처를 하겠다.” 1950년 11월30일이었다. 기자회견에 나선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재임 1945년 4월12~1953년 1월20일)이 아주 민감한 발언을 터뜨렸다. 기자들이 “그 모든 조치에 핵무기(원자탄)도 포함되느냐”고 계속 묻자 트루먼은 “핵무기 사용에도 항상 적극적인 고려가 있었다”고 답했다. 말 그대로 핵폭탄 발언이었다. 그의 발언은 유럽을 비롯한 국제 사회에 벌집을 쑤셔놓았다. 동맹국들은 ‘충격과 분노(Shock and outrage)’라는 표현을 쓰면서 미국을 비난했다. 반대한 이유는 세 가지였다. 우선 자칫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련이 원자탄으로 대응하면 어쩌냐는 것이었다. 또 ‘한국에서 원자탄 사용’은 유색인종에 대해 인종차별주의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이 원자탄을 사용하더라도 중국·소련을 굴복시킬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었다. 이러한 동맹국들의 ‘핵무기 절대 불가’ 여론을 등에 업은 클레멘트 애틀리 영국 총리가 서둘러 트루먼과의 회담을 성사시켰다. 마침내 12월4일 열린 애틀리-트루먼의 역사적인 회담은 “핵무기가 사용될 작전사항이라면 언제든 영국 총리에게 미리 알린다”는 구두합의로 마무리됐다. 이로써 트루먼의 원자폭탄 사용발언은 10일 만에 일단락된 것 같았다. 원자폭탄의 유혹 하지만 이것이 처음과 끝이 아니었다. 미국은 전쟁을 한 방에 끝낼 수 있는 원자폭탄의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연구에 따르면 미국은 모두 5차례에 걸쳐 핵무기(원자폭탄) 카드를 꺼내려 했다. 첫 번째는 북한군이 기습 남침했을 때(1950년 6~9월)였다. 트루먼 행정부와 군부는 개전초부터 핵무기 사용을 고려했다. 특히 더글라스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은 합참에
[전자신문] 유한양행 ‘제약보국’ 100년…신약으로 이어온 故 유일한 박사의 꿈
1926년 한 독립운동가는 “건강한 국민이 있어야 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신념으로 제약사를 세웠다. 고(故) 유일한 박사가 창업한 유한양행은 불모지였던 의약품 국산화를 개척하고 국산 항암신약 ‘렉라자’를 탄생시키며 한국 제약산업의 이정표를 세워왔다. 창립 100주년을 맞은 유한양행은 신약 개발로 벌어들인 성과를 다시 연구개발과 사회공헌에 투자하며 ‘제약보국’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유일한 박사가 서울 종로에 설립한 유한양행의 출발점은 ‘건강한 국민만이 잃었던 조국을 되찾을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었다. 유일한 박사는 어린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하며 민족 자강의 중요성을 체감했는데, 독립을 위해서는 정치적 자유뿐 아니라 경제력과 국민 건강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일본 기업들이 장악한 의약품 시장에서 우리 손으로 좋은 약을 만들어 국민 건강을 지키겠다는 것이 유한양행 창업 배경이었다. 유한양행은 설립 초기부터 단순 수입 판매에 머물지 않았다. 자체 생산 시설을 세우고 의약품 국산화에 나섰다. 해외 전문가를 영입해 기술력을 축적했고 일본 자본이 독점하던 시장에 정면 도전했다. 이는 한국 제약산업 토대를 구축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유한양행은 1933년 자체 개발 의약품 ‘안티푸라민’을 선보이며 국산 의약품 개발의 물꼬를 텄다. 안티푸라민은 9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국민 상비약으로 자리 잡으며 유한양행 연구개발 역사의 출발점이 됐다. 그리고 현재 유한양행의 폐암 치료제 ‘렉라자(레이저티닙)’는 한국 혁신 신약 개발 성과의 계보를 잇는 대표 제품이 됐다. 국산 신약 31호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최초의 국산 항암제다. 글로벌 제약사
[경기일보] 후손의 기억으로 본 독립운동가와 가족의 삶…‘결국, 뿌리로 산다’
민족문제연구소 ‘독립운동가 후손 구술 수집사업’ 녹취 소설 형식으로 옮겨 100년 전 조선공산당 6·10투쟁특별위원회 책임자 권오설 후손 등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1926년 6월 10일, 이른 아침부터 순종의 장의행렬이 지나가는 길은 추모객들로 인산인해였다. 일제는 시민들의 시위를 막기 위해 단단히 준비했다. 창덕궁 돈화문에서 을지로 2가, 을지로 4가까지 도로 양쪽앞 열에 ‘의장대’ 명목으로 무장한 기마경찰과 헌병을 도열시켰다. 그 다음 열에는 고등보통학교생과 전문학교생 2만1천명을 배치했다. 일반시민 추모객들은 그 뒤편에 자리 잡았다. 오전 8시, 추모객들의 호곡 속에 상여가 돈화문 앞을 출발해 장지인 금곡을 향해 종로3가 쪽으로 서서히 움직였다. 8시30분 장의행렬이 종로3가 단성사 앞을 통과할 무렵 동양루 쪽에서 이선호가 도로 중앙으로 뛰어나오면서 한 뭉치의 ‘격문’을 뿌렸다. 그리고 태극기를 흔들면서 외쳤다. “조선독립만세!” 6·10만세운동은 일제의 철통같은 사전·사후 탄압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되지 못했다. 하지만 국내외 독립운동세력에 미친 영향은 대단했다.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이 실천적으로 연대해 항일운동을 전개한 새로운 경험이었으며 1927년 2월 신간회가 성립할 수 있게 한 디딤돌이었다. 분열상을 보이던 독립운동세력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국민 주권을 요구한 운동이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6·10만세운동은 순수한 학생운동으로만 기억돼 왔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를 두고 “반공 이데올로기에 짓눌려 온 우리 사회 분위기 탓에 만세운동의 계획과 준비, 진행에서 사회주의 계열의 주도적 움직임을 의도적으로 외면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사회주의 이념을 발판으로 항일투쟁,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독립운동가들을 외면하고, 나아가 지속적으로 우리 사회
[뉴스타파] [특집 기획] 한일 극우의 데칼코마니
폭력화되는 극우 지난 1월 19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면서 법원에 난입한 사람들이 있었다. 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붙잡겠다며, 판사실을 찾고 경찰과 공수처 직원, 언론인을 폭행하는 등 매우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다. 전담수사팀에 의해 구속기소 된 그들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를 외치는 극렬 지지자들이었다. 일본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꽤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환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시위 모습을 보면 일본회의 시위와 굉장히 닮았습니다. – 스가노 다모쓰 / 독립 언론인 광복 80주년이 되는 올해 삼일절을 맞아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성과 반대를 놓고 집회의 성향은 좌우로 극명하게 갈린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일본 극우의 뿌리를 찾는 여정 삼일절을 맞아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와 함께 일본 극우의 뿌리를 찾기 위해 일본으로 떠났다.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시모노세키로 이동했다. 시모노세키로 이동하는 바닷길은 일제강점기인 1905년부터 40년간 운항됐던 부관연락선의 항로였다. 부관연락선, 침략과 수탈의 항로 부산에서 시모노세키까지의 거리는 200km, 11시간을 이동하는 항로다. 배가 운행을 시작한 1905년은 을사늑약이 체결돼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일본에 강제로 박탈 당한 해이기도 하다. 당시 배는 남만주철도 주식회사가 운영하면서 철저히 한반도의 자원을 수탈하는 루트로 이용됐다. 지금은 한일 우호의 상징이 됐지만, 일제강점기 때는 선조들의 절망과 눈물이 흐르던 항로이기도 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정한론’의 기원지 과거 조슈번으로 불렸던 일본 야마구치현 하기시. 이곳에 메이지 유신의 정신적 지도자인
[대전 MBC] 제71회 현충일 추념식⋯”국립묘지법 개정하라”
◀ 앵 커 ▶ 현충일을 맞아 호국영령과 순국선열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추념식이 거행됐습니다. 시민단체는 올해도 국립대전현충원 앞에서 친일·반민족 행위자의 묘소 이장을 주장했습니다. 김광연 기자가 보도합니다. ◀ 리포트 ▶ 오전 10시 정각, 사이렌 소리와 함께 21발의 조포가 발사됩니다. “펑! 펑!”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열린 추념식, 지역 주요 기관장과 국가유공자 유족 등은 현충탑에 헌화하며 선열들의 넋을 기렸습니다. 유득원 / 대전시 행정부시장 “여러분께서 목숨으로 지켜낸 이 나라를 더 정의롭고 더 위대한 나라로 만들어가겠습니다. 그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현충원을 찾은 시민들도 부모와 자식의 묘비를 어루만지며 나라를 향한 헌신을 기억했습니다. 비슷한 시간, 시민단체는 올해도 친일과 반민족 행위자 파묘를 주장하며 국립묘지법 개정을 촉구했습니다. 민족을 배신하고 일제에 협력한 이들이 독립운동가들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은 역사적 모순을 넘어 국민적 수치라고 강조했습니다. 박의선 /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역위원장 “(국립묘지에) 안장됐더라도 자기의 잘못된 행적이나 살아생전에. 반민족행위나 반인권적 행동 이런 것들이 나타나면 강제 이장할 수 있도록 국립묘지법을 개정하라.” 세종시와 충남도도 각각 충령탑과 충남보훈공원에서 현충일 추념식을 열어 순국선열의 넋을 기렸습니다. MBC뉴스 김광연입니다. (영상취재: 김훈) ◀ END ▶ 김광연 기자 <2026-06-06> 대전 MBC ☞기사원문: [리포트]제71회 현충일 추념식⋯”국립묘지법 개정하라”
[베이비뉴] 강북구, 근현대사기념관, 전 세대가 배우는 역사교육 프로그램 운영 外
클래식과 국악의 경계를 허무는 듀오 ‘첼로가야금’, 6월 재능 혜화 마티네 무대 올라… 백범 김구 탄신 150주년 기념 신규 보훈 문화상품 3종 출시 ‘문화 트렌드’는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 도움이 되는 문화·공연·전시 분야의 주요 이슈를 모아 전하기 위해 기획된 코너다. 영화·뮤지컬·전시·체험 프로그램 소식과 문화기관 및 기업의 문화 지원 활동 등 다양한 소식 가운데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고 아이의 정서 발달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선별해 소개한다. ◇ 강북구, 근현대사기념관, 전 세대가 배우는 역사교육 프로그램 운영 서울 강북구(구청장 이순희)는 구가 (사)민족문제연구소에 위탁해 운영 중인 근현대사기념관이 구민들의 역사의식을 높이고 세대별 맞춤형 역사교육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2026년 상반기 독립민주시민학교’를 비롯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2026년 상반기 독립민주시민학교’는 ‘6·10만세운동을 다시 본다’를 주제로 오는 6월 20일부터 7월 18일까지 총 4회에 걸쳐 근현대사기념관 강의실에서 진행된다. 이번 강좌는 6·10만세운동의 역사적 의의와 민족적 저항 정신을 재조명하고, 독립운동의 가치와 계승의 의미를 함께 살펴보기 위해 마련됐다. 강좌는 ▲6월 20일 오후 2시, ‘우리는 6·10만세운동을 어떻게 기억해 왔는가’(윤상원 전북대 교수) ▲7월 4일 오후 1시, ‘6·10만세운동은 누가 주도했는가?’(임경석 성균관대 명예교수) ▲7월 4일 오후 3시 30분, ‘1926년 6월 10일, 만세 시위를 이끈 학생들’(박종린 한남대 교수) ▲7월 18일 오후 2시, ‘6·10만세운동은 반일 민족통일전선 운동이다’(김정인 춘천교대 교수) 순으로 운영된다. 이와 함께 근현대사기념관은 초등학생과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체험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