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백범 강산에 눕다』를 썼나
– 작가 임순만이 드리는 편지
저는 우리의 수천 년 역사 가운데 일제 강점기와 그 이후의 분단만큼 억울하고 분한 시절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국권을 빼앗긴 데 이어 해방 후 나라가 둘로 갈라진 이중의 상실은 우리 역사의 가장 큰 비극입니다. 지금 남북분단이 80년을 넘어 백 년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두고두고 가슴 아픕니다. 5천 년 역사에서 100년일 뿐이라고, 우리에겐 더 위대한 미래가 있을 거라고 생각을 바꿔보아도 문이 굳게 닫아 걸린 남북의 현실은 슬프기 짝이 없습니다.
임진왜란 종전 협상에서 일본은 조선 8도에서 경상⬝전라⬝충청⬝황해 등 4개 도의 할양을 요구했습니다. 그래도 조선은 이웃 나라와의 선린을 위해 임란 후 200년간 조선통신사를 일본에 파견해 우리의 문물을 전수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을 시작으로 한반도에 다시 상륙해 동학 농민들을 학살했고, 경복궁에 난입해 을미사변을 일으켰습니다.
이 험난한 시대에 많은 독립지사들이 목숨을 다해 나라를 지켰지만, 그중에서도 백범 김구 선생은 우리가 두고두고 잊어서는 안 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백범은 ‘죽음을 겁내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단 한 번 세상을 사는 유한한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요? 그렇습니다. 김구는 그런 강직함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운다면 애당초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서울 상동교회에 각지의 청년 지도자들이 모였습니다. 회원들은 을사늑약 체결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기로 했습니다. 상소자들은 일제와 그에 동조하는 대신들이 자신들을 반역이나 소요죄로 몰아 처형할 것이라고 각오했습니다. 1차 상소자로 최재학(崔在學), 신상민(申相珉), 김인집(金仁楫), 신석준(申錫峻), 이시영(李始榮) 등 5인이 나섰습니다.
김구는 황해도 진남포 엡윗청년회 총무 자격으로 전국대회에 참석한 상태였습니다. 이름난 지도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1차 상소문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대신 전국에서 올라온 청년들과 함께 뒤에서 실무를 맡으며 2차 상소 조 일원으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김구는 상소 투쟁에서 몸 바칠 준비를 했습니다. 돈이 없던 그는 관 대신 홑이불을 준비했습니다. 홑이불은 거리에서 죽었을 때 자신의 시신을 감쌀 염습용 천이었습니다. 상소 현장에서 즉사하거나 처형당할 것을 각오했기에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스스로 죽을 준비를 한 것입니다. 김구는 『백범일지』에 당시 심경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각자 홑이불 한 채씩을 등에 지고 대한문 앞으로 갔다. 이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고 죽어서 그 이불에 싸여 돌아오겠다는 결심이었다.”
이런 각오는 평생에 걸쳐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1945년 장남 인이 스물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김구는 아들을 어머니 곽낙원 여사 묘 곁에 묻었습니다. 이미 딸 셋과 어머니와 아내를 잃은 뒤였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동생인 안정근의 장녀 안미생과 결혼한 김인은 중경에서 폐병을 앓게 되었습니다. 중경의 나쁜 공기로 많은 한인들이 세상을 떠났는데, 김인은 일본군 점령지역에서 첩보 활동을 했던 긴장감으로 병을 키운 것 같습니다. 안미생은 남편이 위독해지자 시아버지 백범을 찾아가 당시 유일한 치료약이었던 페니실린을 맞게 해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러나 백범은 다른 동지들은 그렇게 해주지 못했는데, 내 아들이라고 특별히 페니실린 주사를 맞게 할 수 없다며 며느리의 부탁을 거절했습니다.
형이 세상을 뜨자 중국 공군사관학교에서 비행 훈련을 받던 둘째 아들 신이 “아버지 곁으로 돌아가겠다”는 편지를 보냅니다. 방학을 하면 학생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지만, 김신은 돌아갈 집이 없어서 늘 텅빈 기숙사에서 홀로 생활했습니다. 둘째의 편지를 받은 김구는 비통함을 누르며 이렇게 답장합니다. “신아, 편지 잘 받았다. 네가 지금은 우리 김씨 집안의 유일한 자손이니 아버지는 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구나. 그러나 혁명하는 것은 생명을 민족에 바친 것이고, 군인은 국가를 위해 힘을 다해야 한다. 생사는 마땅히 그다음의 문제이니 너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이 편지에서 우리는 김구의 진정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지 않나요? 김구는 자신을 온전히 바친다는 각오로 시대를 산 사람입니다. 그래서 상해에서 이봉창·윤봉길 의거를 주도했을 때 김구는 더 깊은 자리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상해에서의 김구는 단순한 투사로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타인의 죽음까지 책임지는 자리에 섰습니다. 1931년 겨울, 김구는 이봉창을 처음 만납니다. 이봉창은 번듯한 엘리트가 아니었습니다. 일본 노동 현장을 떠돌며 밑바닥 인생을 살던 청년이었습니다. 김구는 그에게서 바닥까지 밀려난 사람 특유의 야생의 생명력을 보았습니다.
김구는 그에게 수류탄을 맡깁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명령이 아니었습니다. 김구도 알고 있었습니다. 실패 가능성이 크다는 것, 살아 돌아오기 어렵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는 단순히 작전을 승인한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남은 생애 전체를 자기 품 안에 받아들인 것입니다.
윤봉길 의거에서는 그 관계가 더욱 선명해집니다. 윤봉길은 젊었고, 아내와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김구는 도시락 폭탄을 맡깁니다. 의거 직전 두 사람 사이에는 긴 설명도, 거창한 구호도 없었습니다. 이미 서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대는 조국을 위해 죽으러 간다.” “나는 그런 그대를 보내고 여기 남는다.” 둘은 조국의 이름으로 서로의 목숨을 서로에게 의탁하는 관계가 됩니다.
여기서 김구의 비극성이 생깁니다. 사람들은 흔히 목숨을 바치는 쪽을 비극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살아남아 그 죽음을 받들어야 하는 사람에게도 그에 못지않은 비극이 있습니다. 젊은이를 죽음의 현장으로 보내고, 실패와 죽음을 견디고, 그 이후의 모든 책임까지 짊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책임감으로 근대적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던 황해도 벽촌 김 존위의 아들이 망명지에서 임시정부의 주석이 되었고, 남의 땅 남의 하늘 아래서 한국광복군을 창설했습니다. 백범은 해방 후 남과 북이 만나지 않으면 동족상잔을 피할 수 없고, 분단이 영구화될 것으로 판단해 남북회담을 위해 평양으로 갔습니다. 그것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을 꿰뚫는 감각이었습니다. 그의 결단은 분단이 극복되는 날까지 남과 북이 함께 되새겨야 할 교훈일 것입니다.
백범은 더없이 강건하고 단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육신은 강건했고, 사상은 순결했으며, 삶은 극도로 절제되어 있었습니다. 성품은 곧았고, 나라를 되찾기 위해 단순한 생활을 선택했습니다. 몸을 던지면서도 그것을 희생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의 말과 글에 품격이 따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거나 단순화된 백범의 투쟁은 다시 조명되어야 할 것입니다. 백범과 동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정신이 분단의 현실을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과 삶의 긍지를 불러오기를 소원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우리에게 남긴 선물이자 조용한 부탁일 것입니다.
김구가 우리 민족의 가장 큰 혼란기에 활동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커다란 위로가 됩니다. 이런 지사들의 감동적인 삶을 바탕으로 우리는 오늘날 문화강국으로 발전하고 있고, 지구촌에서 가장 돋보이는 발전의 동력을 보이는 나라로 뻗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3월 21일 BTS가 광화문 컴백 공연에서 “Pardon 김구 선생님 Tell me how you feel”(김구 선생님, 선생님이 꿈꾸셨던 문화 강국을 우리가 이루고 있는데, 지금 우리를 보니 기분이 어떠신가요?)라고 노래해 백범을 세계적으로 알렸습니다.
BTS는 지난 5월 초 멕시코시티 공연 전후로 진행된 현지 언론 보도와 대통령 초청 행사에서도 ‘문화강국의 꿈’과 ‘김구 선생님의 정신’을 함께 언급하며 화제를 일으켰습니다. BTS는 앞으로의 해외 공연에서도 가사를 바꾸지 않고 김구 선생님의 이름을 세계 팬들 앞에서 호명하며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낼 계획입니다. 이렇게 강직한 분이 혼란기에 우리의 중심이 되어주었다는 사실은 앞으로도 두고두고 힘이 될 것입니다.

나는 왜 『백범 강산에 눕다』를 권독하는가
– 한길사 대표 김언호가 드리는 편지
임순만 작가의 『백범 강산에 눕다』를 저는 세 번 읽었습니다. 출판을 결정하기 전 원고 상태로 읽고, 편집과정에서 읽고, 책을 펴낸 후에 다시 읽었습니다.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한길사는 지금까지 3,500여 권의 책을 펴냈습니다만, 이렇게 여러 번 통독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백범 강산에 눕다』는 다시 읽어도 감흥적인 ‘큰 소설’입니다. 우리 민족해방운동사에 우뚝 서는 김구 선생의 생애와 광복운동을 심층으로 다루는 소설입니다. 실존인물이기에, 잘 써내기 쉽지 않은 주제일 것입니다. 그러나 작가 임순만 선생은 10년을 투입해 감동적으로 써냈습니다.
올해는 김구 선생의 탄신 150주년입니다. 유네스코가 김구 선생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습니다. 이제 김구 선생은 세계사에 우뚝 서는 독립운동가입니다. 선생은 한국을 넘어 세계의 독립운동가로 공인되었습니다. 인도의 간디와 베트남의 호찌민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만델라가 유네스코에 의해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바 있습니다. 마침 한길사가 창립 50주년을 맞아 『백범 강산에 눕다』를 출간하게 되어 한 출판인으로서 저에게는 한층 의미 있는 한 권의 책입니다.
한길사는 나름 김구 선생 및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과 연관되는 출판을 해내고 있습니다. 1979년 10월부터 10년에 걸쳐 기획출판 해내는 『해방전후사의 인식』 전 6권 작업도 그 일환입니다. 1980년에 펴내는 ‘한국근대사상가선집’으로 기획해내는 『김구』(송건호 편), 『한용운』(안병직 편), 『신채호』(안병직 편), 『박은식』(이만열 편), 『조소앙』(강만길 편), 『김창숙』(이우성 편)도 같은 계열의 작업입니다. 1986년에 시작하여 1994년에 한꺼번에 펴내는 『한국사』 전 27권도 역시 그러합니다. 『백범 강산에 눕다』는 한길사의 출판정신과 일관되는 작업입니다.
저는 『백범 강산에 눕다』를 읽으면서 울컥울컥 감격했습니다. 김구 선생을 비롯해 민족해방독립운동에 몸을 던지는 수많은 현인들이 저를 감동시킵니다. ‘해방’과 ‘독립’을 위해 온 민족성원이 이렇게 헌신하는 운동이 세계사 그 어디에 있겠습니까.
저는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친구들에게 당당히 『백범 강산에 눕다』를 권독합니다. 저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고 머리를 맑게 해주는 김구 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선열들의 정신과 사상과 실천을 동시대의 친구들에게 즐겁게 권독하고 있습니다.
『백범 강산에 눕다』는 지난 시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들의 청명한 삶을 천명하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특히 우리 청소년들에게 권독합니다. 오늘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우리에게 말해주는 ‘도덕교과서’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우리의 민족해방운동이 어떻게 전개되었는가를 자랑스럽게 인식할 수 있는 ‘역사교과서’입니다. 겨레와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김구 선생의 정신과 사상과 실천은 경이롭고 찬란합니다.
유네스코는 김구 선생의 문화‧예술사상을 높게 평가해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습니다. 전쟁과 약육강식이 여전한 오늘의 세계 속에서 김구 선생은 여러 민족과 국가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문화예술과 평화를 말씀했습니다. 김구 선생의 정신과 사상과 실천은 오늘의 세계인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합니다.
김구 선생은 ‘이(利)’가 아니라 ‘의(義)’를 구현했습니다.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민족의 ‘분단’이 아니라 민족의 ‘통일’을 위해 몸바쳤습니다.
우리 청소년들에게 자랑스런 우리 역사정신을 가르쳐야 합니다. 역사를 제대로 앎으로써 새로운 역사를 창출해낼 수 있습니다. ‘이’가 아니라 ‘의’의 정치‧사회를 구현하는 과제가 오늘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백범 강산에 눕다』는 이 땅의 청소년들뿐 아니라 세계의 청소년들이 읽게 해야 합니다. 아니, 어른들이 읽고 세계의 청소년들에게 권독해야 합니다. 백범 김구 선생과 그 동지들의 민족해방 정신과 사상은 세계인들에게 헌정할 수 있는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입니다.
10년을 투혼해 『백범 강산에 눕다』를 써낸 작가 임순만 선생에게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이런 작가와 만나 대화할 수 있어서 우리 모두는 행복합니다.
35년간 언론에서 봉직하다가 퇴임한 임순만 선생은 이미 네 편의 장편소설을 탈고해놓고 있습니다. 향후 임순만 작가의 문학정신‧역사정신은 동시대인들에겐 축복이 될 것입니다. 새로운 문학운동의 한 중심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김언호
도서출판 한길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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