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 다큐멘터리 극영화 <1026: 새로운 세상을 위한>(감독: 최위안)



예술작품도 스포츠와 흡사해 높은 경지에 있는 예술가들은 힘을 뺄 줄 안다.
최근에 우연히 만난 다큐영화 <1026: 새로운 세상을 위한>(감독: 최위안, 제작: 리얼곤시네마)는 전에 없던 새로운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숏츠가 난무하는 요즈음, 상연 시간 113분 동안의 몰입감을 선사하는 영화다.
다큐인데도 그 흔한 인터뷰 장면 하나 삽입하지 않은 의도가 오히려 빛난다. 관계자들로부터 들어보니 인터뷰 장면들이 있긴 했으나 편집에서 다 삭제시켰다 한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의 깊이와 넓이가 상쇄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신선한 효과를 얻었다.
새 시대, 새 그릇 위에 담아 놓은 맛깔난 음식같다고나 할까! 조미료를 안친 슴슴한 진짜 냉면을 맛본 기분이라 뒷맛도 상큼했다.
<1026>은 우리 현대사를 안내해 준 도슨트같은 K-역사영화다. 국내인은 물론, K-현대사를 알고 싶어 하는 외국인들에게도 추천해 주고 싶다.
역사의 ‘1026 사태’는 모두가 다 아는 사건이지만 정작 그 디테일한 내막에 대해선 정치에 몸담고 있거나 군 내부를 잘 파악하고 있는 이 나라의 남성들 외엔 잘 모른다. 이해하기 어렵고 복잡하다.
최위안(71세 본명:崔洛權) 감독은 이 땅의 역사 사건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여준 셰프이다. ‘그것이 궁금했다’를 친절히 총정리 해 압축파일로 생성,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방대한 분량의 자료들을 한 주먹으로 빼내는 일도 그렇겠으나, 그걸 다 소화해 예술작품으로 차려놓은 작업은 초특급 셰프가 아니고선 할 수 없는 일!
이 영화에서는 여느 작품들과는 달리 관객을 힐링시켜 주지도, 위로해 주지도 않는다. 시끄러운 소리로 울부짖지도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관객이 영화 스크린 속으로 걸어 들어오길 기다린다. 그리고 그 작전은 맞아떨어진다. 관객에게 113분이라는 상영 동안은 한 시대의 즙과 향을 진하게 음미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으로 변한다.
이 예술작품에서 이 땅의 굴곡진 역사라는 사건을 다루고는 있으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사람을 다루고 있다. 또 민주화 된 지금을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이 그 수많은 희생자분들의 덕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되고 숙연해졌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는 엄연히 그들에게 진 빚이 있는 거고, 그 척박했던 시대의 실체를 제대로 인지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에게 빚갚음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다루면서도 우익 또는 좌익을 언급하지 않은 감독, 최위안은 역사를 규정짓지 않았다. 가슴을 활짝 열어 제치고 시대의 인물들에 대한 애증을 멀리 던져 버린 마음의 상태, 부감으로 쭈욱 세상을 바라보려 애썼고 그렇게 훑어냈다. 그 무언가를 주장하지도 않는다.
다만, 애틋하고 쓰라린 심정을 꿀꺽 삼키며 관객에게 곁을 내어준다. 인간 개개인의 사상과 인격을 존중하는 그의 품격높은 태도에 감동 받았다. 나는 이런 수작을 잉태해 낸 감독이 궁금했다.

Q 작품 구성은 언제부터? 걸린 시간은? 작업상의 애로사항은?
-첫 시작은 그러니까 2024년 겨울부터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15일 만에 이상하게 신들린 것처럼 막힘없이 술술 써갔어요. (영화의 흐름에 전혀 막힘이 없고 무리가 없었던 점을 보아 글쓴이 역시 그걸 거라 추측은 했다.)
제작비를 마련하는데 1년 이상 걸렸습니다. 제가 신용대출을 받는 등 해서 나머지 제작비를 보충해 겨우겨우 만든 겁니다. 적은 예산으로 제작하려다 보니 매 순간의 과정들이 난관이었어요.
Q 작품 제작비용은?
-1억 8천에 찍었습니다. 개봉비는 4천만 원 예정하고 있고요~
Q 이번이 첫 시사회가 아니지요?
-네. 작년 10월 말, 기술시사를 시작으로 서울에서 3차례, 광주 전주 목포에서 1회씩 상영했습니다. 함세웅 신부님과 이해학 목사님께서도 큰 도움을 주셨고요.
Q 런닝타임을 어떻게 잡으신 건지요?
-처음 시나리오 상으로는 140분이거든요. 스텝들의 만류로 113분으로 최종 편집으로 했고, 내용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만… 그동안 방대한 자료를 다루다 보니 수차례 오류와 수정을 거쳤어요. 다큐멘터리다 보니 팩트체크가 중요해서요.
Q 작품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준 배우들(권혁성/김재규 역, 김진환/박정희 역, 전노민/장준하 역, 최진호/차지철 역, 이충훈/김재규 수행비서 & 팝핀 댄서 역)의 연기가 튀지 않았고 감독과 호흡하는 고도의 연기술을 보였는데, 이 배우들은 어떻게 섭외하신 건가요? 내레이션 여배우(신소현)의 목소리 톤도 판에 박히지 않은 느낌이라 좋았거든요~
-얼굴이 알려진 배우들은 정치색이 있는 작품이라며 거절하기 일쑤였죠. 해서 무명 오디션을 몇 차례 거듭해 가며 실제 인물들과 싱크로율이 높고 연기력이 있는 친구들을 물색하는데 4~5개월 동안의 시간을 가져야 했습니다.
그나마 천만다행으로 지금의 배우들을 만나게 되어 사전 연기연습을 수차례 해가면서 캐릭터 작업을 완성해 나갔고요.
배우들은 배우들대로 적은 출연료에 오직 작품에 대한 열정을 품고 열심히 따라줘 현재에 이르게 된 거죠. 조연배우들도 제가 아는 연극배우들에게 부탁해 흔쾌히 임해주셨는데,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Q 촬영 과정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어요?
-촬영은 2025년 4월 10일 간 파주의 세트장을 빌려서 했어요, 스텝이 충분치 않다 보니 감독인 저를 비롯해 모두가 1인 다역을 하면서 죽을 고생을 했죠. (웃음) 일례로 차지철 역을 맡은 최진호 배우는 연출부 막내 일을 겸했어요. 조감독은 밤을 새워가며 현장의 소품, 편집 등의 일을 보조해 주었고, 자료조사 작가 양윤석 씨는 김수환 추기경 역으로 출연했답니다. 저는 저대로 감독/연출/촬영/미술 등을 총괄해 가며 촬영을 했습니다.
저는 작품 욕심 때문에 그걸 다 채우지 못해 촬영 기간 내내 속앓이를 했어요. 하다못해 보안사령관 김재규나 대통령 박정희의 집무실에 사용할 소품, 즉 전화기나 라이터, 펜 하나가 없거나 너무 후져서 그걸 드러내 보일 수 없는 안타까움은 말로 다할 수 없어요. 그래도 그런 걸 커버해 가며 겨우 어찌어찌 10일 만에 마무리를 했고요~
편집도 제대로 된 편집자를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다가 조감독에게 맡겼던 편집을 폐기하고 제가 직접 편집자와 붙어서 한컷 한컷 1대1로 편집을 했답니다. 자료는 자료대로 그 엄청난 분량을 정리해 가면서… 가장 중요한 컷들을 그것도 저작권을 의식해 가며 사용하는 어려움을 겪었고요. (한숨)
그러나 이 작품을 보면 감독이 말힌 그런 힘든 요소들이 오히려 더 감동으로 자라나 준 것 아닌가 싶다. 상징적 소품들과 빈 공간은 관객의 상상력을 유발시킨다. 흑백 장면도 그렇다. 가난한 제작비가 오히려 약이 되었다고나 할까.
이 영화 <1026>을 관람했던 이들의 입에서는 한결같이 “새롭고 신선한 다큐의 틀을 구현했다.”라는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이 영화의 ‘하이브리드 다큐멘터리 극영화’라는 독특한 형식이 새 시대의 관객의 마음을 얻어낸 것이리라!
유엔 피스코 : 특정 인물의 영웅담도 단순 정치영화도 아니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논쟁적이고 복합적인 순간을 통해 권력과 민주주의, 충성과 배신,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다시 묻는 작품이다.
배병수(사진작가) : <서울의 봄>에 이은 세인의 관심이 더 뜨거울 것 같다. 흑암에 묻혀진 줄만 알았던 비극으로 점철된 계엄의 망령이 또다시 세상을 혼돈에 몰아넣은 이 시점에 신구세대 모두 꼭 함께 봐야 할 영화가 아닐까 싶다.
행복하게 살자(무비프리 카페 리뷰단) : 흑백과 컬러를 오가는 차분한 톤의 연출이 시대적 분위기를 잘 살렸고, 무엇보다 실존 인물들의 서사를 촘촘하게 엮어낸 각본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단순한 오락 이상의 역사적 체험이었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위한’이라는 부재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더라구요.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현재가 얼마나 많은 역사의 굴곡 위에서 만들어졌는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현대사에 관심이 많은 분, 혹은 부모님과 함께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 싶은 분들께 추천드려요.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 : 영화의 주인공 박정희, 김재규, 장준하 3인을 연구조사해 온 입장에서 본 영화인데, 사실에 너무 부합해 재미있으면서도 다큐인지 영화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너무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이경애(문필가) : 113분의 시간 안에 밀도높게 담아낸 서사를 통해 현대사의 깊은 굴곡들을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었다. 젊은 세대들 가운데 단 한 명이라도 더 열린 마음으로 이 영화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놓치기에는 너무 아까운 현대사의 귀중한 시청각 기록이므로.
최유진(전 한국영상대 교수) : 이승만, 박정희 시대에 대한 교재로 쓰면 좋겠다. 내가 살아온 시대를 다시 한번 되새김 하게 해준 근 50여년의 한국현대사 작품이다.
이두엽(시민활동가) : 미래세대와 함께 손을 잡고 영화관에 가는 시민연대운동이 꼭 필요하다. 세대와 세대가 함께 모여 대화하고, 소통하고, 미래를 함께 꿈꾸어야 한다.
극은 장준하와 김재규, 김재규와 박정희의 대화장면이 이끈다. 흥미진진하고 심도깊은 대화다.
카메라 앵글의 독특한 장면들도 인상적이다. 예를 들면 바지 가랑이 틈에서 출발되는 카메라 앵글에서 읽을 수 있는 인간의 욕망 및 구조의 폭력…또, 배우의 등판만 바라보는 카메라. 그래서 관객은 배우의 등판을 보면 연기자 얼굴표정을 상상해야 한다. 역사는 하나가 아니라, 바라보는 사람의 해석임을 인식시켜 주는 영화적 언어다.
최위안 감독의 말이다.
“무엇보다 감독의 입장에서는 젊은 세대들에게 지루하지 않는 다큐영화여야 한다는 모토 아래, 포스터 카드를 활용해 복잡한 역사를 브릿지 삼도록 했고, AI를 활용해 시각적 변별력을 갖도록 하는가 하면, 중간중간 퍼포먼스를 연출해 그나마 보는 즐거움을 주고자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이 영화는 복합적으로 형성된 개인의 인생과 운명이 어떻게 역사의 강, 그 물줄기에 적용되어가는 건지를 깨우쳐준다. 또 박정희와 김재규의 시이소오 게임과 같은 시간의 저울질 또한 흥미로운 요소다.
감독은 영화의 도입 부분에 어릴 때 박정희와 김재규의 가족환경과 성장과정을 비교해 놓고, 이어지는 장면 마다 두 사람의 보이지 않는 심리까지 깊숙히 후벼 파헤쳤다. 날카롭다. 그리고, 엔딩 부분.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고 깔끔한 장면으로 만든 후, 김재규의 대사를 흘린다.
“저는 각하를 쏜 게 아닙니다! 유신의 심장을 쏜 혁명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그러니까 이 영화의 관람 포인트 “유신을 쏘다!”라는 카피는 이 엔딩대사에서 따온 것이다. 부디 많은 사람들이 초여름 과일과 같은 이 영화적 상큼한 맛과 향을 만끽해 보길 권한다.
감독이 영화 속에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세 인물을 평행이론으로 묶어낸 장면도 설득력 넘친다.
또 진압하는 전경들 밑에 누운채, 아스팔트 바닥에 엎드려 카메라의 앵글을 쏘아보는 청년의 눈빛. 단 1초의 찰라였으나, 그 강렬한 메시지는 시대적 상징을 뛰어넘는다. 극장 밖으로 나와서도 좀처럼 뇌리 속에서 사라지질 않았다.
한 시대를 온몸으로 부대끼며 거룩하게 생존해 온 우리들의 부모이자 자식, 아니 어쩌면 김재규의 눈빛이 아니었을까. 감독은 이 장면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치밀하게 계산에 넣었을 것이다.
김재규가 박정희에게 총을 쏜 직후,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마음속 대화 역시 이 영화의 백미이자 압권이었다.
이렇듯, 최위안 감독은 이 다큐영화 <1026 새로운 세상을 위한>를 통해 큰 목소리를 줄여 작은 목소리를 내었으며, 그것이 오히려 관객의 눈과 귀와 가슴과 오감을 활짝 열게 이끌었다.
* 영화 홈페이지 www.1026새로운세상.com * 상영정보

김정숙 (김재규 부장 셋째 여동생) : 제가 10.26 재심 신청을 통해 구하고자 했던 바는 개인의 명예보단 ‘역사’ 그 자체였습니다. 따라서 나는 김재규와 박정희에 대한 미화도 폄하도 원치 않습니다. 이 영화는 균형 잡힌 시각으로 10.26의 전모에 대한 진전된 해석을 시도했다는 점이 특별히 좋았고, 그래서 더 큰 감동이 있었습니다.
김단희 (김재규 부장 넷째 여동생) : 감독님이 오빠의 정신세계에 접촉을 하신 것 같습니다. 우리 형제들이 오빠를 이해하는 그런 장소에 계시는 분을 알게 되어 눈물이 납니다.
떨리던 손끝에 밤보다 깊은 기도가 내려
한 발의 침묵 뒤에 새벽은 멀기만 했네
나는 영웅도 아니요, 피 묻은 이름도 싫어
다만 짓눌린 사람들 숨 쉬는 봄을 원했네
어머니의 눈물과 아이들의 내일을 품고
차가운 권총보다 더 무거운 마음을 들었네
역사가 나를 묻거든 죄와 뜻을 함께 적어라
내 목숨보다 귀한 건 자유라 외쳤다 하라
[1026 함께 보기 시민연대] 동행 단체는 다음과 같다.
전국시국회의/김대중재단/김영삼민주센터/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광주지부/사)민주인권평화를실천하는긴급조치사람들/광주전남송죽회/역사기억평화행동/민족문제연구소광주지역위원회/사)제주4.3범국민위원회/사)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광주NGO시민재단/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사)한국영화인연합회 광주지회/강제징집녹화선도공작 진상규명위원회/경기중부민주화운동 계승사업회/서울참교육동지회 전국역사단체협의회/노후희망유니온/초록교육연대/고려대학교 민주동우회/서울대학교 민주동우회/전남대학교 민주동우회/전국대학민주동문회협의회/관객운동’선한오지랖’/전국민주화운동동지회/천안민주단체연대회의/박기래선생기념사업회/평화여성회의
덧붙이는 글
김경원 기자
<2026-05-18>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김재규가 쏜 것은 박정희가 아니었다!’


![img-top-introduce[1]](/wp-content/uploads/2016/02/img-top-news1.p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