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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회는 일본정부에게 사과 촉구하는데,한국 통영시는 ‘위안부’ 할머니들 가슴에 대못을 박는가
민족문제연구소 미국의회는 일본정부에게 사과 촉구하는데, 한국 통영시는 ‘위안부’ 할머니들 가슴에 대못을 박는가 제2차 세계대전 중 일제의 위안부 강제동원을 비난하는 미 하원 결의안이 6월 26일 하원 외교위원회를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했다. 결의안 통과를 주도한 마이크 혼다 의원은 놀랍게도 일본계 3세이다. 이번 결의안은 “일본 정부는 1930년대부터 2차 세계대전 말까지 점령지의 젊은 여성들을 일제 군대의 성 노리개로 동원토록 인정해 집단강간 및 강제유산 등 잔인성에서 전례 없는 20세기 최대의 인신매매를 저질렀다”고 비판하면서, 일본 정부에 대해 ▶위안부 성노예 강제 사실을 공식 인정하고 역사적 책임을 지며 ▶일본 총리의 공식 사과를 권고하고 ▶위안부 동원 사실을 반박하는 어떤 주장도 부인하며 ▶일본의 미래 세대에게 이 끔찍한 범죄사실을 교육하라고 요구했다. 6-70년 전 일제가 저지른 행위에 대해서 그것도 자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피해자들을 위해 노력하는 미국 정치인들의 양심이 빛나는 대목이다. 결의안이 발표된 지 4일이 지난 오늘. 지성의 상징이라는 한국의 대학 교수들이 모여서 6-70년 전 극작가 유치진이 저지른 친일행위를 용서해 주자고 한다. “그런 것, 저런 것 생각할 때, 이념 따로 심지어 민족 따로 예술과 문학을 평가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의 자세를 새삼 가다듬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김열규 서강대학교 명예교수)고 하는가 하면 심지어 “그가 순전히 타의에 의해서 1941년 3월부터 1945년 8월까지 4년 여 동안 어용극을 주로 한 현대극장을 이끌고 일본군국주의가 추구하던 목표에 맞춘
美의회 ‘위안부 결의안’ 놓고 일본언론 상반된 시각-나우뉴스(07.06.29)
美의회 ‘위안부 결의안’ 놓고 일본언론 상반된 시각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정부의 책임을 묻는 결의안이 통과된 데 대해 일본 주요언론들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아사히, 마이니치, 요미우리, 산케이신문은 지난 28일자 사설에서 위안부결의안 채택과 관련, 각각 상반된 주장을 펼쳤다.이런 시각차이는 각 신문 사설의 제목에서부터 나타났다.요미우리와 산케이신문은 ‘미 의회의 오해를 풀자’, ‘사실을 직시해 오해를 풀자’는 제목을 각각 달았다. 곧 일본군에 의한 위안부 강제동원은 잘못된 사실로 인한 오해라는 주장.내용을 살펴보면 요미우리 신문은 “미 의회의 위안부결의안 채택은 완전히 ‘오해’에 근거하는 결의안이다.”, “(하원의원은)사실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았으며 의원들의 수준을 의심케 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산케이신문도 “일본정부에 의한 강제적인 매춘이라고 단정지은 것은 많은 오해에 근거한 것”이라며 “일본정부의 자료에는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전혀없다.”며 비판했다.반면 아사히와 마이니치신문은 이와 대조되는 시각을 보였다.아사히와 마이니치 신문은 각각 사설 제목으로 ‘총리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라’, ‘아베 외교에는 문제가 있다’고 달았다.아사히신문은 “일본이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으면 미 의회가 규탄할 것” 이라며 “위안부의 잔혹함을 비난하는 결의안 내용을 (일본정부가)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피력했다.마이니치 신문은 “미국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들의 의사를 가볍게 넘겨서는 안된다.”며 향후 미·일 관계에 미칠 영향을 중심으로 보도했다.이외에 도쿄신문은 사설에서 “여성의 명예와 존엄을 해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며 “역사의 어두운 부분을 직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강성할 기자의 일본 이메일] ‘위안부 결의안’에 속타는 일본-부산일보(07.06.28)
[강성할 기자의 일본 이메일] ‘위안부 결의안’에 속타는 일본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지난 4월 아베 신조 총리가 미국 방문 당시 명확히 밝혔듯이 더 이상 덧붙일 것이 없다.”27일 시오자키 야스히사 일본 관방장관은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공식 사과를 촉구하는 결의안이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를 통과한 것과 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이 같이 말했다.시오자키 장관은 또 “다른 국가의 의회에서 결정한 일에 대해 정부가 언급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며 애써 태연한 모습을 보였다.하지만 지난 14일 워싱턴 포스트에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인하는 광고를 낸 일본 자민당, 민주당, 무소속 의원 40여명은 결의안 통과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이들은 “결의안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일방적인 것으로 도저히 허용할 수 없다”고 항변하고 다음달 미 하원 본회의에 상정될 것으로 보이는 결의안 채택 저지를 위해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이에 산케이신문 등 일본 언론은 이번 미 하원 외교위의 결의안 채택이 아베 총리가 강제동원을 부인한 점과 의원들이 미국 신문에 미국도 일본 점령 당시 위안소 설치를 요구했다고 주장한 광고를 실은 것이 결정적으로 역효과를 냈다며 아베 총리의 실언과 외교력 부족을 탓하기도 했다.한편 일본 시민단체들은 이번 결의안은 희망의 커다란 선물이라며 환영했다.도쿄의 시민단체인 ‘일본군위안부문제행동네트워크’의 시바자키 아츠코씨는 “일본 정부는 더 이상 피해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지 말고 생존자 인권 회복에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며 “아직도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 고령의 피해자에게 아베 총리가 직접 사죄하고 배상해야
[사회 ④] 8년의 산고…‘친일인명사전’ 발간
주선영 기자 ..이 책은 11월8일 보수단체의 반발과 정부의 예산 삭감 등 많은 우여곡절 끝에 시민들의 자발적인 성금을 통해 3권짜리 사전으로 발간됐다. 친일인명사전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일제 강점기에 친일 행위를 한 한국인의 목록을 정리해 발간한 인명사전이다. 친일 인명사전편찬위원회의 기준에 따라 선정된 인문들에 대해 구체적인 반민족행위와 해방 이후 주요 행적 등을 수록했다. 인명사전에는 애국가를 작곡…<기사 발췌> [사회 ④] 8년의 산고…‘친일인명사전’ 발간(데이터뉴스, 09.12.21)
‘위안부 해결’ 일본보다 못한 한국
‘위안부 해결’ 일본보다 못한 한국(경향신문, 09.12.22)
유민영교수 “친일 족쇄 ‘유치진’ 재평가”-연합뉴스(07.06.29)
유민영교수 “친일 족쇄 ‘유치진’ 재평가” (통영=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경남 통영 출신의 극작가.연극운동가로 친일인사로 분류된 동랑(東朗) 유치진(柳致眞.1905~1974)이 한국 연극사에 남긴 업적은 그의 친일행위를 덮고도 남는다는 평가가 나왔다.유민영 단국대학교 명예교수(전 정동극장 이사장)는 ‘2007 전국 소극장 축제’ 개막기념으로 30일 오후 열리는 ‘한국 신극 100년사에 미친 동랑의 영향’ 심포지엄 발제자료에서 유치진이 비록 일제말기 친일행위를 했지만 연극은 물론, 한국현대문화 전반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선구자였다고 주장했다.유치진은 1941년부터 4년간 친일 어용극을 주로 한 ‘현대극장’ 대표를 지내고 일본군국주의가 추구하던 목표에 맞춘 희곡을 써 2005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되는 등 친일인사로 분류됐었다.유 교수는 “문약했던 그가 총독부의 친일 강요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끝까지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해방후 몇년간 참회의 시간을 가졌던 점을 감안하면 탄생 100주년 행사도 제대로 치르지 못한 점은 아쉽다”고 밝혔다.그는 이어 “일제 말기 몇년을 제외하고 전 생애에 걸쳐 유치진만큼 인재양성과 전통연희 복원에 노력하면서 광범위하게 한국연극기반을 다진 인물은 없다”면서 “그의 업적은 친일행위를 커버하고도 남는다” 고 평가했다.김열규 서강대학교 명예교수는 ‘예술인의 삶과 작품, 민족과 이념과 예술사이에서’란 발제자료에서 “조선이름과 조선말이 없었고 제국신민이 있었을 뿐인 시대에 이광수며 최남선을 일방적으로 나무랄 처지는 아닌 것 같다”면서 “이념과 민족을 따로하고 예술과 문학을 평가.받아들이는 마음자세를 가다듬어 볼 수 도 있다”고 말했다.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이상우 영남대 교수와 송선호 성균관대 겸임교수 등이 유치진의 역사극과 연극운동에서의 계몽성, 대중성에
[기고]백범 58주기, ‘원로 백범맨’ 살리자-경향신문(07.06.28)
[기고]백범 58주기, ‘원로 백범맨’ 살리자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음으로써 많은 새싹을 냄과 같이, 내가 암살되어 나와 같은 애국자들을 많이 낼 수 있다면 나는 그 길을 기꺼이 마다하지 않겠다.”30여년간의 목숨을 건 독립운동의 여정을 끝내고 환국한 백범이 자신에 대한 암살 음모를 제보받을 때마다 남겼던 유언이다. 백범은 자신의 운명을 예측이라도 한 듯, 이 유언을 남기고 1949년 6월26일 정오에 안두희가 쏜 흉탄을 맞고 하늘로 돌아갔다.백범은 암살되기 하루 전, 공군 장교였던 아들 신이 찾아와 암살 위험을 알리며 피신을 간청했지만 “군인이 사사로운 정에 매여 임지를 비운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호통을 쳐서 보낸 뒤 예고된 사선을 향해 정면으로 맞섰던 것이다.백범의 ‘밀알유언’은 희망차고 역동적인 모습으로 강산 곳곳에서 꽃처럼 피어났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일제 말엽 ‘부민관 폭파사건’의 주역이었던 조문기옹이다.현재 서울시 의회 건물 자리인 ‘부민관’에서 일본 고위 관리들이 참석한 행사장에 동지들과 함께 폭약을 터뜨린 것이다. 해방 직후 조옹은 보장된 부귀영화와 출세가도를 버리고 산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 은거의 청년시절을 보냈다.그러다가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제2의 부민관 폭파 사건’을 도모하다 모진 고초를 겪은 뒤 다시 경기도 화성의 고향으로 돌아가 초근목피(草根木皮)의 세월을 살아야 했다. ‘독립운동가’로 등록만 했더라도 최악의 생활은 면했을 것이건만, 그는 그때까지도 이를 거부했다.“조국이 실질적으로 독립된 것도 아닌데 독립운동가 대우를 받는 것은 가당치 않다”는 것이 거부이유였다. 보다 못한 조옹의 무남독녀 내외가
뉴라이트가 접수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뉴라이트가 접수한 과거사정리위원회(시사인, 09.12.21)








